倒置文
어순이 평소와는 다르게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도치(倒置)라고 한다. 도치에 익숙하지 않으면, 독해에 상당한 애로를 겪을 수 있다. 한문에서 도치가 어떠한 경우에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1) 吾誰怨乎. 萬事由我. (내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 )
何 · 誰 따위의 의문을 나타내는 의문사나 이를 포함하는 어구가 쓰일 때, 정상적인 어순과는 다르게 도치되어 쓰인다.
그런데 주어가 생략되고 의문사가 쓰일 때엔 의문사가 주어로 쓰였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예 3처럼 전치사구(전치사+명사)도 명사가 의문사로 쓰이면, 명사가 먼저 오고 전치사(어조사)가 뒤에 오는 ‘명사+전치사’ 형태로 도치되는 듯하다.
예 4처럼 의문사가 주어일 경우는 어차피 의문사인 주어가 서술어 앞에 위치하므로 도치될 일이 없다. 정리하면 영어와 비슷해 보이는데, 영어의 도치와는 차이가 있다.
영어에서는 의문사가 문장의 앞에 나오지만, 한문에서는 서술어 앞에 나온다는 것이다.
1) 不知今日之事, 如未來何.(오늘 일도 모르는데, 미래를 어찌 하겠는가)
甲曰, “奈此事何.”(갑이 ‘이 일을 어쩌느냐’라고 했다)
2) 父問女曰, “崔君孰與鄭君.”(아버지가 딸에게 ‘최 군하고 정 군 중에 어느 쪽이냐.’라고 물었다)
위 예문 1에서 보듯이 如~何 같이 의문사가 중첩되어 쓰일 때 의문사 사이에 단어가 삽입되는 도치 비슷해 보이는 형태가 쓰이기도 한다.
예문 2처럼 孰與 같은 의문사구는 단어 사이에 끼는 특이한 형태를 갖는다.
不, 無, 未 같은 부정(금지 포함)을 나타내는 부정어가 동사(용언) 앞에서 쓰이는 「부정어+동사」 형태에서 도치가 되는 경우가 있다. 아래를 보라.
1) 不患人之不己知.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마라.)
3) 勿以小利失大利. (작은 이익 때문에 이익을 잃지 마라.)
예1 같은 형태에서 ‘부정어+동사’ 사이에 낄 수 있는 단어는 명사나 대명사인데, 대명사일 경우에 명사일 때보다 더 자주 도치되어 쓰이는 듯하다.
예 2는 부정어+동사 사이에 부사어 ‘嘗’이 삽입되어 쓰였다. 이것이 도치인지 애매한데, 우리말 해석으로 비춰 생각하면 마치 도치된 것처럼 보인다.
非자가 간혹 예1처럼 주어를 제치고 문장 맨 앞에 놓여 쓰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非가 이렇게 쓰이는 것은 선택적인 듯하여, 1-a 같은 보통의 어순 형태로 쓰이는 것도 가능하다.
2-b처럼 ‘無+명사’ 형태에서 不자 같은 부정어가 없이도 후치 수식을 받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예2 같은 ‘無~不’ 표현처럼 흔하게 쓰이지는 않는 듯하다.
1) 富貴, 人皆好之也. (부귀는 사람이 모두 좋아한다.)
1-a) 人皆好富貴也. (사람은 모두 부귀를 좋아한다.)
2) 女可失, 友不可失. (여자는 잃어도 되지만, 친구는 잃어서는 안 된다.)
예 1처럼 화제어 뒤에는 구절이 아니지만 구두점을 표기하기도 한다.
1) 君子義之求, 凡夫利之貪也.(군자는 의를 구하고, 범부는 이익을 탐한다.)
1-b) 渴者唯水是欲, 飢者唯食是願. (목마른 자는 오직 물을 원하고, ~ .)
2) 人李舜臣之謂英雄. (사람들은 이순신을 영웅이라고 한다.)
위의 예 1은 목적어가 우리말 어순과 비슷하게 서술어 앞에 위치하는 도치가 일어난다.
이때 단어가 도치됐음을 분명하게 표시하게 위함인지, 도치된 목적어 뒤에 之자나 1-b 문장처럼 是자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한자가 붙지 않을 때도 있다.
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원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위 예문에서 보듯이 목적어가 절(節)로 긴 형태일 때에도, 목적어가 먼저 나오고 뒤에 술어가 나와서, 보통의 어순과는 달리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1) 凡夫於利明, 於義暗.(범부는 이익에 밝고, 의에 어둡다)
위의 예문 1처럼 보어로 쓰이는 전치사구(前置詞句)가 술어 앞에 나와, 도치가 되기도 한다.
물론 1-a처럼 통상의 어순으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高於山矣. 父心乎.(산보다 높구나. 아버지 마음이여.)
위 예문들은 감탄문인데, 술어가 먼저 나오고, 주어가 나중에 나와, 도치(倒置)가 쓰였다.
이런 경우에 乎자가 감탄을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였는지, 전치사로 쓰였는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我聞之, 脣亡齒寒也.(나는 그런 말을 들었다. 이가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我聞諸父, 曰勿恥所不知.(나는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위 예시처럼 인용문이 쓰이는 경우에 우선 앞에서 인용 부분을 之, 諸 같은 대명사로 간단히 받고, 뒤에 실제의 인용 부분을 두는 도치 비슷한 모양이 쓰이는 듯하다.
한문은 우리말에 비하면, 어순이 고정되어 있는 편인데, 일부 부사나 전치사구가 어순이 고정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인 것 같다. 아래 예시를 보라.
1) 汝若窮, 則誰助汝乎.(네가 만일 어려워지면, 누가 너를 돕겠느냐)
2) 三日後, 先生遂歸家矣.(삼일 후에 선생이 드디어 귀가했다)
예문 1에서 若자는 汝자 다음에 위치했는데, 1-a처럼 汝자 앞에 위치하여 쓰이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우리말도 마찬가지이므로 이해하기는 쉬울 터이다.
예문 3과 3-a에서 自 전치사구가 다른 자리에 쓰였다. 이렇게 自자처럼 비교적 어순이 자유로운 전치사구를 이끄는 전치사는 以 · 由 따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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