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삼국연의

삼국연의96회-泣斬馬謖과 周魴의 斷髮

耽古樓主 2023. 2. 6. 19:57
반응형

第九十六回
孔明揮淚斬馬謖 周魴斷髮賺曹休.
제96회
孔明 揮淚하며 馬謖을 참하고 周魴 斷髮하여 曹休를 꼬드기다.


卻說
獻計者乃尚書孫資也
한편,
계책을 바친 이는 바로 상서 벼슬에 있는 孫資이었다.

曹叡問曰
卿有何妙計?」
조예가 물었다.
경에게 어떤 妙計가 있소?”

資奏曰
昔太祖武皇帝收張魯時危而後濟常對群臣曰
南鄭之地真為天獄。』
中斜谷道為五百里石穴非用武之地
今若盡起天下之兵伐蜀則東吳又將入寇
不如以現在之兵分命大將據守險要養精蓄銳
不過數年中國日盛蜀二國必自相殘害那時圖之豈非勝算
乞陛下裁之.
孫資가 아뢰었다.
지난날 태조 무황제께서 張魯를 거두어들일 당시에 위기에 처하기도 하셨으나 결국 성공하셨습니다.
항상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南鄭 지역은 참으로 天獄이오,’
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 야곡을 지나가는 길은 5백 리에 걸친 石穴이라 用武之地가 아닙니다.
이제 천하의 병력을 모두 일으켜 촉나라를 정벌하면, 東吳가 곧 침범할 터입니다.
차라리 現在之兵을 나누어 대장들에게 險要를 지키게 하면서 養精蓄銳함만 못하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은 나날이 번성하고 오, 촉 두 나라는 틀림없이 서로 해칠 터이니 그때 그들을 도모한다면 어찌 승산이 없겠습니까?
폐하께서 잘 재결하시기 바랍니다.”

叡乃問司馬懿曰
此論若何?」
조예가 이에 사마의에게 물었다.
이런 의견은 어떻소?”

懿奏曰
孫尚書所言極當.
사마의가 말하였다.
손상서가 드린 말씀이 지당하옵니다.”

叡從之命懿分撥諸將守把險要留郭淮張郃守長安
조예가 그 말을 따라 사마의에게 명하여 장수들을 뽑아 보내 險要守把하게 하고 곽회와 장합을 남겨 장안을 지키게 하였다.

大賞三軍駕回洛陽
3군을 크게 상주고 어가를 타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卻說
孔明回到漢中計點軍士只少趙雲鄧芝心中甚憂
한편,
공명은 한중으로 되돌아가 군사를 計點하는데 다만 조운과 등지 두 사람만 보이지 않아 마음속으로 몹시 우려하였다.

乃令關興張苞各引一軍接應
이에 관흥과 장포에게 각각 1군을 이끌고 接應하도록 하였다.

二人正欲起身忽報趙雲鄧芝到來並不曾折一人一騎輜重軍器亦無遺失
두 사람이 막 몸을 일으키려는데 보고하기를, 조운과 등지가 도착했는데 군사 한 명, 말 한 필 잃지 않고 輜重軍器도 전혀 遺失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孔明大喜親引諸將出迎
공명이 매우 기뻐하며 몸소 장수들을 이끌고 맞으러 나갔다.

趙雲慌忙下馬伏地曰
敗軍之將何勞丞相遠接?」
조운이 慌忙下馬伏地하여 말하였다.
敗軍之將을 어찌 승상께서 수고스럽게 遠接하십니까?”

孔明急扶起執手而言曰
是吾不識賢愚以致如此
各處兵將敗損惟子龍不折一人一騎何也?」
공명이 급히 부축해 일으키며 손을 잡고 말하였다.
내가 賢愚를 식별하지 못해 致如此하였소!
各處兵將이 패전하고 손해를 입었는데, 오로지 자룡만이 군사 한 명, 말 한 필 잃지 않았다니 어찌 된 까닭이오?”

鄧芝告曰
某引兵先行子龍獨自斷後斬將立功敵人驚怕
因此軍資什物不曾遺棄.
등지가 고하였다.
제가 병력을 이끌고 먼저 가는데, 자룡께서 홀로 후방을 차단하고 적장을 참하여 공을 세우니, 敵人驚怕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軍資什物을 유실한 적이 없습니다.”

孔明曰
真將軍也!」
공명이 말하였다.
참으로 장군답구려!”

遂取金五十斤以贈趙雲
곧 황금 5십 근을 가져다 조운에게 주었다.

又取絹一萬疋賞雲部卒
또 비단 1만 필을 가져다 조운의 部卒에게 포상하였다.

雲辭曰
三軍無尺寸之功某等俱各有罪
若反受賞乃丞相賞罰不明也
且請寄庫候今冬賜與諸軍未遲.
조운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3군에 尺寸之功도 없고 저희 모두에게 죄가 있습니다.
도리어 포상을 받으면, 승상의 賞罰分明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선 府庫에 넣어두고 금년 겨울을 기다려 군사들에게 내려주어도 늦지 않겠습니다.”

孔明歎曰
先帝在日常稱子龍之德今果如此!」
공명이 찬탄하였다.
선제께서 살아 계실 때 늘 子龍之德을 칭찬하셨는데, 이제 보니 과연 그렇구려!”

乃倍加欽敬
이에 한층 더 欽敬하였다.

忽報馬謖王平魏延高翔至孔明先喚王平入帳責之曰
吾令汝同馬謖守街亭汝何不諫之致使失事?」
마속, 왕평, 위연, 고상이 왔다고 보고하였다. 공명이 먼저 왕평을 군막으로 불러들여 꾸짖었다.
내 그대에게 마속과 더불어 가정을 지키라 하였거늘, 그대는 어찌 제대로 간언하지 않아 일을 그르치게 했소?”

平曰
某再三相勸要在當道築土城安營守把
參軍大怒不從某因此自引五千軍離山十里下寨
魏兵驟至把山四面圍合某引兵衝殺十餘次皆不能入
次日土崩瓦解降者無數
某孤軍難立故投魏文長求救
半途又被魏兵困在山谷之中某奮死殺出.
比及歸寨早被魏兵占了
及投列柳城時路逢高翔遂分兵三路去劫魏寨指望克復街亭
因見街亭並無伏路軍以此心疑
登高望之只見魏延高翔被魏兵圍住某即殺入重圍救出二將就同參軍併在一處
某恐失卻陽平關因此急來回守
非某之不諫也
丞相不信可問各部將校.
왕평이 말하였다.
제가 再三 권하기를, 길목에 토성을 쌓고 영채를 설치하여 지키자고 권고했습니다.
參軍이 크게 화를 내며 따르지 않기에, 저 스스로 5천 병력을 이끌고 산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위병이 몰려와서 산을 사방으로 포위하므로 제가 병력을 이끌고 10여 차례나 돌격하였으나 번번이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마치 土崩瓦解하듯이 무너져 항복한 이들이 無數하였습니다.
저의 군대는 고립되어 버티기 어려운지라 魏文長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갔습니다.
도중에 山谷之中에서 위병에게 포위되었으나 제가 죽을힘을 다해 뚫고 나왔습니다.
이윽고 영채에 가보니 벌써 위병이 점령한 뒤였습니다.
열류성으로 가는 도중에 고상을 만나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위나라 영채를 습격하러 가면서 가정을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정으로 가는 길에 伏路軍이 전혀 보이지 않는 까닭에 의심이 들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서 바라보니 위연과 고상이 위병에게 포위되어 있어서 제가 즉시 겹겹의 포위를 뚫고 들어가서 두 장수를 구출하고 參軍과 함께 군대를 한 데 합쳤습니다.
저는 양평관마저 빼앗길까 염려하여 서둘러 돌아와 수비하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간언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승상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각부 장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孔明喝退又喚馬謖入帳謖自縛跪於帳前
공명이 호통쳐서 내보내고 다시 마속을 군막에 불러들이니 마속이 스스로 몸을 결박한 채 군막 앞에 무릎을 꿇었다.

孔明變色曰
汝自幼飽讀兵書熟諳戰法
吾累次叮嚀告戒街亭是吾根本汝以全家之命領此重任
汝若早聽王平之言豈有此禍
今敗軍折將失地陷城皆汝之過也
若不明正軍律何以服眾
汝今犯法休得怨吾
汝死之後汝之家小吾按月給與祿米汝不必挂心。」
공명이 낯빛을 고쳐 말하였다.
너는 어려서부터 병서를 두루 읽고 戰法熟諳하였다.
내가 누차 거듭 당부하며 가정은 아군의 근본이라고 告戒하였고, 너도 온 집안의 목숨을 걸고 이러한 중임을 맡았다.
네가 일찍이 왕평의 간언을 들었다면 어찌 이런 재앙이 있겠는가?
이제 敗軍折將하고 失地陷城한 것은 모두 너의 잘못이다!
만약 明正軍律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들을 복종시키겠는가?
네가 이제 군법을 범하였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네가 죽은 뒤, 너의 家小에게 내가 너의 月給祿米를 안배할 테니 너는 挂心할 필요가 없다.”

叱左右推出斬之
좌우에게 소리쳐 끌어내어 참하라고 하였다.

謖泣曰
丞相視某如子某以丞相為父
某之死罪實已難逃願丞相思舜帝殛鯀用禹之義某雖死亦無恨於九泉!」
마속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승상께서 저를 아들처럼 보시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여겼습니다.
저의 死罪는 참으로 벗어나기 어려우나, 바라옵건대 승상께서 殛鯀用禹之義를 생각하여 주십시오. 저는 비록 죽더라도 구천에서 아무런 한이 없겠습니다!”

言訖大哭
말을 마치고 大哭하였다.

孔明揮淚曰
吾與汝義同兄弟汝之子即吾之子也不必多囑。 」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와 너는 의리가 형제와 같았다. 너의 아들은 곧 나의 아들이니 부탁할 필요가 없다.”

左右推出馬謖於轅門之外將斬
좌우가 마속을 轅門 밖으로 끌고 나가 곧 참하려고 하였다.

參軍蔣琬自成都至見武士欲斬馬謖大驚高叫留人入見孔明曰
昔楚殺得臣而文公喜
今天下未定而戮智謀之士豈不可惜乎?」
參軍 蔣琬成都에서 오다가 무사들이 마속을 참하려 함을 보고, 깜짝 놀라 큰소리로 외쳐서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들어와서 공명을 뵙고 말하였다.
지난날 초나라가 得臣을 죽이자 (진나라) 문공이 기뻐했습니다.
지금 天下未定인데 智謀之士를 죽이시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孔明流涕而答曰
昔孫武所以能制勝於天下者用法明也
今四方分爭兵交方始若須廢法何以討賊耶
合當斬之。」
공명이 눈물을 떨구며 답하였다.
지난날 손무가 천하에서 능히 制勝함은 군법을 엄명하게 시행했기 때문이오.
이제 四方分爭하고 兵交方始인데, 군법을 폐하면 무엇으로 도적들을 토벌하겠소?
그를 참수함이 合當하오.”

須臾武士獻馬謖首級於階下
잠시 후 무사가 마속의 수급을 섬돌 아래 갖다 바쳤다.

孔明大哭不已
공명이 크게 통곡하여 마지않았다.

蔣琬問曰
今幼常得罪既正軍法丞相何故哭耶?」
장완이 물었다.
이제 幼常得罪하여 군법을 엄정히 하셨거늘 승상께서 무슨 까닭으로 곡하십니까?”

孔明曰
吾非為馬謖哭
吾思先帝在白帝城臨危之時曾囑吾曰
馬謖言過其實不可大用。』
今果應此言乃深恨己之不明追思先帝之明因此痛哭耳!」
공명이 말하였다.
내가 마속 때문에 운 것이 아니오.
내가 생각해보니, 선제께서 일찍이 백제성에서 臨危之時에 내게 당부하시길,
마속은 말이 실질을 넘어서니 크게 써선 안 된다.’
라고 하셨소.
이제 과연 그 말씀대로 됐으니, 이에 己之不明深恨하고 先帝之明追思하였소. 이 때문에 통곡했을 뿐이오!”

大小將士無不流涕
大小將士에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馬謖亡年三十九歲
마속의 亡年39세였다.

時建興六年夏五月也
이때가 건흥 6년 여름 5월이었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었다.

後人有詩曰
후인이 지은 시가 있다.

<失守街亭罪不輕堪嗟馬謖枉談兵
轅門斬首嚴軍法拭淚猶思先帝明>
<가정을 잃은 죄 가볍지 않으니, 마속의 헛된 용병 참으로 한심하구나.
원문에서 참수하여 군법을 엄히 하고, 눈물 닦으며 선제의 현명함을 떠올리네.>


卻說
孔明斬了馬謖將首級遍示各營已畢用線縫在屍上具棺葬之
한편
공명이 마속을 참한 뒤 首級을 진영마다 遍示하고, 실로 시체에 봉합하고 관을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

自修祭文享祀
공명이 직접 제문을 지어서 享祀하였다.

將謖家小加意撫恤按月給與祿米
마속의 家小를 각별하게 위로하고 마속의 월급에 따라 녹미를 주었다.

於是孔明自作表文令蔣琬申奏後主請自貶丞相之職
뒤이어 공명이 직접 표문을 작성하여 장완을 시켜 후주 유선에게 아뢰기를, 스스로 丞相之職을 낮추기를 청하였다.

琬回成都入見後主進上孔明表章
장완이 성도로 돌아가서, 후주를 入見하고 공명의 表章을 진상하였다.

後主拆視之
후주가 뜯어서 읽어보니 이러하였다.


臣本庸才叨竊非據親秉旄鉞以勵三軍
不能訓章明法臨事而懼至有街亭違命之闕箕谷不戒之失
咎皆在臣不明不知人慮事多闇
春秋責備罪何所逃
請自貶三等以督厥咎
臣不勝慚愧俯伏待命!」
신은 본래 재주 없는 사람인데, 분수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서 친히 旄鉞을 잡고 삼군을 독려했습니다.
능히 규율을 가르치고 군법을 밝히지 못하고,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여, 마침내 가정에서 違命之闕을 범하고 기곡에서 不戒之失을 범하였습니다.
허물은 모두 신이 명철하지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며 일을 계획할 때 몹시 어리석은 데 있습니다.
춘추에서 責備하였는데, 어찌 저의 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청하옵건대 스스로 3등급을 낮춤으로써 제 잘못을 벌하고자 합니다.
신은 不勝慚愧하여 俯伏하고 명을 기다립니다!”

後主覽畢曰
勝負兵家常事丞相何出此言?」
후주가 읽고 나서 말하였다.
勝負兵家常事이거늘 승상이 어찌 이런 말을 하시오?”

侍中費褘奏曰
臣聞治國者必以奉法為重
法若不行何以服人
丞相敗績自行貶降正其宜也.
시중 비위가 아뢰었다.
신이 듣자니 治國者는 모름지기 奉法을 중시해야 합니다.
법이 행해지지 않으면 무엇으로 사람들을 복종하도록 하겠습니까?
승상이 敗績한 탓에 스스로 貶降함은 참으로 마땅합니다.”

後主從之乃詔貶孔明為右將軍行丞相事照舊總督軍馬就命費褘齎詔到漢中
후주가 이를 좇아 조서를 내려 공명을 右將軍으로 강등하되 승상의 일을 집행하게 하고, 예전처럼 군마를 총지휘하게 하였다. 費褘에게 명하여 조서를 가지고 한중으로 가게 하였다.

孔明受詔貶降訖褘恐孔明羞赧乃賀曰
蜀中之民知丞相初拔四縣深以為喜.
공명이 貶降하라는 조서를 받자, 비위는 공명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까 염려하여, 치켜세웠다.
蜀中之民이 승상께서 처음에 4현을 빼앗음을 알고 몹시 기뻐했습니다.”

孔明變色曰
是何言也
得而復失與不得同
公以此賀我實足使我愧赧.
공명이 낯빛을 고쳐 말하였다.
이 무슨 말씀이시오?
얻었다가 다시 잃었으니 얻지 않음과 같소.
공이 이것으로 나를 치켜세우니, 참으로 내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게 하기에 족하오.”

褘又曰
近聞丞相得姜維天子甚喜.
비위가 다시 말하였다.
요새 듣기를 승상께서 강유을 얻었다 하니 천자께서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孔明怒曰
兵敗師還不曾奪得寸土此吾之大罪也
量得一姜維於魏何損?」
공명이 노하여 말하였다.
패전한 군대가 돌아오고 한 치의 땅도 빼앗은 적이 없으니 이것은 吾之大罪이오.
기껏 강유 한 사람을 얻은들 위나라에 무슨 손해가 있겠소?”

褘又曰
丞相現統雄師數十萬可再伐魏乎?」
비위가 다시 말하였다.
승상께서 현재 雄師 수십만을 통수하고 계시니, 다시 伐魏할 수 있지 않습니까?”

孔明曰
昔大軍屯於祁山箕谷之時我兵多於賊兵而不能破賊反為賊所破
此病不在兵之多寡在主將耳
今欲減兵省將明罰思過較變通之道於將來如其不然雖兵多何用
自今以後諸人有遠慮於國者但勤攻吾之闕責吾之短則事可定賊可滅功可翹足而待.
공명이 말하였다.
지난번에 大軍이 기산과 기곡에 주둔할 당시에 我兵賊兵보다 많았으나 破賊하지 못하고 도리어 에게 깨뜨려졌소.
이러한 과실은 兵之多寡에 있음이 아니라, 主將에 있을 뿐이오.
이제 減兵省將하고 明罰思過하며 장래에 있어서 變通之道를 가늠해 보고자 하오. 그렇지 못한다면 비록 군사가 많은들 어디에 쓰겠소?
지금부터 국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나의 잘못을 공격하고, 나의 단점을 꾸짖어야,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고 적을 멸하여 머지않아 공을 세울 수 있을 터이오.”

費褘諸將皆服其論
비의와 장수들이 모두 그 논의에 感服하였다.

費褘自回成都
비의는 성도로 돌아갔다.

孔明在漢中惜軍愛民勵兵講武置造攻城渡水之器聚積糧草預備戰筏以為後圖
공명은 한중에 머물면서 惜軍愛民하고, 勵兵講武하였다. 성을 공격하거나 물을 건너는 기구를 置造하고 糧草聚積하고 戰筏을 예비해 훗날을 도모하였다.

細作探知報入洛陽
세작이 探知해서 낙양에 보고하였다.

魏主曹叡聞知即召司馬懿商議收川之策
魏主 조예가 듣고 즉시 사마의를 불러 收川之策商議하였다.

懿曰
蜀未可攻也
方今天道亢炎蜀兵必不出
若我軍深入其地彼守其險要急切難下.
사마의가 말하였다.
촉은 아직 공격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天道가 몹시 뜨거워서 촉병이 틀림없이 나오지 않을 터입니다.
아군이 그 땅에 깊숙이 들어가면 그들은 險要를 지킬 테니 급히 함락하기 어렵습니다.”

叡曰
倘蜀兵再來入寇如之奈何?」
조예가 말하였다.
혹시 蜀兵이 다시 국경을 침범한다면 어찌하겠소?”

懿曰
臣已算定今番諸葛亮必效韓信暗度陳倉之計
臣舉一人往陳倉道口築城守禦萬無一失
此人身長九尺猿臂善射深有謀略
若諸葛亮入寇此人足可當之.
사마의가 말하였다.
신이 이미 算定해 놓았는데, 이번에 제갈량은 필시 韓信暗度陳倉之計를 본뜰 터입니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여 진창의 입구로 보내고 築城守禦하면 만에 하나의 잘못도 없을 터입니다.
이 사람은 身長9척이고 활을 잘 쏘는데, 마음에 깊이 모략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갈량이 入寇하면 이 사람이 족히 감당할 수 있겠습니다.”

叡大喜問曰
此何人也?」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요?”

懿奏曰
乃太原人姓郝名昭字伯道
現為雜霸將軍鎮守河西.
사마의가 아뢰었다.
그는 太原人으로 로 자는 伯道입니다.
현재 雜霸將軍으로 河西鎮守하고 있습니다.”

叡從之加郝昭為鎮西將軍命把守陳倉道口
조예가 이를 따라 학소를 鎮西將軍에 임명하고 진창의 길목을 수비하도록 명하였다.

遣使持詔去訖
사자에게 조서를 주어 (학소에게) 가도록 하였다.

忽報揚州司馬大都督曹休上表說東吳鄱陽太守周魴願以郡來降密遣人陳言七事說東吳可破乞早發兵取之
갑자기 보고하기를, 揚州司馬 大都督 曹休가 표를 올렸는데, 동오의 鄱陽太守 周魴이 자신의 을 바쳐서 투항하겠다며,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陳言七事하고, 동오를 격파할 수 있으니 어서 출병하여 동오를 공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叡就御床上展開與司馬懿同觀懿奏曰
此言極有理吳當滅矣
臣願引一軍往助曹休.
조예가 용상에 펴놓고 사마의에게도 보여주니 사마의가 아뢰었다.
그 말이 지극히 도리에 맞으니 동오는 멸망하겠습니다.
신이 1군을 이끌고 조휴를 돕겠습니다.”

忽班中一人進曰
吳人之言反覆不一未可深信
周魴智謀之士必不肯降
此特誘兵之詭計也.
班中一人이 진언하였다.
吳人之言反覆不一이라 깊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주방은 智謀之士이니, 틀림없이 항복하지 않을 터입니다.
이것은 고의로 군사를 유인하는 詭計입니다.”

眾視之乃建威將軍賈逵也
사람들이 보니 建威將軍 賈逵이었다.

懿曰
此言亦不可不聽機會亦不可錯失.
사마의가 말하였다.
이 말씀도 不可不聽이지만, 기회는 또한 不可錯失입니다.”

魏主曰
仲達可與賈逵同助曹休.
魏主가 말하였다.
중달이 가규와 함께 조휴를 도우시오.”

二人領命去訖
두 사람이 어명을 받고 떠났다.

於是曹休引軍徑取皖城賈逵引前將軍滿寵東皖太守胡質徑取陽城直向東關司馬懿引本部軍徑取江陵
이리하여 조휴는 군사를 이끌고 곧장 皖城을 공격하고, 가규는 前將軍 滿寵, 東皖太守 胡質을 데리고 陽城을 치고자 東關으로 진군하였다. 사마의는 本部軍을 거느리고 江陵으로 쳐들어갔다.


卻說
吳主孫權在武昌東關會多官商議曰
今有鄱陽太守周魴密表奏稱魏揚州都督曹休有入寇之意
今魴詐施詭計暗陳七事引誘魏兵深入重地可設伏兵擒之
今魏兵分三路而來諸卿有何高見?」
한편,
오주 손권은 武昌東關에서 많은 관리를 모아 상의하였다.
지금 파양태수 주방이 은밀히 표를 올려 아뢰기를, 위나라 양주도독 조휴가 入寇之意를 가졌다고 하오.
이제 주방이 속임수를 써서 七事를 몰래 발설하고, 魏兵深入重地하도록 引誘하고 복병을 두어서 그를 사로잡으려 하오.
이제 魏兵3방면으로 나누어 오는데 경들에게 어떤 고견이 있소?”

顧雍進曰
此大任非陸伯言不敢當也.
고옹이 진언하였다.
이러한 중대임무는 육백언이 아니면 맡을 수 없습니다.”

權大喜乃召陸遜封為輔國大將軍平北都元帥統御林大兵攝行王事授以白旄黃鉞文武百官皆聽約束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육손을 불러 輔國大將軍平北都元帥로 봉하여 御林大兵을 통수하고 王事攝行하게 하였다. 백모와 황월을 주며 문무백관 모두가 그의 지휘를 따르게 하였다.

權親自與遜執鞭
손권이 친히 육손에게 채찍을 주었다.

遜領命謝恩畢乃保二人為左右都督分兵以迎三道
육손이 어명을 받고 성은에 감사드리고 나서, 두 사람을 좌우도독으로 추천하여 병력을 나누어 세 방면에서 맞겠다고 하였다.

權問何人遜曰
奮威將軍朱桓綏南將軍全琮二人可為輔佐.
손권이 누구인지 묻자 육손이 말하였다.
奮威將軍 朱桓綏南將軍 全琮輔佐할 만합니다.”

權從之即命朱桓為左都督全琮為右都督
손권이 그 말을 따라 주환을 좌도독으로, 전종을 우도독으로 임명하였다.

於是陸遜總率江南八十一州并荊湖之眾七十餘萬令朱桓在左全琮在右遜自居中三路進兵
이리하여 육손이 강남 81주와 荊湖之眾 70여 만을 總率하고 주환을 좌측에, 전종을 우측에 두고 자신은 중앙에서 3로로 진군하였다.

朱桓獻策曰
曹休以親見任非智勇之將也
今聽周魴誘言深入重地元帥以兵擊之曹休必敗
敗後必走兩條路
左乃夾石右乃桂車
此二條路皆山僻小徑最為險峻
某願與全子璜各引一軍伏於山險先以柴木大石塞斷其路曹休可擒矣
若擒了曹休便長驅直進唾手而得壽春以窺許洛此萬世一時.
주환이 계책을 바쳤다.
조휴는 친척이기 때문에 임명되었지 智勇之將은 아닙니다.
이제 주방의 誘言을 듣고 深入重地하니 원수께서 군사로써 공격하면 조휴는 틀림없이 패전할 터입니다.
패전 후에 틀림없이 두 가닥 길로 달아날 텐데 좌측은 夾石이요 우측은 桂車입니다.
이 두 가닥 길은 모두 산골의 小徑이고 최고로 險峻합니다.
원컨대 제가 전자황과 더불어 제각기 1군을 이끌고 山險에 매복하겠습니다. 미리 땔나무와 大石으로 그 길을 塞斷하면 조휴를 사로잡을 수 있겠습니다.
조휴를 잡고 나서 곧 군사를 몰아 계속 진격하여 손바닥에 침 뱉듯이 손쉽게 수춘을 점령하여 허도와 낙양도 노린다면, 이것은 萬世에 한 번 있을 时机입니다.”

遜曰
此非善策吾自有妙用.
육손이 말하였다.
그것은 善策이 아니오. 내 나름대로 妙用이 있소.”

於是朱桓懷不平而退
이에 주환이 불평을 품고 물러갔다.

遜令諸葛瑾等拒守江陵以敵司馬懿
육손이 제갈근 등에게 강릉을 拒守하여 사마의를 막도록 명령하였다.

諸路俱各調撥停當
각 방면의 군사를 모두 배정함을 완료하였다.


卻說
曹休兵臨皖城周魴來迎徑到曹休帳下
한편,
조휴의 군사가 皖城으로 다가오자 주방이 맞이하러 나와서 곧바로 조휴의 帳下로 찾아갔다.

休問曰
近得足下之書所陳七事深為有理奏聞天子故起大軍三路進發
若得江東之地足下之功不小
有人言足下多謀誠恐所言不實
吾料足下必不欺我.
조휴가 물었다.
근자에 足下之書를 받았는데, 七事를 개진한 것이 매우 이치에 맞아 천자께 상주하였소. 그리하여 대군을 일으켜 三路로 진군하였소.
江東之地를 얻으면 足下之功不小이오.
누군가 말하기를, 족하에게 謀略이 많으니 말한 것이 不實할까 참으로 걱정된다고 하였소.
내가 보기에 족하는 결코 나를 속이지 않을 터이오.”

周魴大哭急掣從人所佩劍欲自刎
주방이 大哭하며 갑자기 從人所佩劍을 뽑아서 自刎하려 하였다.

休急止之魴仗劍而言曰
吾所陳七事恨不能吐出心肝
今反生疑必有吳人使反間之計也
若聽其言吾必死矣
吾之忠心惟天可表!」
조휴가 황급히 제지하니 주방이 仗劍하고 말하였다.
제가 七事를 진술함에 吐出心肝하지 못함이 한스러웠습니다.
이제 도리어 의심하시니, 틀림없이 오나라 사람이 反間之計를 쓰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는다면 나는 틀림없이 죽을 터입니다.
나의 충심은 하늘만이 알아주시겠습니다!”

言訖又欲自刎
말을 마치더니 다시 自刎하려 하였다.

曹休大驚慌忙抱住曰
吾戲言耳
足下何故如此?」
조휴가 깜짝 놀라 황망히 끌어안으며 말하였다.
나의 戲言일 뿐이오. 족하께서 무슨 까닭에 이러시오?”

魴乃用劍割髮擲於地曰
吾以忠心待公公以吾為戲吾割父母所遺之髮以表此心!」
이에 주방이 검으로 머리카락을 잘라 바닥에 던지며 말하였다.
제가 忠心으로 공을 대우하는데, 공은 저를 우스개로 삼으니, 저는 父母所遺之髮을 잘라 이 마음을 나타냅니다.”

曹休乃深信之設宴相待
조휴가 이에 그를 깊이 신임하고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席罷周魴辭去
술자리가 파하자 주방이 작별하고 떠났다.

忽報建威將軍賈逵來見休令入問曰
汝此來何為?」
보고하기를, 건위장군 가규가 보러 왔다고 하였다. 조휴가 들게 하고 물었다.
그대가 이렇게 옴은 무엇 때문이오?”

逵曰
某料東吳之兵必盡屯於皖城
都督不可輕進
待某兩下夾攻賊兵可破矣.
가규가 말하였다.
제 생각에, 東吳之兵은 틀림없이 모조리 환성에 주둔해 있을 터입니다.
도독께서는 함부로 진격해선 안 됩니다.
제가 오기를 기다려서 兩下夾攻하면 賊兵을 깨뜨릴 수 있겠습니다.”

休怒曰
汝欲奪吾功耶?」
조휴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그대가 나의 立功을 가로챌 셈이오?”

逵曰
又聞周魴截髮為誓此乃詐也
昔要離斷臂刺殺慶忌未可深信.
가규가 말하였다.
또 듣자니 주방이 截髮為誓하였다는데 이것은 속임수입니다.
옛날에 要離도 팔을 자르고 慶忌를 찔러 죽이려 했으니 아직 깊이 믿어선 안 됩니다.”

休大怒曰
吾正欲進兵汝何出此言以慢軍心!」
조휴가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내 이제 막 출병하려는데, 네가 어찌 이런 말을 뱉아 軍心을 어지럽히느냐!”

叱左右推出斬之
좌우에 소리쳐 끌어내 참하라고 하였다.

眾將告曰
未及進兵先斬大將於軍不利
且乞暫免.
장수들이 고하였다.
아직 進兵하기 전에 대장을 먼저 참하면 用兵에 불리합니다.
잠시 면해 주십시오.”

休從之將賈逵兵留在寨中調用自引一軍來取東關
조휴가 이를 좇아서, 가규의 군사를 영채에 남겨두어 지시를 따르게 하고, 직접 1군을 이끌고 동관을 점령하러 갔다.

時周魴聽知賈逵削去兵權暗喜曰
曹休若用賈逵之言則東吳敗矣
今天使我成功也!」
이때 주방은 가규가 兵權을 빼앗겼음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조휴가 賈逵之言採用했으면 동오가 패전할 터이다!
이제 하늘이 내게 成功하게 하는구나!’

即遣人密到皖城報知陸遜
즉시 사람을 몰래 환성으로 보내 육손에게 알렸다.

遜喚諸將聽令曰
前面石亭雖是山路足可埋伏
早先去占石亭闊處布成陣勢以待魏軍.
육손이 장수들을 불러 군령을 듣게 하였다.
앞쪽의 石亭은 비록 산길이지만 매복할 만하오.
먼저 석정의 넓은 곳을 점령해, 陣勢를 갖추고 魏軍을 기다리시오.”

遂令徐盛為先鋒引兵前進
곧 서성에게 선봉을 맡겨 병력을 이끌고 전진하도록 하였다.


卻說
曹休命周魴引兵前進
한편
조휴는 주방에게 명하여 병력을 이끌고 전진하도록 하였다.

正行間休問曰
前至何處?」
가는 중에 조휴가 물었다.
앞으로 가면 어디요?”

魴曰
前面石亭也堪以屯兵.
주방이 말하였다.
앞쪽은 석정이라는 곳인데 병력을 주둔할 만합니다.”

休從之遂率大軍并車仗等器盡赴石亭駐紮
조휴가 이 말을 따라, 大軍과 수레와 병장기 등을 이끌어 모두 석정에 가서 주둔하게 하였다.

次日哨馬報道
前面吳兵不知多少據住山口.
다음날 哨馬報道하였다.
앞쪽에 吳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는데 山口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休大驚曰
周魴言無兵為何有準備?」
조휴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주방이 無兵이라 말했는데, 무엇 때문에 준비했는가?”

急尋魴問之
급히 주방을 찾아서 묻게 하였다.

人報周魴引數十人不知何處去了
보고하기를, 주방이 수십 인을 이끌고 어디론가 갔다고 하였다.

休大悔曰
吾中賊之計矣
雖然如此亦不足懼!」
조휴가 크게 뉘우치며 말하였다.
내가 적의 계략에 빠졌구나!
비록 그러하나 족히 두려워할 것 없다.”

遂令大將張普為先鋒引兵數千來與吳兵交戰
곧 대장 張普를 선봉으로 삼아 병력 수천을 이끌고 吳兵과 교전하러 가게 하였다.

兩陣對圓張普出馬罵曰
賊將早降!」
양쪽 진영이 전투 대형을 갖추자 장보가 말을 타고 나와 꾸짖으며 말하였다.
적장은 어서 항복하라!”

徐盛出馬相迎
서성이 말을 타고 나와 맞이하였다.

戰無數合普抵敵不住勒馬收兵回見曹休言徐盛勇不可當
몇 합 싸우지 않아 장보가 抵敵不住하여 勒馬收兵하고, 돌아가 조휴를 만나서 말하기를, 서성의 용맹을 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休曰
吾當以奇兵勝之.
조휴가 말하였다.
내가 奇兵으로써 저들을 이겨야겠다.”

就令張普引二萬軍伏於石亭之南又令薛喬引二萬軍伏於石亭之北
곧 장보에게 명해 군사 2만을 이끌고 석정의 남쪽에 매복하게 하였다. 또한 薛喬에게 명하여 병사 2만을 이끌고 석정의 북쪽에 매복하게 하였다.

明日吾自引一千兵搦戰卻佯輸詐敗誘到北山之前放炮為號三面夾攻必獲大勝.
내일 내가 직접 군사 1천을 거느리고 싸움을 건 후, 거짓으로 패하여 북쪽 산 앞으로 誘到하겠소. 放炮를 신호로 세 방면에서 협공한다면 틀림없이 대승을 거둘 터이오.”

二將受計各引二萬軍當晚埋伏去了
두 장수가 계책을 받아 각각 군사 2만을 이끌고 그날 저녁에 매복하러 떠났다.


卻說
陸遜喚朱桓全琮分付曰
汝二人各引三萬軍從石亭山路抄到曹休寨後放火為號
吾親率大軍從中路而進可擒曹休也.
한편,
육손이 주환과 전종을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각각 3만 군을 이끌고 석정의 산길을 따라 조휴의 영채 배후를 습격해 불을 질러 신호하시오.
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중앙으로 진군하여, 조휴를 잡을 터이오.”

當日黃昏二將受計引兵而進
그날 황혼 무렵에 두 장수가 계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출발하였다.

二更時分朱桓引一軍正抄到魏寨後迎著張普伏兵
2경 무렵, 주환이 1군을 이끌고 魏寨 배후를 습격하는데 장보의 복병과 마주친다.

普不知是吳兵徑來問時被朱桓一刀斬於馬下
장보는 이것이 吳兵인줄 모르고, 곧장 물어보러 오다가 주환의 一刀에 베여서 말 아래에 떨어졌다.

魏兵便走桓令後軍放火
魏兵이 달아나자, 주환이 後軍에 명령하여 불을 지르게 하였다.

全琮引一軍抄到魏寨後正撞在薛喬陣裏就那裏大殺一陣
전종도 1군을 이끌고 魏寨 후면으로 달려가서 바로 설교의 군진으로 돌진하여, 거기서 한바탕 크게 무찔렀다.

薛喬敗走魏兵大損奔回本寨
설교가 패주하고 魏兵이 크게 꺾여 本寨奔回하였다.

後面朱桓全琮兩路殺來曹休寨中大亂自相衝擊
후면에서 주환과 전종이 兩路로 짓쳐 드니, 조휴의 영채는 매우 혼란하여 자기들끼리 치고받았다.

休慌上馬望夾石道奔走
조휴가 황급히 말에 올라타고 夾石가는 길로 달아났다.

徐盛引大隊軍馬從正路殺來
서성이 大隊軍馬를 이끌고 大路를 따라 달려왔다.

魏兵死者不可勝數逃命者盡棄衣甲
魏兵死者不可勝數이고, 逃命者衣甲盡棄하였다.

曹休大驚在夾石道中奮力奔走
조휴가 깜짝 놀라 협석으로 가는 길에서, 힘을 다해 달아났다.

忽見一彪軍從小路衝出為首大將乃賈逵也
갑자기 一彪軍小路에서 튀어나오는데, 為首大將은 바로 가규였다.

休驚慌少息自愧曰
吾不用公言果遭此敗!」
조휴는 驚慌이 조금 가시어, 부끄러워하며 말하였다.
내가 공의 말을 듣지 않다가, 과연 이런 패배를 당하는구려!”

逵曰
都督可速出此道
若被吳兵以木石塞斷吾等皆危矣!」
가규가 말하였다.
도독께서는 어서 이 길을 빠져나가십시오.
吳兵木石으로 塞斷하면 우리 모두 위태롭겠습니다!”

於是曹休驟馬而行賈逵斷後
이에 조휴가 驟馬하여 가고, 가규는 斷後하였다.

逵於林木盛茂處及險峻小徑多設旌旗以為疑兵
가규가 林木盛茂處險峻小徑에서 多設旌旗하여 疑兵으로 삼았다.

及至徐盛趕到見山坡下閃出旗角疑有埋伏不敢追趕收兵而回
이윽고 徐盛이 뒤쫓아왔는데, 산비탈 아래 깃발들이 언뜻 보이니 埋伏이 있다고 의심하여 감히 뒤쫓지 못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因此救了曹休
이로 인하여 조휴를 구출하였다.

司馬懿聽知休敗亦引兵退去
사마의가 조휴의 패전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였다.


卻說
陸遜正望捷音須臾徐盛朱桓全琮皆到所得車仗牛馬驢騾軍資器械不計其數降兵數萬餘人
한편,
육손은 捷音을 기다리는데 잠깐 사이에 서성, 주환, 전종이 모두 도착하였다. 노획한 車仗, 牛馬, 驢騾, 軍資, 器械不計其數이고 항복한 적병도 數萬餘人이었다.

遜大喜即同太守周魴并諸將班師還吳
육손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태수 주방과 장수들과 함께 班師還吳하였다.

吳主孫權領文武官僚出武昌城迎接以御蓋覆遜而入
吳主 孫權이 문무 관료들에게 명하여 무창성을 나가 영접하게 하고, 御蓋로써 육손을 씌워 들어오게 하였다.

諸將盡皆陞賞
장수들을 모두 승진시키고 포상하였다.

權見周魴無髮慰勞曰
卿斷髮成此大事功名當書於竹帛也.
손권이 주방의 無髮을 보고 위로하였다.
경이 斷髮하여 이런 대사를 이루었으니, 功名竹帛에 씀이 지당하오!”

即封周魴為關內侯大設筵會勞軍慶賀
즉시 주방을 關內侯로 봉하고 연회를 크게 베풀어 군사를 위로하고 慶賀하였다.

陸遜奏曰
今曹休大敗魏已喪膽可修國書遣使入川教諸葛亮進兵攻之.
육손이 아뢰었다
이제 조휴가 대패해 는 이미 간담이 써늘할 터입니다. 國書를 써서 遣使入川하여 제갈량이 進兵하여 를 공격하게 하십시오.”

權從其言遂遣使齎書入川去
손권이 그 말을 따라, 사자가 국서를 지니고 서천으로 보냈다.

正是
只因東國能施計致令西川又動兵
바로 이러하다.
동국이 계책을 쓰는데 능하니, 서천이 또 출병하도록 하려는구나.

未知孔明再來伐魏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공명이 다시 伐魏하러 가서 승부가 어떨까? 다음 회에 설명함을 또 보시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