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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와 漢文/古文眞寶(고문진보) 386

2五言古風短篇-16遊子吟(유자음)

객지에 나간 자식(遊子吟)-맹교(孟郊) ▶ 遊子(유자) : '길 나선 사람'의 뜻. ▶ 吟(음) : 읊음. 遊子吟은 '나그네의 노래'와 같은 뜻. 길 나선 나그네가 어머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이다. 《孟東野詩集》 제1권에 들어있다. 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자애로운 어머님 손에 들린 실은, 길 떠날 아들 옷을 짓는 것이네.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떠나기 전에 꼼꼼히 꿰매시며, 마음은 더디 돌아올까 걱정이시네. ▶ 密密(밀밀) : 촘촘한 모양. 꼼꼼한 모양. ▶ 縫(봉) : 꿰매다.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 한 치 풀 같은 마음을 가지고서, 삼춘의 햇빛 같은 어머님 사랑 보답하기 어렵네. ▶ 難將(난장) : 《孟東野集》엔 '수언(誰言)'으로 되어 있다. ▶ 寸草(촌초) : 한 치 되는 풀, 微力한..

2五言古風短篇-15春桂問答二(춘계문답2)

봄 계수나무의 문답 두 번째(春桂問答二)-왕유(王維) ▶ 春桂(춘계) : 봄의 계수나무, 계수나무는 상록수이다. 봄에 계수나무와 문답을 읊은 시이다. 問春桂, 桃李正芳華. 봄 계수나무에게 묻기를, "복숭아와 오얏은 방금 향기로운 꽃을 피워, ▶ 正(정) : 바로 지금. 방금 막. ▶ 芳(방) : 향기. ▶ 華(화) : 꽃. 年光隨處滿, 何事獨無花? 봄빛이 곳곳에 찼거늘, 어째서 홀로 꽃을 피우지 않소?" ▶ 年光(연광) : 춘광(春光). 봄빛을 가리킨다. ▶ 隨處(수처) : 가는 곳. 春桂答, 春華詎能久? 봄 계수나무 대답하기를, "봄꽃이 어찌 오래 갈 수 있으리? ▶ 詎(거) : 어찌. 風霜搖落時, 獨秀君知不? 서릿바람에 잎새 떨어질 적에, 홀로 빼어남을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 搖落(요락) : 낙..

2五言古風短篇-14金谷園(금곡원)

금곡원(金谷園)-작자 미상 ▶ 金谷園(금곡원) : 晉나라 때 石崇이 만든 정원 이름. 하남성(河南省) 금곡(金谷)에 있었으며 석숭은 매일 귀인(貴人)들을 모아 호유(豪遊)하였다. 이름은 전하지 않는 작자가 금곡원의 황폐한 옛 터에 가서 옛날의 호유를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것이다. 當時歌舞地, 不說草離離. 그 옛날 노래하고 춤추던 곳에, 풀이 더부룩히 자라리라 말한 이는 없었으련만. ▶ 不說(불설) :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으리라는 뜻. ▶ 離離 : 풀이 더부룩히 자란 모양. 今日歌舞盡, 滿園秋露垂. 지금 노래와 춤 간 곳 없으니, 동산 가득히 가을 이슬만 맺혀 있네. ▶ 盡(진) : 자취조차도 다 없어진 것. ▶ 秋露垂(추로수) : 가을 이슬이 풀과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뜻. 한편..

2五言古風短篇-13商山路有感(상산로유감)

상산길 소감(商山路有感)-백거이(白居易) ▶ 商山(상산) : 陝西省 商縣의 동쪽에 있는 산 이름. 백거이가 6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산길을 지나며 느낌을 읊은 시이다.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권18에도 실려 있다. 萬里路長在, 六年今始歸. 만 리 길은 언제나 있었을 것이나, 6년 만에 지금 비로소 돌아오네. ▶ 今(금) : 백거이의 문집에는 身자로 된 판본도 있다. 所經多舊館, 太半主人非. 지나는 곳마다 옛 여관이 많지만, 태반은 옛 주인이 아닐세. ▶ 舊(구관) : 옛날부터 있던 여관(旅館), ▶ 非(비) : 옛 주인이 아니라는 뜻. 해설 商山은 진(秦)나라 때 나라의 어지러움을 피하여 四皓라 불리우던 동원공(東園公)·기리계(綺里季)·하황공(夏黃公)·녹리선생(甪里先生)이 은거한 곳이다. 그들..

2五言古風短篇-12貪泉(탐천)

탐천(貪泉)-오은지(吳隱之) ▶ 貪泉(탐천) : 광주성(廣州城) 밖 10리 되는 석문(石門)에 있는 샘 이름. 이 샘물을 마시면 한없는 탐욕(貪欲)이 생긴다고 한다. 작자 오은지(吳隱之)는 광주(廣州) 땅에 刺史가 되어 부임하였는데, 탐천의 물을 마시며 이 시를 지었다 한다. 오은지는 탐욕은 커녕 더욱 청렴하여져서 뒤에는 이를 廉泉이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한다[《晉書》 90良吏列傳]. 《古詩源》 등에는 〈酌貪泉詩〉라 제목이 붙어 있다. 古人云此水, 一歃懷千金.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물은, 한번 마시면 천금을 생각하게 된다네. ▶ 歃(삽) : 마시다. 빨다. ▶ 懷(회) : 욕심을 내어 생각하는 것. 試使夷齊飲, 終當不易心. 시험삼아 백이나 숙제에게 마시게 하여도, 역시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 ▶..

2五言古風短篇-11競病韻(경병운)

競자와 病자로 운을 달다(競病韻)-조경종(趙景宗) ▶ 競病韻(경병운) : 작자인 조경종(趙景宗, 457~508)은 양(梁)나라의 장군이었다. 양나라 무제(武帝, 502~549 재위) 때 위(魏)나라 장수 양대안(楊大眼)을 회수(淮水)에서 크게 쳐부수고 개선하자 무제는 그를 맞아 화광전(華光殿)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宴席에서 신하들이 연구(聯句)를 짓고, 당대의 대문장가 심약(沈約, 441~513)도 시를 지었다. 이때 보통 쓰이는 시운(詩韻)은 다 써버리고 다만 경(競)·병(病) 두 자만이 남았다. 모두 쩔쩔매고 있을 때 조경종이 붓을 들어 단숨에 써내려간 시가 이것이라 한다. 競·病 두 자를 써서 지은 시로 유명하여 競病韻이라 불리게 되었다. 무제는 무(武)에 문(文)을 겸한 그의 재능에 탄복하고 그를..

2五言古風短篇-10七步詩(칠보시)

칠보시(七步詩)-조식(曹植) ▶ 七步詩(칠보시) : 《世說新語》권3에 의하면 ‘위문제(魏文帝:220~226 재위. 曹操의 長子 曹丕)가 일찍이 동아왕(東阿王: 조조의 次子 曹植, 곧 曹子建)에게 일곱 발자국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게 하였다. 시를 못 지으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명령이 떨어지자 곧 이 시를 지었다. 문제(文帝)는 이를 듣고 매우 부끄러운 빛을 띠었다' [《曹集詮評》 丁晏 註 所引]는 얘기가 있다. 조조(曹操)가 생전에 늘 차자 曹植의 재능을 사랑하였으므로 형 曹丕는 제위를 계승한 뒤에 아우를 박해한 것이다. 이 시는 일곱 발자국 걷는 동안에 지었다 하여 '칠보시'라 부르게 되었다. 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콩을 삶는 데 콩대를 때니, 콩은 솥 가운데서 울고 있네. ▶ 煮(자) : 삶다. ..

2五言古風短篇-9劍客(검객)

검객(劍客)-가도(賈島) ▶ 劍客(검객) : 칼을 잘 쓰는 사람, 검술(劍術)은 칼을 쓰는 기술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도 올바로 되어야 한다. 十年磨一劍, 霜刀未曾試. 10년을 칼 한 자루를 갈되, 서릿발 같은 칼날은 시험해 보지도 않았네. ▶ 霜刃(상인) : 서릿발 같은 칼날. ▶ 曾(증) : 일찍이. 今日把贈君, 誰有不平事? 오늘 그것을 당신에게 드리노니, 누가 바르지 못한 일을 할 수 있으랴? ▶ 把(파) : '그것을 가지고'의 뜻. ▶ 贈(증) : 보내주다. ▶ 不平事(불평사) : 평정(平正)치 못한 일을 하는 것, 곧 비뚤어진 짓을 하는 것. 해설 이 시에서 10년 동안 칼을 갈았다 함은 오랫동안 경세(經世)를 위한 학문을 쌓았음에 비유한 것이다. 이렇게 쌓은 학문을 가지고 조정에 나가 일하여, ..

2五言古風短篇-8王昭君(왕소군)

왕소군(王昭君)-이백(李白) ▶ 王昭君(왕소군) : 漢나라 원제(元帝, 기원전 48~기원전 33재위)는 후궁이 너무 많아 일일이 친히 고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제는 畫工을 시켜 초상화를 그려 바치게 하여 그 그림을 보고 후궁을 불러들였다. 화공은 이에 여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초상을 예쁘거나 밉게 그려 바쳤다. 그러나 후궁의 왕소군[이름은 婚, 昭君은 字임]은 뇌물을 안 써서 임금 근처에도 못 가봤다. 이때 흉노(匈奴)의 세력이 커서 한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는데, 흉노의 선우(單于)가 한나라로 미인을 구하러 왔다. 이에 원제는 화공의 그림을 보고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골라 주었다. 그러나 떠날 때 소군을 보니 천하의 절색이라, 원제는 잘못되었음을 뉘우쳤지만 이미 어찌할 수 없었..

2五言古風短篇-7讀李斯傳(독이사전)

이사전을 읽고(讀李斯傳)-이업(李鄴) ▶ 李斯傳 : 《史記》의 李斯列傳을 말한다. 李斯(기원전 284?~기원전 208)는 한비(韓非, 기원전 280?~기원전 233?)와 함께 순경(荀卿, 기원전 298?~기원전 238?)에게 帝王의 술(術)을 배우고 法術刑名의 학으로써 진시황(秦始皇)을 섬기었다. 시황이 중원(中原)을 통일한 뒤에는 승상(丞相)이 되어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고 금서령(禁書令)을 내리고 한자를 소전(小篆)으로 개혁하였다. 그러나 이세(二世) 때에 환관(宦官) 趙高에게 讒訴를 입어 처형되었다. 진시황의 焚書坑儒같은 폭정은 그의 권장으로 시행된 것이라 한다. 작자는 그러한 이사의 전기를 적은 《사기》의 이사열전을 읽고 느낀 것을 읊었다. 欺暗常不然, 欺明當自戮. 남모르는 것을 속여도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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