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의

三國演義(삼국연의)79회-曹植과 劉封

耽古樓主 2023. 2. 9. 03:54

第七十九回
兄逼弟曹植賦詩 姪陷叔劉封伏法.
제89회
형이 동생을 핍박하니 曹植이 시를 짓고, 조카가 숙부를 함정에 빠트리니 劉封은 법에 죽다.


卻說
曹丕聞曹彰提兵而來驚問眾官
각설하고
조비는 조창이 提兵하여 옴을 듣고 놀라서 관리들에게 물었다.

一人挺身而出願往折服之
어떤 사람이 몸을 뽑아 나와서 그를 꺾어서 복종시키겠다고 하였다.

眾視其人乃諫議大夫賈逵也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니 諫議大夫 賈逵였다.

曹丕大喜即命賈逵前往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가규에게 명하여 가게 하였다.

逵領命出城迎見曹彰
가규는 명을 받고 성을 나가 조창을 맞았다.

彰問曰
先王璽綬安在?
조창이 물었다.
선왕의 璽綬는 어디에 있는가?”

逵正色而言曰
家有長子國有儲君先王璽綬非君侯之所宜問也.
가규가 正色하고 말하였다.
집에는 長子가 있고, 나라에는 儲君이 있으니 선왕의 璽綬를 군후께서 마땅히 물을 바가 아닙니다.”

彰默然無語乃與賈逵同入城
조창은 묵묵히 말이 없이 가규와 함께 入城하였다.

至宮門前逵問曰
君侯此來欲奔喪
欲爭位耶?
宮門에 이르러 가규가 물었다.
군후께서 여기에 온 것은 奔喪하려 함입니까?
왕위를 다투려 함입니까?”

彰曰
吾來奔喪別無異心.
조창이 말하였다.
나는 奔喪하러 왔지 따로 다른 마음은 없다.”

逵曰
既無異心何故帶兵入城?
가규가 말하였다.
다른 마음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군사를 데리고 入城합니까?”

彰即時叱退左右將士隻身入內拜見曹丕
조창은 즉시 좌우의 將士를 소리쳐 물리치고, 隻身으로 入內하여 조비를 뵈었다.

兄弟二人相抱大哭
형제 두 사람이 서로 끌어안고 大哭하였다.

曹彰將本部軍馬盡交與曹丕
조창은 本部軍馬를 모조리 조비에게 주었다.

丕令彰回鄢陵自守彰拜謝而去
조비는 조창에게 언릉으로 돌아가 지키게 하니, 조창이 拜謝하고 떠났다.

於是曹丕安居王位改建安二十五年為延康元年
이에 조비는 탈 없이 왕위에 올라 건안 25년을 延康 원년으로 바꾸었다.

封賈詡為太尉華歆為相國王朗為御史大夫
가후를 봉하여 太尉로 삼고, 하후를 相國으로 삼고, 王朗御史大夫로 삼았다.

大小官僚盡皆陞賞
대소 관료들이 모두 승진하고 상을 받았다.

諡曹操曰武王葬於鄴郡高陵
조조의 시호를 무왕이라 하고 鄴郡高陵에 장사지냈다.

令于禁董治陵事
우금에게 董治陵事하게 하였다.

禁奉命到彼只見陵屋中白粉壁上圖畫關雲長水渰七軍擒獲于禁之事
우금이 명을 받들어 그곳에 도착하니, 능의 흰색 가루의 벽에 관운장이 물로 7군을 잠기게 하고 우금을 사로잡은 일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畫雲長儼然上坐龐德憤怒不屈于禁拜伏於地哀求乞命之狀
운장은 儼然히 위에 앉아 있고, 방덕은 분노하여 굽히지 않았으나, 우금은 땅에 엎드려 哀求乞命之狀을 그려 놓았다.

原來曹丕以于禁兵敗被擒不能死節既降敵而復歸心鄙其為人故先令人圖畫陵屋粉壁故意使之往見以愧之
알고 보니 조비는 우금이 패전하여 사로잡혔을 때 死節하지 못하고 적에게 항복하고 돌아왔으므로 마음속으로 그 사람됨을 비루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먼저 사람들에게 陵屋의 가루 벽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일부러 그에게 가서 보게 함으로써 부끄럽게 여기도록 한 것이었다.

當下于禁見此畫像又羞又惱氣憤成病不久而死
우금은 이 畫像을 보자마자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하고 한편으로는 고뇌하다가, 氣憤이 병이 되었고 오래지 않아 죽었다.

後人有詩歎曰
후인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三十年來說舊交可憐臨難不忠曹
知人未向心中識畫虎今從骨裏描>
<30년 동안 사귀었다고 말했는데, 가련하다! 어려움에 임하여 조조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사람을 알되 마음속은 알지 못하고, 범을 그리되 뼈를 따라 그리겠는가?>


卻說
華歆奏曹丕曰
鄢陵侯已交割軍馬赴本國去了
臨淄侯植蕭懷侯熊二人竟不來奔喪理當問罪.
각설하고
화흠이 조비에게 아뢰었다.
언릉후는 군마를 인도하였으니 본국으로 가게 하였습니다.
임치후 조식, 소회후 조웅 두 사람은 끝내 奔喪하지 않았으니 이치상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합니다.”

丕從之即分遣二使往二處問罪
조비가 그 말을 따라 두 사신을 나누어 두 곳에 보내 죄를 묻게 하였다.

不一日蕭懷使者回報
蕭懷侯曹熊懼罪自縊身死.
하루가 되지 않아 소회에 갔던 사신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소회후 조웅이 죄를 두려워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丕令厚葬之追贈蕭懷王
조비는 후하게 장사지내게 하고 蕭懷王이라 추증하였다.

又過了一日臨淄使者回報
臨淄侯日與丁儀丁廙兄弟二人酣飲悖慢無禮聞使命至臨淄侯端坐不動
丁儀罵曰
昔日先王本欲立吾主為世子被讒臣所阻今王喪未遠便問罪於骨肉何也?』
丁廙又曰
據吾主聰明冠世自當承嗣大位今反不得立汝那廟堂之臣何不識人才若此!』
臨淄侯因怒叱武士將臣亂棒打出.
또 하루가 지나 임치에 갔던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였다.
임치후는 날마다 丁儀丁廙 형제 두 사람과 술을 마시며 悖慢無禮(패악하고 오만하며 예의가 없음)하였습니다. 使命이 왔음을 듣고도 임치후는 단정히 앉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정의가 욕하며 말하기를 지난날 선왕은 본래 우리 주공을 세워 세자로 삼으려 하였는데 참소하는 신하에게 저지당하였고, 지금 왕은 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骨肉에게 죄를 물으니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정이가 또 말하기를 우리 주공의 총명함이 세상의 으뜸임을 勘案하면, 당연히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데 지금 도리어 즉위하지 못하였다. 너는 어느 廟堂의 신하이길래 어찌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함이 이와 같은가!’라고 하였습니다.
임치후가 노하여 무사를 질책하여, 신을 몽둥이로 어지럽게 치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丕聞之大怒即令許褚領虎衛軍三千火速至臨淄擒曹植等一干人來
조비가 듣고 크게 노하여 허저에게 虎衛軍 3천을 거느리고 불같이 빠르게 임치에 가서 조식 등 관련자를 잡아 오게 하였다.

褚奉命引軍至臨淄城
허저는 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임치성에 이르렀다.

守將攔阻褚立斬之直入城中無一人敢當鋒銳逕到府堂
지키는 장수가 막으니 허저가 즉시 베고 성으로 들어가니 한 사람도 예봉을 감히 당할 자가 없었고 곧바로 府堂에 이르렀다.

只見曹植與丁儀丁廙等盡皆醉倒
조식과 정의, 정이 등이 모두 술에 취해 엎어져 있었다.

褚皆縛之載於車上並將府下大小屬官盡行拿解鄴郡聽候曹丕發落
허저가 모두 묶어서 수레에 태우고, 아울러 府下大小屬官을 모두 업군으로 압송하여 조비의 發落聽候하였다.

丕下令先將丁儀丁廙等盡皆誅戳
조비가 명령을 내려 먼저 정의, 정이 등을 모두 誅戳하였다.

丁儀字正禮丁廙字敬禮沛國人乃一時文士
정의는 자가 正禮이고, 정이는 자가 敬禮인데 패국 사람으로 一時文士였다.

及其被殺人多惜之
그들이 죽임을 당하자, 애석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卻說
曹丕之母卞氏聽得曹熊縊死心甚悲傷忽又聞曹植被擒其黨丁儀等已殺大驚
각설하고
조비의 어머니 변씨는 조웅이 목을 매고 죽었음을 듣고 매우 슬퍼하고 있었는데 또 조식이 잡히고, 그 무리 정의 등이 이미 죽임을 당하였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急出殿召曹丕相見
급히 대전에 나와 조비를 불러 만났다.

丕見母出殿慌來拜謁
조비는 어머니가 대전에 나옴을 보고 황망히 가서 절하고 뵈었다.

卞氏哭謂丕曰
汝弟植平生嗜酒疏狂蓋因自恃胸中之才故爾放縱
汝可念同胞之情存其性命
吾至九泉亦瞑目矣.
변씨가 곡하며 조비에게 일렀다.
너의 동생 식이 평생 술을 즐기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함은 대체로 胸中之才를 믿었기 때문이니 너는 놓아 주어라.
너는 同胞之情을 생각하여 그 생명을 보존해줌이 옳다.
내가 구천에 이르러도 또한 편안히 눈을 감겠다.”

丕曰
兒亦深愛其才安肯害他
今正欲戒其性耳
母親勿憂.
조비가 말하였다.
저 또한 그의 재주를 깊이 아끼는데, 어찌 그를 해치려 하겠습니까?
지금 그 성품을 경계할 따름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卞氏灑淚而入
변씨가 눈물을 흘리며 들어갔다.

丕出偏殿召曹植入見
조비는 偏殿으로 나와 조식을 불러들였다.

華歆問曰
適來莫非太后勸殿下勿殺子建乎?
화흠이 물었다.
방금 태후께서 전하에게 자건을 죽이지 말라고 권하였습니까?”

丕曰
.
조비가 말하였다.
그러하다.”

歆曰
子建懷才抱智終非池中物
若不早除必為後患.
화흠이 말하였다.
자건은 懷才抱智하니, 끝내 池中物이 아닐 터입니다.
일찍 제거하지 않으시면 필시 後患이 되겠습니다.”

丕曰
母命不可違.
조비가 말하였다.
어머니의 명을 어길 수 없소.”

歆曰
人皆言子建出口成章臣未深信
主上可召入以才試之
若不能則殺之若果能則貶之以絕天下文人之口.
화흠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자건은 입을 열면 문장을 이룬다고 말하나 신은 깊이 믿지 못하겠습니다.
주상께서는 불러 들어오면 재능을 시험해 보십시오.
하지 못하면 죽이시고, 과연 할 수 있으면 내치시어 천하 문인들의 말을 끊으십시오.”

丕從之
조비가 그 말을 따랐다.

須臾曹植入見惶恐伏拜請罪
잠시 후 조식이 들어와서 뵙고 두려워하며 엎드려 절하며 죄를 청하였다.

丕曰
吾與汝情雖兄弟義屬君臣
汝安敢恃才蔑禮
昔先君在日汝常以文章誇示於人吾深疑汝必用他人代筆
吾今限汝行七步吟詩一首
若果能則免一死若不能則從重治罪決不寬恕.
조비가 말하였다.
나와 너는 정으로는 비록 형제이나 의리로는 君臣이다.
너는 어찌하여 감히 恃才蔑禮하는가?
옛날 선군이 살아 계실 때 너는 항상 문장으로써 사람들에게 과시하였으나, 나는 네가 필시 남이 대신 쓰게 하였으리라 깊이 의심하였다.
나는 지금 네가 7를 가는 동안 를 읊도록 期限을 주겠다.
과연 가능하면 죽음을 면할 터이고, 하지 못하면 무겁게 죄를 다스려 결단코 용서하지 않겠다.”

植曰
願乞題目.
조식이 말하였다.
제목을 청합니다.”

時殿上懸一水墨畫畫著兩隻牛鬥於土牆之下一牛墜井而亡
이때 대전에 하나의 水墨畫가 걸려 있었는데, 두 마리 소가 흙담 아래서 싸우다가 한 마리 소가 우물에 떨어져 죽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丕指畫曰
即以此畫為題
詩中不許犯著 二牛鬥牆下一牛墜井死字樣.
조비가 그림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그림을 제목으로 삼겠다.
시에 두 마리 소가 담장 아래서 싸우다가 한 마리 소가 우물에 떨어져 죽는다.’라는 字樣을 써서는 안 된다.”

植行七步其詩已成
조식이 7를 걷는 동안 시가 이미 이루어졌다.

詩曰
<兩肉齊道行頭上帶凹骨
相遇由山下欻起相搪突
二敵不俱剛一肉臥土窟
非是力不如盛氣不洩畢>
시에 일렀다.
<두 마리의 고깃덩이가 나란히 길을 가는데, 머리 위에 오목한 뼈를 둘렀구나.
산 아래를 지나다 서로 만나서, 갑자기 서로 치고 나가려 하네.
두 적이 모두 굳세지 못해, 한 고기는 토굴에 누웠다.
이는 힘이 못해서가 아니라, 성대한 기운을 내지 못했을 뿐이다.>

曹丕及群臣皆驚丕又曰
七步成章吾猶以為遲
汝能應聲而作詩一首否?
조비와 신하들이 깜짝 놀랐다. 조비가 또 말하였다.
일곱 걸음에 문장을 이루었으나 나는 오히려 늦었다고 여긴다.
너는 듣자마자 시 한 수를 지을 수 있겠느냐?”

植曰:
願即命題.
조식이 말하였다.
즉시 주제를 명하십시오.”

丕曰:
吾與汝乃兄弟也以此為題
亦不許犯著兄弟字樣.
조비가 말하였다.
나와 너는 형제이다. 이로써 주제로 삼는다. 또한 형제라는 글귀를 쓰지 말라

植略不思索即口一首曰:
조식은 조금도 思索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한 수를 읊었다.
<煮豆燃豆萁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相煎何太急>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시 같은 뿌리에서 났는데, 어찌 이리도 급히 삶아대는가!>

曹丕聞之潸然淚下
조비는 그것을 듣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其母卞氏從殿後出曰
兄何逼弟之甚耶?
그 어머니 변씨가 대전 뒤에서 나와 말하였다.
형은 어찌 이리 동생을 핍박함이 심한가?”

丕慌忙離坐告曰:
國法不可廢耳.
조비가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하였다.
국법을 폐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於是貶曹植為安鄉侯
이리하여 조식을 낮추어 안향후로 삼았다.

植拜辭上馬而去
조식은 하직하고 말에 올라 떠났다.

曹丕自繼位之後法令一新威逼漢帝甚於其父
조비는 왕위를 이은 후부터 법령을 一新하였고, 위력으로 漢帝를 핍박함이 그 아버지보다 심하였다.

早有細作報入成都
일찍이 세작이 있어 성도에 보고하였다.

漢中王聞之大驚即與文武商議曰:
曹操已死曹丕繼位威逼天子更甚於操
東吳孫權拱手稱臣
孤欲先伐東吳以報雲長之讎次討中原以除亂賊.
한중왕이 듣고 깜짝 놀라서 문무관과 상의하였다.
조조가 죽자 조비가 왕위를 이었는데, 위력으로 천자를 핍박함이 조조보다 심하다.
동오의 손권은 拱手稱臣하였다.
내가 먼저 동오를 정벌하여 운장의 원수를 갚고, 다음으로 중원을 토벌하여 亂賊을 제거하려 한다.”

言未畢廖化出班哭拜於地曰:
關公父子遇害實劉封孟達之罪
乞誅此二賊.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요화가 반열에서 나와 哭拜於地하고 말하였다.
關公父子가 해를 만남은 실로 유봉과 맹달의 죄입니다.
이 두 도적을 주살하기를 바랍니다.”

玄德便欲遣人擒之
현덕이 사람을 보내서 그들을 사로잡아 오게 하려 하였다.

孔明諫曰:
不可
且宜緩圖之
急則生變矣
可升此二人為郡守分調開去然後可擒.
공명이 간하였다.
안 됩니다.
잠시 천천히 도모해야 합니다.
급히 하면 變亂이 생기겠습니다.
이 두 사람을 승진시켜 군수로 삼고 나누어 갈라지게 한 후에 사로잡아야 합니다.”

玄德從之遂遣使陞劉封去守綿竹
현덕이 그 말을 따라 사자를 보내 유봉을 승진시키고 면죽으로 가서 지키게 하였다.

原來彭羕與孟達甚厚聽知此事急回家作書遣心腹人馳報孟達
원래 彭羕은 맹달과 교분이 매우 두터웠는데 이 일을 알게 되자,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서신을 쓰고 심복을 보내어 맹달에게 馳報하였다.

使者方出南門外被馬超巡視軍捉獲解見馬超
심부름꾼이 막 남문 밖으로 나가다가 마초의 巡視軍에 붙잡혀 마초에게 압송되었다.

超審知此事即往見彭羕
마초가 심문하여 이 일을 알고, 팽양에게 가서 만났다.

羕接入置酒相待
팽양이 영접해 들이고 置酒相待하였다.

酒至數巡超以言挑之曰:
昔漢中王待公甚厚今何漸薄也?
술이 몇 순배 돌자 마초가 말로 떠보았다.
옛날 한중왕은 공을 매우 두텁게 대우하였는데, 지금은 어찌 점점 소홀히 대접합니까?”

羕因酒醉恨罵曰:
老革荒悖吾必有以報之!
팽양이 술에 취하여 한탄하며 욕하였다.
老革이 황당하니 내 반드시 보복할 터입니다!”

超又探曰:
某亦懷怨心久矣.
마초가 또 떠보며 말하였다.
내 또한 怨心을 품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羕曰:
公起本部軍結連孟達為外合某領川兵為內應大事可圖也.
팽양이 말하였다.
공이 本部軍을 일으켜 맹달과 결연하여 外合하고, 제가 川兵을 거느리고 內應하면 大事可圖이겠습니다.”

超曰:
先生之言甚當來日再議.
마초가 말하였다.
선생의 말이 매우 합당합니다. 내일 다시 의논하겠습니다.”

超辭了彭羕即將人與書解見漢中王細言其事
마초는 팽양을 하직하고 즉시 사람과 압수한 글을 압송하여 한중왕을 뵙고 그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玄德大怒即令擒彭羕下獄拷問其情
현덕이 크게 노하여 팽양을 잡아 下獄하고 그 실정을 물었다.

羕在獄中悔之無及
팽양이 옥중에서 후회하여도 미칠 수 없었다.

玄德問孔明曰:
彭羕有謀反之意當何以治之?
현덕이 공명에게 물었다.
팽양에게 모반의 뜻이 있었으니 어떻게 다스려야 되겠습니까?”

孔明:
羕雖狂士然留之久必生禍.
공명이 말하였다.
팽양이 비록 狂士이나 오래 머물게 하면 반드시 재앙을 낳을 터입니다.”

於是玄德賜彭羕死於獄
이에 현덕은 팽양을 감옥에서 죽게 하였다.

羕既死有人報知孟達
팽양이 죽자 어떤 사람이 맹달에게 알렸다.

達大驚舉止失錯
맹달이 깜짝 놀라 舉止失錯하였다.

忽使命至調劉封回守綿竹去訖
홀연히 使命이 와서 유봉을 보내어 綿竹을 지키러 가게 하였다.

孟達慌請上庸房陵都尉申耽申儀弟兄二人商議曰:
我與法孝直同有功於漢中王今孝直已死而漢中王忘我前功乃欲見害為之奈何?
맹달이 다급히 上庸房陵都尉 申耽, 申儀 형제 2인을 청하여 상의하였다.
나와 법효직은 함께 한중왕에게 공이 있는데 지금 효직은 이미 죽고, 한중왕은 나의 前功을 잊고 해치려 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耽曰:
某有一計使漢中王不能加害於公.
신탐이 말하였다.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한중왕이 공을 해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達大喜急問何計
맹달이 크게 기뻐하며 급히 무슨 계책인지 물었다.

耽曰:
吾弟兄欲投魏久矣
公可作一表辭了漢中王投魏王曹丕丕必重用
吾二人亦隨後來降也.
신탐이 말하였다.
우리 弟兄에 투항하고자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공께서 표 한 통을 지으시고 한중왕을 하직하고 魏王 조비에게 투항하면 조비는 틀림없이 重用할 것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또한 뒤따라 항복하겠습니다.”

達猛然省悟即寫表一通付與來使
當晚引五十餘騎投魏去了
맹달이 猛然省悟하여, 표 한 통을 써서 온 사자에게 주었다.
그날 늦게 50여 기를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하러 갔다.

使命持表回成都奏漢中王言孟達投魏之事
사명이 표를 가지고 성도에 돌아가서 한중왕에게 아뢰어 맹달이 에 투항한 일을 말하였다.

先主大怒
先主大怒하였다.

覽其表曰:
<臣達伏惟殿下將建伊呂之業追桓文之功大事草創假勢吳楚是以有為之士望風歸順
臣委質以來愆戾山積臣猶自知況於君乎
今王朝英俊鱗集臣內無輔佐之器外無將領之才列次功臣誠足自愧
臣聞范蠡識微浮於五湖舅犯謝罪逡巡河上
夫際會之間請命乞身何哉
欲潔去就之分也
況臣卑鄙無元功巨勳自繫於時竊慕前賢早思遠恥
昔申生至孝見疑於親子胥至忠見誅於君蒙恬拓境而被大刑樂毅破齊而遭讒佞
臣每讀其書未嘗不感慨流涕而親當其事益用傷悼
邇者荊州覆敗大臣失節百無一還
惟臣尋事自致房陵上庸而復乞身自放於外
伏想殿下聖恩感悟愍臣之心悼臣之舉
臣誠小人不能始終
知而為之敢謂非罪
臣每聞交絕無惡聲去臣無怨辭」。
臣過奉教於君子願君王勉之
臣不勝惶恐之至>
그 표를 보니 이러하였다.
신 맹달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伊尹呂尙의 기업을 세우시고, 제환공과 진문공의 공을 쫓아 대사를 창업하시고, 오와 초의 세력을 빌리셨기 때문에 일을 하는 선비들이 풀이 바람을 향해 눕듯이 귀순하였습니다.
신이 귀순한 이래로 허물이 산처럼 쌓였음을 신이 오히려 스스로 알고 있사온데 하물며 임금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지금 대왕의 조정에는 英俊鱗集인데, 신은 안으로 輔佐之器가 없고, 밖으로는 將領之才가 없음에도 공신의 반열에 자리하게 되었으니 진실로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 만합니다.
신이 듣기에 范蠡機微를 알아 五湖에서 떠돌았고, 舅犯은 사죄하고 河上으로 물러났습니다.
대저 적당한 때에 請命乞身은 왜이겠습니까?
떠나고 나아감의 구분을 깨끗이 하고자 해서입니다.
하물며 신은 비루하고 큰 공훈도 없이 시간만 보내는 처지이어서, 삼가 前賢을 사모하며 일찍부터 수치를 멀리할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옛날 신생은 효를 지극히 하였으나 어버이에게 의심을 당하였고, 오자서는 충성을 지극히 하였으나 임금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몽염은 국경을 개척하였으나 큰 형벌을 받았으며, 악의는 제나라를 깨트리고도 아첨하고 참소하는 말을 만났습니다.
신은 매번 그 글을 읽을 때마다 일찍이 마음속으로 감격하고 마음속에 깊이 사무치는 느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음이 없었는데 직접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더욱 서글퍼집니다.
근자에 형주가 무너졌고 대신은 절개를 잃어 백에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신만은 사단을 꾸며 스스로 방릉과 상용에 가서, 다시 물러나서 밖으로 떠나기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성스러운 은혜로 느끼고 깨달으시어 신의 마음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신의 행동을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신은 진실로 소인으로 시작과 마침을 잘하지 못합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니 감히 죄가 아니라 말하겠습니까?
신이 매양 듣기를, ‘사귐을 끊어도 비방하는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떠나는 신하는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신이 임금님께 가르침을 받들기는 틀렸사오나, 군왕께서는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신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玄德看畢大怒曰:
匹夫叛吾安敢以文辭相戲耶!
현덕이 보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필부가 나를 배반하고 어찌 감히 文辭로써 희롱하는가!”

即欲起兵擒之
곧 군사를 일으켜 잡으려 하였다.

孔明曰:
可就遣劉封進兵令二虎相併
劉封或有功或敗績必歸成都而除之可絕兩害.
공명이 말하였다.
유봉에게 進兵하게 하여 두 마리 범이 서로 다투게 해야 합니다.
유봉은 혹 공을 세우거나, 혹 패하거나 필시 성도로 돌아올 터이니, 그때를 이용하여 제거하시면 두 가지 해로움을 끊을 수 있습니다.”

玄德從之遂遣使到綿竹傳諭劉封
현덕이 그 말을 따라 사자를 면죽에 보내어 유봉에게 명을 전하였다.

封受命率兵來擒孟達
유봉이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맹달을 잡으러 갔다.


卻說
曹丕正聚文武議事忽近臣奏曰
蜀將孟達來降.
각설하고
조비가 문무관을 모아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홀연히 근신이 아뢰었다.
蜀將 맹달이 항복해 왔습니다.”

丕召入問曰:
汝此來莫非詐降乎?
조비가 불러들여 물었다.
네가 여기에 옴은 거짓 항복이렷다?”

達曰
臣為不救關公之危漢中王欲殺臣因此懼罪來降別無他意.
맹달이 말하였다.
신이 관공의 위급을 구원하지 않아서 한중왕이 신을 죽이려 하는데, 이 때문에 죄줌이 두려워 항복함이지, 別無他意입니다.”

曹丕尚未准信忽報劉封引五萬兵取襄陽單搦孟達廝殺
조비는 아직도 믿지 못하는데 홀연히 보고하기를, 유봉이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양양을 공격하며, 오직 맹달과 싸우려 도전한다고 하였다.

丕曰:
汝既是真心便可去襄陽取劉封首級來孤方准信.
조비가 말하였다.
네가 真心이라 했으니, 양양에 가서 유봉의 수급을 가지고 와야 내가 바야흐로 믿겠다.”

達曰:
臣以利害說之不必動兵令劉封亦來降也.
맹달이 말하였다.
신이 利害로써 설득하여 動兵할 필요없이 유봉이 항복하도록 하겠습니다.”

丕大喜遂加孟達為散騎常侍建武將軍平陽亭侯領新城太守去守襄陽樊城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맹달을 散騎常侍建武將軍平陽亭侯領新城太守로 삼고 가서 양양과 번성을 지키게 하였다.

原來夏侯尚徐晃已先在襄陽正將收取上庸諸部
알고 보니 하후상, 서황이 이미 먼저 양양에 있으면서 상용의 諸部를 거두려던 참이었다.

孟達到了襄陽與二將禮畢探得劉封離城五十里下寨
맹달이 양양에 도착하여 두 장수와 예를 마치고, 유봉이 성에서 50리 떨어져서 영채를 세우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達即修書一封使人齎赴蜀寨招降劉封
맹달은 곧 글 한 통을 써서 사람을 시켜 蜀寨에 보내어 유봉에게 招降하게 하였다.

劉封覽書大怒曰
此賊誤吾叔侄之義又間吾父子之親使吾為不忠不孝之人也!
유봉이 글을 읽고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이 도적이 吾叔侄之義를 그르치고 또 吾父子之親離間하여 내가 不忠不孝之人이 되게 하는구나!”

遂扯碎來書斬其使
하고는 가지고 온 글을 찢어발기고 그 사자를 하였다.

次日引軍前來搦戰
다음 날 군사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걸었다.

孟達知劉封扯書斬使勃然大怒亦領兵出迎
맹달은 유봉이 扯書斬使함을 알고, 勃然大怒하여 역시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하였다.

兩陣對圓封立馬於門旗下以刀指罵曰:
背國反賊安敢亂言!
兩陣이 둥글게 대치하자 유봉이 門旗 아래 말을 세우고 칼로 가리키며 욕하였다.
나라를 배반한 역적이 어찌 감히 말을 함부로 하느냐?”

孟達曰:
汝死已臨頭還自執迷不省!
맹달이 말하였다.
너는 죽음이 이미 눈앞에 닥쳤는데, 아직도 스스로 잘못을 고집하며 살피지 않는가!”

封大怒拍馬輪刀直奔孟達
유봉이 크게 노하여 말에 박차를 가하고 칼을 휘두르며 곧바로 맹달에게 달려갔다.

戰不三合達敗走
싸운 지 3합이 되지 않아 맹달이 패하여 달아났다.

封乘虛追殺二十餘里一聲喊起伏兵盡出
유봉은 빈틈을 타고 20여 리를 추격하는데, 함성이 한번 일어나며 복병이 모두 뛰어나왔다.

左邊夏侯尚殺來右邊徐晃殺來孟達回身復戰三軍夾攻
왼쪽에서는 하후상이 달려오고, 오른쪽에서는 서황이 달려오고 맹달도 몸을 돌려 다시 싸워, 3군이 협공하였다.

劉封大敗而走連夜奔回上庸背後魏兵趕來
유봉이 大敗하여 달아나 그날 밤 상용으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魏兵이 쫓아왔다.

劉封到城下叫門城上亂箭射下
유봉이 성 아래에 도착하여 문을 열라고 소리치니 성 위에서 마구 화살을 쏘아 내렸다.

申耽在敵樓上叫曰:
吾已降了魏也!
신탐이 敵樓 위에서 고함쳤다.
내가 이미 에 항복하였다.”

封大怒欲要攻城背後追軍將至
유봉이 크게 노하여 성을 공격하려 하는데, 뒤에서 追軍이 곧 이른다.

封立腳不住只得望房陵而奔見城上已盡插魏旗
유봉이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방릉을 향해 달아났으나, 성 위에 모조리 魏旗를 꽂아둠을 보았다.

申儀在敵樓上將旗一颭城後一彪軍出旗上大書右將軍徐晃」。
신의가 敵樓에서 깃발을 한 번 흔들자 성 뒤에서 一彪軍이 나오는데 깃발에는 크게 우장군서황이라 쓰여 있었다.

封抵敵不住急望西川而走
유봉은 대적하지 못하고 급히 서천을 향해 달아났다.

晃乘勢追殺
서황은 승세를 타고 뒤쫓으며 무찔렀다.

劉封部下只剩得百餘騎到了成都入見漢中王哭拜於地細奏前事
유봉의 부하는 단지 100여 기만 남았다. 성도에 당도하여 한중왕을 뵙자, 哭拜於地하고 자세하게 지난 일을 아뢰었다.

玄德怒曰
辱子有何面目復來見吾!
현덕이 노하여 말하였다.
욕된 아들이 무슨 면목으로 다시 와서 나를 보는가?”

封曰
叔父之難非兒不救因孟達諫阻故耳.
유봉이 말하였다.
숙부의 재난은 제가 구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맹달이 간하고 막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玄德轉怒曰
汝須食人食穿人衣
非土木偶人安可聽讒賊所阻!
현덕이 더욱 노하여 말하였다.
너는 모름지기 사람의 밥을 먹고, 사람의 옷을 입는다!
흙과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가 아닌데, 어찌 헐뜯는 도적이 막음을 따랐느냐!”

命左右推出斬之
좌우에게 명하여 끌고 나가 참하게 하였다.

漢中王既斬劉封後聞孟達招之毀書斬使之事心中頗悔
한중왕은 유봉을 참하고 나서, 맹달이 유봉에게 투항하라 권했을 때 毀書斬使之事 뒤에 듣고는 마음속으로 제법 뉘우쳤다.

又哀痛關公以致染病因此按兵不動
또한 관공의 죽음을 슬퍼하다 병이 들었고, 이 때문에 군사를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且說
魏王曹丕自即王位將文武官僚盡皆升賞
각설하고
위왕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 문무관료를 모두 승진시키고 상을 주었다.

遂統甲兵三十萬南巡沛國譙縣大饗先塋
甲兵 30만을 통솔하고 남쪽으로 패국 초현을 巡幸하여 先塋에 크게 제사하였다.

鄉中父老揚塵遮道奉觴進酒效漢高祖還沛之事
향리의 父老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길을 막고 奉觴進酒하여 漢高祖還沛之事를 본떴다.

人報大將軍夏侯惇病危丕即還鄴郡
대장군 하후돈의 병이 위독하다고 보고하자 조비는 업군으로 돌아갔다.

時惇已卒丕為掛孝以厚禮殯葬
그때 하후돈은 이미 죽은 후였다. 조비는 상복을 입고 후한 예로 장례를 치렀다.

是歲八月間報稱石邑縣鳳凰來儀臨淄城麒麟出現黃龍現於鄴郡
이해 8월 사이에 상서로운 징조가 있었는데, 石邑縣에서 봉황이 춤을 추었고, 臨淄城에서는 기린이 출현하였고, 황룡이 업군에 나타났다.

於是中郎將李伏太史丞許芝商議
種種瑞徵乃魏當代漢之兆可安排受禪之禮令漢帝將天下讓於魏王。」
이에 中郎將 李伏太史丞 許芝가 상의하였다.
여러 가지 상서로운 징조는 가 응당 을 대신할 징조이니, 受禪之禮를 베풀어 漢帝가 천하를 魏王에게 禪讓하게 해야 합니다.”

遂同華歆王朗辛毗賈詡劉曄劉廙陳矯陳群桓楷等一班文武官僚四十餘人直入內殿來奏漢獻帝請禪位於魏王曹丕
마침내 화흠, 왕랑, 신비, 가후, 유엽, 유이, 진교, 진군, 환해 등 한 무리의 관료들 40여 인이 바로 내전에 들어가서, 漢獻帝에게 아뢰어 위왕 조비에게 禪位하기를 청하였다.

正是
魏家社稷今將建漢代江山忽已移
바로 이러하다.
魏家의 사직을 지금 막 세워서, 漢代의 강산을 갑자기 옮기네.

未知獻帝如何回答且看下文分解
헌제가 어떻게 회답할까? 下文分解를 또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