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한문 공부/한문의 기초

한문의 기초11-해석의 know-how

耽古樓主 2025. 1. 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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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know-how

  

한문을 안다는 것은 한문 문장을 해석(解釋)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많은 한자도 알고 한문 문법도 제법 알고, 거기다가 한문 문장에도 많이 접하여 나름대로 한문에 익숙하다고 생각해도, 한문 해석이 그냥 쉽게 되지만은 않는다.

한 문장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대하여 알아보자.

 

 

 

 

 

뜻이 많은 한자를 다의자(多義字)라고 한다.

한문을 풀이함에 다의자를 제대로 해석하기가 가장 어려운 듯싶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틀리고 아는 사람은 알아서 틀리는 것이 다의자이다.

모르는 사람은 해석할 때 주로 그 한자의 ‘주된 의미’만을 대입하여 해석하기 때문에 그 한자가 ‘생소한 의미’로 쓰이면 틀리게 된다.

반면, 한문을 제법 아는 사람은 그 한자의 생소한 의미를 대입해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 한자가 주된 의미로 쓰일 때에 틀리는 경우가 생긴다.

 

1) 孟子去齊而之趙矣.(맹자가 제를 떠나서 조로 갔다.)

全國時代去今二千餘年.(전국 시대는 지금과 사이가 뜸이 2천여 년이다.)

不如去禍根.(화근은 제거함이 낫다)

2) 孟子過堂而入室.(맹자가 대청마루를 지나 방에 들어갔다)

視人之過, 不視己之過.(남의 허물은 봐도 자기의 허물은 살피지 못한다)

聖人過凡人, 猶鳳凰出衆鳥.(성인이 범인보다 뛰어난 것은 봉황이 뭇 새보다 뛰어남과 같다)

3)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제때에)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過猶不及.(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오히려 모자라다).)

 

위 예문 1에서 去자가 각각 ‘떠나다’, ‘사이가 뜨다(=距)’, ‘없애다(=除)’로 다른 의미로 쓰였다.

예 2도 過자가 각기 다른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이런 뜻이 많은 한자(다의자)에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아무리 뜻이 많은 한자라도 대개 서내 개 이내의 의미가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의자의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어도, 주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잘 알도록 해야 한다.

예문 3에서 時자는 ‘때로’나 ‘제때에’로, 猶자는 ‘같다’나 ‘오히려’로도 해석해도 둘 다 말이 된다. 이처럼 한 한자가 각각 다른 의미로 해석해도 다 그 문맥에 맞는 경우에 다의자를 해석하기가 아주 애매해진다.

이렇게 주된 의미가 두세 개 이상 되고 사용 빈도가 높은 한자는 可, 去, 擧, 見, 經, 故, 寧, 道, 果, 過, 幾, 當, 得, 令, 流, 亡, 無, 反, 發, 方, 辟, 比, 使, 辭, 傷, 說, 相, 上, 所, 勝, 是, 惡, 焉, 若, 如, 與, 說, 易, 爲, 猶, 以, 已, 子, 者̌, 將, 適, 足, 從, 之, 至, 致, 便, 何, 乎, 會 등이다.

 

1) 崔氏有子, 曰永植也.(최씨에게 아들이 있는데, 영식이라고 한다)

無男女老少, 人皆好財.(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은 모두 재물을 ~ )

2) 乘船, 則可絶海.(배를 타면 바다를 건널 수 있다)

2-a) 童聞惡臭, 掩鼻.(아이가 악취를 고 코를 가렸다)

예문 1에서 曰자가 ‘라고 하다(불리다)’는 의미로, 無자는 ‘할 것 없이’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들은 그 본래적인 의미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고, 의미가 약간 다르게 변형됐다.

이렇게 문맥에 따라 해석이 약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문 2에서 絶자가 ‘건너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絶자의 기본적인 의미인 ‘끊다’에서 ‘건너다’를 유추하기는 쉽지 않지만, 앞뒤 문맥을 잘 살펴 어학적인 센스가 있다면 굳이 옥편을 안 보고도 絶자가 ‘건너다’는 의미도 있음을 알아낼 수도 있다. 반면에 2-a에서 聞자가 ‘(냄새를) 맡다’라는 의미로 쓰였음을 유추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1) 我聞雨聲而閉窓門.(나는 빗소리를 듣고 창문을 닫았다)

1-a) 諜者審敵陣, 以具聞將也.(첩자가 적진을 살피고는, (그것을) 장군에게 자세히 들려줬다.)

 위 예문 1에서 聞자가 ‘듣다’의 의미로 쓰였지만, 한편으론 1-a에서는 聞자가 ‘들려주다(말해주다)’는 의미로도 쓰여, 聞자가 서로 상반되는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반대, 대비되는 의미를 갖는 한자는 聞(듣다⇔들려주다), 等(동등⇔차등), 反(돌아가다(따르다)⇔거꾸로 하다(반대하다)), 舍(머무르다⇔버리다), 厭(싫다⇔족하다) 등이다.

옥편에 있는 다의자의 의미를 모두 다 암기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보다는 문장을 많이 접하여, 다의자의 여러 의미를 자연스레 터득하되, 주된 의미 위주로 학습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다의자의 정복도 많은 문장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석하기 곤란한 다의자는 옥편을 보고 각각 그 의미를 대입해 보고, 그 중에 문맥에 맞는 의미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만, 그 문맥의 갈피를 잘못 잡고 그냥 대입하여 해석하는 것은 엉뚱할 풀이가 될 가능성이 많으니, 신중해야 한다.

 

 

 

 

 

많은 한자가 두 가지 이상의 품사로 해석되는데, 우리는 대개 이런 한자의 의미를 한 가지 품사로만 해석하다 보니, 해석에 곤란을 겪게 된다. 이런 경우도 다의자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나, 여기에서 따로 다룬다.

앞의 단원 ‘단어상의 특징’도 이것과 관련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1) 立則欲坐, 坐則欲臥.(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1-a) 無立錐之地也.(송곳을 세울 땅도 없다)

  예문 1에서 立은 ‘서다’는 의미로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로 풀이가 되는데, 1-a에선 ‘세우다’로 목적어를 취하는 타동사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알고 보면 아무 것 아닌 것 같지만, 立자를 ‘서다’라는 의미에만 구애되어 이것을 자동사로만 해석하려 하여, 막상 ‘세우다’라는 타동사로 해석하기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이런 한자에는 立(서다. 세우다), 來(오다. 오게 하다(부르다)), 入(들다. 들이다), 先(앞서다. 앞세우다), 出, 後 등 적지 않다.

 

1) 牛食草也.(소는 풀을 는다.)

1-a) 烹稿, 食牛之.(짚을 삶아 소에게 먹였다.)

 

예문 1에서 食자가 ‘먹다’라는 일반 동사로 쓰였지만, 1-a는 ‘먹이다’는 상대에게 강제로 시키는 사역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 쓰였다.

使자 따위가 쓰이지 않아도, 食자처럼 사역의 의미를 갖는다.

 

1) 春猶山頂有雪.(봄엔 아직 산 정상에는 이 있다.)

始於小事.(큰 은 작은 에서 시작한다)

1-a) 金氏遂雪其辱.(김씨는 드디어 그 치욕을 씻었다.)

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예문 1에서 명사로 쓰이던 단어들이 1-a에서는 동사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대개 명사로 쓰이고 동사로는 안 쓰일 듯하나, 동사로도 해석이 되는 한자는 事(섬기다), 法(본받다), 則(본받다), 質(묻다), 王(왕 노릇하다), 道(말하다), 賞(상주다), 雪(씻다) 등 상당히 많다.

 

1) 勿兒, 有所學焉.(아이를 아이로만 여기지 마라. 배울 것이 있다)

비고) 勿以兒爲兒, 有所學焉. ( = )

2) 洪吉童庶出, 不父矣.( ~ 서출이라, 아버지를 아버지라고다)

비고) 洪吉童庶出, 以父爲父矣. ( = )

예문 1, 2에서 굵게 표시한 단어는 명사처럼 보이고 의미상으론 본래 명사의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동사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바로 밑의 비고에서 보듯이, 이런 경우에 동사로 해석되는 단어는 以~爲 어구에서 爲자의 의미와 비슷하게, 대개 ‘-라고 하다’, ‘-로 여기다’, ‘-로 대하다’ 등으로 풀이 된다.

 

1) 石於木.(돌은 나무보다 무겁다)

1-a) 君子重義, 小人重利.(군자는 의를 중하게 여기고, 소인은 이익을 중하게 여긴다.)

  重자가 본래 형용사 같은데, 위 1-a에서는 ‘중하게 여기다(중시하다)’로 동사로 풀이가 된다.

이렇게 기본적으론 형용사 같은데, 이것에서 파생된 의미를 갖는 동사로도 해석이 된다. 이런 한자는 輕, 惡, 善, 好, 近, 遠 등이 있다.

 

1) 日就月將.(날로 나아지고 달로 발전한다.)

1-a) 日就月將.(날이 나아지고 달이 발전한다.)

2) 東行.(동쪽으로 가다)

3) 七顚八起.(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째 만에 일어나다)

4) 駝鳥, 鳥最大, 麒麟, 獸最長.(타조는 새 중에 가장 크고, 기린은 ~ )

百取九十, 不多乎.(백 중에서 90을 취하니, 많지 아니한가)

위 예문 1처럼 ‘日’, ‘月’ 같은 시간과 관계되는 의미를 갖는 한자가 부사어로 자주 해석이 된다. 이것을 1-a처럼 명사적으로 풀이하면 어색한 해석이 된다.

예문 2처럼 장소와 관련된 의미를 갖는 한자도 문맥에 따라 부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문 3처럼 수를 나타내는 한자도 문맥에 따라 명사로가 아니라 부사어로 해석해야 하는 때가 생긴다.

또 예문 4는 명사처럼 보이는 단어가 ‘~ 중에’로 풀이되어 명사가 아닌 형태로 해석이 된다.

그리고 이 외에도 단어가 명사 형태를 하고 있지만, 명사가 아닌 다른 품사(주로 부사어)로 해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先生不能行之也.(선생이 의리로 그것을 할 수 없었다)

君子不好財, 好之也.(군자는 겉으론 재물을 싫어하나, 속으론 좋아한다)

비고) 先生不能行之也.(선생이 의리 그것을 할 수 없었다)

위 예문에서 보듯이, 밑줄 친 한자가 ‘-로’ 등의 조사를 취하고, 부사어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부사로 해석해야지, 비고처럼 명사로 해석하면 의미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우리는 품사나 문장 구조에 얽매이어 그것을 그대로 쫓아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문의 품사나 구조 그대로 해석하다 보면, 뭔가 의미가 어색하여, 품사나 구조를 바꾸어 해석하는 것이 의미 전달에 더 나아 보일 때가 있다.

또 해석한 것이 어색하지 않더라도, 한문의 품사나 구조를 달리하여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의역(意譯)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1) 父以寶劍授子也.(아버지가 보검으로써 아들에게 주었다.)

1-a) 父以寶劍授子也.(아버지가 보검 아들에게 주었다)

2) 王妃薄於色, 厚於德.(왕비는 용모에는 박하나 덕에는 후하였다.)

2-a) 王妃薄於色, 厚於德.(왕비는 용모 박하나, 덕 후하였다)

3) 男兒以義爲寶.(남자는 의로써 보배를 삼는다)

3-a) 男兒以義爲寶.(남자는 의 보배로 삼는다)

3-b) 男兒以義爲寶.(남자는 의 보배라고 여긴다)

위 예문 1에서 보듯이 以자가 전치사(어조사)인 것에만 구애되어 ‘-로써’로만 풀이하는 것보다, 1-a처럼 ‘-을’로 해석하면 문장 의미가 더 매끄러워진다.

2-a에서 於자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예문 3에서 以자가 ‘-로써’로, 3-a에서는 ‘-를’로 해석이 됐는데, 3-b처럼 以자에 국한하지 않고 뒤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구조를 바꾸어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1) 王歎曰, “如何至於此.”(~ 어찌 이것에 이르렀을까. ~)

1-a) 王歎曰, “如何至於此.”(~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

1-b) 王歎曰, “如何至於此.”(~ 어찌 이렇게 됐을까. ~)

2) 弟問師曰, “我聞人中長則壽矣, 有之乎.”(~ 그것이 있습니까. ~)

2-a) 弟問師曰, “我聞人中長則壽矣, 有之乎.”(~ (실제로) 그렇습니까. ~)

위 예문 1에서 此자를 대명사로 해석하면 약간 의미가 어색한데, 그 밑에처럼 품사를 달리하여 해석하니, 의미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 예문 2에 쓰인 之자는 ‘그것’으로 해석하면 어색해 보이나, 도 2-a에서 품사를 다르게 하여 풀이하니,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위에서 보듯이 此, 之 같은 대명사 단어는 문맥에 따라서는 품사를 달리 하여 해석해야, 그 의미가 어색하지 않고 매끈해지는 때가 종종 있는 듯하다.

예문 2-a의 의미는 이러하다. 제자가 스승에게 묻기를 “저는 인중이 길면 오래 산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까.”라고 했다.

 

1) 我欲見汝久矣.(내가 너를 보고 싶은 지가 오래이다.)

1-a) 我欲見汝久矣.(나는 오랫동안 너를 보고 싶었다.)

1-b) 我欲久見汝矣.( = )

2) 王寵奸臣極甚.(왕이 간신을 총애함이 극심했다)

2-a) 王寵奸臣極甚.(왕이 간신을 극심하게 총애했다)

위 예문 1은 문장 구조를 그대로 쫓아 ‘我欲見汝’를 주어절로 ‘久’는 서술어로 전체를 복문(複文)으로 해석을 했고, 1-a에서는 구조를 1-b처럼 바꿔 ‘久’를 부사어로 하고 전체를 주술 구조 단문(短文)으로 하여 해석했다. 이렇게 구조를 바꾸어 해석해도, 의미상 별로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우리말에는 더 자연스러운 것도 같다.

예문 2-a도 1-a와 유사한 경우로 보인다.

 

 

 

 

 

가차(假借)는 어떤 한자가 다른 한자와 뜻은 다르나, 음(音)이 같은 경우에, 다른 한자의 뜻을 빌려 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통자(通字), 동자(同字), 약자(略字), 속자(俗字) 등도 다른 한자로 통용되어 쓰인다. 이렇게 정자(正字)가 쓰이지 않을 때엔, 한자 파악에서부터 막힐 수 있으니, 당연히 해석에 어려움이 생긴다.

또 오자(誤字)나 와자(譌字), 그리고 결자(缺字), 연자(衍字) 등도 의미 파악에 혼란을 초래한다.

 

 

 

 

 

한문에도 了자가 과거를 나타내는 한자로 쓰이기도 하지만, 국어의 어미처럼 시점(時點)을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 것이 대개 쓰이지 않아, 시점을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떤 단어(동사)가 ‘-했다’인지, ‘-하려고 하다’인지, ‘-하고 있다’인지, ‘-할 것이다’의 의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엔 전후 문맥을 잘 따져, 시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시점을 직접적으로 바로 알 수 있는 今, 古 같은 한자가 쓰이면, 쉽게 시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시점을 알게 해 주는 將, 嘗 같은 한자가 쓰인다.

시점이 과거임을 나타내는 한자는 嘗, 曾 등이다.

미래를 암시하는 한자는 將, 欲 등이고, 현재나 진행 중임을 암시하는 한자는 今, 方, 中, 酣 등이다.

   

 

 

 

보통 사람에겐 주역 같은 책은 한문 원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말 해석을 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내용 자체가 전문적이거나 난해한 것은 단순히 한문 해석 실력 가지고는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사서(史書)나 의학서 따위의 전문 서책이 아니고, 논어나 맹자 같은 전문성이 짙지 않은 책이라도, 대개의 한문 고전들이 옛날 에 써진 것이라, 그 시대나 장소에 관한 배경 지식 없이 단순히 원문(原文)만 봐서는 정확하게 이해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이것을 보완하려면, 그 서책에 관한 이전의 주석서나, 요 근래의 그 서책에 관한 번역서나 그 관련한 참고 자료를 의존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 비석에 통훈대부(通訓大夫)란 단어를 보고, 한 동안 ‘가르침에 능통한 대부’라고 잘못 알고 있다가, 후에 뒤늦게 ‘통훈대부’가 문관(文官)의 정삼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란 것을 알았다.

이렇게 특수하거나 전문적인 용어를 일반적인 단어로 잘못 취급하여 해석하면 실수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문장의 표면적인 의미만 알고, 그 속뜻을 모른다면 이는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다.

특히 속담이나 격언, 운문, 우회적인 표현, 반어적인 표현 등은 속뜻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거꾸로 앞뒤 문맥을 살펴, 어떤 문장이나 구절의 속뜻이 짐작은 가는데, 그 문장의 일차적인 표면적인 뜻을 잘 모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한문은, 일부는 중국인이 쓴 듯이 온전히 한문다운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말 영향을 받은 한국식 한문의 특색을 띈다.

아마 국어의 영향인 듯한데, 어순의 위치가 다르거나, 관형절을 길게 취하는 표현 등의 한국식 한문의 특징이 있다. 이런 한국식 한문은 처음에는 어렵게 느낄 수도 있으나, 익숙해지면 정통 한문보다 해석하기가 쉬울 수도 있다.

 

 

 

 

 

산문에 능통한 자들도 한시(漢詩)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한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 주된 이유는 시어들이 대체로 함축적으로 쓰이기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또 산문에 비해 시어는 허사 같은 문법적인 성격이 짙은 단어(한자)가 잘 쓰이지 않고 실사로 주로 이루어져, 문맥에 주로 의존하여 의미 파악을 하게 되는 어려움도 있다.

그 외에도 전고(典故)나 차운(次韻) 등이 쓰이면, 이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시의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다.

한시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한시를 많이 읽거나 외워서 접하는 것이 확실한 길이다.

여기에서는 한시에 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으므로, 한시를 깊이 공부하고 싶다면, 그에 관한 책을 별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서간문, 상소문, 교지, 축문 등 그 나름의 형식을 갖거나 그것에 기인한 독특한 표현을 갖는 글은 처음 접할 때는 생소하여 의미 파악이 어려울 수 있다.

   

 

 

 

 

요새는 대개 출판물 등에서 한문은 구절이나 문장 단위로 끊어 구두점을 표시는 하나, 단어 사이는 띄어쓰기를 잘하지 않기에, 간혹 한 단어인지 두 단어인지 단어 사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또 한문 원문에는 두 단어로 표현됐어도, 한 단어로 해석해도 괜찮은 경우도 있다.

 

 

 

 

 

한문은 용언이 활용하지 않는 점, 한 단어가 여러 품사로 쓰이는 등의 자체의 특성으로 인하여, 문장 구조가 모호함을 유발하는 경우가 다른 언어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아래에 보이는 위아래 쌍으로 묶은 예문에서 밑줄 친 부분이 겉보기엔 똑같은 단어나 구절 형태 같지만, 다른 형태 구조를 갖고서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를 실었다.

아래 예시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한데, 이 점은 양해하기를 바란다.

 

 

․王素悅歌也.(왕은 평소에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王聞勝報, 悅歌也.(왕이 승보를 듣고, 기뻐 노래했다)

 

․知足不足者, 非不有貪也.(부족함에 만족할 줄 아는 자가 탐욕이 ~ )

足不足, 在於心.(만족하고 만족하지 않고는 마음에 달려있다)

 

長短, 測之則可知也,(긴지 짧은지는 재면 알 수 있다)

長短短長, 以齊也.(짧은 것은 길게 하고 긴 것은 짧게 하여, 가지런히 하다)

 

․吉童誘女以歌.(길동이는 노래로 여자를 꾀였다)

‥趙氏滿醉以歌.(조씨가 만취해가지고서 노래를 불렀다)

 

․王頻變國之法矣.(왕이 자주 나라의 법을 바꿨다)

‥害國之法, 宜廢.(나라를 해치는 법은 의당 없애야 한다)

 

․人無不好財也.(사람이 재물을 좋아하지 않음이 없다)

‥近者無不讀文者也.(요새 글을 읽지 못하는 자는 없다)

 

․先義而後利.(의를 먼저 생각하고 이익을 나중에 생각한다)

‥衣食足而後知禮.(의식이 풍족한 이후에 예를 안다)

 

賞善罰惡 則誰不爲善也.(선한 자에 상을 주고 악한 것에 벌을 주면, 누가 선을 행하지 않으리오.)

‥民知賞善罰惡. 不知何由受賞.(백성이 상이 좋고 벌이 나쁜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상을 받는가를 모른다)

 

法正, 孰違之哉.(법이 바른데, 누가 어길 것인가)

‥君子法正, 斥邪也.(군자는 바름을 본받고, 사악함을 물리친다)

 

不言不可言.(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지 마라)

不言誰知乎.(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리오)

 

 

 

 

 

한문을 읽다보면 아래 言자처럼 길게 구문을 취하는 한자는 어디까지 구문을 취하는지 문제가 생긴다. 이런 것에 대하여 알아보자.

 

1) 言者不行焉.(의를 말하는 자는 의를 행하지 않는다)

2) 靑出於藍, 言弟過於師.(청출어람은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말한다)

위 예문 1에서 言은 뒤의 義까지만 짧게 걸리는데, 예문 2는 구절 ‘弟過於師’가 길게 걸친다.

言자처럼 뒤에 걸리는 범위가 애매할 수 있는 한자는 知, 見, 聞, 計, 欲 등이다. 또 한문에서 非, 不 같은 부정어가 어느 단어, 구절에까지 걸리는지, 즉 부정어의 범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래에서 밑줄 친 것은 부정어에 걸리는 범위를 나타낸 것이다.

 

1) 誰不而知之乎. (누가 배우지 않고 알겠는가.)

1-a) 非鈍才, 誰不學而知之乎.(둔재가 아니면, 누가 배우고 알지 못하겠는가)

1-b) 非鈍才, 誰學而不知之乎. ( = )

2) 非孝不知而不行之, 不欲行而不行之也.(효는 몰라서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행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2-a) 非不知而不行之也.(효가 아니면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위의 예문 1, 1-a에서 보듯이 ‘不學而知’가 부정어인 不자가 어디까지 걸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1-a 문장은 不자가 구절로 길게 걸려서 ‘둔재가 아니라면 누가 배우지 않고 알겠는가.’로도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1-b처럼 不자가 걸리는 범위를 짧게 간결하게 처리하면, 의미 파악하기가 훨씬 분명해진다.

예문 2에서도 非자가 어디까지 걸리는지, 초학자가 알아내기가 쉽지는 않다. 2-a처럼 非자가 걸리는 범위를 잘못 설정하여,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생략

 

 

한문에서 주어, 목적어 등의 주요한 단어가 생략되는 일이 흔하다.

또 어조사 같은 보조적인 단어가 생략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흔하다.

한문 문장 안에서 어떤 단어가 생략이 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나, 단어를 보충하면 그 문장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말한다.

 

生卽死, 死卽生.(살려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

視黃金若石.(황금 보기를 돌처럼 하라.)

위 예문처럼 언급되는 것이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문장에서 ‘우리, 사람’ 등이 주어가 되는 것 같은데, 주어가 대개 생략된다.

이는 우리말도 그러하니, 쉽게 이해가 갈 터이다.

 

甲問於乙曰, “汝何歲.”(갑이 을에게 ‘그대는 몇 살인가’라고 물었다.)

對曰, “不知.” ((을이) ‘모르네’라고 대답했다.)

曰, “何謂名乎.” ((갑이) ‘이름이 무엇인고.’라고 물으니,)

曰, “不亦知.” ((을이) ‘또한 모르네.’라고 했다.)

위처럼 대화문이 연속되는 경우에 흔하게 두 번째부터는 화자(話者)가 생략되는 일이 많다.

이런 경우에는 생략된 화자가 누구인지 혼동될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 잘 가려내야 한다.

 

1)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1-a) 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이에 성내지 않으니, ~.)

2) 謙者卑人.(겸손한 자는 남에게 낮춘다)

2-a) 謙者卑己於人.(겸손한 자는 자기를 남에게 낮춘다)

위의 예문 1문장은 의미 파악에 주요한 단어가 생략되어서, 처음 봐서는 ‘남이 알지 못하는 것’(人不知)이 나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생각보다 알기가 쉽지 않고, ‘성내지 않은 것’(不慍)의 주체가 나인가 남인가도 구별하기 까다로울 수 있다. 그래서 1-a처럼 표현되었다면, 상당히 예문 1보다는 쉽게 의미를 알 수 있다.

예문 2, 2-a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주어 같은 주요 성분이 생략되어, 해석에 논란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래를 보라.

 

1) 孔子謂季氏:"八佾舞於庭,是可忍也,孰不可忍也?"

1-a) (~ “~, (계씨가) 이것(팔일무)을 차마 하니, 무엇을 차마 못 하겠는가.” ~.)

1-b) (~ “~, (내가(공자)) 이것(팔일무)을 참으니, 무엇을 못 참겠는가.” ~.)

2) 是馬雖有千里之能, 食不飽力不足. 才美不外見. 且欲與常馬等, 不可得.( ~ (사람이) 장차 보통 말과 구분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2-a) = ( ~ (천리마가) 또 보통 말과 같아지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예문 1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데, ‘是可忍也’ 이 구절에 생략된 주어를 무엇으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忍자의 해석이 달라진다. 1-a는 생략된 주어를 ‘계씨’로 보고 해석한 것이고, 1-b는 생략된 주어를 공자나 우리 정도로 보고 해석한 것이다.

예 2는 유명한 한유의 잡설(雜說)의 한 부분이다. ‘且欲與常馬等’에 생략된 주어를 사람으로 보면 2처럼 해석이 되고, 천리마로 보면 2-a로 해석이 되어, 等자의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1) 一石二鳥.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

1-a) 一石二鳥. ( = )

  위 예문 1을 처음 보고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라는 의미임을 알기에는 다소 힘들다.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1-a 문장처럼 표현해야 할 것이다.

예문 1처럼 이른바 한자 성어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자수를 맞추다 보니, 상당히 생략이 많아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1-a 예문처럼 생략이 됐다고 볼 수 있거나 보충이 가능한 단어에는 밑줄을 쳤다. 아래로도 마찬가지이다.

 

1) 孔子自衛反魯.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갔다.)

1-a) 孔子自衛反魯. ( = )

2) 龜先兎來此也.(거북이가 토끼보다 먼저 여기에 왔다.)

2-a) 龜先兎來此也. ( = )

위의 예시 1은 자칫하면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를 뒤집었다.’고 오역할 가능성이 있는데, 1-a처럼 어조사 於자가 있으면, 훨씬 쉽게 문장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

예시 2, 2-a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어조사가 생략됐다고 보고, 의미 파악을 하면 해석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1) 王用, 退不肖也.(왕이 현량한 자를 등용하고, 불초한 자를 물리쳤다)

1-a) 王用賢, 退不肖者也. ( = )

2) 天助, 罰.(하늘은 착한 자를 돕고, 악한 자를 벌한다)

2-a) 天助, 罰.(하늘은 선을 돕고, 악을 벌한다)

우리말은 어떤 단어가 사람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문 1에서 賢자는 본래 ‘사람’의 의미와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현량한 자’로 해석이 되어, 사람의 의미와 관련이 있게 됐다. 만일 1-a처럼 표현했으면, 의미 파악이 확실했을 것이다.

어떤 단어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구별하지 않는 이러한 한문의 특성은 모호함을 초래한다.

예문 2처럼 어떤 단어(밑줄)를 사람으로 해석해야 할지, 2-a처럼 사람이 아닌 것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호한 경우가 생긴다.

 

大乎十, 小乎千.(은 십보다 크고, 천보다 적다)

發百中.(백 번 쏴서 백 번 맞추다)

一當.(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하다)

  위 예문에서 숫자 百이 ‘백, 백 번, 백 사람’으로 각각 풀이가 됐는데, 이처럼 숫자가 단순히 그 수(數)를 의미하는 외에, 문맥에 따라 뒤에 어떤 단어를 보충하여 해석을 해야, 의미가 명확해지는 때가 있다.

 

 

 

 

 

어떤 단어가 인명(人名)이나 지명(地名) 같은 고유명사인지 아닌지가 구분하기 곤란할 때가 더러 있다. 언뜻 고유명사로 보이지 않는데 고유 명사인 경우가 적잖이 있으니,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洪吉童, 文武兼備. 然庶出, 不出仕.(홍길동은 문무를 겸비했다. 그러나 홍길동은 서출이라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인명의 경우에, 위 예문처럼 동일 인물이 연속 언급될 경우에 이름 끝 자나 자(字) 같은 것을 써서 처음 앞에 표현된 것과 달리 많이 표현하기도 한다.

또 요(堯)나 순(舜)은 성군을 상징하고, 걸(桀)이나 주(紂)가 폭군을 상징하는데, 이렇게 고유명사 중에는 어떤 부분에 거의 대명사가 되어 상징적으로 쓰이는 것도 있다. 이렇게 대명사나 상징이 되다 싶은 단어는 泰山(높은 산), 孔子(성인), 西施․楊貴妃(미녀), 李白(시인), 孫子(병법가), 蘇秦․張儀(언변가), 羿․逢蒙(명궁수), 造父․王良(마부), 師曠(악사), 易牙(요리사), 項羽․烏獲(장사), 孟賁, 離婁(시력이 좋은 사람), 倕(장인), 華陀(명의), 盜跖(도적), 幽․厲, 伯夷․叔弟, 比干, 尾生, 直躬, 彭祖, 東方朔, 孟獲, 嫫母 등 많다.

지명은 같은 지명이라도 시대에 따라 다른 곳을 가리킬 때가 적잖으니,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고유명사는 독음이 상당히 보수성을 띄어서, 고유명사 중엔 독음이 변하기 이전의 음으로 읽히는 경우가 있으니, 예를 들면 ‘玄菟’는 독음이 ‘현’가 아니고 ‘현’라고 하는 따위이다. 이것이 菟자의 독음이 본래 ‘토’가 아니고 ‘도’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면, 이런 한자는 국어의 음운 변천 연구에 가치가 있는 듯하다.

   

 

 

 

직접적인 표현을 하기보다는, 간접적이거나 구체적 표현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 한문에 이런 것이 적지 않게 쓰인다.

이것을 간혹 겉으로 표현한 액면 그대로만 풀이하면 의미 파악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속뜻을 잘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이는 표현들에는 대개 과장이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 특징이다.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농사 때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다 먹을 수가 없다. => 곡식을 다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은 곡식이 풍족해질 것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書, 載之則汗牛, 積之則充棟.(책이 실으면 소를 땀나게 하고, 쌓으면 들보에 찬다. => 책이 양이 많은 것을 이렇듯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다)

 

․少年見蛇, 五色無主.(소년이 뱀을 보고는, (얼굴에) 오색 중에 주된 것이 없었다. => 소년이 뱀을 보고 놀라, 안색이 한 가지로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색으로 울긋불긋함을 나타낸다)

 

․連日降雪, 及牛肩也.(연일 눈이 오더니, 소 어깨에 이르렀다. => 눈이 소의 어깨 높이에 이를 정도로 많이 옴을 의미한다.)

 

․竹直中繩.(대나무는 곧기가 먹줄에 들어맞는다. => 대나무가 먹줄을 친 것처럼 아주 곧음을 말한다.)

 

․百發, 百中.(백 번 쏴서 백 번 맞추다. => 활을 아주 잘 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姜將軍食不二味, 坐不重席.(강 장군은 먹을 때는 맛(음식)을 이중으로 하지 않고, 앉을 때는 자리를 중복되지 않게 했다. => 생활이 검소함을 말한다.)

   

 

 

 

단어나 구절을 대신하여 받는 역할을 하는 之, 是 같은 단어를 대사(代詞)라고 한다. 대사가 대신하여 받은 단어나 구절을 선행사라고 한다.

 

1) 氷水爲之, 而寒於水.(얼음은 물이 그것(얼음)이 됐으나, 물보다 차갑다)

牛不亦好鷄, 鷄不亦好之.(소도 닭을 좋아하지 않고, 닭도 그것(소)을 좋아하지 않는다)

2) 冬往則春來, 莫能止之也.(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을 아무도 (그것(冬往則春來)을) 막을 수 없다)

兄之妻, 謂之兄嫂也.(형의 처를 (이(兄之妻)를) 형수라고 한다)

예문 1에서 之자가 앞에 나온 단어를 대신하여 쓰였다.

한문에서 예문 1처럼 대사가 단어를 받을 때엔 대개 목적어 자리에 쓰이는 경우가 많고, 사물이 아니고 사람인 단어를 받는 대사가 쓰일 때는 주어 자리에 간혹 대사가 쓰이기도 하나, 사물을 받을 때엔 대사가 주어 자리에 별로 잘 쓰이지 않는 듯하다.

예시 2처럼 한문에서 문장의 처음에 나온 구절이나 단어를 그 문장이나 구절 내에서 대개 목적어 자리에서 바로 또 之자 같은 대사로 받는 모양이 적잖게 눈에 띈다. 이런 형태를 해석할 때에 뒤의 대사는 해석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가 많다. 대사로 쓰이는 한자에는 之, 焉, 其, 此, 諸, 斯, 玆 등이다.

 

1) 子路問於孔子曰, “我聞之舜之父欲殺舜,信乎.”(~ “나는 그런 말을 들었는데, 순의 아버지가 순을 죽이려고 했다고, 진실입니까.” ~)

2) 有而不知其有, 空氣是也.(있어도 있는 줄 모르니, 공기가 그러하다)

2-a) 有而不知其有, 空氣是也.(있어도 있는 줄 모르니, 공기가 옳다)

위의 예문 1에서 대사 之자는 앞에 선행사를 받아서 뒤에 쓰인 것이 아니고, 그냥 대사가 앞에 쓰이고, 선행사(‘舜之父欲殺舜’)는 뒤에 쓰였다.

이렇게 대화문이 쓰일 때에, 앞에 선행사가 놓이고 뒤에 대사가 놓이는 형태가 아니고, 앞에 대사가 쓰이고 뒤에 선행사가 쓰이는 반대의 형태가 보이기도 한다.

예문 2에서 대사 是는 서술어로 풀이되는데, 대사가 서술어로 해석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아서, 초학자라면 2-a처럼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1) 女壽乎男, 是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데, 이는 어째서인가.)

女壽乎男, 是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 이는 어째서인가.)

1-a) 女壽乎男, 是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것은 어째서인가.)

1-b) 女壽乎男, 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데, 이는 어째서인가.)

  예문 1에서 보듯이 대명사 是가 앞의 구절(문장)을 받아, 다음 구절 첫 자리에 쓰여, 주어처럼 해석이 된다.

이렇게 쓰이는 한자는 是, 此, 斯 등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1-a처럼 대명사를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또 예문 1-b처럼 대명사가 안 쓰여도, 대명사를 넣어 해석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한문은 구절(句節)이나 문장(文章)을 분명하게 구분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구절은 우리말 해석을 기준으로 한 측면이 많다.

구절 사이에 則, 故, 乃, 因 같은 구절 사이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 주는 표현이 없을 때는 앞 구절의 용언의 어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종종 만만치 않은데, 이에 대해 설명한다.

 

1) 至誠, 感天.(지극히 정성스러우면 하늘을 감동시킨다)

讀書百遍, 義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

1-a) 欠, 掩口.(하품할 때는 입을 가려라)

2) 樹欲靜, 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림이 그치지 않는다)

左右數諫, 王不聽也.(좌우에서 자주 간했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위의 예문 1은 문장 사이가 가정으로 연결되어, 굵게 표시한 문장 사이의 용언이 대개 ‘-하면’으로 풀이되는데, 때에 따라선 ‘-하고, -하니’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1-a처럼 ‘-하면’보다는 ‘-할 때’로 풀이함이 의미가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경우도 존재한다.

예문 2와 같이 문장 사이가 역접으로 연결되면, 용언이 ‘-하나, -하지만, -해도’ 등으로 풀이된다.

문장 사이가 가정이나 역접으로 연결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의미가 아주 딴판이 될 수 있으니, 우선 이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잘 구분해야 할 것 같다. 가정, 역접 이외의 상황에 대하여 알아보자. 아래를 보라.

 

兒見天, 號也.(아이가 하늘을 보고서, 부르짖었다)

甲見不可見, 故被禍.(갑이 봐서는 안 될 것을 봐, 화를 입었다)

甲見窓外, 降雨也.(갑이 창밖을 보, 비가 내렸다)

父讀新聞, 竝食朝飯.(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면서, 아침을 드셨다)

나머지 경우도 위에서 보듯이, 문장 사이 용언의 어미가 다양하게 해석이 되고, 이외에도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될 수 있으니, 문맥을 잘 살펴 의미 파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문처럼 구절이 대(對)를 이루는 대구(對句)가 자주 쓰이는 언어가 또 있을까.

왜 이렇게 한문에선 대구가 흔할까.

한문은 확실히 다른 언어에 비해 문법적인 요소가 빈약한 언어이다. 이러다 보니까,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맥을 쉽게 파악하게 하기 위한 특징을 갖게 된 듯하다.

이런 한문의 문맥 지향적인 성향은 주로 대구나 자수 맞추기, 짧은 문장 등을 통해 나타나는 듯하다.

 

1) 聞僧去寺, 不聞寺去僧也.(중이 절을 떠난다고 들었어도, 절이 중을 ~ .)

女弱, 母强.(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1-a) 富者憂失其富, 貧者憂脫其貧.(부자는 그 부유함을 잃을까 걱정하고, 빈자는 그 가난을 (어떻게) 벗어날까 신경 쓴다.)

위 예문 1들은 앞뒤 두 구절이 서로 대조, 반대되는 양상이다.

1-a 같은 대구는 간혹 오역을 초래할 수 있다. ‘貧者憂脫其貧’를 ‘빈자는 그 가난을 벗어나기를 걱정한다.’로 해석하여, 가난을 원한다는 의미로 잘못 풀이할 수도 있다.

사실 1-a의 ‘貧者憂脫其貧’에서 憂자는 엄밀히 의미상으로 따지면, 적절한 표현 같지는 않다. 그러나 대(對)를 이루는 구조에서는 이런 약간의 오용이 쓰여도, 의미 전달이 의도대로 될 수 있는 특징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 대구문은 단어 단위로 단편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앞뒤 구절의 문맥에 의존하여 복합적으로 해석해야 의미 파악이 제대로 되는 경우가 있다.

 

朝一日之始, 春一年之發.(아침은 하루의 시작이고, 봄은 일 년의 출발이다)

井蛙不知江河, 夏蟲不識冬節.(우물 안 개구리는 강을 알지 못하고, 여름 벌레는 겨울을 모른다)

위 예시는 두 구절이 비슷한 내용이 대를 이루는 구조이다. 이런 경우에는 비교적 해석하기가 쉬워진다.

 

男好美女, 女善富男.(남자는 미녀를 좋아하고 여자는 부유한 남자를 ~ .)

積德者必興, 爲惡者定亡.(덕을 쌓는 자는 반드시 흥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위 예문은 대구를 이루는데, 그래서 好자에 대를 이루는 善이 ‘좋아한다’로, 定자는 必에 힌트를 얻어 ‘반드시’란 의미로 쓰임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만약에 이런 것이 없었다면, 위의 문장에서 善자와 定자의 의미를 제대로 간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처럼 대(對)를 이루는 형태에서는 선뜻 알아내기 어려울 수 있는 단어의 의미를 대구를 참고하여, 어렵지 않게 유추하는 묘미가 있다.

   

 

 

 

문장이나 구절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연쇄문(連鎖文)이라고 한다. 한문에 연쇄문이 잘 쓰이는 편이다.

 

1) 鼠恐猫, 猫恐犬, 犬恐虎, 虎恐人, 人恐鼠.(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고양이는 개를 무서워하고, 개는 호랑이를 무서워하고, 호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은 쥐를 무서워한다.)

2)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이 가지런해진 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다스려진다.)

 예문 1은 단순하게 구절이 연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상호간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에 한해서만 단순하게 의미상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예문2 같은 경우는 맨 처음부터 마지막 언급된 것까지 서로 간에 의미상 관련을 갖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마지막 구절의 전제 조건이 첫 구절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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