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三國演義(삼국연의)40회-蔡夫人과 諸葛亮 본문
第四十回
蔡夫人議獻荊州 諸葛亮火燒新野.
제40회
채부인이 형주를 바치려 의논하고, 제갈량이 신야를 불태우다.
卻說
玄德問孔明求拒曹兵之計。
한편,
현덕이 공명에게 물어서 拒曹兵之計를 요청하였다.
孔明曰:
「新野小縣,不可久居。
近聞劉景升病在危篤,可乘此機會,取彼荊州為安身之地,庶可拒曹操也.」
공명이 말하였다.
“신야는 작은 고을이라 오래 머물 수가 없습니다.
요새 듣건대 유경승의 병이 위독하니 가히 이 기회를 타서, 그의 형주를 취하고 安身之地로 삼으면, 거의 조조를 막아낼 수 있겠습니다.”
玄德曰:
「公言甚善。
但備受景升之恩,安忍圖之!」
현덕이 말하였다.
“공의 말씀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제가 景升之恩을 입어놓고 어찌 차마 그런 일을 도모하겠습니까!”
孔明曰:
「今若不取,後悔何及?」
공명이 말하였다.
“지금 취하지 않으면 후회해도 어찌 미치겠습니까?”
玄德曰:
「吾寧死不忍作負義之事.」
현덕이 말하였다.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차마 負義之事를 저지르지 못하겠습니다.”
孔明曰:
「且再作商議.」
공명이 말하였다.
“다시 상의하기로 하겠습니다.”
卻說
夏侯惇敗回許昌,自縛見曹操,伏地請死。
한편,
하후돈이 패하여 허창으로 돌아가서 自縛見曹操하고 伏地請死하였다.
操釋之。
조조가 풀어 주었다.
惇曰:
「惇遭諸葛亮詭計,用火攻破我軍.」
하후돈이 말하였다.
“제가 제갈량의 속임수에 빠졌습니다. 화공을 써서 아군을 격파했습니다.”
操曰:
「汝自幼用兵,豈不知狹處須防火攻?」
조조가 말하였다.
“자네가 젊어서부터 용병했거늘 어찌 좁은 곳에서는 화공을 방비해야 함을 몰랐는가?”
惇曰 :
「李典、于禁曾言及此,悔之不及!」
하후돈이 말하였다.
“이전과 우금이 일찍이 그것을 말했으나 후회했을 때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操乃賞二人。
이에 조조가 이전과 우금 두 사람에게 포상하였다.
惇曰:
「劉備如此猖獗,真腹心之患也,不可不急除.」
하후돈이 말하였다.
“유비가 이토록 猖獗하니 참으로 腹心之患입니다. 어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操曰:
「吾所慮者,劉備、孫權耳;餘皆不足介意。
今當乘此時掃平江南.」
조조가 말하였다.
“내가 걱정하는 사람은 유비와 손권뿐이다. 나머지야 모두 족히 개의할 것 없다.
이제 이번 기회에 강남을 쓸어서 평정해야겠다.”
便傳令起大兵五十萬,令曹仁、曹洪為第一隊;
張遼、張郃為第二隊;
夏侯淵、夏侯惇為第三隊;
于禁、李典為第四隊;
操自領諸將為第五隊。
곧 명령을 전해 50만 대군을 일으키고 조인과 조홍을 제1대로,
장요와 장합을 제2대로,
하후연과 하후돈을 제3대로,
우금과 이전을 제4대로 삼고,
조조는 직접 장수들을 거느려서 제5대가 되었다.
每隊各引兵十萬。
부대마다 10만 군사를 이끌었다.
又令許褚為折衝將軍,引兵三千為先鋒。
또한 허저를 절충장군으로 삼아 3천 군사를 이끌고 선봉을 맡게 하였다.
選定建安十三年秋七月丙午日出師。
건안 13년 가을 7월 병오일에 出師하기로 날짜를 잡았다.
大中大夫孔融諫曰:
「劉備、劉表皆漢室宗親,不可輕伐;
孫權虎踞六郡,且有大江之險,亦不易取;
今丞相興此無義之師,恐失天下之望.」
大中大夫 공융이 간하였다.
“유비와 유표는 모두 漢室宗親이라 함부로 정벌해선 안 됩니다.
손권도 6군에 호랑이처럼 걸터앉은 데다가 大江之險이 있으니 역시 쉽게 취하지 못합니다.
지금 승상께서 이러한 無義之師를 일으키니 天下之望을 잃을까 걱정입니다.”
操怒曰:
「劉備、劉表、孫權皆逆命之臣,豈容不討?」
조조가 성을 내어 말하였다.
“유비와 유표, 손권이 모두 逆命之臣인데 어찌 토벌하지 않겠소?”
遂叱退孔融,下令:
「如有再諫者必斬.」
마침내 공융을 꾸짖어 물리치고, 영을 내렸다.
“또다시 간언하는 자는 틀림없이 목을 베겠다.”
孔融出府,仰天歎曰:
「以至不仁伐至仁,安得不敗乎!」
공융이 부중을 나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지극히 어질지 못한 자가 지극히 어진 자를 치니 어찌 패하지 않으리오!”
時御史大夫郗慮家客聞此言,報知郗慮。
이때 어사대부 郗慮의 家客이 그 말을 듣고 郗慮에게 알려주었다.
慮常被孔融侮慢,心正恨之,乃以此言入告曹操,且曰:
「融平日每每狎侮丞相,又與檷衡相善。
衡贊融曰:
『仲尼不死。』
融贊衡曰:
『顏回復生。』
向者檷衡之辱丞相,乃融使之也.」
치려는 공융에게 늘 업신여김을 당해서 마음속에 한스러워하던 참이라, 이 말을 조조에게 고하고 또 말하였다.
“공융이 평소에 매양 승상을 무시하고 예형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예형이 공융을 칭찬하여, ‘중니께서 죽지 않았소.’하고,
공융은 예형을 칭찬하여, ‘안회께서 되살아났소.’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예형이 승상을 모욕함도 바로 공융이 시킨 것입니다.”
操大怒,遂命廷尉捕捉孔融。
조조가 크게 노하여 곧 廷尉에게 명령하여 공융을 잡아들이게 하였다.
融有二子,年尚幼. 時方在家,對坐弈棋。
공융에게 아들이 둘이 있는데 나이가 아직 어렸다. 그때 마침 집에서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左右急報曰:
「尊君被廷尉執去,將斬矣。
二公子何不急避?」
좌우가 급히 알렸다.
“부친께서 정위에게 잡혀가셔서 곧 처형되십니다.
두 공자께서 어찌 서둘러 피하지 않습니까?”
二子曰:
「破巢之下,安有完卵乎?」
두 아들이 말하였다.
“깨어진 둥지 아래에 어찌 온전한 알이 있겠습니까?”
言未已,廷尉又至,盡收融家小並二子,皆斬之,號令融屍於市。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위가 들이닥쳐서 공융 식구와 아울러 두 아들을 잡아다가 모두 처형하고, 공융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호령하였다.
京兆脂習伏屍而哭。
경조사람 脂習이 시체에 엎드려 곡을 하였다.
操聞之,大怒,欲殺之。
조조가 듣고 크게 노하여 죽이려 하였다.
荀彧曰:
「彧聞脂習常諫融曰:
『公剛直太過,乃取禍之道。』
今融死而來哭,乃義人也,不可殺.」
순욱이 말하였다.
“제가 듣자니 지습이 항상 공융에게 간하기를
‘공께서 지나치게 강직하니 화를 부르는 길입니다.’라고 했답니다.
지금 공융이 죽자 와서 곡을 하니 바로 의로운 사람입니다. 죽여선 안 됩니다.”
操乃止。
조조가 이에 그만두었다.
習收融父子屍首,皆葬之。
지습이 공융 부자의 시신을 거두어 모두 장사지냈다.
後人 有詩讚孔融曰:
후인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 孔融居北海, 豪氣貫長虹。
坐上客常滿, 樽中酒不空。
文章驚世俗, 談笑侮王公。
史筆褒忠直, 存官紀大中。>
< 공융은 북해에 살며 豪氣가 무지개를 꿰뚫었네,
자리에는 손님들로 가득하고 술동이에 술이 비지 않았네.
문장은 세상 사람을 놀라게 했고, 담소는 왕공을 조롱했네.
역사 기록은 충직함을 기렸고, 관직에 있기는 대중대부였네.>
曹操既殺孔融,傳令五隊軍馬次第起行,只留荀彧等守許昌。
조조가 공융을 죽이고 나서 다섯 부대의 군마를 차례로 출발하게 하고 순욱 등을 남겨 허창을 지키게 하였다.
卻說
荊州劉表病重,使人請玄德來託孤。
한편,
형주의 유표의 병세가 위중해서 사람을 시켜 현덕을 불러 託孤하려 하였다.
玄德引關、張至荊州見劉表。
현덕이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형주에 이르러 유표를 만났다.
表曰:
「我病已入膏肓,不久便死矣;特託孤於賢弟。
我子無才,恐不能承父業;我死之後,賢弟可自領荊州。」
유표가 말하였다.
“나는 病已入膏肓이라 머지않아 죽을 터이네.
현제에게 특별히 託孤하네.
내 아들이 재주가 없어서 아마 내 유업을 잇지 못할 터이니, 내가 죽은 뒤 현제가 직접 형주를 다스리게.”
玄德泣拜曰:
「備當竭力以輔賢姪,安敢有他意乎?」
현덕이 泣拜하고 말하였다.
“제가 마땅히 힘껏 현질을 보필해야지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을 먹겠습니까?”
正說間,人報曹操自統大兵至。
이야기하고 있는데, 조조가 친히 대군을 統領하여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玄德急辭劉表,星夜回新野。
현덕이 서둘러 유표에게 작별을 고하고 밤새 신야로 되돌아갔다.
劉表病中聞此信,吃驚不小,商議寫遺囑,令玄德輔佐長子劉琦為荊州之主。
유표가 병중에 이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라 상의하여 遺囑을 쓰기를, 현덕이 맏아들 유기를 보좌하여 형주의 주인이 되게 명령하였다.
蔡夫人聞之大怒,關上內門;使蔡瑁、張允二人,把住外門。
채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안쪽 문을 걸어 잠그고 채모와 장윤 두 사람을 시켜 바깥문을 지키게 하였다.
時劉琦在江夏,知父病危,來至荊州探病。
이때 유기가 강하에서 아버지 병환이 위중함을 알고 문병하러 형주로 왔다.
方到外門,蔡瑁當住曰:
「公子奉父命鎮守江夏,其任至重,今擅離職守,倘東吳兵至,如之奈何?
若入見主公,主公必生嗔怒,病將轉增,非孝也。
宜速回.」
외문에 도착하자 채모가 가로막고 말하였다.
“공자는 부친의 명을 받들어 강하에 진을 치고 지키니 그 임무가 지극히 무겁습니다. 이제 함부로 직무에서 떠나시니 만약 동오 병력이 쳐들어오면 어찌하겠습니까?
만약 들어가 주공을 만나면 주공께서 필시 진노하셔서 병환이 더욱 심해질 테니 효도가 아닙니다.
마땅히 어서 돌아가십시오.”
劉琦立於門外,大哭一場,上馬仍回江夏。
유기가 문밖에 서서 한바탕 크게 곡하고, 말에 올라 강하로 돌아갔다.
劉表病勢危篤,望劉琦不來。
유표는 병세가 위독한 가운데 유기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至八月戊申日,大叫數聲而死。
8월 무신일에 몇 차례 크게 외치더니 죽었다.
後人有詩歎劉表曰:
후인이 시를 지어 유표를 탄식하였다.
<昔聞袁氏居河朔, 又見劉君霸漢陽。
總為牝晨致家累, 可憐不久盡消亡。>
<지난날에 원씨가 하북 지방에 웅거하고, 유표가 한양(한수 북쪽)을 장악했으나,
모두 암탉이 새벽에 울어 집안에 누가 되더니, 가련하다! 오래지 않아 모두 멸망했구나.>
劉表既死,蔡夫人與蔡瑁、張允商議,假寫遺囑,令次子劉琮為荊州之主,然後舉哀報喪。
유표가 죽자 채부인이 채모, 장윤과 상의하여 거짓 유서를 써서 둘째 아들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삼은 뒤, 곡하고 부고하였다.
時劉琮年方十四歲,頗聰明,乃聚眾言曰:
「吾父棄世,吾兄現在江夏,更有叔父玄德在新野。
汝等立我為主,倘兄與叔興兵問罪,如何解釋?」
이때 유종의 나이 막 14세인데 제법 총명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말하였다,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셨지만, 형은 현재 강하에 있고 게다가 숙부 현덕은 신야에 있소.
그대들이 나를 주인으로 세웠지만, 만약 형과 숙부가 출병해 죄를 물으면 어떻게 해명하겠소?”
眾官未及對,幕官李珪答曰:
「公子之言甚善。
今可急發哀書至江夏,請大公子為荊州之主;
就命玄德一同理事。
北可以敵曹操,南可以拒孫權,此萬全之策也.」
관리들이 미처 대답하지 못하는데, 막료 이규가 대답하였다.
“공자의 말씀이 매우 훌륭합니다.
지금 서둘러 강하에 부고를 전하고 큰 공자를 청해 형주의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현덕을 시켜 함께 일을 처리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북으로 가히 조조를 대적할 수 있고 남으로 가히 손권을 막을 수 있으니 이는 萬全을 기하는 계책입니다.”
蔡瑁叱曰:
「汝何人,敢亂言以逆主公遺命!」
채모가 꾸짖었다.
“네가 뭔데 감히 마구 말하여 주공의 유명을 거스르느냐!”
李珪大罵曰:
「汝內外朋謀,假稱遺命,廢長立幼,眼見荊、襄九郡,送於蔡氏之手!
故主有靈,必當殛汝!」
이규가 크게 꾸짖었다.
“네놈이 안팎으로 무리를 지어 음모를 꾸미고 假稱遺命하여 廢長立幼하여 형주 양양 9군을 눈에 보이는 대로 채씨의 손에 넘기려 하는구나!
돌아가신 주공의 영혼이 있으면 틀림없이 너를 죽일 터이다!”
蔡瑁大怒,喝令左右推出斬之。
채모가 크게 노해 측근에게 소리 질러 끌어내 참하게 하였다.
李珪至死大罵不絕。
이규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크게 욕하여 마지않았다.
於是蔡瑁遂立劉琮為主。
이에 채모가 곧 유종을 주인으로 세웠다.
蔡氏宗族,分領荊州之兵,命治中鄧義、別駕劉先守荊州;
채씨 종족이 형주의 군사를 나눠 거느리고 치중(자사의 보좌관) 등의와 별가(보좌관) 유선에게 명하여 형주를 수비케 하였다.
蔡夫人自與劉琮前赴襄陽駐紮,以防劉琦、劉備。
채부인이 스스로 유종과 더불어 양양으로 가서 주둔하여 유기와 유비를 방비하였다.
就葬劉表之棺於襄陽城東漢陽之原,竟不訃告劉琦與玄德。
劉表之棺을 양양성의 동쪽 漢陽之原에 장사 지내고 끝내 유기와 현덕에게는 부고하지 않았다.
劉琮至襄陽,方纔歇馬,忽報曹操引大軍逕望襄陽而來。
유종이 양양에 이르러 말을 세워 쉬는데 문득 보고하기를,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곧장 양양 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였다.
琮大驚,遂請蒯越、蔡瑁等商議。
유종이 깜짝 놀라 괴월, 채모 등을 불러 상의하였다.
東曹掾傅巽進言曰:
「不特曹操兵來為可憂;
今大公子在江夏,玄德在新野,我皆未往報喪,若彼興兵問罪,荊、襄危矣。
巽有一計,可使荊、襄之民,安如泰山,又可保全主公名爵.」
동조연 부손이 진언하였다.
“특별히 조조 군사가 옴만이 근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이제 큰 공자는 강하에 있고 현덕은 신야에 있는데 우리가 아무도 가서 상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출병해서 죄를 물으면 형주 양양이 위태롭겠습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가히 형주 양양의 백성들을 태산처럼 안정시킬뿐더러, 주공의 명예와 지위도 보전할 수 있겠습니다.”
琮曰:
「計將安出?」
유종이 말하였다.
“어떤 계책이오?”
巽曰:
「不如將荊、襄九郡,獻與曹操。
操必重待主公也.」
부손이 말하였다.
“형주 양양 9군을 조조에게 바침이 낫습니다.
조조가 틀림없이 주공을 厚待할 터입니다.”
琮叱曰:
「是何言也!
孤受先君之基業,坐尚未穩,豈可便棄之他人?」
유종이 꾸짖었다.
“이것이 무슨 소리요!
내가 선군으로부터 기업을 이어받아 자리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거늘 어찌 그것을 남에게 버릴 수 있겠소?”
蒯越曰:
「傅公悌之言是也。
夫逆順有大體,強衰有定勢。
今曹操南征北討,以朝廷為名,主公拒之,其名不順。
且主公新立,外患未寧,內憂將作 。
荊、襄之民,聞曹兵至,未戰而膽先寒,安能與之敵哉?」
괴월이 말하였다.
“부공제의 말이 옳습니다.
무릇 거스르고 따름도 큰 줄거리가 있으며, 강하고 약함에도 정해진 형세가 있습니다.
지금 조조가 남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함은 조정의 명령을 명분으로 하는데, 주공께서 맞서면 그 명분이 순조롭지 못합니다.
게다가 주공께서 이제 막 자리에 올랐기에 바깥의 우환이 가라앉지 않으면 곧 안의 근심거리가 일어납니다.
형주 양양의 백성들이 聞曹兵至이면 未戰而膽先寒일 텐데 어찌 더불어 대적하겠습니까?”
琮曰:
「諸公善言,非我不從;
但以先君之業,一旦棄與他人,恐貽笑於天下耳.」
유종이 말하였다.
“여러분의 좋은 말씀을 내가 따르지 않겠다는 게 아니오.
다만 선군의 유업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남에게 주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할 뿐이오.”
言未已,一人昂然而進曰:
「傅公悌、蒯異度之言甚善,何不從之?」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당당하게 진언하였다.
“부공제나 괴이도의 말씀이 몹시 옳은데 어찌하여 따르지 않습니까?”
眾視之,乃山陽高平人,姓王名粲, 字仲宣。
사람들이 보니 바로 산양군 고평현 사람으로 성은 왕이고 이름은 찬인데 자는 중선이다.
粲容貌瘦弱,身材短小;
幼時往見中郎蔡邕,時邕高朋滿座,聞粲至,倒履迎之。
왕찬은 용모가 여위고 허약하며 키가 작았다.
어려서 중랑 채옹을 찾아가 만나니 당시 채옹은 고상한 벗들이 좌석에 가득한데, 왕찬이 왔음을 듣더니 신발을 거꾸로 신고 그를 맞이하였다.
賓客皆驚曰:
「蔡中郎何獨敬此小子耶?」
빈객들이 모두 놀라 말하였다.
“채중랑께서 왜 유독 이 아이만 공경하십니까?”
邕曰:
「此子有異才,吾不如也.」
채옹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남다른 재주가 있어 저보다 뛰어납니다.”
粲博聞強記,人皆不及:
왕찬은 博聞強記하니 사람들이 모두 미치지 못하였다.
嘗觀道旁碑文一過,便能記誦;
일찍이 길가의 비문을 한번 보고는 바로 외워 읊었다.
觀人弈棋,棋局亂,粲復為擺出,不差一子。
남들이 두는 바둑을 보고 있다가 바둑판이 어지러워졌는데, 왕찬이 복기하니 한 수도 틀리지 않았다.
又善算術。
또한 산술을 잘하였다.
其文詞妙絕一時。
그 문장이 뛰어나서 한때 비교할 사람이 없었다.
年十七,辟為黃門侍郎,不就。
나이 열일곱에 黃門侍郎으로 천거됐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後因避亂至荊、襄,劉表以為上賓。
뒷날 형주 양양으로 피난하여 유표가 上賓으로 삼았다.
當日謂劉琮曰:
「將軍自料比曹公何如?」
그날 유종에게 말하였다.
“장군께서 스스로 헤아리시기에 조공에 비해 어떻습니까?”
琮曰:
「不如也.」
유종이 말하였다.
“그보다 못합니다.”
粲曰:
「曹公兵強將勇,足智多謀。
擒呂布於下邳,摧袁紹於官渡,逐劉備於隴右,破烏桓於白登,梟除蕩定者,不可勝計。
今以大軍南下荊、襄,勢難抵敵。
傅、蒯二君之謀,乃長策也。
將軍不可遲疑,致生後悔.」
왕찬이 말하였다.
“조공은 兵強將勇에다 足智多謀입니다.
하비에서 여포를 사로잡고, 관도에서 원소를 꺾었으며, 농우에서 유비를 쫓아내고 백등에서 오환을 격파했습니다. 베어 죽이고 평정한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 대군으로써 형주 양양으로 남하하니 그 세력을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부손과 괴월 두 분의 꾀는 곧 멀리 바라보는 계책입니다.
장군께서 머뭇거리다 후회가 생기는 데 이르면 안 됩니다.”
琮曰:
「先生見教極是。
但須稟告母親知道.」
유종이 말하였다.
“선생의 가르침이 극히 옳습니다.
다만 모친께 稟告하여 알려야겠습니다.”
但見蔡夫人從屏後轉出,謂琮曰:
「既是仲宣、公悌、異度三人所見相同,何必告我?」
채부인이 병풍 뒤에서 돌아 나와 유종에게 말하였다.
“이미 중선, 공제, 이도 세 분의 소견이 같은데 나에게 고할 필요가 있겠느냐?”
於是劉琮意決,便寫降書,令宋忠潛地往曹操軍前投獻。
이에 유종이 뜻을 정하여 항복 문서를 써서 송충에게 명령하여, 몰래 조조 군에 가서 바치게 하였다.
宋忠領命,直至宛城,接著曹操,獻上降書。
송충이 명을 받들어 곧바로 완성에 가서 조조를 만나 항서를 바쳤다.
操大喜,重賞宋忠. 分付叫劉琮出城迎接,便著他永為荊州之主。
조조가 크게 기뻐하여 송충을 후하게 포상하고 분부하기를, 유종이 성을 나와 영접하게 하면 그를 영원히 형주의 주인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宋忠拜辭曹操,取路回荊、襄。
송충이 조조에게 작별하고 길을 나서 형주 양양으로 돌아갔다.
將欲渡江,忽見一枝人馬到來。
강을 건너려는데 문득 一枝人馬가 다가왔다.
視之,乃關雲長也。
바라보니 바로 관운장이다.
宋忠回避不迭,被雲長喚住,細問荊州之事。
송충이 미처 회피하지 못하니, 운장이 불러서 멈추고 형주의 일을 캐물었다.
忠初時隱諱;後被雲長盤問不過,只得將前後事情,一一實告。
송충이 처음에는 숨기다가, 뒤에 운장이 거듭 캐묻자 어쩌지 못해 전후 사정을 낱낱이 사실대로 고하였다.
雲長大驚,隨捉宋忠至新野,見玄德備言其事。
운장이 깜짝 놀라서 송충을 붙잡아 신야로 가서 현덕을 만나 그 일을 낱낱이 말하였다.
玄德聞之大哭。
현덕이 듣고 크게 곡하였다.
張飛曰:
「事已如此,可先斬宋忠,隨起兵渡江,奪了襄陽,殺了蔡氏、劉琮,然後與曹操交戰.」
장비가 말하였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먼저 송충을 참하고 출병해 강을 건너 양양을 빼앗고 채씨와 유종을 죽인 뒤에 조조와 더불어 교전해야 합니다.”
玄德曰:
「你且緘口。
我自有斟酌.」
현덕이 말하였다.
“너는 우선 입을 다물어라.
내 나름대로 짐작하는 것이 있다.”
乃叱宋忠曰:
「你知眾人作事,何不早來報我?
今雖斬汝,無益於事。
可速去.」
현덕이 송충을 꾸짖어 말하였다.
“너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벌임을 알고 어찌해서 일찍 내게 알리지 않았느냐?
이제 너를 참한들 일에 아무 이득이 없으니 어서 돌아가라.”
忠拜謝,抱頭鼠竄而去。
송충이 감사 인사를 하고 머리를 감싼 채 쥐처럼 달아났다.
玄德正憂悶間,忽報公子劉琦差伊籍到來。
현덕이 한창 근심하고 있는데 문득 공자 유기가 이적을 보냈다는 보고가 있었다.
玄德感伊籍昔日相救之恩,降階迎之,再三稱謝。
현덕은 그가 지난날 구해준 은혜를 고맙게 여겨 계단을 내려가 맞이하여 거듭 사례하였다.
籍曰:
「大公子在江夏,聞荊州已故,蔡夫人與蔡瑁等商議,不來報喪,竟立劉琮為主。
公子差人往襄陽探聽,回說是實;
恐使君不知,特差某齎哀書呈報,並求使君盡起麾下精兵,同往襄陽問罪.」
이적이 말하였다.
“큰 공자는 강하에서 유형주께서 이미 돌아가시고 채 부인이 채모 등과 상의하여 부고도 보내지 않고 마침내 유종을 주군으로 옹립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자께서 사람을 양양으로 보내 정탐하게 했는데, 돌아와서 이것이 사실임을 말하였습니다.
아마 사군께서 알지 못하리라 여겨서, 특별히 저를 보내 부고의 글을 전하고, 아울러 사군께 요청해 휘하 정병을 모두 동원해 함께 양양으로 가서 죄를 묻자고 하십니다.”
玄德看書畢,謂伊籍曰:
「機伯只知劉琮僭立,更不知劉琮已將荊、襄九郡,獻於曹操矣!」
현덕이 서찰을 다 읽고 나서 이적에게 말하였다.
“기백은 단지 유종이 僭立함만 알지 유종이 형주 양양 9군을 조조에게 바쳤음을 모르는구려!”
籍大驚曰:
「使君從何知之?」
이적이 깜짝 놀라 말하였다.
“사군께서 어떻게 그 사실을 아십니까?”
玄德具言拏獲宋忠之事。
현덕이 송충을 사로잡은 일을 낱낱이 말하였다.
籍曰:
「若如此,使君不如以弔喪為名,前赴襄陽,誘劉琮出迎,就便擒下,誅其黨類,則荊州屬使君矣.」
이적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군께서는 문상을 명분으로 양양으로 달려가서 유종을 마중 나오게 유인하여 사로잡아서 그 黨類를 처형하여 형주가 사군께 속하도록 하심이 낫겠습니다.”
孔明曰:
「機伯之言是也。
主公可從之.」
공명이 말하였다.
“기백의 말씀이 옳습니다. 주공께서 따르셔야 합니다.”
玄德垂淚曰:
「吾兄臨危託孤於我,今若執其子而奪其地,異日死於九泉之下,何面目復見吾兄乎?」
현덕이 눈물 흘리며 말하였다.
“내 형님께서 臨危託孤於我인데, 이제 그 아들을 잡고 그 땅을 빼앗으면, 훗날 죽어 九泉之下에서 무슨 낯으로 형님을 다시 보겠습니까?”
孔明曰:
「如不行此事,今曹兵已至宛城,何以拒敵?」
공명이 말하였다.
“만약 이 일을 행하지 않으면 지금 조조 병력이 벌써 宛城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대적하시겠습니까?”
玄德曰:
「不如走樊城以避之.」
현덕이 말하였다.
“번성으로 달아나 피함이 낫겠습니다.”
正商議間,探馬飛報曹兵已到博望了。
상의하고 있는데 探馬가 급보를 전하기를, 조조의 병력이 이미 박망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玄德慌忙發付伊籍回江夏整頓軍馬,一面與孔明商議拒敵之計 。
현덕이 황망히 이적을 강하로 되돌려 보내어 군마를 정돈하게 하는 한편, 공명과 더불어 拒敵之計를 상의하였다.
孔明曰:
「主公且寬心。
前番一把火,燒了夏侯惇大半人馬;
今番曹軍又來,必教他中這條計。
我等在新野住不得了,不如早到樊城去.」
공명이 말하였다.
“주공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번에 한 움큼의 불로써 하후돈의 인마의 태반을 불살랐습니다.
이번에 조조의 군대가 다시 오는데, 틀림없이 조조에게 저번에 계략에 빠졌음을 가르쳐줬을 터입니다.
우리가 신야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 일찍 번성으로 감이 낫습니다.”
便差人四門張榜,曉諭居民:
「無問老幼男女,願從者,即於今日皆跟我往樊城暫避, 不可自誤.」
곧 사람을 보내 4개 성문에 방을 써 붙여 거주민들에게 曉諭하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願從者는 오늘 즉시 모두 나를 따라 번성으로 잠시 피난하되, 착오가 없도록 하라.”
差孫乾往河邊調撥船隻,救濟百姓;
손건을 강가로 보내 선박을 조달하여 백성을 구제하게 하였다.
差糜竺護送各官家眷到樊城。
미축을 보내 관리들의 가족을 호위해 번성으로 가게 하였다.
一面聚諸將聽令:
한편으로 장수들을 모아 군령을 듣게 하였다.
先教雲長:
「引一千軍去白河上流頭埋伏。
各帶布袋,多裝沙土,遏住白河之水;
至來日三更後,只聽下流頭人喊馬嘶,急取起布袋,放水淹之,卻順水殺將下來接應.」
먼저 운장에게 일렀다.
“1천 군사를 이끌고 白河上流頭로 가서 매복하시오.
사람마다 포대를 가져가 모래와 흙을 많이 담아 백하의 물을 막으시오.
내일 3경이 지나서 하류에서 人喊馬嘶가 들리거든 급히 포대를 허물어 물을 놓아 침수시키고, 물살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서 접응하시오.”
又喚張飛:
「引一千軍去博陵渡口埋伏。
此處水勢最慢,曹軍被淹,必從此逃難,可便乘勢殺來接應.」
또한 장비를 불러 일렀다.
“1천 군사를 이끌고 博陵渡口에 매복하시오.
이곳의 물살은 가장 느려서 조조 군대가 물에 빠지면 틀림없이 이곳으로부터 도망갈 것이니 가히 기세를 타고 달려들어 접응할 수 있겠소.”
又喚趙雲:
「引軍三千,分為四隊,自領一隊伏於東門外,其三隊分伏西南北三門.
卻先於城內人家屋上,多藏硫黃焰硝引火之物。
曹軍入城,必安歇民房;
來日黃昏後,必有大風;
但看風起,便令西、南、北三門伏軍盡將火箭射入城去.
待城中火勢大作,卻於城外吶喊助威,只留東門放他出走;
汝卻於東門外從後擊之。
天明會合關、張二將收軍回樊城.」
또 조운을 불러 일렀다.
“3천 군사를 이끌되 4개 부대로 나누어 그 가운데 1개 부대를 장군 스스로 이끌고 동문 밖에 매복하고, 나머지 3개 부대는 서, 남, 북의 3개 성문에 매복하시오.
먼저 성안의 人家屋上에 유황과 염초 등의 引火之物을 가득 쌓아두시오.
조조의 군대가 입성하면 틀림없이 민가에서 쉴 것이오.
내일 황혼이 된 후에 틀림없이 큰바람이 불 것이오.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서, 남, 북 3개 문의 伏兵은 일제히 불화살을 성으로 쏘아 넣으시오.
성안에서 불길이 크게 일기를 기다렸다가 성 밖에서 함성을 질러 위세를 더하고, 동문에 머무르며 그들이 달아나게 놔두시오.
이때 그대가 동문 밖에서 뒤로부터 적군을 공격하시오.
동이 트면 관우, 장비 두 장군과 합쳐서 군사를 거두어 번성으로 돌아가시오.”
再令糜芳、劉封二人:
「帶二千軍,一半紅旗,一半青旗,去新野城外三十里鵲尾坡前屯住。
一見曹軍到,紅旗軍走在左,青旗軍走在右。
他心疑必不敢追。
汝二人卻去分頭埋伏 。
只望城中火起,便可追殺敗兵,然後卻來白河上流頭接應.」
다시 미방과 유봉 2인에게 명령하였다.
“2천 군사를 거느리고 절반은 붉은 깃발을, 절반은 푸른 깃발을 들고 신야성 밖 30리의 鵲尾坡 앞에 주둔하시오.
조조 군사가 오는 것이 보이면 紅旗軍은 왼쪽에서 달아나고, 青旗軍은 오른쪽에서 달아나시오.
그들은 의심하여 틀림없이 감히 뒤쫓지 못할 터이오.
그대 두 사람은 따로 나누어서 매복하시오.
성에서 불길이 치솟거든 바로 패잔병을 뒤쫓아 무찌른 뒤 백하 상류로 물러나 접응하시오.”
孔明分撥已定,乃與玄德登高了望,只候捷音。
공명이 작전 배치를 마치고 현덕과 더불어 登高了望하고, 捷音을 기다렸다.
卻說
曹仁、曹洪引軍十萬為前隊,前面已有許褚引三千鐵甲軍開路,浩浩蕩蕩,殺奔新野來。
한편,
조인과 조홍이 군사 10만을 거느려 선두 부대가 되고, 그 앞에 허저가 三千鐵甲軍을 이끌고 開路하고 浩浩蕩蕩 신야로 쇄도하였다.
是日午牌時分,來到鵲尾坡,望見坡前一簇人馬 ,盡打青、紅旗號。
이날 오패 무렵 작미파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니 언덕 앞에 한 무리의 인마가 있는데 모두 청기와 홍기를 가지고 있었다.
許褚催軍向前。
허저가 군사들을 재촉해 앞으로 나갔다.
劉封、糜芳分為四隊,青、紅旗各歸左右。
유봉과 미방이 4개 부대로 나누어 청기와 홍기가 각각 좌우로 돌아갔다.
許褚勒馬,教:
「且休進,前面必有伏兵。
我兵只在此處住下.」
허저가 말을 멈추고 지시하였다.
“우선 전진을 멈추어라. 앞에 틀림없이 복병이 있을 터이다.
우리 군사는 여기에 머물러야겠다.”
許褚一騎馬飛報前隊曹仁。
허저가 홀로 급히 말을 달려 선두 부대의 조인에게 급보하였다.
曹仁曰:
「此是疑兵,必無埋伏。
可速進兵。
我當催軍繼至.」
조인이 말하였다.
“이것은 疑兵이니 매복이 없음이 틀림없소.
어서 진병하시오.
나도 군사들을 재촉해 뒤따르겠소.”
許褚復回坡前,提兵殺入。
허저가 언덕 앞으로 되돌아가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들었다.
至林下追尋時,不見一人。
숲 아래까지 뒤쫓아가서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時日已墜西。
이때 해가 이미 서쪽으로 떨어졌다.
許褚方欲前進,只聽得山上大吹大擂。
허저가 전진하려는데 산 위에서 나팔 불고 북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抬頭看時,只見山頂上一簇旗,旗叢中兩把傘蓋,左玄德,右孔明,二人對坐飲酒。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산꼭대기에 한 떼의 깃발이 빽빽한 가운데 두 개의 일산 아래 왼쪽은 현덕, 오른쪽은 공명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許褚大怒,引軍尋路上山。
허저가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길을 찾아 산을 올랐다.
山上擂木炮石打將下來,不能前進。
산 위에서 아래로 나무를 굴리고 돌을 날려 전진할 수가 없었다.
又聞山後喊聲大振。
또한 산 뒤에서 함성이 크게 났다.
欲尋路廝殺,天色已晚。
나므로 길을 찾아 무찌르려 하나 날이 이미 저물었다.
曹仁領兵到,教且奪新野城歇馬。
조인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착하여 우선 신야성을 빼앗아서 쉬자고 하였다.
軍士至城下時,只見四門大開。
군사들이 성 밑에 다다르니 4개 성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曹兵突入,並無阻擋。
조조 군대가 돌입해도 아무도 막지 않았다.
城中亦不見一人,竟是一座空城了。
성안에도 역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뜻밖에도 텅 빈 성이었다.
曹洪曰:
「此是勢孤計窮,故盡帶百姓逃竄去了。
我軍權且在城安歇。
來日平明進兵.」
조홍이 말하였다.
“이것은 勢孤計窮하여 백성을 모조리 데리고 도망함이다.
아군은 잠시 이 성에서 쉬고 내일 해가 뜨면 출발하겠다.”
此時各軍走乏,都已飢餓,皆去奪房造飯。
이때 군사마다 걸어서 지치고 굶주려서 모두 방을 찾아 밥을 지었다.
曹仁、曹洪就在衙內安歇。
조인과 조홍도 관아로 들어가서 쉬었다.
初更已後,狂風大作。
초경(밤 8시)이 지나자 광풍이 크게 일어났다.
守門軍士飛報火起。
문을 지키던 군사가 불이 났다고 급보하였다.
曹仁曰:
「此必軍士造飯不小心,遺漏之火,不可自驚.」
조인이 말하였다.
“이는 틀림없이 군사들이 밥을 짓다가 조심하지 않아서 실수로 난 불이니, 놀라게 하지 말라.”
說猶未了, 接連幾次飛報,西、南、北三門皆火起。
말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잇따라 급보가 날아드니 서, 남, 북 세 개 성문에서 모조리 불길이 치솟는다고 한다.
曹仁急令眾將上馬時,滿縣火起,上下通紅。
조인이 급히 장수들에게 말을 타라고 명을 내릴 때, 온 현성에 불길이 치솟아 천지가 온통 붉은색이었다.
是夜之火,更勝前日博望燒屯之火。
이날 밤의 화공은 지난날 박망파에서 적진을 불사를 때의 화공을 능가하였다.
後人有詩歎曰:
후인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 奸雄曹操守中原, 九月南徵到漢川。
風伯怒臨新野縣, 祝融飛下燄摩天。>
<간웅 조조가 중원을 지키다가, 구월에 남정하여 한천에 이르렀네.
풍백이 노하여 신야에 임하고, 축융이 날아오니 화염이 하늘을 찌르네.>
曹仁引眾將突煙冒火,尋路奔走,聞說東門無火,急急奔出東門。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불과 연기를 뚫고 길을 찾아 바쁘게 달렸다. 동문엔 불이 붙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급급히 동문으로 달아났다.
軍士自相踐踏,死者無數。
군사들이 서로 짓밟아 죽은 자가 무수하였다.
曹仁等方纔脫得火厄,背後一聲喊起,趙雲引軍趕來混戰,敗軍各逃性命,誰肯回身廝殺。
조인 등이 막 火厄을 벗어나자, 뒤에서 한차례 함성이 일더니 조운이 군사를 이끌고 뒤쫓아와서 혼전을 벌였다. 패잔병들이 각각 살길을 찾아 달아나니 누군들 기꺼이 몸을 돌려 싸우겠는가?
正奔走間,糜芳引一軍至,又衝殺一陣,曹仁大敗,奪路而走。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미방이 1군을 이끌고 달려들어 다시 한바탕 무찌르니 조인이 대패하여 길을 앗아 달아났다.
劉封又引一軍截殺一陣。
유봉이 다시 1군을 이끌고 가로막아 한바탕 무찔렀다.
到四更時分,人困馬乏,軍士大半焦頭爛額;
4경에 이르러 사람과 말이 지치고, 군사들 태반이 머리털이 그을리고 이마가 불에 데었다.
奔至白河邊,喜得河水不甚深,人馬都下河吃水,人相喧嚷,馬盡嘶鳴。
백하 주변까지 달아나서 물이 별로 깊지 않음을 기뻐하며 인마들이 모두 물로 내려가서 물을 마셨다. 사람은 서로 아우성치고 말들은 모두 울부짖었다.
卻說
雲長在上流用布袋遏住河水。
한편,
운장이 상류에서 포대를 사용해 강물을 막아두었다.
黃昏時分,望見新野火起。
황혼 무렵에 멀리 보니, 신야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至四更,忽聽得下流頭人語馬嘶,急令軍士一齊掣起布袋,水勢滔天,望下流衝去。
4경에 이르자 문득 하류에서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말들이 울부짖음이 들렸다. 운장이 급히 명을 내려 군사들이 일제히 포대를 걷었다. 물살이 하늘까지 넘치며 하류로 맹렬하게 흘러갔다.
曹軍人馬俱溺於水中,死者極多。
조조 군대의 인마가 함께 물에 빠졌고 죽은 자가 극히 많았다.
曹仁引眾將望水勢慢處奪路而走,行到博陵渡口,只聽喊聲大起,一軍攔路,當先大將,乃張飛也,大叫:
「曹賊快來納命!」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물살이 완만한 쪽으로 길을 뚫고 달아났다. 박릉 나루 어귀에 이르러 함성이 크게 일고 1군이 길을 막는데 앞장선 대장은 바로 장비였다. 크게 외쳤다.
“조조 도적들아! 빨리 와서 목숨을 바쳐라!”
曹軍大驚。
조조의 군대가 크게 놀랐다.
正是:
城內纔看紅焰吐,水邊又遇黑風來。
이야말로,
성안에서 불꽃을 토하는 것을 봤는데, 물가에서 다시 컴컴한 바람을 만났네.
未知曹仁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조인의 목숨이 어떻게 될까? 다음 회의 설명을 또 보시오.
'漢詩와 漢文 > 삼국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三國演義(삼국연의)38회-三分天下와 孫氏報讎 (0) | 2023.02.11 |
---|---|
三國演義(삼국연의)39회-公子三求計와 軍師初用兵 (0) | 2023.02.11 |
三國演義(삼국연의)41회-趙子龍이 單騎로 救主하다 (0) | 2023.02.11 |
三國演義(삼국연의)42회-長坂橋와 漢津口 (0) | 2023.02.10 |
三國演義(삼국연의)43회-舌戰群儒와 力排眾議 (0) | 2023.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