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삼국연의112회-于詮死節과 伯約鏖兵 본문
第一百一十二回
救壽春于詮死節 取長城伯約鏖兵.
제112회
于詮이 수춘을 구원하다가 死節하고, 伯約이 장성을 공격하여 鏖兵하다.
卻說
司馬昭聞諸葛誕會合吳兵前來決戰,乃召散騎長史裴秀、黃門侍郎鍾會,商議破敵之策。
한편,
사마소는 제갈탄이 吳兵과 會合하여 결전하러 옴을 듣고, 散騎長史 裴秀、黃門侍郎 鍾會를 불러 破敵之策을 商議하였다.
鍾會曰:
「吳兵之助諸葛誕,實為利也;
以利誘之,則必勝矣.」
종회가 말하였다.
“吳兵이 제갈탄을 도움은, 실상은 이익 때문입니다.
이익으로 유인하면 틀림없이 이기겠습니다.”
昭從其言,遂令石苞、周太先引兩軍於石頭城埋伏,王基、陳騫領精兵在後,卻令偏將成倅引兵數萬先去誘敵;
사마소가 그 말을 좇아, 石苞、周太에게 먼저 兩軍을 이끌고 石頭城에 매복하게 하고, 王基、陳騫에게 精兵을 거느리고 후방에 있으라 하였다. 偏將 成倅에게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먼저 가서 적군을 유인하게 하였다.
又令陳俊引車仗牛馬驢騾,裝載賞軍之物,四面聚集於陣中,如敵來則棄之。
또 陳俊에게 명령하기를, 車仗牛馬驢騾를 동원하여 賞軍之物을 싣고 사방에서 陣中에 모아놓았다가, 적군이 오면 버리라고 하였다.
是日諸葛誕令吳將朱異在左,文欽在右;
이날 제갈탄이 吳將 朱異를 좌측에, 문흠을 우측에 배치하였다.
見魏陣中人馬不整,誕乃大驅士馬逕進。
魏陣中에 인마가 정돈되지 않음을 보고 제갈탄이 士馬를 크게 몰아 돌진하였다.
成倅退走,誕驅兵掩殺,見牛馬驢騾,遍滿郊野,南兵爭取,無心戀戰。
성쉬가 달아나니 제갈탄이 군대를 이끌고 엄습하는데, 소와 말, 노새와 나귀가 들판에 가득함을 보고 南兵이 앞다퉈 노획하느라, 싸울 마음이 없었다.
忽然一聲炮響,兩路兵殺來;左有石苞,右有周太。
홀연 포성이 한번 울리더니, 兩路兵이 달려오는데, 왼쪽에 石苞가 있고, 오른쪽에 周太가 있었다.
誕大驚,急欲退時,王基、陳騫精兵殺到。
제갈탄이 깜짝 놀라 서둘러 퇴각하려는데, 왕기와 진건의 精兵이 쇄도하였다.
誕兵大敗。
제갈탄의 군사가 대패하였다.
司馬昭又引兵接應。
사마소가 또한 군사를 이끌고 지원하였다.
誕引敗兵奔入壽春,閉門堅守。
제갈탄은 敗兵을 이끌고 수춘으로 달려 들어가서,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昭令兵四面圍困,併力攻城。
사마소가 군사에게 명령하기를, 사면을 포위하고 힘을 모아 攻城하라고 하였다.
時吳兵退屯安豐,魏主車駕駐於項城。
이때, 오병은 安豐으로 물러나 주둔하고, 위주의 車駕는 項城에 머문다.
鍾會曰:
「今諸葛誕雖敗,壽春城中糧草尚多,更有吳兵屯安豐以為犄角之勢,今吾兵四面攻圍,彼緩則堅守,急則死戰。
吳兵或乘勢夾攻,吾軍無益,不如三面攻之,留南門大路,容賊自走;
走而擊之,可全勝也。
吳兵遠來,糧必不繼。
我引輕騎抄在其後,可不戰而自破矣.」
종회가 말하였다.
“이제 제갈탄이 비록 패전했지만, 수춘성 안에 糧草가 아직 많은 데다, 오병이 안풍에 주둔하여 犄角之勢를 이룹니다. 이제 아군이 사면을 포위해 공격하지만, 적군은 (공격이) 느슨하면 굳게 지키고, 급박하면 죽기로 싸울 터입니다.
吳兵이 혹시 형세를 타고 협공하면 아군에게 無益하니, 3면에서 공격하고 남문의 대로를 남겨두어, 賊徒가 스스로 달아나게 함만 못합니다.
달아날 때 공격하면, 온전히 승리하겠습니다.
吳兵은 멀리 온지라 군량을 틀림없이 이어주지 못할 터입니다.
우리가 輕騎를 이끌고 그 후방을 습격하면, 싸우지 않고도 격파할 수 있겠습니다.”
昭撫會背曰:
「君真吾之子房也!」
사마소가 종회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그대는 참으로 나의 子房이로다!”
遂令王基徹退南門之兵。
이에 왕기에게 南門之兵을 徹退하게 하였다.
卻說
吳兵屯於安豐,孫綝喚朱異責之曰:
「量一壽春城不能救,安可併吞中原?
如再不勝必斬!」
한편,
吳兵이 안풍에 주둔하고 있는데 손침이 주이를 불러 꾸짖었다.
“그깟 수춘성 하나 구원하지 못하고서 어찌 중원을 병탄하겠느냐?
또다시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참하겠다!”
朱異乃回本寨商議。于詮曰:
「今壽春南門不圍,某願領一軍從南門入去,助諸葛誕守城。
將軍與魏兵挑戰,我卻從城中殺出,兩路夾攻,魏兵可破矣.」
주이가 이에 본채로 돌아가 상의하니, 우전이 말하였다.
“이제 수춘의 남문은 포위되지 않았으니, 제가 1군을 이끌고 남문으로 들어가서 제갈탄을 도와 성을 지키겠습니다.
장군께서 魏兵에게 싸움을 걸 때 제가 성안에서 달려 나와서 兩路夾攻하면 魏兵을 격파할 수 있겠습니다.”
異然其言。
주이가 그 말을 옳다고 여겼다.
於是全懌、全端、文欽等,皆願入城。遂同于詮引兵一萬,從南門而入城。
이에 전역, 전단, 문흠 등도 모두 성으로 들어가고자 하여 우전과 함께 군사 1만을 이끌고 남문을 통해 入城하였다.
魏兵不得將令,未敢輕敵,任吳兵入城,乃報知司馬昭。
魏兵이 將令을 받지 못하여 감히 함부로 대적하지 못하고 吳兵入城을 지켜본 뒤, 사마소에게 알린다.
昭曰:
「此欲與朱異內外夾攻,以破我軍也.」
사마소가 말하였다.
“이것은 주이와 內外에서 夾攻함으로써 아군을 격파하려 함이오.”
乃召王基、陳騫分付曰:
「汝可引五千兵截斷朱異來路,從背後擊之.」
이에 왕기와 진건을 불러 분부하였다.
“군사 5천을 이끌고 주이의 來路를 截斷하고 배후를 습격하시오.”
二人領命而去。
두 사람이 명을 받고 떠났다.
朱異正引兵來,忽背後喊聲大起;
주이가 군을 이끌고 오는데, 갑자기 배후에서 함성이 크게 일었다.
左有王基,右有陳騫,兩路軍殺來。吳兵大敗。
왼쪽에 왕기가 있고 오른쪽에 진건이 있어, 兩路軍이 달려오니 吳兵이 대패하였다.
朱異回見孫綝。綝大怒曰:
「累敗之將,要汝何用!」
주이가 돌아가서 손침을 만나자, 손침이 크게 노하였다.
“여러 번 패한 장수! 너를 어디에 쓰겠는가!”
叱軍士推出斬之;
군사에게 끌어내어 처형하라고 호통쳤다.
又責全端子全褘曰:
「若退不得魏兵,汝父子休來見我!」
또한 전단의 아들 全褘를 꾸짖었다.
“魏兵을 물리치지 못하면, 너희 부자는 나를 보러 오지 말라!”
於是孫綝自回建業去了。
이에 손침은 건업으로 돌아가 버렸다.
鍾會與昭曰:
「今孫綝退去,外無救兵,城可圍矣.」
종회가 사마소에게 말하였다.
“이제 손침이 물러가서 성밖에 구원병이 없으니, 포위할 수 있습니다.”
昭從之,遂催兵攻圍。
사마소가 이를 따라 군사를 독려하여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全褘引兵欲入壽春,見魏兵勢大,尋思進退無路,遂降司馬昭。
전휘가 군사를 이끌고 수춘성으로 들어가고자 하나, 魏兵勢大함을 보고, 생각해 보아도 進退無路이라 마침내 사마소에게 투항하였다.
昭加褘為偏將軍。
사마소가 전휘에게 偏將軍의 직위를 내렸다.
褘感昭恩德,乃修家書與父全端,叔全懌,言孫綝不仁,不若降魏,將書射入城中。
전휘가 사마소의 은덕에 감동하여, 부친 전단과 숙부 전역에게 家書를 쓰기를, 손침이 어질지 않으니 위나라에 투항함이 낫다고 하였다. 서신을 城中으로 쏘아 보냈다.
懌得褘書,遂與端引數千人開門出降。
전역이 전휘의 서신을 받더니 전단과 더불어 수천 명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가서 투항하였다.
諸葛誕在城中憂悶。
謀士蔣班、焦彝進言曰:
「城中糧少兵多,不能久守,可率吳楚之眾,與魏兵決一死戰.」
제갈탄이 성안에서 고민하니, 모사 蔣班、焦彝가 진언하였다.
“성안에 식량은 적고 군사는 많아서 오래 지킬 수 없습니다. 吳楚( 춘추시대 오나라와 초나라의 땅이었던 장강 중류와 하류 일대 )의 군사를 이끌고 魏兵과 決一死戰해야 합니다.”
誕大怒曰:
「吾欲守,汝欲戰,莫非有異心乎!
再言必斬!」
제갈탄이 크게 노하였다.
“나는 지키고자 하는데 너희는 싸우겠다니, 다른 마음을 가졌음이 아니고 무엇이냐!
또다시 말하면 반드시 참하겠다!”
二人仰天長歎曰:
「誕將亡矣!
我等不如早降,免至一死!」
두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하였다.
“제갈탄이 곧 망하겠구나!
우리는 어서 항복하여 죽음을 면함이 낫겠구나!”
是夜二更時分,蔣、焦二人踰城降魏,司馬昭重用之;
이날 밤 2경 무렵 장반과 초이 두 사람이 성벽을 넘어 위나라에 투항하니 사마소가 이들을 중용하였다.
因此城中雖有敢戰之士,不敢言戰。
이 때문에 성안에 비록 결전을 감행하려는 인물이 있어도, 싸우자고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誕在城中見魏兵四下築起土城,以防淮水,只望水泛衝倒土城,驅兵擊之。
제갈탄이 城中에 있었다가, 魏兵이 사방에 토성을 쌓아 올림을 보고, 淮水를 막고 물이 넘쳐서 토성을 허물어뜨리기를 기다려, 군사를 몰아 공격하려 하였다.
不想自秋至冬,並無霖雨,淮水不泛。
생각과 달리, 가을부터 겨울까지 霖雨가 없으니 회수가 범람하지 않는다.
城中看看糧盡,文欽在小城內與二子堅守,見軍士漸漸餓倒,只得來告誕曰:
「糧皆盡絕,軍士餓損,不如將北方之兵盡放出城,以省其食.」
성안에 점점 식량이 떨어지데 문흠은 작은 성에서 두 아들과 더불어 굳게 지키고 있었다. 군사들이 점점 굶어서 쓰러지자, 어쩔 수 없이 제갈탄에게 가서 고하였다.
“군량이 모조리 바닥나서 군사들이 굶어 죽으니, 北方之兵을 모조리 성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먹는 것이라도 줄임이 낫겠습니다.”
誕大怒曰:
「汝教我盡去北軍,欲謀我耶!」
제갈탄이 크게 노하였다.
“네가 나더러 北軍을 모조리 떠나보내라 하다니, 나를 謀害하려 하는구나!”
叱武士推出斬之。
무사에게 소리쳐서 끌어내어 처형하게 하였다.
文鴦、文虎見父被殺,各拔短刀,立殺數十人,飛身上城,一躍而下,越河赴魏寨投降。
문앙과 문호는 부친이 피살됨을 보고, 각각 단도를 뽑아 곧바로 수십 인을 죽이고, 몸을 날려 성벽을 오르더니, 한 번에 뛰어내려 해자를 넘어 위채로 가서 투항하였다.
司馬昭恨文鴦昔日單騎退兵之讎,欲斬之。
사마소는 문앙이 지난날 單騎退兵之讎임을 한스러워하여, 참하려 하였다.
鍾會諫曰:
「罪在文欽,今文欽已亡,二子勢窮來歸,若殺降將,是堅城內人之心也.」
종회가 간하였다.
“죄는 문흠에게 있는데 지금 문흠은 이미 죽고 두 아들은 勢窮來歸했습니다. 降將을 죽이면 城內人之心만 견고하게 만듭니다.”
昭從之,遂召文鴦、文虎入帳,用好言撫慰,賜駿馬錦衣,加為偏將軍,封關內侯。
사마소가 그 말을 좇아, 문앙과 문호를 군막 안으로 불러들여 좋은 말로써 撫慰하고 駿馬와 錦衣을 하사하며 偏將軍의 직위를 더하고 關內侯의 爵位에 봉하였다.
二子拜謝上馬,遶城大叫曰:
「我二人蒙大將軍赦罪賜爵,汝等何不早降!」
두 아들이 사례하고 말에 올라 성 주위를 돌며 크게 외쳤다.
“우리 두 사람은 대장군께서 赦罪賜爵하는 은혜를 입었거늘, 너희는 어찌 일찍 항복하지 않는가!”
城內人聞言,皆計議曰:
「文鴦乃司馬氏讎人,尚且重用,何況我等乎?」
성안 사람들이 말을 듣고 모두 의논하였다.
“문앙은 사마씨의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중용되었는데, 하물며 우리임에랴?”
於是皆欲投降。
이에 모두 투항하려 하였다.
諸葛誕聞之大怒,日夜自來巡城,以殺為威。
제갈탄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밤낮으로 친히 성을 순시하며 처형함으로써 위엄을 보였다.
鍾會知城中人心已變,乃入帳告昭曰:
「可乘此時攻城矣.」
종회가 城中人心이 이미 변함을 알고 군막으로 들어가서 사마소에게 고하였다.
“이때를 틈타 성을 공격해야 하겠습니다.”
昭大喜,遂激三軍四面雲集,一齊攻打。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며, 3군을 격려하여 四面에 雲集하여 일제히 攻打하였다.
守將曾宣獻了北門,放魏兵入城。
守將 曾宣이 북문을 열어 바쳐서, 魏兵이 入城하도록 놓아두었다.
誕知魏兵已入,慌引麾下數百人,自城中小路突出;
제갈탄은 魏兵이 들어왔음을 알고 황망히 휘하 수백 인을 이끌고 城中으로부터 지름길로 뛰쳐나갔다.
至吊橋邊,正撞著胡奮,手起刀落,斬誕於馬下,數百人皆被縛。
吊橋 근처에 이르러 胡奮과 마주친다. 手起刀落하여 제갈탄을 베어서 말 아래로 떨구었고, 수백 인도 모두 포박당하였다.
王基引兵殺到西門,正遇吳將于詮。
基大喝曰:
「何不早降!」
왕기가 군을 이끌고 서문으로 달려가다가 오장 우전과 마주친다. 왕기가 크게 꾸짖는다.
“어찌 어서 항복하지 않는가!”
詮大怒曰:
「受命而出,為人救難,既不能救,又降他人,義所不為也!」
우전이 크게 노하였다.
“명을 받고 나와서 남을 위하여 救難하려다가, 구원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항복함은 의리상 해서는 알 될 짓이다!”
乃擲盔於地,大呼曰:
「人生在世,得死於戰場者,幸耳!」
이에 투구를 땅에 내던지며 크게 외쳤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戰場에서 죽음은 다행일 뿐이다!”
急揮刀死戰三十餘合,人困馬乏,為亂軍所殺。
급히 칼을 휘두르며 죽을 각오로 30여 합을 싸우다가, 말과 사람이 지쳐 亂戰 중에 피살되었다.
後人有詩贊曰:
후인이 시를 지어 기렸다.
<司馬當年圍壽春,降兵無數拜車塵。
東吳雖有英雄士,誰及于詮肯殺身!>
<사마소가 그때 수춘성을 포위하니, 降兵이 무수히 車塵 앞에 엎드리네
동오에 비록 영웅이 있었다 해도, 누가 우전처럼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는가?>
司馬昭入壽春,將諸葛誕老小盡皆梟首,滅其三族。
사마소가 수춘성에 들어가서 제갈탄의 老小를 모조리 효수하고 삼족을 멸하였다.
武士將所擒諸葛誕部卒數百人縛至。
무사들이 사로잡힌 제갈탄의 部卒 수백 인을 포박해 끌고 왔다.
昭曰:
「汝等降否?」
사마소가 말하였다.
“너희는 항복하겠느냐?”
眾皆大叫曰:
「願與諸葛公同死,決不降汝!」
모두 크게 외쳤다.
“원하건대 제갈공과 함께 죽겠다. 결단코 네놈에게 항복하지 않겠다!”
昭大怒,叱武士盡縛於城外,逐一問曰:
「降者免死.」
사마소가 크게 노하여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성 밖에 모두 결박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묻는다.
“항복하는 자는 죽음을 면한다.”
並無一人言降。
아무도 항복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直殺至盡,終無一人降者。
계속 죽여서 다할 때까지, 끝내 아무도 항복하는 사람이 없다.
昭深加歎息不已,令皆埋之。
사마소가 깊이 탄식해 마지않으며 모두 매장하게 하였다.
後人有詩贊曰:
후인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忠臣矢志不偷生,諸葛公休帳下兵.
薤露歌聲應未斷,遺蹤直欲繼田橫!>
<충신이 뜻을 세워 목숨을 구걸하지 않으니, 제갈공휴의 부하장병이 그러하구나.
해로가를 소리 아직 그치지 않는데, 발자취 남기며 전횡의 옛일을 계승하려 했구나.>
卻說
吳兵大半降魏,裴秀告司馬昭曰:
「吳兵老小,盡在東南江淮之地,今若留之,久必為變,不如坑之.」
한편,
吳兵의 태반이 降魏하니 裴秀가 사마소에게 고하였다.
“吳兵의 老小가 모두 동남의 江淮之地에 있으니, 지금 남겨두어 오래되면 틀림없이 변란을 지을 터이니, 그들을 생매장해 버림이 낫겠습니다. ”
鍾會曰:
「不然;
古之用兵者,全國為上,戮其元惡而已。
若盡坑之,是不仁也。
不如放歸江南,以顯中國之寬大.」
종회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古之用兵者는 全國為上이니, 그 元惡만 죽이고 그만이었습니다.
그들을 모조리 생매장함은 어질지 못합니다.
그들을 강남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중국의 寬大함을 드러내는 것만 못 합니다.”
昭曰:
「此妙論也.」
사마소가 말하였다.
“이것이 훌륭한 의론이오.”
遂將吳兵盡皆放歸本國。
그리하여 吳兵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게 놓아 주었다.
唐咨因懼孫綝,不敢回國,亦來降魏。
唐咨는 손침을 두려워하여 감히 回國하지 못하고 역시 위나라에 투항하였다.
昭皆重用,令分布三河之地。
사마소가 모두 중용하여 三河之地( 하동, 하남, 하내의 세 지역 )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淮南已平。
회남이 평정되었다.
正欲退兵,忽報西蜀姜維引兵來取長城,邀截糧草。
退兵하려는데 보고하기를, 서촉의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長城을 공격해 糧草를 끊으려 한다고 하였다.
昭大驚,與多官計議退兵之策。
사마소가 깜짝 놀라, 많은 관리와 더불어 退兵之策을 상의하였다.
時蜀漢延熙二十年,改為景耀元年。
이때가 촉한 연희 20년인데 景耀 원년으로 改元하였다.
姜維在漢中選川將兩員,每日操練人馬:
강유가 한중에 머물며 川將 두 사람을 뽑아 매일 인마를 조련하였다.
一是蔣舒,一是傅僉。二人頗有膽勇,維甚愛之。
한 사람은 蔣舒이고 또 한 사람은 傅僉인데, 두 사람이 자못 담력과 용맹을 갖춰 강유가 몹시 아낀다.
忽報淮南諸葛誕起兵討司馬昭,東吳孫綝助之,昭大起兩淮之兵,將魏太后並魏主一同出征去了。
문득 보고하기를, 회남의 제갈탄이 起兵하여 사마소를 토벌하는데 동오의 손침도 이를 돕자, 사마소가 兩淮( 회남과 회북 지역 )의 군대를 크게 일으켜 위태후, 魏主와 함께 출정했다고 하였다.
維大喜曰:
「吾今番大事濟矣!」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번에는 대사를 이루겠구나!”
遂表奏後主,願興兵伐魏。
곧 후주에게 表奏하여 興兵伐魏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中散大夫譙周聽知,歎曰:
「近來朝廷溺於酒色,信任中貴黃皓,不理國事,只圖歡樂;
伯約累欲征伐,不恤軍士;國將危矣!」
中散大夫 譙周가 전해 듣고 탄식하였다.
‘근래에 들어 朝廷溺於酒色하고, 中貴 黃皓를 신임하여 不理國事하고, 오로지 환락을 찾을 뿐이다.
백약이 누차에 걸쳐 정벌에 나서려 하며 군사들을 돌보지 않으니 나라가 장차 위태롭겠다!’
乃作讎國論一篇,寄與姜維。
이에 ‘讎國論’이란 글을 1편 써서 강유에게 보냈다.
維拆封視之。論曰:
강유가 뜯어서 읽어보니 내용이 이러하였다.
<或問
古往能以弱勝強者,其術何如?
曰:
處大國無患者,恆多慢;處小國有憂者,恆思善。
多慢則生亂,思善則生治,理之常也。
故周文養民,以少取多;
勾踐恤眾,以弱斃強。
此其術也。
或曰:
曩者楚強漢弱,約分鴻溝,張良以為民志既定,則難動也,率兵追羽,終斃項氏;
豈必由文王勾踐之事乎?
曰:
商周之際,王侯世尊,君臣久固,當此之時,雖有漢祖,安能仗劍取天下乎?
及秦罷侯置守之後,民疲秦役,天下土崩,於是豪傑並爭。
今我與彼,皆傳國易世矣。
既非秦末鼎沸之時,實有六國並據之勢。
故可為文王,難為漢祖。
時可而後動,數合而後舉;
故湯武之師,不再戰而克,誠重民勞而度時審也。
如遂極武黷征,不幸遇難,雖有智者,不能謀之矣。>
<누군가 묻기를,
‘옛날에 능히 약함으로써 강함을 이긴 이는 그 방법이 무엇이었는가?’라고 하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큰 나라에 처해 우환이 없는 이는 언제나 몹시 태만하고, 작은 나라에 처해 근심이 있는 이는 언제나 개선할 방도를 찾는다고 합니다.
몹시 태만하면 어지러워지지만 개선할 방도를 찾으면 다스려짐은, 불변의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주나라 문왕께서 인민을 잘 양육했기에 以少取多하였습니다.
勾踐은 그 무리를 잘 돌봤기에 以弱斃強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방법입니다.’
또 말하기를,
‘지난날 楚強漢弱하니 鴻溝를 경계로 천하를 나누기로 약속하였다. 장량은 민심이 안정되어 좀처럼 동요하지 않으리라 여기고, 군대를 거느리고 항우를 추격하여 마침내 항씨를 죽였다. 어찌 반드시 문왕과 구천을 본받아야겠는가?’라고 하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商周之際에는 왕후는 대대로 존숭받고 임금과 신하는 오랫동안 안정되었으니, 그런 때를 당하여는 비록 漢祖가 있더라도 어찌 능히 검을 잡고 천하를 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진나라가 제후를 폐지하고 군현을 설치한 뒤 백성들이 진나라의 노역에 시달리고 천하가 흙이 무너지듯 하니 이에 호걸들이 떼를 지어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와 저들은 모두 傳國과 易世가 일어나서 이미 진나라 말기의 솥이 끓는 듯한 때가 아니라 참으로 육국이 병립하던 형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왕은 될 수 있으나, 漢祖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시기가 좋아진 후에 움직이고, 운수가 합당한 후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탕왕과 무왕의 군사는 다시 싸우지도 않고 능히 이루었으니, 참으로 백성의 노고를 중시하고 적절한 시기를 헤아린 것입니다.
極武와 黷征( 정벌의 남발 )을 행하여 불행히도 遇難하면, 비록 智者가 있더라도 해결하지 못할 터입니다.>
姜維看畢,大怒曰:
「此腐儒之論也!」
강유가 읽고 크게 노하였다.
“이것은 腐儒之論이다!”
擲之於地。
바닥에 논문을 땅에 던져버렸다.
遂提川兵來取中原。
마침내 川兵을 이끌고 중원을 치러 갔다.
又問傅僉曰:
「以公度之,可出何地?」
강유가 부첨에게 묻는다.
“공이 생각하기에 어디로 나가야 하겠소?”
僉曰:
「魏屯糧草,皆在長城;
今可徑取駱谷,度沈嶺,直到長城,先燒糧草,然後直取秦川,則中原指日可得矣.」
부첨이 말하였다.
“위나라가 저장한 糧草는 모두 長城에 있습니다.
이제 바로 駱谷을 취하고 沈嶺을 넘어 장성으로 직행하여, 先燒糧草한 후 바로 秦川을 점령하면 중원도 머지않아 얻을 수 있습니다.”
維曰:
「公之見與吾計暗合也.」
강유가 말하였다.
“공의 견해와 내 계획이 우연히도 맞는구려.”
即提兵徑取駱谷,度沈嶺,望長城而來。
즉시 군대를 거느리고 낙곡을 취하고 침령을 넘어 장성으로 갔다.
卻說
長城鎮守將軍司馬望,乃司馬昭之族兄也。
한편,
長城의 鎮守將軍 司馬望은 사마소의 族兄이다.
城內甚多,人馬卻少。
성안에 糧草는 매우 많지만 인마는 오히려 적었다.
望聽知蜀兵到,急與王真、李鵬二將,引兵離城二十里下寨。
사마망은 촉병이 옴을 듣고 급히 王真、李鵬 두 장수와 함께 군을 이끌고 성 밖 20리에 영채를 세웠다.
次日蜀兵來到,望引二將出陣。
다음날 촉병이 오니 사마망이 두 장수를 이끌고 출진하였다.
姜維出馬,指望而言曰:
「今司馬昭遷主於軍中,必有李傕、郭氾之意也。
吾今奉朝廷明命,前來問罪,汝當早降。
若還愚迷,全家誅戮!」
강유가 출마하여 사마망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제 사마소가 임금을 군중에 끌고 감은 틀림없이 이각과 곽사의 뜻을 가진 것이다.
내 이제 조정의 밝은 명령을 받들어 죄를 물으러 왔으니 너는 어서 항복해야 한다.
만약 여전히 어리석게 굴면 온 집안을 誅戮하겠다!”
望大聲而答曰:
「汝等無禮,數犯上國,如不早退,令汝片甲不歸!」
사마망이 큰 소리로 답하였다.
“너희가 무례하여 上國을 몇 차례나 범하는구나. 어서 물러가지 않으면 네놈들 갑옷 쪼가리 하나 못 돌아가게 하겠다!”
言未畢,望背後王真挺鎗出馬,蜀陣中傅僉出迎。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마망의 배후에서 王真이 창을 꼬나 쥐고 출마하니, 蜀陣中에서 부첨이 나와서 맞았다.
戰不十合,僉賣個破綻,王真便挺鎗來刺。
싸움이 10합이 되지 않아, 부첨이 일부러 허둥대는 척하니 왕진이 창을 꼬나 쥐고 찌르려 달려들었다.
傅僉閃過,活捉真於馬上,便回本陣。
부첨이 재빨리 피하고 왕진을 말 위에서 사로잡아 본진으로 돌아왔다.
李鵬大怒,縱馬輪刀來救。
이붕이 크게 노하여 말을 달려 칼을 휘두르며 구원하러 왔다.
僉故意放慢,等李鵬將近,努力擲真於地,暗掣四楞鐵簡在手;
부첨이 일부러 방심한 척하며 이붕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힘껏 왕진을 땅에 내던지고, 몰래 四楞鐵簡을 손에 뽑아 들었다.
待鵬趕上舉刀欲砍,傅僉偷身回顧,向李鵬面門只一簡,打得眼珠迸出,死於馬下。
이붕이 뒤따라붙어 칼을 들어 베려고 할 때를 기다리더니, 부첨이 몸을 피하면서 뒤돌아서 이붕의 얼굴을 사릉철간으로 타격하니, 이붕의 眼珠가 터져 나오며 말 아래 떨어져 죽었다.
王真被蜀軍亂鎗刺死。
왕진을 촉군이 창으로 마구 찔러 죽였다.
姜維驅兵大進。
강유가 군대를 몰아 크게 진격하였다.
司馬望棄寨入城,閉門不出。
사마망이 棄寨入城하고 閉門不出하였다.
維下令曰:
「軍士今夜且歇一宿,以養銳氣。
來日須要入城.」
강유가 영을 내린다.
“군사들은 오늘 밤 우선 하룻밤을 쉬어 예기를 기르라.
내일 입성하겠다.”
次日平明,蜀兵爭先大進,一擁至城下,用火箭火炮打入城中。
다음날 平明에 촉병이 앞다퉈 크게 진격하여 성 아래로 몰려가서, 불화살과 화포를 써서 성안으로 쏘아 넣었다.
城上草屋,一派燒著,魏兵自亂。
성 위의 草屋들이 한꺼번에 불이 붙어 魏兵이 스스로 혼란에 빠졌다.
維又令人取乾柴堆滿城下,一齊放火,烈焰沖天。
강유가 또 사람들을 시켜 마른 장작을 성 아래에 가득 쌓고, 일제히 방화하니 烈焰沖天하였다.
城已將陷,魏兵在城內嚎啕大哭,聲聞四野。
성이 곧 함락될 지경에 이르자, 魏兵들이 성안에서 크게 울부짖으며 통곡하니, 소리가 사방의 들판에 들렸다.
正攻打之間,忽然背後喊聲大震。
한창 攻打하는데 갑자기 배후에서 함성이 크게 일었다.
維勒馬回看,只見魏兵鼓譟搖旗,浩浩而來。
강유가 말을 멈춰 세우고 뒤돌아보니, 魏兵이 북을 두드리고 깃발을 흔들며, 浩浩하게 몰려왔다.
維遂令後隊為前隊,自立於門旗下候之。
강유가 후대를 전대로 삼아, 스스로 門旗아래에서 기다렸다.
只見魏陣中一小將,全裝貫帶,挺鎗縱馬而出,約年二十餘歲,面如傅粉,脣似抹硃,厲聲大叫曰:
「認得鄧將軍否!」
위진에서 일개 小將이 완전무장을 하고, 창을 꼬나 쥔 채 말을 몰아 나오는데, 나이가 스무 살 남짓이고, 얼굴이 마치 분칠한 듯하고, 입술이 흡사 붉은 먹을 바른 듯하다. 소리 높여 크게 외쳤다.
“등장군을 알아보겠느냐!”
維自思曰:
「此必鄧艾矣.」
강유가 생각하였다.
‘이놈이 등애렸다.’
挺鎗縱馬而來。
창을 꼬나 쥐고 말을 달려갔다.
二人抖擻精神,戰到三四十合,不分勝負。
두 사람이 정신을 집중해, 3, 40 합을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였다.
那小將軍鎗法無半點放閒。
그 소장의 창을 쓰는 솜씨에 半點도 빈틈이 없었다.
維心中自思:
「不用此計,安得勝乎?」
강유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계책을 쓰지 않으면, 어찌 이기랴?’
便撥馬望左邊山路中而走。
곧 말머리를 돌려 왼쪽의 산길로 달아났다.
那小將驟馬追來,維挂住了鋼鎗,暗取雕弓羽箭射之。
그 소장이 말을 빨리 몰아 뒤쫓는다, 강유가 鋼槍을 걸어놓고 몰래 雕弓에 羽箭을 메겨서 쏘았다.
那小將眼乖,早已見了,弓弦響處,把身望前一倒,放過羽箭。
소장이 눈이 밝아서 재빨리 보고 시위 소리가 울리자마자, 몸을 앞으로 엎드려 화살이 지나가게 하였다.
維回頭看小將已到,挺鎗來刺;維閃過,那鎗從肋旁邊過,被維挾住。
강유가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소장이 도착하여 창을 꼬나 쥐고 찌르러 왔다. 강유가 피하고 옆구리를 비껴가는 창을 잡아채었다.
那小將棄鎗,望本陣而走。
소장이 창을 포기하고 본진으로 달아났다.
維嗟歎曰:
「可惜!可惜!」
강유가 탄식하였다.
“아깝구나! 아까워!”
再撥馬趕來。
다시 말머리를 돌려 뒤쫓았다.
追至陣門前,一將提刀而出曰:
진문 앞에 이르자, 한 장수가 칼을 들고나오며 말하였다.
「姜維匹夫,勿趕吾兒,鄧艾在此!」
“강유 필부놈아! 내 아이를 쫓지 마라. 등애가 여기 있다!”
維大驚。
강유가 깜짝 놀랐다.
原來小將乃艾之子鄧忠也。
알고 보니 소장은 바로 등애의 아들 등충이었다.
維暗暗稱奇;
강유가 암암리에 稱奇하였다.
欲戰鄧艾,又恐馬乏,乃虛指艾曰:
「吾今日識汝父子也。
各且收兵。來日決戰.」
등애와 싸우고 싶었으나 말이 지침이 걱정되어 등애에게 둘러대었다.
“내가 오늘에야 너희 부자를 알아봤다.
우선 각자 군대를 거두고, 내일 결전하자.”
艾見戰場不利,亦勒馬應曰:
「既如此,各自收兵,暗算者非丈夫也。
등애가 전장 상황이 불리함을 보고, 역시 말을 멈춰 세우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각자 군대를 거두자. 暗算을 하는 자는 대장부가 아니다.”
於是兩軍皆退。
이리하여 양군이 모두 퇴각하였다.
鄧艾據渭水下寨,姜維跨兩山安營。
등애는 渭水에 의지해 영채를 세우고, 강유는 양쪽의 산에 걸쳐 영채를 세워 주둔하였다.
艾見蜀兵地理,乃作書於司馬望曰:
「我等切不可戰,只宜固守。
待關中兵至時,蜀兵糧草皆盡,三面攻之,無不勝也。
今遣長子鄧忠相助守城.」
등애가 촉병의 地理를 보고, 사마망에게 서신을 썼다.
“아군은 절대 싸우지 말고, 오로지 굳게 지켜야 하오.
관중의 군대가 오고 촉병의 糧草가 모두 떨어지기를 기다려서, 3면에서 공격하면 이기지 못함이 없겠소.
이제 나의 장자 등충을 보내 守城을 돕겠소.”
一面差人於司馬昭處求救。
동시에 사마소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였다.
卻說
姜維令人於艾寨中下戰書,約來日大戰,艾佯應之。
한편,
강유가 사람을 시켜 등애의 영채로 戰書를 보내 내일 크게 싸우자 하니, 등애가 응하는 척하였다.
次日五更,維令三軍造飯,平明布陣等候。
다음날 5경에, 주유는 영을 내려 삼군이 식사하게 하고 平明에 포진하여 대기하였다.
艾營中偃旗息鼓,卻如無人之狀。
등애의 진영은 偃旗息鼓하며, 마치 아무도 없는 형상이었다.
維至晚方回。
강유가 저녁이 되어 비로소 돌아갔다.
次日又令人下戰書,責以失期之罪。
다음날 다시 사람을 시켜 전서를 보내고, 기일을 어긴 죄를 꾸짖었다.
艾以酒食待使,答曰:
「微軀小疾,有誤相持,明日會戰.」
등애가 술과 음식으로 사자를 대접하며 답하였다.
“몸이 좀 아파서 싸우러 나가지 못했으나, 내일은 會戰하겠소.”
次日,維又引兵來,艾仍前不出。
다음날 강유가 군을 이끌고 오지만 등애는 여전히 출전하지 않았다.
如此五六番,傅僉謂維曰:
「此必有謀也,宜防之.」
이렇게 대여섯 번 되자, 부첨이 강유에게 말하였다.
“여기에는 틀림없이 음모가 있습니다. 마땅히 방비해야겠습니다.”
維曰:
「此必捱關中兵到,三面擊我耳。
吾今令人持書與東吳孫綝,使併力攻之.」
강유가 말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관중의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지체하다가, 3면에서 아군을 공격하려 함일 따름이오.
내가 이제 사람을 시켜 서찰을 가져다 동오의 손침에게 주고 힘을 합쳐 공격하게 하겠소.”
忽探馬報說司馬昭攻打壽春,殺了諸葛誕,吳兵皆降。昭班師回洛陽,便欲引兵來救長城。
探馬가 보고하기를,
‘사마소가 수춘성을 攻打하여 제갈탄을 죽이고, 오군이 모두 항복했습니다. 사마소가 군대를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갔는데, 곧 군대를 거느리고 장성을 구원하러 오려 합니다.’
라고 하였다.
維大驚曰:
「今番伐魏,又成畫餅矣。不如且回.」
강유가 깜짝 놀랐다.
“이번 伐魏도 그림의 떡이 되고 마는구나. 우선 回軍함이 좋겠다.”
正是:
已歎四番難奏績,又嗟五度未成功。
이야말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이미 네 번 공적을 아뢰기 어려워 탄식했는데, 또 다섯 번째 성공하지 못하여 嗟歎하네.
未知如何退兵,且看下文分解。
어떻게 退兵할까? 다음 글의 풀이를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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