목록漢詩와 漢文/삼국연의 (121)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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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回 驅巨獸六破蠻兵 燒藤甲七擒孟獲. 제90회 驅巨獸하여 여섯 번째 蠻兵을 깨뜨리고, 燒藤甲하여 일곱 번째 孟獲을 사로잡다. 卻說 孔明放了孟獲等一干人,楊鋒父子皆封官爵,重賞洞兵。 각설하고 공명은 맹획 등 一干人을 놓아 주고, 양봉 부자 모두에게 官爵을 봉하고, 洞兵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 楊鋒等拜謝而去。 양봉 등이 拜謝하고 갔다. 孟獲等連夜奔回銀坑洞。 맹획 등은 그날 밤 銀坑洞으로 달려서 돌아갔다. 那洞外有三江:乃是瀘水、甘南水、西城水。三路水會合,故為三江。 이 은갱동 밖에는 3강이 있는데 곧 瀘水, 甘南水, 西城水이다. 세 갈래의 물이 모이기 때문에 3강이라 한다. 其洞北近平坦二百餘里,多產萬物;洞西二百餘里,有鹽井;西南二百里,直抵瀘、甘;正南三百里,乃是梁都洞。 그 동리의 북쪽 가까이 평탄한 곳이 2백여 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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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一回 祭瀘水漢相班師 伐中原武侯上表. 제91회 祭瀘水하여 漢相은 班師하고, 伐中原하려 武侯가 上表하다. 卻說 孔明班師回國,孟獲率引大小洞主酋長,及諸部落羅拜相送; 각설하고 공명이 回國하려 班師하자, 맹획은 대소의 동주, 추장, 여러 부락을 率引하고 늘어서서 절하며 환송하였다. 前軍至瀘水,時值九月秋天,忽然陰雲布合,狂風驟起; 앞 부대가 노수에 이르렀을 때는 구월 가을이었다. 홀연히 陰雲(먹구름)이 布合(긴밀히 분포함)하고, 광풍이 驟起하였다. 兵不能渡,回報孔明。 군사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공명에게 돌아가 보고하였다. 孔明遂問孟獲,獲曰: 「此水原有猖神作禍,往來者必須祭之.」 공명이 맹획에게 물으니 맹획이 말하였다. “이 물에는 원래 猖神이 있어서 재앙을 일으키니 往來者는 반드시 제사를 지냅니다.” 孔明曰: 「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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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二回 趙子龍力斬五將 諸葛亮智取三城. 제92회 趙子龍이 힘으로 五將을 참하고, 諸葛亮이 지략으로 三城을 취하다. 卻說 孔明率兵前至沔陽,經過馬超墳墓,乃令其弟馬岱挂孝。 한편, 공명이 병력을 이끌고 沔陽에 이르러 마초의 墳墓를 지나게 되자, 아우 마대에게 상복을 입게 하였다. 孔明親自祭之。 공명은 몸소 제사를 올렸다. 祭畢,回到寨中,商議進兵。 제사를 마치고 영채로 돌아와 進兵을 상의하였다. 忽哨馬報道: 「魏主曹叡遣駙馬夏侯楙,調關中諸路軍馬,前來拒敵.」 哨馬가 보고하였다. “魏主 조예가 부마 하후무를 보내어, 관중 각 방면의 군마를 조달하여 맞서러 옵니다.” 魏延上帳獻策曰: 「夏侯楙乃膏粱子弟,懦弱無謀。 延願得精兵五千,取路出褒中,循秦嶺以東,當子午谷而投北,不過十日,可到長安。 夏侯楙若聞某驟至,必然棄城望橫門邸閣而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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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三回 姜伯約歸降孔明 武鄉侯罵死王朗. 제93회 姜伯約은 孔明에게 항복하고, 武鄉侯는 王朗을 꾸짖어 죽게 하다. 卻說 姜維獻計於馬遵曰: 「諸葛亮必伏兵於郡後,賺我兵出城,乘虛襲我。 某願請精兵三千,伏於要路。 太守隨後發兵出城,不可遠去,止行三十里便回; 但看火起為號,前後夾攻,可獲大勝。 如諸葛亮自來,必為某所擒矣.」 각설하고 강유가 마준에게 계책을 올렸다. “제갈량은 틀림없이 고을의 뒤에 伏兵하고, 우리 군사를 속여 성을 나가면, 빈틈을 타고 우리를 습격할 터입니다. 저는 원컨대 精兵三千을 청하여 要路에 매복하겠습니다. 태수께서는 뒤를 따라 發兵出城하되 멀리 가지 마시고 30리만 가다 돌아오십시오. 看火起為號하시고 前後夾攻하면 大勝을 거둘 수 있겠습니다. 제갈량이 직접 온다면 틀림없이 저에게 사로잡힐 터입니다.” 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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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四回 諸葛亮乘雪破羌兵 司馬懿剋日擒孟達 제94회 제갈량이 폭설을 틈타서 羌兵을 격파하고, 사마의가 날짜에 맞추어 맹달을 잡다. 卻說 郭淮謂曹真曰: 「西羌之人,自太祖時連年入貢,文皇帝亦有恩惠加之; 我等今可據住險阻,遣人從小路直入羌中求救,許以和親,羌人必起兵襲蜀之後。 吾卻以大兵擊之,首尾夾攻,豈不大勝?」 한편, 곽회가 조진에게 말하였다. “西羌之人은 태조 시절부터 連年入貢했으며, 문황제께서도 그들에게 은혜를 더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險阻에 雄據하면서, 사람을 小路를 통해 서강으로 들여보내 구원을 요청하고, 和親을 허락하면, 羌人들은 틀림없이 군사를 일으켜 촉의 배후를 습격할 터입니다. 우리도 역시 大兵으로써 공격하여 首尾夾攻하면, 어찌 크게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真從之,即遣人星夜馳書赴羌。 조진이 그 말을 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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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五回 馬謖拒諫失街亭 武侯彈琴退仲達. 제95회 馬謖이 간언을 듣지 않아 街亭을 잃고, 武侯는 거문고를 타서 仲達을 물리치다. 卻說 魏主曹叡令張郃為先鋒,與司馬懿一同征進; 한편, 魏主 조예가 장합을 선봉으로 삼아, 사마의와 함께 출정시켰다. 一面令辛毗、孫禮二人領兵五萬,往助曹真。 동시에 신비와 손례 두 사람에게 군사 5만을 거느리고 가서 조진을 돕게 하였다. 二人奉詔而去。 두 사람이 천자의 조서를 받들고 떠났다. 且說 司馬懿引二十萬軍,出關下寨,請先鋒張郃至帳下曰: 「諸葛亮平生謹慎,未敢造次行事。 若是吾用兵,先從子午谷徑取長安,早得多時矣。 他非無謀,但恐有失,不肯弄險。 今必出軍斜谷,來取郿城。 若取郿城,必分兵兩路,一軍取箕谷矣。 吾已發檄文,令子丹拒守郿城,若兵來不可出戰; 令孫禮、辛毗截住箕谷道口,若兵來則出奇兵擊之.」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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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六回 孔明揮淚斬馬謖 周魴斷髮賺曹休. 제96회 孔明이 揮淚하며 馬謖을 참하고 周魴이 斷髮하여 曹休를 꼬드기다. 卻說 獻計者,乃尚書孫資也。 한편, 계책을 바친 이는 바로 상서 벼슬에 있는 孫資이었다. 曹叡問曰: 「卿有何妙計?」 조예가 물었다. “경에게 어떤 妙計가 있소?” 資奏曰: 「昔太祖武皇帝收張魯時,危而後濟;常對群臣曰: 『南鄭之地,真為天獄。』 中斜谷道為五百里石穴,非用武之地。 今若盡起天下之兵伐蜀,則東吳又將入寇。 不如以現在之兵,分命大將據守險要,養精蓄銳。 不過數年,中國日盛,吳、蜀二國,必自相殘害,那時圖之,豈非勝算? 乞陛下裁之.」 孫資가 아뢰었다. “지난날 태조 무황제께서 張魯를 거두어들일 당시에 위기에 처하기도 하셨으나 결국 성공하셨습니다. 항상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南鄭 지역은 참으로 天獄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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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七回 討魏國武侯再上表 破曹兵姜維詐獻書. 제97회 討魏國하고자 武侯는 다시 上表하고, 破曹兵하려고 姜維는 거짓으로 獻書하다. 卻說 蜀漢建興六年秋九月,魏都督曹休被東吳陸遜大破於石亭,車仗馬匹,軍資器械,並皆罄盡。 한편, 촉한 건흥 6년 가을 9월, 魏都督 조휴가 동오의 육손에게 石亭에서 大破되고, 수레와 마필, 군수물자와 병기 따위를 모조리 잃었다. 休惶恐之甚,氣憂成病,到洛陽,疽發背而死。 조휴가 황공함이 심하고, 노기와 근심이 병이 되더니, 낙양에 도착하자 종기가 등에 나서 사망하였다. 魏主曹叡敕令厚葬。 魏主 曹叡가 칙령을 내려, 후하게 장사지냈다. 司馬懿引兵還。眾將接入問曰: 「曹都督兵敗,即元帥之干係,何故急回耶?」 사마의가 병력을 이끌고 돌아오니, 장수들이 맞아들여 물었다. “조도독이 패전함은 元帥之干係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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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八回 追漢軍王雙受誅 襲陳倉武侯取勝. 제98회 漢軍을 추격하다가 王雙이 受誅하고, 陳倉을 습격하여 武侯가 取勝하다. 卻說 司馬懿奏曰: 「臣嘗奏陛下,言孔明必出陳倉,故以郝昭守之。今果然矣。 彼若從陳倉入寇,運糧甚便。 今幸有郝昭、王雙守把,不敢從此路運糧。 其餘小道,搬運艱難。 臣算蜀兵行糧止有一月,利在急戰。 我軍只宜久守。 陛下可降詔,令曹真堅守諸路關隘,不要出戰。 不須一月,蜀兵自走。 那時乘虛而擊之,諸葛亮可擒也.」 한편, 사마의가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폐하께 아뢰기를, 공명이 틀림없이 진창으로 나올 터이니 학소가 그곳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저들이 진창으로 침범하면 運糧이 심히 편합니다. 이제 다행히 학소와 왕쌍이 守把하니, 감히 이 길로 식량을 운반하지 못할 터입니다. 나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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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九回 諸葛亮大破魏兵 司馬懿入寇西蜀. 제99회 제갈량이 魏兵을 대파하고 사마의가 西蜀을 침범하다. 蜀漢建興七年,夏四月,孔明兵在祁山,分作三寨,專候魏兵。 촉한 건흥 7년(서기 229년) 여름 4월, 공명의 군대는 기산에서 分作三寨하고 魏兵을 기다렸다. 卻說 司馬懿引兵到長安,張郃接見,備言前事。 한편, 사마의가 병력을 이끌고 장안으로 가니 張郃이 接見하고 備言前事하였다. 懿令郃為先鋒,戴凌為副將,引十萬兵到祁山,於渭水之南下寨。 사마의가 장합을 선봉으로 삼고 戴凌을 副將으로 삼아 十萬兵을 이끌고 기산으로 가서 渭水之南에 下寨하였다. 郭淮、孫禮入寨參見。 곽회와 손례가 入寨參見하였다. 懿問曰: 「汝等曾與蜀兵對陣否?」 사마의가 물었다. “그대들은 촉병과 대진한 적이 있소?” 二人答曰: 「未也.」 두 사람이 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