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삼국연의105회-錦囊計와 承露盤 본문
第一百零五回
武侯預伏錦囊計, 魏主拆取承露盤.
제105회
武侯가 錦囊計를 예비하고, 魏主가 承露盤을 뜯어 오다.
卻說
楊儀聞報前路有兵攔截,忙令人哨探。
한편,
양의는 앞길에 어떤 군사가 가로막는다는 보고를 듣고, 황망히 사람을 시켜 哨探하게 하였다.
回報說魏延燒絕棧道,引兵攔路。
돌아와 보고하기를, 위연이 燒絕棧道하고 引兵攔路라고 하였다.
儀大驚曰:
「丞相在日,料此人久後必反,誰想今日果然如此。
今斷吾歸路,當復如何?」
양의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승상이 살아계실 때, 이 사람이 먼 훗날 틀림없이 배반하겠다고 예측하셨지만, 누가 오늘 과연 이렇게 될 줄 알았겠소?
이제 우리의 귀로를 끊었으니 어찌해야겠소?”
費褘曰:
「此人必先捏奏天子,誣吾等造反,故燒絕棧道,阻遏歸路。
吾等亦當表奏天子,陳魏延反情,然後圖之.」
비위가 말하였다.
“이자가 틀림없이 먼저 천자께 거짓으로 아뢰기를 吾等이 造反하였다고 무고하고, 燒絕棧道하여 우리의 귀로를 막았소.
우리도 역시 表奏天子하여 위연의 反情을 상주한 뒤 그를 도모해야 하겠소.”
姜維曰:
「此間有一小徑,名槎山;
雖崎嶇險峻,可以抄出棧道之後。
一面寫表奏聞天子,一面將人馬望槎山小道進發.」
강유가 말하였다.
“이곳에 지름길이 하나 있는데 槎山이라 합니다.
비록 崎嶇險峻하지만 棧道之後로 우회할 수 있소.
한편으로 寫表하여 奏聞天子하면서 한편으로 인마를 槎山小道로 출발시켜야 하겠습니다.”
且說
後主在成都,寢食不安,動止不寧;
한편,
後主는 성도에 머무는데 寢食이 불안하고 행동거지가 불편하다.
夜作一夢,夢見成都錦屏山崩倒;
밤에 꿈을 하나 꾸니 꿈속에서 성도의 錦屏山이 무너진다.
遂驚覺,坐而待旦,聚集文武,入朝圓夢。
놀라서 깨어나고는 앉은 채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문무관료를 조정으로 불러 모아 圓夢하게 하였다.
譙周曰:
「臣昨夜仰觀天文,見一星,赤色,光芒有角,自東北落於西南,主丞相有大凶之事。
今陛下夢山崩,正應此兆.」
초주가 말하였다.
“신이 어젯밤 천문을 우러러 관측했는데, 어느 별이 적색인데 날카로운 빛을 내며 동북쪽으로부터 서남쪽으로 떨어지니 승상에게 大凶之事가 있을 징조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산이 무너지는 꿈을 꾸셨다니 참으로 이 징조와 맞습니다.”
後主愈加驚怖。忽報李福到,後主急召入問之。
후주가 더욱 놀라고 두려워하는데 이복이 왔다고 보고하였다. 후주가 급히 불러들여 그에게 물었다.
福頓首泣奏丞相已亡;
이복이 승상이 이미 죽었음을 頓首泣奏하였다.
將丞相臨終言語,細述一遍。
승상 임종의 言語를 자세히 진술하였다.
後主聞言大哭曰:
「天喪我也!」
후주가 듣고 크게 곡하며 말하였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哭倒於龍床之上。
곡하다가 용상 위로 쓰러졌다.
侍臣扶入後宮。
侍臣이 후궁으로 부축해 들어갔다.
吳太后聞之,亦放聲大哭不已。
오태후가 듣고 역시 목놓아 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多官無不哀慟,百姓人人涕泣。
많은 관리에 애통해하지 않는 이가 없고 백성들은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後主連日傷感,不能設朝。
후주가 連日 비통해 設朝하지 못하였다.
忽報魏延表奏楊儀造反,群臣大駭,入宮啟奏後主。
홀연히 보고하기를, 위연이 표를 올려 양의가 造反했음을 아뢰었다고 하였다. 신하들이 깜짝
놀라 궁궐로 들어가 후주에게 아뢰었다.
時吳太后亦在宮中。
이때 오태후도 궁중에 있었다.
後主聞奏大驚,命近臣讀魏延表。
후주가 신하들의 상주를 듣고 깜짝 놀라서, 近臣에게 위연의 表文을 읽게 하였다.
其略曰:
<征西大將軍南鄭侯臣魏延,誠惶誠恐,頓首上言:
楊儀自總兵權,率眾造反,劫丞相靈柩,欲引敵人入境。
臣先燒絕棧道,以兵守禦。
謹此奏聞。>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정서대장군 남정후 신 위연이 참으로 황공하오나 머리를 조아려 말씀드립니다.
양의는 스스로 병권을 장악하여 率眾造反하고 승상의 靈柩를 빼앗아 敵人을 이끌고 入境하려 합니다.
신이 우선 燒絕棧道하여 병력으로써 守禦하고 있습니다.
삼가 이렇게 아룁니다.>
讀畢,後主曰:
「魏延乃勇將,足可拒楊儀等眾,何故燒絕棧道?」
읽기를 마치자 후주가 말하였다.
“위연은 勇將이라서 족히 양의 등의 무리를 막을 수 있거늘, 무슨 까닭으로 잔도를 불태운단 말이오?”
吳太后曰:
「嘗聞先帝有言,孔明識魏延腦後有反骨,每欲斬之;
因憐其勇,故姑留用。
今彼奏楊儀等造反,未可輕信。
楊儀乃文人,丞相委以長史之任,必其人可用。
今日若聽此一面之詞,楊儀等必投魏矣。
此事當深慮遠議,不可造次.」
오 태후가 말하였다.
“일찍이 선제께서 말씀하심을 들었는데, 공명이 위연의 腦後에 反骨이 있음을 알고 매번 그를 참하려 하였으나, 그 용맹을 아껴서 우선 쓴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가 양의 등이 造反하였다고 아뢰었으나 함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양의는 文人으로 승상이 長史之任을 맡겼으니 틀림없이 그 사람은 쓸 만합니다.
오늘 만약 此一面之詞를 들으면 양의 등은 틀림없이 위나라에 투항할 터입니다.
이 일은 마땅히 深慮遠議해야지 성급해서는 안 됩니다.”
眾官正商議間,忽報長史楊儀,有緊急表到。
관리들이 상의하고 있는데 장사 양의가 긴급히 올린 표가 당도했다고 보고하였다.
近臣拆表讀曰:
근신이 표를 뜯어서 읽었다.
<長史綏軍將軍臣楊儀,誠惶誠恐,頓首謹表:
丞相臨終,將大事委於臣,照依舊制,不敢變更,使魏延斷後,姜維次之。
今魏延不遵丞相遺語,自提本部人馬,先入漢中,放火燒斷棧道,劫丞相靈車,謀為不軌。
變起倉卒,謹飛章奏聞。>
<長史 綏軍將軍 양의가 참으로 황공하옵게도 머리를 조아려 삼가 표를 올립니다.
승상이 임종에 대사를 신에게 위임하며, 옛 제도를 따르고 감히 변경하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저는 위연이 斷後하게 하고 강유를 그 밑에 두었습니다.
이제 위연이 승상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本部人馬 이끌고 한중으로 먼저 들어가서 불을 질러 잔도를 끊고, 丞相靈車 빼앗으려 하며 不軌를을 도모합니다.
변란이 倉卒간에 일어나서 삼가 급하게 章奏해 아뢰옵니다.>
太后聽畢,問:
「卿等所見若何?」
태후가 듣고 나서 물었다.
“경들의 소견은 어떻소?”
蔣琬奏曰:
「以臣愚見,楊儀為人,雖稟性過急,不能容物;至於籌度糧草,參贊軍機,與丞相辦事多時,今丞相臨終,委以大事,決非背反之人。
魏延平日恃功務高,人皆下之。
儀獨不假借,延心懷恨。
今見儀總兵,心中不服,故燒棧道,斷其歸路,又誣奏而圖陷害。
臣願將全家良賤,保楊儀不反;實不敢保魏延.」
장완이 아뢰었다.
“신의 愚見으로는, 양의는 사람됨이 비록 稟性過急하고 不能容物입니다.
糧草를 준비하고 軍機를 보좌함에 승상과 함께 일을 처리한 적이 많아서 승상이 임종에 대사를 위임했으니, 결코 背反之人이 아닙니다.
위연이 평소에 恃功務高하니 남들이 모두 그를 경멸했습니다.
유독 양의가 그를 가차 없이 대하니 위연이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었습니다.
이제 양의가 병력을 총지휘하자 위연이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그런 까닭으로 잔도를 불태워 귀로를 차단하고 또 誣奏하여 모해하려 꾀합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온 집안의 良賤을 걸고 양의가 배반하지 않음을 보증합니다.
참으로 감히 위연을 보증하지는 않겠습니다.”
董允亦奏曰:
「魏延自恃功高,常有不平之心,口出怨言。
向所以不即反者,懼丞相耳。
今丞相新亡,乘機作亂,勢所必然。
若楊儀才幹敏達,為丞相所任用,必不背反.」
동윤도 아뢰었다.
“위연이 공이 높음을 자부하며 늘 不平之心을 품고 입으로 怨言을 내뱉곤 했습니다.
예전에 즉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한 까닭은 승상을 두려워했을 따름입니다.
이제 승상이 갓 사망하자, 乘機作亂하니 이러한 형세는 필연입니다.
양의의 才幹이 민첩하고 뛰어나서 승상에게 임용되었으니 틀림없이 배반하지 않을 터입니다.”
後主曰:
「若魏延果反,當用何策禦之?」
후주가 말하였다.
“위연이 정말 반역했다면 무슨 계책으로 막아야 하겠소?”
蔣琬曰:
「丞相素疑此人,必有遺計授與楊儀。
若儀無恃,安能退入谷口乎?
延必中計矣。
陛下寬心.」
장완이 말하였다.
“승상이 평소 그 사람을 의심했으니 틀림없이 계책을 양의에게 남겼을 터입니다.
양의가 믿는 것도 없이 어찌 골짜기로 들어왔겠습니까?
위연은 필시 계책에 걸려들 터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不多時,魏延又表至,告稱楊儀反了。
오래지 않아 위연이 다시 표를 보내 도착하였는데, 양의가 반역했다고 하였다.
正覽表之間,楊儀又表到,奏稱魏延背反。
표를 읽는 사이에 양의가 다시 표를 보내 도착했는데 위연이 배반했다고 아뢴다.
二人接連具表,各陳是非。
두 사람이 잇달아 표를 갖춰 제각기 시비를 말하였다.
忽報費褘到。後主召入.
비위가 왔다고 보고하니, 후주가 불러들였다.
褘細奏魏延反情。後主曰:
「若如此,且令董允假節釋勸,用好言撫慰.」
비위가 위연의 反情을 자세히 아뢰니 후주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선 동윤에게 부절을 주어 해결하게 하되 좋은 말로 달래야겠소.”
允奉詔而去。
동윤이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떠났다.
卻說
魏延燒斷棧道,屯兵南谷,把住隘口,自以為得計;
한편
위연은 燒斷棧道하고 屯兵南谷하고 把住隘口하여 스스로 계책이 성공했다고 여겼다.
不想楊儀、姜維,星夜引兵抄到南谷之後。
뜻밖에도 양의와 강유가 한밤중에 병력을 이끌고 우회하여 南谷之後에 도착하였다.
儀恐漢中有失,令先鋒何平引三千兵先行。
양의는 한중을 잃을까 염려하고 先鋒 何平더러 군사 3천을 이끌고 먼저 가게 하였다.
儀同姜維等引兵扶柩望漢中而來。
양의가 강유 등과 함께 군을 이끌고 扶柩하여 한중으로 갔다.
且說
何平引兵徑到南谷之後,擂鼓吶喊。
한편,
하평은 군을 이끌고 지름길로 남곡의 뒤로 가서 군사들을 시켜 북을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게 하였다.
哨馬飛報魏延,說楊儀令先鋒何平,引兵自槎山小路抄來搦戰。
哨馬가 위연에게 급보하기를, 양의가 선봉장 하평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이끌고 槎山의 지름길로 질러와서 싸움을 건다고 하였다.
延大怒,急披挂上馬,提刀引兵來迎。
위연이 크게 노하여 급히 갑옷을 차려입고 말을 타고 칼을 쥐고 군을 이끌고 맞서러 갔다.
兩陣對圓,何平出馬大罵曰:
「反賊魏延安在?」
양쪽 진영이 둥글게 대치하자, 하평이 말을 타고 나와서 크게 욕하였다.
“반적 위연은 어디 있느냐?”
延亦罵曰:
「汝助楊儀造反,何敢罵我!」
위연도 욕하였다.
“네놈이 양의를 도와 반역하면서 어찌 감히 나를 욕하느냐!”
平叱曰:
「丞相新亡,骨肉未寒,汝焉敢造反!」
하평이 질타하였다.
“승상께서 갓 돌아가시어 골육이 아직 식지 않았거늘 네놈이 어찌 감히 造反하느냐!”
乃揚鞭指川兵曰:
「汝等軍士,皆是西川之人,川中多有父母妻子,兄弟親朋。
丞相在日,不曾薄待汝等,今不可助反賊,宜各回家鄉,聽候賞賜.」
이에 채찍을 들어 서천의 군사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너희 군사들은 모두가 서천 사람이니 서천에 부모와 처자, 형제와 친구가 많을 것이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때 너희를 薄待한 적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反賊을 돕지 말고 마땅히 고향으로 돌아가 포상을 기다려라.”
眾軍聞言,大喊一聲,散去大半。
군사들이 이 말을 듣자, 크게 함성을 한바탕 지르며 태반이 흩어져 가버렸다.
延大怒,揮刀縱馬,直取何平。
위연이 크게 노해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하평을 곧장 공격하였다.
平挺鎗來迎。
하평이 창을 꼬나쥐고 맞붙으러 나왔다.
戰不數合,平詐敗而走,延隨後趕來。
戰不數合에 하평이 詐敗而走하니 위연이 뒤따라 쫓아갔다.
眾軍弓弩齊發,延撥馬而回。
군사들이 弓弩齊發하니 위연이 말을 돌려 돌아갔다.
見眾軍紛紛潰敗,延轉怒,拍馬趕上,殺了數人,卻只止遏不住;
군사들이 紛紛潰敗함을 보고 위연이 더욱 노하여, 말에 박차를 가하고 뒤쫓아 몇 사람을 죽였으나 달아남을 막지 못하였다.
只有馬岱所領三百人不動。
다만 마대가 이끄는 3백 인만 움직이지 않는다.
延謂岱曰:
「公真心助我,事成之後,決不相負.」
위연이 마대에게 말하였다.
“공께서 진심으로 나를 도우니, 事成之後에 절대로 저버리지 않겠소.”
遂與馬岱追殺何平。
곧 마대와 더불어 하평을 추격하였다.
平引兵飛奔而走。
하평이 군을 이끌고 급히 달아났다.
魏延收聚殘軍,與馬岱商議曰:
「我等投魏,若何?」
위연은 남은 군사들을 거둬들이고 마대와 상의하였다.
“우리가 위나라로 투항함이 어떻겠소?”
岱曰:
「將軍之言,不智甚也。
大丈夫何不自圖霸業,乃輕屈膝於人耶?
吾觀將軍智勇足備,兩川之士,誰敢抵敵?
吾誓同將軍先取漢中,隨後進攻西川.」
“장군의 말씀은 몹시 지혜롭지 못합니다.
대장부가 어찌 스스로 패업을 도모하지 않고 함부로 남에게 무릎을 꿇겠습니까?
제가 보건대, 장군께서 智勇足備인데 兩川之士중 누가 감히 저항하겠습니까?
내 맹세코 장군과 함께하여 먼저 한중을 차지하고 뒤따라 서천으로 진공하겠습니다.”
延大喜,遂同馬岱引兵直取南鄭。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곧 마대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남정을 점령하러 갔다.
姜維在南鄭城上,見魏延、馬岱耀武揚威,風擁而來。
강유가 南鄭城 위에서 바라보니, 위연과 마대가 耀武揚威하며 바람처럼 몰려왔다.
維急令拽起吊橋。
강유가 급히 내려 적교를 들어 올렸다.
延、岱二人,大叫:
「早降!」
위연과 마대 두 사람이 크게 외쳤다.
“어서 항복하라!”
姜維令人請楊儀商議曰:
「魏延勇猛,更兼馬岱相助,雖然軍少,何計退之?」
강유가 사람을 보내 양의를 청하여 상의하였다.
“위연이 용맹한데다가 마대가 도우니, 비록 저들의 군사가 적지만 무슨 계책으로 물리치겠소?”
儀曰:
「丞相臨終,遺一錦囊,囑曰:
『若魏延造反,臨陣對敵之時,方可開拆,便有斬魏延之計。』
今當取出一看.」
양의가 말하였다.
“승상께서 임종에 遺一錦囊하시며 부탁하시길,
‘만약 위연이 造反하여 臨陣對敵之時 열어보 면 斬魏延之計가 있으리라.’
라고 하셨소.
지금 마땅히 꺼내서 한번 봐야겠소.”
遂出錦囊拆開看時,題曰:
「待與魏延對敵,馬上方許拆開.」
곧 錦囊을 꺼내고 끌러서 읽으려는데, 겉에 이렇게 적혀 있다.
‘위연과 대적할 때까지 기다려서 말 위에서 비로소 열기를 허락하노라.’
維大喜曰:
「既丞相有戒約,長史可收執。
吾先引兵出城,列為陣勢。公可便來.」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승상께서 경계하고 약속하였으니 長史께서 소지하십시오.
내가 먼저 군을 이끌고 성을 나가서 陣勢를 벌일 테니, 공께서 곧 나오시오.”
姜維披挂上馬,綽鎗在手,引三千軍,開了城門,一齊衝出,鼓聲大震,排成陣勢。
강유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창을 손에 쥐고 군사 3천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일제히 돌진하여 북소리를 크게 울리며 陣勢를 벌였다.
維挺鎗立馬於門旗之下,高聲大罵曰:
「反賊魏延!
丞相不曾虧汝,今日如何背反?」
강유가 창을 꼬나쥐고 門旗之下에 말을 세우고 소리높여 크게 꾸짖었다.
“반적 위연아!
승상께서 너를 버리신 적이 없거늘 오늘 어찌 배반하느냐?”
延橫刀勒馬而言曰:
「伯約,不干你事,只教楊儀來!」
위연이 칼을 비껴들고 말을 멈추고 말하였다.
“백약! 너와 상관없으니 어서 양의를 오게 하라!”
儀在門旗影裏,拆開錦囊視之,如此如此。
양의가 문기 그늘에서 금낭을 열어 보니 여차여차 하라고 적혀 있었다.
儀大喜,輕騎而出,立馬陣前,手指魏延而笑曰:
「丞相在日,知汝久後必反,教我隄備,今果應其言。
汝敢在馬上連叫三聲『誰敢殺我』!便是真大丈夫,吾就獻漢中城池與汝.」
양의가 크게 기뻐하며 홀로 말을 타고 나가서 군영 앞에서 말을 세우고 손가락으로 위연을 가리키고 웃으며 말하였다.
“丞相在日에 네가 먼훗날 틀림없이 배반할 줄 아시고 나더러 방비하라 지시하셨는데 이제 과연 그 말이 맞는구나.
네가 감히 말 위에서 연달아 세 번 ‘누가 감히 나를 죽이랴!’라고 외치면 진정한 대장부이니, 내 곧 漢中城池를 네게 바치겠다. ”
延大笑曰:
「楊儀匹夫聽著!
若孔明在日,吾尚懼三分;他今已亡,天下誰敢敵我?
休道連叫三聲,便叫三萬聲,亦有何難?」
위연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양의 필부는 들어라!
공명이 살아 있을 적에는 내가 그를 좀 두려워했다만, 이제 그가 이미 죽었는데 천하에 누가 감히 나를 대적하겠느냐?
세 번 잇달아 외침은 말할 것도 없고, 3만 번 외침도 무엇이 어렵겠느냐?”
遂提刀按轡,於馬上大叫曰:
「誰敢殺我?」
곧 칼을 들고 말고삐를 잡은 채 말 위에서 크게 외쳤다.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
一聲未畢,腦後一人厲聲而應曰:
「吾敢殺汝!」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머리 뒤에서 한 사람이 성난 목소리로 응답하였다.
“내가 너를 죽이겠다!”
手起刀落,斬魏延於馬下。
手起刀落에 위연을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眾皆駭然。
군사들이 깜짝 놀랐다.
斬魏延者,乃馬岱也。
위연을 벤 사람은 바로 마대였다.
原來孔明臨終之時,授馬岱以密計,只待魏延喊叫時,便出其不意斬之;
알고 보니, 공명이 臨終之時에 마대에게 密計를 주기를, 위연이 고함지를 때를 기다려서 出其不意로 그를 베라고 한 것이다.
當日楊儀讀罷錦囊,已知伏下馬岱在彼,故依計而行,果然殺了魏延。
그날 양의가 금낭(속의 계책을)을 읽고 나서, 이미 마대를 저쪽에 숨겨 놓았음을 알았기 때문에 계책대로 행하여 과연 위연을 죽였다.
後人有詩曰:
훗날 누군가 시를 지었다.
<諸葛先機識魏延,已知日後反西川。
錦囊遺計人難料,卻見成功在馬前。>
<제갈량이 위연을 미리 알아보고, 훗날 서천을 배반할 줄 알았네
錦囊遺計를 사람들이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마대가 바로 말 위에서 공을 세웠구나>
卻說
董允未及到南鄭,馬岱已斬了魏延,與姜維合兵一處。
한편,
동윤이 미처 남정에 이르지 못하여, 마대가 이미 위연을 죽이고 강유와 合兵一處하였다.
楊儀具表星夜奏聞後主。
後主降旨曰:
「既已名正其罪,仍念前功,賜棺槨葬之.」
양의가 표를 갖추어 한밤에 후주에게 아뢴다. 후주가 교지를 내리며 말하였다.
“이미 명분에 맞게 그 죄를 다스렸지만, 念前功하여 棺槨을 하사하니 장례를 치르시오.”
楊儀等扶孔明靈柩到成都,後主引文武官僚,盡皆挂孝,出城二十里迎接。
양의 등이 공명의 영구를 성도로 옮기니, 후주가 문무관료를 이끌고 나오는데 모두 상복을 입은 채 성 밖 20리를 나와서 영접하였다.
後主放聲大哭。
후주가 放聲大哭하였다.
上至公卿大夫,下及山林百姓,男女老幼,無不痛哭,哀聲震地。
위로 공경대부에서 아래로 山林百姓과 男女老幼에 이르기까지 無不痛哭이니, 구슬픈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後主命扶柩入城,停於丞相府中。
후주가 명령하여 運柩하여 입성하고 丞相府中에 안치하였다.
其子諸葛瞻守孝居喪。
그 아들 諸葛瞻이 守孝居喪하였다.
後主還朝,楊儀自縛請罪。
후주가 조정에 돌아오니 양의가 스스로 결박하고 죄를 청하였다.
後主令近臣去其縛曰:
「若非卿能依丞相遺教,靈柩何日得歸,魏延如何得滅。
大事保全,皆卿之力也.」
후주가 근신을 시켜 去其縛하게 하고 말하였다.
“만약 경이 능히 승상의 遺教를 따르지 못헸으면 영구는 언제 돌아오고 위연은 어떻게 멸하였겠소.
大事를 보전함은 모두 경의 덕분이오.”
遂加楊儀為中軍師。
곧 양의에게 軍師의 직위를 더해주었다.
馬岱有討逆之功,即以魏延之爵爵之。
마대는 討逆之功이 있어 즉시 魏延之爵을 이어받았다.
儀呈上孔明遺表。後主覽畢,大哭,降旨卜地安葬。
양의가 孔明遺表를 바치니 후주가 읽고 나서 大哭하고, 교지를 내려 葬地를 잘 골라 안장하도록 하였다.
費褘奏曰:
「丞相臨終,命葬於定軍山,不用牆垣磚石,亦不用一切祭物.」
비위가 아뢴다.
“승상이 임종에 명하기를, 정군산에 안장하되 牆垣磚石을 쓰지 말고 一切祭物도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後主從之。
후주가 이를 따랐다.
擇本年十月吉日,後主自送靈柩至定軍山安葬。
이해 10월의 길일을 골라 후주가 몸소 정군산까지 靈柩를 따라가서 안장하였다.
後主降詔致祭,諡號忠武侯;令建廟於沔陽,四時享祭。
후주가 조서를 내려 제사하고, 忠武侯라는 시호를 내린다. 沔陽에 묘당을 지어, 四時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後杜工部有詩曰:
훗날 杜工部가 시를 지었다.
<丞相祠堂何處尋?錦官城外柏森森。
映階碧草自春色,隔葉黃鸝空好音。
三顧頻煩天下計,兩朝開濟老臣心。
出師未捷身先死,長使英雄淚滿襟!
<승상의 사당을 어디서 찾을까? 錦官城 밖 잣나무 우거진 곳이네.
계단을 덮은 푸른 풀 참으로 봄빛이고, 나뭇잎 사이 꾀꼬리 아름답게 지저귀네
삼고초려로 천하의 계책을 간청하니, 두 임금을 開濟한 늙은 신하의 충심이여.
出師未捷에 먼저 세상을 뜨니, 길이 영웅들이 눈물로 소매를 적시게 하네.>
又杜工部詩曰:
두공부의 다른 시도 있다.
<諸葛大名垂宇宙,宗臣遺像肅清高。
三分割據紆籌策,萬古雲霄一羽毛。
伯仲之間見伊呂,指揮若定失蕭曹。
運移漢祚終難復,志決身殲軍務勞。>
<제갈공명 큰 명성 우주에 드리우네, 宗臣의 遺像 속의 고결한 기상에 저절로 숙연하네.
천하를 셋으로 나눠 갖는 계책 내놓으니, 만고에 높은 하늘 날아오른 깃털 같구나
이윤이나 여상과 伯仲之間이고, 정해진 듯 지휘하니 소하와 조참도 빛을 잃네
운수 다한 漢室을 끝내 회복하기 어려운데, 뜻은 굳건만 몸이 죽으니 軍務가 과로하네.>
卻說
後主回到成都,忽近臣奏曰:
「邊庭報來,東吳令全綜引兵數萬,屯於巴丘界口,未知何意.」
한편,
후주가 성도로 돌아오니 근신이 아뢰었다.
“변방에서 보고하기를, 동오가 全綜에게 군사 수만을 이끌고 巴丘의 입구에 주둔하라 했다는데 그 속셈을 아직 모르겠습니다.”
後主驚曰:
「丞相新亡,東吳負盟侵界,如之奈何?」
후주가 놀라서 말하였다.
“승상이 갓 세상을 떴는데 동오가 負盟侵界하니 어찌해야겠소?”
蔣琬奏曰:
「臣敢保王平、張嶷引兵數萬屯於永安,以防不測。
陛下再命一人去東吳報喪,以探其動靜.」
장완이 아뢰었다.
“신이 감히 보증하오니, 왕평과 장의에게 군사 수만을 이끌고 永安에 주둔하여 不測을 방비하게 해야 합니다.
폐하께서 또한 사람을 동오로 보내 報喪함으로써 그 동정을 살피게 하십시오.”
後主曰:
「須得一舌辨之士為使.」
후주가 말하였다.
“모름지기 一舌辨之士를 사자로 삼아야 하겠소.”
一人應聲而出曰:
「微臣願往.」
이 말에 맞춰 한 사람이 나오며 말하였다.
“微臣이 가겠습니다.”
眾視之,乃南陽安眾人,姓宗、名預,字德豔;官任參軍右中郎將。
사람들이 보니, 南陽安眾人으로 성명은 宗預이고 자는 德豔으로 벼슬은 參軍右中郎將이었다.
後主大喜,即命宗預往東吳報喪,兼探虛實。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종예에게 동오로 가서 報喪하고 겸하여 허실을 정탐하라고 명령하였다.
宗預領命,徑到金陵,入見吳主孫權。
종예가 명령을 받고, 곧장 금릉으로 가서 오주 손권을 만났다.
禮畢,只見左右人皆著素衣。
인사를 마치고 보니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素衣을 입고 있었다.
權作色而言曰:
「吳蜀已為一家,卿主何故而增白帝之守也?」
손권이 낯빛을 바꿔 말하였다.
“오나라와 촉나라가 이미 한집안인데 경의 주군은 무슨 까닭으로 白帝之守를 증강하오?”
預曰:
「臣以為東益巴丘之戍,西增白帝之守,皆事勢宜然,俱不足以相問也.」
종예가 말하였다.
“신이 헤아리기에, 동에서 巴丘之戍를 증강하니 서에서 白帝之守를 강화함이니, 모두 事勢에 마땅하므로 모두 물을 것이 못 됩니다.”
權笑曰:
「卿不亞於鄧芝.」
손권이 웃으며 말하였다.
“경은 등지보다 못하지 않구려.”
乃謂宗預曰:
「朕聞諸葛丞相歸天,每日流涕,令官僚盡皆挂孝。
朕恐魏人乘喪取蜀,故增巴丘守兵萬人,以為救援,別無他意也.」
그러더니 종예에게 말하였다.
“짐은 제갈 승상이 歸天함을 듣고 매일 눈물을 흘리며 관료들에게 모두 상복을 입으라고 했소.
짐은 魏人이 居喪을 틈타서 촉을 공격할까 염려하여, 巴丘守兵 1만을 늘려서 촉을 구원하려할 뿐 별도로 다른 뜻은 없소.”
預頓首拜謝。權曰:
「朕既許以同盟,安有背義之理?」
종예가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니 손권이 말하였다.
“짐이 동맹을 받아들였으니 어찌 背義之理가 있겠소?”
預曰:
「天子因丞相新亡,特命臣來報喪.」
종예가 말하였다.
“천자께서 승상이 갓 별세하였기 때문에, 報喪하러 일부러 신을 보냈습니다.”
權遂取金鈚箭一枝折之,設誓曰:
「朕若負前盟,子孫絕滅!」
손권이 곧 金鈚箭一枝를 가져다 부러뜨리며 맹세하였다.
“짐이 만약 지난날의 맹약을 어긴다면 자손들이 絕滅할 터이오!”
又命使齎香帛奠儀,入川致祭。
또한 사자에게 香帛과 奠儀를 가지고 서천으로 들어가서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宗預拜辭吳主,同吳使還成都,入見後主,奏曰:
「吳主因丞相新亡,亦自流涕,令群臣皆挂孝。
其益兵巴丘者,恐魏人乘虛而入,別無異心。
今折箭為誓,並不背盟.」
종예가 오주를 작별하고 오나라 사자와 함께 성도로 돌아가서 후주를 만나 아뢰었다.
“오주는 승상이 갓 별세하였기 때문에, 역시 눈물을 흘리며 신하들에게 모두 상복을 입으라 했습니다.
파구에 병력을 증강한 것은, 魏人이 틈을 타고 침입할까 우려하기 때문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합니다.
이제 화살을 꺾어 맹세했으니 결코 동맹을 배신하지 않을 터입니다.”
後主大喜,重賞宗預,厚待吳使去訖。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종예를 크게 포상하고 오나라 사자를 厚待하여 떠나보냈다.
遂依孔明遺言,加蔣琬為丞相大將軍,錄尚書事;加費褘為尚書令,同理丞相事;
곧 공명의 유언에 따라, 장완을 丞相 大將軍 錄尚書事로 임명하고, 비위를 尚書令으로 임명하여 승상의 사무를 함께 처리하게 하였다.
加吳懿為車騎將軍,假節督漢中;
오의를 車騎將軍으로 임명하고 부절을 주어 한중의 병력을 총독하게 하였다.
姜維為輔漢將軍平襄侯,總督諸處人馬,同吳懿出屯漢中,以防魏兵;
강유를 輔漢將軍 平襄侯로 임명하여 각처의 인마를 총독하고 오의와 함께 한중으로 나가서 주둔하여 위군을 막게 하였다.
其餘將校,各依舊職。
기타 장교들은 각각 舊職을 따랐다.
楊儀自以為年宦先於蔣琬,而位出琬下;
양의는 스스로 나이와 벼슬이 장완보다 앞선다고 여겼으나 직위가 장완의 밑이 되었다.
且自恃功高,未有重賞,口出怨言,謂費褘曰:
「昔日丞相初亡,吾若將全師投魏,寧當寂寞如此耶!」
게다가 자신의 공이 높다고 자부했는데 큰 포상이 없자 입으로 怨言을 뱉으며 비위에게 말하였다.
“지난날 승상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내가 만약 將全師投魏했다면, 차라리 이렇게 寂寞한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터이오!”
費褘乃將此言具表密奏後主。後主大怒,命將楊儀下獄勘問,欲斬之。
비위가 이 말을 표를 갖추어 후주에게 은밀히 아뢰니, 후주가 크게 노하여, 곧 양의를 하옥하고 심문해서 참수하려 하였다.
蔣琬奏曰:
「儀雖有罪,但日前隨丞相多立功勞,未可斬也。
當廢為庶人.」
장완이 아뢰었다.
“양의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日前에 승상을 수행하며 공로를 많이 세웠으니 참해서는 아니 됩니다.
폐하여 서인으로 삼음이 마땅합니다.”
後主從之,遂貶楊儀赴漢中嘉郡為民。
후주가 그 말을 좇아 양의의 벼슬을 빼앗고 한중의 嘉郡으로 보내고 평민으로 만들었다.
儀羞慚自刎而死。
양의가 부끄러워 自刎해 죽었다.
蜀漢建興十三年,魏主曹叡青龍三年,吳主孫權嘉禾四年,三國各不興兵。
蜀漢 건흥 13년, 위주 조예의 청룡 3년, 오주 손권의 가화 4년, 삼국이 각기 군대를 일으키지 않았다.
單說
魏主封司馬懿為太尉,總督軍馬,安鎮諸邊。
각설하고,
위주는 사마의를 태위로 봉하여 군마를 총독하고, 諸邊을 안정시키게 하였다.
懿拜謝回洛陽去訖。
사마의가 사례하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魏主在許昌,大興土木,建蓋宮殿;又於洛陽造朝陽殿、太極殿,築總章觀,俱高十丈;又立崇華殿、青霄閣、鳳凰樓、九龍池,命博士馬鈞監造,極其華麗,雕梁畫棟,碧瓦金磚,光輝耀日。
위주가 허창에서 大興土木하여 궁전을 지었. 또한 낙양에 朝陽殿, 太極殿을 짓고, 總章觀을 세우는데 모두 높이가 열 길에 달하였다. 또한 崇華殿、青霄閣、鳳凰樓、九龍池를 세우면서 박사 馬鈞을 시켜 건설을 감독하니 지극히 화려하였다. 조각한 들보와 그림을 그린 마룻대, 푸른 기와와 황금색 벽돌로 꾸미니 태양처럼 빛났다.
選天下巧匠三萬餘人,民夫三十餘萬,不分晝夜而造。
천하의 뛰어난 장인 3만여 명과 인부 30여만 명을 뽑아서 不分晝夜로 건축하였다.
民力疲困,怨聲不絕。
백성들의 힘이 피곤하여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叡又降旨起土木於芳林園,使公卿皆負土樹木於其中。
조예가 다시 교지를 내려서 芳林園에 토목 공사를 일으키라 하며, 公卿들도 모두 그 안에서 흙을 져 나르고 나무를 심게 하였다.
司徒董尋上表切諫曰:
<伏自建安以來,野戰死亡,或門殫戶盡,雖有存者,遺孤老弱;
若今宮室狹小,欲廣大之,猶宜隨時,不妨農務,況作無益之物乎?
陛下既尊群臣,顯以冠冕,被以文繡,載以華輿,所以異於小人也;
今又使負木擔土,沾體塗足,毀國之光,以崇無益,甚無謂也。
孔子云:
「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
無忠無禮,國何以立?
臣知言出必死;而自比於牛之一毛,生既無益,死亦何損。
秉筆流涕,心與世辭。
臣有八子,臣死之後,累陛下矣。
不勝戰慄待命之至!>
사도 董尋이 표를 올려 간절히 간하였다.
<삼가 建安( 한나라 헌제 시대. 서기 196-219년 )이래, 백성들이 싸움터에서 죽거나 온 집안이 몰살되어, 비록 살아남았더라도 遺孤老弱입니다.
만약 지금 宮室狹小하여 그것을 광대하게 만들고 싶더라도 마땅히 隨時하여 不妨農務해야 하거늘, 하물며 아무 無益之物을 짓겠습니까?
폐하께서 신하들을 존중하여 冠冕으로 지위를 나타내고 무늬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화려한 수레를 타게 한 것은, 소인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을 부려서 나무와 흙을 져 나르고 몸을 적시고 발에 흙을 묻히게 하여, 국가의 광영을 훼손하여 무익한 것을 존숭하시니 심히 말할 것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임금이 신하를 예를 갖춰서 부리면, 신하는 충성을 바쳐 임금을 섬긴다.’
라고 하셨습니다.
충성도 없고 예의도 없다면 국가가 어찌 존립하겠습니까?
신은 이런 말씀을 올리면 틀림없이 죽을 줄 알고 있지만, 저는 牛之一毛와 같으니 살아도 무익한데 죽어서 무슨 손해가 있겠습니까?
붓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세상에 이별을 고합니다.
신에게 여덟 아들이 있사온데, 신이 죽은 뒤에 폐하께 누가 될 터입니다.
몸이 떨려옴을 이기지 못하며, 어명을 기다리겠습니다!>
叡覽表怒曰:
「董尋不怕死耶!」
조예가 표를 읽고 나서 노하여 말하였다.
“동심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냐!”
左右奏請斬之。叡曰:
「此人素有忠義,今且廢為庶人。
再有妄言者必斬!」
左右가 그를 처형하라고 주청하니 조예가 말하였다.
“그 사람은 평소 忠義가 있으니 이제 일단 폐하여 서인으로 삼겠소.
또다시 이런 망령되이 말하는 자는 반드시 참하겠소!”
時有太子舍人張茂,字彥材,亦上表切諫,叡命斬之。
이때 태자의 舍人인 張茂 字 彥材도 표를 올려 간절하게 간하니, 조예가 그를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即日召馬鈞問曰:
「朕建高臺峻閣,欲與神仙往來,以求長生不老之方.」
이날 조예가 마균을 불러 물었다.
“짐이 高臺峻閣을 짓고 신선과 왕래하며, 長生不老之方을 구하고자 하오.”
鈞奏曰:
「漢朝二十四帝,惟武帝享國最久,壽算極高,蓋因服天上日精月華之氣也。
嘗於長安宮中,建柏梁臺;臺上立一銅人,手捧一盤,名曰『承露盤』,接三更北斗所降沆瀣之水。
其名曰『天漿』,又曰『甘露』。
取此水用美玉為屑,調和服之,可以反老還童.」
마균이 아뢰었다.
“한나라의 24 황제들 가운데 오로지 무제께서 가장 오래 享國하고 수명이 매우 길었는데, 모두 天上의 日精과 月華의 氣를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장안의 궁중에 柏梁臺를 짓고 대 위에 銅人 하나를 세웠습니다. 손으로 承露盤이라는 쟁반을 들게 하고, 3경에 북두성이 내리는 沆瀣의 물을 받아서 모았습니다.
天漿 혹은 甘露라고 불렀습니다.
이 물을 얻고 美玉을 갈아서 調和하고 복용하여 이로써 反老還童하였습니다.”
叡大喜曰:
「汝今可引人夫星夜至長安,拆取銅人,移置芳林園中.」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대는 인부들을 이끌고 한밤에라도 장안으로 가서 동인을 뜯어서 방림원 안으로 옮겨 놓으시오.”
鈞領命,引一萬人至長安,令周圍搭起木架,上柏梁臺去。
마균이 명령을 받고, 1만 명을 이끌고 장안으로 가서 주위에 木架를 쌓게 하고 백량대에 올 라갔다.
不移時間,五千人連繩引索,旋環而上。
순식간에 5천 명이 밧줄을 연결해서 끌고 주위를 에워싸며 올라갔다.
那柏梁臺高二十丈,銅柱圓十圍。
이 백량대의 높이는 스무 길이고, 구리 기둥의 둘레는 열 아름이었다.
馬鈞教先拆銅人。
마균이 동인을 먼저 떼어내라고 지시하였다.
多人併力拆下銅人來,只見銅人眼中潸然淚下。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동인을 떼어내는데 동인의 눈에서 줄줄 눈물이 흘렀다.
眾皆大驚。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忽然臺邊一陣狂風起處,飛砂走石,急若驟雨;
홀연히 백량대 주변에서 한바탕 광풍이 불고, 모래가 날고 돌이 구름이 마치 소나기가 퍼붓는 듯하였다.
一聲響喨,就如天崩地裂,臺傾柱倒,壓死千餘人。
한차례 쇳 소리가 울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하더니 백량대가 기울어지고 기둥이 쓰러져 천여 명이 깔려 죽었다.
鈞取銅人及金盤回洛陽,入見魏主,獻上銅人、承露盤。
마균이 동인과 황금쟁반을 가지고 낙양으로 돌아가서 위주를 만나 동인과 승로반을 헌상하였다.
魏主問曰:
「銅柱安在?」
魏主가 물었다.
“구리 기둥은 어디 있소?”
鈞奏曰:
「柱重百萬斤,不能運至.」
마균이 아뢰었다.
“기둥의 무게가 백만 근이라서 옮겨올 수 없었습니다.”
叡令將銅柱打碎,運來洛陽,鑄成兩個銅人,號為「翁仲」,列於司馬門外;
조예가 영을 내리기를, 구리 기둥을 때려 부숴서 낙양으로 옮겨 鑄成兩個銅人하고 翁仲이라 이름 붙이고, 司馬門 밖에 세우게 하였다.
又鑄銅龍鳳兩個:
龍高四丈,鳳高三丈餘,立在殿前。
又於上林苑中,種奇花異木,蓄養珍禽怪獸。
다시 구리로 용과 봉황을 주조하니, 용은 높이가 네 길이고 봉황은 높이 세 길이 넘는데 함께 궁전 앞에 세웠다.
또 상림원에 기이한 꽃과 나무를 심고, 진기한 금수를 기르게 하였다.
少傅楊阜上表諫曰:
<臣聞堯尚茅茨,而萬國安居;禹卑宮室,而天下樂業。
及至殷周,或堂崇三尺,度以九筵耳。
古之聖帝明王,未有以宮室高麗,凋敝百姓之財力者也。
桀作璇室象廄,紂為傾宮鹿臺,致喪社稷。
楚靈以築章華而身受其禍。
秦始皇作阿房宮而殃及其子,天下背叛,二世而滅。
夫不度萬民之力,以從耳目之欲,未有不亡者也。
陛下當以堯、舜、禹、湯、文、武為法,以桀、紂、楚、秦為誡;
而乃自暇自逸,惟宮室是飾,必有危亡之禍矣。
君作元首,臣為股肱,存亡一體,得失同之。
臣雖駑怯,敢忘諍臣之義?
言不切至,不足以感陛下,謹叩棺沐浴,伏候重誅。>
少傅 楊阜가 표를 올려서 간하였다.
<신이 듣자오니, 요임금은 초가에 살았으나 萬國이 평안했고 우임금은 초라한 궁실에 살았으나 천하의 백성들이 생업을 즐겼습니다.
은나라와 주나라 시대에 이르러서야, 堂이 간혹 3척이 더 높고, 넓이가 9筵( 대자리 / 대자리 한 개를 깔 수 있는 넓이 )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옛날의 聖帝明王은 宮室高麗로써 百姓之財力을 凋敝하게 한 자가 없었습니다.
걸이 璇室象廄하고, 주가 傾宮과 鹿臺를 짓더니 사직을 상실함에 이르렀습니다.
楚의 영왕이 章華를 건축하더니 그 몸이 재앙을 입었습니다.
진시황이 아방궁을 짓자 재앙이 그 아들에게 미치고, 천하가 배반하여 겨우 2세에 멸망했습니다.
무릇 萬民之力을 헤아리지 않고 耳目之欲를 따르고서 망하지 않는 이는 아직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요, 순, 우, 탕, 문, 무를 본받으시고, 걸, 주, 진, 초의 폭군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안일에 빠져서 오로지 궁실을 장식하였다면 틀림없이 危亡之禍가 있을 것입니다.
군주는 元首이고 신하는 股肱이라서 存亡一體이고 得失同之입니다.
신이 비록 우둔하고 겁이 많지만, 감히 諍臣之義를 잊겠습니까?
제 말씀이 적절하지 않아서 폐하를 감동케 할 수 없습니다.
삼가 棺을 준비하고 목욕재계하고 삼가 重誅(극형)를 기다리겠습니다.>
表上,叡不省,只催督馬鈞建造高臺,安置銅人、承露盤;
표를 올리지만, 조예는 반성하지 않고 마균을 독촉하여 建造高臺하고 安置銅人、承露盤하였다.
又降旨廣選天下美女,入芳林園中。
또 교지를 내려서 널리 천하의 미녀를 선발하여 방림원에 들였다.
眾官紛紛上表諫諍,叡俱不聽。
관리들이 분분히 표를 올려 간쟁하지만 조예는 모두 듣지 않았다.
卻說
曹叡之后毛氏,乃河內人也;先年叡為平原王時,最相恩愛;
한편,
조예의 황후 毛氏는 하내 사람이었다. 일찍이 조예가 평원왕이던 시절에 몹시 恩愛하였다.
及即帝位,立為后;後叡因寵郭夫人,毛后失寵。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황후로 책봉됐다. 뒤에 조예가 곽 부인을 총애하니 모황후는 총애를 잃었다.
郭夫人美而慧,叡甚嬖之,每日取樂,月餘不出宮闥.
곽부인이 아름답고 총명하니 조예가 몹시 사랑하여 매일 쾌락을 찾아 한 달이 넘도록 궁궐을 나오지 않았다.
是歲春三月,芳林園中百花爭放,叡同郭夫人到園中賞玩飲酒。
이해 봄 3월에 방림원에 百花爭放하자 조예가 곽 부인과 함께 방림원을 찾아 賞玩飲酒하였다.
郭夫人曰:
「何不請皇后同樂?」
곽부인이 말하였다.
“어찌해 황후를 불러서 함께 즐기지 않으십니까?”
叡曰:
「若彼在,朕涓滴不能下咽也.」
조예가 말하였다.
“그 사람이 있으면 짐은 한 방울도 목에 넘어가지 않소.”
遂傳諭宮娥,不許令毛后知道。
곧 宮娥에게 일러서 모황후가 알지 못하도록 하였다.
毛后見叡月餘不入正宮,是日引十餘宮人,來翠花樓上消遣,只聽得樂聲嘹喨,乃問曰:
「何處奏樂?」
모황후는 조예가 한 달여 정궁에 들지 않자, 이날 십여 명의 궁인을 이끌고 翠花樓에서 노니는데,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므로 물었다.
“어디에서 음악을 연주하오?”
一宮官啟曰:
「乃聖上與郭夫人於御花園中賞花飲酒.」
宮官 한 사람이 아뢰었다.
“성상께서 곽부인과 더불어 御花園에서 賞花飲酒입니다.”
毛后聞之,心中煩惱,回宮安歇。
모황후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번뇌하며 궁으로 돌아가 휴식하였다.
次日,毛皇后乘小車出宮遊玩,正迎見叡於曲廊之間,乃笑曰:
「陛下昨遊北園,其樂不淺也.」
다음날 모황후가 작은 수레를 타고 궁을 나와서 놀러 가다가 마침 曲廊之間에 조예와 마주치고 웃으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어제 북원에서 노시던데 그 즐거움이 얕지 않더군요!”
叡大怒,即命擒昨日侍奉諸人到,叱曰:
「昨遊北園,朕禁左右不許使毛后知道,何得又宣露!」
조예가 크게 노하여 어제 侍奉했던 사람들을 잡아들여 질타하였다.
“어제 북원에서 놀 때, 짐이 좌우에게 모후가 알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렸거늘 어찌 또 누설됐느냐!”
喝令宮官將諸侍奉人盡斬之。
궁관에게 소리 질러 명령하기를, 시봉했던 사람들을 모조리 처형하라고 하였다.
毛后大驚,回車至宮,叡即降詔賜毛皇后死,立郭夫人為皇后。
모황후가 깜짝 놀라서 수레를 돌려 궁궐로 돌아오니, 조예가 즉시 교지를 내려 모황후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고 곽 부인을 황후로 세웠다.
朝臣莫敢諫者。
조정의 신하에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忽一日,幽州刺史毋丘儉上表,報稱遼東公孫淵造反,自號為燕王,改元紹漢元年,建宮殿,立官職,興兵入寇,搖動北方。
그런데 어느 날 幽州刺史 毋丘儉이 표를 올려 보고하기를, 遼東의 公孫淵이 造反하여 스스로 燕王이라 일컫고, 紹漢元年으로 改元하고 궁전을 짓고 관직을 만들고 興兵入寇하여 북방을 뒤흔든다고 하였다.
叡大驚,即聚文武官僚,商議起兵退淵之策。
조예가 깜짝 놀라 즉시 문무관료를 모아서 起兵退淵之策을 상의하였다.
正是:
纔將土木勞中國,又見干戈起外方。
정히 이런 상황이다.
토목 공사로 중국을 괴롭히는데 ,또 외방에서 전쟁이 일어나는구나.
未知何以禦之,且看下文分解。
어떻게 그들을 막아낼까? 다음 회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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