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삼국연의

三國演義(삼국연의)95회-馬謖과 仲達

耽古樓主 2023. 2. 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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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十五回
馬謖拒諫失街亭 武侯彈琴退仲達.
제95회
馬謖이 간언을 듣지 않아 街亭을 잃고, 武侯는 거문고를 타서 仲達을 물리치다.


卻說
魏主曹叡令張郃為先鋒與司馬懿一同征進
한편,
魏主 조예가 장합을 선봉으로 삼아, 사마의와 함께 출정시켰다.

一面令辛毗孫禮二人領兵五萬往助曹真
동시에 신비와 손례 두 사람에게 군사 5만을 거느리고 가서 조진을 돕게 하였다.

二人奉詔而去
두 사람이 천자의 조서를 받들고 떠났다.


且說
司馬懿引二十萬軍出關下寨請先鋒張郃至帳下曰
諸葛亮平生謹慎未敢造次行事
若是吾用兵先從子午谷徑取長安早得多時
他非無謀但恐有失不肯弄險
今必出軍斜谷來取郿城
若取郿城必分兵兩路一軍取箕谷矣
吾已發檄文令子丹拒守郿城若兵來不可出戰
令孫禮辛毗截住箕谷道口若兵來則出奇兵擊之.
한편,
사마의는 2십만군을 이끌고 관문을 나와 영채을 세우고, 선봉 장합을 군막으로 청하여 말하였다.
제갈량은 평생 조심하여 아직껏 감히 급하게 일을 한 적이 없소.
내가 용병을 했으면 먼저 자오곡을 따라 곧장 장안을 취해 일찌감치 많은 시간을 벌었을 터이오.
그가 지략이 없음이 아니라 다만 행여나 잘못될까 염려하여 모험하려 하지 않음이오.
이제 모름지기 야곡으로 군대를 내보내 미성을 취하러 올 터이오.
미성을 취하면 반드시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눠 1군은 기곡을 취할 터이오.
내 이미 격문을 보내 子丹(曹眞)에게 명해 미성을 막아서 지키고 만약 적병이 오더라도 출전하지 말라 하였소.
또한 손례와 신비에게 명해 기곡 道口를 차단하고 만약 적병이 오면 出奇兵하여 공격하라 하였소.”

郃曰
今將軍當於何處進兵?」
장합이 말하였다.
이제 장군은 어디로 進兵하시겠습니까?”

懿曰
吾素知秦嶺之西有一條路地名街亭
傍有一城名列柳城
此二處皆是漢中咽喉
諸葛亮欺子丹無備定從此進
吾與汝徑取街亭陽平關不遠矣
亮若知吾斷其街亭要路絕其糧道則隴西一境不能安守必然連夜奔回漢中去也
彼若回動吾提兵於小路擊之可得全勝
若不歸時吾卻將諸處小路盡皆壘斷俱以兵守之
一月無糧蜀兵皆餓死亮必被吾擒矣.
사마의가 말하였다.
내가 평소 알고 있기로는 秦嶺之西에 한 가닥 길이 있는데 地名街亭이오.
주변에 성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列柳城이오.
이 두 곳은 모두 한중의 咽喉 같은 곳이오.
제갈량은 자단에게 방비가 없다고 업신여기고 틀림없이 이곳을 통하여 진군할 터이오.
나와 그대가 곧바로 가정을 취하였으면 양평관 쪽에서 멀지 않소.
우리가 街亭要路를 차단하여 그들의 糧道를 끊었음을 제갈량이 알면, 농서 일대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어 틀림없이 그날 밤 한중으로 달려서 돌아갈 터이오.
그가 돌아갔으면 우리가 군사를 거느리고 小路에서 공격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둘 터이오.
그들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우리가 곳곳의 소로에 모두 보루를 쌓아 차단하고 전부 군사를 배치해 지킬 터이오.
한 달 동안 식량이 없으면 촉병은 모두 餓死할 테니 제갈량은 우리에게 잡힐 터이오.”

張郃大悟拜伏於地曰
都督神算也!」
장합이 크게 깨닫고 拜伏於地하고 말하였다.
도독은 神算이십니다!”

懿曰
雖然如此諸葛亮不比孟達
將軍為先鋒不可輕進
當傳與諸將循山西路遠遠哨探如無伏兵方可前進
若是怠忽必中諸葛亮之計.
비록 그렇지만 제갈량은 맹달에 비할 바가 아니오.
장군이 선봉이 되더라도 함부로 진격해선 안 되오.
다른 장수들에게도 전하되, 산을 지나 서쪽 길은 멀리 멀리까지 哨探하고 복병이 없으면 비로소 전진하게 하시오.
만약 怠忽하면 틀림없이 제갈량의 계략에 빠질 터이오.”

張郃受計引軍而行
장합이 계책을 받고 군을 이끌고 떠났다.


卻說
孔明在祁山寨中忽報新城探細人來到急喚入問之
한편,
공명은 기산의 영채에 머물고 있는데 갑자기 신성에서 探細人이 왔다고 하였다. 급히 불러서 물어보았다.

細作告曰
司馬懿倍道而行八日已到新城孟達措手不及
又被申耽申儀李輔鄧賢為內應孟達被亂軍所殺
今司馬懿徹兵到長安見了魏主同張郃引兵出關來拒我師也.
세작이 고하였다.
사마의가 倍道로 가서 8일 만에 벌써 신성에 도착하니 맹달이 措手不及이었습니다.
또한 신탐, 신의, 이보, 등현이 내응하니 맹달은 난전 중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사마의가 徹兵하여 장안으로 가서 魏主를 뵙고 장합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出關我師를 막으러 옵니다.”

孔明大驚曰
孟達作事不密死固當然
今司馬懿出關必取街亭斷吾咽喉之路.
공명이 깜짝 놀라 말하였다.
맹달이 일을 함에 세밀하지 않아 죽은 것이야 본래 당연하다.
이제 사마의가 出關하면 틀림없이 街亭을 빼앗아 우리의 咽喉之路를 차단할 것이다.”

便問
誰敢引兵去守街亭?」
곧 물었다.
누가 용감히 군사를 이끌고 가정을 지키러 가겠소?”

言未畢參軍馬謖曰
某願往.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參軍 馬謖이 말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孔明曰
街亭雖小干係甚重
倘街亭有失吾大軍皆休矣
汝雖深通謀略此地奈無城郭又無險阻守之極難.
가정이 비록 작은 곳이지만 책임은 막중하오.
가정을 잃으면 우리 대군도 모두 끝장이오.
그대가 비록 謀略深通하나, 그곳은 아무 성곽도 없고 險阻도 없어서 그곳을 수비가 극히 곤란하오.”

謖曰
某自幼熟讀兵書頗知兵法
豈一街亭不能守耶?」
마속이 말하였다.
제가 어려서부터 兵書熟讀하여 병법을 제법 압니다.
어찌 한낱 가정을 지키지 못하겠습니까?”

孔明曰
司馬懿非等閒之輩
更有先鋒張郃乃魏之名將
恐汝不能敵之.
공명이 말하였다.
사마의는 얕볼 사람이 아니오.
게다가 선봉 장합은 곧 魏之名將이오.
아마도 대적할 수 없을 터이오.”

謖曰
休道司馬懿張郃便是曹叡親來有何懼哉
若有差失乞斬全家.
마속이 말하였다.
사마의, 장합 따위야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더해 조예가 친히 온들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만약 잘못이 있으면, 全家를 목 베십시오.”

孔明曰
軍中無戲言.
공명이 말하였다.
군중에는 戲言이 없는 법이오.”

謖曰
願立軍令狀.
바라옵건대 軍令狀을 쓰겠습니다.”

孔明從之謖遂寫了軍令狀呈上
공명이 이를 좇으니 마속이 곧 군령장을 써서 바쳤다.

孔明曰
吾與汝二萬五千精兵再撥一員上將相助你去.
공명이 말하였다.
내 그대에게 25천의 精兵을 주고 上將을 한 사람 뽑아 그대를 도우러 가도록 하겠소.”

即喚王平分付曰
吾素知汝平生謹慎故特以此重任相託
汝可小心謹慎
此地下寨必當要道之處使賊兵急切不能偷過
安營既畢便畫四至八道地理形狀圖本來我看
凡事商議停當而行不可輕易
如所守無危則是取長安第一功也
戒之戒之!」
즉시 왕평을 불러 분부하였다.
내 평소 그대가 平生 謹慎함을 알기에 특별히 이 重任을 맡기오.
그대는 小心하고 謹慎하시오.
거기에 영채를 세울 때는 반드시 要道之處에 자리 잡고, 賊兵이 단시간에 지나갈 수 없게 하시오.
영채를 세우고 나서, 곧바로 四至八道地理形狀圖本을 그려 보내 내게 보이시오.
모든 일을 상의하고 타당하면 실행할 것이지 함부로 쉽게 하여서는 아니 되오.
만약 위태로움 없이 수비하면 이것이 장안을 점령하는 第一功이 될 터이오.
주의하고 주의하시오!”

二人拜辭引兵而去
두 사람이 拜辭하고 引兵하여 떠났다.

孔明尋思恐二人有失又喚高翔曰
街亭東北上有一城名列柳城乃山僻小路此可以屯兵紮寨
與汝一萬兵去此城屯紮
但街亭危可引兵救之.
공명이 깊이 생각하더니 두 사람이 실수할까 염려하여 다시 高翔을 불러 말하였다.
가정 동북쪽에 성이 하나 있으니 이름해 列柳城인데 산속 후미진 小路에 있소. 그곳에 屯兵紮寨할 만하오.
그대에게 1을 줄 테니 그 성으로 가서 주둔하시오.
가정이 위급하기만 하면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시오.”

高翔引兵而去
고상이 군사를 이끌고 갔다.

孔明又思高翔非張郃對手必得一員大將屯兵於街亭之右方可防之
공명이 다시 생각하기를, 고상도 장합의 對手가 못 되는지라 반드시 一員大將을 얻어 가정의 우측에 주둔하게 해야 비로소 방어할 수 있겠다 하였다.

遂喚魏延引本部兵去街亭之後屯紮
그리하여 위연을 불러 本部兵을 이끌고 街亭之後로 가서 주둔하게 하였다.

延曰
某為前部理合當先破敵何故置某於安閒之地?」
위연이 말하였다.
제가 선봉이 되어서 마땅히 앞장서서 적병을 격파해야 하거늘, 어찌 저를 安閒( 안정되고 한가함 )한 곳에 두십니까?”

孔明曰
前鋒破敵乃偏裨之事耳
今令汝接應街亭當陽平關衝要道路總守漢中咽喉此乃大任也
何為安閒乎
汝勿以等閒視之失吾大事
切宜小心在意!」
前鋒破敵이야 偏裨之事일 따름이오.
이제 그대에게 명하여, 가정을 接應하고 陽平關衝要道路를 맡아 漢中咽喉를 총괄하여 지키게 하니 이것이야말로 大任이오.
어찌 安閒하다 하겠소?
그대는 이것을 等閒히 여겨 우리의 대사를 그르치지 마시오.
반드시 조심하고 주의하시오!”

魏延大喜引兵而去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군사를 이끌고 갔다.

孔明恰纔心安乃喚趙雲鄧芝分付曰
今司馬懿出兵與往日不同
汝二人各引一軍出箕谷以為疑兵
如逢魏兵或戰或不戰以驚其心
吾自統大軍由斜谷徑取郿城
若得郿城長安可破矣.
공명이 그제야 안심하고 조운과 등지를 불러 분부하였다.
이제 사마의가 出兵했으니 지난날과 상황이 같지 않소.
그대 두 사람은 각각 1군을 이끌고 箕谷으로 나아가 疑兵이 되시오.
魏兵을 만나거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싸우지 않아 그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시오.
나는 직접 대군을 통솔해서 야곡을 나가서 곧바로 郿城을 취하겠소.
미성을 얻으면 長安도 깨뜨릴 수 있소.”

二人受命而去
두 사람이 명을 받고 떠났다.

孔明令姜維作先鋒兵出斜谷
공명이 강유를 선봉으로 삼아 야곡에서 출병하였다.


卻說
馬謖王平二人兵到街亭看了地勢馬謖笑曰
丞相何故多心也
量此山僻之處魏兵如何敢來!」
한편,
마속과 왕평 두 사람의 군사가 가정에 도착하여 지형을 살펴보고 마속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께서 무엇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는가?
이런 山僻之處魏兵이 어찌 구태여 오겠소!”

王平曰
雖然魏兵不敢來可就此五路總口下寨
即令軍士伐木為柵以圖久計.
왕평이 말하였다.
비록 위병이 구태여 오지 않더라도 이곳 다섯 갈래의 길의 입구에 영채를 세워야 합니다.
즉시 병사들이 伐木하여 목책을 만들도록 하여, 오래 버틸 계책을 講究해야 합니다.”

謖曰
當道豈是下寨之地
此處側邊一山四面皆不相連且樹木極廣此乃天賜之險也
可就山上屯軍.
마속이 말하였다.
이 길목이 어찌 下寨之地이겠소?
이곳 주변에 산이 하나 있는데, 사방이 모두 연결되지 않고 또 樹木이 극히 넓게 펼쳐져 있으니, 이는 天賜之險이오.
산 위로 올라가 군대를 주둔해야 하겠소.”

平曰
參軍差矣
若屯兵當道築起城垣賊兵縱有十萬不能偷過
今若棄此要路屯兵於山上倘魏兵驟至四面圍定將何策保之?」
왕평이 말하였다.
참군께서 틀리셨습니다.
이 길목에 군사를 주둔하고 성벽을 쌓아 올리면, 賊兵이 설사 10만이 있더라도 능히 뚫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 棄此要路하고 屯兵於山上했다가 魏兵이 달려와서 四面圍定하면 장차 何策保之하겠습니까?”

謖大笑曰
汝真女子之見
兵法云
憑高視下勢如劈竹。』
若魏兵到來吾教他片甲不回!」
마속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참으로 女子之見을 가졌구려!
兵法에 이르기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형세가 마치 劈竹과 같다.’
라고 하였소.
위병이 오면 나는 그들 片甲도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겠소!”

平曰
吾累隨丞相經陣每到之處丞相盡意指教
今觀此山乃絕地也
若魏兵斷我汲水之道軍士不戰自亂矣.
왕평이 말하였다.
제가 누차 丞相經陣을을 따라다녔는데, 가시는 곳마다 승상께서 정성을 다해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이 산을 살펴보건대 바로 絕地입니다.
위병이 우리의 汲水之道를 끊으면, 군사들이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어지러워질 터입니다.”

謖曰
汝莫亂道
孫子云
置之死地而後生。』
若魏兵絕我汲水之道蜀兵豈不死戰
以一可以當百也
吾素讀兵書丞相諸事尚問於我汝奈何相阻耶?」
마속이 말하였다.
그대는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손자가 이르길,
군사를 사지에 두어야 사는 법이다.’
라 하였소.
위병이 아군의 汲水之道를 끊으면 촉병이 어찌 死戰하지 않겠소?
하나로써 백을 당할 수 있소.
내가 평소에 병서를 읽어서, 승상께서도 諸事를 오히려 내게 물으시는데, 그대가 어찌 저지하오?”

平曰
若參軍欲在山上下寨可分兵與我自於山西下一小寨為犄角之勢
倘魏兵至可以相應.
왕평이 말하였다.
참군께서 기어코 산 위에 영채를 세우시려면 군사를 나눠 제게 주십시오. 저는 산 서쪽 아래의 小寨로써 犄角之勢를 이루겠습니다.
위병이 오면 서로 호응할 수 있겠습니다.”

馬謖不從
마속이 따르지 않았다.

忽然山中居民成群結隊飛奔而來報說魏兵已到
갑자기 산속에 사는 백성이 成群結隊하여 달려와서 위병이 벌써 당도했다고 알렸다.

王平欲辭去馬謖曰
汝既不聽吾令與汝五千兵自去下寨
待吾破了魏兵到丞相面前須分不得功.
왕평이 인사하고 가려는데 마속이 말하였다.
그대가 내 명령을 듣지 않으니, 5천 병사를 줄 테니 스스로 가서 영채를 세우시오.
내가 위병을 격파한 후에, 승상 면전에 가서 공로를 나누려 해서는 안 되오!”

王平引兵離山十里下寨畫成圖本星夜差人去稟孔明具說馬謖自於山上下寨
왕평이 군사를 이끌고 산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下寨하였다. 그곳의 圖本을 그리고 사람을 뽑아 밤새 공명에게 가서 아뢰고, 마속의 山上下寨를 모두 말하게 하였다.


卻說
司馬懿在城中令次子司馬昭去探前路
한편,
사마의는 성안에 머물며 次子 사마소를 보내 길을 정탐하게 하였다.

若街亭有兵守禦即當按兵不行
만약 가정에 적병이 있어 守禦하면 즉시 군사를 멈추고 가지 말라고 하였다.

司馬昭奉令探了一遍回見父曰
街亭有兵守把.
사마소가 명령을 받들어 한 번 정탐하고서 돌아가 부친을 뵙고 말하였다.
가정에 군사가 있어 守把합니다.”

懿歎曰
諸葛亮真乃神人吾不如也!」
사마의가 탄식하였다.
제갈량은 참으로 神人이어서 나는 미치지 못하는구나!”

昭笑曰
父親何故自隳志氣耶
料街亭易取.
사마소가 웃으며 말하였다.
부친께서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志氣를 떨어뜨리십니까!
小子가 보기에 가정은 쉽게 빼앗겠습니다.”

懿問曰
汝安敢出此大言?」
네 어찌 감히 出此大言하느냐?”

昭曰
男親自哨見當道並無寨柵軍皆屯於山上故知可破也.
소자가 직접 哨見하니, 가는 길에는 寨柵이 전혀 없고 군사들은 모두 산 위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격파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懿大喜曰
若兵果在山上乃天使吾成功矣!」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적병이 과연 산 위에 있으면, 하늘이 나를 成功하게 함이다!”

遂更換衣服引百餘騎親自來看
換衣服하고 백여 를 이끌고 직접 보러 갔다.

是夜天晴月朗
그날 밤 하늘은 맑고 달이 밝았다.

直至山下周圍巡哨了一遍方回
곧장 산 아래에 이르러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비로소 돌아갔다.

馬謖在山上見之大笑曰
彼若有命不來圍山!」
마속이 산 위에서 그것을 보더니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에게 명운이 있으면 산을 포위하러 오지 않을 터이다.”

傳令與諸將
倘兵來只見山頂上紅旗招動即四面皆下.
장수들에게 명령을 전하였다.
혹시 적병이 오면, 산 정상에서 紅旗를 흔드는 즉시 四面에서 모두 (공격해) 내려가라.”


卻說司馬懿回到寨中使人打聽是何將引兵守街亭回報曰
乃馬良之弟馬謖也.
한편,
사마의가 영채로 돌아와서, 사람들을 시켜 어떤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가정을 지키는지 알아보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였다.
바로 馬良之弟 마속입니다.”

懿笑曰
徒有虛名乃庸才耳
孔明用如此人物如何不誤事!」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였다.
헛된 명성만 있지, 범용한 재주일 뿐이구나!
공명이 이런 인물을 쓰니 어찌 일을 그르치지 않겠는가!”

又問
街亭左右別有軍否?」
다시 물었다.
가정의 좌우에는 따로 병사들이 있는가?”

探馬報曰
離山十里有王平安營.
探馬가 보고하였다.
산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왕평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懿乃命張郃引一軍當住王平來路
사마의가 이에 장합에게 명하여 1군을 이끌고 왕평이 (구원하러) 올 길에 가서 있게 하였다.

又令申耽申儀引兩路兵圍山先斷了汲水道路待蜀兵自亂然後乘勢擊之
또한 신탐, 신의 두 사람에게 명해 兩路兵을 이끌고 산을 포위해 먼저 汲水道路을 끊어 놓고, 촉병이 스스로 혼란에 빠진 뒤 그 틈을 타서 공격하게 하였다.

當夜調度已定
그날 밤에 배치가 끝났다.

次日天明張郃引兵先往背後去了
다음날 날이 밝자, 장합이 군사를 이끌고 먼저 배후를 차단하러 갔다.

司馬懿大驅軍馬一擁而進把山四面圍定
사마의가 군마를 크게 몰아 함께 떼지어 나아가서 산의 四面을 포위하였다.

馬謖在山上看時只見魏兵漫山遍野旌旗隊伍甚是嚴整
마속이 산 위에서 바라보니 위병이 漫山遍野한데 旌旗隊伍가 몹시 엄정하였다.

蜀兵見之盡皆喪膽不敢下山
촉병이 이를 보고, 모두 간담이 서늘해 감히 下山하지 못하였다.

馬謖將紅旗招動軍將你我相推無一人敢動
마속이 붉은 깃발을 흔들지만, 병사와 장수들이 你我相推하며 감히 움직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謖大怒自殺二將
마속이 크게 노해 직접 장수 두 사람을 죽였다.

眾軍驚懼只得努力下山來衝魏兵
군사들이 놀라고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힘을 다해 魏兵을 치러 산에서 내려갔다.

魏兵端然不動蜀兵又退上山去
위병이 굳건히 서서 동요하지 않으니 촉병이 다시 후퇴해 산으로 올라갔다.

馬謖見事不諧教軍緊守寨門只等外應
마속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보자, 군사들에게 영채의 문을 굳게 지키며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게 하였다.


卻說
王平見魏兵到引軍殺來正遇張郃
한편,
왕평은 위병이 오자 군을 이끌고 급히 나오다가 때마침 장합과 조우하였다.

戰有數十餘合平力窮勢孤只得退去
수십 합 남짓 싸우고 왕평이 力窮勢孤하여 어쩔 수 없이 퇴각하였다.

魏兵自辰時困至戌時山上無水軍不得食寨中大亂
위병이 진시부터 포위하여 술시에 이르니, 산 위에 물이 없어 군사들이 먹지 못하였다. 寨中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嚷到半夜時分山南蜀兵大開寨門下山降魏
떠들썩하며 한밤중이 되자 산 남쪽의 촉병이 寨門을 활짝 열고 下山하여 위에 항복하였다.

馬謖禁止不住
마속이 금지하지 못하였다.

司馬懿又令人於沿山放火山上蜀兵愈亂
사마의가 다시 사람들을 시켜 沿山放火하니 山上蜀兵이 더욱 혼란에 빠진다.

馬謖料守不住只得驅殘兵殺下山西逃奔
마속은 수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殘兵을 몰아 산 서쪽으로 달려 내려가 도망하였다.

司馬懿放條大路讓過馬謖
사마의가 한 가닥 大路를 터주어 마속이 지나가도록 놔두었다.

背後張郃引兵趕來
배후에서 장합이 군사를 이끌고 뒤쫓았다.

趕到三十餘里前面鼓角齊鳴一彪軍出放過馬謖攔住張郃視之乃魏延也揮刀縱馬直取張郃
30리 남짓 추격하자 앞에서 鼓角齊鳴하며 一彪軍出이 나와 마속을 통과시키고 장합을 가로막았다. 그를 보니 바로 위연인데 칼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곧바로 장합을 공격하였다.

郃回軍便走
장합이 군대를 되돌려 달아났다.

延驅兵趕來復奪街亭
위연이 군대를 몰고 쫓아가서 가정을 다시 빼앗으려 하였다.

趕到五十餘里一聲喊起兩邊伏兵齊出
左邊司馬懿右邊司馬昭
50여 리 추격하자 한바탕 함성이 일며 양쪽에서 복병이 일제히 나왔다. 왼쪽은 사마의, 오른쪽은 사마소였다.

卻抄在魏延背後把延困在垓心
도리어 위연의 배후를 공격하여 위연을 垓心에 포위하였다.

張郃復來三路兵合在一處
장합이 다시 와서 세 갈래 군사를 한데 합쳤다.

魏延左衝右突不得脫身折兵大半
위연이 좌충우돌하지만 脫身하지 못하고 군사 태반을 잃었다.

正危急間忽一彪軍殺入乃王平也
한창 위급한 순간에 홀연히 一彪軍이 짓쳐오니 바로 왕평이다.

延大喜曰
吾得生矣!」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가 살았구나!”

二將合兵一處大殺一陣魏兵方退
두 장수가 군사를 한데 모아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위병이 비로소 물러갔다.

二將慌忙奔回寨時營中皆是魏兵旌旗
두 장수가 황망히 영채로 돌아가니 營中에는 온통 魏兵旌旗이었다.

申耽申儀從營中殺出
신탐과 신의가 영채 안에서 튀어 나왔다.

王平魏延徑奔列柳城來投高翔
왕평과 위연이 곧장 열류성으로 달아나 고상에게 갔다.

此時高翔聞知街亭有失盡起列柳城之兵前來救應正遇延平二人訴說前事
이때 고상은 가정을 잃었음을 듣고 열류성의 군사를 모조리 일으켜 구원하러 오고 있었다. 마침 위연과 왕평 두 사람과 맞닥뜨리니, 그들이 지난 일을 하소연하였다.

高翔曰
不如今晚去劫魏寨再復街亭.
이에 고상이 말하였다.
오늘 저녁 위채를 습격하여 가정을 되찾음이 낫겠소.”

當時三人在山坡下商議已定
이때 세 사람이 산비탈 아래에서 상의를 마쳤다.

待天色將晚分兵三路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었다.

魏延引兵先進徑到街亭不見一人心中大疑不敢輕進且伏在路口等候
위연이 군사를 이끌고 먼저 진군하여 곧바로 가정에 이르렀지만, 한 사람도 보지 못하자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해 감히 함부로 전진하지 못하였다. 일단 길 어귀에 매복해 기다렸다.

忽見高翔兵到二人共說魏兵不知在何處
고상의 군사가 당도했고, 두 사람 모두 말하기를 魏兵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正沒理會卻不見王平兵到
까닭을 모르고 있는데, 왕평의 군사가 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忽然一聲炮響火光沖天鼓聲震地
갑자기 한바탕 포성이 울리며 불길이 하늘을 찌르고 북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魏兵齊出把魏延高翔圍在垓心
위병이 일제히 나와서 위연과 고상을 垓心에 포위하였다.

二人盡力衝突不得脫身
두 사람이 힘을 다해 충돌하지만 脫身하지 못하였다.

忽聽得山坡後喊聲若雷一彪軍殺入乃是王平救了高魏二人徑奔列柳城來
갑자기 산비탈 뒤에서 함성이 우레와 같더니 一彪軍이 짓쳐 드니 바로 왕평이다. 고상과 위연 두 사람을 구출하여 열류성으로 곧장 달아났다.

比及奔到城下時城邊早有一軍殺到旗上大書魏都督郭淮字樣
달아나서 성 아래에 이르자, 성 주변에서 어느 틈엔가 1군이 쇄도하는데 깃발 위에 '魏都督 郭淮'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다.

原來郭淮與曹真商議恐司馬懿得了全功乃分淮來取街亭
알고 보니, 곽회와 조진이 상의하면서 사마의가 모든 공을 가져갈까 염려하였다. 이에 곽회에게 군사를 나눠주어 가정을 점령하러 왔다.

聞知司馬懿張郃成了此功遂引兵徑襲列柳城
그런데 사마의와 장합이 이미 그 공을 세웠음을 듣고,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열류성을 습격하러 온 것이었다.

正遇三將大殺一陣蜀兵傷者極多
마침 세 장수와 마주쳐 한바탕 무찌르는데, 蜀兵의 사상자가 아주 많았다.

魏延恐陽平關有失慌與王平高翔望陽平關來
위연은 양평관을 잃을까 염려하여 황망히 왕평, 고상과 함께 양평관으로 갔다.


卻說
郭淮收了軍馬乃謂左右曰
吾雖不得街亭卻取了列柳城亦是大功.
한편
곽회는 군마를 거두고 左右에게 말하였다.
내가 비록 가정을 얻지 못했으나, 열류성을 점령함도 역시 大功이오.”

引兵徑到城下叫門只見城上一聲炮響旗幟皆豎當頭一面大旗上書平西都督司馬懿」。
군사를 이끌고 城下에 이르러 문을 열라고 외치는데 성 위에서 한 차례 포성이 울리며 온갖 깃발이 모두 일어서고 맨 앞 한 폭의 큰 깃발에 '平西都督 司馬懿'라고 적혀 있었다.

懿撐起懸空板倚定護心木欄干大笑曰
郭伯濟來何遲也?」
사마의가 懸空板을 걷어 올리고 護心木欄干에 기대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郭伯濟는 왜 이렇게 늦게 오는가?”

淮大驚曰
仲達神機吾不及也!」
곽회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중달의 신묘한 지략은 내가 따르지 못하겠구려!”

遂入城相見已畢懿曰
今街亭已失諸葛亮必走
公可速與子丹星夜追之.
곧 성으로 들어가 인사를 마치고 사마의가 말하였다.
이제 가정을 빼앗겼으니 제갈량이 틀림없이 달아날 터이오.
공은 속히 자단과 함께 밤중에 그를 추격하시오.”

郭淮從其言出城而去
곽회가 그 말을 좇아 성을 나가서 떠났다.

懿喚張郃曰
子丹伯濟恐吾全獲大勝故來取此城池
吾非獨欲成功乃僥幸而已
吾料魏延王平馬謖高翔等輩必先去據陽平關
吾若去取此關諸葛亮必隨後掩殺中其計矣
兵法云
歸師勿掩窮寇莫追。』
汝可從小路抄箕谷退兵
吾自引兵當斜谷之兵
若彼敗走不可相拒只宜中途截住蜀兵輜重可盡得也.
시마의가 장합을 불러 말하였다.
자단과 백제는 내가 큰 공을 모두 차지할까 염려하여 이곳 城池를 취하러 왔었소.
내가 홀로 공을 세우려 함이 아니라 僥倖히 이루어졌을 뿐이오.
내가 보기에 위연, 왕평, 마속, 고상의 무리는 틀림없이 양평관으로 먼저 가서 의지할 터이오.
내가 그곳을 취하러 가면 제갈량이 틀림없이 뒤따라 습격해 그의 계략에 빠질 터이오.
병법에 이르기를,
돌아가는 군사를 치지 말며 궁지에 몰린 적병을 뒤쫓지 말라
라 하였소.
그대는 小路로 가서 기곡의 退兵에게서 치중을 노획하시오. 나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야곡의 적병을 맡겠소.
그들이 패주하면 막지 말고 다만 중도에서 차단해야 촉병의 치중을 모두 노획할 수 있소.”

張郃受計引兵一半去了
장합이 계책을 받고 군사 절반을 이끌고 떠났다.

懿下令
盡取斜谷由西城而進
西城雖山僻小縣乃蜀兵屯糧之所又南安天水安定三郡總路
若得此城三郡可復矣.
사마의가 명령을 내렸다.
모두 야곡을 점령하러 가되, 서성을 거쳐서 진격할 터이다.
서성이 비록 외진 산속의 작은 현이지만 촉병의 屯糧之所이자 南安, 天水, 安定 3개 군으로 모두 통하는 길이다.
그 성을 점령하면 3개 군을 회복할 수 있다.”

於是司馬懿留申耽申儀守列柳城自領大軍望斜谷進發
이에 사마의가 신탐과 신의를 남겨 열류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통수하고 斜谷으로 進發하였다.


卻說
孔明自令馬謖等守街亭去後猶豫不定
한편,
공명은 마속 등이 가정을 지키러 가게 한 뒤에도 우려하고 걱정해 안정되지 않았다.

忽報王平使人送圖本至
홀연히 보고하기를, 왕평이 사람을 시켜 도본을 보냈다고 하였다.

孔明喚入左右呈上圖本
공명이 그를 불러들이니 측근이 도본을 바쳤다.

孔明就文几上拆開視之拍案大驚曰
馬謖無知坑陷吾軍矣!」
공명이 탁자 위에 문서를 가져다 拆開視之하더니 탁자를 내리치며 몹시 놀라 말하였다.
마속이 무지해 아군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구나!”

左右問曰
丞相何故失驚?」
좌우가 물었다.
승상께서 무슨 까닭에 失驚하십니까?”

孔明曰
吾觀此圖本失卻要路占山為寨倘魏兵大至四面圍合斷汲水道路不須二日軍自亂矣
若街亭有失吾等安歸?」
공명이 말하였다.
내가 이 도본을 살펴보니 요로를 버리고 도리어 산 위에 영채를 세웠소. 만약 위병이 대거 와서 사방으로 포위해 汲水道路를 끊으면 이틀이 못 되어 군이 저절로 혼란스러워질 터이오. 가정을 잃으면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겠소?”

長史楊儀進曰
某雖不才願替馬幼常回.
長史 楊儀가 진언하였다.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마유상과 교체하겠습니다.”

孔明將安營之法一一分付與楊儀
공명은 安營之法을 하나하나 양의에게 분부하였다.

正待要行忽報馬到來說街亭列柳城盡皆失了
막 떠나려 하는데 報馬가 와서 말하기를, 가정과 열류성을 모두 잃었다고 하였다.

孔明跌足長歎曰
大事去矣
此吾之過也!」
공명이 발을 구르며 장탄식하였다.
대사를 버려 놓았구나!
이 모두 나의 잘못이다!”

急喚關興張苞分付曰
汝二人各引三千精兵投武功山小路而行
如遇魏兵不可大擊只鼓譟吶喊為疑兵驚之
彼當自走亦不可追
待軍退盡便投陽平關去.
급히 관흥과 장포를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각각 정병 3천을 거느리고 무공산의 지름길로 가시오.
위나라 군사를 만나더라도 크게 공격하지 말고 다만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疑兵이 되어 그들을 놀라게 하시오.
적병이 스스로 물러나도 추격하지 마시오.
모두 물러가기를 기다려 즉시 양평관으로 가시오.”

又令張翼先引軍去修理劍閣以備歸路
또 장익에게 명하여 먼저 군을 이끌고 劍閣으로 가서 歸路를 확보하도록 하였다.

又密傳號令教大軍暗暗收拾行裝以備起程
또한 은밀히 號令을 전하기를, 대군은 암암리에 행장을 수습해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又令馬岱姜維斷後先伏於山谷中待諸軍退盡方始收兵
또한 마대와 강유에게 명하기를, 후미를 차단하고 먼저 산골짜기에 매복해 다른 병사들이 모두 퇴각하면 비로소 收兵하라 하였다.

又差心腹人分路報與天水南安安定三郡官吏軍民皆入漢中
다시 心腹人을 뽑아 천수, 남안, 안정의 3으로 길을 나눠 가서 관리와 군민을 모두 한중으로 이동하게 하였다.

又遣心腹人到冀縣搬取姜維老母送入漢中
다시 心腹人을 시켜 기현으로 가서 강유의 노모를 모시고 한중으로 가게 하였다.

孔明分撥已定先引五千兵退去西城縣搬運糧草
공명이 배치를 마치고 먼저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서성현으로 물러가서 糧草를 운반하려 하였다.

忽然十餘次飛馬報到說司馬懿引大軍十五萬望西城蜂擁而來
갑자기 10여 차례나 급보가 날아들어, 사마의가 이끄는 15만 대군이 서성으로 벌떼처럼 몰려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時孔明身邊並無大將只有一班文官所引五千軍已分一半先運糧草去了只剩二千五百軍在城中
이때 공명 곁에는 대장이 아무도 없고, 오로지 한 무리 문관이 있을 뿐이었다. 휘하의 병사 5천도 이미 절반은 먼저 군량을 운반하도록 가서, 나머지 단지 25백의 병사만 城中에 있었다.

眾官聽得這個消息盡皆失色
관리들이 이런 소식을 듣고, 모두 失色하였다.

孔明登城望之果然塵土沖天魏兵分兩路望西城縣殺來
공명이 성에 올라 바라보니, 과연 흙먼지가 하늘을 찌르며 위병이 두 갈래로 나뉘어 西城縣으로 짓쳐왔다.

孔明傳令教將旌旗盡皆藏匿諸將各守城鋪如有妄行出入及高聲言語者立斬大開四門每一門上用二十軍士扮作百姓灑掃街道如魏兵到時不可擅動吾自有計
공명이 명령을 전하기를,
깃발을 모조리 감추라. 장수들은 제각기 城鋪( 성벽의 방어 시설 )를 수비하며 함부로 출입하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자는 즉각 하라. 네 개 성문을 활짝 열고 성문마다 20명의 군사로써 백성으로 가장해 길거리를 청소하라. 魏兵이 오더라도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내게 계책이 있다.’
라고 하였다.

孔明乃披鶴氅戴綸巾引二小童攜琴一張於城上敵樓前憑欄而坐焚香操琴
공명이 학창의를 입고 윤건을 머리에 쓰더니 小童 둘을 데리고 한 개의 거문고를 가지고 성벽 위의 적루 앞에서, 난간에 기대어 향불을 피우고 거문고를 뜯었다.


卻說司馬懿前軍哨到城下見了如此模樣皆不敢進急報與司馬懿
한편,
사마의의 前軍이 성 아래로 정찰을 와서 이러한 模樣을 보고 모두 감히 진군하지 못하고 서둘러 사마의에게 알렸다.

懿笑而不信遂止住三軍自飛馬遠遠望之
사마의가 웃으며 믿지 않고 3군의 진격을 멈추고, 스스로 급히 말을 몰아 멀리서 바라보았다.

果見孔明坐於城樓之上笑容可掬焚香操琴
과연 공명이 성루 위에 앉아 넘칠 듯한 웃음을 띠고, 향을 사르며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었다.

左有一童子手捧寶劍右有一童子手執麈尾
왼쪽의 동자 하나는 손으로 보검을 받들고 있고, 오른쪽의 동자 하나는 손에 麈尾( 먼지떨이 )를 잡고 있었다.

城門內外有二十餘百姓低頭灑掃傍若無人
성문 안팎에서 스물 남짓의 백성이 머리를 숙인 채 灑掃하고 있는데 傍若無人이었다.

懿看畢大疑便到中軍教後軍作前軍前軍作後軍望北山路而退
사마의가 보고 크게 의심이 들어 곧 중군으로 가서 지시하기를, 후군이 전군이 되고 전군이 후군이 되게 하여 북쪽 산길로 퇴각하라고 하였다.

次子司馬昭曰
莫非諸葛亮無軍故作此態
父親何故便退兵?」
次子 사마소가 말하였다.
제갈량에게 군사가 없어서 저 모양을 짓겠지요?
부친께서 무슨 이유로 바로 退兵하십니까?”

懿曰
亮平生謹慎不會弄險
今大開城門必有埋伏
我兵若進中其計也
汝輩豈知
宜速退.
제갈량은 평생 謹慎하니 모험할 리가 없다.
이제 성문를 활짝 열어 놓았으니 틀림없이 매복이 있을 터이다.
아군이 진격하면 그 계략에 걸려들 터이다.
너 따위가 어찌 알겠나?
어서 물러나야 하였다.”

於是兩路兵盡皆退去
이리하여 兩路兵이 모두 퇴각하였다.

孔明見魏軍遠去撫掌而笑
공명은 魏軍이 멀리 떠남을 보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眾官無不駭然
관리들이 깜짝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乃問孔明曰
司馬懿乃魏之名將今統十五萬精兵到此見了丞相便速退去何也?」
이에 공명에게 물었다.
사마의는 魏之名將으로서 이제 15만 정병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왔거늘, 승상을 보자마자 속히 물러났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孔明曰
此人料吾生平謹慎必不弄險
見如此模樣疑有伏兵所以退去
吾非行險蓋因不得已而用之
此人必引軍投山北小路去也
吾已令興苞二人在彼等候.
공명이 말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生平 신중한 줄만 알아 절대 모험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터이오.
그런데 이런 模樣을 보고 복병이 있겠다고 의심해서 퇴각하였소.
내가 모험을 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오.
그 사람은 틀림없이 군을 이끌고 山北小路로 갈 터이오.
내 이미 관흥, 장포 두 사람에게 명해 그곳에서 기다리도록 하였소.”

眾皆驚服曰
丞相之機神鬼莫測
若某等之見必棄城而走矣.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丞相之機神鬼莫測입니다.
저희의 식견이라면, 틀림없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을 터입니다.”

孔明曰
吾兵止有二千五百若棄城而走必不能遠遁
得不為司馬懿所擒乎?」
공명이 말하였다.
우리 군사는 겨우 25백이 있을 뿐이니, 만약 성을 버리고 달아나더라도 절대로 멀리 가지 못했을 터이오.
결국 사마의에게 사로잡히지 않았겠소?”

後人有詩贊曰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瑤琴三尺勝雄師諸葛西城退敵時
十五萬人回馬處土人指點到今疑>
<거문고 3척으로 대군을 물리치니, 제갈량이 서성에서 적군을 격퇴한 것이네.
십오만 대군이 말머리를 돌린 곳을, 토인들 가리키지만 지금도 믿기지 않네.>

言訖拍掌大笑曰
吾若為司馬懿必不便退也.
말을 마치더니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사마의라면 반드시 바로 물러나지는 않았을 터이오.”

遂下令教西城百姓隨軍入漢中
司馬懿必將復來
곧 명령을 내리기를,
서성의 백성들을 군대를 따라 한중으로 들어가게 하라. 사마의가 틀림없이 다시 올 터이다
라 하였다.

於是孔明離西城望漢中而走
이리하여 공명이 서성을 떠나 한중으로 달려갔다.

天水安定南安三郡官吏軍民陸續而來
천수, 안정, 남안 3官吏軍民陸續하여 떠나갔다.


卻說
司馬懿望武功山小路而來
한편
사마의는 무공산을 향하여 좁은 길로 가고 있었다.

忽然山坡後喊殺連天鼓聲震地
갑자기 산언덕 뒤에서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북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懿回顧二子曰
吾若不走必中諸葛亮之計矣.
사마의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달려오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제갈량의 계책에 빠졌겠구나.”

只見大路上一軍殺來旗上大書
右護衛使虎翼將軍張苞」。
그런데 大路上1군이 짓쳐오는데, 깃발 위에 큰 글씨로 '右護衛使 虎翼將軍 張苞'라고 적혀있었다.

魏兵皆棄甲拋戈而走
위병이 모두 棄甲拋戈하고 달아났다.

行不到一程山谷中喊聲震地鼓角喧天前面一杆大旗上書
左護衛使龍驤將軍關興」。
一程을 못 가서 산골짜기에서 喊聲震地하고 鼓角喧天하더니 앞쪽의 一杆大旗'左護衛使 龍驤將軍 關興'이라 적혀 있었다.

山谷應聲不知蜀兵多少
산골짜기가 메아리치니, 촉병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였다.

更兼魏軍心疑不敢久停只得盡棄輜重而去
게다가 魏軍이 두려워하여 감히 오래 머물지 못하고 치중을 모조리 포기하고 달아났다.

苞二人皆遵將令不敢追襲多得軍器糧草而歸
관흥과 장포 두 사람이 모두 將令을 준수하여 감히 추격하지 않고 다만 軍器糧草를 많이 노획하고 돌아갔다.

司馬懿見山谷中皆有蜀兵不敢出大路遂回街亭
사마의는 山谷中에 온통 촉병이 있음을 보고 감히 大路로 나오지 못하고 가정으로 돌아갔다.

此時曹真聽知孔明退兵急引兵追趕
이때 조진은 공명이 군사를 물린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뒤쫓았다.

山背後一聲炮響蜀兵漫山遍野而來
산 뒤에서 한 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촉병이 漫山遍野하여 왔다.

為首大將乃是姜維馬岱
앞장선 대장은 바로 강유와 마대였다.

真大驚急退軍時先鋒陳造已被馬岱所斬
조진이 깜짝 놀라 급히 군대를 물리는데, 先鋒 陳造는 이미 마대에게 목이 베어졌다.

真引兵鼠竄而還
조진이 병력을 이끌고 마치 놀란 쥐처럼 되돌아갔다.

蜀兵連夜皆奔回漢中
촉병이 그날 밤 모두 한중으로 달려갔다.


卻說
趙雲鄧芝伏兵於箕谷道中
한편
조운과 등지의 복병은 기곡으로 통하는 길에 있었다.

聞孔明傳令回軍雲謂芝曰
魏軍知吾兵退必然來追
吾先引一軍伏於其後公卻引兵打吾旗號徐徐而退
吾一步步自有護送也.
공명이 回軍하라고 傳令하자 이를 듣고, 조운이 등지에게 말하였다.
위군이 吾兵의 퇴각을 알면 틀림없이 추격할 터이오.
내가 먼저 1군을 거느리고 그 뒤에 매복할 테니, 공께서 나의 깃발을 들고 서서히 퇴각하시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護送하겠소.”


卻說
郭淮提兵再回箕谷道中喚先鋒蘇顒分付曰
蜀將趙雲英勇無敵汝可小心隄防
彼軍若退必有計也.
한편
곽회는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기곡으로 통하는 길로 돌아가며 先鋒 蘇顒을 불러 분부하였다.
촉장 조운은 英勇無敵이니 그대는 조심해서 隄防하시오.
저들 군사가 물러가니 틀림없이 계략이 있을 터이오.”

蘇顒欣然曰
都督若肯接應某當生擒趙雲.
소옹이 흔연히 말하였다.
도독께서 接應해 주시면, 제가 응당 조운을 산 채로 잡겠습니다.”

遂引前部三千兵奔入箕谷
前部 3천 군을 이끌고 기곡으로 달려 들어갔다.

看看趕上蜀兵只見山坡後閃出紅旗白字上書
趙雲」。
얼마 안 되어 촉병을 따라잡는데, 산비탈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붉은 깃발에 흰 글씨로 '趙雲'이라 적혀 있었다.

蘇顒急收兵退走
소옹이 황급히 군사를 거두어 退却하였다.

行不到數里喊聲大震一彪軍撞出為首大將挺鎗躍馬大喝曰
汝識趙子龍否!」
몇 리 못 가서 喊聲大震하며 一彪軍이 쳐들어왔다. 앞장선 대장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크게 호통친다.
네가 조자룡을 알렸다!”

蘇顒大驚曰
如何這裏又有趙雲?」
소옹이 깜짝 놀라 말하였다.
어떻게 여기에도 조운이 있단 말이냐?”

措手不及被雲一鎗刺死於馬下
미처 손 쓰지 못한 채 조운의 一鎗에 찔려 말 아래에서 죽었다.

餘軍潰散
나머지 군사들은 潰散하였다.

雲迤邐前進背後又一軍到乃郭淮部將萬政也
조운이 계속 전진하는데 배후에서 다시 1군이 도착하니, 곽회의 部將 萬政이다.

雲見魏兵追急乃勒馬挺鎗立於路口待來將交鋒
조운은 위병이 급히 추격함을 보고, 勒馬挺鎗하고 路口에 서서, 적장과 交鋒하려고 기다린다.

蜀兵已去三十餘里
촉병은 이미 30여 리를 지나간 후였다.

萬政認得是趙雲不敢前進
만정이 조운을 알아보고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다.

雲等得天色黃昏方纔撥回馬緩緩而進
조운은 날이 황혼이 되자, 비로소 말머리를 돌려 천천히 나아갔다.

郭淮兵到萬政言趙雲英勇如舊因此不敢近前
곽회의 군사가 도착하였는데, 만정이 말하기를, 조운이 英勇如舊하여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淮傳令教軍急趕政令數百騎壯士趕來
곽회가 군사들에게 급히 추격하라고 명령하자, 萬政壯士 수백 기에게 추격하게 하였다.

行至一大林忽聽得背後大喝一聲曰
趙子龍在此!」
행진하여 어느 큰 숲에 이르자, 갑자기 뒤에서 큰 소리로 호통쳤다.
조자룡이 여기 있다!”

驚得魏兵落馬者百餘人餘者皆越嶺而去
깜짝 놀라서 말에서 떨어진 魏兵이 백여 인이고, 나머지는 재를 넘어 달아났다.

萬政勉強來敵被雲一箭射中盔纓驚跌於澗中
만정이 힘껏 달려들지만, 조운이 쏜 화살이 투구의 술을 명중하니 놀라서 계곡물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雲以鎗指之曰
吾饒汝性命回去
快教郭淮趕來!」
조운이 창으로 만정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 너의 목숨을 붙여줄 테니 돌아가거라!
어서 곽회에게 쫓아 오도록 해라!”

萬政脫命而回
만정이 脫命하여 돌아갔다.

雲護送車仗人馬望漢中而去沿途並無遺失
조운이 車仗人馬를 호송하여 한중으로 가면서 도중에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았다.

曹真郭淮復奪三郡以為己功
조진과 곽회는 세 개 군을 탈환했다며 전공으로 삼았다.


卻說
司馬懿分兵而進此時蜀兵盡回漢中去了
한편
사마의는 군사를 나눠 진격하는데, 이때 촉병은 모조리 한중으로 돌아가 버렸다.

懿引一軍復到西城因問遺下居民及山僻隱者皆言孔明止有二千五百軍在城中又無武將只有幾個文官別無埋伏
사마의가 一軍을 이끌고 다시 西城으로 가서, 遺下居民山僻隱者에게 물으니, 모두 말하기를, 공명이 겨우 25백의 병사만 城中에 가졌는데 武將은 아무도 없이 단지 몇 명의 문관만 있었을 뿐이고 별도의 매복도 없었다고 말하였다.

武功山小民告曰
關興張苞只各有三千軍轉山吶喊鼓譟驚追又無別軍並不敢廝殺.
무공산의 小民이 고하였다.
관흥과 장포는 제각기 단지 3천의 병사를 거느리고 轉山吶喊하고 鼓譟驚追했을 뿐, 역시 별도의 군사가 없어 감히 廝殺하지 못하였습니다.”

懿悔之無及仰天歎曰
吾不如孔明也!」
사마의가 후회막급이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나는 공명에 미치지 못하는구나!”

遂安撫了諸處官民引兵徑還長安朝見魏主
諸處官民安撫하고,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가서, 魏主朝見하였다.

叡曰
今日復得隴西諸郡皆卿之功也.
조예가 말하였다.
오늘날 隴西諸郡을 다시 얻음은 모두 경의 공이오.”

懿奏曰
今蜀兵皆在漢中未盡剿滅
臣乞大兵併力收川以報陛下.
사마의가 아뢰었다.
이제 촉병이 모두 한중에 있으니 저들을 모조리 소탕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에게 大兵을 주시기를 바라오니, 힘을 합쳐 서천을 수복하여 폐하께 보답하겠나이다.”

叡大喜令懿即便興兵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사마의에게 즉시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忽班部一人出奏曰
臣有一計足可定蜀降吳.
문득 반열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아뢰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사오니, 족히 定蜀降吳할 수 있겠습니다.”

正是
蜀中將相方歸國魏地君臣又逞謀
꼭 이러하다.
촉나라 장수와 승상이 귀국하자마자, 위나라 군신은 다시 음모를 꾸미네.

未知獻計者是誰且看下文分解
계책을 바친 이가 누구일까? 다음 글이 설명함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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