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삼국연의117회-鄧士載와 諸葛瞻 본문
第一百一十七回
鄧士載偷度陰平 諸葛瞻戰死綿竹.
제117회
鄧士載가 陰平으로 몰래 가고 諸葛瞻이 綿竹에서 전사하다.
卻說
輔國大將軍董厥,聞魏兵十餘路入境,乃引二萬兵守住劍閣;
한편,
輔國大將軍董厥은 魏兵이 10여 개 방면으로 국경을 침입함을 듣고, 군사 2만을 이끌고 검각을 지키고 있었다.
當日望塵頭大起,疑是魏兵,急引兵把住關口。
이날 먼지가 크게 읾을 보고, 魏兵일까 의심하여 급히 군을 이끌고 關口를 막아섰다.
董厥自臨軍前視之,乃姜維、廖化、張翼也。
동궐이 직접 軍前으로 나가 살펴보니 바로 강유, 요화, 장익이었다.
厥大喜,接入關上。
동궐이 크게 기뻐하며 관 위로 영접해 들였다.
禮畢,哭訴後主黃皓之事。
인사를 마친 뒤 곡하며 후주와 황호의 일을 하소연하였다.
維曰:
「公勿憂慮。
若有維在,必不容魏來吞蜀也。
且守劍閣,徐圖退敵之計.」
강유가 말하였다.
“공은 우려하지 마시오.
강유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위가 촉을 병탄하러 옴을 용납하지 않겠소.
우선 검각을 지키며 退敵之計를 천천히 도모합시다.”
厥曰:
「此關雖然可守,爭奈成都無人;
倘為敵人所襲,大勢瓦解矣.」
동궐이 말하였다.
“이 관은 비록 지킬 수 있더라도, 성도에는 아무도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敵人에게 습격당하면 대세가 瓦解될 터입니다.”
維曰:
「成都山險地峻,非可易取,不必憂也.」
강유가 말하였다.
“성도는 山險地峻하여 쉽게 취할 수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소.”
正言間,忽報諸葛緒領兵殺至關下,維大怒,急引五千兵殺下關來,直撞入魏陣中,左衝右突,殺得諸葛緒大敗而走,退數十里下寨。
말하고 있는데, 제갈서가 군을 이끌고 관 아래로 달려왔음을 보고하였다. 강유가 크게 노하여 급히 군사 5천을 이끌고 관을 내려가서 魏陣中으로 쳐들어가 좌충우돌하며 무찌르니, 제갈서가 대패하여 수십 리를 달아나서 下寨하였다.
魏軍死者無數。蜀兵搶了許多馬匹器械。
위군의 전사자가 무수하고 蜀兵이 허다한 馬匹과 器械를 빼앗았다.
維收兵回關。
강유가 군대를 거두어 관으로 돌아갔다.
卻說
鍾會離劍閣二十五里下寨,諸葛緒自來伏罪。
한편,
종회가 검각에서 25리 떨어진 곳에 下寨하였는데 제갈서가 와서 죄를 인정하였다.
會怒曰:
「吾令汝守把陰平橋頭,以斷姜維歸路,如何失了;
今又不得吾令,擅自進兵,以致此敗!」
종회가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너에게 陰平橋頭를 지켜서 강유의 歸路를 차단하라 했거늘 어찌 잃었느냐?
게다가 이제 또다시 내 군령을 어기고 함부로 진군함으로써 이런 패배에 이르렀는가!”
緒曰:
「維詭計多端,詐取雍州,緒恐雍州有失,引兵去救;
維乘機走脫,緒因趕至關下,不想又為所敗.」
제갈서가 말하였다.
“강유는 詭計多端하여 써서 옹주를 치는 척하였고, 저는 옹주를 잃을까 염려하여 군을 이끌고 구원하러 갔습니다.
강유가 기회를 틈타서 타서 走脫하기에 제가 관 아래까지 추격했지만 뜻밖에 다시 패전하게 됐습니다.”
會大怒,叱令斬之。監軍衛瓘曰:
「緒雖有罪,乃鄧征西所督之人,不該將軍殺之。
恐傷和氣.」
종회가 크게 노하여 그를 처형하라고 호통쳐서 명령하니, 監軍 衛瓘이 말하였다.
“제갈서에게 비록 죄가 있으나, 鄧征西의 所督之人이니 장군께서 그를 죽이면 안 됩니다.
화목한 기운을 상하게 할까 염려됩니다.”
會曰:
「吾奉天子明詔,晉公鈞命,特來伐蜀,便是鄧艾有罪,亦當斬之.」
종회가 말하였다.
“내가 天子明詔와 晉公鈞命을 받들어 특별히 伐蜀하려 왔으니, 등애 자신에게 죄가 있더라도 역시 참해야 하오.”
眾皆力勸。會乃將諸葛緒用檻車載赴洛陽,任晉公發落;
사람들이 모두 힘써 권하자, 종회가 제갈서를 함거에 태워 낙양으로 보내어 진공의 處置에 맡겼다.
隨將緒所領之兵,收在部下調遣。
이어 제갈서의 所領之兵을 거두어서 部下에 調遣하였다.
有人報與鄧艾。艾大怒曰:
「吾與汝官品一般,吾久鎮邊疆,於國多勞,汝安敢妄自尊大耶!」
누군가 등애에게 보고하자 등애가 크게 노하였다.
“내가 제 놈과 官品이 一般이고, 내가 오랫동안 邊疆에 주둔하여 국가에 공로가 많았거늘, 제깐 놈이 어찌 감히 함부로 자신을 높이는가!”
子鄧忠勸曰:
「『小不忍則亂大謀』。
父親若與他不睦,必誤國家大事。
望且容忍之.」
아들 등충이 권하였다.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계책을 어지럽힌다고 했습니다.
부친께서 그와 화목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國家大事를 그르칠 터입니다.
우선 용인하시기 바랍니다.”
艾從其言,然畢竟心中懷怒,乃引十數騎來見鍾會。
등애가 그 말을 좇지만, 마음속에 분노를 품은 채 수십 기를 이끌고 종회를 만나러 갔다.
會聞艾至,便問左右:
「艾引多少軍來?」
종회는 등애가 왔음을 듣고 좌우에게 물었다.
“등애가 얼마나 많은 군사를 데리고 왔소?”
左右答曰:
「只有十數騎.」
좌우가 답하였다.
“단지 수십 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會乃令帳上帳下列武士數百人。
종회가 이에 군막 아래위에 무사 수백 인을 벌려놓았다.
艾下馬入見。會接入帳禮畢。
등애가 말에서 내려 들어오니 종회가 군막으로 접견하여 들이고 인사를 마쳤다.
艾見軍容甚肅,心中不安,乃以言挑之曰:
「將軍得了漢中,乃朝廷大幸也,可定策早取劍閣.」
등애가 군사들의 얼굴이 몹시 엄숙함을 보고, 마음속으로 불안하여 말로써 떠보았다.
“장군이 한중을 점령했으니 조정의 큰 행운이오. 어서 계책을 정하여 조속히 검각을 쳐야 하겠소.”
會曰:
「將軍明見若何?」
종회가 말하였다.
“장군의 현명한 견해는 어떻소?”
艾再三推稱無能。會固問之。艾答曰:
「以愚意度之,可引一軍從陰平小路出漢中德陽亭,用奇兵徑取成都,姜維必徹兵來救,將軍乘虛就取劍閣,可獲全功.」
등애가 거듭 무능하다고 사양하지만 종회가 고집하니 등애가 답하였다.
“제 못난 소견으로 생각하기에, 1군을 이끌고 음평의 지름길로 한중의 덕양정으로 나가서, 奇兵으로 곧바로 성도를 공격해야 하오. 강유는 틀림없이 병력을 철수하고 구원하러 갈 터이니, 장군이 그 틈을 타서 검각을 취하면 온전한 공을 거둘 수 있겠소.”
會大喜曰:
「將軍此計甚妙!
可即引兵去。
吾在此專候捷音.」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장군의 이 계책은 절묘하오!
즉시 군을 이끌고 가시오.
나는 여기서 오로지 捷音을 기다리겠소.”
二人飲酒相別。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작별하였다.
會回本帳與諸將曰:
「人皆謂鄧艾有能,今日觀之,乃庸才耳!」
종회가 本寨의 군막으로 돌아가서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사람들 모두가 등애를 유능하다고 말하지만, 오늘 살펴보니 그저 庸才일 뿐이었소!”
眾問其故。會曰:
「陰平小路,皆高山峻嶺,若蜀以百餘人守其險要,斷其歸路,則鄧艾之兵皆餓死矣。
吾只以正道而行,何愁蜀地不破乎!」
장수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종회가 말하였다.
“음평의 지름길은 모두 高山峻嶺이라 만약에 촉나라가 백여 명으로 그 險要를 수비하고 斷其歸路이면 鄧艾之兵은 모두가 굶어 죽을 터이오.
나는 오로지 正道로 갈 터이니, 어찌 蜀地를 점령하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遂置雲梯炮架,只打劍閣關。
이에 雲梯와 砲架를 설치하고 오로지 검각관을 공격하였다.
卻說
鄧艾出轅門上馬,回顧從者曰:
「鍾會待吾若何?」
한편, 등애가 轅門을 나와 말에 오르더니 從者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종회가 나를 어찌 대했느냐?”
從者曰:
「觀其辭色,甚不以將軍之言為然,但以口強應而已.」
종자가 말하였다.
“그의 辭色을 살펴보니, 將軍之言을 심히 옳다고 여김이 아니라, 단지 입으로 억지로 응했을 뿐입니다.”
艾笑曰:
「彼料我不能取成都,我偏欲取之!」
등애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는 내가 성도를 점령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기어코 점령하려 하였다!”
回到本寨,師纂、鄧忠一班將士接問曰:
「今日與鍾鎮西有何高論?」
본채로 돌아가니 사찬, 등충 등 一班將士 맞이하며 물었다.
“오늘 鍾鎮西와 어떤 高論이 있었습니까?”
艾曰:
「吾以實心告彼,彼以庸才視我。
彼今得漢中,以為莫大之功;
若非吾屯沓中絆住姜維,彼安能成功耶!
吾今若取了成都,勝取漢中矣!」
등애가 말하였다.
“나는 진실로 그에게 고했지만, 그는 庸才로 나를 보았소.
그는 지금 한중을 점령함을 막대한 공으로 여기고 있소.
내가 沓中에 주둔하여 강유를 묶어두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공을 이뤘겠소!
내 이제 성도를 취하였다면, 한중을 점령함보다 나을 터이오!”
當夜下令,盡拔寨望陰平小路進兵,離劍閣七百里下寨。
그날 밤 영을 내려 영채를 모조리 거두고, 음평의 지름길로 진군하여 검각에서 7백 리 떨어져서 下寨하였다.
有人報鍾會,說:
「鄧艾要去取成都了.」
누군가 종회에게 보고하였다.
“등애가 성도를 취하러 가려 합니다.”
會笑艾不智。
종회가 등애의 不智를 비웃었다.
卻說
鄧艾一面修密書遣使馳報司馬昭,一面聚諸將於帳下問曰:
「吾今乘虛去取成都,與汝等立功名於不朽,汝等肯從乎?」
각설하고,
등애는 한편으로 밀서를 쓰고 사자를 보내어 사마소에게 급히 알리는 동시에 장수들을 군막 에 모으고 물었다.
“내가 이제 빈틈을 노려 성도를 취하여, 그대들과 함께 不朽(의 기록)에 立功名하려 하는데, 그대들은 따르려 하는가?”
諸將應曰:
「願遵軍令,萬死不辭!」
諸將이 응답하였다.
“군령을 지켜 萬死不辭하려 합니다!”
艾乃先令子鄧忠引五千精兵,不穿衣甲,各執斧鑿器具,凡遇峻危之處,鑿山開路,搭造橋閣,以便行軍。
이에 등애가 먼저 아들 등충에게 精兵 5천을 이끌고 가되, 갑옷을 입지 않고 각자 도끼와 끌 따위의 器具를 소지하였다. 峻危之處를 만날 때마다 산을 뚫고 길을 내고 橋閣을 만들어, 행군에 편하게 하였다.
艾選兵三萬,各帶乾糧繩索進發。
등애가 군사 3만을 뽑아 각자 乾糧繩索을 휴대하고 출발하게 하였다.
約行百餘里,選下三千兵,就彼紮寨;又行百餘里,又選三千兵下寨。
약 100리 남짓을 행군하고 군사 3천을 뽑아, 그곳에 영채를 세워 주둔하게 하였다. 또 100리 남짓 행군하고 다시 군사 3천을 선발하여 下寨하였다.
是年十月自陰平進兵,至於巔崖峻谷之中,凡二十餘日,行七百餘里,皆是無人之境。
그해 10월 음평의 進兵부터 巔崖峻谷之中까지, 도합 20여 일에 700여 리를 행군하는데 모두 無人之境이었다.
魏兵沿途下了數十寨,只剩下二千人馬。
魏兵이 길을 따라 수십 개의 영채를 세우니, 단지 군사 2천의 人馬만 남았다.
前至一嶺,名摩天嶺。
어느 고개에 이르니, 이름하여 摩天嶺이다.
馬不堪行,艾步行上嶺。
말이 갈 수 없어서 등애가 걸어서 고개를 올랐다.
只見鄧忠與開路壯士盡皆哭泣。
등충과 開路壯士가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艾問其故。忠告曰:
「此嶺西背是峻壁巔崖,不能開鑿,虛廢前勞,因此哭泣.」
등애가 그 까닭을 묻자 등충이 고하였다.
“이 고개의 서쪽 뒤는 가파르고 높은 절벽이라서 길을 뚫을 수 없어서, 앞의 수고를 헛되이 버려야 하기에 이것 때문에 웁니다.”
艾曰:
「吾軍到此,已行了七百餘里,過此便是江油,豈可復退?」
등애가 말하였다.
“아군이 여기에 이르도록 이미 700여 리를 행군했고, 여기만 지나면 바로 江油인데 어찌 다시 물러나겠느냐?”
乃喚諸軍曰:
「『不入虎穴,焉得虎子』?
吾與汝等來到此地,若得成功,富貴共之.」
이에 군사들을 불러 말하였다.
“不入虎穴,焉得虎子?
나와 너희가 여기까지 왔으니, 공을 이루면 부귀를 함께 하겠다.”
眾皆應曰:
「願從將軍之命.」
사람들이 모두 응답하였다.
“장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艾令先將軍器攛將下去,艾取氈自裹其身,先滾下去。
등애가 명령을 내려 우선 軍器를 아래로 던져버리게 하였다. 등애가 모포를 가져다 몸을 감싸고 먼저 굴러 내려갔다.
副將有氈衫者裹身滾下,無氈衫者各用繩索束腰,攀木挂樹,魚貫而進。
부장들도 氈衫을 가진 자는 몸을 감싸 굴러 내려가고, 모포가 없는 자는 밧줄로 허리를 묶어 나무를 잡고 매달려서, 마치 물고기들을 줄로 꿰듯 하고 나아갔다.
鄧艾、鄧忠,並二千軍,及開山壯士,皆度了摩天嶺。
등애, 등충과 아울러 2천의 병사와 開山壯士가 모두 마천령을 넘었다.
方纔整頓衣甲器械而行,忽見道傍有一石碣,上刻:
「丞相諸葛武侯題」。
겨우 衣甲器械를 정돈하여 행군하다가 문득 길가에서 石碣을 발견하는데, 위에 “丞相 諸葛武侯題”라고 새겨져 있었다.
其文云:
「二火初興,有人越此。
二士爭衡,不久自死.」
그 내용은 이렇다.
“二火初興( 촉의 연호인 炎興 원년)에 누군가 이곳을 넘으리라.
두 장수가 다투다가, 머지않아 스스로 죽으리라.”
艾觀訖大驚,慌忙對碣再拜曰:
「武侯真神人也!
艾不能以師事之,惜哉!」
등애가 읽기를 마치고 깜짝 놀라서, 황망히 石碣을 향해 再拜하며 말하였다.
“무후는 참으로 神人이구나!
내가 스승으로 모시지 못함이 애석하구나!”
後人有詩曰:
후인이 시를 지었다.
<陰平峻嶺與天齊,玄鶴徘徊尚怯飛。
鄧艾裹氈從此下,誰知諸葛有先機。>
<음평의 높은 고개와 천제는, 검은 학도 떠돌다가 겁먹고 날아가는 곳.
등애가 모포를 감고 이곳을 내려가지만, 제갈공명 선견지명을 누가 알랴.>
卻說
鄧艾暗度陰平,引兵行時,又見一個大空寨。
등애가 몰래 음평을 지나며 군사를 이끌고 가다가 텅 빈 커다란 영채를 발견하였다.
左右告曰:
「昔武侯在日,曾撥一千兵守此險隘,今蜀主劉禪廢之.」
좌우가 고하였다.
“듣자니, 무후가 살아 있을 때 일찍이 군사 1천을 뽑아 이 險隘을 지켰으나, 근래에 촉주 유선이 폐하였습니다.”
艾嗟呀不已,乃謂眾人曰:
「吾等有來路而無歸路矣。
前江油城中,糧食足備。
汝等前進可活,後退即死,須併力攻之.」
등애가 嗟呀不已하며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오는 길은 있으나 돌아갈 길은 없게 됐소.
앞의 江油城에 양식이 넉넉히 구비되어 있소.
그대들이 전진하면 살 것이나 후퇴하면 곧 죽을 터이오. 반드시 힘을 모아 공격하시오.”
眾皆應曰:
「願死戰!」
사람들 모두 응답하였다.
“죽을 각오로 싸우겠습니다!”
於是鄧艾步行,引二千餘人,星夜倍道來搶江油城。
등애가 걸어가며 2천여 인을 이끌고, 밤중에 倍道하여 江油城을 치러 갔다.
卻說
江油城守將馬邈;
한편,
강유성을 지키는 장수는 馬邈이었다.
聞東川已失,雖為準備,只是隄防大路;
동천을 잃었음을 듣고 비록 준비하지만, 단지 큰길을 막을 뿐이다.
又仗著姜維全師,守住劍閣關,遂將軍情不以為重。
또 마막은 강유의 全軍이 검각관을 지킴에 의지하여, 軍情을 중시하지 않았다.
當日操練人馬回家,與妻李氏擁爐飲酒。
그날 操練人馬하고 回家하여 아내 이씨와 더불어 화롯가에서 술을 마셨다.
其妻問曰:
「屢聞邊情甚急,將軍全無憂色,何也?」
그 아내가 물었다.
“누차 듣기를 邊情甚急인데, 장군는 全無憂色이니 무슨 까닭이시오?”
邈曰:
「大事自有姜伯約掌握,干我甚事?」
마막이 말하였다.
“대사를 강백약이 장악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나와 관계있겠소?”
其妻曰:
「雖然如此,將軍所守城池,不為不重.」
그의 처가 말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군께서 지키는 城池이니 경시하지 마시오.”
邈曰:
「天子聽信黃皓,溺於酒色,吾料禍不遠矣。
魏兵一到,降之為上,何必慮哉?」
마막이 말하였다.
“천자께서 황호의 말만 믿고 주색에 빠졌으니 내 생각에 재앙이 멀지 않았소.
魏兵이 한 번 도착하면 항복함이 상책인데, 걱정할 필요가 있겠소?”
其妻大怒,唾邈面曰:
「汝為男子,先懷不忠不義之心,枉受國家爵祿,吾有何面目與汝相見!」
그 아내가 크게 노하여 마막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였다.
“당신이 남자로서 먼저 不忠不義之心을 품고 國家爵祿을 헛되이 받으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을 보겠소!”
馬邈羞慚無語。
마막이 부끄러워 말이 없었다.
忽家人慌入報曰:
「魏將鄧艾不知從何而來,引二千餘人,一擁而入城矣.」
그런데 家人이 황급히 들어와 보고하였다.
“위장 등애가 어디로 왔는지 모르겠지만 군사 2천을 이끌고, 한꺼번에 둘러싸고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邈大驚,慌出納降,拜伏於公堂之下,泣告曰:
「某有心歸降久矣。
今願招城中居民,及本部人馬,盡降將軍.」
마막이 깜짝 놀라 황급히 나가서 納降하며, 公堂之下에 拜伏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하였다.
“제가 歸降할 마음을 품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바라건대 성의 백성과 本部人馬를 불러서 모두 장군께 항복하겠습니다.”
艾准其降。
등애가 그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遂收江油軍馬於部下調遣,即用馬邈為鄉導官。
강유성의 군마를 거두어 部下調遣하고 마막을 鄉導官으로 삼았다.
忽報馬邈夫人自縊身死。
보고하기를, 마막의 부인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하였다.
艾問其故,邈以實告。
등애가 그 까닭을 물으니 마막이 實告하였다.
艾感其賢,令厚禮葬之,親往致祭。
등애가 그 현명함에 감동하여 두터운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라 명하고, 친히 가서 致祭하였다.
魏人聞者,無不嗟歎。
魏人이 듣고 嗟歎하지 않는 이가 없다.
後人有詩贊曰:
후인이 시를 짓는다.
<後主昏迷漢祚顛,天差鄧艾取西川。
可憐巴蜀多名將,不及江油李氏賢。>
<후주가 혼미해 한나라가 쓰러지고, 하늘이 등애를 보내 서천을 빼앗네.
가련타! 巴蜀에 名將이 많지만, 강유성의 이씨에 못 미치네!>
鄧艾取了江油,遂接陰平小路諸軍,皆到江油取齊,徑來攻涪城。
등애가 강유성을 취한 뒤, 곧 음평의 지름길의 모든 군사를 받아들이니, 모두 강유성으로 와서 합류하고, 곧바로 부성을 공략하러 갔다.
部將田續曰:
「我軍涉險而來,甚是勞頓,且當休養數日,然後進兵.」
부장 전속이 말하였다.
“우리 군사가 涉險而來이니 몹시 피로합니다. 우선 며칠 休養하고 진병하십시오.”
艾大怒曰:
「兵貴神速,汝敢亂我軍心耶!」
등애가 크게 노하였다.
“兵貴神速이거늘 네가 감히 우리의 軍心을 어지럽히느냐!”
喝令左右推出斬之。
좌우에게 호통쳐서 그를 끌어내 처형하게 하였다.
眾將苦告方免。
장수들이 간곡히 말리자 비로소 면죄하였다.
艾自驅兵至涪城。
등애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부성에 이르렀다.
城內官吏軍民疑從天降,盡皆出降。
성안의 官吏와 軍民이 하늘에서 내려온 줄 여기고 모두 나와서 항복하였다.
蜀人飛報入成都。後主聞知,慌召黃皓問之。
蜀人이 성도에 급보하니 후주가 듣고 황망히 황호를 불러 물었다.
皓奏曰:
「此詐傳耳。
神人必不肯誤陛下也.」
황호가 아뢰었다
“이것은 거짓으로 전했을 뿐입니다.
神人이 결코 폐하를 그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後主又宣師婆問時,卻不知何處去了。
후주가 師婆를 불러 물으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此時遠近告急表文,一似雪片,往來使者,聯絡不絕。
이때 遠近의 告急表文이 마치 눈발같이 날아들고, 왕래하는 사자가 연이어 끊어지지 않았다.
後主設朝計議,多官面面相覷,並無一言。
후주가 設朝하여 협의하자, 많은 관료가 서로 눈치만 살피며, 한마디도 없었다.
郤正出班奏曰:
「事已急矣,陛下可宣商議.」
郤正이 出班하여 아뢰었다.
“사세가 이미 급박하오니 폐하께서 武侯之子에게 명령하시어 退兵之策을 상의하소서.”
原來武侯之子諸葛瞻,字思遠。
원래 무후의 아들 諸葛瞻은 자가 思遠이다.
其母黃氏,即黃承彥之女也。
그의 모친 황씨는 黃承彥之女이다.
母貌甚陋,而有奇才:
上通天文,下察地理;
凡韜略遁甲諸書,無所不曉。
모친은 용모가 몹시 추하였지만 비범한 재주를 지녔다.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필 수 있었다.
무릇 韜略과 遁甲 등 여러 서적을 깨우치지 않음이 없었다.
武侯在南陽時,聞其賢,求以為室。
무후가 남양에 있을 때 그의 현명함을 듣고 아내로 맞아들였다.
武侯之學,夫人多所贊助焉。
武侯之學도 부인에게 贊助입은 바가 많았다.
及武侯死後,夫人尋逝,臨終遺教,惟以忠孝勉其子瞻。
무후의 사후에 부인이 곧따라 죽었는데, 임종에 가르침을 남겨 아들 제갈첨에게 오로지 충효를 힘쓰게 하였다.
瞻自幼聰明,尚後主女,為駙馬都尉。
제갈첨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는데 후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駙馬都尉가 됐다.
後襲父武鄉侯之爵。
뒤에 부친의 武鄉侯之爵을 이어받았다.
景耀四年,遷行軍護衛將軍。
景耀 4년에 行軍護衛將軍으로 옮겼다.
時為黃皓用事,故託病不出。
이때 황호가 권력을 잡자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當下後主從郤正之言,即時連發三詔,召瞻至殿下。
즉각 후주가 각정의 말을 따라 잇달아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 제갈첨을 대전으로 불렀다.
後主泣訴曰:
「鄧艾兵已屯涪城,成都危矣。
卿看先君之面,救朕之命!」
후주가 눈물 흘리며 호소하였다.
“鄧艾兵이 이미 부성에 주둔했으니 성도가 위태롭소.
경이 先君之面을 봐서 짐의 목숨을 구원해주오!”
瞻亦泣奏曰:
「臣父子蒙先帝厚恩,陛下殊遇,雖肝腦塗地,不能補報。
願陛下盡發成都之兵,與臣領去決一死戰.」
제갈첨도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신의 父子가 先帝厚恩과 陛下殊遇를 입었으니, 비록 肝腦塗地하여도 은혜를 갚지 못합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成都之兵을 모두 뽑아 신에게 주시면, 거느리고 가서 死戰을 한번 결하겠습니다.”
後主即撥成都兵將七萬與瞻。
후주가 즉시 成都兵將 7만을 뽑아 제갈첨에게 주었다.
瞻辭了後主,整頓軍馬,聚集諸將問曰:
「誰敢為先鋒?」
제갈첨이 후주를 작별하고 군마를 정돈하며 장수들을 모아서 물었다.
“누가 선봉에 서겠소?”
言未訖,一少年將出曰:
「父親既掌大權,兒願為先鋒.」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느 소년 장수가 나서며 말하였다.
“부친께서 대권을 잡으셨으니 소자가 선봉을 맡고 싶습니다.”
眾視之,乃瞻長子諸葛尚也。
사람들이 보니 바로 제갈첨의 장자 제갈상이었다.
尚時年一十九歲,博覽兵書,多習武藝。
제갈상은 이때 나이 열아홉 살인데 博覽兵書하고 多習武藝하였다.
瞻大喜,遂命尚為先鋒。
제갈첨이 크게 기뻐하며 제갈상을 선봉으로 삼았다.
是日大軍離了成都,來迎魏兵。
이날 대군이 성도를 떠나 魏兵을 맞이하러 갔다.
卻說
鄧艾得馬邈獻地理圖一本,備寫涪城至成都一百六十里,山川道路,關隘險峻,一一分明。
한편,
등애는 마막이 바친 地理圖 一本을 얻었는데, 부성에서 성도까지 160리를 자세히 그렸고, 山川道路, 關隘險峻이 하나하나 분명하였다.
艾看畢,大驚曰:
「吾只守涪城,倘被蜀人據住前山,何能成功耶?
如遷延日久,姜維兵到,我軍危矣.」
등애가 보고 나서 깜짝 놀라 말하였다.
“내가 부성을 지키고만 있는데, 혹시 蜀兵이 앞산에 진을 치고 막는다면 어찌 성공하겠는가? 시간을 끌다가 오래되어 강유의 군사가 온다면, 아군이 위태롭겠다.”
速喚師纂並子鄧忠,分付曰:
「汝等可引一軍,星夜徑去綿竹,以拒蜀兵。
吾隨後便至。切不可怠緩。
若縱他先據了險要,決斬汝首!」
서둘러 사찬과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하였다.
“너희가 1군을 이끌고 밤중에 면죽으로 달려가서 蜀兵을 막아라.
내가 뒤이어 도착할 테니, 절대 怠緩해서는 안 된다.
만일 남이 먼저 험요를 점거하게 하면, 결단코 너희 머리를 벨 터이다!”
師、鄧二人,引兵將至綿竹,早遇蜀兵。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군을 이끌고 면죽에 곧 닿을 즈음에 蜀兵과 마주쳤다.
兩軍各布成陣。
양군이 각각 포진하였다.
師、鄧二人,勒馬於門旗下,只見蜀兵列成八陣。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門旗 아래에 말을 멈추고 보니, 蜀兵이 八陣을 펼쳐있었다.
三鼕鼓罷,門旗兩分,數十員將簇擁一輛四輪車,車上端坐一人,綸巾羽扇,鶴氅方裾,車傍展開一面黃旗,上書:
「漢丞相諸葛武侯」。
세 차례 북소리가 울리며 문기가 양옆으로 열리더니, 수십 명의 장수가 四輪車 1량을 빽빽히 에워쌌는데 수레에 단정히 한 사람이 앉아 있다. 綸巾羽扇에 鶴氅方裾요, 수레 옆에는 누런 깃발을 1폭 펴 놓았는데 그 위에 “漢丞相諸葛武侯”라고 적혀있었다.
嚇得師、鄧二人汗流遍身,回顧軍士曰:
「原來孔明尚在,我等休矣!」
놀란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땀을 온몸에 흘리며 고개 돌려 군사들에게 말하였다.
“알고 보니 제갈량이 아직도 살아 있구나! 우리는 끝장이구나!”
急勒兵回時,蜀兵掩殺將來,魏兵大敗而走。
급히 군대를 되돌리려는데 蜀兵이 덮치니 魏兵이 大敗하여 달아났다.
蜀兵掩殺二十餘里,遇見鄧艾援兵接應。
蜀兵이 20십 리 남짓 추격하다가 등애의 구원병이 접응함과 마주쳤다.
兩家各自收兵。
양쪽이 각각 병력을 거두었다.
艾升帳而坐,喚師纂、鄧忠責之曰:
「汝二人不戰而退,何也?」
등애가 升帳하여 사찬과 등충을 부르고 책망하였다.
“너희 두 사람이 싸우지 않고 퇴각하니 무슨 까닭이냐?”
忠曰:
「但見蜀陣中諸葛孔明領兵,因此奔還.」
등충이 말하였다.
“蜀陣中에 제갈공명이 군대를 지휘함이 보고, 황급히 돌아왔습니다.”
艾怒曰:
「縱使孔明更生,我何懼哉!
汝等輕退,以致於敗,宜速斬以正軍法!」
등애가 노하여 말하였다.
“설사 공명이 다시 살아난들, 내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너희가 함부로 물러나서 패전에 이르렀으니 속히 목을 베어 군법을 바로 세우겠다!”
眾皆苦勸,艾方息怒。
사람들이 모두 간곡히 권하니 등애가 그제야 노여움을 삭혔다.
令人哨探,回說孔明之子諸葛瞻為大將,瞻之子諸葛尚為先鋒,車上坐者乃木刻孔明遺像也。
사람을 시켜 정탐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공명의 아들 제갈첨이 대장이고, 제갈첨의 아들 제갈상이 선봉이며, 수레 위에 앉았던 이는 木刻孔明遺像이라고 하였다.
艾聞之,謂師纂、鄧忠曰:
「成敗之機,在此一舉。
汝二人再不取勝,必當斬首!」
등애가 이 말을 듣고, 사찬과 등충에게 말하였다.
“승패의 기회는 이번 거사에 달렸다.
너희 두 사람이 또다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반드시 목을 베겠다!”
師、鄧二人,又引一萬兵來戰。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다시 군사 1만을 이끌고 싸우러 갔다.
諸葛尚匹馬單鎗,抖擻精神,戰退二人。
제갈상이 匹馬單鎗으로 抖擻精神하여 두 사람을 격퇴하였다.
諸葛瞻指揮兩掖兵衝出,直撞入魏陣中,左衝右突,往來殺有數十番,魏兵大敗,死者不計其數。
제갈첨이 兩掖兵을 지휘하고 위나라 진중으로 짓쳐 들어가서 좌충우돌하며 수십 차례 왕래하며 죽이니, 죽은 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師纂、鄧忠負傷而逃。
사찬과 등충이 부상을 입고 달아났다.
瞻驅軍馬隨後掩殺二十餘里,紮營相拒。
제갈첨이 군대를 몰아 20여 리를 습격하고 영채를 세워 대치하였다.
師纂、鄧忠,回見鄧艾。
사찬과 등충이 등애를 만나러 돌아갔다.
艾見二人俱傷,未便加責,乃與眾將商議曰:
「蜀有諸葛瞻善繼父志,兩番殺吾萬餘人馬,今若不速破,後必為禍.」
등애는 두 사람 다 부상을 입었음을 보자 선뜻 책망하지 못하고, 장수들과 상의하며 말하였다.
“촉나라에서 제갈첨이 부친의 뜻을 잘 계승하여, 두 번에 걸쳐 우리 1만여 인마를 죽였으니, 지금 속히 격파하지 않으면, 뒷날 틀림없이 화근이 되겠소!”
監軍丘本曰:
「何不作一書以誘之?」
監軍丘本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서신을 하나 써서 그를 유인하지 않습니까?”
艾從其言,遂作書一封,遣使送入蜀寨。
등애가 그 말을 따라 서신을 1봉 작성하고, 사자를 蜀寨로 보냈다.
守門將引至帳下,呈上其書。瞻拆封視之。
수문장이 군막으로 이끌고 가서 서신을 바치니 제갈첨이 뜯어서 읽었다.
書曰:
서신에 일렀다.
<征西將軍鄧艾,致書於行軍護衛將軍諸葛思遠麾下:
切觀近代賢才,未有如公之尊父也:
昔自出茅廬,一言已分三國,掃平荊益,遂成霸業,古今鮮有及者;
後六出祁山,非其智力不足,乃天數耳。
今後主昏弱,王氣已終,艾奉天子之命,以重兵伐蜀,已皆得其地矣。
成都危在旦夕,公何不應天順人,仗義來歸?
艾當表公為瑯琊王,以光耀祖宗,決不虛言。
幸存照鑒!>
<정서장군 등애가 행군호위장군 諸葛思遠 휘하께 글을 보내오.
근대의 뛰어난 인재를 절실히 살펴보건대 공의 존부 만한 분이 아직 없소.
지난날 茅廬에서 나온 이래, 한 마디로 分三國을 말하였고, 형주와 익주를 소탕하시어 마침내 패업을 이루었으니 古今에 미칠 자가 드무오.
뒤에 여섯 번 기산으로 나갔으나 그 지혜와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천수이었을 뿐이오.
이제 후주가 昏弱한 데다, 王氣가 이미 끝난지라, 내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重兵으로 伐蜀함에, 이미 그 땅을 모두 점령하였소.
성도의 위급함이 旦夕에 달렸거늘, 공께서 어찌 應天順人하고 정의를 받들어 귀순하지 않으시오?
내 마땅히 표를 올려 공을 낭야왕으로 세워서 祖宗을 빛낼 것이니 이는 결코 虛言이 아니오.
부디 照鑒하시기 바라오!>
瞻看畢,勃然大怒,扯碎其書,叱武士立斬來使,令從者持首級回魏營見鄧艾。
제갈첨이 읽고 나서 勃然大怒하여, 서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무사에게 호통쳐서 온 사자를 당장 처형하게 하였다. (사자의) 從者에게 首級을 가지고 魏營으로 돌아가서 등애에게 보이라 하였다.
艾大怒,即欲出戰。丘本諫曰:
「將軍不可輕出,當用奇兵勝之.」
등애가 크게 노해 즉시 출전하려는데 丘本이 간하였다.
“장군께서 가벼이 나가서는 안 되니, 마땅히 奇兵을 써서 이겨야 합니다.”
艾從其言,遂令天水太守王頎,隴西太守牽弘,伏兩軍於後。
등애가 그 말을 따라 천수태수 왕기와 농서태수 견홍에게 군을 이끌고 후방에 매복하라 명하였다.
艾自引兵而來。
등애가 직접 군을 이끌고 갔다.
此時諸葛瞻正欲搦戰,忽報鄧艾自引兵到。
이때 마침 제갈첨도 싸움을 걸려던 참인데, 등애가 직접 군을 이끌고 왔다고 보고하였다.
瞻大怒,即引兵出,逕殺入魏陣中。
제갈참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위나라 진중으로 쳐들어갔다.
鄧艾敗走。
등애가 패주하였다.
瞻隨後掩殺將來。
제갈첨이 뒤따르며 습격하였다.
忽然兩下伏兵殺出,蜀兵大敗,退入綿竹。
갑자기 양쪽에서 복병이 튀어나와 촉병이 크게 패해 면죽으로 퇴각해 들어갔다.
艾令圍之。於是魏兵一齊吶喊,將綿竹圍的鐵桶相似。
등애가 포위를 명령하자 위병이 一齊吶喊하며 면죽성을 철통처럼 포위하였다.
諸葛瞻在城中,見敵勢已迫,乃令彭和齎書殺出,往東吳求救。
제갈첨이 성에서 적세가 이미 급박함을 보고, 彭和에게 서신을 주고 달려나가 동오로 가서 구원을 청하게 하였다.
和至東吳,見了吳主孫休,呈上告急之書。
팽화가 동오에 이르러 오주 손휴를 만나서 告急之書를 바쳤다.
吳主看罷,與群臣計議曰:
「既蜀中危急,孤豈可坐視不救?」
오주가 보고 나서 신하들과 더불어 의논하였다.
“촉나라가 위급한데 孤가 어찌 좌시하며 구원하지 않겠소?”
即令老將丁奉為主帥,丁封、孫異為副將,率兵五萬,前往救蜀。
즉시 老將 丁奉을 主帥로, 丁封과 孫異를 부장으로 삼아 군사 5만을 이끌고 촉나라를 구원하러 가게 하였다.
丁奉領旨出師,分撥丁封、孫異引兵二萬向沔中而進,自率兵三萬向壽春而進,分兵三路來援。
정봉이 교지를 받들어 출전하며 丁封과 孫異에게 군사 2만을 나눠 주어 沔中으로 가라 하고, 자신은 군사 3만을 이끌고 수춘으로 진군하며, 3로로 병력을 나눠 구원하러 갔다.
卻說
諸葛瞻見救兵不至,謂眾將曰:
「久守非良圖.」
한편,
제갈첨은 구원병이 오지 않자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오래 지킴은 良圖가 아니오.”
遂留子尚與尚書張遵守城,瞻自披挂上馬,引三軍大開三門殺出。
이에 아들 제갈상과 尚書 張遵을 남겨 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 3군을 이끌고 3개 성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갔다.
鄧艾見兵出,便徹兵退。
등애는 蜀兵이 나움을 보고 군을 거둬 퇴각하였다.
瞻奮力追殺,忽然一聲炮響,四面兵合,把瞻困在垓心。
제갈첨이 힘을 내어 추격하는데 갑자기 한 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사방의 군사가 합쳐서 제갈첨을 가운데 두고 포위하였다.
瞻引兵左衝右突,殺死數百人。
제갈첨이 군을 이끌고 좌충우돌하며 수백 명을 죽였다.
艾令眾軍放箭射之,蜀兵四散。
등애가 군사들에게 지시하여 화살을 쏘게 하니 촉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瞻中箭落馬,乃大呼曰:
「吾力竭矣!
當以一死報國!」
제갈첨이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며 크게 소리쳤다.
“나의 힘이 다했구나!
마땅히 한번 죽음으로써 報國하겠다!”
遂拔劍自刎而死。
이에 검을 뽑아 自刎하여 죽었다.
其子諸葛尚在城上,見父死於軍中,勃然大怒,遂披挂上馬。
그 아들 제갈상이 성 위에서 아버지가 군중에서 전사함을 보고, 勃然大怒하여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랐다.
張遵諫曰:
「小將軍勿得輕出.」
장준이 간하였다.
“소장군은 함부로 나가지 마시오.”
尚歎曰:
「吾父子祖孫,荷國厚恩,今父既死於敵,我何用生為!」
제갈상이 탄식하였다.
“우리 부자와 祖孫은 荷國厚恩이오. 이제 부친께서 적에게 살해되셨는데 내가 살아 무엇하겠소!”
遂策馬殺出,死於陣中。
이에 말을 채찍질하여 돌격해 진중에서 죽었다.
後人有詩贊瞻、尚父子曰:
후인이 시를 지어 제갈첨과 제갈상 부자를 기렸다.
<不是忠臣獨少謀,蒼天有意絕炎劉。
當年諸葛留嘉胤,節義真堪繼武侯。>
<충신에게 지모가 모자람 만이 아니라, 蒼天이 炎劉를 멸망시킬 뜻을 가졌음이네.
그해 제갈이 훌륭한 후손을 남기니, 절의가 진실로 무후를 계승했구나.>
鄧艾憐其忠,將父子合葬,乘虛攻打綿竹。
등애가 그들의 충의를 가련하게 여겨 부자를 합장하고, 빈틈을 타서 면죽을 공격하였다.
張遵、黃崇、李球三人,各引一軍殺出。
張遵、黃崇、李球 세 사람이 각각 1군을 이끌고 달려 나왔다.
蜀兵寡,魏兵眾,三人亦皆戰死。
蜀兵은 적고 魏兵은 많아 세 사람 모두 전사하였다.
艾因此得了綿竹。
등애가 이리하여 면죽을 빼앗았다.
勞軍已畢,遂來取成都。
군사들을 호궤한 뒤 성도를 치러 갔다.
正是:
試觀後主臨危日,無異劉璋受逼時。
정히 이런 상황이다.
후주가 위기에 처한 날을 시험 삼아 보면, 劉璋이 핍박받던 때와 다르지 않네.
未知成都如何守禦,且看下文分解。
성도를 어떻게 지킬까? 다음 회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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