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漢詩와 漢文/삼국연의 (121)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第一百回 漢兵劫寨破曹真, 武侯鬥陣辱仲達. 제100회 漢兵이 劫寨하여 破曹真하고, 武侯가 鬥陣하여 辱仲達하다. 卻說 眾將聞孔明不追魏兵,俱入帳告曰: 「魏兵苦雨,不能屯紮,因此回去。 正好乘勢追之,丞相如何不追?」 한편, 장수들은 공명이 魏兵을 추격하지 않음을 듣자 함께 군막에 들어와서 고하였다. “위병이 장마에 시달려 더는 주둔하지 못해 돌아갑니다. 형세를 타고 추격하기 참으로 좋은데 승상께서 어찌하여 추격하지 않으십니까?” 孔明曰: 「司馬懿善能用兵,今軍退必有埋伏。 吾若追之,正中其計。 不如縱他遠去,吾卻分兵徑出斜谷而取祁山,使魏人不隄防也.」 공명이 말하였다. “사마의는 善能用兵하니, 이제 軍退함에 틀림없이 매복이 있을 터이오. 우리가 추격하면 바로 그 계책에 빠지오. 그들을 멀리 가게 놓아주고, 우리는 分兵하여 서둘..
第一百零一回 出隴上諸葛妝神, 奔劍閣張郃中計. 제101회 出隴上하여 諸葛이 妝神하고, 奔劍閣하여 張郃이 中計하다. 卻說 孔明用減兵添灶之法,退兵到漢中. 한편, 공명이 減兵添灶之法을 써서 한중으로 退兵하였다. 司馬懿恐有埋伏,不敢追趕,亦收兵回長安去了. 사마의는 매복이 있을까 염려하여 不敢追趕하고 역시 收兵하여 장안으로 돌아갔다. 因此蜀兵不曾折了一人. 이 때문에 蜀兵을 一人도 잃지 않았다. 孔明大賞三軍已畢,回到成都,入見後主,奏曰: 「老臣出了祁山,欲取長安,忽承陛下降詔召回,不知有何大事?」 공명이 삼군을 크게 상주고 나서 回到成都하여 入見後主하고 아뢰었다. “老臣이 기산으로 나가서 장안을 취하려는데,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돌아오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무슨 큰일이 있는지요?” 後主無言可對. 후주가 대답할 말이 없었다...
第一百零二回 司馬懿占北原渭橋, 諸葛亮造木牛流馬. 제102회 사마의가 북원을 점거하여 渭橋를 놓고, 제갈량이 木牛流馬를 만들다. 卻說 譙周官居太史,頗明天文;見孔明又欲出師,乃奏後主曰: 「臣今職掌司天臺,但有禍福,不可不奏。 近有群鳥數萬,自南飛來,投於漢水而死,此不祥之兆。 臣又觀天象,見奎星躔於太白之分,盛氣在北,不利伐魏。 又成都人民,皆聞柏樹夜哭。 有此數般災異,丞相只宜謹守,不可妄動.」 한편, 초주는 太史로 官居하며 천문에 자못 밝은데, 공명이 다시 出師하려 함을 보고 후주에게 상주하였다. “신이 이제 司天台 직무를 맡고 있는데 禍福이 있는지라, 상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새 새 떼 수만 마리가 남쪽에서 날아와서 한수에 떨어져 죽었는데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신이 또한 천문을 관측하니, 奎星이 太白의 영역..
第一百零三回 上方谷司馬受困, 五丈原諸葛禳星. 제103회 上方谷에서 사마의가 곤경에 처하고, 五丈原에서 제갈량이 별에 기도하다. 卻說 司馬懿被張翼、廖化一陣殺敗,匹馬單鎗,望密林間而走。 한편, 사마의는 장익과 요화에게 한바탕 무찌름을 당하고 匹馬單槍으로 밀림을 향해 달아났다. 張翼收住後軍,廖化當先追趕。 장익은 後軍을 거두고, 요화가 앞장서서 뒤쫓았다. 看看趕上,懿著慌遶而轉。 점점 따라붙자 사마의가 황급히 나무 둘레를 따라서 돌았다. 化一刀砍去,正砍在樹上;及拔出刀時,懿已走出林外。 요화가 단칼로 베려다가 나무를 베어서, 칼을 뽑는 사이에 사마의는 숲 밖으로 달아났다. 廖化隨後趕出,卻不知去向,但見樹林之東,落下金盔一個。 요화가 뒤쫓아 나가지만 행방을 알 수 없는데, 樹林之東에 황금 투구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廖化..
第一百零四回 隕大星漢丞相歸天, 見木像魏都督喪膽. 제104회 大星이 떨어지자 漢丞相이 歸天하고, 木像을 보고 魏都督이 喪膽하다. 卻說 姜維見魏延踏滅了燈,心中忿怒,拔劍欲殺之。 한편, 강유는 위연이 등불을 밟아서 꺼트림을 보고, 마음속으로 분노하여 검을 뽑아 죽이려 하였다. 孔明止之曰: 「此吾命當絕,非文長之過也.」 공명이 제지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내 목숨이 끊어질 운명이지, 文長之過가 아니다.” 維乃收劍。 강유가 이에 검을 거두었다. 孔明吐血數口,臥倒床上,謂魏延曰: 「此是司馬懿料吾有病,故令人來探視虛實。 汝可急出迎敵.」 공명이 吐血數口하고 침상에 쓰러져서 위연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사마의가 내게 병이 있는 줄 알고 사람을 시켜 허실을 探視하러 온 것이오. 그대는 어서 나가서 迎敵하시오.” 魏延領命,出帳上馬..
第一百零五回 武侯預伏錦囊計, 魏主拆取承露盤. 제105회 武侯가 錦囊計를 예비하고, 魏主가 承露盤을 뜯어 오다. 卻說 楊儀聞報前路有兵攔截,忙令人哨探。 한편, 양의는 앞길에 어떤 군사가 가로막는다는 보고를 듣고, 황망히 사람을 시켜 哨探하게 하였다. 回報說魏延燒絕棧道,引兵攔路。 돌아와 보고하기를, 위연이 燒絕棧道하고 引兵攔路라고 하였다. 儀大驚曰: 「丞相在日,料此人久後必反,誰想今日果然如此。 今斷吾歸路,當復如何?」 양의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승상이 살아계실 때, 이 사람이 먼 훗날 틀림없이 배반하겠다고 예측하셨지만, 누가 오늘 과연 이렇게 될 줄 알았겠소? 이제 우리의 귀로를 끊었으니 어찌해야겠소?” 費褘曰: 「此人必先捏奏天子,誣吾等造反,故燒絕棧道,阻遏歸路。 吾等亦當表奏天子,陳魏延反情,然後圖之.」 비위가 ..
第一百零六回 公孫淵兵敗死襄平 司馬懿詐病賺曹爽. 제106회 공손연이 패전하여 襄平에서 죽고, 사마의가 병든 척 曹爽을 속이다. 卻說 公孫淵乃遼東公孫度之孫,公孫康之子也。 한편, 공손연은 遼東 公孫度의 손자이며, 公孫康의 아들이었다. 建安十二年,曹操追袁尚,未到遼東,康斬尚獻操,操封康為襄平侯; 건안 12년 조조가 원상을 추격하여 요동에 이르기 전에, 공손강이 원상을 베어서 首級을 조조에게 바치니, 조조가 공손강을 襄平侯로 봉하였다. 後康死,有二子,長曰晃,次曰淵,皆幼; 후에 공손강이 죽으며 두 아들을 남겼는데 장남은 공손황, 차남은 공손연이고 둘 다 어렸다. 康弟公孫恭繼職。 공손강의 아우 공손공이 직위를 계승하였다. 曹丕時封恭為車騎將軍襄平侯。 조비 재위시 공손공을 車騎將軍襄平侯로 봉하였다. 太和二年,淵長大,文武兼備..
一百零七回 魏主政歸司馬氏, 姜維兵敗牛頭山. 제107회 魏主가 司馬氏에게 정무를 맡기고, 姜維가 牛頭山에서 패전하다. 卻說 司馬懿聞曹爽同弟曹羲、曹訓、曹彥並心腹何晏、鄧颺、丁謐、畢軌、李勝等,及御林軍,隨魏主曹芳,出城謁明帝墓,就去畋獵。 한편, 사마의가 들으니, 조상이 그의 아우 조희, 조훈, 조언과 아울러 심복 하안, 등양, 정밀, 필범, 이승 등과 어림군을 이끌고, 魏主 조방을 수행하여 성 밖으로 나가서 명제의 묘로 가서 사냥한다고 하였다. 懿大喜,即到省中,令司徒高柔,假以節鉞行大將軍事,先據曹爽營;又令太僕王觀行中領軍事,據曹羲營。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省中으로 가서 司徒 高柔에게 명하여 임시로 節鉞을 주어서 대장군의 일을 맡기고 먼저 조상의 군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또 太僕 王觀에게 中領軍의 일을 맡겨 조..
第一百零八回 丁奉雪中奮短兵 孫峻席間施密計. 제108회 丁奉이 雪中에서 奮短兵하고, 孫峻이 宴席에서 施密計하다. 卻說 姜維正走,遇著司馬師引兵攔截。 한편, 강유가 달아나다가, 사마사가 군을 이끌고 가로막음에 逢着하였다. 原來姜維取雍州之時,郭淮飛報入朝。 알고 보니, 원래 강유가 取雍州之時에 곽회가 조정에 급보하였다. 魏主與司馬懿商議停當。懿遣長子司馬師引兵五萬,前來雍州助戰。 위주는 사마의와 상의를 마쳤고, 사마의는 장자 사마사에게 병사 5만을 이끌고 옹주로 가서 助戰하게 하였다. 師聽知郭淮敵退蜀兵,師料蜀兵勢弱,就來半路擊之; 사마사는 곽회가 敵退蜀兵함을 듣자 蜀兵勢弱이라 여기고, 도중에 와서 공격한 것이었다. 直趕到陽平關,卻被姜維用武侯所傳連弩法,於兩邊暗伏連弩百餘張,一弩發十矢,皆是藥箭。 양평관까지 곧장 추격하자, 강..
第一百零九回 困司馬漢將奇謀 廢曹芳魏家果報. 제109회 司馬를 포위하니 漢將의 奇謀요, 曹芳을 폐위하니 魏家의 果報이다. 蜀漢延熙十六年秋,將軍姜維起兵二十萬,令廖化、張翼為左右先鋒,夏侯霸為參謀,張嶷為運糧使,大兵出陽平關伐魏。 촉한 연희 16년 가을, 장군 강유가 병사 20만을 일으켜 요화와 장익을 左右先鋒으로 삼고, 하후패를 참모로, 張嶷를 運糧使로 삼고 대군이 陽平關을 나가서 伐魏하였다. 維與夏侯霸商議曰: 「向取雍州,不克而還; 今若再出,必又有備。 公有何高見?」 강유가 하후패와 더불어 상의하였다. “지난번에 옹주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소. 이제 다시 출병하면 틀림없이 또 준비가 있을 터이오. 공에게 어떤 고견이 있소?” 霸曰: 「隴上諸郡,只有南安錢糧最廣;若先取之,足可為本。 向者不克而還,蓋因羌兵不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