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百零一回
出隴上諸葛妝神, 奔劍閣張郃中計.
제101회
出隴上하여 諸葛이 妝神하고, 奔劍閣하여 張郃이 中計하다.
卻說
孔明用減兵添灶之法,退兵到漢中.
한편,
공명이 減兵添灶之法을 써서 한중으로 退兵하였다.
司馬懿恐有埋伏,不敢追趕,亦收兵回長安去了.
사마의는 매복이 있을까 염려하여 不敢追趕하고 역시 收兵하여 장안으로 돌아갔다.
因此蜀兵不曾折了一人.
이 때문에 蜀兵을 一人도 잃지 않았다.
孔明大賞三軍已畢,回到成都,入見後主,奏曰:
「老臣出了祁山,欲取長安,忽承陛下降詔召回,不知有何大事?」
공명이 삼군을 크게 상주고 나서 回到成都하여 入見後主하고 아뢰었다.
“老臣이 기산으로 나가서 장안을 취하려는데,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돌아오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무슨 큰일이 있는지요?”
後主無言可對.
후주가 대답할 말이 없었다.
良久乃曰:
「朕久不見丞相之面,心甚思慕,故特詔回,別無他事.」
한참이 지나 이윽고 말하였다.
“짐이 오래도록 不見丞相之面이어 心甚思慕하여 故特詔回하였지 別無他事이오.”
孔明曰:
「此非陛下本心,必有奸臣讒譖,言臣有異志也.」
“이것은 陛下本心이 아니고 틀림없이 奸臣이 讒譖하기를, 臣有異志라고 하였을 터입니다.”
後主聞言,默然無語.
후주가 말을 듣고 默然無語이었다.
孔明曰:
「老臣受先帝厚恩,誓以死報.
今若內有奸邪,臣安能討賊乎?」
공명이 말하였다.
“老臣受先帝厚恩하고 誓以死報입니다.
이제 內有奸邪이면 신이 어찌 討賊할 수 있겠습니까?”
後主曰:
「朕因過聽宦官之言,一時召回丞相. 今日茅塞方開,悔之不及矣.」
후주가 말하였다.
“짐이 宦官之言을 過聽하고, 일시 승상을 불러들였소.
오늘에야 茅塞方開이나 悔之不及이오.”
孔明遂喚眾宦官究問,方知是苟安流言.
공명이 곧 환관들을 불러 究問해서 비로소 구안의 유언비어임을 알았다.
急令人捕之,已投魏國去了.
급히 그를 체포하게 하지만, 이미 魏國으로 가버렸다.
孔明將妄奏的宦官誅戮,餘皆廢出宮外.
공명은 妄奏的宦官을 誅戮하고, 나머지 모두를 廢出宮外하였다.
又深責蔣琬、費褘等不能覺察奸邪,規諫天子.
또한 장완과 비위 등이 覺察奸邪하여 規諫天子하지 못함을 몹시 질책하였다.
二人唯唯服罪.
二人이 ‘예, 예’하며 죄를 시인하였다.
孔明拜辭後主,復到漢中,一面發檄令李嚴應付糧草,仍運赴軍前;一面再議出師.
공명이 拜辭後主하고 復到漢中하여 한편으로 이엄에게 격문을 보내 應付糧草하여 運赴軍前하게 명령하고, 한편으로 出師를 다시 논의하였다.
楊儀曰:
「前數興兵,軍力罷敝,糧又不繼.
今不如分兵兩班,以三個月為期:
且如二十萬之兵,只領十萬出祁山,住了三個月,卻教這十萬替回.
循環相轉,若此則兵力不乏.
然後徐徐而進,中原可圖矣.」
양의가 말하였다.
“앞서 수차 출병하여 軍力罷敝하고 糧又不繼입니다.
이제 군사를 分兵兩班하여 석 달을 기한으로, 만약 2십만 병력이라면 십만 병력만 거느리고 기산으로 나가서 3개월 머물고, 다시 다른 십만 병력으로 바꾸어 순환하도록 하여, 군사를 지치게 않게 함이 낫겠습니다.
그런 뒤 서서히 진군하면 중원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다.”
孔明曰:
「此言正合我意.
吾伐中原,非一朝一夕之事,正當為此長久之計.」
“이 말이 참으로 내 뜻과 합치하오.
내가 중원을 정벌함은 一朝一夕之事가 아니니, 마땅히 이렇게 長久之計이어야 하오.”
遂下令,分兵兩班,限一百日為期,循環相轉,違限者按軍法處治.
곧 명령을 내려 군사를 둘로 나누고, 100일을 기한으로 순환하며 교대하게 하고, 기한을 어기는 자들을 군법대로 처벌하게 하였다.
建興九年春二月,孔明復出師伐魏.
건흥 9년 봄 2월, 공명이 다시 出師伐魏하였다.
時魏太和五年也.
이때 위나라는 태화 5년이었다.
魏主曹叡知孔明又伐中原,急召司馬懿商議.
위주 조예는 공명이 다시 伐中原함을 알고, 서둘러 사마의를 불러 상의하였다.
懿曰:
「今子丹已亡,臣願竭一人之力,剿除寇賊,以報陛下.」
사마의가 말하였다.
“이제 자단은 이미 죽었지만, 신이 바라옵건대 一人之力을 다하여 寇賊을 剿除함으로써 폐하께 보답하겠습니다.”
叡大喜,設宴待之.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次日,人報蜀兵寇急.
다음날 누군가 보고하기를, 蜀兵이 침범해 위급하다고 하였다.
叡即命司馬懿出師禦敵,親排鑾駕送出城外.
조예가 즉시 사마의에게 出師禦敵하라 명하고 친히 어가를 타고 城外에서 送出하였다.
懿辭了魏主,徑到長安,大會諸路人馬,計議破蜀兵之策.
사마의가 위주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장 장안으로 가서 諸路人馬를 크게 모으고, 破蜀兵之策을 計議하였다.
張郃曰:
「吾願引一軍去守雍、郿,以拒蜀兵.」
장합이 말하였다.
“제가 바라건대 1군을 이끌고 옹성과 미성을 지키러 가서, 촉병을 막겠습니다.”
懿曰:
「吾前軍不能獨當孔明之眾,而又分兵為前後,非勝算也.
不如留兵守上邽,餘眾悉往祁山.
公肯為先鋒否?」
사마의가 말하였다.
“우리 前軍이 홀로 공명의 대군을 막을 수도 없고, 또한 군사를 앞뒤로 나눠도 승산이 없소. 군사를 주둔하여 上邽를 지키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기산으로 감만 못하오.
공께서 선봉에 서시겠소?”
郃大喜曰:
「吾素懷忠義,欲盡心報國,惜未遇知己;
今都督肯委重任,雖萬死不辭.」
장합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제가 평소 충의를 품고 盡心報國하고자 했으나 未遇知己하여 애석하였습니다.
이제 도독께서 중임을 맡기려 하시니, 비록 萬死라도 不辭하겠습니다.”
於是司馬懿令張郃為先鋒,總督大軍;又令郭淮守隴西諸郡.
이에 사마의가 장합을 선봉으로 삼아 대군을 總督하게 하고, 곽회에게 농서 지방의 여러 군현을 수비하게 하였다.
其餘眾將各分道而進.
나머지 장수들도 각각 길을 나눠 진군하였다.
前軍哨馬報說:
「孔明率大軍望祁山進發,前部先鋒王平、張嶷,徑出陳倉,過劍閣,由散關望斜谷而來.」
前軍의 哨馬가 보고하였다.
“공명이 대군을 이끌고 기산으로 출발했습니다. 前部의 선봉으로 왕평, 장의가 곧장 진창을 나가서 검각을 지나 산관을 경유해, 야곡으로 오고 있습니다.”
司馬懿謂張郃曰:
「今孔明長驅大進,必將割隴西小麥,以資軍糧.
汝可結營守祁山,吾與郭淮巡略天水諸郡,以防蜀兵割麥.」
사마의가 장합에게 일렀다.
“이제 공명이 長驅大進하니 틀림없이 농서 일대의 밀을 베어서 군량을 대려 할 터이오.
그대는 기산에 結營하시오. 나는 곽회와 더불어 천수 일대의 여러 군을 돌며 적병이 밀을 벰을 막겠소.”
郃領命,遂引四萬兵守祁山.
장합이 명령을 받고 곧 4만 군을 이끌고 기산을 수비하였다.
懿引大軍望隴西而去.
사마의는 대군을 이끌고 농서를 향해 갔다.
卻說
孔明兵至祁山安營已畢,見渭濱有魏軍隄備,乃謂諸將曰:
「此必是司馬懿也.
即今營中乏糧,屢遣人催併李嚴運米應付,卻只是不到.
吾料隴上麥熟,可密引兵割之.」
한편,
공명의 병력이 기산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고 나서, 渭濱에 魏軍이 방비함을 보고 여러 장수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사마의가 틀림없소.
지금 영채 안에 군량이 모자라, 여러 차례 이엄에게 사람을 파견해 군량미를 보내라 재촉했지 만 여태 보내오지 않고 있소.
내가 헤아리건대 隴上의 밀이 익었을 터이니, 몰래 군사를 이끌고 가서 밀을 베어야겠소.”
於是留王平、張嶷、吳班、吳懿四將守祁山營,孔明自引姜維、魏延等諸將,前到鹵城.
이에 왕평, 장의, 오반, 오의 네 장수를 남겨서 기산의 영채를 지키게 하고, 공명 스스로 강유, 위연 등 장수들을 이끌고 鹵城으로 갔다.
鹵城太守素知孔明,慌忙開城出降.」
鹵城太守는 평소 공명을 아는지라 황망히 開城出降하였다.
孔明撫慰畢,問曰:
「此時何處麥熟?」
공명이 撫慰하고 나서 물었다.
“지금쯤 어디에 밀이 익었소?”
太守告曰:
「隴上麥已熟.」
태수가 고하였다.
“농상의 밀은 이미 익었습니다.”
孔明乃留張翼、馬忠守鹵城,自引諸將并三軍望隴上而來.
공명이 이에 장익과 마충을 남겨 노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여러 장수와 아울러 3군을 이끌고 농상으로 갔다.
前軍回報說:
「司馬懿引兵在此.」
前軍에서 되돌아와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와 있습니다.”
孔明驚曰:
「此人預知吾來割麥也!」
공명이 놀라 말하였다.
“이 자가 내가 밀을 베러 올 줄 미리 알았구나!”
即沐浴更衣,推過一般三輛四輪車來,車上皆要一樣妝飾.
즉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더니, 똑같은 형태의 사륜거 3량을 밀고 오게 하였다. 수레마다 같은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此車乃孔明在蜀中預先造下的.
이 수레는 공명이 촉에 있을 때 미리 만들어 두었던 것이었다.
當下令姜維引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伏在上邽之後;
공명이 강유에게 1천 군을 이끌고 수레를 호위하고 5백 병사는 북을 요란히 두들기며 上邽의 뒷쪽에 매복하라 하였다.
馬岱在左,魏延在右,亦各引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
마대는 우측에, 위연은 우측에 역시 각각 1천 군을 이끌고 수레를 호송하고 5백 병사는 북을 요란히 두드렸다.
每一輛車,用二十四人,皂衣跣足,披髮仗劍,手執七星皂旛,在左右推車.
수레 1량마다 24인을 쓰는데, 검은 옷에 맨발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쥐고, 북두칠성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손에 들고, 좌우에서 수레를 밀게 하였다.
三人各受計,引兵推車而去.
세 사람이 계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수레를 밀며 갔다.
孔明又令三萬軍皆執鐮刀、馱繩,伺候割麥.
공명이 다시 3만 병사에게, 제각기 낫과 짐을 묶는 노끈을 들고 밀을 베기를 기다리게 하였다.
卻選二十四個精壯之士,各穿皂衣,披髮跣足,仗劍簇擁四輪車,為推車使者.
그리고 24 인의 精壯之士를 뽑아 각각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로 검을 쥐고 사륜거를 둘러싸게 하고, ‘推車使者’로 삼았다.
令關興結束做天蓬模樣,手執七星皂旛,步行於車前.
관흥에게 天蓬처럼 차려입게 하고 북두칠성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손에 쥐고, 수레 앞을 걸어가게 하였다.
孔明端坐於上,望魏營而來.
공명은 위에 端坐하고 魏營 쪽으로 왔다.
哨探軍見之大驚,不知是人是鬼,火速報知司馬懿.
哨探軍이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이게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어 부리나케 사마의에게 알렸다.
懿自出營視之,只見孔明簪冠鶴氅,手搖羽扇,端坐於四輪車上;左右二十四人,披髮仗劍;前面一人,手執皂旛,隱隱似天神一般.
사마의가 직접 영채를 나가 살펴보니, 공명이 簪冠鶴氅에, 手搖羽扇하며, 四輪車에 端坐해 있다. 좌우로 24인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쥐고 있었다. 앞쪽의 한 사람은 손에 검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형상이 요란하여 天神과 한가지인 듯하였다.
懿曰:
「這個又是孔明作怪也!」
사마의가 말하였다.
“이것도 공명이 作怪함이다!”
遂撥二千人馬分付曰:
「汝等疾去,連車帶人,盡情都捉來!」
곧 2천 인마를 뽑아 분부하였다.
“너희는 달려가서 수레와 그에 딸린 사람을 모조리 잡아 오너라!”
魏兵領命,一齊追趕.
위병이 명을 받고 일제히 뒤쫓았다.
孔明見魏兵趕來,便教回車,遙望蜀營緩緩而行.
공명은 위병이 뒤쫓음을 보고, 回車를 지시하고 멀리 蜀營 쪽으로 느릿느릿 갔다.
魏兵皆驟馬追趕,但見陰風習習,冷霧漫漫.
위병이 모두 말을 빨리 몰아 뒤쫓지만 陰風이 슬슬 불고, 冷霧가 가득 피어올랐다.
盡力趕了一程,追之不上,各人大驚,都勒住馬言曰:
「奇怪!
我等急急趕了三十里,只見在前,追之不上,如之奈何?」
힘을 다해 一程을 쫓아도 따라잡지 못하였다. 사람마다 깜짝 놀라며 모두 말을 멈춰 세우고 말하였다.
“기괴한 일이오!
우리가 급급하게 30리를 쫓아왔으나 앞에 보이는데도 따라잡지 못하니, 어찌해야 하오?”
孔明見兵不來,又令推車過來,朝著魏兵歇下.
공명은 위병이 오지 않음을 보고 다시 수레를 밀고 위병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지나갔다.
魏兵猶豫良久,又放馬趕來.
위병들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몰아 쫓아왔다.
孔明復回車慢慢而行.
공명이 다시 수레를 돌려 천천히 갔다.
魏兵又趕了二十里,只見在前,不曾趕上,盡皆痴呆.
위병이 20리를 추격해도 앞에 보이기는 하는데, 따라잡을 수 없어 모두 멍하니 쳐다보았다.
孔明教回過車,朝著魏軍,推車倒行.
공명이 수레를 돌리게 하여, 魏軍 쪽으로 수레를 밀며 되돌아왔다.
魏兵又欲追趕. 後面司馬懿自引一軍到,傳令曰:
「孔明善會八門遁甲,能驅六丁六甲之神.
此乃六甲天書內『縮地』之法也. 眾軍不可追之.」
위병들이 다시 뒤쫓으려는데 뒤에서 사마의가 1군을 이끌고 도착하여 명령을 전하였다.
“공명은 八門遁甲에 능하고, 六丁六甲의 신들을 부릴 수 있소.
이것은 <六甲天書>의 『縮地』之法이니, 병사들이 추격해선 안 되오.”
眾軍方勒馬回時,左勢下戰鼓大震,一彪軍殺來,懿急令兵拒之.
병사들이 말을 멈추고 돌아가려는데, 왼쪽에서 戰鼓大震하며 一彪軍이 달려오니 사마의가 급히 영을 내려 막게 하였다.
只見蜀兵隊裏二十四人,披髮仗劍,皂衣跣足,擁出一輛四輪車,車上端坐孔明,簪冠鶴氅,手搖羽扇.
촉병 대열 속에서 24인이 披髮仗劍하고 皂衣跣足으로 一輛四輪車를 擁衛해 나오는데, 수레 위에 단좌한 공명이 簪冠鶴氅하고 手搖羽扇하였다.
懿大驚曰:
「方纔那個車上坐著孔明,趕了五十里,追之不上,這裏如何又有孔明?
怪哉!
怪哉!」
사마의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방금 저 수레 위에 앉은 공명을 50리를 추격해도 따라잡지 못했는데, 여기에 또 공명이 있는가?
괴이하도다!
괴이하도다!”
言未畢,右勢下戰鼓又鳴,一彪軍殺來:
四輪車上亦坐著一個孔明;左右亦有二十四人,皂衣跣足,披髮仗劍,推車而來.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오른쪽에서 북소리가 울리더니 一彪軍이 달려오는데, 사륜거에 역시 하나의 공명이 앉아 있었다. 좌우에도 二十四人이 皂衣跣足하고 披髮仗劍하여 수레를 밀고 왔다.
懿心中大疑,回顧諸將曰:
「此必神兵也!」
사마의가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하여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神兵이오!”
眾軍心下大亂,不敢交戰,各自奔走.
병사들 마음이 큰 혼란에 빠져 不敢交戰하고, 제각기 달아났다.
正行之際,忽然鼓聲大震,又一彪軍殺來:
當先一輛四輪車,孔明端坐於上,左右前後推車使者,同前一般.
달아나려는 즈음에 갑자기 鼓聲大震하며, 또다시 一彪軍이 달려왔다. 앞장선 사륜거 1량에 공명에 단좌하고 좌우에서 수레를 밀고 오는 使者도 종전과 한가지였다.
魏兵無不駭然.
위병이 깜짝 놀라지 않은 이가 없었다.
司馬懿不知是人是鬼,又不知多少蜀兵,十分驚懼,急急引兵奔入上邽,閉門不出.
사마의는 이들이 귀신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고 촉병의 多少를 알지 못하여,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여 다급히 병사들을 이끌고 상규성으로 달려가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此時孔明早令三萬精兵將隴上小麥割盡,運赴鹵城打晒去了.
이때 공명이 재빨리 3만 정병들에게 명하여 농상 지방의 밀을 모두 베고, 鹵城으로 운반해 타작하고 볕에 말리게 하였다.
司馬懿在上邽城中,三日不敢出城;後見蜀兵退去,方敢令軍出哨.
사마의가 상규성에서 3일간 감히 出城하지 못하였다. 뒤에 蜀兵退去를 보고 그제야 군사를 내보내 哨探하게 하였다.
於路捉得一蜀兵,來見司馬懿.
도중에 捉得一蜀兵하여 사마의를 뵙게 하였다.
懿問之. 其人告曰:
「某乃割麥之人,因走失馬匹,被捉前來.」
사마의가 물으니 그 사람이 고하였다.
“저는 밀을 베던 사람인데 가다가 마필을 잃어 이렇게 잡혀 왔습니다.”
懿曰:
「前者是何神兵?」
“그전의 신병들은 무엇인가?”
答曰:
「三路伏兵,皆不是孔明,乃姜維、馬岱、魏延也.
每一路只有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
只是先來誘陣的車上乃孔明也.」
답하였다.
“三路伏兵은 모두 공명이 아니오라 강유, 마대, 위연이었습니다.
1로 마다 겨우 1천 군이 護車하고, 5백 군이 擂鼓하였습니다.
다만 먼저 와서 유인하던 수레 위의 사람이 공명이었습니다.”
懿仰天長歎曰:
「孔明有神出鬼沒之機!」
사마의가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하였다.
“공명은 神出鬼沒之機를 가졌구나!”
忽報副都督郭淮入見.
문득 부도독 곽회가 와서 뵙는다고 보고하였다.
懿接入禮畢. 淮曰:
「吾聞蜀兵不多,見在鹵城打麥,可以擊之.」
사마의가 맞아들여 인사를 마치자 곽회가 말하였다.
“제가 듣기에 촉병이 많지 않고 현재 노성에서 밀을 타작한다고 하니, 이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懿細言前事. 淮笑曰:
「只瞞過一時;今已識破,何足道哉!
吾引一軍攻其後,公引一軍攻其前,鹵城可破,孔明可擒矣.」
사마의가 前事를 자세히 말하니 곽회가 웃으며 말하였다.
“한때 기만했을 따름이고 이제 識破했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1군을 이끌고 그들의 후미를 칠 테니, 공께서 1군을 이끌고 그들의 선두를 치면, 노성을 깨뜨리고 공명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懿從之,遂分兵兩路而來.
사마의가 이를 따라 곧 分兵兩路하고 갔다.
卻說
孔明引軍在鹵城打晒小麥,忽喚諸將聽令曰:
「今夜敵人必來攻城.
吾料鹵城東西麥田之內,足可伏兵;
誰敢為我一往?」
한편,
공명은 군을 이끌고 노성에서 밀을 타작하고 말리면서 장수들을 불러들여 군령을 듣게 하였다.
“오늘 밤 敵人이 틀림없이 성을 치러 올 터이오.
내 생각에 노성의 동서쪽 麥田之內에 복병할 만하오.
누가 나를 위해 용감히 가겠소?”
姜維、魏延、馬忠、馬岱四將出曰:
「某等願往.」
강유, 위연, 마충, 마대 네 장수가 나와서 말하였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孔明大喜,乃命姜維、魏延各引二千兵,伏於東南、西北兩處;
「只聽炮響,四角一齊殺來.」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강유, 위연에게 명하여, 각각 2천 병을 이끌고 동남쪽과 서북쪽 두 곳에 매복하게 하였다.
“포성이 울리면 四角에서 일제히 돌격하시오.”
馬岱、馬忠各引二千兵,伏於西南、東北兩處:
마대, 마충도 각각 2천 병을 이끌고 서남쪽과 동북쪽 두 곳에 매복하게 하고 말하였다.
四將受計,引兵去了.
네 장수가 계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孔明自引百餘人,各帶火炮出城,伏在麥田之內等候.
공명이 직접 100여 인을 이끌고 가는데 제각기 화포를 가지고 성을 나가 麥田之內에 숨어 기다렸다.
卻說
司馬懿引兵徑到鹵城下,日已昏黑,乃謂諸將曰:
「若白日進兵,城中必有準備;
今可乘夜晚攻之.
此處城低壕淺,可便打破.」
한편,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고 곧장 노성 아래에 도착할 때 해가 벌써 昏黑하니,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밝은 대낮에 진군하면 城中에서 필시 준비할 터이오.
夜晚을 틈타서 공격해야겠소.
이곳은 城低壕淺하니 곧 함락할 수 있겠소. ”
遂屯兵城外.
곧 성 밖에 군사를 주둔하였다.
一更時分,郭淮亦引兵到.
초경 무렵에 곽회도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였다.
兩下合兵,一聲鼓響,把鹵城圍得鐵桶相似.
두 부대가 군사를 합쳐 한 차례 북소리를 울리며 노성을 철통같이 포위하였다.
城上萬弩齊發,矢石如雨,魏兵不敢前進.
성 위에서 萬弩齊發하고, 矢石如雨니 위병이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다.
忽然魏軍中信炮連聲,三軍大驚,又不知何處兵來.
갑자기 魏軍中에서 信砲가 잇달아 울리니 3군이 깜짝 놀라지만, 어느 곳의 군사가 오는지 알지 못하였다.
淮令人去麥田搜時,四角上火光沖天,喊聲大震,四路蜀兵,一齊殺至;
곽회가 사람들을 시켜 밀밭을 수색하자, 四角上에서 火光沖天하고 喊聲大震하며, 4로에서 촉병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鹵城四門大開,城內兵殺出:
노성 4문이 활짝 열리며, 성안에서 병력이 달려 나왔다.
裏應外合,大殺了一陣,魏兵死者無數.
裏應外合하여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위병에 죽은 이가 무수히 많았다.
司馬懿引敗兵奮死突出重圍,占住了山頭;
사마의가 敗兵을 이끌고 奮死하여 突出重圍하고 산꼭대기를 점령해 주둔하였다.
郭淮亦引敗兵奔到山後紮住.
곽회도 패병을 이끌고 산 뒤로 달아나 주둔하였다.
孔明入城,令四將於四角下安營.
공명이 入城하여 네 장수에게 명하여, 4각에 영채를 세우라 하였다.
郭淮告司馬懿曰:
「今與蜀兵相持許久,無策可退;
目下又被殺了一陣,折傷三千餘人;
若不早圖,日後難退矣.」
곽회가 사마의에게 고하였다.
“이제 촉병과 대치한 지 許久한데 격퇴할 계책이 없습니다.
目下 또 한바탕 공격받아 3천여 인을 잃었습니다.
조속히 도모하지 않으면 얼마 뒤에는 퇴각하기도 어렵겠습니다.”
懿曰:
「當復如何?」
사마의가 말하였다.
“다시 어찌해야 좋겠소?”
淮曰:
「可發檄文調雍、涼人馬併力剿殺.
吾願引軍襲劍閣,截其歸路,使彼糧草不通,三軍慌亂.
那時乘勢擊之,敵可滅矣.」
곽회가 말하였다.
“격문을 보내어 옹주와 양주의 인마를 調發하여 힘을 합쳐서 剿殺하십시오.
원컨대 제가 군사를 이끌고 검각을 습격하여, 그 歸路를 끊고 저들의 糧草가 통하지 않게 하여 三軍이 慌亂하게 하겠습니다.
그때 형세를 타서 공격하면 적군을 멸할 수 있겠습니다.”
懿從之,即發檄文星夜往雍、涼調撥人馬.
사마의가 이를 좇아 즉시 격문을 발하여 밤새 옹주와 양주로 가서 인마를 調撥하게 하였다.
不一日,大將孫禮引雍、涼諸郡人馬到.
하루가 안 되어 대장 손례가 옹주와 양주 여러 군의 인마를 거느리고 도착하였다.
懿即令孫禮約會郭淮去襲劍閣.
사마의가 즉시 손례에게 명령하여 곽회와 회합하여 검각을 기습하러 가게 하였다.
卻說
孔明在鹵城相持日久,不見魏兵出戰,乃喚姜維、馬岱入城聽令曰:
「今魏兵守住山險,不與吾戰:
一者料吾麥盡無糧;
二者令兵去襲劍閣,斷吾糧道也.
汝二人各引一萬軍先去守住險要,魏兵見有準備,自然退去.」
한편,
공명이 노성에서 대치한 지 오래되었으나 위병이 출전함을 보지 못하자, 마대와 강유를 성으로 불러들여 군령을 듣게 하였다.
“이제 위병이 守住山險하며 우리와 싸우지 않으니,
첫째 우리의 밀이 떨어져서 군량이 없다고 여겨서요,
둘째 군사를 보내 검각을 습격해서 우리의 糧道를 끊으려 함이오.
그대 두 사람은 각각 1만 군을 이끌고 먼저 가서 險要를 수비하시오.
위병은 준비가 있음을 보면 스스로 퇴각할 터이오.”
二人引兵去了.
두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長史楊儀入帳告曰:
「向者丞相令大兵一百日一換,今已限足,漢中兵已出川口,前路公文已到,只待會兵交換;
見存八萬軍,內四萬該與換班.」
장사 양의가 군막으로 들어와 고하였다.
“접때 승상께서 大兵을 1백 일에 한 번씩 교대하라 명하셨는데, 이제 기한이 충족되어 한중 병력이 천구로 나오고 앞서 공문이 이미 도착하여 병력 교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8만 병사 가운데 4만 병사가 교대에 해당합니다.”
孔明曰:
「既有令,便教速行.」
공명이 말하였다.
“이미 군령을 내렸으니, 速行하게 하시오.”
眾軍聞知,各各收拾起程.
군사들이 듣고, 각각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忽報孫禮引雍、涼人馬二十萬來助戰,去襲劍閣,司馬懿自引兵來攻鹵城了.
문득 보고하기를, 손례가 옹주와 양주의 인마 20만을 거느리고 助戰하러 와서 검각을 습격하러 갔고, 사마의는 직접 병사를 이끌고 노성을 공격하러 온다고 하였다.
蜀兵無不驚駭.
촉병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楊儀入告孔明曰:
「魏兵來得甚急,丞相可將換班軍且留下退敵,待新來兵到,然後換之.」
양의가 들어와 공명에게 고하였다.
“위병이 심히 급하게 오니 승상께서 換班軍을 우선 留下退敵하고 新來兵到를 기다려 그 후에 교대하게 하십시오.”
孔明曰:
「不可.
吾用兵命將,以信為本.
既有令在先,豈可失信?
且蜀兵應去者,皆準備歸計,其父母妻子倚扉而望;吾今便有大難,決不留他.」
“불가하오.
내 用兵命將에 믿음을 근본으로 하오.
먼저 군령을 내려놓고 어찌 믿음을 저버리겠소?
게다가 촉병 중에 가야 할 이들은 모두 돌아갈 계획을 준비했고 그 부모처자는 사립문에 기대어 바라보고 있을 터이오.
내게 이제 큰 곤란이 있더라도 결코 그들을 붙잡지 않겠소.”
即傳令教應去之兵,當日便行.
즉시 명령을 전하여 應去之兵은 당일에 가게 하였다.
眾軍聞之,皆大呼曰:
「丞相如此施恩於眾,我等願且不回,各捨一命,大殺魏兵,以報丞相!」
병사들이 이를 듣고 모두 크게 외쳤다.
“승상께서 이토록 군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저희는 바라옵건대 일단 돌아가지 않고 각각 목숨을 바쳐서 위병을 크게 무찔러 승상께 보답하겠습니다!”
孔明曰:
「爾等該還家,豈可復留於此?」
공명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늘 어찌 다시 이곳에 잡아둘 수 있겠느냐?”
眾軍皆要出戰,不願回家.
병사들이 모두 출전하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孔明曰:
「汝等既要與我出戰,可出城安營,待魏兵到,莫待他息喘,便急攻之:
此以逸待勞之法也.」
공명이 말하였다.
“너희가 나와 함께 출전하겠다니 성 밖으로 나가서 영채를 세우고 위병이 오기를 기다리되, 그들이 息喘할 틈을 주지 말고 서둘러 공격하라.
이것이 以逸待勞의 병법이다.”
眾兵領命,各執兵器,懽喜出城,列陣而待.
병사들이 명령을 듣고 각각 병기를 들고 懽喜出城하여 列陣하고 기다렸다.
卻說
西涼人馬倍道而來,走的人馬困乏;
한편,
서량의 인마는 길을 재촉해 오는지라 달려온 인마가 피로하였다.
方欲下營歇息,被蜀兵一擁而進,人人奮勇,將銳兵驍,雍、涼兵抵敵不住,望後便退.
막 영채를 세우고 쉬려는데 촉병이 떼를 지어 나와서 人人奮勇하고 將銳兵驍하니, 옹주, 양주 병력이 抵敵不住하고 뒤로 퇴각하였다.
蜀兵奮力追殺,殺得那雍、涼兵屍橫遍野,血流成渠.
촉병이 奮力追殺하니 죽인 옹주와 양주의 병사의 屍橫遍野하고 血流成渠이었다.
孔明出城,收聚得勝之兵,入城賞勞.
공명이 성을 나와 승리를 거둔 병사를 거두고 入城하여 상을 주며 위로하였다.
忽報永安李嚴有書告急.
갑자기 영안의 이엄이 서신을 보내 告急하였다.
孔明大驚,拆封視之.
공명이 깜짝 놀라 서신을 뜯어서 보았다.
書云:
<近聞東吳令人入洛陽,與魏連和.
魏令吳取蜀,幸吳尚未起兵.
今嚴探知消息,伏望丞相,早作良圖.>
편지에 이르기를,
‘근래에 듣자 하니, 동오에서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 위나라와 화친를 맺었습니다.
위나라가 동오에게 촉을 치라고 하였으나, 다행히 오나라가 아직 起兵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가 소식을 탐지했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승상께서 어서 좋은 계책을 마련하십시오.’라 하였다.
孔明覽畢,甚是驚疑,乃聚眾將曰:
「若東吳興兵寇蜀,吾須索速回也.」
공명이 읽고 나서 몹시 놀라고 의심이 들어 장수들을 모으고 말하였다.
“동오가 興兵寇蜀하면 우리는 긴급히 돌아가야 하오.”
即傳令,教祁山大寨人馬,且退回西川:
「司馬懿知吾屯軍在此,必不敢追趕.」
즉시 전령하여, 기산 대채의 인마들에게 우선 서천으로 퇴각하라 지시하였다.
“사마의가 우리가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킨 줄 알면, 절대로 감히 추격하지 못할 터이다.”
於是王平、張嶷、吳班、吳懿,分兵兩路,徐徐退入西川去了.
이에 왕평, 장의, 오반, 오의가 分兵兩路하고 서서히 서천으로 퇴각해 들어갔다.
張郃見蜀兵退去,恐有計策,不敢來追,乃引兵往見司馬懿曰:
「今蜀兵退去,不知何意?」
장합은 蜀兵退去함을 알았으나, 恐有計策하여 不敢來追하고 군사를 이끌고 사마의를 찾아가 말하였다.
“이제 촉병이 퇴각함은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습니까?”
懿曰:
「孔明詭計極多,不可輕動.
不如堅守,待他糧盡,自然退去.」
사마의가 말하였다.
“공명은 속임수가 극히 많으니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되오.
견고히 수비하며 그들의 군량이 바닥나서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림이 낫소.”
大將魏平出曰:
「蜀兵拔祁山之營而退,正可乘勢追之.
都督按兵不動,畏蜀如虎,奈天下笑何?」
대장 魏平이 나와서 말하였다.
“촉병이 기산의 영채를 거둬 퇴각하니 이때 형세를 틈타서 추격해야 합니다.
도독께서 按兵不動하며 畏蜀如虎하시니 천하 사람들의 비웃음을 어찌하시렵니까?”
懿堅執不從.」
사마의는 고집을 꺾지 않고 따르지 않았다.
卻說
孔明知祁山兵已回,遂令楊儀、馬忠入帳,授以密計,令先引一萬弓弩手,去劍閣、木門道,兩下埋伏;
若魏兵追到,聽吾炮響,急滾下木石,先截其去路,兩頭一齊射之.
한편,
공명은 기산의 병력이 돌아갔음을 알고 마충과 양의를 군막으로 불러들여 密計를 주기를,
‘먼저 1만 명의 弓弩手를 이끌고 검각의 木門道로 가서 양쪽에 매복하시오.
만약 위병이 추격해 오면 아군의 炮響을 듣는 대로 나무와 돌을 굴러 떨어뜨려 그 갈 길을 막은 뒤 양쪽에서 일제히 사격하시오.’
라고 하였다.
二人引兵去了.
두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갔다.
又喚魏延、關興引兵斷後,城上四面遍插旌旗,城內亂堆柴草,虛放煙火.
다시 위연과 관흥을 불러 지시하여, 군사를 이끌고 斷後하고 성 위 4면에 두루 정기를 꽂고 성안에 柴草를 마구 쌓아, 허세로 연기와 불을 놓게 하였다.
大兵盡望木門道而去.」
大兵이 모두 목문도를 향해 떠났다.
魏營巡哨軍來報司馬懿曰:
「蜀兵大隊已退,但不知城中還有多少兵?」
魏營의 巡哨軍이 사마의에게 와서 보고하였다.
“촉병의 大隊가 퇴각하였습니다만, 성안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남아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懿自往視之,見城上插旗,城中煙起,笑曰:
「此乃空城也.」
사마의가 직접 가서 살펴보니 성 위에 깃발이 꽂혔고 성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空城이다.”
令人探之,果是空城.
사람들을 시켜 살펴보게 하니 과연 공성이었다.
懿大喜曰:
「孔明已退,誰敢追之?」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공명이 퇴각하였는데 누가 용감히 추격하겠소?”
先鋒張郃曰:
「吾願往.」
선봉 장합이 말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懿阻曰:
「公性急躁,不可去.」
사마의가 저지하며 말하였다.
“공은 성미가 급하고 거치니 가서는 안 되오.”
郃曰:
「都督出關之時,命吾為先鋒;今日正是立功之際,卻不用吾,何也?」
장합이 말하였다.
“도독께서 出關之時에 命吾為先鋒하고, 오늘 막상 공을 세우려 할 때는 도리어 저를 쓰지 않겠다니 무엇 때문입니까?”
懿曰:
「蜀兵退去,險阻處必有埋伏,須十分仔細,方可追之.」
사마의가 말하였다.
“촉병이 퇴각하며 險阻處에 필시 매복을 두었을 터이니, 반드시 十分 자세히 살피고 추격해야 하오.”
郃曰:
「吾已知得,不必挂慮.」
장합이 말하였다.
“제가 이미 알고 있으니 掛慮할 필요가 없습니다.”
懿曰:
「公自欲去,莫追悔.」
사마의가 말하였다.
“공이 스스로 가고자 하니 뒤늦게 후회하지 마시오.”
郃曰:
「大丈夫捨身報國,雖萬死無恨.」
장합이 말하였다.
“대장부가 捨身報國함에 雖萬死無恨이올시다.”
懿曰:
「公既堅執要去,可引五千兵先行;
卻教魏平引二萬馬步兵後行,以防埋伏.」
吾卻引三千兵隨後策應.」
사마의가 말하였다.
“공이 기어코 가겠다니 5천 군사를 이끌고 먼저 가시오.
위평에게 지시해서 2만 馬步兵을 이끌고 뒤따라 행군하여 매복을 방비토록 하겠소.
내 직접 3천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 접응하겠소.”
張郃領命,引兵火速望前追趕.
장합이 명령을 받자 군사를 이끌고 부리나케 앞으로 추격하였다.
行到三十餘里,忽然背後一聲喊起,樹林內閃出一彪軍,為首大將,橫刀勒馬大叫曰:
「賊將引兵哪裏去!」
행로가 30여 리에 다다르자, 갑자기 배후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숲속에서 一彪軍이 달려 나오는데, 선두의 대장이 칼을 빗겨 쥐고 말을 멈추더니 크게 외쳤다.
“賊將은 군사를 이끌고 어디로 가느냐!”
郃回頭視之,乃魏延也.
장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바로 위연이었다.
郃大怒,回馬交鋒.
장합이 크게 노하여 말머리를 돌려 交鋒하였다.
不十合,延詐敗而走.
10합이 되지 않아 위연이 패한 척 달아났다.
郃又追趕三十餘里,勒馬回顧,全無伏兵,又策馬前追.
장합이 또 30여 리 뒤쫓아가다가 말을 멈추고 돌아보니 전혀 복병이 없는지라, 다시 策馬하여 추격하였다.
方轉過山坡,忽喊聲大起,一彪軍閃出,為首大將,乃關興也,橫刀勒馬大叫曰:
「張郃休趕!
有吾在此!」
산기슭을 막 돌아 나오자 홀연히 함성이 크게 일며 一彪軍이 달려 나오는데 선두 대장은 바로 관흥이다. 칼을 비껴들고 말을 멈추고 크게 외쳤다.
“장합은 달아나지 마라!
내가 여기 있다!”
郃就拍馬交鋒.
장합이 곧 말을 박차고 교봉하였다.
不十合,興撥馬便走.
10 합이 되지 않아 관흥이 말을 돌려 달아났다.
郃隨後追之.
장합이 뒤따라 쫓아갔다.
趕到一密林內,郃心疑,令人四下哨探,並無伏兵;
어느 밀림 안까지 추격하자 장합이 의심하여 사람들을 시켜 사방을 哨探하게 하지만 역시 복병이 없었다.
於是放心又趕.
이에 마음 놓고 다시 뒤쫓았다.
不想魏延卻抄在前面;郃又與戰十餘合,延又敗走.
뜻밖에도 위연이 다시 앞에서 습격하였다. 장합이 또 더불어 10여 합 싸우자 위연이 다시 敗走하였다.
郃奮怒趕來,又被關興抄在前面,截住去路.」
장합이 奮怒해 뒤쫓는데 다시 관흥이 앞에서 공격하며 갈 길을 가로막았다.
郃大怒,拍馬交鋒.
장합이 크게 노하여 拍馬交鋒하였다.
戰有十合,蜀兵盡棄衣甲什物等件,塞滿道路.
싸움이 10합이 되자, 촉병이 衣甲과 什物 등의 물건을 모조리 버리니, 도로를 꽉 메웠다.
魏軍皆下馬爭取.
위병이 모두 下馬爭取하였다.
延、興二將,輪流交戰. 張郃奮勇追趕.
위연과 관흥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교전하고 장합은 용맹을 떨치며 뒤쫓았다.
看看天晚,趕到木門道口,魏延撥回馬,高聲大罵曰:
「張郃逆賊!吾不與汝相拒!
汝只顧趕來,吾今與汝決一死戰!」
점점 해가 저무는데 목문도 어귀까지 추격하자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 소리높여 크게 욕하였다.
“장합 역적아! 내 너와 싸우지 않았더니 너는 쫓아오기만 했다!
내 이제 너와 한바탕 죽기로 싸우겠다!”
郃十分忿怒,挺鎗驟馬,直取魏延.
장합이 十分忿怒하여 挺鎗驟馬하고 곧장 위연을 공격하였다.
延揮刀來迎.
위연이 칼을 휘두르며 맞이하였다.
戰不十合,延大敗,盡棄衣甲、頭盔、匹馬,引敗兵望木門道中而走.
싸워서 10합이 되지 않아 위연이 大敗하여 衣甲, 頭盔, 匹馬을 모조리 버리고 敗兵을 이끌고 목문도로 달아났다.
張郃殺的性起,又見魏延大敗而逃,乃驟馬趕來.
장합은 살기가 치솟는 데다 위연이 대패해 도주하자 말을 빠르게 달려 뒤쫓았다.
此時天色昏黑,一聲炮響,山上火光沖天,大石亂柴滾將下來,阻截去路.
이때 天色昏黑인데 한차례 炮가 울리더니 산 위에서 火光沖天하고 큰 돌과 장작더미가 굴러 내려와 갈 길을 차단하였다.
郃大驚曰:
「我中計矣!」
장합이 깜짝 놀라 말하였다.
“내가 계책에 빠졌구나!”
急回馬時,背後已被木石塞滿了歸路,中間只有一段空地,兩邊皆是峭壁,郃進退無路.
급히 말머리를 돌리는데, 배후는 이미 나무와 돌로 퇴로가 막히고 중간에 겨우 한 구역 空地가 있을 따름으로, 양쪽은 모두 峭壁이라, 장합은 進退無路이다.
忽一聲梆子響,兩下萬弩齊發,將張郃并百餘個部將皆射死於木門道中.
갑자기 梆子가 한차례 울리고, 양쪽에서 萬弩齊發하니 장합과 아울러 백여 명의 부장이 모두 목문도에서 화살을 맞고 죽었다.
後人有詩曰:
<伏弩齊飛萬點星,木門道上射雄兵.」
至今劍閣行人過,猶說軍師舊日名.」>
후인이 시를 지었다.
<매복한 쇠뇌에서 만점의 별을 날려서, 목문도에서 용맹한 병사들을 쏘았다네.
지금까지 검각을 행인들이 지나가며, 아직도 군사의 옛 명성을 이야기하네.>
卻說
張郃已死,隨後魏兵追到,見塞了道路,已知張郃中計.
한편,
장합이 전사하고 나서 뒤따라 위병이 도착하여 도로가 막혔음을 보고, 장합이 계략에 빠졌음을 알았다.
眾軍勒回馬急退.
병사들이 말을 돌려 급히 퇴각하였다.
忽聽得山頭上大叫曰:
「諸葛丞相在此!」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 승상께서 여기 계신다!”
眾軍仰視,只見孔明立於火光之中,指眾軍而言曰:
「吾今日圍獵,欲射一『馬』,誤中一『獐』.
汝各人安心而去,上覆仲達,早晚必為吾所擒矣.」
병사들이 올려다보니, 공명이 火光之中에 서서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 오늘 사냥에서 ‘말’을 쏘려 했는데 잘못돼서 ‘노루’를 맞혔구나.
너희는 모두 안심하고 돌아가서 중달에게 아뢰되 조만간 필시 내게 사로잡힌다고 하라.”
魏兵回見司馬懿,細告前事.
위병이 돌아가서 사마의를 만나 前事를 자세히 고하였다.
懿悲傷不已,仰天歎曰:
「張雋義身死,吾之過也!」
사마의가 비통해 마지않으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張雋義가 죽음은 나의 過失이다!”
乃收兵回洛陽.
이에 군사를 거둬 낙양으로 돌아갔다.
魏主聞張郃死,揮淚歎息,令人收其屍,厚葬之.
魏主가 장합의 죽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그 시신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 치르게 하였다.
卻說
孔明入漢中,欲歸成都見後主.
한편,
공명은 한중으로 들어가서 후주를 만나러 성도로 돌아가려 하였다.
都護李嚴妄奏後主曰:
「臣已備辦軍糧,行將運赴丞相軍前,不知丞相何故忽然班師.
도호 이엄이 후주에게 妄奏하였다.
“신이 이미 군량을 준비하고 곧 승상의 軍前으로 운송하려는데, 승상이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班師하는지 모르겠습니다.”
後主聞奏,即命尚書費褘入漢中見孔明,問班師之故.
후주가 상주를 듣고 즉시 상서 비위에게 한중으로 들어가서 공명을 만나고 班師之故를 묻게 하였다.
褘至漢中宣後主之意.
비위가 한중에 도착해서, 후주의 뜻을 전하였다.
孔明大驚曰:
「李嚴發書告急,說東吳將興兵寇川,因此回師.」
공명이 깜짝 놀라 말하였다.
“이엄이 서신을 보내 告急하기를, 동오가 장차 興兵寇川할 것이라고 말한 까닭에 回師하였소.”
費褘曰:
「李嚴奏稱軍糧已辦,丞相無故回師,天子因此命某來問耳.」
비위가 말하였다.
“이엄이 상주하기를, 군량을 이미 준비했는데 승상께서 까닭 없이 회군한다고 하여, 천자께서 이 때문에 저에게 와서 묻도록 했을 뿐입니다.”
孔明大怒,令人訪察,乃是李嚴因軍糧不濟,怕丞相見罪,故發書取回,卻又妄奏天子,遮飾己過.
공명이 크게 노하여 사람을 보내 訪察하게 하니, 이엄은 군량을 마련하지 못하자 승상에게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서신을 보내 회군하게 하고, 도리어 천자에게 妄奏하여 자기의 과오를 눈가림한 것이었다.
孔明大怒曰:
「匹夫為一己之故,廢國家大事!」
공명이 크게 노해 말하였다.
“필부가 자기 한 몸을 이유로 국가대사를 폐하였구나!”
令人召至,欲斬之.
사람을 시켜 불러서 처형하려 하였다.
費褘勸曰:
「丞相念先帝託孤之意,姑且寬恕.」
비위가 권하였다.
“승상께서는 先帝託孤之意를 생각하시어, 잠시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孔明從之.
공명이 그 말을 따랐다.
費褘即具表啟奏後主.
비위가 즉시 표를 갖춰 후주에게 상주하여 소명하였다.
後主覽表,勃然大怒,叱武士推出李嚴斬之.
후주가 覽表하고 勃然大怒하여 무사들에게 호통쳐서 이엄을 끌어내어 처형하라 하였다.
參軍蔣琬叩首奏曰:
「李嚴乃先帝託孤之臣,乞聖恩寬恕.」
참군 장완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이엄은 先帝託孤之臣이니, 바라옵건대 너그러이 용서해주소서.”
後主從之,即謫為庶人,徙於梓潼郡閒住.
후주가 이를 좇아 즉각 이엄을 서인으로 강등하고 梓潼郡으로 귀양을 보내 한가히 살게 하였다.
孔明回到成都,用李嚴子李豐為長史;積草屯糧,講陣論武,整治軍器,存恤將士,三年然後出征.
공명이 성도로 돌아와서 이엄의 아들 李豐을 長史로 임용하였다. 積草屯糧, 講陣論武, 整治軍器, 存恤將士하며 3년 후 출정하기로 하였다.
兩川人民軍士,皆仰其恩德.
兩川의 인민과 군사가 모두 그 은덕을 추앙하였다.
光陰荏苒,不覺三年.
光陰이 덧없이 흘러 어느새 3년이 지났다.
時建興十二年春二月.
때는 건흥 12년 봄 2월이다.
孔明入朝奏曰:
「臣今存恤軍士,已經三年.
糧草豐足,軍器完備,人馬雄壯,可以伐魏.
今番若不掃清奸黨,恢復中原,誓不見陛下也!」
공명이 조정으로 들어가 상주하였다.
“신이 이제 군사를 存恤한 지 벌써 3년이 경과했습니다.
糧草는 풍족하고, 軍器는 완비되고, 人馬雄壯하니, 伐魏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奸黨을 쓸어내고 중원을 회복하지 못하면, 맹세코 폐하를 뵙지 않겠습니다!”
後主曰:
「方今已成鼎足之勢,吳魏不能入寇,相父何不安享太平?」
후주가 말하였다.
“지금 이미 鼎足之勢를 이뤄, 오와 위가 침입할 수 없는데 相父께서 어찌 편안히 태평을 누리지 않으십니까?”
孔明曰:
「臣受先帝知遇之恩,夢寐之間,未嘗不設伐魏之策.
竭力盡忠,為陛下克復中原,重興漢室,臣之願也.」
공명이 말하였다.
“신이 先帝知遇之恩을 받아 夢寐之間에도 伐魏之策을 강구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竭力盡忠으로써 폐하를 위해 克復中原하고 重興漢室함이 신의 소원입니다.”
言未畢,班部中一人出曰:
「丞相不可興兵.」
말을 마치기도 전에, 班部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말하였다.
“승상께서 興兵하시면 안 됩니다.”
眾視之,乃譙周也.
사람들이 보니 바로 譙周이었다.
正是:
武侯盡瘁惟憂國,太史知機又論天.
이야말로
<무후가 몸바쳐 오로지 나라를 걱정하는데, 태사 초주가 천기를 알고 천명을 논하네.> 라는 격이다.
未知譙周有何議論,且看下文分解.
초주에게 무슨 의론이 있을까? 다음 회의 설명을 또 보시오.
'漢詩와 漢文 > 삼국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연의99회-諸葛亮과 司馬懿 (0) | 2023.02.06 |
---|---|
삼국연의100회-破曹真과 辱仲達 (1) | 2023.02.05 |
삼국연의102회-渭橋와 木牛流馬 (0) | 2023.02.05 |
삼국연의103회-司馬懿의 受困과 諸葛亮의 禳星 (1) | 2023.02.05 |
삼국연의104회-漢丞相의 歸天과 魏都督의 喪膽 (1) | 2023.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