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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118회-死孝와 爭功 본문

漢詩와 漢文/삼국연의

삼국연의118회-死孝와 爭功

耽古樓主 2023. 1. 31. 04:20

第一百一十八回
哭祖廟一王死孝 入西川二士爭功.
118
一王이 묘당에서 통곡하며 순국하고, 二士가 서천에 들어가서 공을 다투다.


卻說
後主在成都聞鄧艾取了綿竹諸葛瞻父子已亡大驚急召文武商議
한편,
후주는 성도에서 등애가 면죽을 빼앗고 제갈첨 부자가 죽었음을 듣고 깜짝 놀라서 급히 문무 관료를 불러 상의하였다.

近臣奏曰:
城外百姓扶老攜幼哭聲大震各逃生命.
근신이 아뢰었다.
성 밖에서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곡성을 크게 울리며 각자 목숨을 구해 도망합니다.”

後主驚惶無措
후주가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몰랐다.

忽哨馬報到說魏兵將近城下
홀연히 哨馬가 보고하기를, 위병이 곧 성 아래에 근접하겠다고 알렸다.

多官議曰:
兵微將寡難以迎敵不如早棄成都奔南中七郡:
其地險峻可以自守就借蠻兵再來克復未遲.
많은 관료가 의논하였다.
兵微將寡이니 맞서 싸우기 어렵습니다.
일찌감치 성도를 포기하고 南中七郡으로 달아남이 낫겠습니다.
그곳의 지세가 험준하니 자신을 지킬 수 있고, 蠻兵을 빌려서 다시 와서 克復해도 늦지 않을 터입니다.”

光祿大夫譙周曰:
不可
南蠻久反之人平昔無惠
今若投之必遭大禍.
光祿大夫 譙周가 말하였다.
불가하옵니다.
南蠻은 오랫동안 반란을 일으킨 이들이고, 평소에 아무 은혜도 베푼 적이 없습니다.
이제 그곳으로 가면 틀림없이 큰 화를 만날 터입니다. ”

多官又奏曰:
蜀吳既同盟今事急矣可以投之.
많은 관료가 또 아뢰었다.
촉과 오가 동맹을 맺었고 이제 사세가 위급하니, 오나라로 감이 옳습니다.”

周又諫曰:
自古以來無寄他國為天子者
臣料魏能吞吳吳不能吞魏
若稱臣於吳是一辱也
若吳被魏所吞陛下再稱臣於魏是兩番之辱矣
不如不投吳而降魏
魏必裂土以封陛下則上能自守宗廟下可以保安黎民
願陛下思之.
초주가 다시 간하였다.
예로부터 타국에 몸을 맡기고 천자 노릇을 한 자는 없습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위는 오를 병탄할 수 있으나 오는 위를 병탄할 수 없습니다.
오나라에 稱臣하면 일대 치욕입니다.
오가 위에 병탄되면 폐하는 다시 위에 稱臣해야 하니 이것은 두 번의 치욕입니다.
차라리 오로 가지 마시고 위에 투항함만 못합니다.
위는 틀림없이 땅을 쪼개주며 폐하를 봉할 터이니, 위로는 능히 종묘를 지킬 수 있고, 아래로는 黎民保安할 수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살펴주소서.”

後主未決退入宮中
후주가 결정하지 못하고 궁중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次日眾議紛然譙周見事急復上疏諍之
다음날, 眾議가 분분한데, 초주가 사세의 위급함을 보고 다시 上疏하여 간쟁하였다.

後主從譙周之言正欲出降
후주가 초주의 말을 따라 나가서 투항하려 하였다.

忽屏風後轉出一人厲聲而罵周曰:
偷生腐儒豈可妄議社稷大事
自古安有降天子哉!
갑자기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돌아 나오며 성난 목소리로 초주를 꾸짖었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는 썩은 유생이 어찌 망령되이 사직의 대사를 논하느냐!
예로부터 어느 천자가 투항한 적이 있더냐!”

後主視之乃第五子北地王劉諶也
후주가 쳐다보니 바로 다섯째 아들 北地王 劉諶이었다.

後主生七子:
長子劉璿次子劉瑤三子劉悰四子劉瓚五子即北地王劉諶六子劉恂七子劉璩
후주는 일곱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 劉璿, 차자 劉瑤, 3劉琮, 4劉瓚, 5자 북지왕 劉諶, 6劉恂, 7劉璩이었다.

七子中惟諶自幼聰明英敏過人餘皆懦善
일곱 아들 가운데 오직 유심만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민함이 남달랐고, 나머지 모두는 나약하고 착하기만 하였다.

後主謂諶曰:
今大臣皆議當降汝獨仗血氣之勇欲令滿城流血耶?
후주가 유심에게 일렀다.
이제 대신들 모두가 항복이 마땅하다고 하거늘, 너 홀로 血氣之勇을 믿고 성안 가득히 피를 흘리게 할 터이냐?”

諶曰:
昔先帝在日譙周未嘗干預國政
今妄議大事輒起亂言甚非理也
臣竊料成都之兵尚有數萬姜維全師皆在劍閣若知魏兵犯闕必來救應內外攻擊可獲全功
豈可聽腐儒之言輕廢先帝之基業乎?
유심이 말하였다.
지난날 선제께서 살아 계실 적에는 초주는 일찍이 국정에 간여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망녕되게 대사를 의논하며 함부로 亂言을 지껄이니 이치에 어긋남이 몹시 심합니다.
신이 삼가 헤아려보니 성도의 군사가 아직 수만이 있습니다.
또한 강유의 온전한 군대가 모두 검각에 있습니다.
위병이 궁궐을 침범함을 알면, 틀림없이 구원하러 올 터입니다.
안팎으로 공격하면 온전한 을 거둘 수 있사옵니다.
어찌 썩은 유생의 말을 들으시고 함부로 선제의 基業을 폐하십니까?”

後主叱之曰:
汝小兒豈識天時!
후주가 그를 꾸짖었다.
네까짓 어린아이가 어찌 天時를 알겠느냐!”

諶叩頭哭曰:
若勢窮力極禍敗將及便當父子君臣背城一戰同死社稷以見先帝可也
奈何降乎!
유심이 머리를 바닥에 찧고 곡하며 말하였다.
세력이 궁하고 힘이 다하여 禍敗(재앙과 실패)가 곧 닥치더라도, 父子君臣이 성을 등지고 한번 싸워서 사직을 위하여 함께 죽어야 선제를 뵐 수 있사옵니다.
어찌 항복하십니까!”

後主不聽
후주가 듣지 않았다.

諶放聲大哭曰:
先帝非容易創立基業
今一旦棄之吾寧死不辱!
유심이 목을 놓아 크게 곡하며 말하였다.
선제께서 쉽게 基業을 창립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루 아침에 그것을 포기하시니, 저는 죽을지언정 치욕을 보지 않겠습니다.”

後主令近臣推出宮門遂令譙周作降書.
후주가 近臣에게 명령하여 궁문 밖으로 끌어내고, 초주에게 降書를 쓰게 하였다.

遣私署侍中張紹駙馬都尉鄧良同譙周齎玉璽來雒城請降
私署侍中 張紹駙馬都尉 鄧良을 초주와 함께 옥쇄를 가지고 雒城으로 가서 請降하게 하였다.

時鄧艾每日令數百鐵騎來成都哨探
이때 등애는 매일 鐵騎 수백을 성도로 보내 哨探하게 하였다.

當日見立了降旗艾大喜
그날 降旗를 세웠음을 알고 등애가 크게 기뻐하였다.

不一時張紹等至艾令人迎入
얼마 되지 않아서 장소 등이 이르니 등애가 맞아들이게 하였다.

三人拜伏於階下呈上降款玉璽
세 사람이 섬돌 아래에서 절한 뒤 降款과 옥쇄를 바쳤다.

艾拆降書視之大喜受下玉璽重待張紹譙周鄧良等
등애가 항서를 뜯어서 보고 크게 기뻐하며 옥쇄를 받아들이고, 장소, 초주, 등량을 후대하였다.

艾作回書付三人齎回成都以安人心
등애가 회신을 써서 세 사람에게 주고 성도로 돌려보냄으로써 인심이 안정되게 하였다.

三人拜辭鄧艾徑還成都入見後主呈上回書細言鄧艾相待之善
세 사람이 등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곧바로 성도로 돌아와서, 후주를 만나 회신을 바치며, 등애가 잘 대우해주었음을 자세히 말하였다.

後主拆封視之大喜即遣太僕蔣顯齎敕令姜維早降
후주가 봉투를 뜯어서 읽더니 크게 기뻐하며, 즉시 太僕 蔣顯에게 敕書를 주어 보내서, 강유에게 조속히 항복하게 명령하였다.

遣尚書郎李虎送文簿與艾
또한 尚書郎 李虎를 보내 文簿를 등애에게 주었다.

共戶二十八萬男女九十四萬帶甲將士十萬二千官吏四萬倉糧四十餘萬金銀三千斤錦綺絲絹各二十萬疋
호구가 28, 남녀 94, 帶甲將士102, 관리가 4, 창고의 식량이 40만 남짓, 금은이 3천 근, 錦綺絲絹이 각각 2십만 필이었다.

餘物在庫不及具數
창고에 있는 다른 물품들은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擇十二月初一日君臣出降
12월 초하루를 골라 君臣이 항복하러 나가기로 하였다.

北地王劉諶聞知怒氣沖天乃帶劍入宮
북지왕 유심이 듣고 怒氣沖天하여 칼을 차고 궁궐로 들어갔다.

其妻崔夫人問曰:
大王今日顏色異常何也?
그 아내 최부인이 물었다.
대왕의 오늘 안색이 평소와 다른데, 무엇 때문입니까?”

諶曰:
魏兵將近父皇已納降款明日君臣出降社稷從此殄滅
吾欲先死以見先帝於地下不屈膝於他人也!
유심이 말하였다.
위병이 곧 가까워지자 父皇께서 降款을 바쳤고, 明日 君臣이 항복하러 나가니 사직이 殄滅할 터이오.
내가 먼저 죽어 지하에서 선제를 뵐지언정, 타인에게 무릎 꿇지 않겠소!”

崔夫人曰:
賢哉賢哉
得其死矣
妾請先死王死未遲.
최부인이 말하였다.
현명하십니다! 현명하십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청컨대 소첩이 먼저 죽겠습니다. (그 후) 대왕께서 죽어도 늦지 않을 터입니다.”

諶曰:
汝何死耶?
유심이 말하였다.
당신이 왜 죽소?”

崔夫人曰:
王死父妾死夫其義同也
夫亡妻死何必問焉?
최 씨 부인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부친을 위해 죽고, 소첩은 지아비를 위해 죽으니 그 의로움은 같습니다.
남편이 죽어 아내가 죽는데, 그 까닭을 물어야 합니까?”

言訖觸柱而死
말을 마치더니 기둥을 떠받아 죽었다.

諶乃自殺其三子並割妻頭提至昭烈廟中伏地哭曰:
臣羞見基業棄於他人故先殺妻子以絕罣念後將一命報祖
祖如有靈知孫之心!
유심이 이에 아들 셋을 자신이 죽이고, 아울러 아내의 머리를 잘라 昭烈廟 안으로 가져가서, 땅에 엎드려 곡하며 말하였다.
신은 基業을 타인에게 넘겨줌을 보기가 부끄러워서, 먼저 처자를 죽여서 상념을 끊어버린 후 하나의 목숨을 바쳐 할아버지께 보답하겠습니다!
할아버지께 조상의 영혼이 있으시면 손자의 마음을 알아주소서!”

大哭一場眼中流血自刎而死
한바탕 크게 곡하고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自刎而死하였다.

蜀人聞知無不哀痛
촉인이 듣고 애통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後主聽知北地王自刎乃令人葬之
후주는 북지왕이 自刎함을 듣고 사람을 시켜 장사지냈다.

後人有詩贊曰:
후인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君臣甘屈膝一子獨悲傷
去矣西川事雄哉北地王
捐身酬烈祖搔首泣穹蒼
凜凜人如在誰云漢已亡>
<임금과 신하들이 달게 무릎을 꿇는데 아들 하나가 홀로 悲傷하구나.
서천도 이제 끝이 났지만, 훌륭하다 북지왕!
몸을 바쳐 烈祖의 은덕을 갚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늘을 우러러 눈물 흘리네
늠름한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는 듯한데, 누가 한나라가 망하였다고 말하느냐?>


次日魏兵大至
다음날 위병이 대거 이르렀다.

後主率太子諸王及群臣六十餘人面縛輿櫬出北門十里而降
후주가 태자와 모든 왕과 신하들 60여 명을 거느리고 面縛輿櫬하고, 북문 10리 밖에 나가서 항복하였다.

鄧艾扶起後主親解其縛焚其輿櫬並車入城
등애가 후주를 부축해 일으키고 친히 그 결박을 풀어주고, 輿櫬을 불태워버리고 함께 수레를 타고 入城하였다.

後人有詩歎曰:
후인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魏兵數萬入川來後主偷生失自裁
黃皓終存欺國意姜維空負濟時
全忠義士心何烈守節王孫志可哀
昭烈經營良不易一朝功業頓成灰>
<魏兵 수만이 서천을 침입하자, 후주가 구차히 살고자 자결할 때를 놓치네.
황호는 끝내 국가를 속일 뜻을 버리지 않고, 강유는 시대를 구원할 재주를 펼치지 못하네.
충성를 다한 의사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절개를 지킨 왕손의 뜻이 슬프네.
소열황제가 경영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거늘, 하루아침에 功業이 갑자기 잿더미가 되네.>


於是成都之人皆具香花迎接
이에 成都之人이 모두 향과 꽃을 갖추고 영접하였다.

艾拜後主為驃騎將軍其餘文武各隨高下拜官
등애가 후주를 驃騎將軍에 임명하고 기타 문무 관료도 지위 고하에 따라서 관직을 내렸다.

請後主還宮出榜安民交割倉庫
후주에게 궁궐로 돌아가게 청하고, 을 내걸어 백성을 안심시키며 창고를 引受하였다.

又令太常張峻益州別駕張紹招安各郡軍民
太常 張峻益州別駕 張紹에게 각 軍民招安하게 하였다.

又令人說姜維歸降
또 사람을 보내어 강유에게 투항하도록 설득하였다.

一面遣人赴洛陽報捷
한편으로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어 報捷하였다.

艾聞黃皓奸險欲斬之
등애는 황호가 간특하고 음험함을 듣고 처형하려 하였다.

皓用金寶賂其左右因此得免
황호가 金寶로 그 左右에게 賄賂하여 화를 면하였다.

自是漢亡
이리하여 한나라가 망하였다.

後人因漢之亡有追思武侯詩:
후인이 한나라가 망함으로 인하여 무후를 추념하여 시를 지었다.

<魚鳥猶疑畏簡書風雲長為護儲胥
徒令上將揮神筆終見降王走傳車
管樂有才真不忝關張無命欲何如
他年錦里經祠廟梁父吟成恨有餘>
<원숭이와 까마귀도 簡書를 두려워하고, 바람과 구름도 길이 궁전을 지키려 했네.
헛되이 상장군이 神筆을 휘두르지만, 마침내 항복한 임금이 수레를 끌고 가는구나.
관중과 악의의 재주에 못지않았으나, 관우와 장비가 제 명에 살지 못하니 어찌하랴!
이후에 금리 땅의 祠廟를 지날 때, 梁父吟은 한이 되고도 남았더라!>

且說
太僕蔣顯到劍閣入見姜維傳後主敕命言歸降之事
한편,
太僕 蔣顯이 검각에 이르러 강유를 만나고 後主敕命을 전하며, 歸降之事를 말하였다.

維大驚失語
강유가 너무나 놀라 할 말을 잃었다.

帳下眾將聽知一齊怨恨咬牙怒目鬚髮倒豎拔刀砍石大呼曰:
吾等死戰何故先降耶!
장하의 모든 장수가 이 말을 듣더니 일제히 원망하고 한탄하며 이를 갈고 눈을 부릅뜨고 수염과 모발이 치솟는다. 칼을 뽑아 돌을 치고 크게 외쳤다.
우리가 죽기로 싸우는데, 무슨 까닭으로 먼저 항복했는가!”

號哭之聲聞數十里
號哭之聲이 수십 리 밖까지 들렸다.

維見人心思漢乃以善言撫之曰:
眾將勿憂
吾有一計可復漢室.
강유가 사람들이 진심으로 한나라를 생각함을 보고, 좋은 말로써 慰撫하였다.
장수들은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漢室을 부흥할 수 있겠소.”

眾皆求問姜維與諸將附耳低言說了計策
장수들이 묻자, 강유가 모든 장수에게 附耳低言으로 계책을 설명하였다.

即於劍閣關遍豎降旗先令人報入鍾會寨中說姜維引張翼廖化董厥前來降
즉시 劍閣關遍豎降旗하고 먼저 사람을 종회의 영채로 보내어 보고하기를, 강유가 장익, 요화, 동궐을 이끌고 항복하러 오겠다고 하였다.

會大喜令人迎接維入帳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강유를 영접해 군막으로 들였다.

會曰:
伯約來何遲也?
종회가 말하였다.
백약은 왜 이렇게 늦게 왔소?”

維正色流涕曰:
國家全師在吾今日至此猶為速也.
강유가 정색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국가의 모든 군사가 제게 있으니, 오늘 여기에 옴도 오히려 빠른 것이오.”

會甚奇之下座相拜待為上賓
종회가 이를 심히 기특하게 여기고 자리에서 내려와 서로 절하고, 상빈으로 대접하였다.

維說會曰:
聞將軍自淮南以來算無遺策
司馬氏之盛皆將軍之力維故甘心俯首
如鄧士載當與決一死戰安肯降之乎?
강유가 종회에게 이야기하였다.
듣건대 장군께서 회남의 싸움 이래 계획을 세움에 아무 실책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마씨가 번성함도 모두 장군의 힘입니다.
제가 그러므로 달가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鄧士載였다면 마땅히 더불어 決一死戰하지, 어찌 그에게 항복하려 했겠습니까?”

會遂折箭為誓與維結為兄弟情愛甚密仍令照舊領兵
종회가 이에 화살을 꺾어 서약하고 강유와 의형제를 맺고 情愛가 몹시 친밀하여 예전대로 군을 거느리게 하였다.

維暗喜遂令蔣顯回成都去了
강유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장현을 성도로 돌아가게 하였다.


卻說
鄧艾封師纂為益州刺史牽弘王頎等各領州郡
한편,
등애가 師纂을 익주자사로 봉하고, 견홍과 왕기 등에게 각각 州郡을 다스리게 하였다.

又於綿竹築臺以彰戰功大會蜀中諸官飲宴
또 면죽에 를 쌓아 戰功을 드러내고, 촉의 여러 관리를 크게 모아 연회를 베풀었다.

艾酒至半酣乃指眾官曰:
汝等幸遇我故有今日耳
若遇他將必皆殄滅矣.
등애가 酒至半酣에 관리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대들이 다행히 나를 만나서 오늘이 있소.
다른 장수를 만났으면 틀림없이 모두 殄滅했을 터이오.”

多官起身拜謝
많은 관리가 일어나 拜謝하였다.

忽蔣顯至說姜維自降鍾鎮西了
문득 장현이 와서 말하기를, 강유가 스스로 鍾鎮西에게 투항하였다고 하였다.

艾因此痛恨鍾會
등애가 이 때문에 종회를 몹시 미워하게 되었다.

遂修書令人齎赴洛陽致晉公司馬昭
서신을 써서 사람을 시켜 낙양으로 가서 晉公 사마소에게 전하게 하였다.

昭得書視之
사마소가 글을 보았다.

書曰:
글은 이러하였다.

<臣艾竊謂兵有先聲而後實
今因平蜀之勢以乘吳此席捲之時也
然大舉之後將士疲勞不可便用
宜留隴右兵二萬蜀兵二萬煮鹽興冶並造舟船預備順流之計
然後發使告以利害吳可不征而定也
今宜厚待劉禪以致孫休
若便送禪來京吳人必疑則於向化之心不勸
且權留之於蜀須來年冬月抵京
今即可封禪為扶風王錫以貲財供其左右爵其子為公卿以顯歸命之寵
則吳人畏威懷望風而從矣>
<신 등애가 삼가 생각하건대, 용병에는 먼저 명성으로 적군의 사기를 꺾은 뒤, 실력으로 제압하였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平蜀之勢로써 오나라를 친다면, 이것이야말로 席捲之時입니다.
그러나 크게 擧兵한 뒤라서 將士疲勞하여 곧바로 쓸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농우의 병력 2, 촉의 병력 2만을 남겨, 소금을 생산하고 대장간을 일으키고 아울러 舟船을 건조해서, 順流之計를 예비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관리를 보내어 이해득실로써 고하면 오나라는 정벌하지 않아도 평정되겠습니다.
지금 마땅히 유선을 후대함은 손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유선을 서울로 압송하면 吳人이 틀림없이 두려워하게 되므로, 向化之心을 권할 수 없습니다.
우선 일시적으로 촉에 머물게 하고, 내년 冬月에 서울로 보내야 합니다.
지금 즉시 유선을 扶風王으로 책봉하고 재물을 하사하고 左右를 공급하고 그 아들들에게 공경의 작위를 주어서, 歸命之寵을 드러내십시오.
그리하면 吳人畏威懷德하여, 마치 나무나 풀이 바람에 쓰러지듯이 복종할 터입니다.>

司馬昭覽畢深疑鄧艾有自專之心乃先發手書與衛瓘隨後降封艾詔曰:
사마소가 읽고 나서 등애가 自專之心을 가졌다고 깊이 의심하고, 먼저 手書를 써서 위관에게 주어 보내고, 뒤따라 등애를 책봉하는 조서를 내리는데, 내용이 이러하였다.

<征西將軍鄧艾耀威奮武深入敵境使僭號之主繫頸歸降
兵不踰時戰不終日雲徹席捲蕩定巴蜀
雖白起破強楚韓信克勁趙不足比勳也
其以艾為太尉增邑二萬戶封二子為亭侯各食邑千戶>
<征西將軍 등애는 耀威奮武하며 深入敵境하여, 僭號之主가 목줄을 매고 투항하게 하였다.
용병함에 시기를 놓치지 않아, 싸움이 하루를 넘기지 않았고, 구름 속을 헤치고 휩쓸어, 파촉을 평정하였다.
비록 白起가 강대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韓信이 굳센 조나라를 이겼다고 하나, (등애의) 공훈에 비하기에 부족하다.
등애를 태위로 삼고 식읍을 2를 더하고 두 아들을 亭侯에 봉하고, 각각 식읍 1천 호로 하노라.>

鄧艾受詔畢監軍衛瓘取出司馬昭手書與艾
등애가 조서를 받자 감군 위관이 사마소의 수서를 꺼내서 등애에게 주었다.

書中說鄧艾所言之事須候奏報不可輒行
글에서 이르기를, 등애의 所言之事는 반드시 奏報하고 기다려야지 곧바로 행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艾曰:
「『將在外君命有所不受』。
吾既奉詔專征如何阻當?
등애가 말하였다.
“‘장수가 외지에 있을 때는, 임금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 것이 있다.’라고 하였다.
내 조서를 받들어 專征하거늘, 어찌하여 막는가?”

遂又作書令來使齎赴洛陽
이에 다시 서신을 써서, 왔던 사자에게 주고 낙양으로 보내었다.

時朝中皆言鄧艾必有反意司馬昭愈加疑忌
이때 조정에서 모두가 말하기를, 등애가 틀림없이 反意를 가졌다고 하니, 사마소가 더욱 의심하고 꺼렸다.

忽使命回呈上鄧艾之書
사자가 돌아와서 鄧艾之書를 바쳤다.

昭拆封視之書曰:
사마소가 봉투를 뜯어서 읽어보니 이러하였다.

<艾銜命西征元惡既服當權宜行事以安初附
若待國命則往復道途延引日月
春秋之義大夫出疆有可以安社稷利國家專之可也
今吳未賓勢與蜀連不可拘常以失事機
兵法進不求名退不避罪
艾雖無古人之節終不自嫌以損於國也
先此申狀見可施行>
<제가 명령을 받들고 西征하여 元惡이 굴복했으니, 마땅히 임시로 일을 처리하여 처음 복속한 곳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만약 (일일이) 국가의 명을 기다린다면, 도로를 왕복하느라 시일을 지체할 터입니다.
春秋大義에 따르면, 大夫出疆하여 사직을 안정시키고 국가를 이롭게 할 일이 있다면, 마음대로 행하여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가 아직 굴복하지 않았고, 세력이 촉나라와 연결돼 있으니, 관례에 구애되어 失機해서는 안 됩니다.
병법에 따르면, 진군할 때는 명성을 구하지 않고 후퇴할 때는 죄를 피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古人之節은 가지지 못했으나, 끝까지 스스로 부끄러운 일로써 나라에 손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장계를 올리오니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司馬昭看畢大驚慌與賈充計議曰:
鄧艾恃功而驕任意行事反形露矣如之奈何?
사마소가 읽고 나서 깜짝 놀라서 황망히 가충과 더불어 상의하였다.
등애가 공훈을 믿고 교만하여 任意行事하고 反形(반역의 형적/기미)을 드러냈소.
어찌해야 하겠소?”

賈充曰:
主公何不封鍾會以制之?
가충이 말하였다.
주공께서는 어째서 종회를 하여 등애를 제압하지 않으십니까?”

昭從其議遣使齎詔封會為司徒就令衛瓘監督兩路軍馬以手書付瓘使與會伺察鄧艾以防其變
사마소가 그 의견을 따라서 사자에게 조서를 주어서 종회를 司徒로 임명하였다. 또 위관에게 兩路軍馬를 감독하라 명령하고 위관에게 手書를 주어, 종회와 함께 등애를 伺察함으로써 그의 변란을 방비하게 하였다.

會接讀詔書詔曰:
종회가 조서를 받아 읽으니 이렇다.

<鎮西將軍鍾會所向無敵前無強梁節制眾城網羅迸逸
蜀之豪帥面縛歸命
謀無遣策舉無廢功
其以會為司徒進封縣侯增邑萬戶封子二人亭侯邑各千戶>
<진서장군 종회는 所向無敵이고 前無強梁이어서 節制眾城하고, 網羅迸逸하였다.
촉의 용맹한 장수들도 두 손을 뒤로 묶은 채 歸命하였다.
계책을 냄에 실책이 없었고, 거사함에 폐기할 공로가 없었다.
이제 종회를 司徒로 임명하고 縣侯로 작위를 높여 식읍을 1를 늘리고, 아들 두 사람을 亭侯로 봉하고 각각 식읍을 1천 호로 하였다.>

鍾會既受封即請姜維計議曰:
鄧艾功在吾之上又封太尉之職
今司馬公疑艾有反志故令衛瓘為監軍詔吾制之伯約有何高見?
종회가 벼슬을 받은 뒤 즉시 강유를 불러 의논하며 말하였다.
등애의 공로가 나의 위에 있고 또 태위의 직위에 봉하였소.
이제 사마공께서 등애가 反志를 가졌다고 의심하여, 위관을 監軍으로 삼고 내게 조서를 내려 그를 누르게 하는데, 백약에게 어떤 고견이 있소?.”

維曰:
愚聞鄧艾出身微賤幼為農家養犢本僥倖自陰平斜徑攀木懸崖成此大功
非出良謀實賴國家洪福耳
若非將軍與維相拒於劍閣又安能成此功耶
今欲封蜀主為扶風王乃大結蜀人之心其反情不言可見矣
晉公疑之是也.
강유가 말하였다.
제가 듣자니, 등애는 出身微賤하고 어려서는 농가에서 송아지를 키웠는데, 이제 僥倖陰平斜徑으로부터 攀木懸崖하여 이러한 大功을 이루었습니다.
뛰어난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참으로 국가의 홍복에 힘입었을 뿐입니다.
만약 장군께서 저와 검각에서 대치하지 않았다면, 또한 어찌 이러한 공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蜀主를 부풍왕으로 봉하려 하는데, 이것은 蜀人之心을 크게 결속함이니, 그의 反情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晉公이 의심함이 이것입니다.”

會深嘉其言維又曰:
請退左右維有一事密告.
종회가 그 말을 몹시 훌륭하다고 여긴다. 강유가 또 말하였다.
청컨대 좌우를 물려 주십시오. 제게 한 가지 일이 있으니 密告하겠습니다.”

會令左右盡退
종회가 좌우를 모두 물리쳤다.

維袖中取出一圖與會:
昔日武侯出草廬時以此圖獻先帝且曰:
益州之地沃野千里民殷國富可為霸業。』
先帝因此遂創成都
今鄧艾至此安得不狂?
강유가 소매에서 지도를 하나 꺼내어 종회에게 주며 말하였다.
지난날 무후께서 초려에서 나올 적에 이 지도를 선제께 바치며 말씀하시기를,
益州之地沃野千里이고, 民殷國富이니, 霸業을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제께서 이 때문에 성도에서 창업하셨습니다.
이제 등애가 이곳에 왔으니 어찌 광분하지 않겠습니까?”

會大喜指問山川形勢維一一言之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산천의 형세를 가리키며 묻자 강유가 일일이 말해주었다.

會又問曰:
當以何策除艾?
종회가 또 물었다.
무슨 계책으로 등애를 없애야 하겠소?”

維曰:
乘晉公疑忌之際當急上表言艾反狀
晉公必令將軍討之一舉而可擒矣.
강유가 말하였다.
진공의 疑忌之際를 틈타서 급히 표를 올려서 등애에게 反狀이 있다고 하시오.
진공이 틀림없이 장군에게 그를 토벌하게 할 터이니, 一舉에 잡을 수 있겠소.”

會依言即遣人齎表進赴洛陽言鄧艾專權恣肆結好蜀人早晚必反矣
종회가 그 말을 따라, 즉시 사람에게 표문을 주어 낙양으로 보내어, ‘등애가 권력을 전횡하고 방자하여 蜀人結好하니 조만간 틀림없이 반역하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於是朝中文武皆驚
이에 조정의 문무 관료가 모두 경악하였다.

會又令人於中途截了鄧艾表文艾筆法改寫傲慢之辭以實己之語
종회가 또한 사람을 시켜 중도에서 등애의 표문을 가로채고, 등애의 필법으로 傲慢之辭로 고쳐 적어서 등애 자신의 말임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司馬昭見了鄧艾表章大怒即遣人到鍾會軍前令會收艾
사마소가 등애의 표장을 읽더니 크게 노하여 즉시 사람을 종회의 軍前으로 보내서, 종회에게 등애를 잡게 하였다.

又遣賈充引三萬兵入斜谷.
또 가충에게 병사 3만을 이끌고 야곡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昭乃同魏主曹奐御駕親征
사마소가 위주 조환과 함께 御駕하여 親征에 나섰다.

西曹掾邵悌諫曰:
鍾會之兵多鄧艾六倍當令會收艾足矣何必明公自行耶?
西曹掾 邵悌가 간하였다.
종회의 병력이 多鄧艾六倍하니 당연히 종회가 등애를 잡게 하기에 족한데, 어째서 명공께서 친히 가셔야 합니까?”

昭笑曰:
汝忘了舊日之言耶
汝曾道會後必反吾今此行非為艾實為會耳.
사마소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지난날의 말을 잊었소?
그대도 종회가 훗날 틀림없이 반역할 것임을 말한 적이 있소. 내가 이번에 감은 등애 때문이 아니라, 실은 종회 때문이오.”

悌笑曰:
某恐明公忘之故以相問
今既有此意切宜秘之不可洩漏.
소제가 웃으며 말하였다.
제가 명공께서 그것을 잊으셨을까 걱정되어 물어보았습니다.
이제 이런 뜻을 가지셨으니, 절대로 비밀로 하시고 누설하면 안 됩니다.”

昭然其言遂提大兵起程
사마소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대군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時賈充亦疑鍾會有變密告司馬昭
이때 가충도 종회가 변란을 일으킬까 의심하여 은밀히 사마소에게 고하였다.

昭曰:
如遣汝吾亦疑汝耶
且到長安自有明白.
사마소가 말하였다.
그대를 보냈으면 내가 그대도 역시 의심하였겠소?
우선 장안에 도착하면 저절로 명백해지겠소.”

早有細作報知鍾會說昭已至長安
어느새 세작이 종회에게 보고하기를, 사마소가 이미 장안에 당도하였다고 하였다.

會慌請姜維商議收艾之策
종회가 황망히 강유를 청하여 收艾之策을 상의하였다.


正是:
纔見西蜀收降將又見長安動大兵
바로 다음과 같다.
서촉에서 降將을 거두자마자, 다시 장안에서 대군을 움직이네.

未知姜維以何策破艾且看下文分解
강유가 무슨 계책으로 등애를 잡을까? 다음 회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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