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百零九回
困司馬漢將奇謀 廢曹芳魏家果報.
제109회
司馬를 포위하니 漢將의 奇謀요, 曹芳을 폐위하니 魏家의 果報이다.
蜀漢延熙十六年秋,將軍姜維起兵二十萬,令廖化、張翼為左右先鋒,夏侯霸為參謀,張嶷為運糧使,大兵出陽平關伐魏。
촉한 연희 16년 가을, 장군 강유가 병사 20만을 일으켜 요화와 장익을 左右先鋒으로 삼고, 하후패를 참모로, 張嶷를 運糧使로 삼고 대군이 陽平關을 나가서 伐魏하였다.
維與夏侯霸商議曰:
「向取雍州,不克而還;
今若再出,必又有備。
公有何高見?」
강유가 하후패와 더불어 상의하였다.
“지난번에 옹주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소.
이제 다시 출병하면 틀림없이 또 준비가 있을 터이오.
공에게 어떤 고견이 있소?”
霸曰:
「隴上諸郡,只有南安錢糧最廣;若先取之,足可為本。
向者不克而還,蓋因羌兵不至。
今可先遣人會羌人於隴右,然後進兵出石營,從董亭直取南安.」
“隴上諸郡에 南安의 錢糧이 最廣입니다.
그곳을 先取하면 족히 근본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向者에 이기지 못하고 온 것은 대개 羌兵不至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을 먼저 보내 농우에서 강인들과 합세한 뒤, 進兵하여 石營으로 나가서 董亭을 따라 남안을 바로 취해야 합니다.”
維大喜曰:
「公言甚妙!」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공의 말씀이 절묘하오!”
遂遣郤正為使,齎金珠蜀錦入羌,結好羌王。
곧 郤正을 사자로 삼아서 金珠蜀錦을 가지고 入羌하여 羌王과 우호를 맺게 하였다.
羌王迷當,得了禮物,便起兵五萬,令羌將俄何燒戈為大先鋒,引兵南安來。
강왕 미당이 예물을 받자 병사 5만을 일으켜 羌將 俄何燒戈를 大先鋒으로 삼아 군을 이끌고 남안으로 가게 하였다.
魏左將軍郭淮聞報,飛奏洛陽。
魏左將軍 郭淮가 聞報하고 낙양에 급히 아뢰었다.
司馬師問諸將曰:
「誰敢去敵蜀兵?」
사마사가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용감히 촉병을 대적하러 가겠소?”
輔國將軍徐質曰:
「某願往.」
輔國將軍 徐質이 말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師素知徐質英勇過人,心中大喜,即令徐質為先鋒,令司馬昭為大都督,領兵望隴西進發。
사마사가 서질의 英勇過人함을 평소 알기에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즉시 서질을 선봉으로 삼고 사마소를 대도독으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隴西를 향해 進發하게 하였다.
軍至董亭,正遇姜維,兩軍列成陣勢。
군대가 동정에 이르러서, 마침 강유와 遭遇하여 兩軍이 陣勢를 벌렸다.
徐質使開山大斧,出馬挑戰。
서질이 開山大斧를 들고 말을 타고 도전하였다.
蜀陣中廖化出迎。
촉진에서 요화가 나가서 맞는다.
戰不數合,化拖刀敗回,張翼縱馬挺鎗而迎﹔
싸움이 몇 합이 되지 않아 요화가 칼을 끌며 敗回하니, 장익이 말을 달려 창을 꼬나쥐고 맞았다.
戰不數合,又敗入陣。
싸움이 몇 합 되지 않아 또한 패하여 군진으로 들어갔다.
徐質驅兵掩殺,蜀兵大敗,退三十餘里。
서질이 군사를 몰아 엄습하니, 촉병이 대패하여 30여 리 퇴각하였다.
司馬昭亦收兵回,各自下寨。
사마소도 군사를 거두어 각자 영채를 내렸다.
姜維與夏侯霸商議曰:
「徐質勇甚,當以何策擒之?」
강유가 하후패와 상의하였다.
“서질의 용맹이 심하니, 무슨 수로 그를 잡아야 하겠소?”
霸曰:
「來日詐敗,以埋伏之計勝之.」
하후패가 말하였다.
“내일 지는 척하고 埋伏之計를 써서 이기겠습니다.”
維曰:
「司馬昭乃仲達之子,豈不知兵法?
若見地勢掩映,必不肯追。
吾見魏兵累次斷吾糧道,今卻用此計誘之,可斬徐質矣.」
강유가 말하였다.
“사마소는 仲達之子인데 어찌 병법을 모르겠소?
지세가 엄폐됨을 보면 틀림없이 추격하지 않으려 할 터이오.
내 생각에 위병이 누차 아군의 糧道를 끊었는데, 이제 오히려 이 계책으로 유인하면 서질을 참할 수 있겠소.”
遂喚廖化分付如此如此,又喚張翼分付如此如此。
곧 요화를 불러 여차여차 분부하고 또 장익을 불러 如此如此 분부하였다.
二人領兵去了。
두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一面令軍士於路撒下鐵蒺藜,寨外多排鹿角,示以久計。
한편으로 병사들을 시켜 길에 鐵蒺藜를 뿌리고 영채 밖에 鹿角을 많이 배치하여 久計를 보여주었다.
徐質連日引兵搦戰,蜀兵不出。
서질이 連日 군사를 이끌고 搦戰하지만 촉병이 나오지 않았다.
哨馬報司馬昭說:
「蜀兵在鐵籠山後,用木牛流馬搬運糧草,以為久計,只待羌兵策應.」
초마가 사마소에게 보고하였다.
“촉병이 鐵籠山 뒤에서 木牛流馬로 搬運糧草하여 장기전을 도모하며 羌兵이 策應하기만 기다립니다.”
昭喚徐質曰:
「昔日所以勝蜀者,因斷彼糧道也。
今蜀兵在鐵籠山後運糧,汝今夜引兵五千,斷其糧道,蜀兵自退矣.」
사마소가 서질을 불러 말하였다
“지난날 촉나라를 이긴 것은 그들의 양도를 끊었기 때문이오.
이제 촉병이 철롱산 뒤에서 運糧하니 그대가 오늘 밤 병사 5천을 거느리고 그 양도를 끊으면 촉병은 스스로 물러갈 터이오.”
徐質領命,初更時分,引兵望鐵籠山來,果見蜀兵二百餘人,驅百餘頭木牛流馬,裝載糧草而行。
서질이 명령을 받고 초경 무렵에 군사를 이끌고 철롱산으로 가니, 과연 촉병 2백여 인이 1백여 頭의 목우유마를 몰고 군량을 裝載하여 가고 있었다.
魏兵一聲喊起,徐質當先攔住。蜀兵盡棄糧草而走。
위병이 한바탕 함성을 지르고 서질이 앞장서 가로막으니, 촉병이 양초를 모두 버리고 달아났다.
質分兵一半,押送糧草回寨;自引兵一半追來。
서질이 군사를 절반으로 나누어 양초를 압송해 영채로 돌아가게 하고, 자신은 군사 절반을 이끌고 추격하였다.
追不到十里,前面車仗橫截去路。
추격하여 10리가 되지 않아, 앞에 수레와 병장기가 갈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質令軍士下馬拆開車仗,只見兩邊忽然火起。
서질이 군사들에게 밀에서 수레와 병장기를 열어보게 하였는데, 홀연히 양옆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質急勒馬回走,後面山僻窄狹處,亦有車仗截路,火光迸起。
서질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지만, 後面의 산속 외지고 좁은 곳에도 수레와 병장기가 갈 길을 차단하고 있고 불빛이 솟아올랐다.
質等冒煙突火,縱馬而出。
서질 등은 冒煙突火하여 말을 달려나갔다.
一聲炮響,兩路軍殺來;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兩路軍이 달려들었다.
左有廖化,右有張翼,大殺一陣,魏兵大敗。
왼쪽은 요화가, 오른쪽은 장익이 있어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위병이 대패하였다.
徐質奮死隻身而走,人馬困乏。
서질이 죽기 살기로 싸우며 隻身으로 달아나지만, 사람도 말도 지쳐 있었다.
正奔走間,前面一枝兵殺到,乃姜維也。
한창 달아나는데, 그 앞으로 一枝兵이 달려오니 바로 강유이었다.
質大驚無措,被維一鎗刺倒坐下馬,徐質跌下馬來,被眾軍亂刀砍死。
서질이 깜짝 놀라 미처 손을 쓰지 못하는데, 강유가 1창으로 (서질이) 탄 말을 쓰러뜨리니, 서질이 거꾸러져 말 아래로 떨어졌는데, 군사들이 난도질하여 찍어 죽였다.
質所分一半押糧兵,亦被夏侯霸所擒,盡降其眾。
서질이 절반으로 나눈 押糧兵도 하후패가 잡아서 모조리 투항하게 하였다.
霸將魏兵衣甲馬匹,令蜀兵穿了,就令騎坐,打著魏軍旗號,從小路徑奔回魏寨來。
하후패가 위병의 衣甲馬匹을 촉병에게 입히고 말을 타게 하고, 위군의 깃발을 들고 지름길을 따라 위채로 질러갔다.
魏軍見本部兵回,開門放入,蜀兵就寨中殺起。
위군이 本部兵이 돌아오는 줄 알고, 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니, 촉병이 영채 안으로 쇄도하였다.
司馬昭大驚,慌忙上馬走時,前面廖化殺來。
사마소가 깜짝 놀라서 말에 올라 달아나는데 앞에서 요화가 달려왔다.
昭不能前進,急退時,姜維引兵從小路殺到。
사마소가 전진하지 못하여 급히 물러나려 할 때,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을 따라 쇄도하였다.
昭四下無路,只得勒兵上鐵籠山據守。
사마소가 四下에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군을 이끌고 철롱산에 올라가서 據守하였다.
原來此山只有一條路,四下皆險峻難上;
원래 이 산에는 오직 一條路가 있는데, 사방이 모두 험준하여 오르기 어려웠다.
其上惟有一泉,止夠百人之飲。
그 위에 샘이 오직 하나 있어서, 百人之飲에 족할 뿐이다.
此時昭手下有六千人,被姜維絕其路口。山上泉水不敷,人馬枯渴。
이때 사마소의 수하에 6천 인이 있는데, 강유가 絕其路口하여 산위의 샘물을 나누어 줄 수 없어서 人馬가 枯渴되었다.
昭仰天長歎曰:
「吾死於此地矣!」
사마소가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하였다.
“내가 이곳에서 죽겠구나!”
後人有詩曰:
후인이 시를 지었다.
<妙算姜維不等閒,魏師受困鐵籠間:
龐涓始入馬陵道,項羽初圍九里山。>
<강유가 묘책을 내니 얕볼 수 없구나, 위군이 철롱산에서 포위되었네.
방연이 처음에 마릉의 길로 접어들고, 항우가 구리산에서 포위된 것과 같네.>
主薄王韜曰:
「昔日耿恭受困,拜井而得甘泉;將軍何不效之?」
主薄 王韜가 말하였다.
“지난날 耿恭이 포위됐을 때 우물에 절하여 甘泉을 얻었습니다. 장군께서 왜 그를 본받지 않으십니까?”
昭從其言,遂上山頂泉邊,再拜而祝曰:
「昭奉詔來退蜀兵,若昭合死,令甘泉枯竭,昭自當刎頸,教部軍盡降;如壽祿未終,願蒼天早賜甘泉,以活眾命!」
사마소가 그 말을 따라, 곧 山頂의 泉邊에 올라가서 再拜하며 축원하였다.
“제가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촉병을 물리치러 왔사온데, 제가 죽어야 마땅하다면 감천이 고갈되게 하십시오. 저는 스스로 목을 찌르고 部軍를 모두 항복하게 하겠습니다.
만약 壽祿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면, 바라옵건대 창천이시여 어서 감천을 내려주시어 衆人의 목숨을 살려주소서!”
祝畢,泉水湧出,取之不竭;因此人馬不死。
축원을 마치자 泉水湧出하는데, 가져다 써도 (샘물이) 다하지 않았다. 이로써 인마들이 죽지 않았다.
卻說
姜維在山下困住魏兵,謂眾將曰:
「昔日丞相在上方谷,不曾捉住司馬懿,吾深為恨;今司馬昭必被吾擒矣.」
한편,
강유는 산 아래에서 위병을 포위하고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지난날 승상께서 上方谷에서 사마의를 잡지 못해 내가 몹시 한스러워했소. 이제 사마소는 틀림없이 내게 잡힐 터이오.”
卻說
郭淮聽知司馬昭困於鐵籠山上,欲提兵來。
한편,
곽회는 사마소가 철롱산 위에 포위당함을 듣고 군을 이끌고 가려 하였다.
陳泰曰:
「姜維會合羌兵,欲先取南安。
今羌兵已到,將軍若徹兵去救,羌兵必乘虛襲我後也。
可先令人詐降羌人,於中取事。
若退了此兵,方可救鐵籠之圍.」
진태가 말하였다.
“강유가 강병과 會合하고 남안을 선취하려 합니다.
이제 강병이 왔으므로, 장군께서 徹兵去救하면 강병이 필시 빈틈을 노려 우리 배후를 습격할 터입니다.
먼저 사람을 강인에게 거짓으로 항복시키고, 중간에서 일을 꾸미게 하십시오.
이들 병력을 물러나게 해야 비로소 鐵籠之圍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다.”
郭淮從之,遂令陳泰,引五千兵,徑到羌王寨內,解甲而入。泣拜曰:
「郭淮妄自尊大,常有殺泰之心,故來投降。
郭淮軍中虛實,某俱知之。
只今夜願引一軍前去劫寨,便可成功。
如兵到魏寨,自有內應.」
곽회가 이를 따라 진태에게 병사 5천을 이끌고 강왕의 영채로 곧장 가게 하였다. 진태가 갑옷을 벗고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말하였다.
“곽회가 망령되이 자신을 크게 높이고 늘 저를 죽일 마음을 품은지라 투항하러 왔습니다.
郭淮軍中의 허실은 제가 모두 압니다.
오늘 밤 원컨대 1군을 이끌고 영채를 습격하겠습니다. 가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군사가 위채에 도착하면 스스로 내응이 있을 터입니다. ”
迷當大喜,遂令俄何燒戈同陳泰來劫魏寨。
迷當이 크게 기뻐하며 俄何燒戈에게 명하여 진태와 함께 위채를 습격하도록 하였다.
俄何燒戈教泰降兵在後,令泰引羌兵為前部。
아하소과가 진태에게 지시하여 降兵을 뒤에 두고, 진태가 강병을 이끌고 前部가 되도록 하였다.
是夜二更,竟到魏寨,寨門大開。
이날 밤 2경에 마침내 위채에 이르니 寨門이 크게 열려있었다.
陳泰一騎馬先入。
진태가 홀로 말을 타고 먼저 들어갔다.
俄何燒戈驟馬挺鎗入寨之時,只叫得一聲苦,連人帶馬,跌在陷坑裏。
아하소과가 말을 달려 창을 치켜들고 入寨하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連人帶馬로 陷坑속으로 거꾸러졌다.
陳泰從後面殺來,郭淮從左邊殺來,羌兵大亂,自相踐踏,死者無數,生者盡降。
진태가 뒤에서 달려들고 곽회가 왼쪽에서 달려드니 강병이 크게 어지러워, 서로 짓밟아 죽은 이가 無數이고 산 자는 모두 항복하였다.
俄何燒戈自刎而死。
아하소과는 스스로 목을 찔러서 죽었다.
郭淮、陳泰,引兵直殺到羌人寨中,迷當大王急出帳上馬時,被魏兵生擒活捉,來見郭淮。
곽회와 진태가 군을 이끌고 羌人寨中에 곧바로 쇄도하니, 미당대왕이 급히 군막을 나와 말에 오르는데, 위병이 生擒活捉하여 곽회에게 데려갔다.
淮慌下馬,親去其縛,用好言撫慰曰:
「朝廷素以公為忠義,今何故助蜀人也?」
곽회가 황망히 말에서 내려 친히 그 결박을 풀어주고 좋은 말로써 撫慰하였다.
“조정에서 평소 공을 忠義之士로 여겼거늘, 이제 무슨 까닭으로 촉인을 돕소?”
迷當慚愧伏罪。淮乃說迷當曰:
「公今為前部,去解鐵籠山之圍,退了蜀兵,吾奏准天子,自有厚賜.」
미당이 慚愧伏罪하였다. 이에 곽회가 미당에게 말하였다.
“공께서 이제 前部가 되어, 鐵籠山之圍를 풀고 촉병을 물리치면, 내가 천자께 주청하여 크나큰 포상이 있을 터이오.”
迷當從之,遂引羌兵在前,魏兵在後,徑奔鐵籠山。
미당이 이를 따라 강병들을 이끌고 앞서고 위병이 뒤따라 철롱산으로 달려갔다.
時值三更,先令人報知姜維。維大喜,教請入相見。
시각이 3경에 이르러 먼저 사람을 보내 강유에게 알리니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들어와서 만나자고 청하도록 하였다.
魏兵多半雜在羌人部內;
위병 多半이 羌人部內에 섞여들었다.
行到蜀寨前,維令大兵皆在寨外屯紮,迷當引百餘人到中軍帳前。
가서 촉채 앞에 이르자, 강유가 대군은 寨外屯紮하라 하니, 미당은 백여 명을 이끌고 중군의 군막 앞에 도착하였다.
姜維、夏侯霸二人出迎。
강유, 하후패, 두 장수가 나가서 맞이하였다.
魏將不等迷當開言,就從背後殺將起來。
위장이 미당의 開言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배후에서 달려들었다.
維大驚,急上馬而走。
강유가 깜짝 놀라 서둘러 말에 올라 달아났다.
羌、魏之兵,一齊殺入。蜀兵四分五落,各自逃生。
강병과 위병이 일제히 돌입하니 촉병이 四紛五落하여 각자 逃生하였다.
維手無器械,腰間止有一副弓箭,走得慌忙,箭皆落了,只有空壺。
강유는 손에 무기가 없고, 허리에 겨우 一副(한 벌)의 弓箭이 있을 뿐인데, 황망히 달아나다 보니 화살을 모두 흘려버려서, 단지 빈 화살통이다.
維望山中而走,背後郭淮引兵趕來;
강유가 산속으로 달아나자, 뒤에서 곽회가 군사를 이끌고 뒤쫓아 갔다.
見維手無寸鐵,乃驟馬挺鎗追之。
강유의 손에 寸鐵도 없음을 보고 곽회가 말을 달려 창을 꼬나쥐고 뒤쫓았다.
看看至近,維虛拽弓弦,連響十餘次。
점점 따라붙자 강유가 빈 활 시위를 당기니 잇달아 십여 차례 소리가 울렸다.
淮連躲數番,不見箭到,知維無箭,乃挂住鋼鎗,拈弓搭箭射之。
곽회가 연속해 몇 번을 피했지만, 화살이 옴이 보이지 않자, 강유에게 화살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강철 창을 걸어 놓고 拈弓搭箭하여 쏜다.
維急閃過,順手接了,就扣在弓弦上;待淮追近,望面門上儘力射去,淮應弦落馬。
강유가 급히 피하더니 손으로 잡아서 바로 시위에 메겼다. 곽회가 追近하기를 기다려 얼굴을 향해 힘껏 쏘아 보낸다. 곽회가 시위 소리와 함께 낙마하였다.
維勒回馬來殺郭淮,魏軍驟至。
강유가 말머리를 돌려 곽회를 죽이러 가는데, 위군이 달려왔다.
維下手不及,只掣得淮鎗而去。
강유가 下手不及하고 다만 곽회의 창을 집어 들고 떠났다.
魏兵不敢追趕,急救淮歸寨,拔出箭頭,血流不止而死。
위병이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급히 곽회를 구출하여 영채로 돌아갔다. 화살촉을 뽑아내지만 피 흐름이 그치지 않아 사망하였다.
司馬昭下山引兵追趕,半途而回。
사마소가 산에서 내려와 군을 이끌고 추격하던 도중에 돌아왔다.
夏侯霸隨後逃至,與姜維一齊奔走。
하후패가 뒤따라 도망하여 이르러니 강유와 함께 달아났다.
維折了許多人馬,一路收紮不住,自回漢中。
강유가 허다한 인마를 잃고 1로의 영채도 수습하지 못한 채 한중으로 철수하였다.
雖然兵敗,卻射死郭淮,殺死徐質,挫動魏國之威,將功補罪。
비록 패전했지만, 곽회를 射死하고 서질을 殺死하여 魏國之威를 挫動하니, 그 공이 죄를 補償하였다.
卻說
司馬昭犒勞羌兵,發遣回國去訖,班師回洛陽,與兄司馬師專制朝權,群臣莫敢不服。
한편,
사마소가 강병을 호궤하고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내고, 군대를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가 그 형 사마사와 더불어 조정의 권력을 專制하니 신하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魏主曹芳每見師入朝,戰慄不已,如針刺背。
위주 조방은 사마소가 조정에 들어옴을 볼 때마다 전율해 마지않으니, 마치 바늘로 등을 찌르는 듯하였다.
一日,芳設朝,見師挂劍上殿,慌忙下榻迎之。
어느 날 조방이 조회를 여는데 사마사가 검을 차고 대전으로 올라오니, 조방이 황망히 용상을 내려가서 맞이하였다.
師笑曰:
「豈有君迎臣之禮也?
請陛下穩便.」
사마사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어찌 임금이 신하를 맞이하는 예법이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穩便하십시오.”
須臾,群臣奏事,司馬師俱自剖斷,並不啟奏魏主。
잠시 뒤 신하들이 상주하자 사마소가 모두 스스로 剖斷하며 위주에게 啟奏하지 않았다.
少時師退,昂然下殿,乘車出內,前遮後擁,不下數千人馬。
얼마 뒤 사마사가 물러가며 거만하게 대전을 내려가 수레를 타고 궁권을 나가는데 前遮後擁이 적어도 數千人馬는 되었다.
芳退入後殿,顧左右止有三人,乃太常夏侯玄,中書令李豐,光祿大夫張緝。
조방이 후전으로 들러와서 좌우를 살펴보니 겨우 세 사람이 있을 뿐인데, 바로 太常 夏侯玄, 中書令李豐, 光祿大夫 張緝이었다.
緝乃張皇后之父,曹芳之皇丈也。
장집은 장황후의 부친이요, 조방의 皇丈이었다.
芳叱退近侍,同三人至密室商議。
조방이 근시를 꾸짖어 내쫓더니 세 사람과 함께 밀실로 가서 상의하였다.
芳執張緝之手而哭曰:
「司馬師視朕如小兒,覷百官如草芥,社稷早晚必歸此人矣!」
조방이 장집의 손을 잡고 곡하며 말하였다.
“사마사가 짐을 어린 애와 같이 보고, 백관을 초개처럼 여기니, 社稷이 조만간 그 사람에게 귀속되고 말겠소!”
言訖大哭。
말을 마치고 크게 곡하였다.
李豐奏曰:
「陛下勿憂。
臣雖不才,願以陛下之明詔,聚四方之英傑,以剿此賊.」
이풍이 아뢰었다.
“폐하 걱정하지 마소서.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바라옵건대 폐하의 현명한 조서를 받아서, 四方之英傑을 모으고, 이 역적을 섬멸하겠나이다.”
夏侯玄奏曰:
「臣兄夏侯霸降蜀,因懼司馬兄弟謀害故耳。
今若剿除此賊,臣兄必回也。
臣乃國家舊戚,安敢坐視奸賊亂國?願同奉詔討之.」
하후현이 아뢰었다.
“신의 형 하후패가 촉나라에 귀순함은 사마형제가 謀害할까 두려워한 까닭일 뿐입니다.
이제 이 역적을 剿除하면 신의 형은 틀림없이 돌아올 터입니다.
신이 바로 국가의 舊戚이온데 어찌 감히 奸賊이 亂國함을 坐視하겠습니까?”
芳曰:
「但恐不能耳.」
조방이 말하였다.
“다만 능히 해내지 못할까 염려할 따름이오.”
三人哭奏曰:
「臣等誓當同心討賊,以報陛下!」
세 사람이 곡하며 아뢰었다
“신들이 맹세코 同心討賊하여 폐하께 보답하겠나이다!”
芳脫下龍鳳汗衫,咬破指尖,寫了血詔,授與張緝,乃囑曰:
「朕祖武皇帝誅董承,蓋為機事不密也。
卿等須謹細,勿洩於外.」
조방이 龍鳳汗衫을 벗더니 손가락 끝을 깨물어 血詔를 써서 장집에게 주며 부탁하였다.
“짐의 조부 무황제께서 동승을 주살함은, 대개 기밀이 엄밀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경들은 반드시 삼가고 신중하여, 절대 바깥으로 누설하지 마시오.”
豐曰:
「陛下何出此不利之言?
臣等非董承之輩,司馬師安比武祖也?
陛下勿疑.」
이풍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어찌 이런 이롭지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신들이 어찌 董承之輩와 같겠으며, 사마사를 어찌 무황제와 비교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걱정하지 마소서.”
三人辭出,至東華門左側,正見司馬師帶劍而來,從者數百人,皆持兵器。
세 사람이 조방에게 작별하고 나와서 東華門 좌측에 이르자, 사마사가 검을 차고 옴이 보이고, 從者 수백 인은 모두 병기를 지니고 있다.
三人立於道傍。師問曰:
「汝三人退朝何遲?」
세 사람이 길가에 서니 사마소가 묻는다.
“세 분의 退朝가 어찌 이렇게 늦으시오?”
李豐曰:
「聖上在內廷觀書,我三人侍讀故耳.」
이풍이 말하였다.
“성상께서 內廷에서 책을 읽으셔서 저희 세 사람이 侍讀했을 뿐입니다.”
師曰:
「所看何書?」
사마사가 말하였다.
“보신 것은 무슨 책이오?”
豐曰:
「乃夏商周三代之書也.」
이풍이 말하였다.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三代之書입니다.”
師曰:
「上見此書,問何故事?」
사마사가 말하였다.
“성상께서 그 책을 읽으시고 무슨 고사를 물으셨소?”
豐曰:
「天子所問,伊尹扶商,周公攝政之事;
我等皆奏曰:
『今司馬大將軍,即伊尹、周公也。』」
이풍이 말하였다.
“천자께서 물으신 것은, 이윤이 상나라를 떠받치고 주공이 섭정하던 일입니다.
모두 아뢰기를,
이제 사마대장군이 바로 伊尹、周公과 같은 분이라고 했습니다.”
師冷笑曰:
「汝等豈將吾比伊尹、周公!
其心實指吾為王莽、董卓!」
사마사가 비웃었다.
“너희가 어찌 나를 이윤과 周公에 비교했겠느냐!
그 마음은 실로 나를 왕망과 동탁이라고 지칭하겠지!”
三人皆曰:
「我等皆將軍門下之人,安敢如此?」
세 사람이 모두 말하였다.
“저희가 모두 장군의 門下之人인데 어찌 감히 그러하겠습니까?“
師大怒曰:
「汝等乃口諛之人!
適間與天子在密室中所哭何事?」
사마사가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너희가 바로 口諛之人이구나!
조금 전에 천자와 함께 밀실에서 통곡함은 무슨 일이냐?”
三人曰:
「實無此狀.」
세 사람이 말하였다.
“참으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師叱曰:
「汝三人淚眼尚紅,如何抵賴!」
사마사가 질타하였다.
“너희 세 사람이 눈물을 흘린 눈이 아직도 빨갛거늘 抵賴하느냐!”
夏侯玄知事已洩,乃厲聲大罵曰:
「吾等所哭者,為汝威挾其主,將謀篡逆耳!」
하후현은 거사가 누설되었음을 알고 소리 높여 크게 꾸짖었다.
“우리가 곡함은 네놈이 그 주인을 威挾해서 장차 篡逆을 꾀하기 때문이다!”
師大怒,叱武士捉夏侯玄。
사마사가 크게 노하여 무사들에게 호통쳐서 하후현을 잡으라 하였다.
玄揎拳裸袖,逕擊司馬師,卻被武士擒住。
하후현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먹을 휘두르며 사마사를 때리려 하지만 무사들에게 사로잡혔다.
師令將各人搜檢,於張緝身畔搜出一龍鳳汗衫,上有血字。
사마사가 各人을 搜檢케 하니 장집의 몸에서 龍鳳汗衫 하나를 찾아내었는데, 그 위에 血字가 적혀 있다.
左右呈與司馬師。
좌우가 사마사에게 바쳤다.
師視之,乃密詔也。
사마사가 보니 바로 密詔였다.
詔曰:
밀조의 내용이 이렇다.
<司馬師兄弟,共持大權,將圖篡逆。
所行詔制,皆非朕意。
各部官兵將士,可同仗忠義,討滅賊臣,匡扶社稷。
功成之日,重加爵賞。>
<사마사 형제가 공히 대권을 장악하고 장차 篡逆을 도모하오.
詔制를 행하는 바도 모두 짐의 뜻이 아니오.
각부의 관병과 장사들은 다함께 충의를 받들어 討滅賊臣하여 사직을 바로잡으시오.
공을 이루는 날에 벼슬과 상을 크게 내릴 터이오.>
司馬師看畢,勃然大怒曰:
「原來汝等正欲謀害吾兄弟,情理難容!」
사마사가 읽고 나서 勃然大怒하였다.
“알고 보니 너희가 음모를 꾸며 우리 형제를 해치려 했구나!
情理상 용서하기 어렵구나!”
遂令將三人腰斬於市,滅其三族。
즉시 영을 내려 세 사람을 저자에서 腰斬하고 그 삼족을 멸하라 하였다.
三人罵不絕口。
세 사람이 욕하며 입을 닫지 않았다.
比臨東市中,牙齒盡被打落,各人含糊數罵而死。
東市에 이르러서 치아가 모조리 맞아 빠져서, 각인이 모호한 목소리로 계속 욕설을 퍼부으며 죽었다.
師直入後宮,魏主曹芳正與張皇后商議此事。
사마사가 곧바로 후궁으로 들어갔다. 위주 조방이 마침 장황후와 이 일을 상의하고 있었다.
皇后曰:
「內廷耳目頗多,倘事洩露,必累妾矣!」
황후가 말하였다.
“궁정 안에 耳目頗多한데, 일이 누설되면 반드시 소첩이 연루될 터입니다!”
正言間,忽見師入,皇后大驚。
말하는데 사마사가 들어오니 황후가 깜짝 놀랐다.
師按劍謂芳曰:
「臣父立陛下為君,功德不在周公之下。
臣事陛下亦與伊尹何別乎?
今反以恩為讎,以功為過,欲與二三小臣,謀害臣兄弟,何也?」
사마사가 검을 매만지며 조방에게 일렀다.
“신의 부친이 폐하를 임금으로 옹립했으니, 공덕이 周公之下에 있지 않습니다.
신이 폐하를 섬김이 역시 이윤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이제 반대로 以恩為讎하고 以功為過하여 두세 사람의 小臣과 더불어 신의 형제를 모해하려 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芳曰:
「朕無此心.」
조방이 말하였다.
“짐은 그런 마음이 없소.”
師袖中取出汗衫,擲之於地曰:
「此誰人所作耶!」
사마사가 소매에서 용봉한삼을 꺼내어 바닥에 던지며 말하였다.
“이것은 누가 쓴 것입니까?”
芳魂飛天外,魄散九霄,戰慄而答曰:
「此皆為他人所逼故也。
朕豈敢興此心?」
조방의 혼이 하늘 밖으로 날아가고 백이 九霄로 흩어지니, 벌벌 떨며 답하였다.
“이것은 모두 타인이 핍박했기 때문이오.
짐이 어찌 감히 이런 마음을 일으키겠소?”
師曰:
「妄誣大臣造反,當加何罪!」
사마사가 말하였다.
“대신을 망령되이 무고하여 造反하였다고 하면 무슨 죄에 해당합니까?”
芳跪告曰:
「朕合有罪,望大將軍恕之!」
조방이 무릎 꿇고 고하였다.
“짐도 함께 죄를 지었소. 대장군께서 용서해 주기를 바라오.”
師曰:
「陛下請起。
國法未可廢也.」
사마사가 말하였다.
“폐하 일어나십시오.
국법을 아직 폐할 수 없습니다.”
乃指張皇后曰:
「此是張緝之女,理當除之!」
장황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장집의 딸이니 이치상 제거해야 마땅합니다.”
芳大哭求免,師不從,叱左右將張后捉出,至東華門內,用白練絞死。
조방이 크게 울며 살려달라 애원하지만, 사마사가 듣지 않고 좌우에게 소리쳐서 장황후를 끌고 가라 하니, 동화문에 이르러 白練으로 絞死하였다.
後人有詩曰:
후인이 시를 지었다.
<當年伏后出宮門,跌足哀號別至尊。
司馬今朝依此例,天教還報在兒孫。>
<지난날 복황후가 궁문 밖으로 끌려 나갈 때, 발을 구르며 지존에게 애달프게 작별을 고했네
사마사가 이 왕조에서 그것을 본받으니, 자손에게 보응이 돌아감을 하늘이 가르치네>
次日,司馬師大會群臣曰:
「今主上荒淫無道,褻近娼優,聽信讒言,閉塞賢路,其罪甚於漢之昌邑,不能主天下。
吾謹按伊尹、霍光之法,別立新君,以保社稷,以安天下,何如?」
다음날 사마사가 신하들을 크게 모아 말하였다.
“지금의 주상이 荒淫無道하고 경망스럽기가 娼優와 가까우며 참언을 듣고 믿어 賢路를 막았소. 그 죄가 한나라의 창읍보다 심하니 천하를 다스릴 수 없소.
내가 삼가 이윤과 곽광의 법을 본받아 따로 새 임금을 옹립함으로써 사직을 보전하고 천하를 안정되게 하려는데 어떻겠소?”
眾皆應曰:
「大將軍行伊、霍之事,所謂應天順人,誰敢違命?」
사람들 모두 응답하였다.
“대장군께서 아윤과 곽광의 사례를 행함은 이른바 應天順人인데 누가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師遂同多官入永寧宮,奏聞太后。
사마사가 곧 많은 관리를 이끌고 永寧宮으로 들어가서 태후에게 奏聞하였다.
太后曰:
「大將軍欲立何人為君?」
태후가 말하였다.
“대장군은 누구를 임금으로 세우고 싶소?”
師曰:
「臣觀彭城王曹據,聰明仁孝,可以為天下之主.」
사마사가 말하였다.
“신이 살펴보건대 팽성왕 曹據가 총명하고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니 가히 천하의 주인이 될 만합니다.”
太后曰:
「彭城王乃老身之叔,今立為君,我何以當之?
今有高貴鄉公曹髦,乃文皇帝之孫。
此人溫恭克讓,可以立之。
卿等大臣,從長計議.」
태후가 말하였다.
“팽성왕은 이 늙은 몸의 숙부인데 이제 임금이 된다면 내가 어찌해야겠소?
현재 고귀향공 조모는 문황제의 손자로 이 사람이 온화하고 공경하며 겸양하니 옹립할 만하오.
경 등 대신들이 從長計議하시오.”
一人奏曰:
「太后之言是也,便可立之.」
누군가 상주하였다.
“태후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서 그분을 옹립해야 합니다.”
眾視之,乃司馬師宗叔司馬孚也。
사람들이 바라보니 바로 사마사의 宗叔 司馬孚다.
師遂遣使往元城召高貴鄉公;請太后升太極殿,召芳責之曰:
「汝荒淫無度,褻近娼優,不可承天下;
當納下璽綬,復齊王之爵,目下起程,非宣召不許入朝.」
사마사가 곧 사자를 원성으로 보내 고귀향공을 부르게 하고 태후에게 청해 태극전으로 가서 조방을 불러 꾸짖게 하였다.
“너는 황음무도하고 경망스럽기가 창우와 같아서 천하를 이어받을 수 없다.
마땅히 옥새를 내려놓고 齊王之爵으로 돌아가야 할 터이니 당장 길을 떠나라. 앞으로 宣召가 아니면 조정에 들어옴을 불허한다.”
芳泣拜太后,納了國寶,乘王車大哭而去。
조방이 눈물 흘리며 태후에게 절하고 국새를 바친 뒤 왕의 수레를 타고 크게 곡하며 떠났다.
只有數員忠義之臣,含淚而送。
몇몇 忠義之臣만이 눈물을 머금고 환송하였다.
後人有詩曰:
후인이 시를 지었다.
<昔日曹瞞相漢時,欺他寡婦與孤兒。
誰知四十餘年後,寡婦孤兒亦被欺。>
<지난날 조만이 한나라의 승상일 적에, 남의 과부와 고아를 업신여겼네.
누가 알았으랴! 사십여 년 뒤에, 과부와 고아가 그런 꼴 당할 줄을!>
卻說
高貴鄉公曹髦,字彥士,乃文帝之孫,東海定王霖之子也。
한편,
高貴鄉公 曹髦는 字가 彥士로서 문제의 손자이고 東海定王 曺霖의 아들이었다.
當日司馬師以太后命宣至,文武官僚,備鑾駕於南掖門外拜迎。
그날 사마사가 태후의 명으로 오게 하니 문무관료가 南掖門 밖에 鑾駕를 준비하고 삼가 영접하였다.
髦慌忙答禮。太尉王肅曰:
「主上不當答禮.」
조모가 황망히 답례하니 太尉王肅이 말하였다.
“주상께서는 답례하시면 不當하옵니다.”
髦曰:
「吾亦人臣也,安得不答禮乎?」
조모가 말하였다.
“나도 인신이거늘 어찌 답례하지 않겠소.”
文武扶髦上輦入宮,髦辭曰:
「太后詔命,不知為何,吾安敢乘輦而入?」
문무관료가 조모를 부축해 난가에 태워서 입궁하려 하니 조모가 사양하였다.
“태후의 詔命이 어떠한지 모르는데 내가 어찌 난가를 타고 입궁하겠소?”
遂步行至太極東堂。司馬師迎著.
걸어서 太極東堂까지 가니 사마사가 영접하였다.
髦先下拜,師急扶起。問候已畢,引見太后。
조모가 먼저 몸을 숙여 절하니 사마사가 급히 부축해 일으킨다. 문후를 마치고 태후에게 데려갔다.
后曰:
「吾見汝年幼時,有帝王之相;
汝今可為天下之主。
務須恭儉節用,布德施仁,勿辱先帝也.」
태후가 말하였다.
“내가 보니 너는 어려서부터 제왕의 상을 갖고 있었다.
네가 이제 천하의 주인이 돼야 하였다.
반드시 공손하고 부지런하고 절약할 것이며 덕과 인을 베풀어 선제를 욕보이지 말라.”
髦再三謙辭。
조모가 두번 세번 사양하였다.
師令文武請髦出太極殿。
사마사가 문무 관료들에게 명하여 조모를 태극전으로 납시도록 청하게 하였다.
是日立為新君,改嘉平六年為正元元年,大赦天下,假大將軍司馬師黃鉞,入朝不趨,奏事不名,帶劍上殿。
그날 새 임금으로 옹립하고 연호를 가평 6년에서 正元 원년으로 고쳤다. 천하에 크게 사면하고, 대장군 사마사에게 黃鉞을 쓰게 하고, 그에게 入朝不趨, 奏事不名, 帶劍上殿의 특전을 내렸다.
文武百官,各有封賜。
문무백관도 각각 벼슬과 포상을 받았다.
正元二年春正月,有細作飛報,說鎮東將軍毌丘儉,揚州刺史文欽,以廢主為名,起兵前來。
정원 2년 봄 정월에 세작이 급보하기를, 鎮東將軍 毌丘儉, 揚州刺史 文欽이 廢主를 명분으로 군대를 일으켜 왔다고 하였다.
司馬師大驚。
사마사가 깜짝 놀랐다.
正是:
漢臣曾有勤王志,魏將還興討賊師。
상황이 아래와 같다.
<漢臣이 일찍이 勤王의 뜻을 가졌었는데, 위장이 또 역적을 토벌하는 군대를 일으키네.>
未知如何迎敵,且看下文分解。
어떻게 대적할까? 아래의 글이 설명함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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