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漢詩와 漢文/삼국연의 (121)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第一百一十回 文鴦單騎退雄兵 姜維背水破大敵. 제110회 文鴦이 필마로 雄兵을 격퇴하고, 姜維가 배수진으로 大敵을 깨뜨리다. 卻說 魏正元二年正月,揚州刺史鎮東將軍領淮南軍馬毌丘儉,字仲聞,河南聞喜人也; 한편 위나라 정원 2년 정월, 揚州刺史 鎮東將軍 領淮南軍馬 毌丘儉은 자가 仲聞으로 河南聞喜人이었다. 聞司馬師擅行廢立之事,心中憤怒。 사마사가 廢立之事를 擅行하자 마음속으로 분노하였다. 長子毌丘甸曰: 「父親官居方面,司馬師專權廢主,國家有累卵之危,安可晏然自守?」 맏아들 毌丘甸이 말하였다. “부친께서 한 방면을 (수비하는) 관직에 계시면서, 사마사가 專權廢主하여 국가에 累卵之危가 있는데도, 어찌 편안히 자신을 지키고 있습니까?” 儉曰: 「吾兒之言是也.」 “내 아들의 말이 옳구나.” 遂請刺史文欽商議。 곧 刺史 文欽을 청하여 ..
第一百一十一回 鄧士載智敗姜伯約 諸葛誕義討司馬昭. 제111회 鄧士載가 姜伯約을 智慧로 敗退시키고, 諸葛誕이 司馬昭를 義理로 討伐하다. 卻說 姜維退兵屯於鍾堤,魏兵屯於狄道城外。 한편, 강유가 퇴각하여 鍾堤에 屯兵하고 魏兵이 적도성 밖에 屯兵하였다. 王經迎接陳泰、鄧艾入城,拜謝解圍之事,設宴相待,大賞三軍。 왕경이 진태와 등애를 영접하여 입성한 뒤 解圍之事를 사례하고 연회를 열어 대접하고 3군을 크게 褒賞하였다. 泰將鄧艾之功,申奏魏主曹髦。 진태가 鄧艾之功을 魏主 曹髦에게 申奏하였다. 髦封艾為安西將軍,假節領護東羌校尉,同陳泰屯兵於雍、涼等處。 조모가 등애를 安西將軍,假節領護東羌校尉로 봉하여 진태와 함께 옹주와 양주 등지에 屯兵하게 하였다. 鄧艾上表謝恩畢,陳泰設宴與鄧艾拜賀曰: 「姜維夜遁,其力已竭,不敢再出矣.」 등애가 표를 ..
第一百一十二回 救壽春于詮死節 取長城伯約鏖兵. 제112회 于詮이 수춘을 구원하다가 死節하고, 伯約이 장성을 공격하여 鏖兵하다. 卻說 司馬昭聞諸葛誕會合吳兵前來決戰,乃召散騎長史裴秀、黃門侍郎鍾會,商議破敵之策。 한편, 사마소는 제갈탄이 吳兵과 會合하여 결전하러 옴을 듣고, 散騎長史 裴秀、黃門侍郎 鍾會를 불러 破敵之策을 商議하였다. 鍾會曰: 「吳兵之助諸葛誕,實為利也; 以利誘之,則必勝矣.」 종회가 말하였다. “吳兵이 제갈탄을 도움은, 실상은 이익 때문입니다. 이익으로 유인하면 틀림없이 이기겠습니다.” 昭從其言,遂令石苞、周太先引兩軍於石頭城埋伏,王基、陳騫領精兵在後,卻令偏將成倅引兵數萬先去誘敵; 사마소가 그 말을 좇아, 石苞、周太에게 먼저 兩軍을 이끌고 石頭城에 매복하게 하고, 王基、陳騫에게 精兵을 거느리고 후방에 있으라 ..
第一百一十三回 丁奉定計斬孫綝 姜維鬥陣破鄧艾. 제113회 丁奉이 계책을 정하여 斬孫綝하고, 姜維가 진법을 겨루어 破鄧艾하다. 卻說 姜維恐救兵到,先將軍器車仗一應軍需,步兵先退,然後將馬軍斷後。 한편, 강유는 구원병이 올까 두려워, 먼저 병장기와 수레 등 일체 군수물자를 가지고 보병이 먼저 퇴각하고, 그런 뒤에 馬軍이 斷後하게 하였다. 細作報知鄧艾。艾笑曰: 「姜維知大將軍兵到,故先退去。 不必追之,追則中彼之計也.」 세작이 등애에게 알리니 등애가 웃었다. “강유가 대장군이 옴을 알고 먼저 퇴각한 것이다. 뒤쫓을 필요가 없다. 뒤쫓으면 적의 계략에 빠질 터이다.” 乃令人哨探,回報果然駱谷迫狹之處,堆積柴草,準備要燒追兵。 사람을 시켜 哨探하니 보고하기를, ‘과연 낙곡의 狹窄한 장소에 堆積柴草하여 추격병을 불태우려 준비했습니다..
第一百一十四回 曹髦驅車死南闕 姜維棄糧勝魏兵. 제114회 曹髦는 어가를 몰아 南闕에서 죽고, 姜維는 군량을 미끼로 魏兵을 이기다. 卻說 姜維傳令退兵。廖化曰: 「『將在外,君命有所不受』。 今雖有詔,未可動也.」 한편, 강유가 철군을 전령하니 요화가 말하였다. “‘장수가 바깥에 있을 때는, 君命에도 받지 않는 것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이제 비록 조서가 있으나, 아직 움직여선 안 됩니다.” 張翼曰: 「蜀人為大將軍連年動兵,皆有怨望; 不如乘此得勝之時,收回人馬,以安民心,再作良圖.」 장익이 말하였다. “蜀人은 장군이 해마다 군대를 움직이기 때문에 모두 원망합니다. 이번에 승전한 때를 기회로, 인마를 거두어 민심을 안정시키고 다시 良圖를 지음이 좋겠습니다.” 維曰: 「善.」 강유가 말하였다. “좋소.” 遂令各軍依法而退..
第一百一十五回 詔班師後主信讒 託屯田姜維避禍. 제115회 後主가 信讒하여 조서로 班師하고, 姜維가 避禍하려 屯田을 推託한다 卻說 蜀漢景耀五年,冬十月,大將軍姜維,差人連夜修了棧道,整頓軍糧兵器; 한편, 촉한 경요 5년 겨울 10월, 대장군 강유가 사람을 보내어 밤을 새워가며 잔도를 수리하고, 군량과 병기를 정돈하였다. 又於漢中水路調撥船隻。 또 漢中의 水路에서 선박을 동원하였다. 俱已完備,上表奏後主曰: 「臣累出戰,雖未成大功,已挫動魏人心膽; 今養兵日久,不戰則懶,懶則致病。 況今軍思效死,將思用命。 臣如不勝,當受死罪.」 모두 갖춰지자,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었다. “신이 누차 출전하여 비록 대공을 이루지 못했으나, 魏人心膽을 挫動하였습니다. 이제 군사를 기른 지 오래되었는데, 싸우지 않으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병이 ..
第一百一十六回 鍾會分兵漢中道 顯聖定軍山. 제116회 종회가 군사를 나누어 漢中道로 침입하고, 무후가 定軍山에 顯聖하다. 卻說 司馬昭謂西曹掾邵悌曰: 「朝臣皆言蜀未可伐,是其心怯; 若使強戰,必敗之道也。 今鍾會獨建伐蜀之策,是其心不怯; 心不怯,則破蜀必矣;蜀既破,則蜀人心膽已裂。 『敗軍之將,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 會即有異志,蜀人安能助之乎? 至若魏人得勝思歸,必不從會而反,更不足慮耳。 此言乃吾與汝知之,切不可洩漏.」 한편, 사마소가 西曹掾 邵悌에게 말하였다. “朝臣 모두가 촉을 아직 정벌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 마음속에 겁내기 때문이니, 억지로 싸움은 必敗之道이오. 이제 종회가 伐蜀之策을 홀로 세움은 그 마음속으로 겁을 내지 않아서요. 마음속으로 겁내지 않으면 破蜀은 必然이니, 촉이 함락되면 蜀人은 ..
第一百一十七回 鄧士載偷度陰平 諸葛瞻戰死綿竹. 제117회 鄧士載가 陰平으로 몰래 가고 諸葛瞻이 綿竹에서 전사하다. 卻說 輔國大將軍董厥,聞魏兵十餘路入境,乃引二萬兵守住劍閣; 한편, 輔國大將軍董厥은 魏兵이 10여 개 방면으로 국경을 침입함을 듣고, 군사 2만을 이끌고 검각을 지키고 있었다. 當日望塵頭大起,疑是魏兵,急引兵把住關口。 이날 먼지가 크게 읾을 보고, 魏兵일까 의심하여 급히 군을 이끌고 關口를 막아섰다. 董厥自臨軍前視之,乃姜維、廖化、張翼也。 동궐이 직접 軍前으로 나가 살펴보니 바로 강유, 요화, 장익이었다. 厥大喜,接入關上。 동궐이 크게 기뻐하며 관 위로 영접해 들였다. 禮畢,哭訴後主黃皓之事。 인사를 마친 뒤 곡하며 후주와 황호의 일을 하소연하였다. 維曰: 「公勿憂慮。 若有維在,必不容魏來吞蜀也。 且守劍閣..
第一百一十八回 哭祖廟一王死孝 入西川二士爭功. 제118회 一王이 묘당에서 통곡하며 순국하고, 二士가 서천에 들어가서 공을 다투다. 卻說 後主在成都,聞鄧艾取了綿竹,諸葛瞻父子已亡,大驚,急召文武商議。 한편, 후주는 성도에서 등애가 면죽을 빼앗고 제갈첨 부자가 죽었음을 듣고 깜짝 놀라서 급히 문무 관료를 불러 상의하였다. 近臣奏曰: 「城外百姓,扶老攜幼,哭聲大震,各逃生命.」 근신이 아뢰었다. “성 밖에서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곡성을 크게 울리며 각자 목숨을 구해 도망합니다.” 後主驚惶無措。 후주가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몰랐다. 忽哨馬報到,說魏兵將近城下。 홀연히 哨馬가 보고하기를, 위병이 곧 성 아래에 근접하겠다고 알렸다. 多官議曰: 「兵微將寡,難以迎敵;不如早棄成都,奔南中七郡: 其..
第一百一十九回 假投降巧計成虛話 再受禪依樣畫葫蘆. 제119회 投降을 가장한 巧計는 헛말이 되고, 受禪을 다시 하는 依樣은 호로를 그리듯 하였다. 卻說 鍾會請姜維計議收鄧艾之策。 한편, 종회가 강유를 청하여 등애를 잡을 계책을 의논하였다. 維曰: 「可先令監軍衛瓘收艾。 艾欲殺瓘,則反情實矣。 將軍卻起兵討之,可也.」 강유가 말하였다. “먼저 감군 위관을 시켜 등애를 잡으십시오. 등애가 위관을 죽이려 하면 反情이 확실합니다. 장군께서 그때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면 되겠습니다.” 會大喜,遂令衛瓘引數十人入成都,收鄧艾父子。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위관을 시켜 수십 인을 이끌고 성도로 들어가서 등애 부자를 체포하라 하였다. 瓘部卒止之曰: 「此是鍾司徒令鄧征西殺將軍,以正反情也。 切不可行.」 위관의 部卒이 제지하였다. “이것은 鍾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