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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演義(삼국연의)38회-三分天下와 孫氏報讎 본문

漢詩와 漢文/삼국연의

三國演義(삼국연의)38회-三分天下와 孫氏報讎

耽古樓主 2023. 2. 11. 04:25

第三十八回
定三分隆中決策 戰長江孫氏報讎.
제38회
隆中에서 三分天下의 계책을 정하고, 孫氏가 장강에서 싸워 원수를 갚다.


卻說
玄德訪孔明兩次不遇欲再往訪之
각설,
현덕이 공명을 두 번이나 찾아가 만나지 못했는데 또다시 찾아가려고 하였다.

關公曰
兄長兩次親往拜謁其禮太過矣
想諸葛亮有虛名而無實學故避而不敢見
兄何惑於斯人之甚也?」
관공이 말하였다.
“형님께서 두 번이나 몸소 뵈러 갔으니 그 예의가 너무 지나칩니다.
제 생각에 제갈량은 헛된 명성이 있을 뿐 실제 학문은 없어서 피하고 감히 만나지 않는 터입니다.
형님께서 이 사람에게 미혹됨이 어찌 이렇게 심합니까?”

玄德曰
不然
昔齊桓公欲見東郭野人五反而方得一面
況吾欲見大賢耶?」
현덕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옛날에 제나라 환공이 동곽의 野人을 만나려고 다섯 번이나 되돌아오고서야 비로소 한번 만날 수 있었다.
하물며 나는 大賢을 뵈려 하지 않느냐?”

張飛曰
哥哥差矣
量此村夫何足為大賢
今番不須哥哥去
他如不來我只用一條麻繩縛將來!」
장비가 말하였다.
“형님이 틀렸습니다.
그 촌뜨기를 헤아리건대 어찌 족히 대현이라 하겠습니까?
이번에 형님이 가실 필요 없습니다.
그자가 안 오면 내가 한 줄기 삼끈으로 묶어 오겠습니다!”

玄德叱曰
汝豈不聞周文王謁姜子牙之事乎
文王且如此敬賢汝何太無禮
今番汝休去我自與雲長去。」
현덕이 꾸짖어 말하였다.
“네가 어찌 주나라 문왕이 강자아를 찾아뵌 일을 듣지 못했느냐?
문왕조차도 그렇게 어진 이를 공경했는데 네가 어찌 이렇게 무례하냐!
이번에 너는 오지 마라. 내가 운장과 함께 가겠다.”

飛曰
既兩位哥哥都去
小弟如何落後?」
장비가 말하였다.
“두 형님이 모두 가시는데 아우가 어찌 뒤에 떨어져 있겠습니까?”

玄德曰
汝若同往不可失禮。」
현덕이 말하였다.
“네가 같이 가려면 실례해서는 안 된다.”

飛應諾
장비가 응낙하였다.

於是三人乘馬引從者往隆中
이에 세 사람이 말을 타고 하인을 이끌고 융중으로 갔다.

離草廬半里之外玄德便下馬步行正遇諸葛均
초가집에서 반 리쯤 떨어진 곳에서 현덕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마침 제갈균을 만났다.

玄德忙施禮問曰
令兄在莊否?」
현덕이 황망히 인사를 하고 물었다.
“令兄께서 집에 계시오?”

均曰
昨暮方歸
將軍今日可與相見。」
제갈균이 말하였다.
“어제저녁에 막 돌아왔습니다.
장군께서 오늘 만나실 수 있겠습니다.”

言罷飄然自去
말을 마치자 표연히 떠나갔다.

玄德曰
今番僥倖得見先生矣!」
현덕이 말하였다.
“이번에는 요행히 선생을 만날 수 있겠구나!”

張飛曰
此人無禮便引我等到莊也不妨何故竟自去了!」
장비가 말하였다.
“저 사람이 무례하네요. 우리를 안내해서 집으로 데려가도 무방한데, 무슨 까닭으로 자기 혼자 가버린단 말이오!”

玄德曰
彼各有事豈可相強。」
현덕이 말하였다.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텐데 어찌 억지로 하겠느냐?”

三人來到莊前叩門童子開門出問
세 사람이 집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니 동자가 문을 열고 나와서 물었다.

玄德曰
有勞仙童轉報
劉備專來拜見先生。」
현덕이 말하였다.
“수고스럽겠지만 동자는 유비가 선생을 뵈러 왔다고 말씀드려라.”

童子曰
今日先生雖在家但今在草堂上晝寢未醒。」
동자가 말하였다.
“오늘은 선생께서 비록 집에 계시나, 이제 초당에서 낮잠을 주무셔서 아직 깨지 않으셨습니다.”

玄德曰
既如此且休通報。」
현덕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잠시 통보를 멈추어라.”

分付關張二人只在門首等著
관우와 장비 두 사람에게 분부하여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玄德徐步而入見先生仰臥於草堂幾席之上
玄德拱立階下
현덕이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니 선생은 초당 돗자리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현덕이 拱手하고 섬돌 아래에 섰다.

半晌先生未醒
한동안 선생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張在外立久不見動靜入見玄德猶然侍立
관우와 장비가 밖에서 오래 서 있어도 동정을 알 수 없어서 들어가 현덕을 보니 여전히 侍立해 있었다.

張飛大怒謂雲長曰
這先生如何傲慢
見我哥哥侍立階下他竟高臥推睡不起
等我去屋後放一把火看他起不起!」
장비가 크게 노하여 운장에게 일렀다.
“저 선생이 어찌 저렇게 오만하오!
보자니 형님께서는 섬돌 아래 지켜 서 있고, 그는 높이 누워서 잠자는 체하며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집 뒤로 가서 불을 지를 테니 그가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보십시오!”

雲長再三勸住
운장이 거듭 말렸다.

玄德仍命二人出門外等候
현덕이 이에 두 사람에게 문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명하였다.

望堂上時見先生翻身將起忽又朝裏壁睡著
초당 위를 올려다보니 선생이 몸을 돌려 일어나는가 싶더니 문득 다시 안쪽 벽을 보고 잠이 들었다.

童子欲報
동자가 보고하려 하였다.

玄德曰
且勿驚動。」
현덕이 말하였다.
“당분간 놀라게 하지 말아라.”

又立了一個時辰孔明纔醒口吟詩曰
다시 한 시진(두 시간)을 더 서서 기다려서야 공명이 겨우 깨어나 시를 읊었다.


< 大夢誰先覺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窗外日遲遲>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달았는가? 평생 내 스스로 알았네.
초당에서 봄 꿈은 족한데 창밖의 해는 느릿느릿하구나.>

孔明吟罷翻身問童子曰
有俗客來否?」
공명이 읊고 나서 몸을 뒤집어 동자에게 물었다.
“세속 손님이 찾아왔느냐?”

童子曰
劉皇叔在此立候多時。」
동자가 말하였다.
“유황숙께서 여기에 서서 기다리신 지 오랩니다.”

孔明乃起身曰
何不早報尚容更衣。」
이에 공명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어째서 일찍 알리지 않았느냐?
옷을 갈아입기를 기다려라.”

遂轉入後堂
이어 후당으로 들어갔다.

又半晌方整衣冠出迎
다시 한참 지나서야 옷과 갓을 차려입고 나와서 맞이하였다.

玄德見孔明身長八尺面如冠玉頭戴綸巾身披鶴氅飄飄然有神仙之概
현덕이 공명을 보니 키가 8척이요, 얼굴은 관옥 같고, 머리에 윤건을 쓰고, 몸에 학창의를 입어서 바람에 날리듯 신선의 기품이 풍겼다.

玄德下拜曰
漢室末冑涿郡愚夫久聞先生大名如雷貫耳
昨兩次晉謁不得一見已書賤名於文几未審得入覽否?」
현덕이 허리 굽혀 인사하고 말하였다.
“한실의 보잘것없는 후예, 탁군의 어리석은 사내가 오래전부터 선생의 큰 명성을 우레가 귀를 꿰뚫는 듯이 들어왔습니다.
전날에 두 차례 찾아와 뵈려 했으나 한 번도 뵙지 못하고 그때 천한 이름을 책상에 남겼는데 읽어보셨습니까?”

孔明曰
南陽野人疏懶性成屢蒙將軍枉臨不勝愧赧。」
공명이 말하였다.
“저는 남양 땅의 야인으로서 게으름이 천성이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거듭 왕림하시니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二人敘禮分賓主而坐
두 사람이 예를 갖춰 인사하고 손님과 주인으로 나누어 앉았다.

童子獻茶
동자가 차를 바쳤다.

茶罷孔明曰
昨觀書意足見將軍憂民憂國之心
但恨亮年幼才疏有誤下問。」
차를 마신 후 공명이 말하였다.
“지난번에 남기신 글의 뜻을 살피오니, 將軍의 憂民憂國之心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年幼才疏하니 잘못 물으셨습니다.”

玄德曰
司馬德操之言徐元直之語豈虛談哉
望先生不棄鄙賤曲賜教誨。」
현덕이 말하였다.
“사마덕조나 서원직의 말이 어찌 허튼 이야기이겠습니까?
제가 鄙賤하다고 버리지 마시고, 삼가 가르침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孔明曰
德操元直世之高士
亮乃一耕夫耳安敢談天下事
二公謬舉矣
將軍奈何捨美玉而求頑石?」
공명이 말하였다.
“사마덕조나 서원직은 당세의 뛰어난 선비입니다.
저는 밭이나 가는 하나의 농부일 뿐이니 어찌 감히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두 분께서 잘못 천거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어찌 捨美玉而求頑石하십니까?”

玄德曰
大丈夫抱經世奇才豈可空老於林泉之下
願先生以天下蒼生為念開備愚魯而賜教。」
현덕이 말하였다.
“대장부가 세상을 다스릴 재주를 갖고서 어찌 林泉에 묻혀 헛되이 늙어가겠습니까?
원컨대 선생께서는 천하의 백성들을 생각하셔서 저의 우둔함을 깨우쳐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孔明笑曰
願聞將軍之志。」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玄德屏人促席而告曰
漢室傾頹奸臣竊命
備不量力欲伸大義於天下而智術淺短迄無所就
惟先生開其愚而拯其厄實為萬幸!」
현덕이 사람을 물리치고 자리를 당겨 앉아 고하여 말하였다.
“한실이 기울어 무너지고 간신이 국가권력을 빼앗았습니다.
제가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천하에 대의를 펴고자 하나 지혜와 책략이 얕고 짧아서 결국 아무것도 이룸이 없습니다.
선생께서 저의 우매함을 깨우쳐서 厄難에서 건져주시면 실로 천만다행이겠습니다.”

孔明曰
自董卓造逆以來天下豪傑並起
曹操勢不及袁紹而竟能克紹者非惟天時亦人謀也
今操已擁百萬之眾挾天子以令諸侯此誠不可與爭鋒
孫權據有江東已歷三世國險而民附此可用為援而不可圖之也
荊州北據漢利盡南海東連吳會西通巴蜀此用武之地非其主不能守是殆天所以資將軍將軍豈有意乎
益州險塞沃野千里天府之國高祖因之以成帝業今劉璋闇弱民殷國富而不知存恤智能之士思得明君
將軍既帝室之冑信義著於四海總攬英雄思賢如渴.
若跨有荊保其巖阻西和諸戎南撫彝外結孫權內修政理待天下有變則命一上將將荊州之兵以向宛將軍身率益州之眾以出秦川百姓有不簞食壺漿以迎將軍者乎
誠如是則大業可成漢室可興矣
此亮所以為將軍謀者也
惟將軍圖之。」
공명이 말하였다.
“동탁이 반역한 뒤로부터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조조는 세력이 원소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원소를 이긴 것은 오로지 하늘이 도와서만이 아니라 사람의 謀策이 훌륭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지금 조조는 이미 백만의 무리를 가지고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이것은 참으로 더불어 교전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손권은 강동을 웅거한 지 벌써 3대에 이르고 국경은 험준하고 백성이 잘 따르니, 이를 (우리를) 지원하는 세력으로 삼을 수는 있어도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형주는 북으로 한수와 면수에 의지하고, 남해의 물자를 모두 취할 수 있고, 동쪽으로 오군과 회계군에 잇닿았고, 서쪽으로 파촉 지방과 통하니, 이곳은 무력으로 취할 땅으로 그 주인이 아니면 지킬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이것은 거의 하늘이 장군께 내려 도와주려는 함인데, 장군께서 (형주를 취할) 뜻이 있으십니까?
익주는 험준한 요새이고 기름진 땅이 천 리나 되는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땅입니다.
고조께서도 그곳을 원인으로 해서 帝業을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유장은 어리석고 약하여, 백성과 나라는 부유하지만, 사람을 위문하고 구제할 줄을 몰라서, 지혜와 재능이 있는 선비들은 현명한 군주 얻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황실의 후예로서 신의가 사해에 현저하고 영웅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어진 이를 생각하기를 목마른 듯이 하십니다.
만약 형주와 익주에 걸터앉아서 그 험난한 땅을 지키고, 서융의 오랑캐들과 화친하며 남쪽으로 이와 월의 오랑캐들을 달래고, 바깥으로 손권과 (동맹을) 結緣하고, 안으로 정치를 닦으면, 천하의 변고를 기다렸다가, 즉시 한 명의 뛰어난 장수에게 명령해서 형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완성과 낙양으로 향하게 합니다.
장군께서 몸소 익주의 대군을 거느리고 진천으로 나가시면 백성들 가운데 簞食壺漿으로 장군을 맞이하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같이 하시면 가히 대업을 이루어서 한실을 중흥할 터입니다.
이것이 제가 장군을 위해 꾀함입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 이것을 도모하십시오.”

言罷命童子取出畫一軸挂於中堂指謂玄德曰
此西川五十四州之圖也
將軍欲成霸業北讓曹操占天時南讓孫權占地利將軍可占人和
先取荊州為家後即取西川建基業以成鼎足之勢然後可圖中原也。」
말을 마치자 동자에게 명해 그림 한 폭을 꺼내서 中堂에 걸게 하고, 가리키며 현덕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서천 54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고자 하시면, 북으로 조조에게 천시(하늘이 내린 기회)를 가지도록 양보하고, 남으로 손권에게 지리(지리적 우세)를 가지도록 양보하고, 장군께서는 가히 人和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형주를 취해 내 집으로 만든 뒤, 그 후에 서천을 취해 基業을 세움으로써 鼎足之勢(솥의 세다리처럼 맞선 형세)를 이룬 후에야 중원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玄德聞言避席拱手謝曰
先生之言頓開茅塞使備如撥雲霧而睹青天
但荊州劉表益州劉璋皆漢室宗親備安忍奪之?」
현덕이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맞잡고 사례해 말하였다.
“선생의 말씀으로 頓開茅塞하니, 저에게 구름과 안개를 걷어내고 푸른 하늘을 보게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형주의 유표나 익주의 유장이 모두 한실의 종친이라 제가 어찌 차마 빼앗겠습니까?”

孔明曰
亮夜觀天象劉表不久人世
劉璋非立業之主久後必歸將軍。」
공명이 말하였다.
“제가 밤에 天象(천문)을 살피니 유표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뜰 터입니다.
유장은 창업할 군주가 아니므로, 장래에 틀림없이 귀순할 터입니다.”

玄德聞言頓首拜謝
현덕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였다.

只這一席話乃孔明未出茅廬已知三分天下真萬古之人不及也
이 한 자리의 이야기는 바로 공명이 茅廬를 떠나기 전에 이미 천하를 셋으로 나눌 것임을 앎이니, 참으로 만고의 사람이 미칠 수 없겠다!

後人有詩讚曰
후인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豫州當日歎孤窮何幸南陽有臥龍
欲識他年分鼎處先生笑指畫圖中>
<유예주가 당시 외롭고 어려움을 한탄했는데, 남양의 와룡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뒷날 鼎足으로 나뉠 곳을 알고자 하니, 선생은 웃으며 지도를 가리키네.>

玄德拜請孔明曰
備雖名微德薄願先生不棄鄙賤出山相助
備當拱聽明誨。」
현덕이 공명에게 공경히 청하였다.
“제가 비록 名微德薄이지만 원하건대 선생께서 不棄鄙賤하고 산을 나와 도와주십시오.
제가 마땅히 두 손을 맞잡고 현명한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孔明曰
亮久樂耕鋤懶於應世不能奉命。」
공명이 말하였다.
“저는 오랫동안 밭을 갈고 김매기를 즐기고 세상에 적응함에 게을러서 능히 명을 받들지 못합니다.”

玄德泣曰
先生不出如蒼生何?」
현덕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선생께서 나오지 않으시면 백성은 어찌합니까?”

言畢淚沾袍袖衣襟盡濕
말을 마치니 눈물이 도포의 소매를 적시고 옷깃이 모두 젖었다.

孔明見其意甚誠乃曰
將軍既不相棄願效犬馬之勞。」
공명이 그 뜻이 매우 정성스러움을 보고 말하였다.
“장군께서 버리지 않으시니, 원컨대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玄德大喜遂命關張入拜獻金帛禮物
현덕이 크게 기뻐하여, 관우와 장비에게 들어와 인사하게 하고, 금과 비단을 예물로 바쳤다.

孔明固辭不受
공명이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玄德曰
此非聘大賢之禮但表劉備寸心耳。」
현덕이 말하였다.
“이것은 大賢을 초빙하는 예물이 아니라, 다만 유비의 작은 정성을 표시할 뿐입니다.”

孔明方受
공명이 그제야 받았다.

於是玄德等在莊中共宿一宵
이에 현덕 일행이 그 집에서 함께 하룻밤을 함께 묵었다.

次日諸葛均回孔明囑付曰
吾受劉皇叔三顧之恩不容不出
汝可躬耕於此勿得荒蕪田畝
待我功成之日即當歸隱。」
이튿날 제갈균이 돌아오자 공명이 당부하였다.
“내가 유황숙의 三顧之恩을 입어서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여기서 몸소 농사를 지어 논밭을 황무지로 만들지 말아라. 내가 공을 이루는 날을 기다려, 마땅히 돌아와서 은거하겠다.”

後人有詩歎曰
후인이 시를 지어 감탄하였다.


<身未升騰思退步功成應憶去時言
只因先主丁寧後星落秋風五丈原>
<세상에 나아가기에 앞서 물러날 생각을 하니, 공을 이뤘으면 응당 그때의 말을 기억했으리라.
오직 선주가 간절히 부탁하여서, 가을바람 부는데 오장원에 별이 떨어졌네.>


又有古風一篇曰
또 고풍 한 편을 지었다.


<高皇手提三尺雪芒碭白蛇夜流血
平秦滅楚入咸陽二百年前幾斷絕
大哉光武興洛陽傳至桓靈又崩裂
獻帝遷都幸許昌紛紛四海生豪傑
曹操專權得天時江東孫氏開鴻業
孤窮玄德走天下獨居新野愁民危
南陽臥龍有大志腹內雄兵分正奇
只因徐庶臨行語茅廬三顧心相知
先生爾時年三九收拾琴書離隴畝
先取荊州後取川大展經綸補天
縱橫舌上鼓風雷談笑胸中換星斗
龍驤虎視安乾坤萬古千秋名不朽>
<고황제께서 하얀 삼척검을 들고, 망탕산 흰 뱀은 밤중에 피를 흘렸네.
진나라와 초나라를 멸해서 함양에 들어갔으나, 이백년 전에 하마터면 끊어질 뻔했네.
크구나! 광무께서 낙양에서 중흥했으나, 환제와 영제에 이르러 또 무너지고 갈라지네.
헌제가 천도해서 허창으로 가지만, 어지러이 사해에서 호걸들 일어났네.
조조가 권력을 장악해 천시를 얻었고, 강동에서 손씨가 큰 사업을 열었네.
외롭고 어려운 현덕은 천하를 떠돌다가, 신야에서 홀로 지내며 백성의 危難을 걱정했네.
남양의 와룡이 커다란 뜻을 가지고, 뱃속에 웅대한 병법엔 正과 奇로 나누어져 있네.
서서는 현덕을 떠나가며 말을 남겼고, (공명은) 모려를 세 번 찾아온 마음을 알았네.
선생이 이때 나이가 스물일곱 살인데, 거문고와 책을 챙겨 논밭을 떠나네.
먼저 형주를 취한 뒤에 서천을 취하여, 경륜을 크게 펼쳐 世運을 구하리라.
종횡하는 혀끝에서 바람과 우레가 몰아치고, 담소하는 가슴 속에서 별자리를 바꾸네.
용처럼 달리고 범처럼 노려보며 천하를 안정시키니, 萬古千秋에 그 이름이 썩지 않으리라.>


玄德等三人別了諸葛均與孔明同歸新野
현덕 등 세 사람이 제갈균과 작별하고 공명과 더불어 신야로 돌아왔다.

玄德待孔明如師食則同桌寢則同榻終日共論天下大事
현덕이 공명을 스승같이 대하여 같은 식탁에서 먹고 같은 침상에서 자며, 종일 천하의 대사를 함께 의논하였다.

孔明曰
曹操於冀州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侵江南之意
可密令人過江探聽虛實。」
공명이 말하였다.
“조조가 기주에서 현무지를 만들어 놓고 수군을 조련하니, 틀림없이 강남을 침범할 뜻을 가졌습니다.
몰래 사람을 장강 너머로 보내 허실을 探聽해야 합니다.”

玄德從之使人往江東探聽
현덕이 그 말에 따라 사람을 강동으로 보내 探聽케 하였다.


卻說
孫權自孫策死後據住江東承父兄基業廣納賢士開賓館於吳會命顧雍張紘延接四方賓客
한편,
손권이 손책의 사후부터 강동에 웅거하여 아버지와 형의 기업을 이어받아 널리 어진 선비를 받아들이고 오군과 회계 땅에 객관을 열어 고옹과 장굉에게 명하여 사방의 빈객을 접견하게 하였다.

連年以來你我相薦
여러 해 계속되어 너도나도 추천하였다.

時有
會稽闞澤字德潤
彭城嚴峻字曼才
沛郡薛綜字敬文
汝南程秉字德樞
吳郡朱桓字休穆
陸績字公紀
吳人張溫字惠恕
會稽駱統字公緒
烏程吳粲字 孔休
此數人皆至江東
당시에
회계의 감택은 자가 덕윤이고,
팽성의 엄준은 자가 만재이며,
패현의 설종은 자가 경문이고,
여남의 정병은 자가 덕추이며,
오군의 주환은 자 휴목이고,
육적은 자가 공기이며,
오군 사람 장온은 자가 혜서이고,
회계의 낙통은 자 공서이며,
오정의 오찬은 자 공휴이었는데,
이러한 여러 인사가 다 강동으로 모여들었다.

孫權敬禮甚厚
손권이 공경하는 예의가 아주 후하였다.

又得良將數人
汝陽呂蒙字子明
吳郡陸遜字伯言
琅琊徐盛字文嚮
東郡潘璋字文珪廬江丁奉字承淵
또 뛰어난 장수를 몇몇을 얻었는데, 그들은
여양의 여몽 자 자명이고,
오군의 육손 자 백언이며,
낭야의 서성 자 문향이고,
동군의 반장 자 문규이며,
여강의 정봉 자 승연이다.

文武諸人共相輔佐
문관과 무관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보좌하였다.

由此江東稱得人之盛
이로 말미암아 강동은 인재를 많이 얻었다고 일컬어졌다.

建安七年曹操破袁紹遣使往江東命孫權遣子入朝隨駕
건안 7년에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고 사자를 강동에 보내어 손권에게 명하여 그 아들을 入朝시켜 황제를 모시라고 하였다.

權猶豫未決
손권이 유예하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吳太夫人命周瑜張昭等面議
오태부인이 주유와 장소 등을 직접 만나 의논하였다.

張昭曰
操欲令我遣子入朝是牽制諸侯之法也
然若不令去恐其興兵下江東勢必危矣。」
장소가 말하였다.
“조조가 우리에게 아드님을 入朝시키려 함은 바로 牽制諸侯之法입니다.
그러나 보내지 않으면 아마도 그가 강동으로 출병해서 형세가 필시 위태로워지겠습니다.”

周瑜曰
將軍承父兄遺業兼六郡之眾 兵精糧足將士用命有何逼迫而欲送質於人
質一入不得不與曹氏連和彼有命召不得不往如此則見制於人也
不如勿遣徐觀其變別以良策禦之。」
주유가 말하였다.
“장군께서 부형의 유업을 이어받아 6군의 군사를 아우르고 兵精糧足하고, 將士用命하는데 어째서 핍박을 받아 인질을 남에게 보내야겠습니까?
인질을 한 번 보내면 조씨와 계속하여 화친하지 않을 수 없고, 그가 부르면 가지 않을 수 없으니, 이렇게 남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인질을 보내지 말고 천천히 그 변화를 살펴 따로 좋은 계책으로 방어함이 낫습니다.”

吳夫人曰
公瑾之言是也。」
오태부인이 말하였다.
“공근의 말씀이 옳소.”

權遂從其言謝使者不遣子
손권이 마침내 그 말에 따라 사자는 돌려보내고 아들은 보내지 않았다.

自此曹操有下江南之意
이때부터 조조가 강남을 정벌할 마음을 가졌다.

但正值北方未寧無暇南征
다만 북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남쪽을 정벌할 틈이 없었다.

建安八年十一月孫權引兵伐黃祖戰於大江之中
건안 8년 11월에 손권이 군사를 이끌고 황조​를 정벌하여 장강에서 싸웠다.

祖軍敗績
황조의 군대가 거듭 패하였다.

權部將凌操輕舟當先殺入夏口被黃祖部將甘寧一箭射死
손권의 부장 능조가 가볍고 빠른 배를 타고 앞장서 하구에서 쳐들어갔다가 황조의 부장 감녕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凌操子凌統時年方十五歲奮力往奪父屍而歸
능조의 아들 능통이 당시 막 15세인데 힘을 떨쳐 나아가 아버지의 시신을 빼앗아 돌아왔다.

權見風色不利收軍還東吳
손권이 전세가 불리함을 알고 군사를 거두어 동오로 되돌아갔다.


卻說
孫權弟孫翊為丹陽太守, 翊性剛好酒醉後嘗鞭撻士卒
한편,
손권의 아우 손익이 단양 태수로 있었는데, 성격이 剛愎하고 술을 좋아해서 취하면 언제나 사졸들을 채찍으로 때렸다.

丹陽督將媯覽郡丞戴員二人常有殺翊之心乃與翊從人邊洪結為心腹共謀殺翊
단양의 감독 장수 媯覽과 군의 보좌관 戴員 두 사람이 늘 손익을 죽일 마음을 먹고, 손익의 從人 邊洪을 심복으로 삼아 함께 손익을 죽이기를 도모하였다.

時諸將縣令皆集丹陽翊設宴相待
당시 장수들과 현령들을 모두 단양에 모였는데 손익이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려 하였다.

翊妻徐氏美而慧極善卜易
손익의 아내 서씨는 아름다운데다 지혜로웠고 주역 점을 아주 잘 쳤다.

是日卜一卦其象大凶勸翊勿出會客
그날 한 괘를 점쳐보니 그 징조가 몹시 흉해서 손익에게 외출하여 손님을 만나지 말라고 권하였다.

翊不從遂與眾大會
손익이 따르지 않고 끝내 사람들과 크게 모임을 가졌다.

至晚席散邊洪帶刀跟出門外即抽刀砍死孫翊
저녁이 되어 자리를 파하니, 변홍이 칼을 차고 문밖으로 따라 나와 즉시 칼을 뽑아 손익을 베어 죽였다.

媯覽戴員乃歸罪邊洪斬之於市
규람과 대원이 이에 죄를 변홍에게 뒤집어씌워서 저잣거리에서 처형하였다.

二人乘勢擄翊家貲侍妾
두 사람이 이 틈에 손익의 재산과 侍妾을 빼앗았다.

媯覽見徐氏美貌乃謂之曰
吾為汝夫報讎汝當從我
不從則死。」
규람이 서씨의 미모를 보고 그녀에게 일러 말하였다.
“내가 네 남편을 위하여 원수를 갚았으니 너는 마땅히 나를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

徐氏曰
夫死未幾不忍便相從
可待至晦日設祭除服然後成親未遲。」
서씨가 말하였다.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차마 바로 따를 수는 없소.
그믐날을 기다려 제사를 올리고 상복을 벗은 뒤에 결혼해도 늦지 않겠소.”

覽從之
규람이 그 말을 따랐다.

徐氏乃密召孫翊心腹舊將孫高傅嬰二人入府泣告曰
先夫在日常言二公忠義
今媯戴二賊謀殺我夫只歸罪邊洪將我家貲童婢盡皆分去
媯覽又欲強占妾身妾已詐許之以安其心
二將軍可差人星夜報知吳侯一面設密計以圖二賊雪此讎辱生死銜!」
서씨가 이에 몰래 손익의 心腹舊將 孫高와 傅嬰 두 사람을 부중으로 들게 하여 눈물을 흘리며 고하였다.
“남편이 살아 계실 적에 늘 두 분을 충의가 있다고 하셨소.
이제 규람과 대원 두 도적놈이 謀殺我夫하고도 변홍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우리 집 재산과 종들을 모조리 나눠 가졌소.
게다가 규람이 제 몸을 강제로 차지하려 해서 제가 이미 거짓으로 허락하여 그의 마음을 안심시켰소.
두 장군께서 밤에 사람을 보내 吳侯께 알리는 한편, 몰래 계책을 내어 두 도적놈을 도모하여 雪此讎辱하시면 生死銜恩하겠소!”

言畢再拜
말을 마치고 재배하였다.

孫高傅嬰皆泣曰
我等平日感府君恩遇今日所以不即死難者正欲為復讎計耳
夫人所命敢不效力?」
손고와 부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저희가 평소 부군의 은혜로운 대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재난에 즉시 죽지 않은 것은, 원수를 갚고자 했을 뿐이었습니다.
부인께서 명령하신 일을, 어찌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於是密遣心腹使者往報孫權
이에 몰래 심복을 사자로 보내 손권에게 알렸다.

至晦日徐氏先召孫傅二人伏於密室幃幕之中然後設祭於堂上
그믐날이 되어, 서씨가 먼저 손고와 부영 두 사람을 불러 밀실의 휘장 속에 숨기고, 대청에서 제사를 올렸다.

祭畢即除去孝服沐浴薰香濃裝豔裹言笑自若
제사를 마치고 즉시 상복을 벗고 목욕하고 향을 뿌려 진하게 화장해 꾸미는데 말하고 웃음이 泰然自若하였다.

媯覽聞之甚喜
규람이 그 소식을 듣더니 아주 기뻐하였다.

至夜徐氏遣婢妾請覽入府設席堂中飲酒
밤이 되자 서씨가 비첩을 보내 규람을 부중으로 불렀고 대청에 자리를 차려 술을 마셨다.

飲既醉徐氏乃邀覽入密室
覽喜乘醉而入
술을 마시고 취하자 서씨가 규람을 밀실로 맞아들였다.
규람이 기뻐하며 취한 채 들어갔다.

徐氏大呼曰
傅二將軍何在?」
서씨가 크게 외쳤다.
“손고, 부영 두 장군은 어디 계시오?”

二人即從幃幕中持刀躍出
두 사람이 즉시 휘장 뒤에서 칼을 들고 뛰어나왔다.

媯覽措手不及被傅嬰一刀砍倒在地孫高再復一刀登時殺死
규람이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부영의 한 칼에 베어져 쓰러졌고, 손고가 한 칼을 더 찔러 그 즉시 죽였다.

徐氏復傳請戴員赴宴
서씨가 다시 대원을 연회에 참석하도록 전하여 청하였다.

員入府來至堂中亦被孫傅二將所殺
대원이 부중에 들어와 대청에 이르러 역시 손, 부 두 장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一面使人誅戮二賊家小及其餘黨
한편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두 도적의 식구와 잔당을 죽였다.

徐氏遂重穿孝服將媯覽戴員首級祭於孫翊靈前
서씨가 다시 상복을 입고 규람과 대원의 수급을 잘라다 손익의 영전에 바치고 제사 지냈다.

不一日孫權自領軍馬至丹陽見徐氏已殺媯戴二賊乃封孫高傅嬰為牙門將令守丹陽取徐氏歸家養老
하루가 안 되어서 손권이 몸소 군마를 거느리고 단양에 이르렀는데, 서씨가 이미 규람과 대원 두 도적을 죽였음을 알고, 손고와 부영을 아문장으로 삼아 단양을 지키게 하고 서씨를 귀가시켜 여생을 보내게 하였다.

江東人無不稱徐氏之德
강동 사람치고 서씨의 덕을 칭송치 않는 이가 없었다.

後人有詩讚曰
후인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才節雙全世所無奸回一旦受摧鋤
庸臣從賊忠臣死不及東吳女丈夫>
<재주와 절개 모두 갖추기는 세상에 없는데, 간악한 무리가 하루아침에 제거되었구나.
용렬한 신하는 도적을 따르고 충신은 죽을 뿐이니, 동오의 여장부를 따를 수가 없구나.>


且說
東吳各處山賊盡皆平復
한편,
동오 곳곳의 산적은 모두 평정하여 회복되었다.

大江之中有戰船七千餘隻, 孫權拜周瑜為大都督總統江東水陸軍馬
장강에 전선 7천여 척을 보유하고, 손권이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강동의 육군과 수군을 모두 거느리게 하였다.

建安十二年冬十月權母吳太夫人病危召周瑜張昭二人至謂曰
吾本吳人幼亡父母與弟吳璟徙居越中
後嫁與孫氏生四子
長子策生時吾夢月入懷後生次子權又夢日入懷卜者云
夢日月入懷者其子大貴。』 不幸策早喪
今將江東基業付權
望公等同心助之吾死不朽矣!」
건안 12년 겨울 10월에 손권의 어머니 오태부인의 병이 위독하여 주유와 장소 두 사람을 불러서 오자 일러 말하였다.
“나 본래 오나라 사람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어 동생 오경과 더불어 월 지방에 옮겨와 살게 됐소.
뒤에 손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네 아들을 낳았소.
맏아들 손책을 낳을 때, 내 꿈에 달이 내 품에 안겼소. 뒤에 차남 손권을 낳을 때는 또 꿈에 해가 들어와 안겼소. 점쟁이가 이르길, ‘꿈에 해와 달이 들어와 안김은 그 아들이 귀해질 조짐입니다.’라고 했는데, 불행히 손책이 일찍 죽었소.
지금 강동의 기업은 손권에게 맡기게 되었소.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그를 도와주기를 바라나니, 내가 죽더라도 오나라는 영원할 터이오!”

又囑權曰
汝事子布公瑾以師傅之禮不可怠慢
吾妹與我共嫁汝父則亦汝之母也
吾死之後 事吾妹如事我
汝妹亦當恩養擇佳婿以嫁之。」
또 손권에게 부탁하였다.
“너는 자포와 공근을 師傅之禮로써 섬기되, 태만해선 안 된다.
내 여동생(吳景)은 나와 함께 네 아버지께 시집왔으니 역시 네 어머니이다.
내가 죽은 뒤 내 여동생 섬기기를 나를 섬기듯 해라.
네 누이도 마땅히 사랑하고 보호하여 좋은 사위를 골라 시집보내어라.”

言訖遂終
말을 마치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孫權哀哭具喪葬之禮自不必說
손권이 슬프게 곡하고 상례와 장례를 갖추어 치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至來年春孫權商議欲伐黃祖
이듬해 봄이 되자 손권이 황조를 치고자 상의하였다.

張昭曰
居喪未及期年不可動兵。」
장소가 말하였다.
“상을 입은 지 아직 1년이 안 되었으므로 군사를 움직임은 불가합니다.”

周瑜曰
報讎雪恨何待期年?」
주유가 말하였다.
“원수를 갚고 원한을 씻는데 어찌 1년을 기다리겠습니까?”

權猶豫未決
손권이 유예하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適右北平都尉呂蒙入見告權曰
某把龍湫水口忽有黃祖部將甘寧來降
某細詢之
寧字興霸巴郡臨江人也
頗通書史有氣力好游俠
嘗招合亡命縱橫於江湖之中
腰懸銅鈴人聽鈴聲盡皆避之
又嘗以西川錦作帆幔時人皆稱為錦帆賊』 。
後悔前非改行從善引眾投劉表
見表不能成事即欲來投東吳卻被黃祖留住在夏口
前東吳破祖時祖得甘寧之力救回夏口乃待寧甚薄
都督蘇飛屢薦寧於祖
祖曰
寧乃劫江之賊豈可重用?』
寧因此懷恨
蘇飛知其意乃置酒饌邀寧到家謂之曰
吾薦公數次奈主公不能用
日月逾邁人生幾何宜自遠圖
吾當保公為鄂縣長自作去就之計。』
寧因此得過夏口欲投江東恐江東恨其救黃祖殺凌操之事
某具言主公求賢若渴, 不記舊恨況各為其主又何恨焉
寧欣然引眾渡江來見主公
乞鈞旨定奪。」
마침 우평북도위 여몽이 들어와 뵙고 손권에게 고하였다.
“제가 용추 입구를 지키는데 문득 황조의 부하장수 감녕이 귀순했습니다.
제가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감녕의 자는 興霸이고 파군의 임강 사람입니다.
제법 경서와 역사에 통하고 기력이 있고 游俠을 좋아합니다.
그가 도망자들을 모아 江湖之中을 종횡한 적이 있습니다.
허리에 구리방울을 달아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모두 피해 달아났습니다.
또한 서천의 비단으로 돛을 만들어 당시 사람들이 ‘비단 돛을 단 도적’이라 일컬었습니다.
그 뒤에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을 고쳐 착하게 살려고 무리를 이끌고 유표에게 투항했습니다.
유표는 큰일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즉시 동오로 투항하려 했으나 황조에게 붙들려서 하구에 머물게 되었답니다.
예전에 동오가 황조를 격파하자 황조가 감녕의 힘으로 하구를 회복했는데도 그를 몹시 박하게 대접했습니다.
도독 소비가 여러 번 감녕을 황조에게 추천했습니다.
황조가 말하기를, ‘감녕은 강을 노략질하던 도적인데 중용해서 되겠소?’라 했습니다.
감녕이 이에 원한을 품었습니다.
소비가 그 뜻을 알고 술과 안주를 마련해 감녕을 집으로 불러 이르기를, ‘내가 그대를 여러 번 천거했으나 어쩐 일인지 주공이 쓰지 않는구려. 세월이 지나가니 인생이 얼마나 되겠소. 마땅히 스스로 멀리 도모하시오. 내가 그대를 보증하여 악현의 장으로 삼을 테니 스스로 거취의 계획을 세우시오.’라고 했습니다.
감녕이 이에 하구를 벗어나게 돼서 강동으로 넘어오려 했으나, 지난날 황조를 구하려고 능조를 죽였음을 강동에서 원망할까 두려워합니다.
제가 그에게, 주공께서 어진 사람을 목마른 듯이 구하시고 옛 원한은 기억하지 않으며, 하물며 각각 그 주인을 위하여 한 일인데 어찌 원망하겠느냐고 갖추어 말했습니다.
감녕이 흔쾌히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와서 주공을 뵈러 왔습니다.
아무쪼록 주공의 취사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孫權大喜曰
吾得興霸破黃祖必矣。」
손권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였다.
“내가 흥패를 얻었으니 황조를 격파함은 틀림이 없을 터이다.”

遂命呂蒙引甘寧入見
곧 여몽에게 명해 감녕을 데려와 보게 하였다.

參拜已畢權曰
興霸來此大獲我心豈有記恨之理
請無懷疑
願教我以破黃祖之策。」
인사를 마치자 손권이 말하였다.
“흥패가 여기에 와서 내 마음을 빼앗았거늘 어찌 원한을 기억할 리 있겠소?
청컨대 의심하지 마시오.
내게 황조를 격파할 계책이나 가르쳐주기를 바라오.”

寧曰
今漢祚日危曹操終必篡竊
南荊之地操所必爭也
劉表無遠慮其子又愚劣不能承業傳基明公宜早圖之若遲則操先圖之矣
今宜先取黃祖
祖今年老昏邁務於貨利侵求吏民人心皆怨戰具不修軍無法律
明公若往攻之其勢必破
既破祖軍鼓行而西據楚關而圖巴霸業可定也。」
감녕이 말하였다.
“지금 한나라의 운명이 나날이 위태로워지니 결국 조조가 찬탈할 것이 분명합니다.
남쪽의 형주 지역도 조조가 틀림없이 다툴 터입니다.
유표는 원대한 생각이 없고 그 아들들도 어리석고 못나서 그 기업을 계승하지 못할 터이니, 명공께서 어서 그곳을 도모해야 합니다. 만약 늦으면 조조가 먼저 도모할 터입니다.
이제 마땅히 먼저 황조를 취하십시오.
황조는 이제 나이가 많고 혼미해서 재물과 이익에만 힘써서 관리와 백성을 착취하니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모두 원망합니다. 전쟁도구는 수리하지 않고 군대는 법도 군율도 없습니다.
명공께서 가서 공격하시면 그 세력을 틀림없이 깨트릴 터입니다.
황조의 군사를 격파한 뒤 북을 울려 서쪽으로 가서 楚關을 장악하고 파촉을 도모하시면 가히 패업을 이루시겠습니다.”

孫權曰
此金玉之論也!」
손권이 말하였다.
“이것은 金玉之論이오!”

遂命周瑜為大都督總水陸軍兵呂蒙為前部先鋒董襲與甘寧為副將權自領大軍十萬征討黃祖
마침내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수륙의 군사를 모두 거느리게 하고, 여몽을 선봉으로 삼았다. 동습과 감녕을 부장으로 삼았다. 손권이 스스로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황조를 토벌하러 갔다.

細作探知報至江夏, 黃祖急聚衆商議, 令蘇飛為大將陳就鄧龍為先鋒盡起江夏之兵迎敵
세작이 탐지하여 강하에 보고하였다. 황조가 급히 무리를 모아 상의하고, 소비를 대장으로, 진취와 등룡을 선봉으로 삼아 강하의 군사를 총동원해 대적하였다.

陳就鄧龍各引一隊艨艟截往沔口艨艟上各設強弓硬弩千餘張將大索繫定艨艟於水面上
진취와 등룡은 각각 한 무리의 전선을 이끌고 沔口에 막아서서, 전선마다 강한 활과 쇠뇌를 1천여 장씩 배치하고, 굵은 밧줄로 전선들을 물 위에 묶었다.

東吳兵至艨艟上鼓響弓弩齊發兵不敢進約退數里水面
동오의 군대가 이르자 전선에서 북소리가 울리더니 활과 쇠뇌가 일제히 발사되어 병사들이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물 위에서 몇 리를 물러났다.

甘寧謂董襲曰
事已至此不得不進。」
감녕이 동습에게 말하였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됐으니 전진하지 않을 수 없소.”

乃選小船百餘隻每船用精兵五十人二十人撐船三十人各披衣甲手執鋼刀
이에 작은 배 1백여 척을 골라 배마다 정병 50인을 태우고, 20인은 노를 젓고 30인은 갑옷을 입고 강철 칼을 들게 하였다.

不避矢石直至艨艟旁邊砍斷大索艨艟遂橫
화살과 돌을 무릅쓰며 곧장 전선에 접근해 큰 밧줄을 끊으니, 마침내 전선들이 뒤엉키게 되었다.

甘寧飛上艨艟將鄧龍砍死
감녕이 전선 위로 날 듯이 올라가 등룡을 베어 죽였다.

陳就棄船而走
진취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呂蒙見了跳下小船自舉櫓棹直入船隊放火燒船
여몽이 보더니 작은 배로 뛰어내려서 스스로 노를 저어 적의 선단으로 돌입해서 적선에 불을 질러 태웠다.

陳就急待上岸呂蒙捨命趕到跟前當胸一刀砍翻
진취가 급히 강둑에 오르려는데, 여몽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로 앞에 쫓아가서 한칼에 가슴을 찔러 거꾸러뜨렸다.

比及蘇飛引軍於岸上接應時東吳諸將一齊上岸勢不可當
소비가 군사를 이끌고 강둑에서 접응할 때에, 동오의 장수들이 일제히 상륙하여 형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祖軍大敗
황조의 군사가 대패하였다.

蘇飛落荒而走正遇東吳大將潘璋
兩馬相交戰不數合被璋生擒過去逕至船中來見孫權
소비가 큰길을 버리고 들로 도망치다가 바로 동오의 대장 반장을 맞닥뜨렸다.
둘이 맞붙어 몇 합 싸우지 않아서 반장이 사로잡아서 배 위로 끌고 가 손권에게 보였다.

權命左右以檻車囚之待活捉黃祖一並誅戮
손권이 좌우에 명하여 함거에 가두게 하고 황조를 사로잡기를 기다려 함께 처형하게 하였다.

催動三軍不分晝夜攻打夏口
3군을 재촉하여 밤낮없이 하구를 공격하였다.


正是
只因不用錦帆賊至令衝開大索船
이야말로,
<단지 錦帆賊을 기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밧줄로 묶인 선단을 공격하게 했구나.>

不知黃祖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황조의 승부가 어떻게 될까? 다음 글이 설명함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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