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百零四回
隕大星漢丞相歸天, 見木像魏都督喪膽.
제104회
大星이 떨어지자 漢丞相이 歸天하고, 木像을 보고 魏都督이 喪膽하다.
卻說
姜維見魏延踏滅了燈,心中忿怒,拔劍欲殺之。
한편,
강유는 위연이 등불을 밟아서 꺼트림을 보고, 마음속으로 분노하여 검을 뽑아 죽이려 하였다.
孔明止之曰:
「此吾命當絕,非文長之過也.」
공명이 제지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내 목숨이 끊어질 운명이지, 文長之過가 아니다.”
維乃收劍。
강유가 이에 검을 거두었다.
孔明吐血數口,臥倒床上,謂魏延曰:
「此是司馬懿料吾有病,故令人來探視虛實。
汝可急出迎敵.」
공명이 吐血數口하고 침상에 쓰러져서 위연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사마의가 내게 병이 있는 줄 알고 사람을 시켜 허실을 探視하러 온 것이오.
그대는 어서 나가서 迎敵하시오.”
魏延領命,出帳上馬,引兵殺出寨來。
위연이 명령을 받고 장막을 나가 말에 올라 군을 이끌고 영채 밖으로 달려나갔다.
夏侯霸見了魏延,慌忙引軍退走。
하후패가 위연을 보고 황망히 군을 이끌고 퇴각하였다.
延追趕二十餘里方回。
위연이 20 리 남짓 추격하고서야 돌아왔다.
孔明令魏延自回本寨把守。
공명이 위연에게 本寨로 돌아와 把守하라 하였다.
姜維入帳,直至孔明榻前問安。
강유가 入帳하여 공명의 침상 앞으로 다가가서 문안하였다.
孔明曰:
「吾本欲竭忠盡力,恢復中原,重興漢室;
奈天意如此,吾旦夕將死。
吾平生所學已著書二十四篇,計十萬四千一百一十二字;
內有八務,七戒,六恐,五懼之法。
吾遍觀諸將,無人可授,獨汝可傳我書。
切勿輕忽!」
공명이 말하였다.
“나는 본래 竭忠盡力하여 恢復中原하고, 重興漢室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 이와 같으니 내 旦夕에 죽을 터이다.
내가 平生所學을 이미 24편의 책을 지었는데 계산하면 104112 字이다.
그 안에 八務( 여덟 가지 필요사항 ), 七戒( 일곱 가지 주의사항 ), 六恐( 여섯 가지 공포 ), 五懼( 다섯 가지 두려움 )의 법칙이 있다.
내가 모든 장수를 두루 살펴보았으나 이 책을 줄 만한 사람이 없고, 유독 그대에게만 내 책을 전할 수 있겠다.
절대 소홀하지 말라!”
維哭拜而受。
강유가 哭拜하고 받았다.
孔明又曰:
「吾有『連弩』之法,不曾用得。
其法;矢長八寸,一弩可發十矢;皆畫成圖本。
汝可依法造用.」
공명이 또 말하였다.
“내게 連弩之法이 있지만 사용한 적이 없다.
그 연노법에서 화살 길이는 8촌이고 1弩로 10矢를 쏠 수 있는데, 모두 그림을 그려 圖本을 완성하였다.
그대가 그 법에 따라 만들어 쓰라.”
維亦拜受。
강유가 역시 공경히 받는다.
孔明又曰:
「蜀中諸道,皆不必多憂;惟陰平之地,切須仔細。
此地雖險峻,久必有失.」
공명이 또 말하였다.
“촉의 여러 도로는 모두 크게 걱정할 것이 없으나, 오직 陰平之地는 반드시 자세히 살펴야 하겠다.
이 땅은 비록 험준하지만, 오래되면 틀림없이 실수가 있을 터이다.”
又喚馬岱入帳,附耳低言,授以密計,囑曰:
「我死之後,汝可依計行之.」
다시 마대를 군막 안으로 불러 附耳低言으로 密計를 주며 부탁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 그대는 계책에 따라서 실행하시오.”
岱領計而出。
마대가 계책을 받고 나갔다.
少頃,楊儀入。
잠시 후 양의가 들어왔다.
孔明喚至榻前,授與一錦囊,密囑曰:
「我死,魏延必反;待其反時,汝與臨陣,方開此囊。
那時自有斬魏延之人也.」
공명이 침상 가까이 불러서 錦囊 하나를 주며 은밀히 부탁하였다.
“내가 죽으면 위연이 틀림없이 반역할 것이오. 그 반란할 때를 기다려 그대와 더불어 전투하게 되면 비로소 이 주머니를 열어 보시오.
그때 斬魏延之人이 스스로 나타날 터이오.”
孔明一一調度已畢,便昏然而倒,至晚方甦,便連夜表奏後主。
공명이 일일이 調度를 마치고 혼절해 쓰러져서 저녁이 돼서야 깨어나서, 그날 밤 후주에게 表奏하였다.
後主聞奏大驚,急命尚書李福,星夜至軍中問安,兼詢後事。
후주가 표를 듣고 크게 놀라서 급히 尚書 李福에게 명하여, 한밤중에 軍中에 가서 문안하고 아울러 後事를 묻게 하였다.
李福領命,趲程赴五丈原,入見孔明,傳後主之命。
이복이 어명을 받고 길을 재촉하여 오장원으로 가서 공명을 만나 後主之命을 전하였다.
問安畢,孔明流涕曰:
문안을 마치자,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吾不幸中道喪亡,虛廢國家大事,得罪於天下。
我死後,公等宜竭忠輔主。
國家舊制,不可改易。
吾所用之人,亦不可輕廢。
吾兵法皆授與姜維,他自能繼吾之志,為國家出力。
吾命已在旦夕,當即有遺表上奏天子也.」
“내가 불행히 中道喪亡하여 國家大事를 포기하니 천하에 죄를 짓는 것이오.
내 사후에 공들께서 마땅히 竭忠輔主하시오.
국가의 옛 제도는 변경하면 아니 되오.
吾所用之人도 함부로 폐해서는 아니 되오.
나의 병법은 모두 강유에게 전수하였으니, 그 자신이 능히 繼吾之志하여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할 터이오.
내 목숨이 이미 旦夕에 있으니 즉시 표를 남겨 천자께 아뢰어야 하겠소.”
李福領了言語,匆匆辭去。
이복이 그 言語를 듣고 총총히 작별하고 떠났다.
孔明強支病體,令左右扶上小車,出寨遍觀各營.
공명이 強支病體하고 좌우에게 小車에 부축하여 태우게 하고, 영채를 나가서 각 영채를 두루 살펴보았다.
自覺秋風吹面,徹骨生寒;
가을바람이 얼굴에 불어와서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졌다,
乃長歎曰:
「再不能臨陣討賊矣!
悠悠蒼天,曷其有極!」
이에 장탄식하였다.
“다시는 臨陣討賊하지 못하겠구나!
유유한 푸른 하늘아, 어찌하여 그 다함이 있느냐!”
歎息良久,回到帳中,病轉沈重,乃喚楊儀分付曰:
「馬岱、王平、廖化、張翼、張嶷等,皆忠義之士,久經戰陣,多負勤勞,堪可委用。
我死之後,凡事俱依舊法而行。
緩緩退兵,不可急驟。
汝深通謀略,不必多囑。
姜伯約智勇足備,可以斷後.」
한참 탄식하다가 군막으로 돌아오니 병세가 더욱 위중해져서 양의를 불러 분부하였다.
“馬岱、王平、廖化、張翼、張嶷 等은 모두 忠義之士로서, 오랫동안 전쟁을 경험했고 부지런히 일했으니 믿고 쓸 수 있소.
我死之後에 凡事를 모두 옛 법에 따라 행하시오.
천천히 退兵하고 급하게 서두르지 마시오.
그대는 모략에 深通하니, 많은 것을 부탁할 필요는 없겠소.
강백약은 智勇足備이니 斷後할 수 있을 터이오.”
楊儀泣拜受命。
양의가 눈물을 흘리며 삼가 명령을 받았다.
孔明令取文房四寶,於臥榻上手書遺表,以達後主。
공명이 文房四寶를 가져오게 하여 침상 위에서 손으로 써서 표를 남기고, 후주에게 전하게 하였다.
表略曰:
<伏聞生死有常,難逃定數。
死之將至,願盡愚忠。
臣亮賦性愚拙,遭時艱難;
分符擁節,專掌鈞衡;
興師北伐,未獲成功;
何期病入膏肓,命垂旦夕;
不及終事陛下,飲恨無窮!
伏願陛下清心寡欲,約己愛民;
達孝道於先皇,布仁恩於宇下;
提拔幽隱,以進賢良;
屏斥奸邪,以厚風俗。
臣家有桑八百株,田五十頃,子孫衣食,自有餘饒。
至於臣在外任,隨身所需,悉仰於官,不別治生產。
臣死之日,不使內有餘帛,外有餘財,以負陛下也。>
표문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제가 듣기에 生死有常이고 難逃定數입니다.
죽음이 곧 닥쳐오니 바라옵건대 저의 충정을 다할까 합니다.
신 제갈량은 천성이 어리석고 못났는데 어려운 시대를 만났습니다.
符節을 나누어 쥐고 중임을 專掌하였습니다.
興師北伐이나 未獲成功입니다.
그러나 病入膏肓하여 命垂旦夕일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폐하를 끝까지 모심에 미치지 못하니, 슬픔을 머금음이 무궁합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시며, 자신에게 엄격하고 백성을 사랑하십시오.
先皇께 효도를 다하시고, 백성에게 인애와 은덕을 베푸십시오.
提拔幽隱하여 賢良을 등용하십시오.
屏斥奸邪함으로써 풍속을 너그럽게 하십시오.’
臣家에 뽕나무 8백 그루와 밭 50頃이 있으니 子孫衣食에 餘饒가 있습니다.
신이 외지에서 근무하게 되어, 제 신변의 수요는 모두 관청에 의지하였으니 따로 재산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臣死之日에 안으로 착복한 비단이나 밖으로 축적한 재산이 있어서 폐하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孔明寫畢,又囑楊儀曰:
「我死之後,不可發喪。
可作一大龕。將吾屍坐於龕中;
以米七粒,放吾口內;腳下用明燈一盞;
軍中安靜如常,切勿舉哀:
則將星不墜。
吾陰魂更自起鎮之。
司馬懿見將星不墜,必然驚疑。
吾軍可令後寨先行,然後一營一營緩緩而退。
若司馬懿來追,汝可布成陣勢,回旗返鼓。
等他來到,卻將我先時所雕木像,安於車上,推出軍前,令大小將士,分列左右。
懿見之必驚走矣.」
공명이 쓰기를 마치고 또 양의에게 부탁하였다.
“我死之後에 發喪해서는 아니 되오.
큰 龕室( 신주를 모시는 장이나 작은 방)을 하나 만들고 내 시신을 그 속에 앉히시오.
쌀 일곱 알을 내 입 안에 넣고, 다리 아래에 밝은 등잔을 하나 켜시오.
군사는 평소와 같이 安靜하고 절대 舉哀하지 마시오.
그러면 將星이 떨어지지 않소.
나의 陰魂이 다시 그것을 받치게 되오.
사마의는 장성이 떨어지지 않음을 보고 틀림없이 놀라고 의심할 터이오.
아군에게 명령하여 後寨先行하고 그 뒤에 一營一營 천천히 퇴각하시오.
사마의가 뒤쫓으면 그대가 布成陣勢하여 回旗返鼓하시오.
그가 오기를 기다려서 我先時所雕木像을 수레에 앉혀 推出軍前하고, 大小將士에게 좌우로 나눠 서게 하시오.
사마의가 그것을 보고 틀림없이 마음속으로 놀라서 달아날 터이오.”
楊儀一一領諾。
양의가 일일이 領諾하였다.
是夜孔明令人扶出,仰觀北斗,遙指一星曰:
「此吾之將星也.」
이날 밤 공명이 남에게 부축하게 하여 나와서 北斗를 우러러보더니, 멀리 별 하나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것이 吾之將星이오.”
眾視之,見其色昏暗,搖搖欲墜。
사람들이 그것을 보니 그 색이 흐려지고 흔들흔들하며 떨어지려 하였다.
孔明以劍指之,口中唸咒。
공명이 검으로 별을 가리키며, 입으로 주문을 외었다.
咒畢,急回帳時,不省人事。
唸咒를 마치고 급히 군막으로 돌아가지만 不省人事이었다.
眾將正慌亂間,忽尚書李福又至;
장수들이 당황하고 혼란한데, 상서 이복이 다시 왔다.
見孔明昏絕,口不能言,乃大哭曰:
「我誤國家之大事也!」
공명이 혼절하였음을 보고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大哭하며 말하였다.
“내가 國家之大事를 그르쳤구나!”
須臾,孔明復醒,開目遍視;見李福立於榻前,孔明曰:
「吾已知公復來之意也.」
잠시 후 공명이 다시 깨어나 눈을 뜨고 둘러보더니, 침상 앞에 서 있는 이복을 보고 말하였다.
“내 이미 公復來之意를 알고 있소.”
福謝曰:
「福奉天子命,問丞相百年後,誰可任大事者?
適因匆遽,失於諮請,故復來耳.」
이복이 謝罪하며 말하였다.
“제가 천자의 勅命을 받들기를, 승상의 사후에 누구에게 대사를 맡겨야 할지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바삐 서두르는 바람에 諮請을 잊었기에, 다시 왔을 뿐입니다.”
孔明曰:
「吾死之後,可任大事者,蔣公琰其宜也.」
공명이 말하였다.
“내가 죽은 뒤 대사를 맡길 만한 이는 蔣公琰이 마땅하오.”
福曰:
「公琰之後,誰可繼之?」
이복이 말하였다.
“공담의 뒤에는 누가 계승해야 합니까?”
孔明曰:
「費文偉可繼之.」
공명이 말하였다.
“費文偉가 계승해야 하오.”
福又問:
「文偉之後,誰當繼者?」
이복이 다시 물었다.
“문위의 뒤에는 누가 마땅히 계승해야 합니까?”
孔明不答。
공명이 대답하지 않았다.
眾將近前視之,已薨矣。
장수들이 가까이 가서 보니, 이미 薨逝하였다.
時建興十二年秋八月二十三日也。壽五十四歲。
이때가 건흥 12년 가을 8월 23일이고, 나이 54세였다.
後杜工部有詩歎曰:
뒷날 杜工部가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長星昨夜墜前營,訃報先生此日傾。
虎帳不聞施號令,麟臺唯有著勳名。
空餘門下三千客,辜負胸中十萬兵。
好看綠陰清晝裏,於今無復雅歌聲!>
<큰 별이 어젯밤 앞 군영에 떨어져, 선생께서 이날 돌아가심을 알리네.
虎帳에서 내리던 호령 들리지 않으니, 기린대에 누가 다시 勳名을 올리리오.
문하에 3천 客을 공허히 남겨놓고, 흉중의 십만 대군을 쓰지 못하네.
푸른 수풀 그늘지고 맑은 낮은 아름답건만, 이제 다시는 그 맑은 노래 들을 수 없구나!>
白樂天亦有詩曰:
백낙천도 시를 지었다.
<先生晦跡臥山林,三顧那逢賢主尋。
魚到南陽方得水,龍飛天外便為霖。
託孤既盡慇懃禮,報國還傾忠義心。
前後出師遺表在,令人一覽淚沾襟。>
<선생이 행적을 숨기고 산림에 누웠으나, 삼고초려하며 賢主가 찾았구나.
물고기가 남양에서 물을 얻었고, 용이 하늘 밖으로 날아올라 비를 뿌렸네.
고아를 맡기며 두터운 예를 다하니, 나라에 보답하며 충성을 바쳤구나.
前後로 出師하며 표를 남기니, 읽는 사람마다 눈물로 소매 적시네.>
初,蜀長水校尉廖立,自謂才名宜為孔明之副,嘗以職位閒散,怏怏不平,怨謗無已。
처음에 촉의 長水校尉 廖立이 스스로 才名이 孔明之副라고 여기고, 일찍이 직위가 閒散하다고 불만을 품고 원망하고 비방해 마지않았다.
於是孔明廢之為庶人,徙之汶山。
이에 공명이 廢之為庶人하고 汶山에 귀양보냈다.
及聞孔明亡,乃垂泣曰:
「吾終為左衽矣!」
공명의 죽음을 듣자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는 끝내 左衽으로 남겠구나!”
李嚴聞之,亦大哭病死。
이엄도 이를 듣고 大哭病死하였다.
蓋嚴嘗望孔明復收己,得自補前過;
대개 이엄은 일찍이 공명이 자신을 다시 거두어 주어 스스로 前過를 補償하기를 바랐다.
度孔明死後,人不能用之故也。
공명이 죽은 뒤에는 다른 사람이 그를 쓰지 못하리라 헤아린 까닭이다.
後元微之有詩讚孔明曰:
후세에 元微之가 공명을 기리는 시를 지었다.
<撥亂扶危主,慇懃受託孤。
英才過管樂,妙策勝孫吳。
凜凜出師表,堂堂八陣圖。
如公存盛德,應歎古今無!>
<撥亂하여 危主를 떠받치고, 정성을 다해 탁고의 중책을 받았네.
뛰어난 재주는 관중과 악의를 넘어서고 절묘한 계책은 손자와 오자를 능가하네.
늠름한 출사표요, 당당한 팔진도라.
공께서 盛德을 갖춘 것처럼 고금에 다시 없음을 한탄하노라!>
是夜天愁地慘,月色無光,孔明奄然歸天。
이날 밤 天愁地慘하고 月色無光인데, 공명이 奄然歸天하였다.
姜維、楊儀遵孔明遺命,不敢舉哀,依法成殮,安置龕中,令心腹將卒三百人守護;
강유와 양의가 遵孔明遺命하여 不敢舉哀하고 依法成殮하고 安置龕中하여 心腹將卒 3백 인이 수호하게 하였다.
隨傳密令,使魏延斷後,各處營寨一一退去。
이어서 傳密令하여 위연은 斷後하고 各處營寨가 하나하나 퇴각하게 하였다.
卻說
司馬懿夜觀天文,見一大星,赤色,光芒有角,自東北方流於西南方,墜於蜀營內,三投再起,隱隱有聲。
한편,
사마의가 밤에 천문을 살피는데, 큰 별 하나가 붉은색을 띠고 날카로운 빛을 뿜으며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더니, 촉채 안에 떨어져 세 번 튀어 오르고 은은한 소리가 났다.
懿驚喜曰:
「孔明死矣!」
사마의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공명이 죽었구나!”
即傳令起大兵追之。
즉시 명령을 전하여 대군을 일으켜 뒤쫓았다.
方出寨門,忽又疑慮曰:
「孔明善會六丁六甲之法,今見我久不出戰,故以此術詐死,誘我出耳。
今若追之,必中其計.」
寨門을 나오다가 문득 또 의심하고 걱정하여 말하였다.
“공명은 六丁六甲之法에 능한데, 이제 내가 오래도록 출전하지 않음을 보고 이런 술법으로 죽은 척하여, 나를 유인해 나오게 할 따름이다.
이제 뒤쫓는다면 틀림없이 그 계략에 빠질 터이다.”
遂復勒馬回寨不出,只令夏侯霸暗引數十騎,往五丈原山僻哨探消息。
곧 다시 勒馬回寨不出하며, 다만 하후패에게 몰래 수십 기를 이끌고 오장원의 山僻에 가서 哨探消息하게 하였다.
卻說
魏延在本寨中,夜作一夢,夢見頭上忽生二角,醒來甚是疑異。
한편,
위연은 本寨中에서 밤에 꿈을 하나 꾸니, 꿈속에서 머리에 갑자기 뿔이 두 개 생기는지라, 깨어난 뒤 몹시 괴이하게 여겼다.
次日,行軍司馬趙直至,延請入問曰:
「久知足下深明易理.
吾夜夢頭生二角,不知主何吉凶?
煩足下為我決之.」
다음 날 行軍司馬 趙直이 오자 위연이 請入하여 물었다.
“足下深明易理임을 안 지 오래요.
내가 밤에 꿈속에서 머리에 뿔이 두 개 생겼는데, 어떤 길흉을 예시함인지 모르겠소.
수고스럽지만 족하께서 나를 위해 판단해주시오.”
趙直想了半晌,答曰:
「此大吉之兆。
麒麟頭上有角,蒼龍頭上有角,乃變化飛騰之象也.」
조직이 한참 생각하다가 답하였다.
“이것은 大吉之兆입니다.
기린의 머리에 뿔이 있고 蒼龍의 머리에 뿔이 있으니, 곧 變化飛騰之象입니다.”
延大喜曰:
「如應公言,當有重謝!」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공의 말씀대로 된다면 당연히 크게 사례하겠소!”
直辭去,行不數里,正遇尚書費褘。
조직이 작별하고 몇 리를 가지 않아서 상서 비위와 마주쳤다.
褘問何來。直曰:
「適至魏文長營中,文長夢頭生角,令我決其吉凶。
此本非吉兆,但恐直言見怪,因以麒麟蒼龍解之.」
비위가 어디서 오는지 묻자 조직이 말하였다.
“마침 위문장의 영채에 갔다가 문장이 꿈에서 머리에 뿔이 생겼다며, 제게 그 길흉을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길조가 아니지만 直言하여 책망을 받을까 봐, 기린과 창룡으로 예를 들어 해몽했습니다.”
褘曰:
「足下何以知非吉兆?」
비위가 말하였다.
“족하는 무엇 때문에 길조가 아닌지 아시오?”
直曰:
「角之字形乃刀下用也。
今頭上有角,其凶甚矣.」
조직이 말하였다.
“角之字形은 刀아래 用이 있습니다.
이제 머리 위에 角(칼을 사용함)이 있으니, 몹시 흉합니다.”
褘曰:
「君且勿洩漏.」
비위가 말하였다.
“군께서 우선 누설하지 마시오.”
直別去。費褘至魏延寨中,屏退左右,告曰:
「昨夜三更,丞相已辭世矣。
臨終再三囑付,令將軍斷後以當司馬懿,緩緩而退,不可發喪。
今兵符在此,便可起兵.」
조직이 작별하여 떠나고, 비위가 위연의 영채로 가서 屏退左右하고 고하였다.
“어젯밤 3경에 승상께서 辭世하셨습니다.
임종하시며 거듭 부탁하시기를, 장군이 斷後하여 사마의를 담당하고 서서히 퇴각하되 發喪해선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兵符가 여기 있으니, 어서 군대를 일으키십시오.”
延曰:
「何人代理丞相之大事?」
위연이 말하였다.
“누가 代理丞相之大事하오?”
褘曰:
「丞相一應大事,盡託與楊儀;
用兵密法,皆授與姜伯約。
此兵符乃楊儀之令也.」
비위가 말하였다.
“승상께서 一應大事를 모조리 양의에게 맡기셨소.
용병의 密法은 모두 강백약에게 전수하셨소.
이 병부는 곧 양의의 명령이오.”
延曰:
「丞相雖亡,吾今尚在。
楊儀不過一長史,安能當此大任?
他只宜扶柩入川安葬。
我自率大兵攻司馬懿,務要成功。
豈可因丞相一人而廢國家大事耶?」
위연이 말하였다.
“승상께서 비록 돌아가셨지만, 나는 지금 건재하오.
양의는 不過一長史이거늘 어찌 이런 대임을 맡을 수 있겠소?
그는 서천까지 扶柩하여 安葬하기만 하면 되오.
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사마의를 공격해서 반드시 공을 세우겠소.
어찌 승상 한 사람 때문에 국가대사를 폐하겠소?”
褘曰:
「丞相遺令,教且暫退,不可有違.」
비위가 말하였다.
“승상께서 군령을 남기기를 잠시 退兵하라고 지시하셨으니 어겨선 안 되오.”
延怒曰:
「丞相當時若依我計,取長安久矣!
吾今官任前將軍,征西大將軍南鄭侯,安肯與長史斷後!」
위연이 노하여 말하였다.
“승상이 그때 내 계책을 따랐다면 장안을 점령한 지 오래됐을 터이오!
내 이제 관직이 前將軍,征西大將軍南鄭侯인데, 어찌 長史 따위와 함께 斷後나 하고 있겠소!”
褘曰:
「將軍之言雖是,然不可輕動,令敵人恥笑。
待吾往見楊儀,以利害說之,令彼將兵權讓與將軍,何如?」
비위가 말하였다.
“將軍之言雖是이나 不可輕動이니 令敵人恥笑일 터이오.
내가 양의를 찾아가 이해득실로써 설득하여 그가 병권을 장군에게 양도하게 함이 어떻겠소?”
延依其言。
위연이 그 말을 따랐다.
褘辭延出營,急到大寨見楊儀,具述魏延之語。
비위가 위연을 작별하고 出營하여 서둘러 大寨로 가서 양의를 만나서 위연의 말을 낱낱이 전하였다.
儀曰:
「丞相臨終,曾密囑我曰:
『魏延必有異志。』
今我以兵符往,實欲探其心耳。
今果應丞相之言。
吾自令伯約斷後可也.」
양의가 말하였다.
“승상께서 임종하며 비밀리에 저에게 부탁한 적이 있소.
‘위연은 필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이제 兵符를 그에게 가져가게 함은 실로 그의 마음을 떠보고자 함이오.
이제 과연 승상의 말씀에 부합하오.
내 직접 백약에게 명하여 斷後하게 하겠소.”
於是楊儀領兵扶柩先行,令姜維斷後;
이에 양의가 군대를 거느리고 扶柩先行하고, 강유에게 斷後하게 하였다.
依孔明遺令,徐徐而退。
공명의 남긴 명령에 따라 서서히 퇴각하였다.
魏延在寨中,不見費褘來回覆,心中疑惑,乃令馬岱引十數騎往探消息。
위연이 영채에 있으면서 비위가 와서 회답함을 보지 못하자, 마음속에 의혹이 일어서 마대에게 십수 기를 이끌고 往探消息하게 하였다.
回報曰:
「後軍乃姜維總督,前軍大半退入谷中去了.」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後軍은 강유가 총독하고, 前軍은 태반이 물러나서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延大怒曰:
「豎儒安敢欺我!我必殺之!」
위연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못난 유생 놈이 어찌 감히 나를 속이느냐!
내 그를 죽이고 말겠다!”
因顧謂岱曰:
「君肯相助否?」
이에 고개를 돌려 마대에게 말하였다.
“공께서 나를 도와줄 마음이 있소?”
岱曰:
「某亦素恨楊儀,今願助將軍攻之.」
마대가 말하였다
“저도 평소 양의에게 원한이 있으니 이제 장군을 도와 그를 치겠습니다.”
延大喜,即拔寨引本部兵望南而行。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영채를 거두고 휘하 병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갔다.
卻說
夏侯霸引軍至五丈原看時,不見一人,急回報司馬懿曰:
「蜀兵已退盡矣.」
한편,
하후패가 군을 이끌고 오장원으로 가서 살펴보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급히 사마의에게 돌아가 알렸다.
“촉군이 이미 모조리 퇴각하였습니다.”
懿跌足曰:
「孔明真死矣!
可速追之!」
사마의가 발을 구르며 말하였다.
“공명이 정말 죽었구나!
어서 추격하라!”
夏侯霸曰:
「都督不可輕追。
當令偏將先往.」
하후패가 말하였다.
“도독께서 함부로 추격하면 아니 됩니다.
마땅히 偏將이 앞서가게 하십시오.”
懿曰:
「此番須吾自行.」
사마의가 말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야겠소.”
遂引兵同二子,一齊殺奔五丈原來;
곧 군을 이끌고 두 아들과 함께 일제히 오장원으로 달려갔다.
吶喊搖旗,殺入蜀寨時,果無一人。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들며 촉채로 뛰어드는데 과연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懿顧二子曰:
「汝急催兵趕來,吾先引軍前進.」
사마의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너희는 병사들을 재촉해 뒤따라오너라. 내가 먼저 군을 이끌고 전진하겠다.”
於是司馬師、司馬昭在後催軍;
이에 사마사와 사마소가 후미에서 병사들을 다그쳤다.
懿自引軍當先,追到山腳下,望見蜀兵不遠,乃奮力追趕。
사마의가 직접 군을 이끌고 앞장서 뒤쫓아 산기슭에 다다르니, 촉병이 멀리 있지 않음을 보고 힘을 내어 쫓아갔다.
忽然山後一聲炮響,喊聲大震。
갑자기 산 뒤에서 한 차례 포성이 울리고 함성이 크게 진동하였다.
只見蜀兵俱回旗返鼓,樹影中飄出中軍大旗,上書一行大字曰:
「漢丞相武鄉侯諸葛亮.」
촉군이 모두 回旗返鼓하는데, 나무 그늘에서 중군의 큰 깃발이 펄럭이며 나오고, 그 위에 한 줄 큰 글자로 ‘漢丞相武鄉侯諸葛亮'이라고 적혀 있었다.
懿大驚失色。
사마의가 大驚失色하였다.
定睛看時,只見軍中數十員上將,擁出一輛四輪車來;
시선을 집중하여 쳐다보니, 軍中의 수십 명 上將이 사륜거 한 량을 擁衛해서 나왔다.
車上端坐孔明,綸巾羽扇,鶴氅皂絛。
사륜거에 端坐한 공명은 綸巾羽扇,鶴氅皂絛의 차림이었다.
懿大驚曰:
「孔明尚在,吾輕入重地,墮其計矣!」
사마의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공명이 아직 살아 있다!
내가 함부로 重地로 들어와서 그의 계략에 빠졌구나!”
急勒回馬便走。
급히 말고삐를 잡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背後姜維大叫:
「賊將休走!
你中了我丞相之計也!」
배후에서 강유가 크게 외쳤다.
“적장은 게 섰거라!
네 놈은 승상의 계책에 걸려들었다!”
魏兵魂飛魄散,棄甲丟盔,拋戈撇戟,各逃性命,自相踐踏,死者無數。
위병이 魂飛魄散하여 棄甲丟盔하고 拋戈撇戟하고 제각기 목숨을 구하고자 달아나다가 서로 짓밟아 죽은 자가 무수하였다.
司馬懿奔走了五十餘里,背後兩員魏將趕上,扯住馬嚼環叫曰:
「都督勿驚.」
사마의가 5십 리 남짓 달아나니 배후에서 위장 두 사람이 쫓아와서 말 굴레를 잡으며 외쳤다.
“도독께선 놀라지 마십시오.”
懿用手摸頭曰:
「我有頭否?」
사마의가 손으로 머리를 더듬으며 말하였다.
“내게 머리가 있느냐?”
二將曰:
「都督休怕,蜀兵去遠了.」
두 장수가 말하였다.
“도독,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촉병은 멀리 떠났습니다.”
懿喘息半晌,神色方定;
사마의가 한참 숨을 헐떡이다가 겨우 얼굴빛이 돌아왔다.
睜目視之,乃夏侯霸、夏侯惠也;
눈을 뜨고 바라보니 바로 하후패와 하후혜였다.
乃徐徐按轡,與二將尋小路奔歸本寨,使眾將引兵四散哨探。
이에 서서히 말고삐를 잡고 두 장수와 더불어 지름길을 찾아 奔歸本寨하고, 장수들에게 군을 이끌고 사방으로 흩어져 哨探하게 하였다.
過了兩日,鄉民奔告曰:
「蜀兵退入谷中之時,哀聲震地,軍中揚起白旗。
孔明果然死了,止留姜維引一千兵斷後。
前日車上之孔明,乃木人也.」
이틀이 지나 鄉民이 달려와서 고하였다.
“촉군이 골짜기로 들어올 때 곡하는 소리가 땅을 뒤흔들고, 군중에 백기를 내걸었습니다.
공명이 정말 죽었고, 단지 강유를 남겨 병사 1천을 이끌고 斷後하게 했습니다.
전날 수레 위의 공명은 木人이었습니다.”
懿歎曰:
「吾能料其生,不能料其死也!」
사마의가 탄식하였다.
“내가 그의 생시에는 헤아릴 수 있었는데, 그가 죽은 뒤는 헤아리지 못하는구나!”
因此蜀中人諺曰:
「死諸葛能走生仲達.」
이 때문에 촉나라 사람들 사이에 ‘死諸葛能走生仲達’ 라는 속담이 생겼다.
後人有詩歎曰:
후인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長星半夜落天樞,奔走還疑亮未殂。
關外至今人冷笑,頭顱猶問有和無!>
<한밤에 혜성이 북두칠성에서 떨어졌건만, 사마의는 달아나며 제갈량의 죽음을 의심했네.
關外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비웃으며, 머리가 아직도 붙어 있냐 없냐 묻는다네.>
司馬懿知孔明死信已確,乃復引兵追趕。
사마의는 孔明死信이 확실해지자 다시 군을 이끌고 뒤쫓았다.
行到赤岸坡,見蜀兵已去遠,乃引還,顧謂眾將曰:
「孔明已死,我等皆高枕無憂矣.」
행로가 赤岸坡에 이르러 蜀兵已去遠임을 보고, 군대를 이끌고 되돌아가며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공명이 죽었으니 우리는 高枕無憂이겠소이다!”
遂班師回。
마침내 군대를 거둬 돌아갔다.
一路見孔明安營下寨之處,前後左右,整整有法,懿歎曰:
「此天下奇才也!」
가는 도중에 공명의 安營下寨之處를 보니 전후좌우 모두 질서정연하고 법도가 있는지라, 사마의가 탄식하였다.
“참으로 천하의 奇才로다!”
於是引兵回長安,分調眾將,各守隘口。
이에 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가서 장수들을 나누어 배치해서 제각기 隘口를 지키게 하였다.
懿自回洛陽面君去了。
사마의 자신은 군주를 만나러 낙양으로 돌아갔다.
卻說
楊儀、姜維排列陣勢,緩緩退入棧閣道口,然後更衣發喪,揚幡舉哀。
한편,
양의와 강유는 排列陣勢하고 천천히 棧閣道口로 후퇴해 들어갔다. 그런 뒤 옷을 갑아 입고 초상을 알리고, 깃발을 내걸고 舉哀하였다.
蜀軍皆撞跌而哭,至有哭死者。
촉군 모두가 머리를 치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고, 심지어 통곡하다가 죽는 이도 있었다.
蜀兵前隊,正回到棧閣道口,忽見前面火光沖天,喊聲震地,一彪軍攔路。
촉병의 前隊가 막 棧閣道口에 다다르자, 갑자기 앞에서 火光沖天하고 喊聲震地하더니 一彪軍이 攔路하였다.
眾將大驚,急報楊儀。
장수들이 깜짝 놀라서 급히 양의에게 알렸다.
正是:
<已見魏營諸將去,不知蜀地甚兵來。>
실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위나라 진영의 장수들은 떠났는데 촉나라에 무슨 군사인지 모르겠네.>
未知來者何處軍馬,且看下文分解。
오는 것이 어느 곳의 군마일까? 다음 회의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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