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百零六回
公孫淵兵敗死襄平 司馬懿詐病賺曹爽.
제106회
공손연이 패전하여 襄平에서 죽고, 사마의가 병든 척 曹爽을 속이다.
卻說
公孫淵乃遼東公孫度之孫,公孫康之子也。
한편,
공손연은 遼東 公孫度의 손자이며, 公孫康의 아들이었다.
建安十二年,曹操追袁尚,未到遼東,康斬尚獻操,操封康為襄平侯;
건안 12년 조조가 원상을 추격하여 요동에 이르기 전에, 공손강이 원상을 베어서 首級을 조조에게 바치니, 조조가 공손강을 襄平侯로 봉하였다.
後康死,有二子,長曰晃,次曰淵,皆幼;
후에 공손강이 죽으며 두 아들을 남겼는데 장남은 공손황, 차남은 공손연이고 둘 다 어렸다.
康弟公孫恭繼職。
공손강의 아우 공손공이 직위를 계승하였다.
曹丕時封恭為車騎將軍襄平侯。
조비 재위시 공손공을 車騎將軍襄平侯로 봉하였다.
太和二年,淵長大,文武兼備,性剛好鬥,奪其叔公孫恭之位,曹叡封淵為揚烈將軍遼東太守。
태화 2년, 공손연이 장성하여 文武兼備하고 性剛好鬥하여 그 숙부 공손공의 지위를 빼앗자, 조예가 공손연을 揚烈將軍 遼東太守로 삼았다.
後孫權遣張彌、許宴齎金寶珍玉赴遼東,封淵為燕王。
그 뒤 손권이 張彌와 許宴을 사자로 삼아 金寶珍玉을 가지고 요동으로 가서 공손연을 燕王으로 봉하였다.
淵懼中原,乃斬張、許二人,送首與曹叡。
공손연이 중원을 두려워하여 장미와 허연 두 사람을 목 베어서 수급을 조예에게 보냈다.
叡封淵為大司馬樂浪公。
조예가 공손연을 大司馬 樂浪公에 봉하였다.
淵心不足,與眾商議,自號為燕王,改元紹漢元年。
공손연이 마음속으로 만족하지 않아, 그 무리와 상의하여 스스로 燕王이라 일컫고 연호를 紹漢 元年으로 고쳤다.
副將賈範諫曰:
「中原待主公以上公之爵,不為卑賤;
今若背反,實為不順。
更兼司馬懿善能用兵,西蜀諸葛武侯且不能取勝,何況主公乎?」
副將 賈範이 간하였다.
“중원에서 주공을 上公之爵으로써 대우하니 비천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배반하면 참으로 순리를 거스름입니다.
게다가 사마의는 용병에 뛰어나서 서촉의 제갈무후조차 이기지 못했는데 하물며 주공이겠습니까?”
淵大怒,叱左右縛賈範,將斬之。
공손연이 크게 노하여 좌우에게 소리쳐 가범을 결박하고 처형하려고 하였다.
參軍倫直諫曰:
「賈範之言是也。
聖人云:
『國家將亡,必有妖孽。』
今國家屢見怪異之事。
近有犬戴巾幘,身披紅衣,上屋作人行。
又城南鄉民造飯,飯甑之中,忽有一小兒蒸死於內。
襄平北市中,地忽陷一穴,湧出一塊肉,周圍數尺,頭面眼耳口鼻都具,獨無手足,刀箭不能傷,不知何物。
卜者占之曰:
『有形不成,有口不聲;國家亡滅,故現其形。』
有此三者,皆不祥之兆也。
主公宜避凶就吉,不可輕舉妄動.」
參軍 倫直이 간하였다.
“가범의 말이 맞습니다.
성인이 이르기를,
‘국가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妖孽이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나라에 怪異之事가 여럿 보입니다.
요사이 개가 두건을 쓰고 붉은 옷을 입고 집에 올라가서 사람처럼 행동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城南에서 鄉民造飯인데 飯甑之中에 아이 하나가 삶아져 죽어 있었습니다.
양평의 북쪽 저잣거리에서 땅이 갑자기 꺼져서 구멍이 생기더니 한 덩어리의 고기가 솟아 나왔는데, 둘레가 몇 尺이고 얼굴에 눈, 귀, 입, 코를 모두 갖추었지만 손과 발만 없고, 칼이나 화살로도 상할 수 없으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복자가 점치기를,
‘형체는 있지만 완성되지 않았고, 입은 있지만 소리내지 않는다. 국가가 멸망하려니 이런 형태가 나타났구나.’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일이 있는데 모두 不祥之兆입니다.
주공께서 마땅히 避凶就吉하되 輕舉妄動해서는 안 됩니다.”
淵勃然大怒,叱武士綁倫直并賈範同斬於市。
공손연이 勃然大怒하여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윤직을 포박하고 가범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참수하게 하였다,
令大將軍卑衍為元帥,楊祚為先鋒,起遼兵十五萬,殺奔中原來。
대장군 卑衍을 元帥로, 楊祚를 선봉으로 삼아 요동의 병사 15만을 일으켜 중원으로 쇄도하였다.
邊官報知魏主曹叡。
邊官이 위주 조예에게 보고하였다.
叡大驚,乃召司馬懿入朝計議。懿奏曰:
「臣部下馬步官軍四萬,足可破賊.」
조예가 깜짝 놀라 사마의를 조정으로 불러 계책을 의논하였다. 사마의가 아뢰었다.
“신이 거느린 馬步官軍 4만으로 족히 적을 격파할 수 있습니다.”
叡曰:
「卿兵少路遠,恐難收復.」
조예가 말하였다.
“경은 兵少路遠이니 收復하기 어려울까 걱정이오.”
懿曰:
「兵不在多,在能設奇用智耳。
臣託陛下洪福,必擒公孫淵以獻陛下.」
사마의가 말하였다.
“용병이란 군사가 많음에 있지 않고 능히 設奇用智함에 있을 뿐입니다.
신이 폐하의 홍복에 의지하여, 틀림없이 공손연을 잡아서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叡曰:
「卿料公孫淵作何舉動?」
조예가 말하였다.
“경이 보기에 공손연이 어떤 舉動을 하겠소?”
懿曰:
「淵若棄城預走,是上計也;
守遼東拒大軍,是中計也;
坐守襄平,是為下計,必被臣所擒矣.」
사마의가 말하였다.
“공손연이 성을 버리고 미리 달아남 上計입니다.
요동을 지키며 대군을 막음이 中計입니다.
양평을 坐守함은 下計이니, 공손연은 신에게 잡힐 터입니다.”
叡曰:
「此去往復幾時?」
조예가 말하였다.
“여기에서 가서 왕복하는 데 얼마나 걸리오?”
懿曰:
「四千里之地,往百日,攻百日,還百日,休息六十日,大約一年足矣.」
사마의가 말하였다.
“4천 리 떨어진 곳이니 가는 데 100일, 공격하는 데 100일, 휴식에 60일, 대략 1년은 족히 걸립니다.”
叡曰:
「倘吳蜀入寇,如之奈何?」
조예가 말하였다.
“만약 吳蜀入寇면 어찌하겠소?”
懿曰:
「臣已定下守禦之策,陛下勿憂.」
사마의가 말하였다.
“신이 이미 守禦之策을 정해 놓았으니 폐하께서 근심하지 마소서.”
叡大喜,即命司馬懿興師往討公孫淵。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마의에게 興師하여 공손연을 토벌하러 가라고 하였다.
懿辭朝出城,令胡遵為先鋒,引前部兵先到遼東下寨。
사마의가 조정을 떠나서 성을 나갔다. 胡遵을 선봉으로 삼아 前部兵을 이끌고 먼저 요동으로 가서 下寨하게 하였다.
哨馬飛報公孫淵。
哨馬가 재빨리 공손연에게 보고하였다.
淵令卑衍、楊祚,分八萬兵屯於遼隧,圍塹二十餘里,環遶鹿角,甚是嚴密。
공손연이 卑衍과 楊祚에게 병사 8만을 나누어 주어 遼隧에 주둔하게 하고, 2십여 리에 걸쳐서 해자를 파고 녹각으로 둘러싸니, 방어 태세가 몹시 엄밀하였다.
胡遵令人報知司馬懿。
호준이 사람을 시켜 사마의에게 알렸다.
懿笑曰:
「賊不與我戰,欲老我兵耳。
我料賊眾大半在此,其巢穴空虛,不若棄卻此處,徑奔襄平;
賊必往救,卻於中途擊之,必獲全功.」
사마의가 웃는다.
“적은 우리와 싸우지 않고, 우리 군대를 지치게 할 속셈이오.
내가 헤아려보니, 적군의 태반이 이곳에 있어서 巢穴空虛할 터이니 이곳을 버리고 곧장 양평으로 달려감이 낫겠소.
적이 틀림없이 구원하러 갈 테니 도중에 공격하면 틀림없이 全功을 거둘 터이오.”
於是勒兵從小路向襄平進發。
이에 군대를 지휘해 지름길을 따라 襄平으로 출발하였다.
卻說
卑衍與楊祚商議曰:
「若魏兵來攻,休與交戰。
彼千里而來,糧草不繼,難以持久,糧盡必退;
待他退時,然後出奇兵擊之,司馬懿可擒也。
昔司馬懿與蜀兵相拒,堅守渭南,孔明竟卒於軍中。
今日正與此理相同.」
한편, 비연이 양조와 상의하며 말하였다.
“위병이 공격해 오더라도 더불어 교전하지 마시오.
그들은 천 리를 오니, 糧草不繼하여 難以持久이니 糧盡必退이오.
그들이 퇴각하기를 기다리고 연후에 出奇兵擊之면 사마의를 잡을 수 있겠소.
지난날 사마의가 촉병과 대치할 때, 위남을 굳게 지켜서 공명이 끝내 군중에서 죽었소.
오늘 그 방법과 똑같이 하겠소.”
二人正商議間,忽報:
「魏兵往南去了.」
두 사람이 상의하고 있는데 급보가 날아들었다.
“위군이 남쪽으로 갔습니다.”
卑衍大驚曰:
「彼知吾襄平軍少,去襲老營也。
若襄平有失,我等守此處無益矣.」
비연이 깜짝 놀라 말하였다.
“그들이 우리의 襄平軍이 적음을 알고 老營(본거지)을 습격하러 간 것이오.
양평을 잃으면 우리가 이곳을 지킨들 아무 이익이 없소이다.”
遂拔寨隨後而起。
곧 영채를 뽑아서 뒤이어 출발하였다.
早有探馬飛報司馬懿。懿笑曰:
「中吾計矣!」
어느새 탐마가 사마의에게 급보하니 사마의가 웃는다.
“내 계책에 걸려들었구나!”
乃令夏侯霸、夏侯威,各引一軍伏於濟水之濱:
「如遼兵到,兩下齊出.」
하후패와 하후위 두 사람더러 각각 1군을 이끌고 濟水之濱에 매복하게 하였다.
“요동 병사들이 오거든 양쪽에서 일제히 나오시오.”
二人受計而往。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떠났다.
早望見卑衍、楊祚引兵前來。
어느새 비연과 양조가 군을 이끌고 앞으로 옴이 보였다.
一聲炮響,兩邊鼓譟搖旗,左有夏侯霸,右有夏侯威,一齊殺出。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양쪽에서 북을 두드리고 깃발을 흔들며, 왼쪽에서 하후패가 오른쪽에서 하후위가 일제히 달려 나왔다.
卑、楊二人,無心戀戰,奪路而走;
비연과 양조 두 사람은 싸울 마음이 없어 길을 앗아 달아났다.
奔至首山,正逢公孫淵兵到,合兵一處,回馬再與魏兵交戰。
首山까지 달아나다가 마침 공손연의 병사와 마주쳐서 군사를 한데 합친 뒤, 말머리를 되돌려 다시 위병과 교전하였다.
卑衍出馬罵曰:
「賊將休使詭計!汝敢出戰否?」
비연이 말을 타고 나와서 욕하였다.
“賊將은 속임수를 쓰지 마라! 네가 감히 출전하겠느냐?”
夏侯霸縱馬揮刀來迎。
하후패가 말을 달려 칼을 휘두르며 맞서러 나왔다.
戰不數合,被夏侯霸一刀,斬卑衍於馬下,遼兵大亂。
싸워서 몇 합이 되지 않아 하후패가 한칼에 비연을 베어서 말 아래로 떨구니, 遼兵이 몹시 혼란하였다.
霸驅兵掩殺,公孫淵引敗兵奔入襄平城去,閉門堅守不出。
하후패가 군사를 내몰아서 습격하니 공손연이 敗兵을 이끌고 양평성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았다.
魏兵四面圍合。
위군이 사방을 포위하였다.
時值秋雨連綿,一月不止,平地水深三尺,運糧船自遼河口直至襄平城下。
이때 가을비가 끊임없이 한 달을 그치지 않아서, 평지의 수심이 3척에 이르니, 군량을 운반하는 배가 遼河 어귀에서 곧바로 양평성 아래까지 왔다.
魏兵皆在水中,行坐不安。
위병이 모두 물에서 지내니, 걷거나 앉거나 불안하였다.
左都督裴景入帳告曰:
「雨水不住,營中泥濘,軍不可停,請移於前面山上.」
左都督 裴景이 군막으로 들어와 고하였다.
“빗물이 그치지 않아 영내가 진창이라, 군이 머무를 수 없습니다. 청컨대 앞쪽의 산 위로 옮기겠습니다.”
懿怒曰:
「捉公孫淵只在旦夕,安可移營?
如有再言移營者斬!」
사마의가 노해서 말하였다.
“공손연을 잡는 것이 旦夕에 달렸는데, 어찌 영채를 옮기겠는가?
移營을 다시 말하는 자가 있으면 참하겠다!”
裴景喏喏而退。
배경이 ‘네, 네’ 하며 퇴장하였다.
少頃,右都督仇連又來告曰:
「軍士苦水,乞太尉移營高處.」
조금 있다가 右都督 仇連이 또 와서 고하였다.
“군사들이 빗물 때문에 고생하니, 태위께 바라옵건대 영채를 높은 지대로 옮기겠습니다.”
懿大怒曰:
「吾軍令已發,汝何敢故違!」
사마의가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군령을 이미 내렸거늘 네가 어찌 감히 알고도 어기느냐!”
即命推出斬之,懸首於轅門外。
즉시 명령하여 그를 끌어내어 처형하고 그 수급을 轅門 밖에 걸어두었다.
於是軍心震懾。
이에 군사들이 震懾(두려워서 떰)하였다.
懿令兩寨人馬暫退三十里,縱城內軍民出城樵採柴薪,牧放牛馬。
사마의가 영을 내려서 兩寨人馬를 잠시 30리 밖으로 물러나게 하여, 城內軍民이 出城하여 樵採柴薪하고 牧放牛馬하도록 놓아두었다.
司馬陳群問曰:
「前太尉攻上庸之時,兵分八路,八日趕至城下,遂生擒孟達而成大功.
今帶甲四萬,數千里而來,不令攻打城池,卻使久居泥濘之中,又縱賊眾樵牧,某實不知太尉是何主意.」
司馬 陳群이 물었다.
“예전에 태위께서 攻上庸之時에 兵分八路하여 8일 만에 趕至城下하여, 마침내 맹달을 사로잡고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이제 帶甲 4만이 수천 리를 왔는데 城池를 치라고 명령하지 않고, 도리어 泥濘之中에서 오랫동안 지내게 하고, 또 賊眾이 樵牧하도록 놓아두시니, 저는 실로 태위께서 무슨 뜻을 가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懿笑曰:
「公不知兵法耶?
昔孟達糧多兵少,我糧少兵多,故不可不速戰;
出其不意,突然攻之,方可取勝。
今遼兵多,我兵少,賊飢我飽,何必力攻?
正當任彼自走,然後乘機擊之。
我今放開一條路,不絕彼之樵牧,是容彼自走也.」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였다.
“공께서 병법을 모르시오?
지난날 糧多兵少이고 아군은 糧少兵多여서 不可不速戰이었소.
出其不意로 突然攻之해야 비로소 승리를 거둘 수 있었소.
이제 遼兵多에 我兵少요, 賊飢我飽니 하필 힘들여 공격해야 하겠소?
마땅히 저들이 스스로 달아나게 한 뒤에 기회를 타서 공격해야 하오.
내 이제 한줄기 길을 열어두어 彼之樵牧을 끊지 않음은, 저들이 스스로 달아나도록 용인함이오.”
陳群拜服。
진군이 탄복하였다.
於是司馬懿遣人赴洛陽催糧。
이에 사마의가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 군량을 재촉하였다.
魏主曹叡設朝。群臣皆奏曰:
「近日秋雨連綿,一月不止,人馬疲勞,可召回司馬懿,權且罷兵.」
위주 조예가 조회를 열자 신하들이 모두 아뢰었다.
“近日에 가을비가 끊임없이 한 달을 그치지 않아서 인마가 피로하니, 사마의를 불러들이고 임시로 군을 거두는 것이 옳겠습니다.”
叡曰:
「司馬太尉善能用兵,臨危制變,多有良謀;捉公孫淵計日而待,卿等何必憂也?」
“사마태위는 善能用兵이고 臨危制變하며 多有良謀이오. 공손연을 잡음은 날짜를 헤아리며 기다리면 될 터인데 어찌 경들이 걱정할 필요가 있겠소?”
遂不聽群臣之諫,使人運糧解至司馬懿軍前。
마침내 群臣之諫을 듣지 않고 사람들을 시켜 군량을 사마의의 軍前까지 보냈다.
懿在寨中,又過數日,雨止天晴。
사마의가 영채 안에 머무르며 또 며칠이 지나자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갰다.
是夜懿出帳外,仰觀天文,忽見一星,其大如斗,流光數丈,自首山東北,墜於襄平東南。
이날 밤 사마의가 군막 밖으로 나와서 우러러 천문을 살피니, 홀연히 별 하나가 크기는 북두성과 같은데 몇 길이나 되는 빛줄기를 뿌리며 수산의 동북쪽으로부터 양평의 동남쪽으로 떨어졌다.
各營將士,無不驚駭。
各營將士가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懿見之大喜,乃謂眾將曰:
「五日之後,星落處必斬公孫淵矣。
來日可併力攻城.」
사마의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五日之後에 별이 떨어진 곳에서 틀림없이 공손연을 참할 터이오.
내일 힘을 합쳐 성을 공격해야 하겠소.”
眾將得令,次日侵晨,引兵四面圍合,築土山,掘地道,立炮架,裝雲梯,日夜攻打不息,箭如急雨,射入城去。
장수들이 명령을 받고 다음날 侵晨에 군을 이끌고 사방에서 에워싸더니 흙산을 쌓고 땅굴을 파고 砲架를 세우고 雲梯를 차려서 밤낮으로 공격하며 쉬지 않았다. 화살을 소나기처럼 성안으로 쏘아 보냈다.
公孫淵在城中糧盡,皆宰牛馬為食。
공손연이 성안에서 군량이 바닥나자 모두가 소와 말을 잡아서 먹었다.
人人怨恨,各無守心,欲斬淵首,獻城歸降。
사람마다 원한을 품어 지킬 마음이 없고 공손연의 머리를 베어서 성을 바치고 투항하려 하였다.
淵聞之,甚是驚憂,慌令相國王建,御史大夫柳甫,往魏寨請降。
공손연이 듣고 몹시 놀라고 근심하며 相國 王建과 御史大夫 柳甫에게 魏寨로 가서 항복을 청하게 하였다.
二人自城上繫下,來告司馬懿曰:
「請太尉退二十里,我君臣自來投降.」
두 사람이 성 위에서 밧줄에 매달려 내려와서 사마의에게 가서 고하였다.
“태위께 청컨대 2십 리를 물려 주십시오. 저희 君臣이 스스로 와서 투항하겠습니다.”
懿大怒曰:
「公孫淵何不自來?
殊為無理!」
사마의가 크게 노해 말하였다.
“공손연이 어찌 직접 오지 않느냐?
몹시 無理이구나!”
叱武士推出斬之,將首級付與從人。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이들을 끌어내어 처형하고, 從人에게 수급을 주었다.
從人回報,公孫淵大驚,又遣侍中衛演來到魏營。
종인이 돌아가서 알리니, 공손연이 깜짝 놀라서 시중 衛演을 魏營으로 보냈다.
司馬懿升帳,聚眾將立於兩邊。
사마의가 군막으로 나와서 장수들을 모아서 양쪽에 세웠다.
演膝行而進,跪於帳下,告曰:
「願太尉息雷霆之怒。
剋日先送世子公孫修為質當,然後君臣自縛來降.」
衛演이 무릎으로 걸어가서 군막 아래 무릎을 꿇고 고하였다.
“바라건대 태위께서 雷霆之怒를 가라앉히십시오.
일자를 약정해서 세자 공손수를 인질로 보내고 그런 뒤에 君臣自縛來降하겠습니다.”
懿曰:
「軍事大要有五:
能戰當戰,不能戰當守,不能守當走,不能走當降,不能降當死耳。
何必送子為質當?」
사마의가 말하였다.
“軍事의 大要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能戰當戰’, ‘不能戰當守’, ‘不能守當走’, ‘不能走當降’, ‘不能降當死耳’ 이다.
하필 아들을 인질로 보내겠느냐?”
叱衛演回報公孫淵。
위연을 꾸짖어 공손연에게 돌아가서 알리라고 하였다.
演抱頭鼠竄而去,歸告公孫淵。
위연이 머리를 감싸쥐고 쥐새끼처럼 달아나서 공손연에게 돌아가서 고하였다.
淵大驚,乃與子公孫修密議停當,選下一千人馬,當夜二更時分,開了南門,往東南而走。
공손연이 깜짝 놀라 아들 공손수와 몰래 의논을 마치고, 인마 1천을 뽑아서 그날 밤 2경 무렵에 남문을 열고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淵見無人,心中暗喜。
공손연은 사람이 없음을 보자 속으로 기뻐하였다.
行不到十里,忽聽得山上一聲炮響,鼓角齊鳴,一枝兵攔住,中央乃司馬懿也;
십 리를 못 가서 갑자기 산 위에서 한차례 포성이 들리더니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一枝兵이 가로막는데 중앙은 바로 사마의이었다.
左有司馬師,右有司馬昭,二人大叫曰:
좌측은 사마사요, 우측은 사마소인데, 두 사람이 크게 외쳤다.
「反賊休走!」
“반적은 거기 서라!”
淵大驚,急撥馬尋路奔逃。
공손연이 깜짝 놀라 급히 말을 몰아 길을 찾아 달아났다.
早有胡遵兵到;左有夏侯霸、夏侯威,右有張虎、樂綝,四面圍得鐵桶相似。
어느새 호준의 군대가 도착하는데, 좌측은 하후패, 하후위, 우측은 장호, 악침의 군사들이었다. 사면에서 철통같이 포위하였다.
公孫淵父子,只得下馬納降。
공손연 부자가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려 納降하였다.
懿在馬上顧諸將曰:
「吾前夜丙寅日,見大星落於此處,今夜壬申日應矣.」
사마의가 말 위에서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전날 밤 병인일에 하늘에서 큰 별이 여기로 떨어짐을 보고 오늘밤 임신일에 징험할 줄 알았소.”
眾將稱賀曰:
「太尉真神機也!」
장수들이 稱賀하였다.
“태위께서 참으로 神機를 가지셨습니다!”
懿傳令斬之。公孫淵父子對面受戮。
사마의가 그들을 처형하라고 전령하니, 공손연 부자가 마주 보며 죽음을 맞았다.
司馬懿遂勒兵來取襄平。
사마의가 곧 군을 이끌고 양평을 점령하러 갔다.
未及到城下時,胡遵早引兵入城中。
성 밑에 미처 이르지 않아서 胡遵이 벌써 군사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人民焚香拜迎。
인민이 향을 사르고 절하며 맞는다.
魏兵盡皆入城。
위병이 모조리 성으로 들어갔다.
懿坐於衙上,將公孫淵宗族,並同謀官僚人等,俱殺之,計首級七十餘顆。
사마의가 관아에 앉아 공손연의 종족과 아울러 함께 모반한 관료 등을 모두 죽이니, 그들의 首級이 70여 개에 달하였다.
出榜安民。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심시켰다.
人告懿曰:
「賈範、倫直苦諫淵不可反叛,俱被淵所殺.」
사람들이 사마의에게 고하였다.
“가범과 윤직이 공손연에게 不可反叛을 苦諫했으나, 모두 공손연에게 살해됐습니다.”
懿遂封其墓而榮其子孫;
사마의가 곧 그들의 묘를 조성하고 그 자손을 영화롭게 하였다.
就將庫內財物,賞勞三軍,班師回洛陽。
庫內財物로써 삼군의 공로를 포상하고, 군대를 철수하여 낙양으로 돌아갔다.
卻說
魏主在宮中,夜至三更,忽然一陣陰風,吹滅燈光。
한편,
위주가 궁중에 있는데, 밤이되어 3경에 이르자 갑자기 一陣陰風이 吹滅燈光하였다.
只見毛皇后引數十個宮人哭至座前索命,叡因此得病。
모황후가 수십 명의 궁인을 이끌고 옥좌 앞까지 곡하면서 와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조예가 이 때문에 병을 얻었다.
病漸沈重,命侍中光祿大夫劉放、孫資,掌樞密院一切事務;
병이 점차 沉重해져서 시중 侍中 光祿大夫 劉放과 孫資에게 명하여 樞密院一切事務를 관장하게 하였다.
又召文帝子燕王曹宇為大將軍,佐太子曹芳攝政。
또한 문제의 아들 燕王 曹宇를 불러서 大將軍으로 임명하고 태자 조방을 도와 섭정하도록 하였다.
宇為人恭儉溫和,不肯當此大任,堅辭不受。
조우의 사람됨이 恭儉溫和하여 이러한 大任을 맡으려 하지 않고, 한사코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叡召劉放、孫資問曰:
「宗族之內,何人可任?」
조예가 劉放과 孫資를 불러 물었다.
“宗族之內에서 누가 맡을 만하겠소?”
二人久得曹真之惠,乃保奏曰:
「惟曹子丹之子曹爽可也.」
두 사람이 오래도록 曹真之惠를 입은지라, 이에 保奏하였다.
“曹子丹之子 曹爽이 좋겠습니다.”
叡從之。
조예가 그 말을 좇았다.
二人又奏曰:
「欲用曹爽,當遣燕王歸國.」
두 사람이 또 아뢰었다.
“조상을 쓰시겠다면 연왕은 歸國시키소서.”
叡然其言。
조예가 그 말이 옳다고 여겼다.
二人遂請叡降詔,齎出諭燕王曰:
「有天子手詔,命燕王歸國,限即日就行;若無詔不許入朝.」
두 사람이 곧 조예에게 조서를 내려달라 청하여, 조서를 가지고 연왕에게 가서 황제의 칙유를 전하였다.
“천자께서 조서를 써서 명하시기를, 연왕은 즉시 귀국하라 하셨습니다. 조서가 없이는 입조를 허락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燕王涕泣而去。
연왕이 눈물 흘리며 울고 떠났다.
遂封曹爽為大將軍,總攝朝政。
곧 조상을 대장군으로 봉하여, 조정의 정무를 모두 대신하도록 하였다.
叡病漸危,急令使持節詔司馬懿還朝。
조예가 병세가 점차 위중해지자 급히 사자에게 부절과 조서를 가지고 사마의를 조정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懿受命徑到許昌,入見魏主。
사마의가 명을 받고 곧장 허창에 도착하여 들어가서 위주를 만났다.
叡曰:
「朕惟恐不得見卿;今日得見,死無恨矣.」
조예가 말하였다.
“짐은 다만 경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했소. 오늘 만났으니 죽어도 한이 없소.”
懿頓首奏曰:
「臣在途中,聞陛下聖體不安,恨不肋生兩翼,飛至闕下。
今日得睹龍顏,臣之幸也.」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이 도중에 폐하의 성체가 불안하다고 듣고, 신의 갈비에 두 날개가 생겨 궁궐로 날아오지 못함이 한스러웠습니다.
오늘 용안을 뵙게 되니 신의 행운입니다.”
叡宣太子曹芳,大將軍曹爽,侍中劉放、孫資等,皆至御榻之前。
조예가 하교하여 태자 조방, 대장군 조상, 시중 유방과 손자 등을 모두 御榻앞으로 오게 하였다.
叡執司馬懿之手曰:
「昔劉玄德在白帝城病危,以幼子劉禪託孤於諸葛孔明,孔明因此竭盡忠誠,至死方休。
偏邦尚然如此,何況大國乎?
朕幼子曹芳,年纔八歲,不堪掌理社稷。
幸太尉及宗兄元勳舊臣,竭力相輔,無負朕心!」
조예가 사마의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지난날 유현덕이 백제성에서 병세가 위독할 때,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탁고하니 공명이 이 때문에 충성을 다 바치다가 죽어서야 멈추었소.
偏邦조차 이러한데 하물며 대국이겠소?
짐의 어린 아들 조방은 나이가 겨우 여덟 살이니 아직은 사직을 감당할 수 없소.
부디 태위, 宗兄, 元勳, 舊臣들은 竭力相輔하여 짐의 마음을 저버리지 마시오!”
又喚芳曰:
「仲達與朕一體,爾宜敬禮之.」
또 조방을 불러 말하였다.
“중달은 짐과 한 몸이니 너는 마땅히 공경하여 예우하라.”
遂命懿攜芳近前。
곧 사마의에게 명하여 조방을 이끌고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芳抱懿頸不放。
조방이 사마의의 목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叡曰:
「太尉勿忘幼子今日相戀之情!」
조예가 말하였다.
“태위는 어린 아들이 오늘 이렇게 좋아하는 정을 잊지 마시오!”
言訖,潸然淚下。
말을 마치더니 줄줄 눈물을 떨군다.
懿頓首流涕。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 흘린다.
魏主昏沈,口不能言,只以手指太子,須臾而卒;
위주가 정신이 혼미해져서 말을 할 수 없어 다만 손으로 태자를 가리키다가 얼마 뒤 죽는다.
在位十三年,壽三十六歲。
재위 13년 나이 36세다.
時魏景初三年春正月下旬也。
이때가 위나라 景初 3년 봄 정월 하순이었다.
當下司馬懿、曹爽,扶太子曹芳即皇帝位。
즉시 사마의와 조상이 태자 曹芳를 받들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芳字蘭卿,乃叡乞養之子,秘在宮中,人莫知其所由來。
조방은 자가 蘭卿인데 조예의 양자이었다. 궁중에 숨겨놓아 사람들이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다.
於是曹芳諡叡為明帝,葬於高平陵;
이에 조방이 조예에게 明帝라 시호하고 高平陵에 장사지냈다.
尊郭皇后為皇太后;改元正始元年。
곽황후를 황태후로 높인다. 正始 元年으로 연호를 고쳤다.
司馬懿與曹爽輔政。
사마의가 조상과 더불어 정무를 보좌하였다.
爽事懿甚謹,一應大事,必先啟知。
조상이 사마의를 몹시 공손히 섬겨서 一應大事를 반드시 알렸다.
爽字昭伯,自幼出入宮中;明帝見爽謹慎,甚是愛敬。
조상은 字 昭伯인데 어려서부터 궁중을 출입하였다. 명제가 조상이 謹慎함을 보고 몹시 아꼈다.
爽門下有客五百人,內有五人以浮華相尚:
一是何晏,字平叔;一是鄧颺,字玄茂,乃鄧禹之後;一是李勝,字公昭;一是丁謐,字彥靜;一是畢軌,字昭先。
조상의 문하에 빈객이 5백 명인데, 그중에 다섯 사람이 겉멋에 빠져 서로를 숭상하였다.
하나는 何晏으로 자가 平叔이고,
하나는 鄧颺으로 자가 玄茂인데 鄧禹之後이고,
하나는 李勝으로 자가 公昭이며,
하나는 丁謐로서 자가 彥靜이고,
하나는 畢軌로서 자가 昭先이었다.
又有大司農桓範字元則,頗有智謀,人多稱為「智囊」。
또 大司農 桓範은 字가 元則인데 지모를 제법 갖추어 많은 이들이 그를 智囊이라고 칭하였다.
此數人皆爽所信任。何晏告爽曰:
「主公大權,不可委託他人,恐生後患.」
이들 몇 사람이 모두 조상의 신임을 받는다. 하안이 조상에게 고하였다.
“주공의 대권을 타인에게 위탁하지 마십시오. 후환이 생길까 걱정됩니다.”
爽曰:
「司馬公與我同受先帝託孤之命,安忍背之?」
조상이 말하였다.
“사마공은 나와 함께 先帝託孤之命을 받았거늘, 어찌 차마 그를 배신하겠소?”
晏曰:
「昔日先公與仲達破蜀兵之時,累受此人之氣,因而致死. 主公何不察也?」
하안이 말하였다.
“지난날 先公께서 중달과 더불어 촉군을 격파할 때, 여러 번 그 사람의 기세에 눌려서 죽음에 이르렀는데 주공께서 어찌 살피지 않으십니까?”
爽猛然省悟,遂與多官計議停當,入奏魏主曹芳曰:
「司馬懿功高德重,可加為太傅.」
조상이 갑자기 깨닫고 곧 여러 관리와 토의를 마치고, 위주 조방에게 아뢰었다.
“사마의는 功高德重하니 太傅로 승진함이 마땅합니다.”
芳從之,自是兵權皆歸於爽。
조방이 이를 따르니 이때부터 병권이 모두 조상에게 귀속되었다.
爽命弟曹羲為中領軍,曹訓為武衛將軍,曹彥為散騎常侍,各引三千御林軍,任其出入禁宮;
조상이 아우 曹羲를 中領軍으로, 曹訓을 武衛將軍으로, 曹彥을 散騎常侍로 임명해 각각 3천의 御林軍을 이끌고, 禁宮의 출입을 맡겼다.
又用何晏、鄧颺、丁謐為尚書,畢軌為司隸校尉,李勝為河南尹:
此五人日夜與爽議事。
또한 하안, 등양, 정밀을 尚書로, 필궤를 司隸校尉로, 李勝을 하남윤으로 임명하였다. 이들 다섯 사람이 밤낮으로 조상과 더불어 議事하였다.
於是曹爽門下賓客日盛。
이에 조상 문하의 빈객들이 나날이 많아졌다.
司馬懿推病不出,二子亦皆退職閒居。
사마의가 推病不出하고 두 아들도 모두 退職閒居하였다.
爽每日與何晏等飲酒作樂。
조상이 매일 하안 등과 더불어 飲酒作樂하였다.
凡用衣服器皿,與朝廷無異;
무릇 衣服器皿을 씀이 與朝廷無異이었다.
各處進貢玩好珍奇之物,先取上等者入己,然後進宮。
각처에서 玩好珍奇之物을 進貢하면, 먼저 상등품을 가져다 자신에게 들이고, 그 후에 궁궐에 바쳤다.
佳人美女,充滿府院。
佳人美女가 府院에 충만하였다.
黃門張當,諂事曹爽,私選先帝侍妾七八人,送入府中。
내시 장당이 조상을 아첨하며 섬겨서 사사로이 先帝의 侍妾 7,8인을 골라서 부중으로 들여보냈다.
爽又選善歌舞良家子女三四十人,為家樂;又建重樓畫閣,造金銀器皿,用巧匠數百人,晝夜工作。
조상이 또한 가무에 뛰어난 양갓집 자녀 3,40인을 골라서 家樂으로 삼았다. 또한 크고 화려한 누각을 짓고, 금과 은으로 그릇을 만들며 뛰어난 장인 수백 인을 부려서 밤낮으로 공작하게 하였다.
卻說
何晏聞平原管輅明數術,請與論易。
한편,
하안이 평원의 管輅가 數術에 뛰어나다고 듣고 관로를 불러서 易을 논하였다.
時鄧颺在座,問輅曰:
「君自謂善易,而語不及易中詞義,何也?」
이때 등양이 자리에 있다가 관로에게 물었다.
“그대가 스스로 역에 뛰어나다고 하면서 말이 易中詞義에 미치지 않으니 무슨 까닭이오?”
輅曰:
「夫善易者,不言易也.」
관로가 말하였다.
“무릇 역에 뛰어난 이는 역을 말하지 않소.”
晏笑而讚之曰:
「可謂要言不煩.」
하안이 웃으며 그를 칭찬하였다.
“가히 要言不煩이라 할 만하오.”
因謂輅曰:
「試為我卜一卦,可至三公否?」
인하여 관로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점을 한 번 쳐보면 三公에 이르겠소?”
又問:
「連夢青蠅數十,來集鼻上,此是何兆?」
또 물었다.
“요새 꿈속에서 파리 수십 마리가 내 코 위에 몰려오는데, 이것이 무슨 징조요?”
輅曰:
「元、愷輔舜,周公佐周,皆以和惠謙恭,享有多福。
今君侯位尊勢重,而懷德者鮮,畏威者眾,殆非小心求福之道。
且鼻者,山也;山高而不危,所以長守貴也。
今青蠅臭惡而集焉,位峻者顛,可不懼乎?
願君侯裒多益寡,非禮勿履;然後三公可至,青蠅可驅也.」
관로가 말하였다.
“元愷가 순임금을 보필하고 주공이 주나라를 도왔는데 이들 모두가 和惠謙恭으로 많은 복을 누렸소.
이제 君侯께서 지위가 높고 권세가 크지만 은덕을 생각하는 이는 드물고, 위세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많으니, 결코 삼가하며 복을 구하는 길이 아니오.
또 코는 산이오. 산이 높고 위태롭지 않다면, 고귀한 신분을 오래 지킬 것이오.
파리들은 악취에 끌려 모이오. 지위가 높은 이가 전복됨은 두려운 일이 아니겠소?
바라건대 군후께서는 많은 것을 덜어내어 적은 것을 보충하며, 예가 아닌 것은 행하지 마시오. 그런 뒤에야 삼공까지 오르고, 파리들도 쫓아낼 수 있소.”
鄧颺怒曰:
「此老生之常談耳!」
등양이 노해서 말하였다.
“이것은 늙은이들이 늘 하는 이야기일 뿐이오!”
輅曰:
「老生者見不生,常談者見不談.」
관로가 말하였다.
“老生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볼 수 있고, 늘 이야기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것을 아는 법이오.”
遂拂袖而去。
마침내 소매를 털며 가버렸다.
二人大笑曰:
「真狂士也!」
두 사람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참으로 狂士로다!”
輅到家,與舅言之。
舅大驚曰:
「何、鄧二人,威權甚重,汝奈何犯之?」
관로가 귀가하여 외숙에게 이것을 말하니 처남이 깜짝 놀라 말하였다.
“하안과 등양 두 사람은 위엄과 권세가 몹시 큰데 어찌 그들을 범하였느냐?”
輅曰:
「吾與死人語,何所畏耶!」
관로가 말하였다.
“죽은 사람에게 말하였는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舅問其故。輅曰:
「鄧颺行步,筋不束骨,脈不制肉,起立傾倚,若無手足:
此為鬼躁之相。
何晏視候,魂不守宅,血不華色,精爽煙浮,容若槁木:
此為鬼幽之相。
二人早晚必有殺身之禍,何足畏也?」
외숙이 그 까닭을 물으니 관로가 말하였다.
“등양이 걸을 때, 근육이 뼈를 바로잡지 못하고, ‘맥’이 살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일어서면 몸이 기울어지니, 마치 손발이 없는 듯합니다. 이것은 鬼躁의 相입니다.
하안을 살펴보면, 그 넋이 몸을 지키지 못하고, 혈색이 좋지 않고, 精爽이 연기처럼 부유하여, 그 용모가 마치 마른 나무와 같습니다. 이것은 鬼幽의 상입니다.
두 사람에게 조만간 틀림없이 자신의 몸을 죽이는 재앙이 있을 텐데 무엇을 족히 두려워하겠습니까?”
其舅大罵輅為狂子而去。
그 외숙이 관로를 미치광이라고 크게 꾸짖고 떠났다.
卻說
曹爽嘗與何晏、鄧颺等畋獵。
한편,
조상이 전에 하안, 등양 등과 더불어 사냥을 다녔다.
其弟曹羲諫曰:
「兄威權太甚,而好出外游獵,倘為人所算,悔之無及.」
아우 曹羲가 간하였다.
“형의 威權太甚한데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즐기니, 이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암산을 당하면 悔之無及일 터입니다.”
爽叱曰:
「兵權在吾手中,何懼之有?」
조상이 꾸짖었다.
“병권이 내 수중에 있거늘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司農桓範亦諫,不聽。
司農 桓範도 간하지만 듣지 않았다.
時魏主曹芳,改正始十年為嘉平元年。
이때 위주 조방은 정시 10년을 嘉平 원년으로 개원하였다.
曹爽一向專權,不知仲達虛實。
조상이 줄곧 권력을 專斷하지만 사마의의 허실을 알지 못하였다.
適魏主除李勝為青州刺史,即令李勝往辭仲達,就探消息。
마침 위주가 李勝을 青州刺史로 임명하니, 조상이 이승을 중달에게 작별 인사차 보내면서, 소식을 염탐하도록 하였다.
勝徑到太傅府中,早有門吏報入。
이승이 곧장 태부의 부중으로 가자, 문지기가 즉시 알렸다.
司馬懿謂二子曰:
「此乃曹爽使來探吾病之虛實也.」
사마의가 두 아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조상이 시켜서 내 病之虛實을 탐지하러 온 것이구나.”
乃去冠散髮,上床擁被而坐;又令二婢扶策,方請李勝入府。
곧 去冠散髮하고, 침상으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앉는다. 또한 두 여종에게 자신을 扶策하게 하였다. 그제야 이승을 府中으로 들인다.
勝至床前拜曰:
「一向不見太傅,誰想如此病重。
今天子命某為青州刺史,特來拜辭.」
이승이 침상 앞으로 와서 절하였다.
“그동안 태부를 뵙지 못하였지만 누가 이렇게 병환이 위중한 줄 알았겠습니까?
이제 천자께서 저를 청주자사로 임명하셔서, 특별히 작별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懿佯答曰:
「并州近朔方,好為之備.」
사마의가 거짓으로 답하였다.
“并州는 朔方과 가까우니 준비를 잘하시오.”
勝曰:
「除青州刺史,非并州也.」
이승이 말하였다.
“청주자사에 제수됐습니다. 병주가 아닙니다.”
懿笑曰:
「你方從并州來?」
사마의가 웃는다.
“그대가 방금 병주에서 왔다고?”
勝曰:
「山東青州耳.」
이승이 말하였다.
“산동의 청주에서 왔습니다.”
懿大笑曰:
「你從青州來也.」
사마의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청주에서 왔구나!”
勝曰:
「太傅如何病得這等了?」
이승이 말하였다.
“태부께서 어쩌다가 병세가 이렇게 됐습니까?”
左右曰:
「太傅耳聾.」
좌우가 말하였다.
“태부께서 귀가 먹었소.”
勝曰:
「乞紙筆一用.」
이승이 말하였다.
“종이와 붓을 한 번 쓰겠습니다.”
左右取紙筆與勝。
勝寫畢,呈上。
좌우가 종이와 붓을 가져다가 이승에게 주니 이승이 글을 써서 바쳤다.
懿看之,笑曰:
「吾病得耳聾了。
此去保重.」
사마의가 보더니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병 때문에 귀가 먹었소. 이제 가면 부디 保重하시오.”
言訖,以手指口。
말을 마치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켰다.
侍婢進湯,懿將口就之,湯流滿襟,乃作哽噎之聲曰:
「吾今衰老病篤,死在旦夕矣。
二子不肖,望君教之。
君若見大將軍,千萬看覷二子!」
시비가 탕을 바치니 사마의가 입을 갖다 대지만, 탕이 흘러서 소매를 가득 적셨다. 이에 사마의가 목이 메어 말하였다.
“내가 이제 노쇠하고 병이 위독하여 죽음이 단석에 있소.
두 아들이 불초하니 바라건대 그대가 가르쳐주구려.
대장군을 만나거든 제발 두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말해주시오.”
言訖,倒在床上,聲嘶氣喘。
말을 마치고 침상에 쓰러지는데 목이 쉬고 숨을 헐떡였다.
李勝拜辭仲達,回見曹爽,細言其事。
이승이 중달에게 拜辭하고 조상에게 돌아가서 그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爽大喜曰:
「此老若死,吾無憂矣!」
조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 노인이 죽으면 내게 아무 걱정이 없겠다!”
司馬懿見李勝去了,遂起身謂二子曰:
「李勝此去,回報消息,曹爽必不忌我矣。
只待他出城畋獵之時,方可圖之.」
사마의는 이승이 떠나자 곧 몸을 일으켜서 두 아들에게 말하였다.
“이승이 이번에 가서 回報消息이면 조상은 틀림없이 나를 시기하지 않을 터이다.
그의 出城畋獵之時만을 기다려서, 즉시 일을 도모해야겠다.”
不一日,曹爽請魏主曹芳去謁高平陵,祭祀先帝。
하루가 되지 않아, 조상이 위주 조방에게 高平陵에 행차하여 祭祀先帝하기를 청하였다.
大小官僚,皆隨駕出城。
대소 관료가 모두 어가를 수행하여 성을 나섰다.
爽引三弟,並心腹人何晏等,及御林軍護駕正行,司農桓範叩馬諫曰:
「主公總典禁兵,不宜兄弟皆出。
倘城中有變,如之奈何?」
조상이 동생 셋과 아울러 心腹人 하안 등과 어림군을 이끌고 어가를 호위해 가는데, 사농 환범이 말을 못 가게 붙잡고 간하였다.
“주공께서 禁兵을 총지휘하는데 형제가 모두 나감은 옳지 않습니다.
성에서 변란이 생기면 어찌하시겠습니까?”
爽以鞭指而叱之曰:
「誰敢為變!
再勿亂言!」
조상이 채찍으로 가리키며 꾸짖는다.
“누가 감히 변란을 일으키겠느냐!
다시는 허튼소리를 하지 말라!”
當日司馬懿見爽出城,心中大喜,即起舊日手下破敵之人,并家將數十,引二子上馬,徑來謀殺曹爽。
이날 사마의는 조상이 성을 떠남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즉시 舊日手下破敵之人과 아울러 家將 수십 명을 동원하고, 두 아들을 이끌고 말을 타고 곧바로 조상을 謀殺하러 갔다.
正是:
閉戶忽然有起色,驅兵自此逞雄風。
상황이 정히 이렇다:
문을 닫은 채 좋은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다가, 군을 이끌고 이제 위풍당당하게 나서네.
未知曹爽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조상의 목숨이 어떻게 될까? 다음 회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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