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八回
追漢軍王雙受誅 襲陳倉武侯取勝.
제98회
漢軍을 추격하다가 王雙이 受誅하고, 陳倉을 습격하여 武侯가 取勝하다.
卻說
司馬懿奏曰:
「臣嘗奏陛下,言孔明必出陳倉,故以郝昭守之。今果然矣。
彼若從陳倉入寇,運糧甚便。
今幸有郝昭、王雙守把,不敢從此路運糧。
其餘小道,搬運艱難。
臣算蜀兵行糧止有一月,利在急戰。
我軍只宜久守。
陛下可降詔,令曹真堅守諸路關隘,不要出戰。
不須一月,蜀兵自走。
那時乘虛而擊之,諸葛亮可擒也.」
한편, 사마의가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폐하께 아뢰기를, 공명이 틀림없이 진창으로 나올 터이니 학소가 그곳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저들이 진창으로 침범하면 運糧이 심히 편합니다.
이제 다행히 학소와 왕쌍이 守把하니, 감히 이 길로 식량을 운반하지 못할 터입니다.
나머지 小道는 搬運이 艱難입니다.
신이 헤아리건대 촉병은 行糧이 겨우 한 달 치이니, 利在急戰입니다.
아군은 단지 오래도록 수비해야 합니다.
폐하께서 조서를 내리시어 조진은 諸路關隘를 堅守하되 출전하지 말라 하십시오.
불과 한 달이 안 되어 촉병은 스스로 달아날 터입니다.
이때 빈틈을 노려 공격하면 제갈량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叡欣然曰:
「卿既有先見之明,何不自引一軍以襲之?」
조예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경에게 先見之明이 있으면서, 어찌 스스로 1군을 이끌고 그들을 습격하지 않소?”
懿曰:
「臣非惜身重命,實欲存下此兵,以防東吳陸遜耳。
孫權不久必將僭號稱尊;如稱尊號,恐陛下伐之,定先入寇也。
臣故欲以兵待之.」
“신은 惜身重命함이 아니오라, 실은 이곳 군사를 보존하여 동오의 육손을 방비하고자 할 뿐입니다.
손권은 머지않아 僭號稱尊할 것인데, 존호를 참칭하면 폐하께서 그들을 정벌하실까 염려하여 틀림없이 먼저 침입할 터입니다.
신은 그런 까닭에 군사로써 대비하고자 합니다.”
正言間,忽近臣奏曰:
「曹都督奏報軍情.」
말하고 있는데 近臣이 아뢰었다.
“조도독께서 軍情을 奏報하였습니다.”
懿曰:
「陛下可即令人告戒曹真;
凡追趕蜀兵,必須觀其虛實,不可深入重地,以中諸葛亮之計.」
사마의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즉시 사람을 보내 조진에게 告戒해야 합니다.
무릇 촉병을 추격함에 반드시 그 허실을 살펴야 하며, 深入重地하여 諸葛亮之計에 빠져선 안 된다고 하십시오.”
叡即時下詔,遣太常卿韓暨持節告戒曹真:
「切不可戰,務在謹守;只待蜀兵退去,方纔擊之.」
조예가 즉시 조서를 내려, 太常卿 韓暨에게 부절을 주어 조진에게 보내어 告戒하기를,
‘절대 싸우지 말고 謹守에 힘쓰고, 오로지 촉병이 퇴각하기를 기다려 비로소 공격하라.’
라고 하였다.
司馬懿送韓暨於城外,囑之曰:
「吾以此功讓與子丹,公見子丹,休言是吾所陳之意,只道天子降詔,教保守為上。
追趕之人,大要仔細,勿遣性急氣躁者追之.」
사마의가 성 밖에서 한기를 전송하며 부탁하였다.
“내가 이번 공로를 자단에게 양보할 터이오.
공께서 자단을 만나거든 절대 나의 所陳之意라 말하지 말고, 단지 천자께서 조서를 내리시며 保守가 상책이라 敎示하셨다고 말하시오.
追趕之人도 꼭 세심한 사람을 뽑고, 절대 性急氣躁者를 보내어 따라가게 하지 마시오.”
暨辭去。
한기가 작별하고 갔다.
卻說
曹真正升帳議事,忽報天子遣太常卿韓暨持節至。
한편,
조진이 군막에 올라 軍事를 의논하는데 보고하기를, 천자께서 태상경 한기를 持節하여 보내어 도착했다고 하였다.
真出寨接入。
受詔已畢,退與郭淮、孫禮計議。
조진은 出寨接入하고, 조서를 받고 나서 물러 나와 곽회, 손례와 의논하였다.
淮笑曰:
「此乃司馬仲達之見也.」
곽회가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司馬仲達之見입니다.”
真曰:
「此見若何?」
조진이 말하였다.
“이 의견이 어떻소?”
淮曰:
「此言深識諸葛亮用兵之法。
久後能禦蜀兵者,必仲達也.」
곽회가 말하였다.
“이 말을 보니 諸葛亮用兵之法을 深識하고 있습니다.
久後에 능히 촉병을 막을 이는 틀림없이 중달이겠습니다.”
真曰:
「倘蜀兵不退,又將如何?」
조진이 말하였다.
“촉병이 물러가지 않으면 또 장차 어찌하겠소?”
淮曰:
「可密令人去教王雙,引兵於小路巡哨,彼自不敢運糧。待其糧盡兵退,乘勢追擊,可獲全勝.」
“몰래 왕쌍에게 사람을 보내 지시하기를, 引兵하여 小路를 巡哨하라 하면 되겠습니다. 저들은 감히 스스로 군량을 운반하지 못할 터이니, 그들의 군량이 떨어져 兵退하기를 기다려, 형세를 타서 추격하면 全勝을 거둘 수 있겠습니다.”
孫禮曰:
「某去祁山虛妝做運糧兵, 車上盡裝乾柴茅草,以硫黃焰硝灌之,卻教人虛報隴西運糧到。
若蜀兵無糧,必然來搶。待入其中,放火燒車,外以伏兵應之,可勝矣.」
손례가 말하였다.
“제가 기산으로 가서 運糧兵으로 妝做하고, 수레마다 乾柴茅草를 싣고 硫黃焰硝를 들이붓고 사람을 시켜 隴西의 運糧이 도착한다고 거짓으로 보고하게 하겠습니다.
촉병에게 군량이 없다면 틀림없이 빼앗으러 올 테니, 그들이 수레들 속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질러 수레를 불사르고 바깥에서 伏兵으로써 지원한다면 이길 수 있겠습니다.”
真喜曰:
「此計大妙!」
조진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 계책이 大妙하오!”
即令孫禮引兵依計而行。
즉시 손례에게 引兵依計而行하라 하였다.
又遣人教王雙引兵於小路上巡哨.
또한 사람을 보내 왕쌍에게 군사를 이끌고 小路上을 巡哨하게 하였다.
郭淮引兵提調箕谷、街亭,令諸路軍馬守把險要。
곽회는 병력을 이끌고 기곡과 가정에 배치하도록 하고, 諸路軍馬는 險要를 守把하게 하였다.
真又令張遼子張虎為先鋒,樂進子樂綝為副先鋒。同守頭營,不許出戰。
조진은 또한 장요의 아들 張虎를 선봉으로 삼고 악진의 아들 樂綝을 부선봉으로 삼아 함께 頭營을 지키게 하고 不許出戰하였다.
卻說
孔明在祁山寨中,每日令人挑戰,魏兵堅守不出。
한편,
공명이 기산 영채에 머물며 每日令人挑戰하지만 위병은 굳게 지키고 출전하지 않았다.
孔明喚姜維等商議曰:
「魏兵堅守不出,是料吾軍中無糧也。
今陳倉轉運不通,其餘小路盤涉艱難,吾算隨軍糧草,不敷一月用度,如之奈何?」
공명이 강유 등을 불러 상의하였다.
“위병이 굳게 지키며 나오지 않으니 이는 우리 軍中에 군량이 없다고 여겨서요.
이제 진창을 통한 轉運이 통하지 않고 나머지 샛길로 盤涉하기도 곤란하오. 내가 隨軍糧草를 계산하니, 부족하기가 한 달 쓸 정도인데 어찌해야겠소?”
正躊躇間,忽報隴西魏軍運糧數千車於祁山之西,運糧官乃孫禮也。
躊躇하고 있는 사이에 보고하기를, 농서의 魏軍이 수천 량의 군량을 祁山之西에서 운반하는데 運糧官은 孫禮라고 하였다.
孔明曰:
「其人如何?」
공명이 말하였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
有魏人告曰:
「此人曾隨魏主出獵於大石山,忽驚起一猛虎,直奔御前,孫禮下馬拔劍斬之。
從此封為上將軍。乃曹真心腹人也.」
어떤 魏人이 고하였다.
“그는 일찍이 魏主를 따라 大石山에서 사냥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猛虎 한 마리가 놀라서 뛰쳐나와 곧바로 御前으로 달려들자 손례가 말에서 내려 검을 뽑아 참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상장군에 봉해졌습니다.
조진의 心腹人입니다.”
孔明笑曰:
「此是魏將料吾乏糧,故用此計。
車上裝載者,必是茅草引火之物。
吾平生專用火攻,彼乃欲以此計誘我耶?
彼若知吾軍去劫糧車,必來劫我寨矣。
可將計就計而行.」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魏將이 아군 식량이 궁핍하다고 생각하여 이 계책을 쓰는 것이오.
수레에 실은 것은 틀림없이 茅草引火之物일 터이오.
내 평생 專用火攻인데, 저들이 이 계책으로 나를 유인하려 하는가?
저들은 아군이 去劫糧車함을 알면 틀림없이 우리 영채를 급습해 올 터이오.
將計就計하여 실행해야 하겠소.”
遂喚馬岱分付曰:
「汝引三千軍徑到魏兵屯糧之所,不可入營,但於上風頭放火。
若燒著車仗,魏兵必來圍吾寨.」
곧 마대를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는 군사 3천을 거느리고 곧장 魏兵屯糧之所로 가시오. 영채로 들어가지 말고 바람을 등진 채 불을 지르시오.
수레와 병장기가 불이 붙으면 위병이 틀림없이 우리 영채를 포위하러 올 터이오.”
又差馬忠、張嶷各引五千兵在外圍住,內外夾攻。
다시 마충과 장의을 차출하여 각각 병사 5천을 이끌고 바깥에서 포위해 안팎에서 협공하게 하였다.
三人受計去了。
세 사람이 계책을 받고 떠났다.
又喚關興張、苞分付曰:
「魏兵頭營接連四通之路。
今晚若山西火起,魏兵必來劫吾營。
汝二人卻伏於魏寨左右。
只等他兵出寨,汝二人便可劫之.」
다시 관흥과 장포를 불러 분부하였다.
“위병의 頭營은 四通之路에 接連해 있소.
오늘 저녁 기산 서쪽에서 불길이 솟으면 위병이 틀림없이 우리 영채를 급습하러 올 터이오.
그대 두 사람은 魏寨左右에 매복하시오.
他兵出寨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대 두 사람은 곧 급습하시오.”
又喚吳班、吳懿分付曰:
「汝二人各引一軍伏於營外。
如魏兵到,可截其歸路.」
다시 오반과 오의를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각각 1군을 이끌고 伏於營外하시오.
위병이 오거든 截其歸路하시오.”
孔明分撥已畢,自在祁山上憑高而坐。
공명이 배치를 마치고 스스로 기산에 憑高而坐하였다.
魏兵探知蜀兵要來劫糧,慌忙報與孫禮。
위병은 촉병이 要來劫糧함을 探知하고 황망히 손례에게 알렸다.
禮令人飛報曹真。
손례가 조진에게 사람을 보내 급히 알렸다.
真遣人去頭營分付張虎、樂綝:
「看今夜山西火起,蜀兵必來救應。
可以出軍,如此如此.」
조진이 頭營으로 사람을 보내 장호와 악림에게 분부하였다.
“오늘 밤 기산 서쪽에서 불길이 치솟음을 보면 촉병이 틀림없이 구원하러 올 터이오.
군사를 내어 여차여차하시오.”
二將受計,令人登樓專看火號。
두 장수가 계책을 받고 사람을 시켜 망루에 올라 오로지 火號만 살피게 하였다.
卻說
孫禮把軍伏於山西,只待蜀兵到。
是夜二更,馬岱引三千兵來,人皆銜枚,馬盡勒口。
徑到山西,見許多車仗,重重疊疊,攢遶成營,車仗虛插旌旗。
正值西南風起,岱令軍士逕去營南放火,車仗盡著,火光沖天。
孫禮只道蜀兵到魏寨內放號火,急引兵一齊掩至。
背後鼓角喧天,兩路兵殺來,乃是馬忠、張嶷把魏軍圍在垓心。孫禮大驚。
又聽得魏軍中喊聲起,一彪軍從火光邊殺來,乃是馬岱。
內外夾攻,魏兵大敗。
火緊風急,人馬亂竄,死者無數。
孫禮引中傷軍,突煙冒火而走。
한편,
손례가 군사를 山西에 매복하고 촉병이 오기만 기다렸다.
이날 밤 2경 마대가 병력 3천을 이끌고 오는데 사람은 모두 銜枚를 물고 말은 모두 입에 재갈을 물렸다.
곧장 山西에 이르자, 허다한 車仗이 중중첩첩 둘러쌓여 진영을 이루고, 車仗에 旌旗를 공연히 꽂아 놓았다.
때마침 서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마대가 병사들에게 영채 남쪽으로 달려가 불을 지르게 하니 車仗盡著하여 火光沖天하였다.
손례는 촉병이 魏寨內에 도착하여 불을 놓아 신호하는 줄로 여기고, 서둘러 병력을 이끌고 일제히 습격해 왔다.
배후에서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兩路兵이 달려오는데 바로 마충과 장의의 군사로서 魏軍을 가운데로 에워싸니 손례가 깜짝 놀란다.
다시 魏軍中에서 함성이 일며 一彪軍이 불빛 속에서 달려오는데 바로 마대이다.
안팎으로 협공하니 위병이 대패하였다.
불길이 맹렬하고 바람이 거세니 사람과 말이 어지러이 달아나다 죽은 이가 무수하다.
손례가 中傷軍을 이끌고 突煙冒火하고 달아난다.
卻說
張虎在營中,望見火光,大開寨門,與樂綝盡引人馬,殺奔蜀寨來,寨中卻不見一人;
한편,
장호는 영채 안에 머물다 멀리 불빛을 보자, 영채 문을 활짝 열고 악림과 더불어 盡引人馬하여 蜀寨로 달려오지만 영채 안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急收軍回時,吳班、吳懿兩路兵殺出,斷其歸路。
급히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려 하는데 오반과 오의의 兩路兵이 쏟아져 나와 斷其歸路하였다.
張、樂二將急衝出重圍,奔回本寨,只見土城之上,箭如飛蝗。
장, 악 두 장수가 급히 겹겹의 포위를 뚫고 나와 本寨로 돌아가는데, 土城之上에서 화살이 메뚜기처럼 날아왔다.
原來卻被關興、張苞襲了營寨。
알고 보니 관흥과 장포가 영채를 벌써 습격한 것이다.
魏兵大敗,皆投曹真寨來。
魏兵이 대패하여 모두 조진의 영채로 갔다.
方欲入寨,只見一彪敗軍飛奔而來,乃是孫禮;
바야흐로 영채에 들어가려는데 한 무리 패잔병 무리가 달려오니, 바로 손례였다.
遂同入寨見真,各言中計之事。
함께 영채로 들어가 조진을 만나 제각기 中計之事를 말하였다.
真聽知,謹守大寨,更不出戰。
조진이 듣고 大寨를 謹守하며 다시는 출전하지 않았다.
蜀兵得勝,回見孔明。
촉병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가 공명을 뵈었다.
孔明令人密授計與魏延,一面教拔寨齊起。
공명이 사람을 보내어 은밀히 위연에게 계책을 주고, 한편으로 지시하기를 영채를 뽑아 모두 떠나라고 하였다.
楊儀曰:
「今已大勝,挫盡魏兵銳氣,何故反欲收軍?」
楊儀가 말하였다.
“이제 이미 크게 승리하여 魏兵銳氣를 挫盡하였거늘 무슨 까닭으로 도리어 병력을 거두려 하십니까?”
孔明曰:
「吾兵無糧,利在急戰。
今彼堅守不出,吾受其病矣。
彼今雖暫時兵敗,中原必有添益。
若以輕騎襲吾糧道,那時要歸不能。
今乘魏兵新敗,不敢正視蜀兵,便可出其不意,乘機退去。
所憂者但魏延一軍,在陳倉道口拒住王雙,急不能脫身。
吾已令人授以密計,教斬王雙,使魏人不敢來追,只令後隊先行.」
공명이 말하였다.
“아군은 군량이 없으니 利在急戰이오.
저들이 지금 堅守不出하니, 내게 병이 생길 지경이오.
저들이 이제 暫時 패전했지만 중원에서는 틀림없이 더욱 증강할 터이오.
輕騎로써 襲吾糧道하면 그때는 돌아가려 해도 불가능하오.
이제 위병이 갓 패전하여 不敢正視蜀兵하니, 出其不意로 기회를 틈타서 퇴각해야겠소.
걱정하는 것은 단지 위연의 1군이 진창 길목에서 왕쌍을 막고 있어 급히 不能脫身일 터이오. 내 이미 사람에게 密計를 주어 왕쌍을 죽이게 지시하여, 魏人이 감히 추격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後隊가 先行하게 하겠소.”
當夜孔明只留金鼓守在寨中打更。一夜,兵已盡退,只落空營。
이날 밤 공명이 金鼓守를 영채에 남겨두어 打更하게 하였다.
하룻밤에 군대가 모두 퇴각하니, 영채가 텅 비게 되었다.
卻說曹真正在寨中憂悶,忽報左將軍張郃領軍到。
한편,
조진이 영채 안에 머물며 근심하는데 보고하기를, 좌장군 장합이 병력을 이끌고 왔다고 하였다.
郃下馬入帳,謂真曰:
「某奉聖旨,特來聽調.」
장합이 말에서 내려 군막으로 들어와 조진에게 말하였다.
“제가 聖旨를 받들어 도독의 調遣을 들으러 특별히 왔습니다.”
真曰:
「曾別仲達否?」
조진이 말하였다.
“중달과 작별하고 왔소?”
郃曰:
「仲達分付云:
『吾軍勝,蜀兵必不便去;若吾軍敗,蜀兵必即去矣。』
今吾軍失利之後,都督曾往哨探蜀兵消息否?」
장합이 말하였다.
“중달이 분부하기를,
‘아군이 승리하면 촉병은 절대 물러가지 않을 터이고, 아군이 패전하면 촉병은 틀림없이 즉시 퇴각할 터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제 아군이 失利之後인데, 도독께서 사람을 보내 촉병의 소식을 哨探한 적이 있습니까?”
真曰:
「未也.」
조진이 말하였다.
“아직이오.”
於是即令人往探之,果是虛營,只插著數十面旌旗,兵已去了二日也。
이에 즉시 사람을 보내 정탐하니, 과연 빈 영채이고 다만 수십 面의 정기만 꽂혔는데 군사가 떠난 지 이틀째였다.
曹真懊悔無及。
조진이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다.
且說
魏延受了密計,當夜二更拔寨,急回漢中。
한편,
위연이 密計를 받고 이날 밤 2경에 영채를 뽑아 서둘러 한중으로 돌아갔다.
早有細作報知王雙。
어느새 세작이 왕쌍에게 알렸다.
雙大驅軍馬,併力追趕。
왕쌍이 군마를 크게 몰아 전력을 다해 추격하였다.
追到二十餘里,看看趕上,見魏延旗號在前,雙大叫曰:
「魏延休走!」
20여 리를 추격해 점점 따라잡아 위연의 깃발이 앞에 보이자 왕쌍이 크게 외쳤다.
“위연은 달아나지 말라!”
蜀兵更不回頭。
촉병이 그래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雙拍馬趕來。背後魏兵叫曰:
「城外寨中火起,恐中敵人奸計.」
왕쌍이 말을 박차고 뒤쫓는데 뒤에서 위병이 크게 외쳤다.
“성 밖 영채 안에서 불길이 치솟습니다. 아마 敵人奸計에 빠진 듯합니다.”
雙急勒馬回時,只見一片火光沖天,慌令退軍。
왕쌍이 급히 말머리를 돌릴 때 一片火光이 沖天하니, 황망히 退軍을 명하였다.
行到山坡左側,忽一騎馬從林中驟出,大喝曰:
「魏延在此!」
산비탈 왼쪽으로 가자, 갑자기 一騎馬가 숲속에서 달려 나오며 크게 외쳤다.
“위연이 여기 있다!”
王雙大驚,措手不及,被延一刀砍於馬下。
왕쌍이 깜짝 놀라 措手不及인데, 위연이 한칼로 베어 말 아래 떨어뜨렸다.
魏兵疑有埋伏,四散逃走。
위병이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였다.
延手下止有三十騎人馬,望漢中緩緩而行。
위연은 수하에 겨우 30여 기의 인마를 가지고 한중을 향하여 천천히 갔다.
後人有詩贊曰:
후인이 시를 지어 기렸다.
<孔明妙算勝孫龐,耿若長星照一方。
進退行兵神莫測,陳倉道口斬王雙。>
<공명의 묘책, 손빈과 방연 뛰어넘으니 장성이 一方을 비추듯이 밝게 빛나네
진퇴와 용병, 귀신도 헤아리지 못하니, 진창성 길목에서 왕쌍을 참하네>
原來魏延受了孔明密計,先教存下三十騎,伏於王雙營邊;
알고 보니 위연이 공명에게서 密計를 받은 뒤 먼저 부하 30 기에게 지시해 왕쌍의 영채 주변에 매복하게 했다.
只待王雙起兵趕時,卻去他營中放火;
그들은 왕쌍이 병력을 일으켜 추격하기를 기다려 營中에 들어가 불을 질렀다.
待他回寨,出其不意,突出斬之。
그가 回寨하기를 기다려 出其不意로 기습하여 그를 참한 것이다.
魏延斬了王雙,引兵回到漢中見孔明,交割了人馬。
위연이 왕쌍을 참한 뒤 군사를 거느리고 한중으로 돌아가 공명을 뵙고 인마를 인계하였다.
孔明設宴大會,不在話下。
공명이 연회를 크게 연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且說
張郃追蜀兵不上,回到寨中。
한편,
장합이 촉병을 뒤쫓지 못하고 영채로 돌아왔다.
忽有陳倉城郝昭差人申報,言王雙被斬。
진창성의 학소가 사람을 보내 보고하기를, 왕쌍이 죽었다고 하였다.
曹真聞知,傷感不已,因此憂成疾病,遂回洛陽,命郭淮、孫禮、張郃守長安諸道。
조진이 듣고 傷感不已하더니, 이 때문에 憂成疾病하여 마침내 낙양으로 돌아가고 곽회, 손례, 장합에게 장안으로 통하는 여러 길목을 지키게 하였다.
卻說
吳主孫權設朝,有細作人報說:
「蜀諸葛丞相出兵兩次,魏都督曹真兵損將亡.」
한편,
吳主 孫權이 조회를 여는데 細作人이 알렸다.
“촉의 제갈승상이 出兵兩次하여 魏都督曹真이 兵損將亡하였습니다.”
於是群臣皆勸吳王興師伐魏,以圖中原。權猶疑未決。
이에 群臣皆勸하기를, 吳王興師伐魏하여 以圖中原하라 하나, 손권이 猶疑未決하였다.
張昭奏曰:
「近聞武昌東山,鳳凰來儀;大江之中,黃龍屢現。
主公德配唐虞,明並文武,可即皇帝位,然後興兵.」
張昭가 아뢰었다.
“요새 듣자 하니 무창의 동산에 봉황이 와서 춤을 추고, 대강에 황룡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합니다.
주공의 덕성이 요순에 견줄 만하고 현명함이 문무와 나란하니, 황제에 즉위하신 뒤 출병하십시오.”
多官皆應曰:
「子布之言是也.」
많은 관리가 모두 호응하였다.
“자포의 말씀이 옳습니다.”
遂選定夏四月丙寅日,築臺於武昌南郊。
是日,群臣請權登壇即皇帝位,改黃武八年為黃龍元年。
마침내 여름 4월 병인일을 선정하고, 무창 남쪽 교외에 돈대를 쌓았다.
이날 신하들이 손권에게 단에 올라 황제에 즉위하라 청하니, 황무 8년을 황룡 원년으로 개원하였다.
諡父孫堅為武烈皇帝,母吳氏為武烈皇后,兄孫策為長沙桓王。
아버지 손견에게 ‘무열황제’의 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오씨는 ‘무열황후’가 되었다. 형 손책에게 ‘장사환왕’의 시호를 올렸다.
立子孫登為皇太子。命諸葛瑾長子諸葛恪為太子左輔,張昭次子張休為太子右弼。
아들 손등을 황태자로 세우고 제갈근의 장자 諸葛恪을 ‘太子左輔’로, 장소의 次子 張休를 ‘太子右弼’로 삼았다.
恪字元遜,身長七尺,極聰明,善應對。
제갈각은 자를 元遜이라 하고 키가 7척인데 극히 총명하고 응대를 잘하였다.
權甚愛之。
손권이 그를 몹시 아꼈다.
年六歲時,值東吳宴會,恪隨父在座。
나이 6살이었을 때 동오의 연회에 제갈각이 아버지를 따라가 좌석에 있었다.
權見諸葛瑾面長,乃令人牽一驢來,用粉筆書其面曰:
「諸葛子瑜.」
眾皆大笑。
손권이 제갈근의 얼굴이 긴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나귀를 한 마리 끌고 와서 분필로 그 面上에 ‘諸葛子瑜’라고 쓰니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恪趨至前,取粉筆添二字於其下曰:
「諸葛子瑜之驢.」
제갈각이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분필을 가지고 두 글자를 그 아래에 첨가하여 ‘諸葛子瑜之驢’라 했다.
滿座之人,無不驚訝。
滿座之人이 無不驚訝이었다.
權大喜,遂將驢賜之。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나귀를 그에게 하사하였다.
又一日,大宴官僚,權命恪把盞。
또 하루는, 관료에게 크게 연회를 열어 손권이 제갈각에게 把盞하게 했다.
巡至張昭面前,昭不飲曰:
「此非養老之禮也.」
돌아서 장소의 面前에 이르자 장소가 마시지 않으며 말했다.
“이것은 養老之禮가 아니다.”
權謂恪曰:
「汝能強子布飲乎?」
손권이 제갈각에게 말했다.
“너는 자포에게 강제로 마시게 할 수 있겠느냐?”
恪領命,乃謂昭曰:
「昔姜尚父年九十,秉旄仗鉞,未嘗言老。
今臨陣之日,先生在後;飲酒之日,先生在前;
何謂不養老也?」
제갈각이 명을 받자 장소에게 말했다.
“예전에 姜尚父는 나이 90에 이르고서도 秉旄仗鉞하며 늙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 臨陣之日에는 先生은 뒤에 있고, 飲酒之日에는 선생이 앞에 있습니다.
어찌 養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昭無言可答,只得強飲。
장소가 대답할 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술을 마셨다.
權因此愛之,故命輔太子。
손권이 이 때문에 그를 아껴서 태자를 보좌케 했다.
張昭佐吳王,位列三公之上,故以其子張休為太子右弼。
장소가 吳王을 보좌하며 位列이 三公之上인 까닭에 그 아들 장휴가 太子右弼이 되었다.
又以顧雍為丞相,陸遜為上將軍,輔太子守武昌。
또한 顧雍을 승상으로, 육손을 상장군으로 삼아 태자를 보좌해 무창을 지키게 하였다.
權復還建業。
손권이 다시 건업으로 돌아왔다.
群臣共議伐魏之策。張昭奏曰:
「陛下初登寶位,未可動兵。只宜修文偃武,增設學校,以安民心;
遣使入川,與蜀同盟,共分天下,緩緩圖之.」
신하들이 함께 伐魏之策을 의논하니 장소가 아뢰었다.
“폐하께서 이제 막 寶位에 오르신지라 아직은 함부로 병력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다만 修文偃武하고, 增設學校하여 민심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사신을 서천에 보내어 촉과 동맹하고 천하를 함께 나누어 천천히 도모하소서.”
權從其言,即令使命星夜入川,來見後主。
손권이 그 말을 좇아 즉시 사자를 시켜 밤낮없이 入川하여 후주를 만나게 하였다.
禮畢,細奏其事。
예를 마치고 그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後主聞知,遂與群臣商議。
후주가 듣고 신하들과 상의하였다.
眾議皆謂孫權僭越,宜絕其盟好。蔣琬曰:
「可令人問於丞相.」
眾議는 손권이 僭越했으니 盟好를 끊어야 한다고 하였다. 장완이 말하였다.
“승상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봄이 좋겠습니다.”
後主即遣使到漢中問孔明。孔明曰:
「可令人齎禮物入吳作賀,乞遣陸遜興師伐魏。
魏必令司馬懿拒之。
懿若南拒東吳,我再出祁山,長安可圖也.」
후주가 즉시 사자를 한중으로 보내 공명에게 물으니 공명이 말하였다.
“사람을 시켜 예물을 가지고 동오로 들어가 作賀하고, 육손을 보내어 興師伐魏하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위나라는 틀림없이 사마의를 시켜 막을 터입니다.
사마의가 남쪽에서 동오를 막으면 나는 다시 기산으로 나가서 장안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다.”
後主依言,遂令太尉陳震,將名馬玉帶金珠寶貝入吳作賀。
후주가 그 말을 따라 太尉 陳震에게 名馬玉帶金珠寶貝를 가지고 入吳作賀하게 하였다.
震至東吳,見了孫權,呈上國書。
진진이 동오로 이르러 손권을 만나 국서를 바쳤다.
權大喜,設宴相待,打發回蜀。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고 촉으로 되돌려 보냈다.
權召陸遜入,告以西蜀約會興兵伐魏之事。遜曰:
「此乃孔明懼司馬懿之謀也。
既與同謀,不得不從。
今卻虛作起兵之勢,遙與西蜀為應。待孔明攻魏急,吾可乘虛取中原也.」
손권이 육손을 불러들여 西蜀約會한 興兵伐魏之事를 알리니 육손이 말하였다.
“이것은 공명이 司馬懿之謀를 두려워해서입니다.
기왕 더불어 도모하였으니 不得不從입니다.
이제 起兵之勢를 虛作하면서, 멀찍이서 西蜀為應을 기다려야 합니다.
공명이 攻魏하여 魏가 위급해지면, 우리가 틈을 노려 중원을 취할 수 있겠습니다.”
即時下令,教荊、襄各處都要訓練人馬,擇日興師。
즉시 영을 내려 지시하기를, ‘형주와 양양 각처는 모두 인마를 훈련하라. 擇日興師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卻說
陳震回到漢中,報知孔明。
한편,
진진이 한중으로 되돌아가 공명에게 알렸다.
孔明尚憂陳倉不可輕進,先令人去哨探。回報說:
「陳倉城中郝昭病重.」
공명은 아직도 진창으로 함부로 진군하지 못할까 걱정하여, 먼저 사람을 보내 哨探케 하니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진창성의 학소의 병이 위중합니다.”
孔明曰:
「大事成矣.」
공명이 말하였다.
“대사가 이루어지겠구나.”
遂喚魏延、姜維分付曰:
「汝二人領五千兵,星夜直奔陳倉城下;如見火起,併力攻城.」
곧 위연과 강유를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한밤중에 곧장 진창성 아래로 달려가서, 불이 일어남이 보이면 併力攻城하시오.”
二人俱未深信,又來告曰:
「何日可行?」
두 사람 모두 깊이 믿지 못하고 다시 와서 물었다.
“언제 실행합니까?”
孔明曰:
「三日都要完備;不須辭我,即便起行.」
“사흘 안에 모두 완비하고, 내게 작별 인사를 하지 말고 즉시 출발하시오.”
二人受計去了。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떠났다.
又喚關興、張苞至,附耳低言,如此如此。
또 관흥과 장포를 불러 附耳低言하기를, 如此如此하라고 하였다.
二人各受密計而去。
두 사람이 제각기 밀계를 받고 떠났다.
且說
郭淮聞郝昭病重,乃與張郃商議曰:
「郝昭病重,你可速去替他。我自寫表申奏朝廷,別行定奪.」
한편,
곽회는 학소의 병이 위중하단 소식을 듣고 장합과 상의하였다.
“학소가 병이 깊으니 그대가 速去替他하시오.
나는 직접 표를 써서 조정에 보고하고, 따로 결정을 내리겠소.”
張郃引著三千兵,急來替郝昭。
장합이 군사 3천을 이끌고 급히 학소와 교대하러 갔다.
時郝昭病危。當夜正呻吟之間,忽報蜀兵到城下了。
이때 학소는 병세가 위독해 이날 밤 呻吟之間에 누군가 알리기를, 촉병이 성 아래 도착했다고 하였다.
昭急令人上城守把。
학소가 서둘러 사람들에게 성벽 위로 올라가 수비하게 하였다.
時各門上火起,城中大亂。
이때 성문마다 불길이 일어나니 성안이 크게 어지러웠다.
昭聽知驚死。蜀兵一擁入城。
학소가 이를 듣고 놀라서 죽고 촉병이 떼지어 성으로 몰려들었다.
卻說
魏延、姜維領兵到陳倉城下看時,並不見一面旗號,又無打更之人。
한편, 위연과 강유가 병력을 이끌고 진창성 아래 당도해 바라보니, 깃발이 하나도 없고 또 打更之人도 없었다.
二人驚疑,不敢攻城。
두 사람이 놀라고 의심스러워 감히 성을 공격하지 못하였다.
忽聽得一聲炮響,四面旗幟齊豎。
한차례 炮響이 들리더니 四面旗幟齊豎하였다.
只見一人綸巾羽扇,鶴氅道袍,大叫曰:
「汝二人來得遲了!」
그런데 한 사람이 綸巾羽扇하고 鶴氅道袍를 입은 채 크게 외쳤다.
“그대 두 사람이 늦었구려!”
二人視之,乃孔明也。
두 사람이 바라보니 바로 공명이었다.
二人慌忙下馬,拜伏於地曰:
「丞相真神計也!」
두 사람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절을 올리며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승상! 참으로 귀신 같은 계책입니다!”
孔明令放入城,謂二人曰:
「吾打探得郝昭病重,吾令汝三日內領兵取城,此乃穩眾人之心也。
吾卻令關興、張苞,只推點軍,暗出漢中。
吾即藏於軍中,星夜倍道徑到城下,使彼不能調兵。
吾早有細作在城內放火,發喊相助,令魏兵驚疑不定。
兵無主將,必自亂矣。吾因而取之,易如反掌。
兵法云:
『出其不意,攻其無備,』
正謂此也.」
공명이 성으로 불러들여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郝昭病重을 打探하고, 그대들에게 사흘 안에 병력을 이끌고 성을 점령하라 명령하였지만, 이것은 진창성 안의 사람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였소.
나는 관흥과 장포에게 병사를 뽑아서 몰래 한중으로 나가게 했소.
나는 군중에 숨어서 한밤에 길을 재촉해 성 아래로 달려가, 저들에게 군대를 부릴 틈을 주지 않았소.
내가 일찍이 성안에 세작을 두어, 불을 지르고 고함을 질러 돕게 하여 위병이 몹시 놀라고 불안하게 했소.
군대에 主將이 없으면 틀림없이 스스로 어지러워지고, 내가 이 때문에 취했으니 쉽기가 손바닥 뒤집는 듯하였소.
병법에 이르기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나가고 대비하지 않은 곳을 공격하라.’
라 했으니 바로 이것을 말함이오.”
魏延、姜維拜伏。
위연과 강유가 탄복하였다.
孔明憐郝昭之死,令彼妻小扶靈柩回魏,以表其忠。
공명이 郝昭之死를 가엾게 여기고, 그 처자식에게 扶靈柩回魏하게 하여, 그의 충심을 기렸다.
孔明謂魏延、姜維曰:
「汝二人且莫卸甲,可引兵去襲散關。
把關之人,若知兵到,必然驚走。若稍遲便有魏兵至關,即難攻矣.」
공명이 위연과 강유에게 말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잠시 갑옷을 벗지 말고 병력을 이끌고 산관을 습격하러 가시오.
把關之人은 병력이 도착함을 알면 틀림없이 놀라서 달아날 터이오.
조금이라도 늦으면 위병이 관문으로 올 터이니 공격하기 어려워지오.”
魏延、姜維受命,引兵徑到散關。
위연과 강유가 명을 받고 병력을 이끌고 散關으로 달려갔다.
把關之人,果然盡走。
把關之人이 과연 모조리 달아났다.
二人上關纔要卸甲,遙見關外塵頭大起,魏兵到來。
두 사람이 관으로 올라가 갑옷을 벗으려는데, 멀리 관문 밖에 塵頭大起하며 위병이 몰려왔다.
二人相謂曰:
「丞相神算,不可測度!」
두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승상의 神算은 測度할 수 없구나!”
急登樓視之,乃魏將張郃也。
급히 망루에 올라 바라보니 魏將 장합이었다.
二人乃分兵守住險道。
두 사람이 병력을 나눠 險道를 지켰다.
張郃見蜀兵把住要路,遂令退軍。
장합은 촉병이 把住要路함을 보고 급히 退軍하라 명령하였다.
魏延隨後追殺一陣。魏兵死者無數。張郃大敗而去。
위연이 뒤쫓아 한바탕 무찌르니 死者無數이고, 장합은 大敗하여 달아났다.
延回到關上,令人報知孔明。
위연이 관에 되돌아가 사람을 시켜 공명에게 보고하였다.
孔明先自領兵,出陳倉斜谷,取了建威。
공명이 먼저 직접 병력을 거느리고 진창의 야곡으로 나가서 建威를 취하였다.
後面蜀兵陸續進發。
뒤에서 촉병이 陸續하여 출발하였다.
後主又命大將陳式來助。
후주가 다시 대장 진식에게 명해 도우러 오게 하였다.
孔明驅大兵復出祁山。
공명이 대군을 동원해 다시 기산으로 나갔다.
安下營寨,孔明聚眾言曰:
「吾二次出祁山,不得其利;今又到此,吾料魏人必依舊戰之地,與吾相敵。
彼意疑我取雍、郿二處,必以兵拒守;吾觀陰平、武都二郡,與漢連接,若得此城,亦可分魏兵之勢。
何人敢取之?」
영채를 세운 뒤 공명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내가 두 번이나 기산을 나왔으나 이득을 얻지 못했소. 지금 다시 이곳에 왔는데, 내가 헤아려보건대 魏人은 틀림없이 舊戰之地에 의지해 아군과 대적할 터이오.
저들은 우리가 옹성과 미성 두 곳을 공격할까 두려워하여, 틀림없이 군사로써 막아 지키려 할 터이오. 내가 살펴보건대 陰平과 武都 2郡은 한중과 連接하여, 만약 이들 성을 얻으면 魏兵之勢를 갈라놓을 수 있소.
누가 용감히 그것을 점령하겠소?”
姜維曰:
「某願往.」
강유가 말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王平應曰:
「某亦願往.」
왕평도 말하였다.
“저도 가겠습니다.”
孔明大喜;遂令姜維引兵一萬取武都,王平引兵一萬取陰平。
공명이 크게 기뻐하고, 강유에게 1만 병사를 거느리고 무도를 공격하게 하고, 왕평에게 1만을 거느리고 음평을 공격하게 하였다.
二人領兵去了。
두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다.
再說張郃回到長安,見郭淮、孫禮,說:
「陳倉已失,郝昭已亡,散關亦被蜀兵奪了。今孔明復出祁山,分道進兵.」
다시 말하지만, 장합은 장안으로 되돌아가 곽회와 손례를 만나 이야기하였다.
“진창은 이미 잃었고 학소도 이미 죽은 데다 散關마저 촉병이 빼앗았소.
지금 공명이 다시 기산을 나와서 길을 나눠 진군하고 있소.”
淮大驚曰:
「若如此,必取雍、郿矣!」
곽회가 깜짝 놀라서 말하였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옹성과 미성을 공격할 터이오!”
乃留張郃守長安,令孫禮保雍城。
이에 장합을 남겨 장안을 지키게 하고 손례에게 옹성을 지키라 명하였다.
淮自引兵星夜來郿城守禦,一面上表入洛陽告急。
곽회 자신은 군사를 이끌고 한밤에 미성으로 가서 守禦하면서, 한편으로 표를 낙양에 올려 告急하였다.
卻說
魏主曹叡設朝,近臣奏曰:
「陳倉城已失,郝昭已亡,諸葛亮又出祁山,散關亦被蜀兵奪了.」
한편, 魏主 曹叡가 조회를 열었는데 近臣이 아뢰었다.
“진창성을 이미 잃었고 학소도 이미 죽었습니다. 제갈량이 다시 기산을 나오고 산관도 촉병이 빼앗았습니다.”
叡大驚。忽又奏滿寵等有表,說:
「東吳孫權僭稱帝號,與蜀同盟。
今遣陸遜在武昌訓練人馬,聽候調用。
只在旦夕,必入寇矣.」
조예가 깜짝 놀라는데 또 아뢰기를, 滿寵 등이 표를 올렸다고 하였다.
“동오의 손권이 僭稱帝號하고 촉과 동맹하였습니다.
이제 육손을 무창으로 파견해 인마를 훈련하며 調用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조만간에 틀림없이 入寇할 터입니다.”
叡聞知兩處危急,舉止失措,甚是驚慌。
조예는 두 곳이 위급함을 듣고, 舉止失措하고 몹시 놀라고 당황하였다.
此時曹真病未痊,即召司馬懿商議。
이때 조진의 병이 아직 낫지 않아 즉시 사마의를 불러 상의하였다.
懿奏曰:
「以臣愚意所料,東吳必不舉兵.」
사마의가 말하였다.
“신의 못난 의견으로 헤아려보건대 동오는 틀림없이 舉兵하지 않겠습니다.”
叡曰:
「卿何以知之?」
조예가 말하였다.
“경은 어떻게 아시오?”
懿曰:
「孔明嘗思報猇亭之讎,非不欲吞吳也,只恐中原乘虛擊彼,故暫與東吳結盟。
陸遜亦知其意,故假作興兵之勢以應之,實是坐觀成敗耳。
陛下不必防吳,只須防蜀.」
사마의가 말하였다.
“공명은 일찍이 猇亭之讎를 갚기를 생각하므로, 동오를 병탄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중원이 틈을 노려 그들을 공격할까 염려하여, 잠시 동오와 結盟하였을 뿐입니다.
육손 역시 그 속셈을 아는 까닭에 興兵之勢를 假作함으로써 응하였지, 실은 成敗를 坐觀할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동오를 방어할 필요 없이 오로지 촉을 방어해야 합니다.”
叡曰:
「卿真高見!」
조예가 말하였다.
“경은 참으로 고견을 가졌구려!”
遂封懿為大都督,總攝隴西諸路軍馬,令近人取曹真總兵將印來。
마침내 사마의를 대도독으로 봉해 隴西諸路軍馬를 總攝하게 하고 近人을 시켜 조진의 總兵將印을 가져오게 하였다.
懿曰:
「臣自去取之.」
사마의가 말하였다.
“제가 직접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遂辭帝出朝,徑到曹真府下,先令人入府報知,懿方進見。
곧 황제에게 인사하고 조정을 나가 곧바로 曹真府下로 가서, 먼저 사람을 시켜 入府報知하고 사마의가 비로소 만나러 갔다.
問病畢,懿曰:
「東吳、西蜀,會合興兵入寇,今孔明又出祁山下寨,明公知之乎?」
문병한 뒤, 사마의가 말하였다.
“동오와 서촉이 회합해 興兵入寇하고 이제 공명이 다시 기산을 나와 영채를 세웠는데 명공께서 그 사실을 아십니까?”
真驚訝曰:
「吾家人知我病重,不令我知。
似此國家危急,何不拜仲達為大都督,以退蜀兵耶?」
조진이 놀라며 말하였다.
“우리 집안 사람들이 내 병세가 위중함을 알고 내게 알리지 않은 모양이오.
이렇게 국가가 위급한데 어찌 중달을 도독으로 임명해 촉병을 물리치지 않는가?”
懿曰:
「某才薄智淺,不稱其職.」
사마의가 말하였다.
“제가 才薄智淺하여 不稱其職입니다.”
真曰:
「取印與仲達.」
조진이 말하였다.
“대장인을 가져다 중달에게 주겠소.”
懿曰:
「都督少慮。
某願助一臂之力,只不敢受此印也.」
사마의가 말하였다.
“도독께서 염려치 마십시오.
제가 一臂之力을 보태겠으나, 다만 감히 이 대장인은 받을 수 없습니다.”
真躍起曰:
「如仲達不領此任,中國危矣!
吾當抱病見帝以保之!」
조진이 벌떡 일어나며 말하였다.
“중달이 이 임무를 맡지 않으면 중국이 위급해지오!
내가 병을 무릅쓰고 천자를 알현해 그것을 보증하겠소!”
懿曰:
「天子已有恩命,但懿不敢受耳.」
사마의가 말하였다.
“천자께서 이미 恩命을 내리셨으나, 다만 제가 감히 받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真大喜曰:
「仲達今領此任,可退蜀兵.」
조진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중달이 이제 이 직무를 맡는다니 촉병을 물리칠 수 있겠소.”
懿見真再三讓印,遂受之,辭了魏主,引兵往長安來與孔明決戰。
사마의가 조진에게 두세 번 讓印하다가 결국 그것을 받은 뒤, 魏主에게 인사를 올리고 병력을 이끌고 공명과 결전하러 장안으로 갔다.
正是:
舊帥印為新帥取,兩路兵惟一路來。
바로 이러하다.
옛 장수의 대장인을 새 장수가 취하니, 두 곳의 군대가 한 길로 오는구나.
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승부가 어찌 될까? 다음 회에서 설명함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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