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三國演義(삼국연의)33회-甄氏와 郭嘉 본문
第三十三回
曹丕乘亂納甄氏, 郭嘉遺計定遼東.
제33회
曹丕가 난을 틈타서 甄氏를 얻고, 郭嘉가 계책을 남겨 遼東을 평정하다.
卻說
曹丕見二婦人啼哭,拔劍欲斬之。
각설,
조비가 두 부인이 목놓아 욺을 보고 칼을 뽑아 베려 하였다.
忽見紅光滿目,遂按劍而問曰:
「汝何人也?」
갑자기 눈에 붉은 광채를 띄더니 칼을 만지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一婦人告曰:
「妾乃袁將軍之妻劉氏也。」
한 부인이 고하였다.
“저는 袁將軍之妻 劉氏입니다.”
丕曰:
「此女何人?」
조비가 말하였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劉氏曰:
「此次男袁熙之妻甄氏也。
因熙出鎮幽州,甄氏不肯遠行,故留於此。」
유씨가 말하였다.
“이 애는 차남 袁熙之妻 甄氏입니다.
원희는 유주에 出鎮했는데 이 애가 멀리 가려 하지 않아 여기 머물고 있었습니다.”
丕拖此女近前,見披髮垢面。
조비가 그 여인을 앞으로 끌어당겨서, 풀어헤친 머리와 때 묻은 얼굴을 보았다.
丕以衫袖拭其面而觀之,見甄氏玉肌花貌,有傾國之色。
조비가 옷소매로 그 얼굴을 닦고 살펴보니, 견씨는 살결이 옥 같고 얼굴이 꽃 같아 傾國의의 미모를 갖고 있었다.
遂對劉氏曰:
「吾乃曹丞相之子也。
願保汝家。汝勿憂慮。」
그리하여 유씨에게 말하였다.
“나는 조승상의 아들이다.
너희 집안을 지켜줄 테니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遂按劍坐於堂上。
칼을 매만지며 대청마루에 앉았다.
卻說
曹操統領眾將,入冀州城。
한편,
조조가 장수들을 거느리고 기주성에 들어갔다.
將入城門,許攸縱馬近前,以鞭指城門而呼操曰:
「阿瞞,汝不得我,安得入此門?」
막 성문을 들어가려는데 허유가 말을 내달려 가까이 와서 채찍으로 성문을 가리키며 조조를 불렀다.
“阿瞞! 그대가 나를 얻지 못했으면 어찌 이 문을 들어갈 수 있었겠나?”
操大笑。
조조가 크게 웃었다.
眾將聞言,俱懷不平。
장수들이 말을 듣고 모두 못마땅하게 여겼다.
操至紹府門下,問曰:
「誰曾入此門來?」
조조가 紹府의 문앞에 와서 물었다.
“누가 이 문으로 들어간 적이 있느냐?”
守將對曰:
「世子在內。」
지키던 장수가 대답하였다.
“세자께서 안에 계십니다.”
操喚出責之。
조조가 불러내어 꾸짖었다.
劉氏出拜曰:
「非世子不能保全妾家.
願獻甄氏為世子執箕帚。」
유씨가 나와 절하며 말하였다.
“세자가 아니시면 소첩의 집안을 보전할 수 없습니다.
원컨데 견씨를 바치오니 세자를 위하여 箕帚를 잡게 하십시오.”
操教喚出甄氏拜於前。
조조가 견씨를 불러내어 앞에서 절하게 했다.
操視之曰:
「真吾兒婦也!」
조조가 보더니 말하였다.
“참으로 내 아들의 아내감이로다!”
遂令曹丕納之。
이어 조비가 처로 맞게 했다.
操既定冀州,親往袁紹墓下設祭,再拜而哭,甚哀,顧謂眾官曰:
「昔日吾與本初共起兵時,本初問我曰:
若事不輯,方面何所可據?』
吾問之曰:
『足下意欲若何?』
本初曰:
『吾南據河北,阻燕、代,兼沙漠之眾,南向以爭天下,庶可以濟乎?』
吾答曰:
『吾任天下之智力,以道御之,無所不可。』
此言如昨,而今本初已喪,吾不能不為流涕也!」
조조가 기주를 평정하고 나서, 몸소 원소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베풀어 두 번 절하고 곡하기를 매우 슬프게 하고,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지난날 내가 본초와 함께 군사를 일으켰을 때 본초가 내게 묻기를,
‘만약 일이 어그러지면 어디로 가서 근거지로 삼아야 하겠소?’ 하기에
내가 묻기를,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하니,
본초가 말하기를,
‘내가 남쪽으로 하북에 웅거하고, 연(燕)과 대(代) 지역이 막아주도록 하고, 사막의 무리를 兼倂하여 남으로 향하여 천하를 다투면 거의 성공하지 않겠소?’라고 했소.
내가 답하기를,
‘나는 천하의 지혜롭고 勇力있는 인재들을 임명하여 도(道)로써 거느리면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터이오.’라고 했소.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게 어제 같은데 지금 본초가 이미 죽고 없으니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소!”
眾皆歎息。
모두가 탄식했다.
操以金帛糧米賜紹妻劉氏。
조조가 金帛과 糧米를 원소의 처 유씨에게 하사했다.
乃下令曰:
「河北居民遭兵革之難,盡免今年租賦。」
조조가 명을 내렸다.
“하북 주민들이 兵革之難을 만났으니 今年의 세금 부과는 모두 면제하시오.”
一面寫表申朝;操自領冀州牧。
한편으로 표를 써서 조정에 알렸다. 조조는 스스로 기주목을 맡았다.
一日,許褚走馬入東門,正迎許攸,攸喚褚曰:
「汝等無我,安能出入此門乎?」
하루는 허저가 말을 달려 동문으로 들어오는데 허유와 마주쳤는데 허유가 허저를 불러 말하였다.
“너희에게 내가 없었으면 어찌 이 문을 출입하겠느냐?”
褚怒曰:
「吾等千生萬死,身冒血戰,奪得城池,汝安敢誇口!」
허저가 노하여 말하였다
“우리가 千生萬死하고 身冒血戰하여 奪得城池인데 네 어찌 감히 과장하여 입을 놀리느냐!”
攸罵曰:
「汝等皆匹夫耳,何足道哉!」
허유가 욕했다.
“너희들 모두 필부일 뿐인데, 말할 가치가 있느냐!”
褚大怒,拔劍殺攸,提頭來見曹操,說許攸如此無禮,某殺之矣。
허저가 크게 노하여 칼을 뽑아 허유를 죽이고 머리를 들고 조조에게 와서 설명하기를,
‘허유가 여차히 무례하기에 제가 그를 죽였습니다.’라고 하였다.
操曰:
「子遠與吾舊交,故相戲耳,何故殺之?」
조조가 말하였다.
“자원(허유의 자)은 나와 오래 사귀어서, 농담했을 뿐인데 어째서 죽였느냐?”
深責許褚,令厚葬許攸。
허저를 심하게 책망하고, 명령하여 허유를 후하게 장사지내게 했다.
乃令人遍訪冀州賢士。
사람을 널리 보내어 기주의 賢士를 찾게 했다.
冀民曰:
「騎都尉崔琰,字季珪,清河東武城人也。
數曾獻計於袁紹,紹不從,因此託疾在家。」
기주의 주민이 말하였다.
“騎都尉 崔琰은 자가 季珪이고 清河군의 東武城人입니다.
여러 차례 원소에게 獻計한 적이 있으나 원소가 따르지 않아서, 託疾在家입니다.”
操即召琰為本州別駕從事,因謂曰:
「昨按本州戶籍,共計三十萬眾,可謂大州。」
조조가 즉시 최염을 불러 기주의 別駕從事로 삼고 말하였다.
“어제 本州戶籍을 살펴보니 모두 합쳐 30만이라 큰 고을이라 할 만하구려.”
琰曰:
「今天下分崩,九州幅裂,二袁兄弟相爭,冀民暴骨原野.
丞相不急存問風俗,救其塗炭,而先計校戶籍,豈本州士女所望於明公哉?」
최염이 말하였다.
“지금 천하가 갈라지고 무너져서 9주가 찢어졌으며, 원씨 형제 두 사람이 서로 싸워서 기주 주민이 뼈를 들판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승상께서 存問風俗과 救其塗炭을 시급히 하지 않고, 먼저 計校戶籍하시니 어찌 本州士女의 所望於明公이겠습니까?”
操聞言,改容謝之,待為上賓。
조조가 말을 듣고 改容謝之하고 上賓으로 대우했다.
操已定冀州,使人探袁譚消息。
조조가 기주를 평정하고 나서 사람을 보내 원담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時譚引兵劫掠甘陵、安平、渤海、河間等處,聞袁尚敗走中山,乃統軍攻之。
그때 원담은 군사를 이끌고 甘陵、安平、渤海、河間 等處를 약탈하다가, 원상이 중산으로 패주함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그를 공격했다.
尚無心戰鬥,逕奔幽州投袁熙。
원상이 싸울 뜻이 없어 곧장 유주로 달아나 원희에게 의탁했다.
譚盡降其眾,欲復圖冀州。
원담이 그 병력을 모조리 항복시켜 다시 기주를 도모하려 했다.
操使人召之,譚不至。
조조가 사람을 시켜 불러도 원담은 오지 않았다.
操大怒,馳書絕其婚,自統大軍征之, 直抵平原。
조조가 크게 노하여 급히 글을 전해 파혼하고, 몸소 대군을 이끌고 정벌하려 곧장 평원에 닿았다.
譚聞操自統軍來,遣人求救於劉表。
원담은 조조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유표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表請玄德商議。
유표가 현덕을 청하여 상의하였다
玄德曰:
「今操已破冀州,兵勢正盛,袁氏兄弟不久必為操擒,救之無益;
況操常有窺荊、襄之意,我只養兵自守,未可妄動。」
현덕이 말하였다.
“지금 조조가 이미 기주를 깨뜨려서 군세가 한창 강성하여 원씨 형제는 머잖아 틀림없이 조조에게 잡힐 테니 구원함은 無益합니다.
더구나 조조는 늘 형주와 양양을 엿보는 뜻을 갖고 있으니, 우리는 다만 병력을 기르며 자신을 지켜야지 아직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됩니다.”
表曰:
「然則何以謝之?」
유표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절해야겠소?”
玄德曰:
「可作書與袁氏兄弟,以和解為名,婉詞謝之。
현덕이 말하였다.
“글을 써서 원씨 형제에게 보내어, 화해함을 명분으로 삼아 완곡히 거절하십시오.”
表然其言,先遣人以書遺譚。
유표가 그렇다고 여겨, 먼저 사람을 보내 글을 원담에게 전했다.
書略曰:
君子違難,不適讎國。
日前聞君屈膝降曹,則是忘先人之讎,棄手足之誼,而遺同盟之恥矣 。
若「冀州」不弟,當降心相從。
待事定之後,使天下平其曲直,不亦高義耶?
글은 대략 이렇다.
<군자는 피난하더라도 원수의 나라에는 가지 않소.
일전에 듣자니 그대가 무릎을 꿇어 조조에게 항복하였다는데, 이것은 先人之讎를 잊고 手足之誼를 버린 채 同盟之恥를 남긴 것이오.
기주의 아우가 공손치 않아도 마땅히 마음을 접고 상종해야 하오.
일이 안정된 후를 기다려서, 천하 사람들이 그 曲直을 가리게 함이 역시 高尙한 義氣가 아니겠소?>
又與袁尚書曰:
「青州」天性峭急,迷於曲直。
君當先除曹操,以卒先公之恨。事定之後,乃計曲直,不亦善乎?
若迷而不返,則是韓盧、東郭自困於前,而遺田父之獲也。
또 원상에게 글을 보내어 일렀다
<청주(청주에 근거했던 원담)는 천성이 괴팍한데다 성급하여 是非曲直에 어둡소.
그대는 마땅히 먼저 조조를 없애서 돌아가신 선친의 한을 풀어야 하오.
일이 안정된 뒤에 시비곡직을 따짐이 역시 좋지 않겠소?
만약 미혹되어 돌이키지 않으면, 이것은 한로(사나운 개)와 동곽(빠른 토끼)이 스스로 지쳐서, 농부가 획득하는 일을 남기는 것이오.>
譚得表書,知表無發兵之意;又自料不能敵操;遂棄平原,走保南皮。
원담이 유표의 서신을 받고 유표에게 發兵之意가 없음을 알아차렸고, 또한 스스로 생각하여도 조조를 대적할 수 없어서, 마침내 평원을 버리고 달아나서 南皮를 지켰다.
曹操追至南皮,時天氣寒肅,河道盡凍,糧船不能行動。
조조가 추격하여 남피에 이르니, 그때 날씨가 매우 추워서 물길이 모두 얼어붙어 糧船이 움직일 수 없었다.
操令本處百姓敲冰拽船,百姓聞令而逃。
조조가 그곳 백성들을 시켜 얼음을 깨고 배를 끌게 하니 백성들이 명령을 듣고 달아났다.
操大怒,欲捕斬之。
조조가 크게 노해 그들을 잡아 죽이려 했다.
百姓聞得,乃親往營中投首。
백성들이 듣고 군영으로 찾아가서 자수했다.
操曰:
「若不殺汝等,則吾號令不行;若殺汝等,吾又不忍;
汝等快往山中逃避,休被我軍士擒獲。」
조조가 말하였다.
“너희를 죽이지 않자니 내 명령을 이행하지 않음이고, 너희를 죽이자니 또한 차마 못 하겠다.
너희는 속히 산속으로 가서 도피하되 우리 군사들에게 잡히지 말라.”
百姓皆垂淚而去。
백성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
袁譚引兵出城,與曹軍相敵。
원담이 병력을 이끌고 성을 나와 조조 군대와 맞섰다.
兩陣對圓,操出馬以鞭指譚而罵曰:
「吾厚待汝,汝何生異心?」
양쪽이 진을 치자, 조조가 말을 타고 나가 채찍으로 원담을 가리키며 꾸짖었다.
“내가 너를 후하게 대우했거늘 네가 어찌 異心을 먹었느냐?”
譚曰:
「汝犯吾境界,奪吾城池,賴吾妻子,反說我有異心耶?」
원담이 말하였다.
“네가 우리 경계를 침범하여 내 城池을 빼앗고 내 처자에게 억지를 부려놓고, 도리어 나더러 다른 마음을 먹었다고 말하느냐?”
操大怒,使徐晃出馬。
조조가 크게 노하여 서황에게 출전하게 했다.
譚使彭安接戰。
원담은 彭安이 접전케 했다.
兩馬相交,不數合,晃斬彭安於馬下。
둘이 맞붙어 몇 합이 안 되어서 서황이 팽안을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譚軍敗走,退入南皮。
원담의 군대가 패주하여 물러나 남피성으로 들어갔다.
操遣軍四面圍住。
조조가 군사를 보내어 사방을 에워쌌다.
譚著慌,使辛評見操約降。
원담이 당황하여, 신평에게 조조를 뵙고 항복을 약속하게 했다.
操曰:
「袁譚小子,反覆無常,吾難准信。
汝弟辛毗,吾已重用,汝亦留此可也。」
조조가 말하였다.
“원담 어린 놈이 反覆無常하여 내가 믿기 어렵소.
그대의 아우 신비를 내 이미 중용했으니 그대 역시 여기에 머무는 게 좋겠소.”
評曰:
「丞相差矣。
某聞主貴臣榮,主憂臣辱。
某久事袁氏,豈可背之?」
신평이 말하였다.
“승상께서 틀렸습니다.
제가 듣자니 주군이 귀해지면 신하는 영화를 누리고, 주군에게 우환이 있으면 신하는 치욕을 당한다고 합니다.
제가 원씨를 오래 섬겼는데, 어찌 그를 배반하겠습니까?”
操知其不可留,乃遣回。
조조는 그를 머물게 하지 못할 줄 알고 돌려보냈다.
評回見譚,言操不准投降。
신평이 돌아가 원담을 만나서 조조가 투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譚叱曰:
「汝弟現事曹操,汝懷二心耶?」
원담이 꾸짖었다.
“네 아우가 지금 조조를 섬기니 너도 두 마음을 품었느냐?”
評聞言,氣滿填胸,昏絕於地。
신평이 말을 듣고 기가 차고 가슴이 답답하여 혼절해 바닥에 쓰러졌다.
譚令扶出,須臾而死。
원담이 그를 부축해 나가게 했으나 잠시 뒤에 죽었다.
譚亦悔之。
원담도 뉘우쳤다.
郭圖謂譚曰:
「來日盡驅百姓當先,以軍繼其後,與曹操決一死戰。」
곽도가 원담에게 말하였다.
“내일 백성들을 모두 몰아 앞세우고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르게 하여, 조조와 한바탕 죽기로 싸워야 하겠습니다.”
譚從其言。
원담이 그 말을 따랐다.
當夜盡驅南皮百姓,皆執刀鎗聽令。
그날 밤 남피 백성들을 모두 몰아세우고 창칼을 쥐게 하고 명령을 따르게 했다.
次日平明,大開四門,軍在後,驅百姓在前,喊聲大舉,一齊擁出,直抵曹寨。
이튿날 해뜰 무렵 네 개의 성문을 활짝 열고 군사들은 뒤에서 백성들을 앞세우고 몰아가며 함성을 크게 지르며 일제히 몰려나가 곧장 조조 영채에 닿았다.
兩軍混戰, 自辰至午,勝負未分,殺人遍地。
양쪽 군대가 혼전하여 진시에서 오시가 되었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고 사람을 죽여 땅을 뒤덮었다.
操見未獲全勝,乘馬上山,親自擊鼓。
조조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자 말을 타고 산에 올라 몸소 북을 쳤다.
將士見之,奮力向前。
將士가 그것을 보고 힘을 떨쳐 전진했다.
譚軍大敗,百姓被殺者無數。
원담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죽은 백성을 헤아릴 수 없었다.
曹洪奮威突陣,正迎袁譚,舉刀亂砍,譚竟被曹洪殺於陣中。
조홍이 위세를 떨쳐 돌진하여, 바로 원담을 마주쳐 칼을 들어 마구 찍으니, 원담은 마침내 진중에서 조홍에게 살해당했다.
郭圖見陣大亂,急馳入城中。
곽도는 진세가 크게 어지러움을 보고 급히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樂進望見,拈弓搭箭,射下城壕,人馬俱陷。
악진이 멀리서 바라보고 활을 들고 화살을 메겨 쏘아 맞히니, 성 밖 해자에 사람과 말이 함께 빠졌다.
操引兵入南皮,安撫百姓。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남피로 들어가 백성을 위무했다.
忽有一彪軍來到,乃袁熙部將焦觸、張南也。
갑자기 한 무리 군마가 도착하는데 바로 원희의 부하 장수인 焦觸、張南이었다.
操自引軍迎之。
조조가 몸소 군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맞이했다.
二將倒戈卸甲,特來投降。
두 장수가 무기를 거꾸로 잡고 갑옷을 벗은 채 특별히 찾아와서 투항했다.
操封為列侯。
조조가 그들을 열후에 봉했다.
又黑山賊張燕,引軍十萬來降,操封為平北將軍。
또한 흑산적 장연이 군사 10만을 이끌고 와서 투항하니 조조가 그를 平北將軍 봉했다.
下令將袁譚首級號令,敢有哭者斬。
원담의 수급을 호령하고, 감히 곡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하라고 명했다.
頭挂北門外。
머리가 북문 밖에 걸렸다.
一人布冠衰衣,哭於頭下。
한 사람이 베로 만든 관을 쓰고 상복을 입고 머리 아래에서 곡을 했다.
左右拏來見操。
측근이 붙잡아서 조조에게 끌고 갔다.
操問之,乃青州別駕王修也.
조조가 물으니 바로 청주 별가 왕수였다.
因諫袁譚被逐,今知譚死,故來哭之。
원담에게 간언하다가 쫓겨났는데 지금 원담의 죽음을 알자 와서 곡한 것이다.
操曰:
「汝知吾令否?」
조조가 말하였다.
“너는 내 명령을 아느냐?”
修曰:
「知之。」
왕수가 말하였다.
“압니다.”
操曰:
「汝不怕死耶?」
조조가 말하였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
修曰:
「我生受其辟,今亡而不哭,非義也。
畏死忘義,何以立世乎?
若得收葬譚屍,受戮無恨。」
왕수가 말하였다.
“제가 살아서 그의 부름을 받았는데 이제 죽었는데 곡하지 않으면 의리가 아닙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의리를 잊어서야 어찌 세상에 서겠습니까?
원담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낼 수 있다면, 戮屍의 형을 받아도 한이 없겠습니다.”
操曰:
「河北義士,何其如此之多也?
可惜袁氏不能用!
若能用,則吾安敢正眼覷此地哉!」
조조가 말하였다.
“하북에는 의사가 어찌 이렇게 많은가?
원씨가 쓰지 못함이 애석하구나!
기용할 수 있었으면, 내가 어찌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이 땅을 엿보았겠는가?”
遂命收葬譚屍,禮修為上賓,以為司金中郎將。
원담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게 하고 왕수를 상빈으로 예우하여 司金中郎將으로 삼았다.
因問之曰:
「今袁尚已投袁熙,取之當用何策?」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 원상이 원희에게 갔으니 그들을 취하려면 무슨 계책을 써야겠소?”
修不答。
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操曰:
「忠臣也。」
조조가 말하였다.
“충신이로다.”
問郭嘉,嘉曰:
「可使袁氏降將焦觸、張南等自攻之。」
곽가에게 묻자 곽가가 말하였다.
“원씨의 항복한 장수인 초촉과 장남에게 직접 그들을 공격하게 하십시오.”
操用其言,隨差焦觸、張南、呂曠、呂翔、馬延、張顗,各引本部兵,分三路進攻幽州;
一面使李典、樂進會合張燕,打并州,攻高幹。
조조가 그 말을 채용하여, 초촉, 장남, 여광, 여상, 마연, 장의에게 각각 휘하 병력을 이끌고 세 갈래로 유주로 진공하게 했다.
한편으로 이전, 악진에게 장연과 만나 합세하여 병주로 가서 高幹을 치게 했다.
且說
袁尚、袁熙知曹兵將至,料難迎敵,乃棄城引兵星夜奔遼西,投烏桓去了。
한편,
원상과 원희는 조조 병력이 곧 이를 것임을 알고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성을 버리고 군사를 이끌고 밤새 달려서 요서의 오환에게 의탁하러 갔다.
幽州刺史烏桓觸,聚幽州眾官,歃血為盟,共議背袁向曹之事。
유주자사 오환촉이 유주의 관리들을 모아 피를 입에 발라 맹세하여 원씨를 저버리고 조조에게로 가기를 함께 의논했다.
烏桓觸先言曰:
「吾知曹丞相當世英雄,今往投降.
有不遵令者斬。」
오환촉이 먼저 말하였다.
“내가 알기에 조승상은 當世英雄이니, 지금 그에게 투항하겠소.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참하겠소.”
依次歃血,循至別駕韓珩。
차례대로 피를 입에 발라 맹세하여 돌아서 別駕 韓珩의 차례가 되었다.
珩乃擲劍於地,大呼曰:
「吾受袁公父子厚恩,今主敗亡,智不能救,勇不能死,於義缺矣!
若北面而降操,吾不為也!」
한형이 칼을 땅에 던지며 크게 외쳤다.
“나는 袁公父子厚恩을 입어놓고, 지금 주공이 패망하는데도 智不能救이고 勇不能死이니 의리가 없는 놈이오!
그러나 북면하여 조조에게 항복하라면 나는 못 하겠소!”
眾皆失色。
모두 다 失色하였다.
烏桓觸曰:
「夫興大事,當立大義。
事之濟否,不待一人。
韓珩既有志如此,聽其自便。」
오환촉이 말하였다.
“무릇 대사를 일으키려면 마땅히 대의를 세워야 하오.
일의 성패는 한 사람에게 달린 게 아니오.
한형의 뜻이 그렇다 하니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겠소.”
推珩而出。
한형이 나갔다.
烏桓觸乃出城迎接三路軍馬,逕來降操。操大喜,加為鎮北將軍。
오환촉이 성을 나가 三路軍馬 영접하고 바로 조조에게 가서 투항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여 鎮北將軍을 더해주었다.
忽探馬來報:
「樂進、李典、張燕攻打并州,高幹守住壺口關,不能下。」
홀연 探馬가 와서 보고했다.
“악진, 이전, 장연이 병주를 쳤으나 고간이 壺口關을 지켜 함락할 수 없다고 합니다.”
操自勒兵前往。
조조가 몸소 군사를 이끌고 전진했다.
三將接著說:
「幹拒關難擊。」
세 장수가 맞아 설명하였다.
“고간이 관문을 막고 있어서 공격하기가 어렵습니다.”
操集眾將共議破幹之計。
조조가 장수들을 모아 고간을 깰 계책을 함께 논의했다.
荀攸曰:
「若破幹,須用詐降計方可。」
순유가 말하였다.
“고간을 깨뜨리려면 반드시 詐降計를 써야 가능합니다.”
操然之。
조조가 그렇다고 여겼다.
喚降將呂曠、呂翔,附耳低言,如此如此。
항복한 장수 여광과 여상을 불러 附耳低言으로 여차여차 하라고 했다.
呂曠等引軍數十,直抵關下,叫曰:
「吾等原係袁氏舊將,不得已而降曹。
曹操為人詭譎,薄待吾等,吾今還扶舊主。可疾開關相納。」
여광 등이 군사 수십 명을 이끌고 관의 바로 밑에 가서 외쳤다.
“우리는 원래 원씨에게 딸린 舊將인데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항복했었소.
조조가 사람됨이 교활하고 우리를 박대하므로, 이제 우리는 다시 舊主를 떠받들려 하오.
어서 문을 열어 받아주시오.”
高幹未信,只教二將自上關說話。
고간이 믿지 못하여 두 장수에게 직접 上關하여 말하게 했다.
二將卸甲棄馬而入,謂幹曰:
「曹軍新到,可乘其軍心未定,今夜劫寨。
某等願當先。」
두 장수가 갑옷을 벗고 말에서 내린 뒤 들어와 고간에게 말하였다.
“조조 군대가 갓 도착하여 그 軍心이 안정되지 못한 틈을 타서 오늘 밤 영채를 급습하십시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幹喜從其言,是夜教二呂當先,引萬餘軍前去。
고간이 기뻐하며 그 말을 따라 그날 밤 두 여씨를 앞장서게 하고 1만여 군을 이끌고 전진했다.
將至曹寨,背後喊聲大震,伏兵四起。
조조 영채에 다다를 무렵 뒤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더니 복병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高幹知是中計,急回壺關城,樂進、李典已奪了關。
고간이 계략에 빠졌음을 깨닫고 서둘러 호관성으로 돌아갔지만, 악진과 이전이 이미 관을 빼앗은 뒤였다.
高幹奪路走脫,往投單于。
고간이 길을 앗아 달아나 선우에게 투항하러 갔다.
操領兵拒住關口,使人追襲高幹。
조조가 군사를 거느려 관 어귀를 막고 군사들에게 고간을 뒤쫓게 했다.
幹到單于界,正迎北番左賢王。
고간이 선우의 경계에 다다라 북번의 좌현왕(흉노 왕자)과 마주쳤다.
幹下馬拜伏於地,言:
「曹操吞併疆土,今欲犯王子地面.
萬乞救援,同力克復,以保北方。」
고간이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절하고 말했다.
“조조가 저희 영토를 집어삼켜 이제 왕자의 地面도 침범하려 합니다.
부디 구원을 애원하오니 힘을 모아 잃어버린 땅을 되찾음으로써 북방을 보존하십시오.”
左賢王曰:
「吾與曹操無讎,豈有侵我土地?
汝欲使我結怨於曹氏耶?」
좌현왕이 말하였다.
“나는 조조와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내 땅을 침범하겠는가?
네가 나를 조씨와 원수지게 하려는가?”
叱退高幹。
고간을 꾸짖어 내쳤다.
幹尋思無路,只得去投劉表。
고간이 아무리 생각해도 갈 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유표를 찾아가기로 했다.
行至上潞,被都尉王琰所殺,將頭解送曹操。
행로가 上潞에 이르러 都尉 王琰가 죽이고 머리를 조조에게 보냈다.
曹封琰為列侯。
조조가 王琰을 列侯에 봉했다.
并州既定,操商議西擊烏桓。
병주가 평정되자 조조는 서쪽으로 烏桓을 치기를 상의했다.
曹洪等曰:
「袁熙、袁尚兵敗將亡,勢窮力盡,遠投沙漠。
我今引兵西擊,倘劉備、劉表乘虛襲許都,我救應不及,為禍不淺矣。
請回師勿進為上。」
조홍 등이 말하였다.
“원희와 원상이 兵敗將亡하고 勢窮力盡하여 멀리 사막으로 갔습니다.
우리가 지금 군사를 이끌고 서쪽을 치는데, 혹시 유비와 유표가 틈을 타서 허도를 습격하면 우리의 구원이 미치지 못해 재앙이 얕지 않을 터입니다.
청컨대 군사를 돌리십시오. 진격하지 않음이 상책입니다.”
郭嘉曰:
「諸公所言錯矣。
主公雖威震天下,沙漠之人,恃其邊遠,必不設備;
乘其無備,卒然擊之,必可破也。
且袁紹與烏桓有恩,而尚與熙兄弟猶存,不可不除。
劉表坐談之客耳,自知才不足以御劉備.
重任之,則恐不能制;
輕任之,則備不為用。
雖虛國遠征,公無憂也。」
곽가가 말하였다.
“여러분들 말씀에 착오가 있습니다.
주공께서 비록 威震天下지만 沙漠之人은 恃其邊遠하여 틀림없이 방비하지 않았을 터입니다. 그 무방비를 틈타 갑자기 습격하면 틀림없이 깨뜨릴 수 있습니다.
또한 원소가 오환에게 은혜가 있고 원상, 원희 형제가 아직 살아있으니 不可不除입니다.
유표는 坐談之客(앉아서 담론이나 즐기는 사람)일 뿐, 스스로 자신의 재주가 유비를 거느리기에 부족함을 압니다.
그에게 중임을 맡기자니 그를 제어하지 못할까 걱정되고, 가벼운 임무를 맡기자니 유비는 쓰임새가 없습니다.
비록 虛國遠征하더라도 공께 걱정이 없겠습니다.”
操曰:
「奉孝之言極是。」
조조가 말하였다.
“봉효의 말이 극히 옳소.”
遂率大小三軍,車數千輛,望前進發。
마침내 크고 작은 삼군과 수레 수천 량을 거느리고 앞을 향해 출발했다.
但見黃沙漠漠,狂風四起 ;道路崎嶇,人馬難行。
다만 누런 모래가 막막하고, 미친 듯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길이 험준하여 人馬가 가기 어려웠다.
操有回軍之心,問於郭嘉。
조조는 회군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곽가에게 물었다.
嘉此時不伏水土,臥病車中。
곽가는 그때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병으로 수레 안에 누워 있었다.
操泣曰:
「因我欲平沙漠,使公遠涉艱辛,以至染病,吾心何安!」
조조가 울며 말하였다.
“내가 사막을 평정하려고, 그대를 멀리 힘들게 끌고 와 병에 걸리게 했으니, 내 마음이 어찌 편하겠소?”
嘉曰:
「某感丞相大恩,雖死不能報萬一。」
곽가가 말하였다.
“제가 승상의 큰 은혜에 감동하니, 雖死不能報萬一입니다.”
操曰:
「吾見北地崎嶇,意欲回軍,若何?」
조조가 말하였다.
“내가 보니 북쪽 땅이 험하여 회군하고 싶은데 어떻소?”
嘉曰:
「兵貴神速。
今千里襲人,輜重多而難以趨利,不如輕兵兼道以出,掩其不備。
但須得識徑路者為引導耳。」
곽가가 말하였다.
“용병은 귀신처럼 신속한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지금 천릿길을 가서 남을 기습하려는데, 보급이 많으므로 달려가는 데 이롭지 못하니, 가벼운 군사로 하루에 이틀 길을 가서 적의 무방비를 엄습함이 낫습니다.
다만 반드시 지름길을 잘 아는 자를 얻어서 인도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遂留郭嘉於易州養病,求鄉導官以引路。
결국 곽가를 易州에 남겨 養病하게 하고, 鄉導官 구하여 길을 인도하게 하기로 했다.
人薦袁紹舊將田疇深知此境,操召而問之。
누군가 원소의 舊將 田疇가 深知此境이라고 추천하여, 조조가 그를 불러 물었다.
疇曰:
「此道秋夏間有水,淺不通車馬,深不載舟楫,最難行動;
不如回軍,從盧龍口越白檀之險,出空虛之地,前近柳城,掩其不備,冒頓可一戰而擒也。」
전주가 말하였다.
“이쪽 길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물이 차오릅니다. 얕아도 수레와 말들이 다니지 못하고, 깊어도 배를 띄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움직이기 제일 어렵습니다.
회군하시어 노룡구를 따라 백단의 험로를 넘음이 낫습니다. 인적이 없는 곳을 나가 柳城에 가까이 가서 그 무방비를 엄습하면 묵돌(흉노의 선우)을 한번 싸워 잡을 수 있겠습니다.”
操從其言,封田疇為靖北將軍,作鄉導官為前驅。
조조가 그 말을 따라 전주를 靖北將軍에 봉하고 향도관에 앉혀 선봉이 되게 했다.
張遼為次。操自押後,倍道輕騎而進。
장요가 다음이 되고 조조는 친히 뒤를 맡아서 輕騎兵에게 속도를 배가하게 전진했다.
田疇引張遼前至白狼山,正遇袁熙、袁尚會合冒頓等數萬騎前來。
전주가 장요를 이끌어 백랑산에 다다랐을 때 마침 원희, 원상을 마주쳤는데, 묵돌 등의 수만 騎와 합세하여 오고 있었다.
張遼飛報曹操。
장요가 급히 조조에게 알렸다.
操自勒馬登高望之,見冒頓兵無隊伍,參差不整。
조조가 친히 말을 몰아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묵돌 군사들이 대오가 없이 들쭉날쭉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操謂張遼曰:
「敵兵不整,便可擊之。」
조조가 장요에게 말하였다.
“적군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니 바로 공격해야겠소.”
乃以麾授遼。
이에 대장기를 장요에게 주었다.
遼引許褚、于禁、徐晃分四路下山,奮力急攻,冒頓大亂。
장요가 허저, 우금, 서황을 이끌고 네 갈래로 나누어 산에서 내려가서 힘껏 급습하니 묵돌이 크게 혼란에 빠졌다.
遼拍馬斬冒頓於馬下,餘眾皆降。
장요가 말을 박차고 나가 묵돌을 베어 말 아래 떨어뜨리니, 나머지 무리가 모두 항복했다.
袁熙、袁尚引數千騎投遼東去了。
원희와 원상은 수천 기를 이끌고 요동으로 달아났다.
操收軍入柳城,封田疇為柳亭侯,以守柳城。
조조가 군사를 거두어 유성에 들어가서, 전주를 유정후로 봉하고 유성을 지키게 했다.
疇涕泣曰:
「某負義逃竄之人耳,蒙厚恩全活,為幸多矣;
豈可賣盧龍之寨以邀賞祿哉?
死不敢受侯爵。」
전주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저는 의리를 저버리고 달아난 사람일 뿐으로, 두터운 은혜를 입어 목숨을 보전하니 큰 다행입니다.
어찌 노룡산의 영채를 팔아 상과 녹을 받겠습니까!
죽을지언정 제후의 작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操義之,乃拜疇為議郎。
조조가 그를 의롭게 여겨 전주를 의랑으로 삼았다.
操撫慰單于人等,收得駿馬萬匹,即日回兵。
조조가 선우의 사람들을 撫慰하고 준마 1만필을 거두고 그날로 回兵했다.
時天氣寒且旱,二百里無水. 軍又乏糧,殺馬為食;鑿地三四十丈,方得水。
그때 날씨가 춥고 가물어서 2백리를 가도 물이 없었다. 게다가 군량도 떨어져 말을 잡아먹었다. 땅을 30, 40길 파야 물을 얻을 수 있었다.
操回至易州,重賞先曾諫者;因謂眾將曰:
「孤前者乘危遠征,僥倖成功。
雖得勝,天所佑也,不可以為法。
諸君之諫,乃萬安之計,是以相賞。
後勿難言。」
조조가 돌아가 역주에 이르러, 일찍이 (원정을 말리려) 간언했던 사람들을 크게 포상하고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난번에 위험을 무릅쓰고 원정해서 요행히 성공했소.
비록 이겼지만,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니 본받아서는 아니 되오.
여러분의 간언은 곧 萬全을 기하는 계책이기에 포상을 내리오.
앞으로도 말하는 것을 어려워 마시오.”
操到易州時,郭嘉已死數日,停柩在公廨。
조조가 역주에 이르렀을 때 곽가가 이미 죽은 지 며칠째라 停柩가 公廨에 안치되어 있었다.
操往祭之,大哭曰:
「奉孝死,乃天喪吾也!」
조조가 가서 제사 지내며 크게 곡하며 말하였다.
“봉효의 죽음은 하늘이 나를 죽임이오!”
回顧眾官曰:
「諸君年齒,皆孤等輩,惟奉孝最少。
吾欲託以後事。
不期中年夭折,使吾心腸崩裂矣!」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여러분의 나이는 모두 나와 동년배인데 오직 봉효가 가장 어렸소.
내가 그에게 뒷일을 맡기려 하였소.
뜻밖에 중년에 요절하니 내 가슴과 창자가 터져 갈라지는구려!”
嘉之左右,將嘉臨死所封之書呈上曰:
「郭公臨亡,親筆書此,囑曰:
丞相若從書中所言,遼東事定矣。」
곽가의 측근이 곽가가 죽음에 임해 봉했던 글을 바치며 말하였다.
“곽공께서 죽음에 임해 친히 이렇게 글을 써 맡기며 당부하기를, ‘승상께서 글에서 말한 대로 따르시면 요동의 일은 평정될 터이다.’라고 했습니다.”
操拆書視之,點頭嗟歎。
조조가 글을 뜯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諸人皆不知其意。
사람들이 모두 그 뜻을 몰랐다.
次日,夏侯惇引眾人稟曰:
「遼東太守公孫康,久不賓服。
今袁熙、袁尚又往投之,必為後患。
不如乘其未動,速往征之,遼東可得也。」
이튿날 하후돈이 사람들을 이끌고 와 아뢰었다.
“遼東太守 公孫康이 오래도록 賓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원희, 원상도 그에게 의탁하러 갔으니 틀림없이 후환이 될 터입니다.
아직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가서 정벌하면 요동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操笑曰:
「不煩諸公虎威。
數日之後,公孫康自送二袁之首至矣。」
조조가 웃으며 말하였다.
“諸公은 虎威를 번거롭게 하지 마시오.
공손강이 스스로 二袁之首를 보낼 터이오.”
諸將皆不肯信。
장수들은 모두 믿기지 않았다.
卻說
袁熙、袁尚引數千騎奔遼東。
한편,
원희와 원상이 수천 기를 이끌고 요동으로 달아났다.
遼東太守公孫康,本襄平人,武威將軍公孫度之子也。
요동태수 공손강은 본래 양평인으로 武威將軍 公孫度의 아들이다.
當日知袁熙、袁尚來投,遂聚本部屬官商議此事。
그날 원희, 원상이 투항해 옴을 알고, 본부의 관리들을 모아 그 일을 상의했다.
公孫恭曰:
「袁紹存日,常有吞遼東之心;
今袁熙、袁尚兵敗將亡, 無處依棲,來此相投,是鳩奪鵲巢之意也。
若容納之,後必相圖。
不如賺入城中殺之.
獻頭與曹公,曹公必重待我。」
공손공이 말하였다.
“원소가 살아 있을 때 늘 吞遼東之心이 가졌습니다.
지금 원희, 원상이 兵敗將亡하여 無處依棲이자 여기로 찾아온 것이니, 이것은 비둘기가 까치 집을 빼앗으려는 뜻입니다.
만약 받아들이면 뒤에 틀림없이 (우리를) 넘볼 터입니다.
그들을 속여 성안으로 불러들여 죽임이 낫습니다.
조공께 머리를 바치면 조공이 분명 우리를 소중하게 대우할 터입니다.”
康曰:
「只怕曹操引兵下遼東,又不如納二袁使為我助。」
공손강이 말하였다.
“다만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와서 요동을 함락할까 걱정되니, 차라리 원씨 형제를 받아들여 우리를 돕게 함이 낫겠소.”
恭曰:
「可使人探聽。
如曹兵來攻,則留二袁;
如其不動,則殺二袁,送與曹公。」
공손공이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探聽하십시오.
만약 조조의 병력이 공격하러 오면 원씨 형제를 머물게 하십시오.
움직이지 않으면 원씨 형제를 죽여 조조에게 보내십시오.”
康從之,使人去探消息。
공손강이 그 말을 따라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았다.
卻說
袁熙、袁尚至遼東,二人密議曰:
「遼東軍兵數萬,足可與曹操爭衡。
今暫投之,後當殺公孫康而奪其地,養成氣力而抗中原,可復河北也。」
한편,
원희, 원상이 요동에 이르러 두 사람이 은밀히 의논하였다.
“요동은 군병이 수만이니 조조와 爭衡할 만하다.
지금 잠시 몸을 맡기고 뒤에 공손강을 죽여 그 땅을 빼앗고 기력을 양성해 중원에 맞서면 하북을 되찾을 수 있을 터이다.”
商議已定,乃入見公孫康。
상의를 마치고 들어가 공손강을 만났다.
康留於館驛,只推有病,不即相見。
공손강이 역관에 머물게 하고 병을 핑계로 곧바로 만나지 않았다.
不一日,細作回報:
「曹公兵屯易州,並無下遼東之意。」
하루가 지나지 않아 세작이 돌아와 보고했다.
“조조군은 역주에 주둔하고 아울러 요동을 함락할 뜻이 없습니다.”
公孫康大喜,乃先伏刀斧手於壁衣中,使二袁入。
공손강이 크게 기뻐하여 먼저 도부수들을 벽에 친 壁衣 속에 숨겨두고 두 원씨를 들게 했다.
相見禮畢,命坐。
인사를 마치고 그들을 앉게 했다.
時天氣嚴寒,尚見床榻上無裀褥,謂康曰:
「願鋪坐席。」
그때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원상이 자리에 방석이 없음을 보고 공손강에게 말하였다.
“자리를 깔아주시오.”
康瞋目言曰:
「汝二人之頭,將行萬里!
何席之有?」
공손강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네 두 사람의 머리가 곧 만리를 떠날 터이다!
무슨 자리가 있겠느냐?”
尚大驚。
원상이 깜짝 놀랐다.
康叱曰:
「左右何不下手?」
공손강이 꾸짖었다.
“여봐라!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느냐!”
刀斧手擁出,就坐席上砍下二人之頭,用木匣盛貯. 使人送到易州,來見曹操。
도부수들이 몰려나와 앉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머리를 베어 나무상자에 넣었다. 사람을 시켜 역주에 갖고 가서 조조를 만나게 했다.
時操在易州,按兵不動。
그때 조조는 역주에서 군사를 멈춰두고 움직이지 않았다.
夏侯惇、張遼入稟曰:
「如不下遼東,可回許都;
恐劉表生心。」
하후돈과 장요가 들어와 아뢰었다.
“요동을 점령할 게 아니라면 허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표가 마음을 먹을까 걱정됩니다.”
操曰:
「待二袁首級至,即便回兵。」
조조가 말하였다.
“두 원씨의 수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즉시 회군하겠소.”
眾皆暗笑。
모두들 속으로 웃었다.
忽報遼東公孫康遣人送袁熙、袁尚首級至,眾皆大驚。
갑자기 보고하기를, 요동 공손강이 사람을 보내어 원희, 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고 하니, 모두 깜짝 놀랐다.
使者呈上書信。
사자가 서신을 바쳤다.
操大笑曰:
「不出奉孝之所料!」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봉효의 헤아림에서 벗어나지 않는구나!”
重賞來使,封公孫康為襄平侯左將軍。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襄平侯 左將軍에 봉했다.
眾官問曰:
「何為不出奉孝之所料?」
관리들이 물었다.
“어찌하여 봉효의 헤아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겁니까?”
操遂出郭嘉書以示之。
조조가 곽가의 글을 꺼내 보여 주었다.
書略曰:
<今聞袁熙、袁尚往投遼東.
明公切不可加兵。
公孫康久畏袁氏吞併,二袁往投必疑。若以兵擊之,必拚力迎敵,急不可下;
若緩之,公孫康、袁氏必自相圖,其勢然也。>
글에 대략 일렀다.
< 지금 듣자니 원희, 원상이 요동에 의탁하러 갔다 합니다.
명공께서 절대 병력을 보내지 마십시오.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가 병탄할까 걱정해 왔으니 원씨 형제가 찾아가면 필시 의심할 터입니다.
군사로써 그들을 공격하면 틀림없이 힘을 합쳐 맞설 테니 급히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느슨하게 하면 공손강과 원씨들이 분명히 서로를 도모할 터입니다. 형세가 그러합니다. >
眾皆踴躍稱善。
모두 환호하며 稱善하였다.
操引眾官復設祭於郭嘉靈前。
조조가 관리들을 이끌고 다시 곽가 영전에 제사를 올렸다.
亡年三十八歲,從征十有一年,多立奇勳。
향년 38세였는데, 종군한 지 11년이고 기이한 공훈을 많이 세웠다.
後人有詩讚曰:
후인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天生郭奉孝, 豪傑冠群英。
腹內藏經史, 胸中隱甲兵。
運謀如范蠡, 決策似陳平。
可惜身先喪, 中原梁棟傾。 >
<하늘이 곽봉효를 내니, 군웅 중에 으뜸가는 영웅이었네.
뱃속에 經史를 간직하고, 가슴에 甲兵을 숨겼네.
지모를 쓰기는 范蠡와 같고, 계책을 결단함은 陳平을 닮았네.
애석하다 몸이 먼저 죽고 없으니, 중원의 동량이 기울었구나.>
操領兵還冀州,使人先扶郭嘉靈柩於許都安葬。
조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기주로 돌아와서 사람을 시켜 먼저 곽가의 靈柩를 허도에 보내어 안장하게 했다.
程昱等請曰:
「北方既定,今還許都,可早建下江南之策。」
정욱 등이 청하였다.
“북방을 평정했으니 지금 허도로 돌아가 어서 下江南之策을 세워야 합니다.”
操笑曰:
「吾有此志久矣。諸君所言,正合吾意。」
조조가 웃으며 말하였다.
“내 그런 뜻을 가진 지 오래요.
여러분이 말한 것이 내 뜻과 꼭 맞소.”
是夜宿於冀州城東角樓上,憑欄仰觀天文。
그날 밤 기주성 동쪽 누각 위에서 묵으며, 난간에 기대어 천문을 우러러 살폈다.
時荀攸在側。
그때 순유가 옆에 있었다.
操指曰:
「南方旺氣燦然,恐未可圖也。」
조조가 가리키며 말하였다.
“남쪽에 왕성한 기운이 찬란해서 아직 도모해서는 안 될까 걱정되오.”
攸曰:
「以丞相天威,何所不服?」
순유가 말하였다.
“승상의 하늘 같은 위엄으로 어디인들 복종시키지 못하겠습니까?”
正看間,忽見一道金光,從地而起。
보고 있는 사이에 문득 한줄기 금빛이 땅에서 솟아났다.
攸曰:
「此必有寶於地下。」
순유가 말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지하에 보물이 있음입니다.”
操下樓令人隨光掘之。
조조가 누각을 내려가 사람들에게 그 빛을 따라 땅을 파게 명령했다.
正是:
<星文方向南中指,金寶旋從北地生。>
상황이 이렇다.
<별자리는 지금 남쪽을 가리키는데, 황금보물은 돌아 돌아 북쪽 땅에서 생기는구나.>
不知所得何物,且聽下文分解。
무슨 물건을 얻게 될까? 다음 回의 설명을 또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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