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五回
劉先主遺詔託孤兒 諸葛亮安居平五路.
제85회
劉先主는 遺詔로 孤兒를 부탁하고, 諸葛亮은 安居로 五路를 평정하다.
卻說
章武二年,夏六月,東吳陸遜,大破蜀兵於猇亭彝陵之地;
각설하고
장무 2년 여름 6월에 동오 육손은 蜀兵을 猇亭彝陵之地에서 크게 깨트렸다.
先主奔回白帝城,趙雲引兵據守。
선주는 백제성으로 달아나고 조운이 군사를 이끌고 점거하여 지켰다.
忽馬良至,見大軍已敗,懊悔不及,將孔明之言,奏知先主。
홀연히 마량이 이르러 대군이 패하였음을 보고, 뉘우치고 한탄해 마지않으면서 공명의 말을 선주에게 아뢰었다.
先主歎曰:
「朕早聽丞相之言,不致今日之敗!
今有何面目復回成都見群臣乎!」
선주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짐이 일찍이 승상의 말을 들었으면 오늘의 패전에 이르지 않았을 터이다!
지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성도에 돌아가서 신하들을 보겠는가!”
遂傳旨就白帝城駐紮,將館驛改為永安宮。
명령을 내려 백제성에 나아가 주둔하고 관역을 改名하여 永安宮이라 하였다.
人報馮習、張南、傅彤、程畿、沙摩柯等皆歿於王事,先主傷感不已。
풍습, 장남, 부동, 정기, 사마가 등이 모두 王事에 죽었다고 보고하자, 선주는 슬퍼하기를 마지않았다.
又近臣奏稱:
「黃權引江北之兵,降魏去了。
陛下可將彼家屬送有司問罪.」
근신이 아뢰었다.
“황권이 江北之兵을 이끌고 위나라에 항복하러 갔습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의 가족을 유사에게 보내 죄를 물어야 합니다.”
先主曰:
「黃權被吳兵隔斷在江北岸,欲歸無路,乃不得已而降魏;
是朕負權,非權負朕也。
何必罪其家屬?」
선주가 말하였다.
“황권은 吳兵이 강 北岸을 막고 있어서, 돌아오고자 하나 길이 없어서, 부득이 魏에 항복하였을 터이다.
이것은 짐이 황권을 저버림이지 황권이 짐을 저버림이 아니다.
어찌 그 가족에게 죄를 물어야 하겠는가?”
仍給祿米以養之。
인하여 녹미를 주어 가속을 부양하였다.
卻說
黃權降魏,諸將引見曹丕。
각설하고
황권이 위나라에 항복하자 장수들이 인도하여 조비를 뵙게 하였다.
丕曰:
「卿今降朕,欲追慕於陳、韓耶?」
조비가 말하였다.
“경이 지금 짐에게 항복함은 진평과 한신을 추모하는 것인가?”
權泣而奏曰:
「臣受蜀帝之恩,殊遇甚厚,令臣督諸軍於江北;
被陸遜絕斷,臣歸蜀無路,降吳不可,故來投陛下。
敗軍之將,免死為幸,安敢追慕於古人耶?」
황권이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신이 蜀帝之恩을 받음에 특별한 예우가 매우 두터워, 신에게 강북에서 군사를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육손에게 길이 끊어져서 신이 촉으로 돌아가려 하여도 길이 없고, 오나라에 항복할 수도 없어 폐하에게 투항하였습니다.
敗軍之將으로 죽음을 면함도 다행인데, 어찌 감히 古人을 추모하겠습니까?”
丕大喜,遂拜黃權為鎮南將軍。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황권에게 벼슬을 주어 鎮南將軍으로 삼았다.
權堅辭不受。
황권은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忽近臣奏曰:
「有細作人自蜀中來,說蜀主將黃權家屬盡皆誅戮.」
홀연히 근신이 아뢰었다.
“細作人이 촉에서 왔는데 촉주가 황권의 가족을 데려다가 모두 죽였다고 말하였습니다.”
權曰:
「臣與蜀主,推誠相信,知臣本心,必不肯殺臣之家小也.」
황권이 말하였다.
“신과 촉주는 정성으로 대하고 서로 믿고 신의 본심을 알기 때문에, 신의 가족을 죽이려 하지 않음이 틀림없습니다.”
丕然之。
조비가 그렇게 여겼다.
後人有詩責黃權曰:
후인이 시를 지어 황권을 꾸짖었다.
<降吳不可卻降曹,忠義安能事兩朝?
堪歎黃權惜一死,紫陽書法不輕饒。>
<降吳는 불가하다며 도리어 조씨에게 항복하니, 忠義상 어찌 두 조정을 섬길 수 있는가?
황권이 한 번 죽음을 아끼니, 자양서법에는 간단히 용서하지 않을 터이다.>
曹丕問賈詡曰:
「朕欲一統天下,先取蜀乎?
先取吳乎?」
조비가 가후에게 물었다.
“짐은 천하를 통일하려 하는데 촉을 먼저 취하여야 하는가?
오를 먼저 취하여야 하는가?”
詡曰:
「劉備雄才,更兼諸葛亮善能治國;
東吳孫權,能識虛實,陸遜現屯兵於險要:
隔江泛湖,皆難卒謀。
以臣觀之,諸將之中,皆無孫權、劉備敵手。
雖以陛下天威臨之,亦未見萬全之勢也。
只可持守,以待二國之變.」
가후가 말하였다.
“유비는 영웅의 재능을 지녔고, 게다가 제갈량은 나라를 잘 다스립니다.
동오의 손권은 허실을 알 수 있고, 육손이 현재 험한 요해처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강을 사이하고 호수가 넓으니 모두 갑자기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신이 관찰해보건대 모든 장수 중에 손권과 유비의 敵手가 없습니다.
비록 폐하께서 천자의 위엄으로 임할지라도, 또한 萬全의 형세를 보이지 못할 터입니다.
다만 수비를 유지함으로써 두 나라의 변고를 기다려야 합니다.”
丕曰:
「朕已遣三路大兵伐吳,安有不勝之理?」
조비가 말하였다.
“짐이 이미 세 길로 대군을 보내 오나라를 치게 하였는데 어찌 이기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尚書劉曄曰:
「近東吳陸遜,新破蜀兵七十萬,上下齊心,更有江湖之阻,不可卒制。
陸遜多謀,必有準備.」
상서 유엽이 말하였다.
“최근 동오의 육손이 새롭게 蜀兵 70만을 깨뜨려 상하가 마음을 같이하고 있고, 게다가 강과 호수의 막힘이 있으니 갑자기 제어할 수 없습니다.
육손은 꾀가 많으니 틀림없이 준비가 있을 터입니다.”
丕曰:
「卿前勸朕伐吳,今又諫阻,何也?」
조비가 말하였다.
“경은 전에 짐에게 오를 치라고 권하더니, 지금은 또한 간하여 막으니 왜 그런가?”
曄曰:
「時有不同也。
昔東吳累敗於蜀,其勢頓挫,故可擊耳;
今既獲全勝,銳氣百倍,未可攻也.」
유엽이 말하였다.
“때가 같지 않습니다.
저번에 동오는 촉에게 여러 번 패하여 그 형세가 꺾였기 때문에 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은 이미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銳氣百倍이니 공격할 수 없습니다.”
丕曰:
「朕意已決,卿勿復言.」
조비가 말하였다.
“짐의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경은 다시 말하지 말라.”
遂引御林軍親往接應三路兵馬。
마침내 어림군을 이끌고 친히 三路兵馬를 접응하러 갔다.
早有哨馬報說東吳已有準備:
令呂範引兵拒住曹休,諸葛瑾引兵在南郡拒住曹真,朱桓引兵當住濡須以拒曹仁。
어느새 哨馬가 보고하였다.
“동오에 이미 준비가 있으니, 여범은 군사를 이끌고 조휴를 막고, 제갈근은 군사를 이끌고 남군에서 조진을 막고, 주환은 군사를 이끌고 유수에 주둔하여 조인을 막도록 명령하였습니다.”
劉曄曰:
「既有準備,去恐無益.」
유엽이 말하였다.
“이미 준비가 있으니, 가도 이익이 없을 터입니다.”
丕不從,引兵而去。
조비는 따르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갔다.
卻說
吳將朱桓,年方二十七歲,極有膽略,孫權甚愛之;
각설하고
吳將 주환은 나이가 겨우 27세인데 지극히 담력과 계략이 있어서, 손권이 매우 사랑하였다.
時督軍於濡須,聞曹仁引大軍去取羨溪,桓遂盡撥軍守把羨溪去了,止留五千騎守城。
이때 유수에서 군사를 감독하고 있었는데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가서 羨溪를 취하려 함을 듣자 주환은 군사를 모두 동원하여 선계를 지키러 가면서 다만 5천의 기병을 남겨 성을 지키게 하였다.
忽報曹仁令大將常雕同諸葛虔、王雙,引五萬精兵飛奔濡須城來。
홀연히 보고하기를, 조인이 대장 상조에게 제갈건, 왕쌍과 함께 5만의 精兵을 이끌고 유수성으로 달려가게 하였다고 하였다.
眾軍皆有懼色。
군사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桓按劍而言曰:
「勝負在將,不在兵之多寡。
兵法云:
『客兵倍而主兵半者,主兵尚能勝於客兵。』
今曹仁千里跋涉,人馬疲困。
吾與汝等,共據高城,南臨大江,北背山險.
以逸待勞,以主制客:此乃百戰百勝之勢。
雖曹丕自來,尚不足憂,況仁等耶?」
주환이 검을 만지며 말하였다.
“이기고 짐은 장수에게 달려 있고,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병법에 ‘客兵(공격군)이 배이고 主兵(수비군)이 반이라면 주병이 오히려 객병을 이길 수 있다.’라 하였다.
지금 조인은 千里跋涉하여 人馬가 疲困하다.
나와 너희들은 함께 높은 성에 의지하고, 남쪽으로 큰 강에 임하고, 북쪽으로는 山險을 등지고 있다. 편안함으로써 피로함을 기다리고 주병으로서 객병을 제어하니, 이것은 백번 싸워서 백번을 이기는 형세이다.
비록 조비가 직접 오더라도 오히려 근심할 것이 없는데 하물며 조인 따위이겠는가?”
於是傳令,教眾軍偃旗息鼓,只作無人守把之狀。
이에 명령을 내려 군사들에게 깃발을 눕히고 북 치기를 쉬게 하여 無人守把之狀을 짓게 하였다.
且說
魏將先鋒常雕,領精兵來取濡須城,遙望城上並無軍馬。
각설하고
魏將 선봉 常雕가 精兵을 거느리고 유수성을 취하러 와서 멀리 바라보니, 성 위에 군마가 전혀 없었다.
雕催軍急進,離城不遠,一聲炮響,旌旗齊豎。
상조는 催軍急進하여 離城不遠인데, 一聲炮響과 함께 旌旗齊豎하였다.
朱桓橫刀飛馬而出,直取常雕。
주환이 칼을 빗겨 들고 빠르게 말을 몰아 나와 곧바로 상조를 공격하였다.
戰不三合,被桓一刀斬常雕於馬下。
싸운 지 3합이 되지 않아서, 주환이 한칼로 상조를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吳兵乘勢衝殺一陣,魏兵大敗,死者無數。
吳兵이 승세를 타고 한바탕 쳐서 죽이니, 魏兵은 大敗하였고 죽은 자가 수없이 많았다.
朱桓이 大勝하고 無數한 旌旗, 軍器, 戰馬를 얻었다.
曹仁領兵隨後到來,卻被吳兵從羨溪殺出。
조인이 군사를 거느리고 뒤를 따라왔으나, 吳兵이 선계에서 쏟아져 나왔다.
曹仁大敗而退,回見魏主,細奏大敗之事。丕大驚。
曹仁이 大敗하고 물러갔다. 돌아가서 魏主를 뵙고 大敗之事를 자세히 아뢰니 조비가 깜짝 놀랐다.
正議之間,忽探馬報:
「曹真、夏侯尚圍了南郡,被陸遜伏兵於內,諸葛瑾伏兵於外,內外夾攻,因此大敗.」
한창 논의하는 사이에 홀연히 探馬가 보고하였다.
“조진, 하후상이 남군을 포위하였으나 육손의 복병은 안에서 제갈근의 복병은 밖에서 협공하니, 이로 인하여 大敗하였습니다.”
言未畢,忽探馬又報:
「曹休亦被呂範殺敗.」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探馬가 또 보고하였다.
“조휴 또한 여범에게 죽고 패하였습니다.”
丕聽知三路兵敗,乃喟然歎曰:
「朕不聽賈詡、劉曄之言,果有此敗!」
조비가 三路의 군사가 패함을 듣고 이에 喟然히 탄식하였다.
“짐이 가후와 유엽의 말을 듣지 않더니, 과연 이런 패배가 생기는구나!”
時值夏天,大疫流行,馬步軍十死六七,遂引軍回洛陽。
時值夏天으로 大疫流行하여 馬步軍十死六七이니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吳魏自此不和。
吳魏가 自此不和하였다.
卻說
先主在永安宮, 染病不起,漸漸沈重。
각설하고
선주는 영안궁에 있었는데, 染病不起하고 漸漸沈重해졌다.
至章武三年,夏四月,先主自知病入四肢;
장무 3년 여름 4월에 이르러, 선주는 병이 四肢에 들어갔음을 알았다.
又哭關、張二弟,其病愈深,兩目昏花,厭見侍從之人;乃叱退左右,獨臥於龍榻之上。
또 관우, 장비 두 아우를 곡하니 그 병이 더욱 깊어지고, 두 눈이 흐릿해져서 侍從之人 보기를 싫어하였다. 이에 좌우를 물리치고 獨臥於龍榻之上하였다.
忽然陰風驟起,將燈吹搖,滅而復明。
홀연히 陰風이 驟起하여 등불을 불어 흔드니 꺼질 듯하다가 다시 밝아졌다.
只見燈影之下,二人侍立。
燈影之下에 두 사람이 시립하고 있음이 보였다.
先主怒曰:
「朕心緒不寧,教汝等且退,何故又來!」
선주가 노하여 말하였다.
“짐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 너희에게 물러가라 하였는데 무슨 이유로 또 왔느냐!”
叱之不退。
그들을 꾸짖어도 물러가지 않았다.
先主起而視之,上首乃雲長,下首乃翼德也。
선주가 일어나 그들을 보니 上首(상석)는 곧 운장이고, 下首는 곧 익덕이었다.
先主大驚曰:
「二弟原來尚在!」
선주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두 동생은 알고 보니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
雲長曰:
「臣等非人,乃是鬼也。
上帝以臣二人平生不失信義,皆敕命為神。
哥哥與兄弟聚會不遠矣.」
운장이 말하였다.
“신들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상제께서 신들 두 사람이 평생 신의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칙명으로 신이 되게 하였습니다.
형님과 형제가 멀지 않아 모일 터입니다.”
先主扯定大哭,忽然驚覺,二弟不見;
선주가 목청을 돋구어 大哭하다가 홀연히 놀라 깨니, 두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即喚從人問之,時正三更。
곧 從人을 불러 물으니, 때는 바로 3경이었다.
先主歎曰:
「朕不久於人世矣!」
선주가 탄식하였다.
“짐이 人世에 오래 있지 못하겠구나!”
遂遣使往成都,請丞相諸葛亮、尚書令李嚴等,星夜來永安宮,聽受遺命。
하고는 사람을 성도에 보내 승상 제갈량, 상서령 이엄 등을 청해 밤을 새워 영안궁에 와서 遺命을 듣게 하였다.
孔明等與先主次子魯王劉永、梁王劉理,來永安宮見帝,留太子劉禪守成都。
공명 등은 선주의 次子 魯王 劉永, 梁王 劉理와 함께 영안궁으로 와서 황제을 뵙고, 태자 유선은 머물러 성도를 지키게 하였다.
且說
孔明到永安宮,見先主病危,慌忙拜伏於龍榻之下。
각설하고
공명이 영안궁에 이르러 선주의 병이 위태로움을 보고 황망히 龍榻 아래에 엎드렸다.
先主傳旨,請孔明坐於龍榻之側,撫其背曰:
「朕自得丞相,幸成帝業;何期智識淺陋?
不納丞相之言,自取其敗。
悔恨成疾,死在旦夕。
嗣子孱弱,不得不以大事相託.」
선주가 명령하여 공명을 청해 용탑의 옆에 앉게 하고,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짐이 승상을 얻어 幸成帝業하였습니다. 나의 智識淺陋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승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스스로 실패를 가져왔습니다.
뉘우침이 병이 되어 죽음이 旦夕에 있습니다.
嗣子가 孱弱하니 대사를 부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言訖,淚流滿面。
말을 마치니, 淚流滿面이었다.
孔明亦涕泣曰:
「願陛下善保龍體,以副天下之望!」
공명도 또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원하건대 폐하께서는 용체를 잘 보전하시어 天下之望에 부응하십시오.”
先主以目遍視。
선주가 눈으로 죽 둘러보았다.
只見馬良之弟馬謖在傍,先主令且退。
마량의 동생 마속이 곁에 있음을 보고 선주가 물러가게 하였다.
謖退出。先主謂孔明曰:
「丞相觀馬謖之才何如?」
마속이 물러가자 선주가 공명에게 일렀다.
“승상께서 보기에 마속의 재능이 어떠합니까?”
孔明曰:
「此人亦當世之英才也.」
공명이 말하였다.
“그 사람은 또한 當世之英才입니다.”
先主曰:
「不然。
朕觀此人,言過其實,不可大用。
丞相宜深察之.」
선주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짐이 그 사람을 관찰해보니, 言過其實이어서 크게 씀은 不可합니다.
승상께서는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합니다.”
分付畢,傳旨召諸臣入殿,取紙筆寫了遺詔,遞與孔明而歎曰:
「朕不讀書,粗知大略。
聖人云:
『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
朕本待與卿等同滅曹賊,共扶漢室;不幸中道而別。
煩丞相將詔付與太子禪,令勿以為常言。
凡事更望丞相教之!」
분부를 마치고, 명령을 내려 신하들을 불러 대전에 들게 한 후, 종이와 붓을 가져다 遺詔를 써서 공명에게 주고 탄식하였다.
“짐은 讀書하지 않아서 大略(웅대한 책략)을 대충 알 뿐입니다.
성인이 이르기를, ‘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라고 했습니다.
짐은 본래 경들과 함께 曹賊을 없앤 후에, 함께 漢室을 도우려 했습니다. 불행히도 중도에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번거롭겠지만 승상은 遺詔를 태자 선에게 주고, 평범한 말로 여기지 말게 하십시오.
다시 바라건대, 모든 일에 승상이 그를 가르치십시오.”
孔明等泣拜於地曰:
「願陛下將息龍體!
臣等盡施犬馬之勞,以報陛下知遇之恩也.」
공명 등이 泣拜於地하며 말하였다.
“원하건대 폐하께서는 용체를 쉬십시오!
신들은 犬馬之勞를 다하여 陛下知遇之恩에 보답하겠습니다.”
先主命內侍扶起孔明,一手掩淚,一手執其手,曰:
「朕今死矣!
有心腹之言相告!」
선주가 內侍에게 공명을 扶起하게 하고,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고, 한 손으로는 그 손을 잡고 말하였다.
“짐은 이제 죽을 터입니다!
心腹之言을 알려주겠습니다!”
孔明曰:
「有何聖諭?」
공명이 말하였다.
“무슨 聖諭가 있습니까?”
先主泣曰:
「君才十倍曹丕,必能安邦定國,終定大事。
若嗣子可輔,則輔之;如其不才,君可自為成都之主.」
선주가 울면서 말하였다.
“그대의 재능은 조비보다 열 배 뛰어나니, 틀림없이 安邦定國하여 마침내 대사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嗣子를 보필할 만하면 그를 보필하고, 만약 재주가 없으면 그대가 스스로 성도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孔明聽畢,汗流遍體,手足失措,泣拜於地曰:
「臣安敢不竭股肱之力,盡忠貞之節,繼之以死乎!」
공명이 듣고 나자, 땀이 온몸에 흐르고, 手足失措하다가 泣拜於地하고 말하였다.
“신이 어찌 감히 股肱之力과 忠貞之節을 다하여 죽음으로써 後嗣를 잇지 않겠습니까?”
言訖,叩頭流血。
말을 마치고 머리를 찧어 피를 흘렸다.
先主又請孔明坐於榻上,喚魯王劉永、梁王劉理近前,分付曰:
「爾等皆記朕言。
朕亡之後,爾兄弟三人,皆以父事丞相,不可怠慢.」
선주가 또 공명을 청해 용탑에 앉게 하고, 노왕 유영, 양왕 유리를 가까이 불러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짐의 말을 모두 기억하였다가, 짐이 죽은 후, 너희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아버지로 승상을 섬겨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言罷,遂命二王同拜孔明。
말을 마치자, 두 왕에게 명령하여 함께 공명에게 절하도록 하였다.
二王拜畢,孔明曰:
「臣雖肝腦塗地,安能報知遇之恩也!」
두 왕이 절하고 나자, 공명이 말하였다.
“신이 비록 肝腦塗地하더라도, 어찌 知遇之恩에 보답이 되겠습니까!”
先主謂眾官曰:
「朕已託孤於丞相,令嗣子以父事之。
卿等俱不可怠慢,以負朕望.」
선주가 관원들에게 일렀다.
“짐이 이미 승상에게 託孤하고, 자식들에게 그를 아버지로 섬기도록 하였소.
경들 모두가 태만하여 짐의 바람을 저버려서는 안 되오.”
又囑趙雲曰:
「朕與卿於患難之中,相從到今,不想於此地分別。
卿可想朕故交,早晚看覷吾子,勿負朕言.」
또 조운에게 부탁하였다.
“짐과 경은 患難之中에도 서로 따르며 지금에 이르렀는데 생각지 않게 여기서 헤어지게 되었다.
경은 짐과 오래 사귀었음을 생각하여, 아침저녁으로 내 자식을 지켜보며, 짐의 말을 저버리지 말라.”
雲泣拜曰:
「臣敢不效犬馬之勞!」
조운이 泣拜하고 말하였다.
“신이 감히 犬馬之勞를 본받지 않겠습니까?”
先主又謂眾官曰:
「卿等眾官,朕不能一一分囑,願皆自愛.」
선주가 또 관리들에게 일렀다.
“경들 모든 관원에게 짐이 일일이 나누어 부탁할 수 없으니, 원컨대 모두 自愛하시오.”
言畢,駕崩,壽六十三歲。時章武三年,夏四月二十四日也。
말을 마치고 駕崩하니 나이는 63세이고, 때는 장무 3년 여름 4월 24일이었다.
後杜工部有詩歎曰:
후에 杜工部가 시를 지어 탄식였다.
<蜀主窺吳向三峽,崩年亦在永安宮。
翠華想像空山外,玉殿虛無野寺中。
古廟杉松巢水鶴,歲時伏臘走村翁。
武侯祠屋長鄰近,一體君臣祭祀同。>
<촉주가 오를 엿보아 삼협으로 향하더니, 붕어하던 그해에도 영안궁에 있었네.
텅 빈 산 밖에서 천자의 깃발 상상해 보니, 옥전은 사라지고 들판에는 빈 사당.
옛 사당의 전나무에는 백로가 깃들고, 伏臘의 세시에는 촌옹이 달려온다.
무후사가 오래도록 가까이 있으니, 군신은 한 몸이라 하니 제사도 함께 한다.>
先主駕崩,文武官僚,無不哀痛。
선주가 붕어하자 문무관료들은 無不哀痛이었다.
孔明率眾官奉梓宮還成都。
공명은 관리들을 인솔하여 梓宮을 받들고 성도로 돌아갔다.
太子劉禪出城迎接靈柩,安於正殿之內。
태자 유선이 성을 나와 영구를 맞이하여 정전 안에 안치하였다.
舉哀行禮畢,開讀遺詔。
곡하는 예를 마치고 유조를 열어 읽었다.
詔曰:
<朕初得疾,但下痢耳;後轉生雜病,殆不自濟。
朕聞「人年五十,不稱夭壽」。
今朕年六十有餘,死復何恨?
但以汝兄弟為念耳。
勉之!勉之!
勿以惡小而為之,勿以善小而不為。
惟德可以服人;汝父德薄,不足效也。
汝與丞相從事,事之如父,勿怠!勿忘!
汝兄弟更求聞達,至囑!至囑!>
유조에 말하였다.
<짐이 처음에 병을 얻었을 때는 단지 이질이었는데, 나중에 雜病으로 전이되어 거의 치료할 수 없게 되었다.
짐이 들으니 ‘사람 나이 오십이면 夭壽이라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지금 짐의 나이 육십이 넘었으니 죽어도 다시 무엇을 한탄하겠는가?
다만 너희 형제를 생각할 뿐이다.
힘쓰고 힘쓰라!
악은 작다고 행하지 말고, 선은 작다고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오직 덕을 가진 자가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너희 아비는 덕이 엷어 본받기에 부족하다.
너희들은 승상과 종사함에 그를 섬기기를 아버지처럼 하되 태만하지 말라! 잊지 말라!
너희 형제는 다시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추구하여라. 당부한다! 간곡히 당부한다!>
群臣讀詔已畢。
신하들이 유조 읽기를 마쳤다.
孔明曰:
「國不可一日無君;請立嗣君,以承漢統.」
공명이 말하였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청컨대 嗣君(후계자, 태자)을 세워 한나라 大統을 계승하십시오.”
乃立太子禪即皇帝位,改元建興。
이에 태자 禪을 세워 황제에 즉위하게 하고 연호를 고쳐 建興이라 하였다.
加諸葛亮為武鄉侯,領益州牧。
제갈량의 작위를 더하여 武鄉侯로 삼고 益州牧을 겸하게 하였다.
葬先主於惠陵,諡曰昭烈皇帝。
선주를 惠陵에 장사 지내고, 시호를 昭烈皇帝라 하였다.
尊皇后吳氏為皇太后。
황후 오씨를 높여 황태후라 하였다.
諡甘夫人為昭烈皇后,糜夫人亦追諡為皇后。
감부인의 시호를 소열황후라 하고, 미부인 또한 시호를 추증하여 황후로 삼았다.
陞賞群臣,大赦天下。
群臣을 승진시키고 상을 내리고 천하에 大赦免을 단행하였다.
早有魏軍探知此事,報入中原。
일찌감치 魏軍이 探知此事하여 중원에 보고하였다.
近臣奏知魏主。
近臣이 魏主에게 아뢰었다.
曹丕大喜曰:
「劉備已亡,朕無憂矣。
何不乘其國中無主,起兵伐之?」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유비가 이미 죽었으니 짐은 근심이 없어졌다.
어찌 그 나라에 임금이 없는 틈을 타서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지 않겠는가?”
賈詡諫曰:
「劉備雖亡,必託孤於諸葛亮。
亮感備知遇之恩,必傾心竭力,扶持嗣主。
陛下不可倉卒伐之.」
가후가 간하여 말하였다.
“유비가 비록 죽었으나 틀림없이 제갈량에게 託孤하였을 터입니다.
제갈량은 유비의 知遇之恩에 감동하여 틀림없이 傾心竭力하여 後繼한 임금을 보필할 터입니다.
폐하께서 倉卒伐之는 不可합니다.”
正言間,忽一人從班部中奮然而出曰:
「不乘此時進兵,更待何時?」
한창 말하고 있는데 문득 한 사람이 반열에서 분연히 나와 말하였다.
“이런 때를 타서 진군하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眾視之,乃司馬懿也。
사람들이 보니 바로 사마의였다.
丕大喜,遂問計於懿。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사마의에게 계책을 물었다.
懿曰:
「若只起中國之兵,急難取勝。
須用五路大兵,四面夾攻,令諸葛亮首尾不能救應,然後可圖.」
사마의가 말하였다.
“중원의 군사만을 일으키면 急難取勝입니다.
반드시 五路의 大兵을 써서 사방에서 협공하여 제갈량의 首尾가 救應하지 못하게 한 후에 도모해야 합니다.”
丕問何五路。
조비가 무엇이 五路인지 물었다.
懿曰:
「可修書一封,差使往遼東鮮卑國,見國王軻比能,賂以金帛,令起遼西羌兵十萬,先從旱路取西平關:
此一路也。
再修書遣使齎官誥賞賜,直入南蠻,見蠻王孟獲,令起兵十萬攻打益州、永昌、牂牁、越雋四郡,以擊西川之南:
此二路也。
再遣使入吳修好,許以割地,令孫權起兵十萬,攻兩川峽口,徑取涪城:
此三路也。
又可差使至降將孟達處,起上庸兵十萬,西攻漢中:
此四路也。
然後命大將軍曹真為大都督,提兵十萬,由京兆徑出陽平關取西川:
此五路也。
共大兵五十萬,五路並進。
諸葛亮便有呂望之才,安能當此乎?」
사마의가 말하였다.
“글 한 통을 써서 사자를 遼東 鮮卑國에 보내어 國王 軻比能을 만나서 金帛을 뇌물로 주고, 遼西의 羌兵 10만을 일으켜 먼저 육로를 따라 西平關을 공격하게 합니다. 이것이 1로입니다.
또 글을 써서 사자에게 官誥와 賞賜를 가지고 곧장 南蠻으로 들어가 蠻王 孟獲을 만나서, 군사 10만을 일으켜 익주, 영창, 장가, 월준 4郡을 치게 하여 서천의 남쪽을 공격합니다. 이것이 2로입니다.
다시 사자를 오나라에 보내어, 우호를 맺고 割地를 허락하여, 손권에게 10만의 군사를 일으켜 兩川峽口를 공격하고 곧장 涪城을 취하게 합니다. 이것이 삼로입니다.
또 사자를 降將 맹달에게 보내 上庸兵 10만을 일으켜 서쪽으로 漢中을 공격하게 합니다. 이것이 4로입니다.
그런 후 대장군 曹真을 대도독으로 삼아 군사 10만을 이끌고 京兆로부터 곧장 양평관으로 나가서 서천을 공격하게 합니다. 이것이 5로입니다.
도합 大兵 50萬이 五路로 나란히 진군합니다.
제갈량이 呂望之才가 있다 한들 어찌 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丕大喜,隨即密遣能言官四員為使前去;又命曹真為大都督,領兵十萬,徑取陽平關。
조비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비밀리에 能言官 네 명을 사자로 삼아 가게 하였다. 또 조진을 대도독으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빠른 길로 양평관을 공격하게 하였다.
此時張遼等一班舊將,皆封列侯,俱在冀、徐、青及合淝等處,據守關津隘口,故不復調用。
이때 장요 등 한 무리의 옛장수들은 모두 列侯에 봉해져 冀州, 徐州, 青州와 合淝 等處에 있으면서 關津과 隘口를 據守하였기 때문에 다시 調用되지 못하였다.
卻說
蜀漢後主劉禪,自即位以來,舊臣多有病亡者,不能細說。
각설하고
촉한은 후주 유선이 즉위한 이래, 옛 신하들에 병들어 죽은 자가 많아 자세히 말할 수 없다.
凡一應朝廷選法錢糧詞訟等事,皆聽諸葛丞相裁處。
무릇 조정의 모든 選法(관리를 선발하는 법), 錢糧(재정), 詞訟(소송) 등의 일은 모두 제갈승상의 재가를 듣고 처리하였다.
時後主未立皇后。
이때 후주는 아직 황후를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孔明與群臣上言曰:
「故車騎將軍張飛之女甚賢,年十七歲,可納為正宮皇后.」
공명과 群臣들이 아뢰었다.
“故 거기장군 장비의 딸이 매우 어질고, 나이가 17세인데, 들여서 정궁의 황후로 삼을만합니다.”
後主即納之。
후주가 곧 받아들였다.
建興元年秋八月,忽有邊報說:
「魏調五路大兵,來取西川:
第一路,曹真為大都督,起兵十萬,取陽平關;第二路,乃反將孟達,起上庸兵十萬,犯漢中;第三路,乃東吳孫權,起精兵十萬,取峽口入川;第四路,乃蠻王孟獲,起蠻兵十萬,犯益州四郡;第五路,乃番王軻比能,起羌兵十萬,犯西平關,此五路軍馬,甚是利害。
已先報知丞相,丞相不知為何 數日不出視事.」
건흥 원년 가을 팔월 갑자기 변경의 보고가 있었는데 말하기를,
“위나라가 五路大兵을 동원하여 서천을 취하려 합니다.
제 1로는 조진이 대도독이 되어 군사 10만을 일으켜 양평관을 취하려 하고,
제 2로는 反將 맹달이 上庸兵 10만을 일으켜 한중을 범하려 하고,
제 3로는 동오 손권이 精兵 10만을 일으켜 峽口를 취하여 入川하려 하고,
제 4로는 만왕 맹획이 蠻兵 10만을 일으켜 익주 4郡을 범하려 하고,
제 5로는 번왕 가비능이 羌兵 10만을 일으켜 서평관을 범하려 합니다.
이 오로의 군마는 극심한 재난입니다.
이미 먼저 승상께 보고하였으나, 승상께서도 어떻게 할 줄 알지 못하여, 數日동안 일을 보러 나오지 않습니다.”
後主聽罷大驚,即差近侍齎旨,宣召孔明入朝。
후주가 듣고 나서 깜짝 놀라서, 즉시 近侍에게 명령서를 가지고 가서 공명을 불러 入朝하도록 하였다.
使命去了半日,回報:
「丞相府下人言,丞相染病不出.」
使命이 간 지 한나절 만에 돌아와 보고하였다.
“승상부 사람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병이 들어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後主轉慌。
후주가 더욱 당황하였다.
次日,又命黃門侍郎董允、諫議大夫杜瓊,去丞相臥榻前,告此大事。
다음 날 또다시 黃門侍郎 董允, 諫議大夫 杜瓊에게 승상이 누워있는 침상에 가서 이 큰일을 알리게 하였다.
董、杜二人,到丞相府前,皆不得入。
동윤과 두경 두 사람이 승상부 앞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갈 수 없었다.
杜瓊曰:
「先帝託孤於丞相,今主上初登寶位,被曹丕五路兵犯境,軍情至急,丞相何故推病不出?」
두경이 말하였다.
“선제께서 승상께 託孤하시어 지금 주상께서 처음 보위에 올랐는데, 조비의 五路兵이 국경을 침범함을 당하여 군사의 정세가 지극히 급합니다. 승상께서는 무슨 이유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습니까?”
良久,門吏傳丞相令,言:
「病體稍可,明早出都堂議事.」
한참 지나서 門吏가 승상의 명령을 전하였다.
“병든 몸이 조금 나아졌으니 내일 일찍 도당에 나가 일을 의논하겠습니다.”
董、杜二人歎息而回。
동윤과 두경 두 사람이 탄식하며 돌아갔다.
次日,眾官又來丞相府前伺候。
다음 날 관리들이 또다시 승상부 앞에 가서 동정을 보며 기다렸다.
從早至晚,又不見出。
아침부터 저녁이 되어도 또한 나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多官惶惶,只得散去。
관리들이 불안해하며 흩어져 갈 뿐이었다.
杜瓊入奏後主曰:
「請陛下聖駕,親往丞相府問計.」
두경이 들어가서 후주에게 아뢰었다.
“청컨대 폐하의 聖駕가 직접 승상부에 가서 계책을 물으십시오.”
後主即引多官入宮,啟奏皇太后。
후주가 곧 많은 관리를 이끌고 궁에 들어가서 황태후에게 알렸다,
太后大驚曰:
「丞相何故如此?
有負先帝委託之意也!
我當自往.」
태후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승상이 무슨 이유로 이렇게 하는가?
선제의 委託을 저버리는 뜻이 있단 말인가!
내가 마땅히 직접 갈 터이다.”
董允奏曰:
「娘娘未可輕往。
臣料丞相必有高明之見。
且待主上先往。
如果怠慢,請娘娘於太廟中,召丞相問之未遲.」
동윤이 아뢰었다.
“娘娘께서는 가벼이 가서는 안 됩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승상께 틀림없이 고명한 견해가 있을 터입니다.
우선 주상께서 먼저 가기를 기다려서, 만약 과연 태만하다면 낭낭께서 태묘에서 승상을 불러 물어보아도 늦지 않겠습니다.”
太后依奏。
태후가 上奏에 따랐다.
次日,後主車駕親至相府。
다음 날 후주가 직접 수레를 타고 승상부에 이르렀다.
門吏見駕到,慌忙拜伏於地而迎。
문리는 임금의 수레가 이름을 보고 황급히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맞이하였다.
後主問曰:
「丞相在何處?」
후주가 물었다.
“승상은 어디에 있는가?”
門吏曰:
「不知在何處。
只有丞相鈞旨,教擋住百官,勿得輒入.」
문리가 말하였다.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승상의 지시가 있으니 백관을 막고 들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後主乃下車步行,獨進第三重門,見孔明獨倚竹杖,在小池邊觀魚。
후주가 이에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홀로 삼중의 문으로 나아가니, 공명이 홀로 죽장을 짚고 작은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보고 있음이 보였다.
後主在後立久,乃徐徐而言曰:
「丞相安樂否?」
후주가 뒤에 오래 서 있다가 이에 천천히 말하였다.
“승상은 편안하셨습니까?”
孔明回顧,見是後主,慌忙棄杖,拜伏於地曰:
「臣該萬死!」
공명이 돌아보다가 후주임을 알고는 황급히 지팡이를 버리고 땅에 절하며 엎드려 말하였다.
“신은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後主扶起,問曰:
「今曹丕分兵五路,犯境甚急,相父緣何不肯出府視事?」
후주가 부축하여 일으키며 물었다.
“지금 조비가 군사를 다섯 길로 나누어 국경을 침범하여 사세가 매우 급한데, 상보께서는 어찌하여 부를 나와 일을 보려 하지 않습니까?
孔明大笑,扶後主入內室坐定,奏曰:
「五路兵至,臣安得不知?
臣非觀魚,有所思也.」
공명이 크게 웃고는 후주를 부축하여 내실에 들어가 좌정하고 아뢰었다.
“五路兵이 이름을 신이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신은 물고기를 봄이 아니라 생각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後主曰:
「如之奈何?」
후주이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孔明曰:
「羌王軻比能,蠻王孟獲,反將孟達,魏將曹真:
此四路兵,臣已皆退去了也。
止有孫權這一路兵,臣已有退之之計,但須一能言之人為使。
因未得其人,故熟思之。
陛下何必憂乎?」
공명이 말하였다.
“강왕 가비능, 만완 맹획, 反將 맹달, 魏將 조진, 이 四路兵은 신이 이미 모두 물러가게 하였습니다.
다만 손권의 이 一路兵은 신에게 이미 물리칠 계책이 있으나, 다만 반드시 一能言之人을 사신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직 그 사람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어찌 근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後主聽罷,又驚又喜曰:
「相父果有鬼神不測之機也!
願聞退兵之策.」
후주가 듣고 나서 또한 놀라고 또한 기뻐하여 말하였다.
“相父에게는 과연 귀신이 헤아리지 못하는 능력이 있군요!
군사를 물리칠 계책을 듣고 싶습니다.”
孔明曰:
「先帝以陛下付託與臣,臣安敢旦夕怠慢?
成都眾官皆不曉兵法之妙,貴在使人不測,豈可洩漏於人?
老臣先知西番國王軻比能,引兵犯西平關;
臣料馬超積祖西川人氏,素得羌人之心,羌人以超為神威天將軍;臣已先遣一人,星夜馳檄,令馬超緊守西平關,伏四路奇兵,每日交換,以兵拒之:
此一路不必憂矣。
又南蠻孟獲兵犯四郡,臣亦飛檄遣魏延領一軍左出右入,右出左入,為疑兵之計;蠻兵惟憑勇力,其心多疑,若見疑兵,必不敢進:
此一路又不足憂矣。
又知孟達引兵出漢中;達與李嚴曾結生死之交;臣回成都時,留李嚴守永安宮;臣已作一書,只做李嚴親筆,令人送與孟達;達必然推病不出,以慢軍心:
此一路又不足憂矣。
又知曹真引兵犯陽平關;此地險峻,可以保守,臣已調趙雲引一軍守把關隘,並不出戰;曹真若見我軍不出,不久自退矣。
此四路兵俱不足憂,臣尚恐不能全保,又密調關興、張苞二將,各引兵三萬,屯於緊要之處,為各路救應。
此數處調遣之事,皆不曾經由成都,故無人知覺。
只有東吳這一路兵,未必便動:
如見四路兵勝,川中危急,必來相攻;若四路不濟,安肯動乎?
臣料孫權想曹丕三路侵吳之怨,必不肯從其言。
雖然如此,須用一舌辯之士,徑往東吳,以利害說之,則先退東吳,其四路之兵,何足憂乎?
但未得說吳之人,臣故躊躇。
何勞陛下聖駕來臨?」
공명이 말하였다.
“선제께서 폐하를 신에게 부탁하셨는데, 신이 어찌 감히 旦夕이라도 태만하겠습니까?
성도의 관리들은 모두 兵法之妙을 모르지만, 귀함은 남이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으니, 어찌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겠습니까?
노신이 먼저 西番國王 軻比能이 군사를 이끌고 서평관을 침범함을 알았습니다. 신이 헤아려 보니 마초는 積祖西川人氏으로 평소 羌人之心을 얻어 羌人이 마초를 神威天將軍이라 여깁니다. 신이 이미 먼저 한 사람에게 밤을 새워 馳檄하여 마초에게 서평관을 굳게 지키고, 사방으로 奇兵을 매복시키고, 매일 군사를 교대하여 군사로써 그들을 막게 하였습니다.
이 일로는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남만 맹획의 군사가 네 고을을 침범하므로, 신이 또한 격문을 보내어 위연으로 하여금 일군을 거느리고 왼쪽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들어오며 疑兵之計를 쓰게 했습니다. 蠻兵은 오직 勇力에 의지하되 마음에 의심이 많으니, 疑兵을 보면 틀림없이 감히 진군하지 못할 터입니다.
이 일로는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맹달이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나옴을 알고 있습니다. 맹달과 이엄은 일찍이 生死之交를 맺었습니다. 신이 성도에 돌아올 때 이엄을 남겨 영안궁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신이 이미 글 한 통을 쓰되, 이엄의 친필을 모방하여 사람을 시켜 맹달에게 보냈습니다. 맹달은 필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아 軍心이 태만해질 터입니다.
이 일로는 또한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조진이 군사를 이끌고 양평관을 침범할 줄 알았습니다. 이 땅은 험준하여 지킬만하므로, 신이 이미 조운을 뽑아 일군을 이끌고 關隘를 지키되 결코 나가 싸우지 말라 하였습니다. 조진은 우리 군사가 나오지 않음을 보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 물러갈 터입니다.
이 四路兵은 모두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그래도 보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또 비밀리에 관흥과 장포 두 장수를 뽑아 각각 3만의 군사를 이끌고 屯於緊要之處하여 各路를 위하여 救應하게 하였습니다.
此數處調遣之事는 모두 성도를 경유한 적이 없으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동오의 이 一路兵은 반드시 움직인다고는 못합니다. 만약 四路兵이 이겨서 川中의 위급을 보면 틀림없이 와서 공격할 터입니다. 만약 四路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찌 움직이려 하겠습니까?
신이 생각하건대 손권은 曹丕의 三路侵吳之怨을 생각하여 틀림없이 그의 말을 따르려 하지 않을 터입니다. 비록 이와 같지만, 반드시 한 사람의 舌辯之士를 써서 지름길로 동오에 가서 利害로써 설득하여, 먼저 동오를 물러나게 한다면, 그 四路之兵을 근심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아직 說吳之人을 얻지 못하여 신이 躊躇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수고롭게 聖駕가 오게 하였겠습니까?”
後主曰:
「太后亦欲來見相父。
今朕聞相父之言,如夢初覺,復何憂哉!」
후주가 말하였다.
“태후가 또한 와서 상보를 뵙고자 합니다.
지금 짐이 상보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꿈에서 갓 깬 것과 같습니다. 다시 무엇을 근심하리오!”
孔明與後主共飲數盃,送後主出府。
공명이 후주와 더불어 몇 잔의 술을 마시고, 후주가 승상부를 나감을 배웅하였다.
眾官皆環立於門外,見後主面有喜色。
관리들이 모두 문밖에 둘러서 있다가 후주의 얼굴에 喜色이 있음을 보았다.
後主別了孔明,上御車回朝。
후주는 공명과 헤어져 수레에 올라 조정으로 돌아갔다.
眾皆疑惑不定。
사람들이 모두 의혹하고 안정하지 못하였다.
孔明見眾官中一人, 仰天而笑,面亦有喜色。
공명이 관리 중에 한 사람을 보고, 하늘을 우러러 웃었는데 얼굴에 또한 喜色이 있었다.
孔明視之,乃義陽新野人;姓鄧名芝,字伯苗;見為戶部尚書;漢司馬鄧禹之後。
공명이 그를 보니 곧 義陽 新野人으로 姓鄧名芝로 자는 伯苗였다. 현재 戶部尚書로 漢司馬鄧禹之後였다.
孔明暗令人留住鄧芝。多官皆散。
공명이 몰래 사람을 시켜 등지를 머물게 하였고 관리들은 모두 흩어졌다.
孔明請芝到書院中,問芝曰:
「今蜀、魏、吳鼎分三國,欲討二國,一統中興,當先伐何國?」
공명이 등지를 청하여 書院에 이르자 등지에게 물었다.
“지금 촉, 위, 오가 솥발처럼 세 나라로 나뉘었는데, 두 나라를 토벌하여 통일하고 중흥하고자 한다면 먼저 어느 나라를 쳐야 하겠소?”
芝曰:
「以愚意論之,魏雖漢賊,其勢甚大,急難搖動,當徐徐緩圖。
今主上初登寶位,民心未安,當與東吳連合,結為脣齒,一洗先帝舊怨,此乃長久之計也。
未審丞相鈞意若何?」
등지가 말하였다.
“저의 뜻으로 논한다면, 위가 비록 漢賊이지만 그 세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급히 흔들어 움직이게 하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천천히 느슨하게 도모해야 합니다.
지금 주상께서 갓 寶位에 올라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니, 마땅히 동오와 연합하여 순치의 관계를 맺어서 한 번 선제의 옛 원한을 씻는 이것이 長久之計입니다. 아직 승상의 뜻이 어떠한지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孔明大笑曰:
「吾思之久矣;奈未得其人, 今日方得也!」
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그것을 생각한 지 오래되었으나, 어쩐지 그 사람을 얻지 못하였는데 오늘에야 겨우 얻었구려!”
芝曰:
「丞相欲其人何為?」
등지가 말하였다.
“승상께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도록 하겠습니까?”
孔明曰:
「吾欲使人往結東吳。
公既能明此意,必能不辱君命。
使吳之任,非公不可.」
공명이 말하였다.
“나는 사람을 동오에 보내어 동맹을 맺으려 하오.
공이 이미 이 뜻을 잘 알고 있으니, 틀림없이 君命을 욕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소.
使吳之任은 非公不可이겠소.”
芝曰:
「愚才疏智淺,恐不堪當此重任.」
등지가 말하였다.
“저는 才疏智淺하니 아마도 이 重任을 감당하지 못할 터입니다.”
孔明曰:
「吾來日奏知天子,便請伯苗一行,切勿推辭.」
공명이 말하였다.
“내가 내일 천자께 아뢰어 백묘가 한 번 가기를 청할 터이니 절대로 사양하지 마시오.”
芝應允而退。
등지가 허락하고 물러갔다.
至次日,孔明奏准後主,差鄧芝往說東吳。
다음 날이 되자, 공명은 후주에게 奏准하기를, 등지를 보내 동오를 설득하게 하였다.
芝拜辭,望東吳而來。
등지가 拜辭 동오를 향해 갔다.
正是:
吳人方見干戈息,蜀使還將玉帛通。
바로 이러하다.
吳人이 비로소 전쟁이 그치는 것을 보았는데, 蜀使가 또한 玉帛으로 交流하려 하는구나.
未知鄧芝此去若何,且看下文分解。
등지가 이번에 감이 어떠할까? 下文이 설명함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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