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삼국연의107회-司馬氏와 姜維 본문
一百零七回
魏主政歸司馬氏, 姜維兵敗牛頭山.
제107회
魏主가 司馬氏에게 정무를 맡기고, 姜維가 牛頭山에서 패전하다.
卻說
司馬懿聞曹爽同弟曹羲、曹訓、曹彥並心腹何晏、鄧颺、丁謐、畢軌、李勝等,及御林軍,隨魏主曹芳,出城謁明帝墓,就去畋獵。
한편,
사마의가 들으니, 조상이 그의 아우 조희, 조훈, 조언과 아울러 심복 하안, 등양, 정밀, 필범, 이승 등과 어림군을 이끌고, 魏主 조방을 수행하여 성 밖으로 나가서 명제의 묘로 가서 사냥한다고 하였다.
懿大喜,即到省中,令司徒高柔,假以節鉞行大將軍事,先據曹爽營;又令太僕王觀行中領軍事,據曹羲營。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省中으로 가서 司徒 高柔에게 명하여 임시로 節鉞을 주어서 대장군의 일을 맡기고 먼저 조상의 군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또 太僕 王觀에게 中領軍의 일을 맡겨 조희의 군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懿引舊官入後宮奏郭太后,言爽背先帝託孤之恩,奸邪亂國,其罪當廢。
사마의가 옛 관리들을 이끌고 후궁으로 들어가서 곽태후에게 아뢰기를, 조상이 先帝託孤之恩을 저버리고 간사한 무리가 나라를 어지럽히니, 그 죄가 廢黜에 해당하였다고 하였다.
郭太后大驚曰:
「天子在外,如之奈何?」
곽 태후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천자께서 바깥에 계신데 어찌해야겠소?”
懿曰:
「臣有奏天子之表,誅奸臣之計,太后勿憂.」
사마의가 말하였다.
“신에게 奏天子之表와 誅奸臣之計가 있사오니 태후께서 심려하지 마소서.”
太后懼怕,只得從之。
태후가 두려워서 그 말을 따를 뿐이었다.
懿急令太尉蔣濟、尚書令司馬孚,一同寫表,遣黃門齎出城外,徑至帝前申奏。
사마의가 太尉 蔣濟와 尚書令 司馬孚를 시켜 함께 표를 쓰게 하고 황문에게 표를 주어 성을 나가서 곧장 황제를 찾아가 申奏하게 하였다.
懿自引大軍據武庫。
사마의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武庫를 점거하였다.
早有人報知曹爽家。
재빨리 누군가 조상의 집에 알렸다.
其妻劉氏急出廳前,喚守府官問曰:
「今主公在外,仲達起兵何意?」
처 유씨가 급히 대청으로 나가서 守府官을 불러서 물었다.
“이제 주공이 바깥에 있는데 중달이 군대를 일으킴은 무슨 속셈이오?”
守門將潘舉曰:
「夫人勿驚,我去問來.」
守門將 潘舉 말하였다.
“부인께서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乃引弓弩手數十人,登門樓望之。
이에 궁노수 수십 인을 이끌고 門樓를 올라가서 바라보았다.
正見司馬懿引兵過府前,舉令人亂箭射下,懿不得過。
마침 사마의가 군사을 이끌고 府前을 지나가려 하였다. 반거가 사람들에게 명령해서 쇠뇌와 활을 쏘아대니, 사마의가 지나갈 수 없었다.
偏將孫謙在後止之曰:
「太傅為國家大事,休得放箭.」
偏將 孫謙이 뒤에서 제지하였다.
“태부께서 국가대사를 행하니 활을 쏘지 마시오.”
連止三次,舉方不射。
잇달아 세 차례 제지하니 반거가 비로소 사격을 멈추었다.
司馬昭護父司馬懿而過,引兵出城屯於洛河,守住浮橋。
사마소가 부친 사마의를 호위해 통과하더니 군을 이끌고 성을 나가서 洛河에 주둔하고 부교를 장악하였다.
且說
曹爽手下司馬魯芝,見城中事變,來與參軍辛敞商議曰:
「今仲達如此變亂,將如之何?」
한편,
조상의 手下이고 司馬인 魯芝가 성안의 사변을 보고 參軍 辛敞에게 가서 상의하였다.
“이제 중달이 이렇게 변란을 일으키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소?”
敞曰:
「可引本部兵出城去見天子.」
신창이 말하였다.
“本部兵을 이끌고 성을 나가서 천자를 뵈어야 하겠소.”
芝然其言。
노지가 그 말을 옳다고 여겼다.
敞急入後堂。其姊辛憲英見之,問曰:
「汝有何事,慌速如此?」
신창이 후당으로 급히 들어가니, 그의 누나 辛憲英이 그를 보고 물었다.
“네게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황급히 서두르냐?”
敞告曰:
「天子在外,太傅閉了城門,必將謀逆.」
신창이 고하였다.
“천자께서 밖에 계신데 태부가 성문을 폐쇄하니, 틀림없이 謀逆하는 것입니다.”
憲英曰:
「司馬公未必謀逆,特欲殺曹將軍耳.」
辛憲英이 말하였다.
“사마공이 꼭 역모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 장군을 죽이려 할뿐이다.”
敞驚曰:
「此事未知如何?」
신창이 놀라서 말하였다.
“이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憲英曰:
「曹將軍非司馬公之對手,必然敗矣.」
헌영이 말하였다.
“조장군은 司馬公之對手가 아니니 틀림없이 패할 것이다.”
敞曰:
「那日司馬教我同去,未知可去否?」
신창이 말하였다.
“司馬(魯芝)가 나더러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가야 할까요?”
憲英曰:
「職守,人之大義也。
凡人在難,猶或恤之。執鞭而棄其事,不祥莫大焉.」
헌영이 말하였다.
“직무를 지킴은 人之大義이다.
凡人이 재난에 처하여도 그를 구해야 하거늘, 사람을 모시면서 그의 일을 버려둔다면, 그것보다 상서롭지 않은 일은 없을 터이다.”
敞從其言,乃與魯芝引數十騎,斬關奪門而出。
신창이 그 말을 따라, 노지와 더불어 수십 기를 이끌고 斬關奪門하여 나갔다.
人報知司馬懿。
누군가 사마의에게 알린다.
懿恐桓範亦走,急令人召之。
사마의가 환범도 달아날까 염려하여 급히 사람을 시켜 그를 불렀다.
範與其子商議。其子曰:
「車駕在外,不如南出.」
환범이 그 아들과 상의하니, 그의 아들이 말하였다.
“車駕가 바깥에 있으니 남쪽으로 나감이 낫겠습니다.”
範從其言,乃上馬至平昌門,城門已閉,把門將乃桓範舊吏司蕃也。
환범이 그 말을 따라, 말을 타고 평창문에 가니 성문이 이미 닫혀 있는데, 문장은 바로 환범의 옛 부하 司蕃이었다.
範袖中取出一竹版曰:
「太后有詔,可即開門.」
환범이 소매에서 죽판을 하나 꺼내며 말하였다.
“태후의 조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문을 열게.”
司蕃曰:
「請詔驗之.」
사번이 말하였다.
“조서를 검사해보겠습니다.”
範叱曰:
「汝是吾故吏,何敢如此!」
환범이 꾸짖었다.
“너는 내 옛 부하였거늘 어찌 감히 이러하냐!”
司蕃只得開門放出。
사번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내보냈다.
範出至城外,喚司蕃曰:
「太傅造反,汝可速隨我去。」
환범이 성 밖으로 나와서 사번을 불러서 말하였다.
“태부가 造反하니 너도 속히 나를 따라가자.”
蕃大驚,追之不及。
사번이 깜짝 놀라서 잡으려고 뒤쫓았지만 미치지 못하였다.
人報知司馬懿。
懿大驚曰:
「智囊洩矣!
如之奈何?」
누군가 사마의에게 알리니 사마의가 깜짝 놀랐다.
“智囊이 빠져나갔다!
어찌할까?”
蔣濟曰:
「駑馬戀棧豆,必不能用也.」
장제가 말하였다.
“駑馬戀棧豆( 노둔한 말이 우리의 콩만 생각함)라고 했으니, 틀림업이 그를 쓰지 못할 터입니다.”
懿乃召許允、陳泰曰:
「汝去見曹爽,說太傅別無他事,只是削汝兄弟兵權而已.」
사마의가 이에 許允과 陳泰를 불러서 말하였다.
“너희가 曹爽을 만나서 태부에게 다른 뜻은 없고, 다만 그대 형제의 병권을 박탈하려 할뿐이라고 말하라.”
許、陳二人去了。
허, 진 두 사람이 떠났다.
又召殿中校尉尹大目至;
또 殿中校尉 尹大目을 부르니 왔다.
令蔣濟作書,與目持去見爽。
장제에게 글을 쓰게 하고 윤대목에게 주어 조상을 만나러 가게 하였다.
懿分付曰:
「汝與爽厚,可領此任。
汝見爽說吾與蔣濟指洛水為誓,只因兵權之事,別無他意.」
사마의가 분부하였다.
“그대가 조상과 친분이 두터우니 이 임무를 맡아야겠소.
조상을 만나거든, 나와 장제가 낙수를 가리켜 맹세하며 병권을 장악하려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 하였다고 전하시오.”
尹大目依令而去。
윤대목이 명령대로 떠났다.
卻說
曹爽正飛鷹走犬之際,忽報城內有變,太傅有表。
한편,
조상이 매를 날리고 사냥개를 달리게 하는 참에 보고하기를, 성안에 변고가 일어나고 태부가 표를 올렸다고 하였다.
爽大驚,幾乎落馬。
조상이 깜짝 놀라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다.
黃門官捧表跪於天子之前。
황문의 관리가 표를 받들고 천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爽接表,拆封令近臣讀之。
조상이 표를 받아서 뜯은 뒤 근신에게 읽게 하였다.
表略曰:
표의 내용이 대략 이러하였다.
<征西大都督太傅臣司馬懿,誠惶誠恐,頓首謹表:
臣昔從遼東還,先帝詔陛下與秦王及臣等,升御床,把臣臂,深以後事為念。
今大將軍曹爽,背棄顧命,敗亂國典;內則僭擬,外專威權;
以黃門張當為都監,專共交關;看察至尊,伺候神器;離間二宮,傷害骨肉;天下洶洶,人懷危懼:
此非先帝詔陛下及囑臣之本意也。
臣雖朽邁,敢忘往言?
太尉臣濟、尚書臣孚等,皆以爽為有無君之心,兄弟不宜典兵宿衛,奏永寧宮皇太后,令敕臣表奏施行。
臣輒敕主者及黃門令,罷爽、羲、訓吏兵,以候就第,不得逗留,以稽車駕;
敢有稽留,便以軍法從事。
臣輒力疾將兵,屯於洛水浮橋,伺察非常。
謹此上聞,伏干聖聽。>
<정서대도독 태부 신 사마의는 참으로 황공하옵게도 고개 숙여 삼가 표를 올리나이다.
신이 지난날 요동에서 돌아오자 선제께서 조서를 내려, 폐하와 진왕과 신 등을 함께 御床으로 부르고, 신의 팔을 잡고 후사를 깊이 근심하셨습니다.
이제 대장군 조상이 顧命을 저버리고 國典을 敗亂(혼란)시키니, 안으로 僭擬하고 밖으로 위세와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황문 장당을 도감으로 임명하고 함께 결탁하여, 至尊을 감시하고 神器를 노렸습니다. 二宮을 이간하고 골육을 해쳤습니다. 천하가 흉흉하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선제께서 폐하에게 말씀하시고 신들에게 부탁한 本意가 아닙니다.
신이 비록 노쇠할지언정 어찌 감히 지난 말씀을 잊겠습니까?
태위 신 장제, 상서 신 사마부 등은 모두 조상에게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형제가 병권을 쥐고 금군을 지휘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영녕궁의 황태후께 아뢰니 신이 상주한 대로 시행하게 하셨습니다.
신이 즉시 主者와 黃門令에 명하여, 조상, 조희, 조훈의 병권을 빼앗고 직위에서 파면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립니다. 거가를 멈추거나 가로막아서는 안 되니, 감히 지체되게 하였다면 군법대로 다스릴 것입니다.
신이 즉시 將兵을 신속히 움직여서 낙수의 부교에 주둔해 非常을 정찰하고 있습니다.
삼가 이렇게 아뢰며, 폐하의 聖聽을 어지럽힙니다.>
魏主曹芳聽畢,乃喚曹爽曰:
「太傅之言若此,卿如何裁處?」
위주 조방이 듣고 나서 조상을 불러 말하였다.
“太傅之言이 이러한데 경은 어떻게 裁處하겠소?”
爽手足失措,回顧二弟曰:
「為之奈何?」
조상이 손발을 가누지 못하고, 두 아우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겠느냐?”
羲曰:
「劣弟亦曾諫兄,兄執迷不聽,致有今日。
司馬懿譎詐無比,孔明尚不能勝,況我兄弟乎?
不如自縛見之,以免一死.」
조희가 말하였다.
“이 못난 아우도 일찍이 형님에게 간했지만, 형님이 고집을 부리며 듣지 않아서 오늘이 있게 됐소.
사마의는 속임수가 비할 데 없어 공명도 그를 이기지 못했거늘, 하물며 우리 형제이겠소?
스스로 결박하여 그를 만나 죽음을 면함이 낫겠소.”
言未畢,參軍辛敞、司馬魯芝到。爽問之。二人告曰:
「城中把得鐵桶相似,太傅引兵屯於洛水浮橋,勢將不可復歸,宜早定大計.」
말이 미처 끝나지 않았는데 참군 신창과 사마 노지가 온다. 조상이 물으니 두 사람이 고하였다.
“성을 철통처럼 장악하고 태부가 군사을 이끌고 낙수의 부교에 주둔했으니, 형세상 복귀해서는 안 됩니다. 어서 大計를 정하십시오.”
正言間,司農桓範驟馬而至,謂爽曰:
「太傅已變,將軍何不請天子幸許都,調外兵以討司馬懿耶?」
말하는 참에, 사농 환범이 말을 달려서 오더니 조상에게 말하였다.
“태부가 이미 변란을 일으켰는데 장군께서 어찌 천자께 청하여 허도로 모시고 調外兵하여 사마의를 토벌하지 않으십니까?”
爽曰:
「吾等全家皆在城中,豈可投他處求援?」
조상이 말하였다.
“우리들의 가족이 모두 성안에 있는데 어찌 다른 곳으로 가서 구원을 청할 수 있겠소?”
範曰:
「匹夫臨難,尚欲望活!
今主公身隨天子,號令天下,誰敢不應?
豈可自投死地乎?」
환범이 말하였다.
“필부도 위난에 임하면 살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공은 천자를 수행하여 천하를 호령하는데 누가 감히 응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려 하십니까?”
爽聞言不決,惟流涕而已。
조상이 말을 듣고도 결단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範又曰:
「此去許都,不過半宿。
城中糧草,足支數載。
今主公別營軍馬,近在闕南,呼之即至。
大司馬之印,某將在此。
主公可急行,遲則休矣!」
환범이 다시 말하였다.
“이제라도 허도로 가면 半夜을 넘지 않습니다.
성안의 糧草도 넉넉히 몇 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지금 주공의 別營軍馬가 가까이 闕南에 있으니 부르면 즉시 올 터입니다.
대사마의 印綬도 제가 가져왔습니다.
주공께서 서둘러 가십시오. 늦으면 끝장입니다.”
爽曰:
「多官勿太催逼,待吾細細思之.」
조상이 말하였다.
“여럿이 너무 재촉하지 마시오. 내가 세세하게 생각하도록 기다려 주시오.”
少頃,侍中許允、尚書令陳泰至。二人告曰:
「太傅只為將軍權重,不過要削去兵權,別無他意。
將軍可早歸城中.」
조금 있자 시중 허윤, 상서령 진태가 와서 고하였다.
“태부께서 단지 장군의 권한이 지나치다고 여겨서, 병권을 빼앗으려 함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장군께서 어서 성으로 돌아가십시오.”
爽默然不語。
조상이 침묵하며 말이 없었다.
又只見殿中校尉尹大目至。目曰:
「太傅指洛水為誓,並無他意。
有蔣太尉書在此。
將軍可削去兵權,早歸相府.」
전중교위 윤대목도 와서 말하였다.
“태부께서 낙수를 가리켜 맹세하며, 참으로 다른 뜻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장태위의 서신이 여기 있습니다.
장군은 병권을 내놓으시고, 어서 相府로 돌아가십시오.”
爽信為良言。桓範又告曰:
「事急矣,休聽外言而就死地!」
조상이 이를 믿고 좋은 말이라 여기니, 환범이 다시 고하였다.
“사세가 급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사지로 가지 마십시오!”
是夜曹爽意不能決,乃拔劍在手,嗟歎尋思;
이날 밤, 조상이 뜻을 결정하지 못해서 검을 뽑아 손에 쥐고 탄식하며 깊이 생각하였다.
自黃昏直流涕到曉,終是狐疑不定。
황혼부터 줄곧 눈물을 흘려 새벽이 되어도, 끝내 여우처럼 의심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桓範入帳催之曰:
「主公思慮一晝夜,何尚不能決?」
환범이 장막으로 들어와서 재촉하였다.
“주공께서 하루 밤낮으로 생각하셨는데 어찌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십니까?”
爽擲劍而歎曰:
「我不起兵,情願棄官,但為富家翁足矣!」
조상이 검을 내던지며 탄식하였다.
“나는 군대를 일으키지 않겠소. 바라건대 관직을 버리고 다만 富家翁이 된다면 만족하겠소!”
範大哭,出帳曰:
「曹子丹以智謀自矜,今兄弟三人,真豚犢耳!」
환범이 크게 통곡하고 장막을 나가며 말하였다.
“조자단은 지모를 自矜했는데 지금의 형제 세 사람은 돼지새끼나 송아지일 따름이구나!”
痛哭不已。
통곡해 마지않는다.
許允、陳泰令爽先納印綬與司馬懿。
허윤과 진태가 조상더러 먼저 印綬를 사마의에게 바치라고 하였다.
爽先將印送去。
조상이 먼저 인수를 보내려 하였다,
主簿楊綜扯住印綬而哭曰:
「主公今日捨兵權自縛去降,不免東市受戮也.」
주부 楊綜이 인수를 붙잡고 곡하며 말하였다.
“주공께서 오늘 병권을 버리고 스스로 몸을 묶어 항복하시면, 東市에서 受戮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爽曰:
「太傅必不失信於我.」
조상이 말하였다.
“태부께서 틀림없이 나에게 失信하지 않을 터이오.”
於是曹爽將印綬與許、陳二人,先齎與司馬懿。
이에 조상이 인수를 허윤, 진태 두 사람에게 주어 먼저 사마의에게 보냈다.
眾軍見無將印,盡皆四散。
병사들이 조상에게 將印이 없음을 보고 모조리 사방으로 흩어졌다.
爽手下只有數騎官僚。
조상의 수하는 겨우 몇 騎의 관료뿐이었다.
到浮橋時,懿傳令,教曹爽兄弟三人,且回私宅。
부교에 이르자 사마의가 명령을 전하여, 조상 형제 세 사람을 우선 사택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餘皆發監,聽候敕旨。
나머지 모두는 투옥하고, 敕旨를 기다리게 하였다.
爽等入城時,並無一人侍從。
조상등이 입성하는데 시종이 한 사람도 없었다.
桓範至浮橋邊,懿在馬上以鞭指之曰:
「桓大夫何故如此?」
환범이 부교 주변에 이르자, 사마의가 말 위에서 채찍을 들어 가리키며 말하였다.
“환대부가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이 됐소?”
範低頭不語,入城而去。
환범이 고개를 떨구고, 아무말도 못하고 성에 들어갔다.
於是司馬懿請駕拔營入洛陽。
이에 사마의가 천자에게 청하여, 군영을 거두고 낙양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曹爽兄弟三人回家之後,懿用大鎖鎖門,令居民八百人圍守其宅。
조상 형제 세 사람이 귀가한 뒤 사마의가 큰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居民 8백 인에게 그 집을 에워싸고 지키게 하였다.
曹爽心中憂悶。
조상이 마음 속으로 걱정하고 고민하였다.
羲謂爽曰:
「今家中乏糧,兄可作書與太傅借糧。
如肯以糧借我,必無相害之心.」
조희가 조상에게 말하였다.
“이제 집안의 양식이 떨어지니 형님이 글을 써서 태부에게 양식을 빌리십시오.
그가 기꺼이 양식을 빌려준다면 틀림없이 우리를 해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爽乃作書令人持去。
조상이 이에 글을 써서 사람에게 쥐어서 보냈다.
司馬懿覽書,遂遣人送糧一百斛,運至曹爽府內。
사마의가 글을 읽더니 곧 사람들을 시켜 양식 1백 斛( 1곡은 열 말 )을 보내, 조상의 府內로 운반하였다.
爽大喜曰:
「司馬公本無害我之心也.」
조상이 크게 기뻐하였다.
“사마공은 害我之心이 본래 없구나!”
遂不以為憂。
마침내 걱정하지 않았다.
原來司馬懿先將黃門張當捉下獄中問罪。當曰:
「非我一人,更有何晏、鄧颺、李勝、畢軌、丁謐等五人,同謀篡逆.」
알고 보니, 사마의가 먼저 황문 장당을 붙잡아 옥중에서 죄를 물으니, 장당이 말하였다.
“저 한 사람이 아니라, 하안, 등양, 이승, 필범, 정밀 등 다섯 사람이 함께 篡逆을 모의했습니다.”
懿取了張當供詞,卻捉何晏等勘問明白,皆稱三月間欲反。
사마의가 장당의 자백을 받아낸 뒤, 하안 등을 잡아들여 명백하게 심문하니, 모두가 3개월 사이에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고 말하였다.
懿用長枷釘了。
사마의가 그들에게 큰 칼을 채웠다.
城門守將司蕃,告稱桓範矯詔出城,口稱太傅謀反。
城門守將 司蕃이 환범을 고발하기를, 조서를 위조해 성을 나가며 태부가 모반하였다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懿曰:
「誣人反情,抵罪反坐.」
사마의가 말하였다.
“남을 무고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니,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오.”
亦將桓範等皆下獄,然後押爽兄弟三人并一干人犯,皆斬於市曹,滅其三族;
환범을 비롯한 사람들도 모두 하옥한 뒤, 조상 형제와 아울러 一干人犯을 市曹에서 모두 처형하고, 그 삼족을 멸하였다.
其家產財物,盡抄入庫。
그들의 가산과 재물을 모조리 빼앗아 곳간에 넣었다.
時有曹爽從弟文叔之妻,乃夏侯令女也,早寡而無子。
당시 조상의 從弟 조문숙의 처는 바로 하후령의 딸인데 일찍 과부가 되어 자식이 없다.
其父欲改嫁之。
그 부친이 개가시키려 하였다.
女截耳自誓。
딸이 귀를 잘라 맹세하며 거부하였다.
及爽被誅,其父復將嫁之,女又斷去其鼻。
이윽고 조상이 처형되자 그 부친이 다시 개가시키려 하는데, 딸이 또 자신의 코를 잘랐다.
其家驚惶,謂之曰:
「人生世間,如輕塵棲弱草,何至自苦如此?
且夫家又被司馬氏誅戮已盡,守此欲誰為哉?」
그 가족이 놀라고 당황해, 그 딸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세간에 살아감이 힘없는 풀잎에 붙은 가벼운 티끌 같거늘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냐?
또 남편의 가문도 사마씨에게 주륙을 당하여 없어졌는데, 이렇게 수절함은 누구를 위함이냐?”
女泣曰:
「吾聞:
『仁者不以盛衰改節,義者不以存亡易心。』
曹氏盛時,尚欲保終;況今滅亡,何忍棄之?
此禽獸之行,吾豈為乎!」
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제가 듣기에, 어진 사람은 성쇠에 따라 절개를 고치지 않으며, 의로운 사람은 존망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 씨가 번성할 때도 끝까지 지키려 했는데, 하물며 이제 멸망하였다고 어찌 차마 버리겠습니까?
그것은 禽獸之行이니 제가 어찌 행하겠습니까?”
懿聞而賢之,聽使乞子自養,為曹氏後。
사마의가 듣고 그 여인을 어질다고 여기고, 아들을 입양해 조씨의 후손으로 삼겠다는 청을 허락하였다.
後人有詩曰:
후인이 시를 지었다.
<弱草微塵盡達觀,夏侯有女義如山。
丈夫不及裙釵節,自顧鬚眉亦汗顏。>
<풀잎의 먼지 같다고 모두 체념하거늘, 하후 씨의 딸은 의롭기가 태산 같네
대장부도 여인의 절개에 미치지 못하니, 스스로 수염을 돌아보며 식은 땀 흘리네.>
卻說
司馬懿斬了曹爽,太尉蔣濟曰:
「尚有魯芝、辛敞斬關奪門而出,楊綜奪印不與,皆不可縱.」
한편,
사마의가 조상을 참하자 태위 장제가 말하였다.
“일찍이 노지와 신창은 관문의 수비병을 죽이고 달아났으며, 양종은 인수를 탈취해 주지 않았으니 모두 풀어주면 안 됩니다.”
懿曰:
「彼各為其主,乃義人也.」
사마의가 말하였다.
“그들 모두 각자 주군을 위하니 義人이오.”
遂復各人舊職。
곧 각자에게 옛 직위에 복직하게 하였다.
辛敞歎曰:
「吾若不問於姊,失大義矣!」
신창이 탄식하였다.
“내가 누님께 묻지 않았으면 참으로 대의를 그르칠 뻔했구나!”
後人有詩贊辛憲英曰:
후인이 시를 지어 신헌영을 기렸다.
<為臣食祿當思報,事主臨危合盡忠。
辛氏憲英曾勸弟,故令千載頌高風。>
<신하로서 식록을 받으면 보은해야 하고, 주군을 섬기다 위난에 처하면 충성을 다해야 하네.
신씨 헌영이 일찍이 동생에게 권하니, 고금 천년이 지나도 드높은 기풍을 칭송하네>
司馬懿饒了辛敞等,仍出榜曉諭:
但有曹爽門下一應人等,盡皆免死;
사마의가 신창 등을 용서하고 出榜曉諭하였다. 또한 조상의 문하에 있던 일체의 사람이 모두 죽음을 면하였다.
有官者照舊復職;軍民各守家業。內外安堵。
관직에 있던 이 들도 원래대로 복직하였다. 軍民이 각기 가업을 지키고 내외가 안도하였다.
何、鄧二人死於非命,果應管輅之言。
하안과 등양 두 사람은 비명에 죽으니 과연 관로의 예언이 징험되었다.
後人有詩讚管輅曰: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관로를 기렸다.
<傳得聖賢真妙訣,平原管輅相通神。
鬼幽鬼躁分何鄧,未喪先知是死人。>
<듣자니 성현들은 참으로 비결을 가졌다더니, 평원의 관로는 신령과 통했네
귀유와 귀조로 하안과 등양을 분별하여,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은 사람임을 먼저 알았네.>
卻說
魏主曹芳封司馬懿為丞相,加九錫。
한편,
위주 조방은 사마의를 승상으로 봉하고 구석의 지위를 더하였다.
懿固辭不肯受。
사마의가 固辭하며 받으려 하지 않았다.
芳不准,令父子三人同領國事。
조방이 허락하지 않고 父子三人이 함께 국사를 다스리도록 하였다.
懿忽然想起曹爽全家雖誅,尚有夏侯霸守備雍州等處,係爽親族,倘驟然作亂,如何隄備,必當處置;
사마의가 문득 想起하였다.
‘비록 曹爽의 全家를 모두 주살하였으나 아직도 하후패가 옹주 等地를 수비하고 있다. 조상과 연계된 친족이 만약 驟然히 作亂하면 어찌 방비하겠는가? 반드시 대처해야겠구나.”
即下詔遣使往雍州,取征西將軍夏侯霸赴洛陽議事。
즉시 조서를 내려 사자를 옹주로 보내어, 정서장군 하후패를 의논할 일이 있다고 낙양으로 오게 하였다.
夏侯霸聽知,大驚,便引本部三千兵造反。
하후패가 이를 듣고 깜짝 놀라 곧 本部三千兵을 이끌고 造反하였다.
有鎮守雍州刺史郭淮,聽知夏侯霸反,即率本部兵來,與夏侯霸交戰。
옹주를 鎮守하는 자사 곽회가 하후패의 반란을 듣고, 즉시 本部兵을 이끌고 와서 하후패와 교전하였다.
淮出馬大罵曰:
「汝既是大魏皇族,天子又不曾虧汝,何故背反?」
곽회가 말을 타고 나와서 크게 꾸짖었다.
“너는 대위의 황족으로서 천자께서도 너를 버리지 않으셨거늘 무슨 까닭으로 배반하느냐?”
霸亦罵曰:
「吾祖父於國家多建勳勞,今司馬懿何等人,滅吾曹氏宗族,又來取我,早晚必思篡位。
吾仗義討賊,何反之有?」
하후패도 욕하였다.
“나의 조부와 부친은 국가에 공훈을 많이 세우셨지만, 이제 사마의는 어떤 사람이기에 우리 曹氏宗族을 멸하고 또 나를 죽이려 하느냐? 조만간 틀림없이 篡位하려는 것이다.
내가 仗義討賊하는데, 무슨 반란이 있겠느냐?”
淮大怒,挺鎗驟馬,直取夏侯霸。
곽회가 크게 노해 창을 꼬나쥐고 곧바로 하후패에게 달려들었다.
霸揮刀縱馬來迎。
하후패도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맞섰다.
戰不十合,淮敗走,霸隨後趕來。
싸움이 십 합이 되지 않아 곽회가 패주하니 하후패가 뒤쫓았다.
忽聽得後軍吶喊,霸急回馬時,陳泰引兵殺來。
갑자기 후군에서 함성이 들리는지라 하후패가 급히 말을 돌리니 진태가 군을 이끌고 달려왔다.
郭淮復回。
곽회가 되돌아왔다.
兩路夾攻,霸大敗而走,折兵大半;
양로에서 협공하니 하후패가 대패해 달아나서 병력 태반을 잃었다.
尋思無計,遂投漢中來降後主。
깊이 생각해도 아무런 계책이 없자 마침내 한중으로 달아나서 후주에게 투항하였다.
有人報與姜維,維心不信,令人體訪得實,方教入城。
누군가 강유에게 보고하니 강유가 마음속으로 믿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직접 실상을 살피게 한 뒤에야, 성으로 들어오게 지시하였다.
霸拜見畢,哭告前事。
하후패가 인사를 마치고 哭告前事하였다.
維曰:
「昔微子去周,成萬古之名。
公能匡扶漢室,無愧古人也.」
강유가 말하였다.
“옛날에 微子가 주나라로 가서 만고에 이름을 전하게 됐소.
공께서 능히 漢室을 바로잡아 세운다면,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오.”
遂設宴相待。
곧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維就席問曰:
「今司馬懿父子掌握重權,有窺我國之志否?」
강유가 연회 자리에서 물었다.
“이제 사마의 부자가 掌握重權했으니 窺我國之志이 있겠소?”
霸曰:
「老賊方圖謀逆,未暇及外。
但魏國新有二人,正在妙齡之際。
若使領兵馬,實吳、蜀之大患也.」
“老賊이 이제 막 謀逆하여, 아직은 나라 밖까지 미치지 않을 터이오.
그러나 위나라에 새로 나타난 두 사람이 있는데 이제 한창 묘령의 나이요.
만약 그들이 병마를 지휘하면 참으로 오와 촉의 큰 우환이 될 터이오.”
維問:
「二人是誰?」
강유가 물었다.
“그 두 사람이 누구요?”
霸告曰:
「一人見為秘書郎,乃潁川長社人;姓鍾,名會,字士季;太傅鍾繇之子;幼有膽智。
繇嘗率二子見文帝。
會時年七歲,其兄毓年八歲。
毓見帝惶懼,汗流滿面。
帝問毓曰:
『卿何以汗?』
毓對曰:
『戰戰惶惶,汗出如漿。』
帝問會曰:
『卿何以不汗?』
會對曰:
『戰戰慄慄,汗不敢出。』
魏帝奇之。
及稍長,喜讀兵書,深明韜略。
司馬懿與蔣濟皆稱其才。
一人見為掾吏,乃義陽人也;姓鄧,名艾,字士載。
幼年失父,素有大志。
但見高山大澤,輒窺度指畫,何處可以屯兵,何處可以積糧,何處可以埋伏。
人皆笑之,獨司馬懿奇其才,遂令參贊軍機。
艾為人口吃,每奏事必稱『艾,艾』。
懿戲謂曰:
『卿稱艾艾,當有幾艾?』
艾應聲曰:
『鳳兮鳳兮,故是一鳳。』
其資性敏捷,大抵如此。
二人深可畏也.」
하후패가 고하였다.
“1인은 현재 秘書郎인데 潁川 長社人으로 姓은 鍾,名은 會,字는 士季입니다. 태부 종요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담력과 지혜를 갖추었소.
종요가 일찍이 두 아들을 데리고 문제를 알현한 적이 있소.
그때 종회가 일곱 살이고 그 형 종육은 여덟 살이었소.
종육이 황제를 뵙자 두려워서, 식은땀이 얼굴 가득 흘렀소.
문제가 종육에게, ‘경은 어째서 땀을 흘리는가?’하고 물으니,
종육이 말하기를, ‘벌벌 떨리며 두려워서 땀이 마치 국물처럼 나옵니다.’라고 답했소.
문제가 종회에게, ‘경은 어째서 땀을 흘리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종회가 말하기를, ‘벌벌 떨리고 오싹한지라 땀이 감히 나오지 못합니다.’라고 답했소.
문제가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겼소.
이윽고 조금 자라자 병서를 읽기를 즐겨 도략을 깊이 깨우쳤소.
사마의와 장제 모두 그 재능을 칭찬했소.
또 1인은 현재 관직이 掾吏이고 義陽人으로 姓은 鄧,名은 艾,字는 士載입니다.
幼年失父이나 素有大志이었습니다.
高山大澤을 보기만 하면 문득 마음속으로 계책을 세우고 손으로 가리키며, 何處可以屯兵과 何處可以積糧과 何處可以埋伏을 말하곤 했소.
사람들 모두 그를 비웃었으나 사마의만은 그 재능을 기특하다 여기더니 마침내 군기를 돕도록 하였소.
등애는 그 사람됨이 말을 더듬어서 매번 사무를 아뢸 때마다 ‘애, 애’ 소리를 내곤 하였소.
사마의가 농담으로, ‘경이 애, 애, 라고 말하는데 대체 등애가 몇이나 있는 것이오?’라고 물으니,
등애가 應聲하여 말하기를, ‘봉이여, 봉이여, 말하여도 봉은 한 마리인 것과 같습니다.’라고 답했소.
그 자질이 민첩한 것이 대저 이와 같소.
두 사람은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오.”
維笑曰:
「量此孺子,何足道哉!」
강유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깟 젖먹이들이야 어찌 족히 언급하겠소!”
於是姜維引夏侯霸至成都,入見後主。
이에 강유가 하후패를 데리고 성도로 가서 후주를 알현하였다.
維奏曰:
「司馬懿謀殺曹爽,又來賺夏侯霸,霸因此投降。
目今司馬懿父子專權,曹芳懦弱,魏國將危。
臣在漢中有年,兵精糧足;
臣願領王師,即以霸為鄉導官,進取中原,重興漢室,以報陛下之恩,以終丞相之志.」
강유가 상주하였다.
“사마의가 조상을 모살하고 하후패를 속이니 하후패가 이 때문에 투항했습니다.
目今 사마의 부자가 專權하고 조방이 懦弱하니 위나라가 위태로워질 터입니다.
신이 한중에 수년을 머물러 兵精糧足입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王師를 거느리고 즉시 하후패를 鄉導官으로 삼아 중원을 취하고 漢室을 중흥함으로써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고 승상의 유지를 계승하겠나이다.”
尚書令費褘諫曰:
「近者,蔣琬、董允,皆相繼而亡,內治無人。
伯約只宜待時,不宜輕動.」
상서령 비위가 간언하였다.
“근자에 장완과 동윤이 잇달아 세상을 떠서 내치를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백약은 시기를 기다려야지 가볍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維曰:
「不然;
人生如白駒過隙,似此遷延歲月,何日恢復中原乎?」
강유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白駒過隙과 같은데 이렇게 세월을 遷延하면 언제 중원을 恢復하겠습니까?”
褘又曰:
「孫子云:
『知彼知己,百戰百勝。』
我等皆不如丞相遠甚,丞相尚不能恢復中原,何況我等?」
비위가 다시 말하였다.
“손자가 말하기를 ‘知彼知己,百戰百勝’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승상만 못하기가 한참 떨어지는데, 승상도 중원을 회복한 적이 없거늘,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維曰:
「吾久居隴上,深知羌人之心;今若結羌人為援,雖未能克復中原,自隴而西,可斷而有也.」
강유가 말하였다.
“내가 농상에 오래 있어 봐서 羌人之心을 深知합니다.
이제 강인과 연결해 援軍으로 삼으면 설령 중원을 되찾지 못하더라도 농서를 잘라 가질 수 있습니다.”
後主曰:
「卿既欲伐魏,可盡忠竭力,勿墮銳氣,以負朕命.」
후주가 말하였다.
“경이 伐魏하겠다 하니 盡忠竭力하고 예기를 떨어뜨리지 않음으로써 짐의 명을 저버리지 마시오.”
於是姜維領敕辭朝,同夏侯霸徑到漢中,計議起兵。
이에 강유가 천자의 칙서를 받들어 조정을 떠나 하후패와 함께 한중으로 질러가서 출병을 계획하였다.
維曰:
「可先遣使去羌人處通盟,然後出西平,近雍州。
先築二城於麴山之下,令兵守之,以為犄角之勢。
我等盡發糧草於川口,依丞相舊制,次第進兵.」
강유가 말하였다.
“먼저 사자를 강인에게 보내 동맹을 맺은 뒤 西平으로 나가서 옹주로 접근해야겠소.
먼저 麴山之下에 2개의 성을 쌓고 군사가 수비하게 하여 犄角之勢를 이루겠소.
우리가 糧草를 모조리 川口에 운반하고 승상의 옛 制度를 따라 차례차례 진병할 것이오.”
是年秋八月,先差蜀將句安、李歆同引一萬五千兵,往麴山前連築二城。
이해 팔월에 먼저 촉장 句安과 李歆에게 함께 병사 1만 5천을 이끌고 국산으로 가서 2개 성을 연달아 쌓게 하였다.
句安守東城,李歆守西城。
구안이 동쪽 성을 지키고 이흠이 서쪽 성을 지켰다.
早有細作報與雍州刺史郭淮。
재빨리 세작이 雍州刺史 곽회에게 알린다.
淮一面申報洛陽,一面遣副將陳泰引兵五萬來與蜀兵交戰。
곽회가 낙양에 문서로 알리는 한편, 副將 陳泰에게 병사 5만을 이끌고 국산으로 가서 촉병과 교전하게 하였다.
句安、李歆各引一軍出迎;因兵少不能抵敵,退入城中。
구안과 이흠이 각각 1군을 이끌고 맞이하지만, 군사가 적어서 대적하지 못하고 성으로 퇴각하였다.
泰令兵四面圍住攻打,又以兵斷其漢中糧道。
진태가 병사들에게 사면을 포위해 공격하게 하고, 군사를 동원하여 한중의 糧道를 차단하였다.
句安、李歆城中糧缺。
구안과 이흠이 성안에서 군량이 모자랐다.
郭淮自領兵亦到,看了地勢,忻然而喜;
回到寨中,乃與陳泰計議曰:
「此城山勢高阜,必然水少,須出城取水;
若斷其上流,蜀兵皆渴死矣.」
곽회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도착해서 지세를 살피더니 흔연히 기뻐하였다.
군영으로 돌아와 진태와 상의하였다.
“이 성은 산세가 높아서 틀림없이 물이 부족하여 성을 나와야만 물을 얻을 수 있소.
상류를 끊으면 촉병이 모두 목말라 죽을 터이오.”
遂令軍士掘土堰斷上流。
곧 병사들에게 둑을 뚫어서 상류를 끊게 하였다.
城中果然無水。
성안에 과연 물이 바닥났다.
李歆引兵出城取水,雍州兵圍困甚急。
이흠이 군을 이끌고 성을 나와서 물을 얻으려 하지만 옹주 병사들이 포위하니 심히 위급해졌다.
歆死戰不能出,只得退入城去。
이흠이 필사적으로 싸워도 나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성으로 퇴각해 들어갔다.
句安城中亦無水,乃會了李歆,引兵出城,併在一處;
구안의 성안에도 물이 떨어지자 이흠과 연락하여 군을 이끌고 성을 나와서 군대를 한곳에 모았다.
大戰良久,又敗入城去。
오래도록 크게 싸웠지만, 또 패전하여 성으로 들어갔다.
軍士枯渴。
군사들에게 물이 고갈되었다.
安與歆曰:
「姜都督之兵,至今未到,不知何故.」
구안이 이흠에게 말하였다.
“강도독의 군대가 여태 오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소.”
歆曰:
「我當捨命,殺出求救.」
이흠이 말하였다.
“제가 목숨을 걸고 뚫고 나가서 구원을 청하겠소.”
遂引數十騎,開了城門,殺將出來。
곧 수십 기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雍州兵四面圍合,歆奮死衝突,方纔得脫;
옹주병이 사면을 포위하자 이흠이 죽을 각오로 충돌해 겨우 탈출하였다.
只落得獨自一人,身帶重傷,餘皆沒於亂軍之中。
자신 1인만이 탈출하여 몸에 중상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亂軍之中에 죽었다.
是夜北風大起,陰雲布合,天降大雪;因此,城內蜀兵分糧化雪而食。
이날 밤, 북풍이 크게 불고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늘에서 큰 눈이 내린다. 이에 성안의 촉병이 군량을 나누고 눈을 녹여 먹었다.
卻說
李歆撞出重圍,從西山小路行了兩日,正迎著姜維人馬。
한편,
이흠이 겹겹의 포위를 뚫고 나가서 서산의 지름길로 이틀을 가다가 강유의 인마와 마주쳤다.
歆下馬伏地告曰:
「麴山二城,皆被魏兵圍困,絕了水道。
幸得天降大雪,因此化雪度日。
甚是危急.」
이흠이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고하였다.
“국산의 두 성은 모두 위병이 포위하고 물길을 끊었습니다.
다행히 큰 눈이 내린 덕분에 눈을 녹여 지내는데 몹시 위급합니다.”
維曰:
「吾非救遲;為聚羌兵未到,因此誤了.」
강유가 말하였다.
“내가 구원을 일부러 늦춤이 아니오. 부른 강병이 아직 오지 않은 탓에 착오가 생겼소.”
遂令人送李歆入川養病。
곧 사람을 시켜 이흠을 서천으로 데려가 養病하게 하였다.
維問夏侯霸曰:
「羌兵未到,魏兵圍困麴山甚急,將軍有何高見?」
강유가 하후패에게 물었다.
“강병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위병이 국산을 포위하여 몹시 위급하오. 장군께 어떤 고견이 있소?”
霸曰:
「若等羌兵到麴山,二城皆陷矣。
吾料雍州兵,必盡來麴山攻打。
雍州城定然空虛,將軍可引兵徑往牛頭山,抄在雍州之後。
郭淮、陳泰必回救雍州,則麴山之圍自解矣.」
“강병들이 국산에 오기를 기다리다간, 두 성 모두 함락될 터이오.
내 생각에, 옹주 병사은 틀림없이 모조리 국산을 치러 왔을 터이오.
옹주성은 틀림없이 비었을 테니 장군께서 군을 이끌고 우두산으로 질러가서 옹주의 배후를 습격하시오.
곽회와 진태가 틀림없이 옹주를 구원하러 돌아갈 테니 국산의 포위는 저절로 풀리겠소.”
維大喜曰:
「此計最善!」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 계책이 최선이오!”
是姜維引兵望牛頭山而去。
이에 강유가 군을 이끌고 우두산으로 갔다.
卻說
陳泰見李歆殺出城去了,乃謂郭淮曰:
「李歆若告急於姜維,姜維料吾大兵皆在麴山,必抄牛頭山襲吾之後。
將軍可引一軍去取洮水,斷絕蜀兵糧道;
吾分兵一半,徑往牛頭山擊之;
彼若知糧道已絕,必然自走矣.」
한편,
진태는 이흠이 성을 탈출하였음을 알고 곽회에게 말하였다.
“이흠이 강유에게 告急하면 강유는 우리 대군이 모두 국산에 있다고 여기고 틀림없이 우두산으로 질러가서 우리 배후를 습격할 터입니다.
장군께서 1군을 이끌고 가서 洮水를 점령하여 斷絕蜀兵糧道하십시오.
제가 군대의 절반을 이끌고 우두산으로 달려가서 그들을 공격하겠습니다.
저들이 糧道가 끊김을 알면, 틀림없이 스스로 달아날 터입니다. ”
郭淮從之,遂引一軍暗取洮水。
곽회가 이를 따라, 곧 1군을 이끌고 몰래 도수를 점령하러 갔다.
陳泰引一軍徑往牛頭山來。
진태가 1군을 이끌고 우두산으로 질러갔다.
卻說
姜維兵至牛頭山,忽聽得前軍發喊,報說魏兵截住去路。
한편,
강유의 군대가 우두산에 이르자 갑자기 前軍에서 함성이 일더니 위병이 앞길을 막고 있다고 하였다.
維慌忙自到軍前視之。
강유가 황망히 自到軍前하여 그것을 보았다.
陳泰大喝曰:
「汝欲襲吾雍州!
吾已等候多時了!」
진태가 크게 호통친다.
“네가 우리 옹주를 습격하려 하느냐!
내 기다린 지 오래다!”
維大怒,挺鎗縱馬,直取陳泰。
강유가 크게 노하여 창을 꼬나쥐고 말을 달려 진태에게 달려들었다.
泰揮刀而迎。
진태가 칼을 휘두르며 맞선다.
戰不三合,泰敗走,維揮兵掩殺。
싸운 지 3합도 안 되어 진태가 패주하니 강유가 군대를 지휘하여 엄습하였다.
雍州兵退回,占住山頭。
옹주병이 퇴각하여 山頭를 점거하였다.
維收兵就牛頭山下寨。
강유가 군대를 거두어 우두산 아래에 영채를 세웠다.
維每日領兵搦戰,不分勝負。
강유가 매일 병사들을 시켜 搦戰하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다.
夏侯霸謂姜維曰:
「此處不是久停之所。
連日交戰,不分勝負,乃誘兵之計耳,必有異謀。
不如暫退,再作良圖.」
하후패가 강유에게 말하였다.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닙니다.
연일 교전해도 승부를 가르지 못하니, 군대를 유인하는 계책일 뿐이오. 틀림없이 다른 음모가 있을 터입니다.
잠시 퇴각해 좋은 계책을 지음만 못합니다.”
正言間,忽報郭淮引一軍取洮水,斷了糧道。
말하는 사이에 보고하기를, 곽회가 1군을 이끌고 도수를 점령하여 糧道를 끊었다고 하였다.
維大驚,急令夏侯霸先退。
강유가 깜짝 놀라 급히 하후패에게 명하여 먼저 퇴각하라고 하였다.
維自斷後。
강유가 斷後하였다.
陳泰分兵五路趕來。
진태가 군사를 5로로 나누어 뒤쫓았다.
維獨在五路總口,戰住魏兵。
강유는 홀로 5로가 합쳐지는 곳에서 위군과 싸웠다.
泰勒兵上山,矢石如雨。
진태가 군사를 지휘하여 산을 오르게 하고, 矢石을 비오듯이 퍼부었다.
維急退到洮水之時,郭淮引兵殺來。
강유가 급히 도수까지 퇴각하자, 곽회가 군을 이끌고 달려들었다.
維引兵往來衝突。
강유가 군을 이끌고 왕래하며 충돌하였다.
魏兵阻其去路,密如鐵桶。
위병이 갈 길을 막는데 철통같이 엄밀하였다.
維奮死殺出,折兵大半,飛奔上陽平關來。
강유가 죽기살기로 뚫고 나왔지만, 군사의 태반을 잃고 양평관으로 달려갔다.
前面又一軍殺到;為首一員大將,縱馬橫刀而出。
앞쪽에서 1군이 달려든다. 선두의 대장이 말을 몰아 칼을 비껴들고 나왔다.
那人生得圓面大耳,方口厚脣,左目下生個黑瘤,瘤上生數十根黑毛,乃司馬懿長子驃騎將軍司馬師也。
그 사람의 생김새는 얼굴이 둥글고 귀가 크고, 입이 네모지고 입술이 두꺼웠다. 왼쪽 눈 아래에 1개 검은 혹이 났고 혹 위에 검은 털이 수십 개가 자랐으니 바로 사마의의 長子 驃騎將軍 司馬師이었다.
維大怒曰:
「孺子焉敢阻吾歸路!」
강유가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젖먹이가 감히 내 갈 길을 가로막느냐!”
拍馬挺鎗,直來刺師。
말을 박차고 창을 꼬나쥐고 사마사를 찌르러 갔다.
師揮刀相迎。
사마사가 칼을 휘두르며 맞섰다.
只三合,殺敗了司馬師,維脫身徑奔陽平關來。
겨우 3합에 사마사를 쫓아버리고, 강유가 脫身하여 양평관으로 달아났다.
城上人開門放入姜維。
성 위의 사람들이 성문을 열어서 강유를 들어 오게 하였다.
司馬師也來搶關,兩邊伏弩齊發,一弩發十矢,乃武侯臨終時所遺「連弩」之法也。
사마사가 양평관을 빼앗으러 오자, 양쪽에 매복한 쇠노를 일제히 쏘는데, 쇠뇌 하나로 화살 열 개를 쏘니, 바로 무후가 임종에 남긴 連弩之法이었다.
正是:
難支此日三軍敗,獨賴當年十矢傳。
이야말로
<이날 3군이 패전하여 버티기 어려운데, 오직 그때의 연노법만 믿는구나.>라는 것이다.
未知司馬師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사마사의 목숨이 어찌될까? 다음 회의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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