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三國演義(삼국연의)54회-吳國太와 劉皇叔 본문
第五十四回
吳國太佛寺看新郎 劉皇叔洞房續佳偶.
제54회
오국태는 절에서 신랑감을 보고, 유황숙은 신방에서 좋은 배필을 맞이하다.
卻說
孔明聞魯肅到,與玄德出城迎接,接到公廨,相見畢。
한편,
공명은 노숙이 옴을 알고 현덕과 함께 성을 나가 영접하고 공관으로 데려가서 인사를 마쳤다.
肅曰:
「主公聞令姪棄世,特具薄禮,遣某前來致祭。
周都督再三致意劉皇叔、諸葛先生.」
노숙이 말하였다.
“주공께서 令姪棄世를 들으시고 특별히 변변치 못한 예물을 갖춰서 저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셨습니다.
주유 도독도 유황숙과 제갈선생께 거듭 인사드린다고 했습니다.”
玄德、孔明起身稱謝,收了禮物,置酒相待。
현덕과 공명이 일어나 사례하고 예물을 거두고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肅曰:
「前者皇叔有言:
『公子不在,即還荊州。』
今公子已去世,必然見還。
不識幾時可以交割?」
노숙이 말하였다.
“지난날 황숙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자가 죽으면 형주를 돌려주겠다.’ 하셨습니다.
이제 공자께서 세상을 뜨셨으니 반드시 돌려주셔야 합니다.
언제 인계하실 수 있겠습니까?”
玄德曰:
「公且飲酒,有一個商議.」
현덕이 말하였다.
“공께선 우선 술을 드시지요. 상의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肅強飲數盃,又開言相問。
노숙이 억지로 몇 잔을 마시고 다시 말을 꺼내 물었다.
玄德未及回答,孔明變色曰:
「子敬好不通理!
直須待人開口!
自我高皇帝斬蛇起義,開基立業,傳至於今;
不幸奸雄並起,各據一方;
少不得天道好還,復歸正統。
我主乃中山靖王之後,孝景皇帝玄孫,今皇上之叔,豈不可分茅裂土?
況劉景升乃我主之兄也。
弟承兄業,有何不順?
汝主乃錢塘小吏之子,素無功德於朝廷;今倚勢力,占據六郡八十一州,尚自貪心不足,而欲併吞漢土。
劉氏天下,我主姓劉倒無分,汝主姓孫反要強爭.
且赤壁之戰,我主多負勤勞,眾將並皆用命,豈獨是汝東吳之力?
若非我借東南風,周郎安能展半籌之功?
江南一破,休說二喬置於銅雀宮,雖公等家小,亦不能保。
適來我主人不即答應者,以子敬乃高明之士,不待細說。
何公不察之甚也?」
현덕이 미처 회답할 겨를도 없이 공명이 안색을 바꾸고 말하였다.
“자경께선 매우 이치에 어두우시오!
사람이 꼭 말하게 하는구려!
우리 고조황제께서 뱀을 베고 의병을 일으킨 이래, 기반을 열고 帝業을 세워 지금에 이르렀소.
불행히 간웅들이 나란히 일어나서 각각 한곳에 웅거하고 있으나, 하늘의 도리는 돌고 돌아서 다시 정통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소.
우리 주인께서는 곧 중산정왕의 후예이자 효경황제의 玄孫이시며 지금 황상의 숙부이시거늘 어찌 띠풀을 나누어 땅을 쪼개 주지 못하시겠소?
하물며 유경승은 바로 우리 주군의 형이시오.
동생이 형의 업을 이음이 어찌 순리가 아니겠소?
그대 주인은 전당 땅의 작은 관리의 아들이고 원래 조정에 아무 공덕이 없었소. 이제 세력에 기대어 6군 81주를 점거하고도 오히려 탐심이 채워지지 않아 한실의 땅을 병탄하려 하오.
유씨 천하에서 우리 주군의 성이 유씨지만 거꾸로 아무 지분이 없고 그대의 주인 손씨는 반대로 강제로 빼앗으려 하오.
또 적벽싸움에서 우리 주군께서 많은 수고를 하시고 장수들이 모두 명령을 수행하였거늘 어찌 오로지 동오의 힘이겠소?
내가 동남풍을 빌리지 않았더라면 주랑이 어찌 반푼어치의 계책으로 공을 세울 수 있었겠소?
강남이 단번에 깨뜨려져서 이교가 동작궁에 안치됨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공들의 식구라 하더라도 역시 보전할 수 없었을 터이오.
방금 우리 주군께서 그 즉시 응답하지 않음은 자경을 高明之士라 여겨 구구이 말씀하려 하지 않음이오.
공이 살피지 못함이 어찌 이렇게 심하시오?”
一席話,說得魯子敬緘口無言;半晌乃曰:
「孔明之言,怕不有理;爭奈魯肅身上甚是不便.」
일장 연설을 듣고 노자경은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가 한참 지나 말하였다.
“공명의 말씀이 어쩌면 일리가 있겠지만, 이 노숙의 처신이 몹시 불편하니 어찌해야 하겠소?”
孔明曰:
「有何不便處?」
공명이 말하였다.
“어디가 불편하겠소?”
肅曰:
「昔日皇叔當陽受難時,是肅引孔明渡江,見我主公﹔後來周公瑾欲興兵取荊州,又是肅擋住;
至說待公子去世還荊州,又是肅擔承;今卻不應前言,教魯肅如何回覆?
我主與周公瑾必然見罪。
肅死不恨,只恐惹惱東吳,興動干戈,皇叔亦不能安坐荊州,空為天下恥笑耳.」
노숙이 말하였다.
“지난날 황숙께서 당양에서 수난을 당하실 때, 제가 공명을 모시고 강을 건너 우리 주공을 뵈었소. 그 뒤에 주공근이 출병하여 형주를 취하려 함을 또 이 노숙이 막았소.
공자가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려 형주를 돌려받자고 설득할 때는 또한 이 노숙이 돌려받는 책임을 졌소.
지금에야 반대로 지난 말씀에 응하지 않으니, 어떻게 답변할지 저 노숙에게 가르쳐주겠소?
우리 주공과 주공근이 필시 죄를 물을 터이오.
제가 죽음은 한스럽지 않으나, 다만 동오를 성나게 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면, 황숙 역시 형주에 편안히 앉아 있지 못하고 공연히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됨을 걱정할 따름이오.”
孔明曰:
「曹操統百萬之眾,動以天子為名,吾亦不以為意,豈懼周郎一小兒乎!
若恐先生面上不好看,我勸主人立紙文書,暫借荊州為本。待我主別圖得城池之時,便交付還東吳。
此論如何?」
공명이 말하였다.
“조조가 백만의 무리를 통솔하여 천자를 명분 삼아 출동해도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어찌 한낱 어린아이 같은 주랑을 두려워하겠소!
만약 선생 체면이 난처할까 걱정되면, 내가 주군께 권하여 문서를 써 드리되, 잠시 형주를 빌려 근본으로 삼고 우리 주군께서 따로 성지들을 얻는 때를 기다려, 바로 동오에 돌려주겠다고 하겠소.
이런 의견이 어떻겠소?”
肅曰:
「孔明待奪得何處,還我荊州?」
노숙이 말하였다.
“공명은 어디를 빼앗기를 기다려서, 우리에게 형주를 돌려줄 터이오?”
孔明曰:
「中原急未可圖;西川劉璋闇弱,我主將圖之。
若圖得西川,那時便還.」
공명이 말하였다.
“중원은 서둘러 도모할 수 없소. 서천은 유장이 우매하고 나약하니, 우리 주군께서 장차 도모할 터이오. 만약 서천을 얻는다면, 그때 곧 돌려주겠소.”
肅無奈,只得聽從。
노숙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玄德親筆寫成文書一紙,押了字。
현덕이 친히 문서를 한 장 써서 署名하였다.
保人諸葛孔明也押了字。
보증인으로 제갈공명도 수결을 두었다.
孔明曰:
「亮是皇叔這裏人,難道自家作保.
煩子敬先生也押個字,回見吳侯也好看.」
공명이 말하였다.
“저는 황숙쪽의 사람이니, 아닌게 아니라 自家作保(자신에 대하여 보증을 서는 것)입니다.
번거롭겠지만 자경선생도 서명하면, 돌아가 오후를 만나도 보기 좋을 터이오.”
肅曰:
「某知皇叔乃仁義之人,必不相負.」
노숙이 말하였다.
“황숙은 곧 어질고 의로운 사람임을 제가 아는데, 틀림없이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지요.”
遂押了字,收了文書。
이어 서명을 하고 문서를 거두었다.
宴罷辭回。
연회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玄德與孔明,送到船邊。
현덕과 공명이 나루터까지 배웅하였다.
孔明囑曰:
「子敬回見吳侯,善言伸意,休生妄想。
若不准我文書,我翻了面皮,連八十一州都奪了。
今只要兩家和氣,休教曹賊笑話.」
공명이 부탁하였다.
“자경께서 돌아가 오후를 만나시거든, 좋은 말로 우리 뜻을 전하여 妄想을 하지 않도록 하시오.
만약 우리 문서를 비준하지 않으면, 내가 안면을 바꾸고 연달아 81주를 모조리 빼앗을 터이오.
지금은 兩家의 화목한 분위기가 필요하니 조조 도적이 비웃게 하지 마시오.”
肅作別下船而回,先到柴桑郡見周瑜。
노숙이 작별하여 배를 타고 돌아가서, 먼저 시상군에 도착하여 주유를 만났다.
瑜問曰:
「子敬討荊州若何?」
주유가 물었다.
“자경께서 형주를 찾아오는 일은 어찌 되었소?”
肅曰:
「有文書在此.」
노숙이 말하였다.
“문서를 이렇게 받아왔소.”
呈與周瑜。瑜頓足曰:
「子敬中諸葛之謀也。
名為借地,實是混賴。
他說取了西川便還,知他幾時取西川?
假如十年不得西川,十年不還。
這等文書,如何中用,你卻與他作保!
他若不還時,必須連累足下。
倘主公見罪,奈何?」
문서를 바치자 주유가 발을 구르며 말하였다.
“자경께서 제갈량의 꾀에 빠졌소!
명분은 빌림이지만 실제로는 어물쩍 회피함이오.
그가 서천을 취하면 바로 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그가 언제 서천을 취할지 알겠소?
가령 10년 동안 서천을 얻지 못하면 10년간 돌려주지 않을 터이오.
이와 같은 문서가 무슨 소용이라고 그대는 도리어 그들과 함께 보증을 섰소!
그들이 돌려주지 않으면, 필시 족하가 연루될 터이오.
주공께서 죄를 물으면 어떻게 하겠소?”
肅聞言,呆了半晌曰:
「然玄德不負我.」
노숙이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말하였다.
“그러나 현덕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터이오.”
瑜曰:
「子敬乃誠實人也。
劉備梟雄之輩,諸葛亮奸猾之徒,恐不似先生心地.」
주유가 말하였다.
“자경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유비는 梟雄之輩이고 제갈량은 奸猾之徒이니, 아마 선생의 마음과 같지 않을 터이오.”
肅曰:
「若此,如之奈何?」
노숙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瑜曰:
「子敬是我恩人,想昔日指囷相贈之情,如何不救你?
你且寬心住數日,待江北探細的回,別有區處.」
주유가 말하였다.
“자경은 나의 은인이요, 예전에 곳간을 가리키며 증여하신 정을 기억하는데, 어찌 그대를 구해드리지 않겠소?
그대는 마음 놓고 며칠 머물러 계시오. 강북에서 세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따로 처리할 방법이 있을 터이오.”
魯肅跼蹐不安。
노숙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불안하였다.
過了數日,細作回報:
「荊州城中揚起布旛做好事,城外別建新墳,軍士各挂孝.」
며칠을 지나자 세작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형주성에서는 삼베로 만든 조기를 내걸고 위령제를 지내며, 성 밖에 새 무덤을 만드는데 군사들은 각자 상복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瑜驚問曰:
「沒了甚人?」
주유가 놀라 물었다.
“누가 죽었느냐?”
細作曰:
「劉玄德沒了甘夫人,即日安排殯葬.」
세작이 말하였다.
“유현덕이 감부인을 잃어, 그날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瑜謂魯肅曰:
「吾計成矣。
使劉備束手就縛,荊州反掌可得.」
주유가 노숙에게 말하였다.
“내 계책이 이뤄지겠소.
유비를 꼼짝하지 못하게 묶고 형주를 손바닥 뒤집듯이 얻을 수 있겠소”
肅曰:
「計將安出?」
노숙이 말하였다.
“계책을 어찌 낼 터이오?”
瑜曰:
「劉備喪妻,必將續娶。
主公有一妹,極其剛勇,侍婢數百,居常帶刀,房中軍器擺列遍滿,雖男子不及。
我今上書主公,教人去荊州為媒,說劉備來入贅。
賺到南徐,妻子不能勾得,幽囚在獄中,卻使人去討荊州換劉備。
等他交割了城池,我別有主意。
於子敬身上,須無事也.」
주유가 말하였다.
“유비가 아내를 잃었으니, 반드시 후처를 맞을 터이오.
주공께 누이동생이 한 분 계시는데, 극히 굳세고 용맹하며 거느리는 여종이 수백 명이요. 거처함에 늘 칼을 차고 방안에도 무기가 진열되어 가득하니, 비록 남자라도 미치지 못하오.
내가 지금 주공께 글을 올려서, 사람을 형주로 보내 중매를 서게 하고, 유비에게 말하여 처가를 찾아오게 하겠소.
속아서 남서까지 오면 아내를 얻지도 못하고 옥중의 죄인이 될 터이오. 사람을 보내 형주를 요구하고 유비와 맞바꾸겠소.
그가 형주 城池를 넘겨주기를 기다려, 내게 따로 방책이 있소.
자경의 신상에도 틀림없이 아무 일이 없을 터이오.”
魯肅拜謝。
노숙이 사례하였다.
周瑜寫了書呈,選快船送魯肅投南徐見孫權,先說借荊州一事,呈上文書。
주유가 서찰을 써주며, 빠른 배를 골라 노숙을 태워 남서로 보내어 손권을 만나게 하니, 먼저 형주를 빌려준 일을 말하고 관련 문서를 바쳤다.
權曰:
「你卻如此糊塗!
這樣文書,要他何用?」
손권이 말하였다.
“그대가 이토록 흐리멍텅할 수 있소!
이따위 문서를 어디에 쓰겠소?”
肅曰:
「周都督有書呈在此,說用此計,可得荊州.」
노숙이 말하였다.
“주도독이 서찰을 준 게 여기 있는데, 말하기를 이 계책을 쓰면 형주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權看畢,點頭暗喜,尋思:
「誰人可去?」
손권이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기뻐하며 곰곰이 생각하였다.
‘누구를 보내야 할까?’
猛然省曰:
「非呂範不可.」
갑자기 깨닫고 말하였다
“여범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遂召呂範至,謂曰:
「近聞劉玄德喪婦。
吾有一妹,欲招贅玄德為婿,永結姻親,同心破曹,以扶漢室。
非子衡不可為媒,望即往荊州一言.」
곧 여범을 불러 도착하자 말하였다.
“요새 듣자니 유현덕이 喪妻를 하였다 하오.
내게 누이가 하나 있으니, 현덕을 초청하여 남편으로 삼아, 앞으로 인척으로 맺어 한마음으로 조조를 격파하여 한실을 바로잡고자 하오.
자형이 아니고는 중매를 설 수 없으니, 바라건대 곧 형주로 가서 한 말씀 해주시오.”
範領命,即日收拾船隻,帶數個從人,望荊州來。
여범이 명을 받고 그날로 배를 준비하고 종인 몇 명을 대동하여 형주로 갔다.
卻說
玄德自沒甘夫人,晝夜煩惱。
한편,
현덕은 감부인을 잃고 밤낮으로 번뇌하였다.
一日,正與孔明閒敘,人報東吳差呂範到來。
어느 날 마침 공명과 더불어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동오에서 여범을 사신으로 보내서 도착하였다고 보고하였다.
孔明笑曰:
「此乃周瑜之計,必為荊州之故。
亮只在屏風後潛聽。
但有甚說話,主公都應承了。
留來人在館驛中安歇,別作商議.」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주유의 계책이니 필시 형주 때문일 터입니다.
제가 병풍 뒤에서 엿듣기만 하겠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주공께서는 모두 승낙하기만 하십시오.
찾아온 사람을 관역에서 쉬게 하고, 따로 상의 드리겠습니다.”
玄德教請呂範入,禮畢坐定。
현덕은 여범을 청하여 들이라 하여 인사를 마치고 좌정하였다.
茶罷,玄德問曰:
「子衡來必有所諭」
차를 마치고, 현덕이 물었다.
“자형께서 찾아오셨으니 필시 깨우쳐 주실 말씀이 있겠군요.”
範曰:
「範近聞皇叔失偶,有一門好親,故不避嫌,特來作媒。
未知尊意如何?」
여범이 말하였다.
“제가 요새 듣자니 황숙께서 배우자를 잃으셨다 합디다. 어느 집안에 좋은 신부감이 있어, 싫어하심을 피하지 않고 특별히 중매서러 왔습니다.
尊意가 어떠십니까?”
玄德曰:
「中年喪妻,大不幸也。
骨肉未寒,安忍便議親?」
현덕이 말하였다.
“중년에 처를 잃었으니, 몹시 불행하오.
골육이 아직 식지 않았는데, 어찌 차마 혼인을 의논하겠소?”
範曰:
「人若無妻,如屋無梁,豈可中道而廢人倫?
吾主吳侯有一妹,美而賢,堪奉箕帚。
若兩家共結秦晉之好,則曹賊不敢正視東南也。
此事家國兩便,請皇叔勿疑。
但我國吳太夫人甚愛幼女,不肯遠嫁,必求皇叔到東吳就婚.」
여범이 말하였다.
“사람에게 처가 없으면, 如屋無梁이니 어찌 중도에서 인륜을 폐하겠습니까?
저희 주공 오후께 누이동생이 한 분 계시는데 아름답고 어질어서 아내가 될 만합니다.
만약 양가가 함께 秦晉之好를 맺는다면, 조조 역적이 감히 동남쪽을 똑바로 보지 못할 터입니다.
이 일은 집안과 나라 양쪽에 좋으니, 청컨대 황숙께서 의심하지 마십시오.
다만 우리나라 오태부인께서 어린 딸을 몹시 사랑하시는지라, 멀리 시집보내려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황숙께서 동오로 오셔서 혼인하기를 요구하십니다.”
玄德曰:
「此事吳侯知否?」
현덕이 말하였다.
“이 일을 오후께서 알고 계시오?”
範曰:
「不先稟吳侯,如何敢造次來說?」
여범이 말하였다.
“오후께 먼저 여쭈지 않고서, 어찌 감히 경솔히 와서 말씀드리겠습니까?”
玄德曰:
「吾年已半百,鬢髮斑白;
吳侯之妹,正當妙齡;恐非配偶.」
현덕이 말하였다.
“내 나이가 이미 半百이라,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하오.
오후의 누이라면 바야흐로 묘령일 텐데 아마 배우자로 맞지 않을 터이오.”
範曰:
「吳侯之妹,身雖女子,志勝男兒。
常言 『若非天下英雄,吾不事之。』
今皇叔名聞四海,正所謂淑女配君子,豈以年齒上下相嫌乎?」
여범이 말하였다.
“오후의 누이가 비록 몸은 여자이나 뜻은 남아를 넘어섭니다.
늘 말하기를, ‘천하의 영웅이 아니면, 나는 모실 수 없다.’라고 합니다.
지금 황숙의 명성이 사해에 자자하니 바로 소위 ‘숙녀가 짝할 군자’이십니다. 어찌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써 꺼리겠습니까?”
玄德曰:
「公且少留,來日回報.」
현덕이 말하였다.
“공께서 우선 머물러 계시오. 내일 회답하겠소.”
是日設宴相待,留於館舍。
그날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고 관사에 머물게 하였다.
至晚,與孔明商議。
밤이 되어 공명과 더불어 상의하였다.
孔明曰:
「來意亮已知道了。
適間卜易,得一大吉大利之兆。
主公便可應允。
先教孫乾和呂範回見吳侯。
面許已定,擇日便去就親.」
공명이 말하였다.
“찾아온 뜻은 제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방금 <주역> 점을 쳐보니 大吉大利之兆 징조를 얻었습니다.
주공께서 응낙하셔도 되겠습니다.
먼저 손건에게 지시하여 여범과 함께 돌아가 오후를 만나게 하십시오.
(오후의) 面前에서 허락을 받고 나서, 날을 골라 가서 就親하십시오.”
玄德曰:
「周瑜定計欲害劉備,豈可以身輕入危險之地?」
현덕이 말하였다.
“주유가 계책을 정하여 나를 해치려는데, 어찌 홀몸으로써 경솔하게 위험한 곳에 들어가겠습니까?”
孔明大笑曰:
「周瑜雖能用計,豈能出諸葛亮之料乎?
略用小謀,使周瑜半籌不展﹔
吳侯之妹,又屬主公;荊州萬無一失.」
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주유가 비록 계책을 잘 쓰나, 어찌 능히 저 제갈량의 헤아림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작은 계책을 대충 써서 주유가 작은 籌策도 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오후의 누이는 주공을 모시고, 형주는 만에 하나도 잃지 않을 터입니다.”
玄德懷疑未決。
현덕이 懷疑未決하였다.
孔明竟教孫乾往江南說合親事。
공명이 마침내 손건에게 지시하여 강남으로 가서 혼사를 상의하게 하였다.
孫乾領了言語,與呂範同到江南,來見孫權。
손건이 말을 듣고 여범과 더불어 강남에 도착하여 손권을 뵈었다.
權曰:
「吾願將小妹招贅玄德,並無異心.」
손권이 말하였다.
“내 누이의 남편으로 현덕을 초청하기를 원할 뿐, 결코 다른 마음은 없소.”
孫乾拜謝,回荊州見玄德言,言吳侯專候主公去結親。
손건이 사례하고 형주로 돌아와 현덕을 만나서, 오후가 오로지 주공께서 가서 결혼하기를 기다린다고 말하였다.
玄德懷疑不敢往。
현덕이 의심하며 감히 가려고 하지 않았다.
孔明曰:
「吾已定下三條計策,非子龍不可行也.」
공명이 말하였다.
“제가 이미 세 가지 계책을 정해 놓았는데, 자룡이 아니면 수행할 수 없습니다.”
遂喚趙雲近前,附耳言曰:
「汝保主公入吳,當領此三個錦囊。
囊中有三條妙計,依次而行.」
곧 조운을 가까이 불러서 귀에다 대고 말하였다
“그대는 주공을 보호하여 동오에 들어가되, 이 三個錦囊을 가지고 가시오.
주머니에 三條妙計가 들어 있으니, 차례대로 행하시오.”
即將三個錦囊,與雲貼肉收藏。
곧 三個 錦囊를 조운에게 주어 貼肉收藏하게 하였다.
孔明先使人往東吳納了聘,一切完備。
공명이 먼저 사람을 동오에 보내 혼인 예물을 드리고 일체를 완비하였다.
時建安十四年冬十月。
때는 건안 14년 (서기 209년) 겨울 10월이었다.
玄德與趙雲、孫乾取快船十隻,隨行五百餘人,離了荊州,前往南徐進發。
현덕이 조운, 손건과 더불어 빠른 배 10척을 타고, 수행하는 5백여 인을 거느리고, 형주를 떠나 남서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荊州之事,皆聽孔明裁處。
형주의 일은 모두 공명의 명을 듣고 처리하도록 하였다.
玄德心中怏怏不安。
현덕이 마음속으로 불만스럽고 불안하였다.
到南徐州,船已傍岸。
남서주에 도착하여 배가 이미 나루터에 닿았다.
雲曰:
「軍師分付三條妙計,依次而行。
今已到此,當先開第一個錦囊來看.」
조운이 말하였다.
“군사께서 분부하시기를 세 가지 묘계를 차례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곳에 도착했으니, 먼저 첫 번째 금낭을 열어보아야 합니다.”
於是開囊看了計策,便喚五百隨行軍士,一一分付如此如此。
이에 주머니를 열어 계책을 보더니, 즉시 5백 수행 군사를 불러 일일이 여차여차 하라고 분부하였다.
眾軍領命而去。
군사들이 명을 받고 떠났다.
又教玄德先往見喬國老;那喬國老乃二喬之父,居於南徐。
현덕에게 먼저 喬國老를 찾아가 만나라고 하였다. 그 교국로는 바로 二喬의 부친으로 남서에 살고 있었다.
玄德牽羊擔酒,先往拜見,說呂範為媒,娶夫人之事。
현덕이 牽羊擔酒하여 먼저 찾아가 뵙고 여범이 중매하여 娶夫人之事를 이야기하였다.
隨行五百軍士,俱披紅挂綵,入南郡買辦物件,傳說玄德入贅東吳,城中人盡知其事。
수행하는 5백 군사들은 모두 붉은 비단옷을 입고 남서로 들어가 물건들을 사들이며, 현덕이 동오에 장가든다고 소문을 퍼트려서 성안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알게 되었다.
孫權知玄德已到,教呂範相待,且就館舍安歇。
손권은 현덕이 도착하였음을 알고, 여범에게 그를 맞이하여 우선 관사로 가서 쉬게 하였다.
卻說
喬國老既見玄德,便入見吳國太賀喜。
한편,
교국로가 이미 현덕을 만나고 나서, 오국태를 뵙고 賀喜하였다.
國太問:
「有何喜事?」
오국태가 말하였다.
“무슨 기쁜 일이 있습니까?”
喬國老曰:
「令愛已許劉玄德為夫人,今玄德已到,何故相瞞?」
교국로가 말였다.
“영애가 이미 유현덕의 부인이 되기로 허락하여, 이제 현덕이 도착했는데, 무슨 까닭으로 속이시오?”
國太驚曰:
「老身不知此事.」
오국태가 놀라 말하였다.
“이 늙은이는 이 일을 모릅니다.”
便使人請吳侯問虛實,一面先使人於城中探聽。
곧 사람을 보내 오후에게 허실을 묻게 하는 한편, 먼저 사람을 성안으로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人皆回報:
「果有此事。
女婿已在館驛安歇。
五百隨行軍士都在城中買豬羊果品,準備成親。
做媒的女家是呂範,男家是孫乾,俱在館驛中相待.」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과연 그런 일이 있습니다
사위가 이미 館驛에서 쉬고 계십니다.
5백 수행 군사 모두가 성안에서 돼지, 양, 과일 등을 사들이며 혼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자 집안에서 중매를 선 사람은 여범이고, 남자 집안에서는 손건인데, 모두 관역에서 서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國太吃了一驚。
오국태가 깜짝 놀랐다.
少頃,孫權入後堂見母親。國太搥胸大哭。
잠시 뒤, 손권이 후당에 들어와 모친을 뵙자 오국태가 搥胸大哭하였다.
權曰:
「母親何故煩惱?」
손권이 말하였다.
“모친께서 무슨 까닭으로 번뇌하십니까?”
國太曰:
「你直如此將我看承得如無物!
我姐姐臨危之時,分付你甚麼話來?」
오국태가 말하였다.
“네가 정말 나를 대하기를, 이렇게 사람이 없는 듯이 하느냐!
내 언니가 臨危之時에 네게 뭐라 분부하셨더냐?”
孫權失驚曰:
「母親有話明說,何苦如此?」
손권이 깜짝 놀라서 말하였다.
“모친께 하실 말씀이 있으면 바로 말씀하시지, 어찌 이토록 괴로워하십니까?”
國太曰:
「男大須婚,女大須嫁,古今常理。
我為你母親,事當稟命於我。
你招劉玄德為婿,如何瞞我?
女兒須是我的!」
오국태가 말하였다
“남자가 크면 장가를 들어야 하고 여자가 크면 시집을 가야 하나니, 古今常理이다.
내가 네 어머니이니, 일을 마땅히 나에게 여쭈어 명령을 받아야 할 터이다.
네가 유현덕을 불러 내 사위로 삼으면서, 어째서 나를 속이느냐?
그 딸은 분명 내 딸이다!”
權吃了一驚,問曰:
「哪裏得這話來?」
손권이 깜짝 놀라 물었다.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國太曰:
「若要不知,除非莫為。
滿城百姓,哪一個不知?
你倒瞞我!」
오국태가 말하였다.
“모르게 하려면 하지 말아야지.
온 성안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모르는 줄 아느냐?
네가 정말 나를 속일 테냐!”
喬國老曰:
「老夫已知多日了,今特來賀喜.」
교국로가 말하였다.
“이 늙은이도 진작 알고서, 지금 일부러 축하하러 왔소.”
權曰:
「非也。
此是周瑜之計,因要取荊州,故將此為名,賺劉備來拘囚在此,要他把荊州來換;
若其不從,先斬劉備。
此是計策,非實意也.」
손권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이것은 주유의 계책입니다. 형주를 취하려고 이것을 명분으로 유비를 유인하여 여기에 잡아 가두고 그와 형주를 맞바꾸려 합니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먼저 유비를 참할 터입니다.
이것은 계책일 뿐 저의 참뜻은 아닙니다.”
國太大怒,罵周瑜曰:
「汝做六郡八十一州大都督,直恁無條計策去取荊州,卻將我女兒為名,使美人計!
殺了劉備,我女便是望門寡,明日再怎的說親?
須誤了我女兒一世!
你們好做作!」
오국태가 크게 노하여 주유를 욕하였다.
“제 놈이 6군 81주의 대도독을 맡고서도, 결국 이렇게 형주를 취할 아무 계책을 못 세우고 도리어 내 딸을 명분으로 미인계를 쓰다니!
유비를 죽이면 내 딸은 과부가 될 테니, 장래에 누가 와서 혼담을 꺼내겠느냐?
결국 내 딸은 한평생을 그르치겠구나!
너희들이 잘도 하는 짓이다!”
喬國老曰:
「若用此計,便得荊州,也被天下恥笑。
此事如何行得!」
교국로가 말하였다.
“이런 계책으로 형주를 얻은들 天下恥笑가 될 터이오.
이런 일을 어떻게 행하겠소!”
說得孫權默然無語。
말을 듣고 손권은 잠자코 아무 말이 없었다.
國太不住口的罵周瑜。喬國老勸曰:
「事已如此,劉皇叔乃漢室宗親,不如真個招他為婿,免得出醜.」
오국태가 입을 멈추지 않고 주유를 욕하니, 교국로가 권하였다
“일이 이왕 이렇게 됐고 유황숙은 곧 한실의 종친이고 하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체면을 잃지 않음이 좋겠소.”
權曰:
「年紀恐不相當.」
손권이 말하였다.
“나이가 맞지 않아 걱정입니다.”
國老曰:
「劉皇叔乃當世豪傑,若招得這個女婿,也不辱了令妹.」
교국로가 말하였다.
“유황숙은 當世豪傑이니, 만약 그를 사위로 맞아들여도 令妹에게 욕되지는 않겠소.”
國太曰:
「我不曾認得劉皇叔,明日約在甘露寺相見。
如不中我意,任從你們行事;
若中我的意,我自把女兒嫁他.」
오국태가 말하였다.
“내가 아직 유황숙을 알지 못하니, 내일 감로사에서 만나도록 약속을 잡아라.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가 하는 대로 맡겨 두겠다.
내 마음에 든다면 내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겠다.”
孫權乃大孝之人,見母親如此言語,隨即應承,出外喚呂範,分付來日甘露寺方丈設宴,國太要見劉備。
손권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 모친이 이렇게 말하니 곧 응낙하고, 밖으로 나가 여범을 불러서 내일 감로사 방장(주지의 처소)에서 연회를 베풀게 하라고 분부하고, 오국태가 유비를 만날 것이라고 말하였다.
呂範曰:
「何不令賈華部領三百刀斧手,伏於兩廊?
若國太不喜時,一聲號舉,兩邊齊出,將他拏下.」
여범이 말하였다.
“가화에게 명하여 도부수 3백을 거느리고, 양쪽 행랑에 매복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국태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으면, 한마디 신호로 양쪽에서 일제히 몰려나와 그를 잡게 하십시오.”
權遂喚賈華分付預先準備,只看國太舉動。
손권이 곧 가화를 불러 미리 준비하라고 분부하고 오국태의 거동만 살폈다.
卻說
喬國老辭吳國太歸,使人去報玄德,言來日吳侯、國太親自要見,好生在意。
한편,
교국로는 오국태를 작별하고 돌아와서 사람을 현덕에게 보내서 내일 오후와 국태가 친히 만나보고자 하니 마음의 준비를 잘하라고 하였다
玄德與孫乾、趙雲商議。雲曰:
「來日此會,多凶少吉,雲自引五百軍保護.」
현덕이 손건, 조운과 상의하자, 조운이 말하였다.
“내일 그 모임은 多凶少吉일 터이니, 제가 5백 군사를 거느리고 보호하겠습니다.”
次日,吳國太、喬國老先在甘露寺方丈裏坐定。
다음날, 오국태와 교국로가 먼저 감로사 방장에 좌정하였다.
孫權引一班謀士,隨後都到,卻教呂範來館驛中請玄德。
손권이 한 무리 모사를 거느리고 뒤이어 도착하여, 여범에게 지시하여 관역으로 가서 현덕을 초청하게 하였다.
玄德內披細鎧,外穿錦袍,從人背劍緊隨,上馬投甘露寺來。
현덕은 속에 갑옷을 받쳐 입고, 비단 도포를 입었다. 수행원들은 검을 등에 메고 바짝 붙어 따르게 하고, 말을 타고 감로사로 갔다.
趙雲全裝貫帶,引五百軍隨行。
조운이 완전무장하여 5백 군사를 이끌고 수행하였다.
來到寺前下馬,先見孫權。
절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서 먼저 손권을 만났다.
權觀玄德儀表非凡,心中有畏懼之意。
손권이 현덕의 儀表非凡함을 보고, 마음속으로 畏懼之意를 가졌다.
二人敘禮畢,遂入方丈見國太。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고 곧 방장으로 들어가 오국태를 만났다.
國太見了玄德,大喜,謂喬國老曰:
「真吾婿也!」
오국태가 현덕을 보더니, 크게 기뻐하며 교국로에게 말하였다.
“참으로 내 사윗감이오!”
國老曰:
「玄德有龍鳳之姿,天日之表;更兼仁德布於天下;國太得此佳婿,真可慶也.」
교국로가 말하였다.
“현덕은 용봉의 모습과 제왕의 풍채를 가졌고 아울러 인덕을 천하에 떨칩니다. 국태께서 이런 훌륭한 사위를 얻으니, 참으로 경하드릴 일입니다.”
玄德拜謝,共宴於方丈之中。
현덕이 사례하고 함께 방장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少刻,子龍帶劍而入,立於玄德之側。
잠시 후, 조자룡이 검을 차고 들어와서 현덕 곁에 侍立하였다.
國太問曰:
「此是何人?」
오국태가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요?”
玄德答曰:
「常山趙子龍也.」
현덕이 대답하였다.
“상산 조자룡입니다.”
國太曰:
「莫非當陽長坂抱阿斗者乎?」
오국태가 말하였다.
“당양 장판에서 아두를 품고 있었던 그 사람이오?”
玄德曰:
「然.」
현덕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國太曰:
「真將軍也!」
오국태가 말하였다
“진정한 장군이로다!”
遂賜以酒。
하고 술을 내렸다.
趙雲謂玄德曰:
「卻纔某於廊下巡視,見房內有刀斧手埋伏,必無好意。
可告知國太.」
조운이 현덕에게 말하였다.
“방금 제가 행랑 쪽을 순시했는데 방안에 도부수들이 매복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좋은 뜻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국태께 고하십시오.”
玄德乃跪告於國太席前,泣而告曰:
「若殺劉備,就此請誅.」
현덕이 이에 오국태의 자리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며 고하였다.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죽여주십시오.”
國太曰:
「何出此言?」
오국태가 말하였다.
“어째서 이런 말씀을 하시오?”
玄德曰:
「廊下暗伏刀斧手,非殺備而何?」
현덕이 말하였다.
“행랑에 몰래 도부수들을 숨겨두었으니, 저를 죽이고자 함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國太大怒,責罵孫權:
「今日玄德既為我婿,即我之兒女也。
何故伏刀斧手於廊下?」
오국태가 크게 노하여, 손권을 꾸짖었다.
“오늘 현덕이 내 사위가 되었으니, 곧 나의 딸인 셈이다.
무슨 까닭으로 도부수들을 행랑에 매복시켰느냐?”
權推不知,喚呂範問之。
손권이 모르는 일이라 하며 여범을 불러 물었다.
範推賈華;國太喚賈華責罵。
여범이 가화에게 미루니, 오국태가 가화를 불러 꾸짖었다.
華默然無言。
가화가 묵묵히 말이 없었다.
國太喝令斬之。
오국태가 호통을 쳐서 그를 참하라 하였다.
玄德告曰:
「若斬大將,於親不利,備難久居膝下矣.」
현덕이 고하였다.
“대장을 참하면 혼사에 이롭지 못하여, 제가 슬하에 오래 머물기 어렵습니다.”
喬國老也相勸。
교국로도 권하였다.
國太方叱退賈華。
오국태가 비로소 가화를 꾸짖어 물리쳤다.
刀斧手皆抱頭鼠竄而去。
도부수들이 모두 머리를 감싸 쥐고 쥐처럼 달아났다.
玄德更衣出殿前,見庭下有一石塊。
玄德拔從者所佩之劍,仰天祝曰:
「若劉備得勾回荊州,成王霸之業,一劍揮石為兩段。
如死於此地,劍剁石不開.」
현덕이 변소에 가려고 전각 앞으로 갔다가 뜰에 돌덩이 하나가 있음을 보았다.
현덕은 종자가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원하였다.
“이 유비가 형주로 되돌아가서 王霸之業을 이룰 것이면, 이 검을 내리쳐 돌이 두 조각 날 터이고, 여기서 죽을 터이면, 검으로 돌을 쳐도 쪼개지지 않으리라.”
言訖,手起劍落,火光迸濺,砍石為兩段。
말을 마치고 손을 들어 검을 내리치자, 불꽃이 튀며 돌이 베어져 두 조각이 되었다
孫權在後面看見,問曰:
「玄德公如何恨此石?」
손권이 뒤에서 (이것을) 보고 물었다
“현덕 공은 어째서 이 돌을 원망하시오?”
玄德曰:
「備年近五旬,不能為國家剿除賊黨,心常自恨。
今蒙國太招為女婿,此平生之際遇也。
恰纔問天買卦,如破曹興漢,砍得此石。
今果然如此.」
현덕이 말하였다.
“제 나이 5십에 가까우나, 국가를 위해 도적의 무리를 뿌리 뽑지 못하였으니 마음속으로 자신이 늘 한스러웠습니다.
이제 국태께서 저를 불러 사위로 삼으시니, 이는 평생에 드문 기회입니다.
방금 하늘에 물어 길흉화복을 점쳤는데, 조조를 깨뜨리고 한실을 중흥할 것이면 이 돌이 베어지라고 했습니다.
이제 과연 이와 같군요.”
權暗思:
「劉備莫非用此言瞞我?」
손권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유비가 이런 말로써 나를 속임이겠지?’
亦掣劍謂玄德曰:
「吾亦問天買卦。
若破得曹賊,亦斷此石.」
역시 검을 뽑으며 현덕에게 말하였다
“나도 또한 하늘에 물어 길흉을 점치겠소.
조조 역적을 격파할 수 있다면, 역시 이 돌이 절단될 터이오.”
卻暗暗祝告曰:
「若再取得荊州,興旺東吳,砍石為兩半!」
속으로 몰래 축원하였다.
‘다시 형주를 되찾아 동오를 왕성하게 할 것이라면, 돌을 베어 반으로 쪼갤 터이다!’
手起劍落,巨石亦開。
손을 들어 검으로 내리치니 역시 큰 돌이 쪼개졌다.
至今有十字紋「恨石」尚存。
지금까지 十字 무늬의 “恨石”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後人觀此勝跡,作詩贊曰:
후인이 이 이름난 유적을 보고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寶劍落時山石斷,金環響處火光生,
兩朝旺氣皆天數。從此乾坤鼎足成。>
<보검으로 내리치자 산의 돌이 갈라지고, 쇳소리 울려 퍼지며 불꽃이 튀는구나.
두 왕조의 왕성함은 모두 다 天數, 이로부터 천하가 솥발처럼 나뉘었네.>
二人棄劍,相攜入席。
두 사람이 검을 버리고, 서로 이끌고 자리로 들어갔다.
又飲數巡,孫乾目視玄德。
다시 몇 차례 술이 돌자 손건이 현덕에게 눈짓하였다.
玄德辭曰:
「備不勝酒力,告退.」
현덕이 작별을 고하였다.
“제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물러가고자 합니다.”
孫權送出寺前,二人並立,觀江山之景。
손권이 절 앞까지 환송을 나와서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강산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玄德曰:
「此乃天下第一江山也!」
현덕이 말하였다.
“이곳이야말로 天下第一江山이오!”
至今甘露寺碑上云:
「天下第一江山.」
지금까지 감로사 비에 ‘天下第一江山’이라 적혀 있다.
後人有詩贊曰:
후인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江山雨霽擁青螺,境界無憂樂最多。
昔日英雄凝目處,巖崖依舊抵風波。>
<강산에 비가 개고 푸른 산이 펼쳐지니, 근심 없는 경지에 기쁘기 그지없네.
옛날의 영웅들이 응시하던 이곳, 벼랑이 옛날같이 풍파를 견디네.>
二人共覽之次,江風浩蕩,洪波滾雪,白浪掀天。
두 사람이 함께 둘러보는 곳에는 강바람이 호탕하게 불고 큰 파도가 눈덩이가 구르듯 넘실대니, 하얀 물결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忽見波上一葉小舟,行於江面上,如行平地。
문득 파도 위에 가랑잎같이 작은 배가 강물 위를 가는데, 평지를 가는 듯하였다.
玄德歎曰:
「南人駕船,北人乘馬,信有之也.」
현덕이 찬탄하였다.
“남인들은 배를 타고, 북인들은 말을 탄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孫權聞言自思曰:
「劉備此言,戲我不慣乘馬耳.」
손권이 그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유비의 이 말은 내가 不慣乘馬함을 희롱함이구나.’
乃令左右牽過馬來,飛身上馬,馳驟下山,復加鞭上嶺,笑謂玄德曰:
「南人不能乘馬乎?」
이에 좌우에 명하여 말을 끌고 오게 하여, 몸을 날려 말에 올라서 산 아래로 내달리더니, 다시 채찍을 가하여 고개에 올라와서, 웃으며 현덕에게 말하였다.
“남인들은 능히 말을 타지 못하오?”
玄德聞言,撩衣一躍,躍上馬背,飛走下山,復馳騁而上。
현덕이 그 말을 듣더니 옷을 털고 뛰어올라 말 등에 타고 나는 듯이 산 아래로 달려갔다가, 다시 말을 내달려 올라왔다.
二人立馬於山坡之上,揚鞭大笑。
두 사람이 산비탈에 말을 세우고, 채찍을 들고 크게 웃었다.
至今此處名為「駐馬坡」。
지금까지 이곳 지명이 ‘駐馬坡’이다.
後人有詩曰:
후인이 지은 시가 있다
<馳驟龍駒氣概多,二人並轡望山河。
東吳西蜀成王霸,千古猶存駐馬坡。>
<용 같은 말을 달려 기개가 대단한데, 두 사람 말고삐 나란히 산하를 바라봤네.
동오와 서촉이 왕패를 이뤘지만, 천고의 세월 후에 駐馬坡만 남았구나.>
當日二人並轡而回。
그날 두 사람이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돌아왔다.
南徐之民,無不稱賀。
남서의 백성들이 축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玄德自回館驛,與孫乾商議。
현덕은 관역으로 돌아가서 손건과 상의하였다.
乾曰:
「主公只是哀求喬國老,早早畢姻,免生別事.」
손건이 말하였다.
“주공께서는 오로지 교국로에게 간절히 요청하여 어서 혼인을 마치십시오. 그래야 다른 사고가 일어남을 면하겠습니다.”
次日,玄德復至喬國老宅前下馬。
다음날, 현덕이 다시 교국로의 저택을 찾아가 말에서 내렸다.
國老接入,禮畢,茶罷,玄德告曰:
「江左之人,多有要害劉備者,恐不能久居.」
교국로가 맞이해 들여서 인사를 마치고 차를 마셨다. 현덕이 고하였다
“강동 사람들 가운데 저 유비를 해치려는 자가 많으니 아마 오래 머물지 못할 듯합니다.”
國老曰:
「玄德寬心。
吾為公告國太,令作護持.」
교국로가 말하였다.
“현덕께서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공을 위해 국태께 고하여 지켜드리라 하겠습니다.”
玄德拜謝自回。
현덕이 사례하고 돌아갔다.
喬國老入見國太,言玄德恐人謀害,急急要回。
교국로가 오국태를 만나서 현덕이 사람들이 해칠까 걱정하여 빨리 돌아가려 한다고 말하였다.
國太大怒曰:
「我的女婿,誰敢害他!」
오국태가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내 사위를 누가 감히 해치려 하는가!”
即時便教搬入書院暫住,擇日畢姻。
즉시 서원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게 하고, 날을 택하여 혼인을 올리라고 지시하였다.
玄德自入告國太曰:
「只恐趙雲在外不便,軍士無人約束.」
현덕이 들어가서 오국태에게 고하였다.
“조운이 바깥에 있어 제가 불편하고, 단속해줄 군사도 없습니다.”
國太教盡搬入府中安歇,休留在館驛中,免得生事。
오국태가 모두 부중으로 들어와 쉬도록 지시하고, 관역에 머물지 못하게 하여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였다.
玄德暗喜。
현덕이 속으로 기뻐하였다.
數日之內,大排筵會,孫夫人與玄德結親。
며칠 지나지 않아 크게 잔치를 열어, 손부인과 현덕이 결혼하였다.
至晚客散,兩行紅炬,接引玄德入房。
밤이 되어 손님들이 흩어지고, 두 줄로 붉은 등불을 들고 현덕을 맞이해 방으로 들어갔다.
燈光之下,但見鎗刀簇滿;
등불 아래 창칼이 가득함이 보였다.
侍婢皆佩劍懸刀,立於兩傍。
侍婢들이 모두 칼을 차고 칼을 늘어뜨리고 양옆에 서 있었다.
諕得玄德魂不附體。
현덕이 깜짝 놀라 魂不附體하였다.
正是:
驚看侍女橫刀立,疑是東吳設伏兵。
상황이 다음과 같다.
시녀들이 칼을 비껴들고 섰음을 보고 놀라서, 동오에서 복병을 둠이 아닌가 의심하였네.
畢竟是何緣故,且看下文分解。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다음 회의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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