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三國演義(삼국연의)39회-公子三求計와 軍師初用兵 본문
第三十九回
荊州城公子三求計 博望坡軍師初用兵 .
제39회
荊州城에서 公子가 세 번 求計하고, 博望坡에서 軍師가 처음으로 用兵하다.
卻說
孫權督眾攻打夏口,黃祖兵敗將亡,情知守把不住,遂棄江夏,望荊州而走。
각설,
손권이 군사를 독려하여 하구를 공격하니, 황조는 兵敗將亡하여 지켜내지 못할 줄 깨닫고 마침내 강하를 버리고 형주를 향하여 달아났다.
甘寧料得黃祖必走荊州,乃於東門外伏兵等候。
감녕은 황조가 틀림없이 형주로 달아나리라 헤아리고 동문 밖에 복병하여 기다렸다.
祖帶數十騎突出東門。
황조가 수십 기를 거느리고 동문을 뛰쳐나왔다.
正走之間,一聲喊起,甘寧攔住。
막 달아나려는데 一聲喊起하더니 감녕이 막아섰다.
祖於馬上謂寧曰:
「我向日不曾輕待汝,今何相逼耶?」
황조가 말 위에서 감녕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난날 너를 輕待한 적이 없는데 이제 어찌하여 핍박하느냐?”
寧叱曰:
「吾昔在江夏,多立功績,汝乃以劫江賊待我,今日尚有何說?」
감녕이 꾸짖었다.
“내가 지난날 강하에서 多立功績이어도 너는 나를 劫江賊으로 대하더니 이제 도리어 무슨 말이냐?”
黃祖自知難免,撥馬而走。
황조가 면하기 어려움을 알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甘寧衝開士卒,直趕將來,只聽得後面喊聲起處,又有數騎趕來。
감녕이 사졸을 뚫고 곧장 따라붙는데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고 또 몇 기가 뒤쫓아왔다.
寧視之,乃程普也。
감녕이 보니 바로 정보였다.
寧恐普來爭功,慌忙拈弓搭箭,背射黃祖;
감녕은 정보가 爭功할까 걱정하고 황망히 拈弓搭箭하여 황조의 등을 쏘니, 황조가 화살에 맞아 몸이 뒤집어 낙마하였다.
祖中箭翻身落馬;寧梟其首級,回馬與程普合兵一處,回見孫權,獻黃祖首級。
감녕이 그 머리를 자르고 말머리를 돌려 정보와 合兵一處하고 돌아가 손권을 만나서 황조의 首級을 바쳤다.
權命以木匣盛貯,待回江東祭獻於亡父靈前,重賞三軍,升甘寧為都尉。
손권이 명령하여 나무상자에 담아 강동으로 돌아가서 제사를 지내며, 獻於亡父靈前하기로 하였다. 3군을 크게 포상하고 감녕을 도위로 승진시켰다.
商議欲分兵守江夏。
상의하여 병력을 나눠 강하를 지키려 하였다.
張昭曰:
「孤城不可守,不如且回江東。
劉表知我破黃祖,必來報讎;
我以逸待勞,必敗劉表;
表敗而後乘勢攻之,荊、襄可得也。」
장소가 말하였다.
“고립된 성은 지킬 수 없으니 우선 강동으로 돌아감만 못합니다.
우리가 황조를 격파하였음을 유표가 알면 틀림없이 복수하러 올 터입니다.
우리가 以逸待勞하면 유표를 틀림없이 패퇴시킬 터입니다.
유표가 패전한 뒤에 기세를 타서 공격하면 형주와 양양 지방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權從其言,遂棄江夏,班師回江東。
손권이 그 말에 따라 곧 강하를 버리고 군사를 거둬 강동으로 돌아갔다.
蘇飛在檻車內,密使人告甘寧求救。
소비가 檻車內에 있다가 몰래 사람을 보내 감녕에게 求救를 고하였다.
寧曰:
「飛即不言,吾豈忘之?」
감녕이 말하였다.
“소비가 말하지 않더라도 내 어찌 그를 잊겠소?”
大軍既至吳會,權命將蘇飛梟首,與黃祖首級一同祭獻。
대군이 오회(오군과 회계군)에 이르자 손권이 명하여 소비의 머리를 잘라서 황조의 머리와 함께 제사에 바치려 하였다.
甘寧乃入見權,頓首哭告曰:
「某向日若不得蘇飛,則骨填溝壑矣.
安能效命於將軍麾下哉?
今飛 罪當誅,某念其昔日之恩, 情願納還官爵,以贖飛罪。」
이에 감녕이 들어가 손권을 만나 머리를 조아려 곡하며 고하였다.
“제가 지난날 소비를 얻지 못하였으면, 뼈가 골짜기에 버려졌을 터이니, 어찌 장군 휘하에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소비의 죄가 죽어 마땅하나 제가 지난날의 은혜를 생각하여 진정으로 원하오니 納還官爵하여 소비가 속죄하게 해 주십시오.”
權曰:
「彼既有恩於君,吾為君赦之;
但彼若逃去,奈何?」
손권이 말하였다.
“그가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니 내가 그대를 위해 사면해 주겠소.
다만 그가 만약 달아나면 어떻게 하겠소?”
寧曰:
「飛得免誅戮,感恩無地,豈肯走乎?
若飛去,寧願將首級獻於階下。」
감녕이 말하였다.
“소비가 처형을 면하게 되면 은혜에 감복하기 그지없을 터인데 어찌 달아나겠습니까?
만약 소비가 달아나면 저의 머리를 섬돌 아래에서 바치고자 합니다.”
權乃赦蘇飛,止將黃祖首級祭獻。
손권이 이에 소비를 사면하고, 다만 황조의 머리만을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
祭畢設宴,大會文武慶功。
제사를 마치고 주연을 베풀어 문무관리들을 크게 모아 慶功하였다.
正飲酒間,忽見座上一人大哭而起,拔劍在手,直取甘寧。
한창 술을 마시는데 홀연히 좌상에서 한 사람이 크게 곡하며 일어나서 칼을 뽑아 들고 곧장 감녕에게 덤벼들었다.
寧忙舉坐椅以迎之。
감녕이 황망히 의자를 들어 막았다.
權驚視其人,乃凌統也。
손권이 놀라 바라보니 바로 능통이었다.
因甘寧在江夏時,射死他父親凌操,今日相見,故欲報讎。
감녕이 강하에 있을 적에 그 아버지 능조를 사살했는데, 이제 서로 만나니 원수를 갚으려 함이었다.
權連忙勸住,謂統曰:
「興霸射死卿父,彼時各為其主,不容不盡力。
今既為一家人,豈可復理舊讎?
萬事皆看吾面。 」
손권이 재빨리 말리며 능통에게 말하였다.
“흥패가 경의 부친을 사살하였으나 당시 각자의 주군을 위해서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소.
이제 一家人인데 어찌 復理舊讎이겠소?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내 면목을 봐주시오.”
凌統叩頭大哭曰:
「不共戴天之讎,豈容不報?」
능통이 머리를 조아려 크게 곡하며 말하였다.
“不共戴天之讎에게 어찌 보복하지 않음을 용납하겠습니까?”
權與眾官再三勸之,凌統只是怒目而視甘寧。
손권과 관리들이 거듭 권하나 능통은 감녕을 노려볼 뿐이었다.
權即日命甘寧領兵五千,戰船一百隻,往夏口鎮守,以避凌統。
손권이 그날 감녕에게 명하여 군사 5천과 전선 1백 척을 거느리고 夏口로 가서 鎮守하여 능통을 피하게 하였다.
寧拜謝,領兵自往夏口去了。
감녕이 사례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하구로 갔다.
權又加封凌統為丞烈都尉,統只得含恨而止。
손권이 능통에게 丞烈都尉 벼슬을 더하니, 능통이 어쩌지 못해 한을 품은 채 그쳤다.
東吳自此廣造戰船,分兵守把江岸;
又命孫靜引一枝軍守吳會;
孫權自領大軍,屯柴桑;
周瑜日於鄱陽湖教練水軍,以備攻戰。
동오가 이로부터 널리 전선을 건조하고 병력을 나누어 강변을 지켰다.
또한 손정에게 명하여 一枝軍를 이끌고 오군과 회계군을 지키게 하였다.
손권이 스스로 대군을 거느리고 柴桑에 주둔하였다.
주유는 매일 파양호에서 教練水軍하여 공격전에 대비하였다.
話分兩頭。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卻說
玄德差人打探江東消息,回報東吳已攻殺黃祖,現今屯兵柴桑。
한편,
현덕이 사람을 보내 강동의 소식을 打探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동오가 공격해 황조를 죽이고 지금 시상에 주둔해 있다고 하였다.
玄德便請孔明計議。
현덕이 곧 공명을 불러 의논하였다.
正話間,忽劉表差人來請玄德赴荊州議事。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유표가 사람을 보내 현덕을 형주로 청하여 일을 의논하자고 하였다.
孔明曰:
「此必因江東破了黃祖,故請主公商議報讎之策也。
某當與主公同往,相機而行,自有良策。」
공명이 말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강동이 황조를 격파했기 때문에 주공을 청해 복수할 계책을 상의하고자 함입니다.
제가 주공과 동행하여 기회를 보아 조치하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玄德從之,留雲長守新野,令張飛引五百人馬跟隨往荊州來。
현덕이 그 말에 따라 운장을 남겨서 신야를 지키게 하고 장비에게 명하여 5백 인마를 이끌고 跟隨하게 하고 형주로 떠났다.
玄德在馬上謂孔明曰:
「今見景升,當若何對答?」
현덕이 말 위에서 공명에게 말하였다.
“이제 경승을 만나면 어떻게 대답해야겠습니까?”
孔明曰:
「當先謝襄陽之事。
他若令主公去征討江東,切不可應允。
但說容歸新野,整頓軍馬。」
공명이 말하였다.
“먼저 양양에서 일어난 일을 사과하십시오.
그가 만약 주공께 가서 강동을 치라고 해도 절대 응낙해선 안 됩니다.
다만 신야로 돌아가 군마를 정돈케 해 달라고만 말씀하십시오.”
玄德依言,來到荊州,館驛安下。
현덕이 그 말을 따라 형주에 이르러서 館驛에서 쉬었다.
留張飛屯兵城外;玄德與孔明入城見劉表。
장비를 성밖에 머물러 주둔케 하였다. 현덕이 공명과 더불어 성에 들어가서 유표를 만났다.
禮畢,玄德請罪於階下。
예를 마치고 현덕이 섬돌 아래에서 죄를 청하였다.
表曰:
「吾已悉知賢弟被害之事。
當時即欲斬蔡瑁之首,以獻賢弟。
因眾人告免,故姑恕之。
賢弟幸勿見罪。」
유표가 말하였다.
“내가 이미 아우님이 해를 입은 일을 모두 알고 있네.
당시 채모의 목을 바로 베어 아우님께 드리려 했네.
사람들이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해서 잠시 용서해 주었네.
현제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지 말기를 바라네.”
玄德曰:
「非干蔡將軍之事,想皆下人所為耳。」
현덕이 말하였다.
“채장군이 간여한 일이 아니라 모두 下人所為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表曰:
「今江夏失守黃祖遇害,故請賢弟共議報復之策。」
유표가 말하였다.
“이제 강하를 지키지 못하고 황조가 해를 입었기에 아우님을 청해 報復之策을 함께 의논하고자 하오.”
玄德曰:
「黃祖性暴,不能用人,故致此禍。
今若興兵南征,倘曹操北來,又將奈何?」
현덕이 말하였다.
“황조는 난폭하고 사람을 쓸 줄 몰라 이런 災禍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興兵南征하는데 만약 조조가 북쪽에서 쳐들어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表曰:
「吾今年老多病,不能理事,賢弟可來助我。
我死之後,弟便為荊州之主也。」
유표가 말하였다.
“내가 이제 연로하고 병이 많아 일을 능히 처리하지 못하니 아우님이 와서 나를 도와주게.
내가 죽은 뒤에 형주의 주인이 되어 주게.”
玄德曰:
「兄何出此言?
量備安敢當此重任?」
현덕이 말하였다.
“형님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꺼내십니까?
제가 감히 어찌 이런 중임을 감당하겠습니까?”
孔明以目視玄德。
공명이 현덕에게 눈짓을 하였다.
玄德曰:
「容徐思良策。」
현덕이 말하였다.
“천천히 좋은 계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遂辭出,回至館驛。
작별하고 나와서 館驛으로 돌아갔다.
孔明曰:
「景升欲以荊州付主公,奈何卻之?」
공명이 말하였다.
“경승께서 형주를 주공께 넘기려는데 어찌하여 거절하십니까?”
玄德曰:
「景升待我,恩禮交至,安忍乘其危而奪之?」
현덕이 말하였다.
“경승이 나를 대우함에 은혜와 예의가 함께 지극하거늘, 어찌 차마 그의 위기를 틈타서 빼앗겠습니까?”
孔明歎曰:
「真仁慈之主也!」
공명이 탄식하였다.
“참으로 仁慈之主이십니다!”
正商論間,忽報公子劉琦來見。
상의하고 있는데 문득 공자 유기가 찾아왔다고 알렸다.
玄德接入。
현덕이 맞아들였다.
琦泣拜曰:
「繼母不能相容,性命只在旦夕,望叔父憐而救之。」
유기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계모가 용납하지 않아서 목숨이 旦夕에 달려 있으니, 숙부께서 가련히 여겨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玄德曰:
「此賢姪家事耳,奈何問我?」
현덕이 말하였다.
“이것은 조카의 집안일인데 어찌 내게 묻는가?”
孔明微笑,玄德求計於孔明。
공명이 미소를 지으니 현덕이 공명에게 계책을 구하였다.
孔明曰:
「此家事,亮不敢與聞。」
공명이 말하였다.
“이것은 집안일이라 제가 감히 아뢸 수 없습니다.”
少時,玄德送琦出,附耳低言曰:
「來日我使孔明回拜賢姪,可如此如此,彼定有妙計相告。」
잠시 뒤 현덕이 유기를 데리고 나가 附耳低言하였다.
“내일 내가 공명을 현질에게 回拜하게 할 터이니 여차여차하면 그가 틀림없이 妙計를 알려줄 터이네.”
琦謝而去。
유기가 사례하고 떠났다.
次日,玄德只推腹痛,乃浼孔明代往回拜劉琦。
이튿날 현덕이 只推腹痛하고 공명에게 유기를 代往回拜하게 부탁하였다.
孔明允諾,來至公子宅前下馬,入見公子。
공명이 응낙하고 공자 유기의 집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들어가 공자를 만났다.
公子邀入後堂。
공자가 맞아 후당으로 들였다.
茶罷,琦曰:
「琦不見容於繼母,幸先生一言相救。」
茶罷하고 유기가 말하였다.
“제가 계모에게 용납되지 않으니, 先生께서 한 말씀 하셔서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孔明曰:
「亮客寄於此,豈敢與人骨肉之事?
倘有洩漏,為害不淺。」
공명이 말하였다.
“제가 여기 손님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어찌 남의 骨肉之事에 간여하겠습니까?
만약 누설되면 해를 입음이 얕지 않겠습니다.”
說罷,起身告辭。
說罷하고 起身告辭하였다.
琦曰:
「既承光顧,安敢慢別?」
유기가 말하였다.
“이왕 왕림하셨는데 어찌 감히 소홀히 대접해 떠나게 하겠습니까?”
乃挽留孔明入密室共飲。
공명을 挽留하여 밀실로 들게 하여 함께 술을 마셨다.
飲酒之間,琦又曰:
「繼母不見容,乞先生一言救我。」
술을 마시다가 유기가 다시 말하였다.
“계모에게 용납되지 않으니 아무쪼록 先生一言으로 저를 구해 주십시오.”
孔明曰:
「此非亮所敢謀也。」
공명이 말하였다.
“이것은 제가 감히 꾀할 일이 아닙니다.”
言訖,又欲辭去。
말을 마치고 다시 떠나려 하였다.
琦曰:
「先生不言則已,何便欲去?」
유기가 말하였다.
“선생께서 말을 안 하시면 그만이지 어찌 곧바로 가려 하십니까?”
孔明乃復坐。
공명이 이에 다시 앉았다.
琦曰:
「琦有一古書,請先生一觀。」
유기가 말하였다.
“제게 古書가 한 권 있는데 청컨대 선생께서 한번 살펴보시지요.”
乃引孔明登一小樓。
공명을 이끌어 작은 누각에 올라갔다.
孔明曰:
「書在何處?」
공명이 말하였다.
“책은 어디 있습니까?”
琦泣拜曰:
「繼母不見容,琦命在旦夕,先生忍無一言相救乎?」
유기가 눈물 흘리며 절하고 말하였다.
“계모가 미워해서 제 목숨이 旦夕에 달렸는데, 선생께서 구원할 一言을 차마 하지 못하십니까?”
孔明作色而起,便欲下樓,只見樓梯已撤去。
공명이 안색이 변하여 일어나서 바로 누각을 내려가려 하는데, 사다리가 이미 치워져 있었다.
琦告曰:
「琦欲求教良策,先生恐有洩漏,不肯出言;
今日上不至天,下不至地,出君之口,入琦之耳,可以賜教矣。」
유기가 고하였다.
“제가 求教良策하려하나 선생께서 누설을 걱정하셔서 말씀을 꺼내시지 않습니다.
오늘 上不至天이고 下不至地이라 出君之口이면 入琦之耳이니 賜教하실 수 있겠습니다.”
孔明曰:
「『疏不間親』,亮何能為公子謀?」
공명이 말하였다.
“ 『疏不間親』인데 제가 어찌 공자를 위해 꾀를 낼 수 있겠습니까?”
琦曰:
「先生終不幸教琦乎?
琦命固不保矣。請即死於先生之前。」
유기가 말하였다.
“선생께서 끝내 제게 가르침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 목숨을 참으로 지키지 못할 것이오니 청컨대 先生之前에서 即死하겠습니다.”
乃掣劍欲自刎。
이에 칼을 뽑아 자신의 自刎하려 하였다.
孔明止之曰:
「已有良計。」
공명이 말리며 말하였다.
“진작에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琦拜曰:
「願即賜教。」
유기가 절을 하고 말하였다.
“어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孔明曰:
「公子豈不聞申生、重耳之事乎?
申生在內而亡,重耳在外而安。
今黃祖新亡,江夏乏人守禦,公子何不上言,乞屯兵守江夏?
則可以避禍矣。」
공명이 말하였다.
“공자께서 어찌 (晉獻公의 두 아들인) 신생과 중이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신생은 안에 있다가 죽고 중이는 밖에 있어서 안전했습니다.
이제 황조가 갓 패망해 강하를 지킬 사람이 없는데, 공자께서는 어찌 屯兵守江夏를 요청하는 말씀을 올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재앙을 피할 수 있겠습니다.”
琦再拜謝教,乃命人取梯送孔明下樓。
유기가 再拜謝教하고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공명을 내려보냈다.
孔明辭別,回見玄德,具言其事。玄德大喜。
공명이 작별하여 돌아가서 현덕을 만나 그 일을 상세히 고하자 현덕이 크게 기뻐하였다.
次日,劉琦上言,欲守江夏;劉表猶豫未決,請玄德共議。
다음날 유기가 강하를 지키겠다는 말을 올리니, 유표가 머뭇거려 결정하지 못하고 현덕을 불러 함께 의논하였다.
玄德曰:
「江夏重地,固非他人可守,正須公子自往。
東南之事,兄父子當之;
西北之事,備願當之。」
현덕이 말하였다.
“강하는 重地이라 본래 다른 사람이 수비할 곳이 아니니, 실로 공자께서 몸소 가셔야만 합니다.
동남쪽의 일은 형님 부자께서 맡으십시오.
서북쪽의 일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表曰:
「近聞曹操於鄴郡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南征之意,不可不防。」
유표가 말하였다.
“요새 듣자니 조조가 鄴郡에 玄武池를 만들어 수군을 훈련한다니, 필시 南征之意가 있음이라, 방비하지 않을 수 없소.”
玄德曰:
「備已知之,兄勿憂慮。」
현덕이 말하였다.
“제가 이미 알고 있으니 형님께서 우려하지 마십시오.”
遂拜辭回新野。
拜辭하고 신야로 돌아갔다.
劉表令劉琦引兵三千往江夏鎮守。
유표가 유기에게 명해 군사 3천을 이끌고 가서 강하에 주둔하여 지키게 하였다.
卻說
曹操罷三公之職,自以丞相兼之。
한편,
조조가 3공의 관직을 없애고 스스로 승상이 되어 3공을 겸직하였다.
以毛玠為東曹掾;崔琰為西曹掾;司馬懿 為文學掾。
모개를 동조연(曹掾은 보좌관)으로 삼고, 최염을 서조연으로 삼고, 사마의를 문학연으로 삼았다.
懿字仲達,河內溫人也;潁川太守司馬雋之孫,京兆尹司馬防之子,主簿司馬朗之弟也。
사마의는 자가 仲達인데 河內 溫人이다. 潁川太守 司馬雋之孫이자 京兆尹司馬防之子이고, 主簿司馬朗之弟이다.
自是文官大備,乃聚武將商議南征。
이로부터 문관들이 크게 갖춰지자 무장들을 모아 남쪽 정벌을 상의하였다.
夏侯惇進曰:
「近聞劉備在新野,每日教演士卒,必為後患,可早圖之。」
하후돈이 진언하였다.
“요새 듣자니 유비가 신야에서 매일 教演士卒이라 합니다. 틀림없이 후환이 될 테니 어서 도모해야 합니다.”
操即命夏侯惇為都督;于禁、李典、夏侯蘭、韓浩為副將;領兵十萬,直抵博望城,以窺新野。
조조가 즉시 명해 하후돈을 도독으로 삼고, 우금,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곧장 박망성에 이르러 신야를 엿보게 하였다.
荀彧諫曰:
「劉備英雄,今更兼諸葛亮為軍師,不可輕敵。」
순욱이 간언하였다.
“유비는 영웅인데다 더욱이 이제 제갈량을 군사로 삼았으니 가볍게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惇曰:
「劉備鼠輩耳,吾必擒之。」
하후돈이 말하였다.
“유비는 쥐새끼 부류이니 내 틀림없이 그를 사로잡겠소.”
徐庶曰:
「將軍勿輕視劉玄德。
今玄德得諸葛亮為輔,如虎生翼矣.」
서서가 말하였다.
“장군은 유현덕을 경시하지 마시오.
이제 현덕이 제갈량을 얻어서 보좌를 받으니 호랑이가 날개를 담과 같소.”
操曰:
「諸葛亮何人也?」
조조가 말하였다.
“제갈량이 어떤 사람이오?”
庶曰:
「亮字孔明,道號臥龍先生。
有經天緯地之才,出鬼入神之計,真當世之奇士,非可小覷。」
서서가 말하였다.
“제갈량의 자는 공명이며 道號는 와룡선생입니다.
經天緯地(하늘과 땅을 날실과 씨줄로 삼아 천하를 주무름)의 제주와 出鬼入神(변화무쌍해 예측할 수 없음)의 계략을 가진, 참으로 當世之奇士이니 小覷해선 안 됩니다.”
操曰:
「比公若何?」
조조가 말하였다.
“공과 비교하면 어떻소?”
庶曰:
「庶安敢比亮?
庶如螢火之光,亮乃皓月之明也。」
서서가 말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제갈량에게 비하겠습니까?
제가 螢火之光이라면 제갈량은 皓月之明입니다.”
夏侯惇曰:
「元直之言謬矣。
吾看諸葛亮如草芥耳,何足懼哉!
吾若不一陣生擒劉備,活捉諸葛,願將首級獻與丞相。」
하후돈이 말하였다.
“元直之言이 틀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제갈량은 草芥와 같을 뿐인데 어찌 족히 두렵겠습니까!
제가 만약 한 번 싸워서 生擒劉備과 活捉諸葛하지 못하면 바라건대 수급을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操曰:
「汝早報捷書,以慰吾心。」
조조가 말하였다.
“너는 어서 승전 소식을 올려 내 마음을 위안하라!”
惇奮然辭曹操,引軍登程。
하후돈이 奮然히 조조를 작별하고 引軍登程하였다.
卻說
玄德自得孔明,以師禮待之。
한편,
현덕이 공명을 얻은 뒤 스승의 예로써 대하였다.
關、張二人不悅曰:
「孔明年幼,有甚才學!
兄長待之太過!
又未見他真實效驗!」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언짢아하며 말하였다.
“공명이 나이 어린데 무슨 재주와 학문이 있겠습니까!
형님께서 그를 대우함이 너무 지나칩니다!
게다가 아직 그가 참으로 효험 있음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玄德曰:
「吾得孔明,猶魚之得水也。
兩弟勿復多言。」
현덕이 말하였다.
“내가 공명을 얻음은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
두 아우는 다시는 여러 말 말라.”
關、張見說,不言而退。
관우와 장비가 그 말을 듣고 말없이 물러 나왔다.
一日,有人送犛牛尾至。
하루는 어떤 사람이 검은 들소의 꼬리를 보내왔다.
玄德取尾親自結帽。
현덕이 그 꼬리털로 손수 모자를 짰다.
孔明入見,正色曰:
「明公無復有遠志,但事此而已耶?」
공명이 들어와서 보더니, 정색하고 말하였다.
“명공께서 다시 원대한 뜻을 가지지 않고, 단지 이것을 일삼고 있습니까?”
玄德投帽於地而謝曰:
「吾聊假此以忘憂耳。」
현덕이 (짜던) 모자를 땅에 내던지고 사과하였다.
“내가 이것을 빌어 근심을 잊을 뿐입니다.”
孔明曰:
「明公自度比曹操若何?」
공명이 말하였다.
“명공께서 스스로 조조와 비교하여 어떻게 여기십니까?”
玄德曰:
「不如也。」
현덕이 말하였다.
“그보다 못합니다.”
孔明曰:
「明公之眾,不過數千人,萬一曹兵至,何以迎之?」
공명이 말하였다.
“명공의 군사는 불과 수천 인이니 조조의 군대가 오면 어떻게 맞겠습니까?”
玄德曰:
「吾正愁此事,未得良策。」
현덕이 말하였다.
“내가 바로 그 일을 근심하고 있지만, 아직 좋은 계책을 얻지 못했습니다.”
孔明曰 :
「可速招募民兵,亮自教之,可以待敵。」
공명이 말하였다.
“어서 민병을 모집하여 제가 직접 그들을 교련하면 대적할 수 있겠습니다.”
玄德遂招新野之民,得三千人。
현덕이 곧 신야의 백성을 불러 모아 3천 인을 얻었다.
孔明朝夕教演陣法。
공명이 아침저녁으로 진법을 교련하였다.
忽報曹操差夏侯惇引兵十萬,殺奔新野來了。
문득 보고하기를, 조조가 하후돈을 보내 10만 병력을 이끌고 신야로 쇄도해 온다고 하였다.
張飛聞知,謂雲長曰:
「可著孔明前去迎敵便了。」
장비가 듣고서 운장에게 말하였다.
“똑똑한 공명이 가서 迎敵하면 편리하겠소.”
正說之間,玄德召二人入,謂曰:
「夏侯惇引兵到來,如何迎敵?」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덕이 두 사람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하후돈이 군사를 이끌고 왔으니 어떻게 迎敵해야 하겠느냐?”
張飛曰:
「哥哥何不使『水』去?」
장비가 말하였다.
“형님은 왜 ‘물’을 보내지 않소?”
玄德曰:
「智賴孔明,勇須二弟,何可推諉?」
현덕이 말하였다.
“지혜는 공명에게 의지하더라도 용맹은 두 아우가 꼭 있어야 하는데, 어찌 책임을 미루려 하느냐?”
關、張出,玄德請孔明商議。
관우와 장비가 나갔다. 현덕이 공명을 청해 상의하였다.
孔明曰:
「但恐關、張二人,不肯聽吾號令;
主公若欲亮行兵,乞假劍印。」
공명이 말하였다.
“단지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제 명을 듣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공께서 제가 行兵하게 하시려면 아무쪼록 칼과 도장을 빌려주십시오.”
玄德便以劍印付孔明,孔明遂聚集眾將聽令。
현덕이 칼과 도장을 공명에게 맡기자, 공명이 장수들을 소집해 명령을 듣게 하였다.
張飛謂雲長曰:
「且聽令去。看他如何調度。」
장비가 운장에게 말하였다.
“일단 명령을 들으러 가서 그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봅시다.”
孔明令曰:
「博望之左有山,名曰豫山;
右有林,名曰安林;可以埋伏軍馬。
雲長可引一千軍往豫山埋伏,等彼軍至,放過休敵,其輜重糧草,必在後面,但看南面火起,可縱兵出擊,就焚其糧草。
益德可引一千軍去安林背後山谷中埋伏,只看南面火起,便可出,向博望城舊屯糧草處縱火燒之。
關平、劉封可引五百軍,預備引火之物,於博望坡後兩邊等候。至初更兵到,便可放火矣。」
공명이 명령을 내렸다.
“박망의 왼쪽에 산이 있는데, 이름하여 예산이오.
오른쪽에 숲이 있으니 이름하여 안림인데, 군마를 매복할 만하오.
운장은 1천 군사를 이끌고 예산으로 가서 매복하여 적군이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적군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대적하지 마시오. 그 치중이며 군량과 말먹이가 틀림없이 뒤쪽에 있을 것이오. 남쪽에서 불이 치솟는 것이 보이면 군사를 풀어 출격해서 곧바로 군량과 말먹이를 불사르시오.
익덕은 1천 군사를 이끌고 안림 뒤쪽의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다가, 남쪽에서 불이 치솟으면 곧 나와서 박망성에 양초를 쌓아둔 곳으로 가서 바로 불을 놓아 태우시오.
관평과 유봉은 오백 군사를 이끌고 인화물을 준비하여 박망파 뒤쪽 양편에서 기다리다가 초경에 적의 군사가 이르면 곧 불을 지르시오.”
又命於樊城取回趙雲,令為前部,不要贏,只要輸。
또 명령하기를, 번성에 가서 조운을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선봉을 맡기고 이기지 말고 다만 지기만 하게 하였다.
「主公自引一軍為後援。
各須依計而行,勿使有失。」
“주공께서 스스로 1군을 이끌고 후원할 터이오.
각자 틀림없이 계책에 따라 움직이되,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雲長曰:
「我等皆出迎敵,未審軍師卻作何事?」
운장이 말하였다.
“우리는 모두 나가서 적군을 맞이하는데, 군사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孔明曰:
「我只坐守縣城。」
공명이 말하였다.
“나는 다만 이 현성을 지키겠소.”
張飛大笑曰:
「我們都去廝殺,你卻在家裏坐地,好自在!」
장비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우리 모두 싸우러 가는데 당신은 집안에 앉아 편히 있겠다니 좋겠소!”
孔明曰:
「劍印在此,違令者斬!」
공명이 말하였다.
“검과 인수가 여기 있소. 명령을 어기는 자 참하겠소!”
玄德曰:
「豈不聞『運籌帷幄之中,決勝千里之外』?
二弟不可違令。」
현덕이 말하였다.
“어찌 ‘막사 안에서 책략을 써서 천 리 밖의 승부를 결정짓는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두 아우는 명령을 어겨선 안 된다.”
張飛冷笑而去。
장비가 냉소하며 물러갔다.
雲長曰:
「我們且看他的計應也不應,那時卻來問他未遲。」
운장이 장비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일단 그의 계책이 들어맞는지 안 맞는지 보고, 그때 가서 그에게 뭐라 해도 늦지 않겠다.”
二人去了。
두 사람이 떠났다.
眾將皆未知孔明韜略,今雖聽令,卻都疑惑不定。
장수들이 아직 공명의 계략을 알지 못하고, 지금 비록 명령을 들었으나, 모두 의혹을 가라앉히지 못하였다.
孔明謂玄德曰:
「主公今日可便引兵就博望山下屯住。
來日黃昏,敵軍必到,主公便棄營而走;
但見火起,即回軍掩殺。
亮與糜竺、糜芳引五百軍守縣;命孫乾、簡雍準備慶喜筵席,安排『功勞簿』伺候。」
공명이 현덕에게 말하였다.
“주공께서 오늘 병력을 이끌고 박망산 아래로 가서 주둔하십시오.
내일 황혼에 적군이 틀림없이 올 테니 주공께서 바로 영채를 버리고 달아나십시오.
그러다 불길이 치솟으면 즉시 군사를 돌려 쳐부수십시오.
저는 미축, 미방과 더불어 5백 군사를 이끌고 고을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손건과 간옹에게 명하여 축하 연회를 준비하고 공로 장부를 마련하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派撥已畢,玄德亦疑惑不定。
파견과 안배를 마쳤지만, 현덕 역시 의혹을 가라앉히지 못하였다.
卻說
夏侯惇與于禁等引兵至博望,分一半精兵作前隊,其餘盡護糧車而行。
한편,
하후돈이 우금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박망에 이르러서 그 절반의 정예병을 나누어 선발부대로 삼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양초를 호송하였다.
時當秋月,商飆徐起。
이때 마침 가을이라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人馬趲行之間,望見前面塵頭忽起。
인마가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멀리 바라보니 앞쪽에 먼지가 문득 피어올랐다.
惇便將人馬擺開,問鄉導官曰:
「此間是何處?」
하후돈이 곧 인마들을 펼치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냐?”
答曰:
「前面便是博望坡,後面是羅川口。」
대답하였다.
“앞쪽은 박망파이고 뒤쪽은 나천구입니다.”
惇令于禁、李典押住陣腳,親自出馬陣前。
하후돈이 우금과 이전에게 명해 선두를 멈춰 진을 펼치게 하고 몸소 진 앞으로 나갔다.
遙望軍馬來到,惇忽然大笑。
멀리 군마가 옴을 보더니 하후돈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眾問:
「將軍為何而笑?」
사람들이 물었다.
“장군께서 무엇 때문에 웃으십니까?”
惇曰:
「吾笑徐元直在丞相面前,誇諸葛亮為天人;
今觀其用兵,乃以此等軍馬為前部,與吾對敵 ,正如驅犬羊與虎豹鬥耳!
吾於丞相前誇口,要活捉劉備、諸葛亮,今必應吾言矣。」
하후돈이 말하였다.
“나는 서원직이 승상 면전에서 제갈량을 하늘이 낸 사람이라 자랑하던 일이 우스웠소.
이제 그 용병하는 꼴을 보니 저 따위 군마를 선봉으로 내세워 우리와 대적하겠다니 바로 개나 양을 몰아 호랑이나 표범과 싸움과 같구려!
내가 승상 앞에서 장담하기를 유비와 제갈량을 사로잡겠다고 했는데, 이제 틀림없이 내 말대로 되겠소.”
遂自縱馬向前。
곧 스스로 말을 내달려 앞으로 나갔다.
趙雲出馬。
조운이 말을 타고 나왔다.
惇罵曰:
「汝等隨劉備如孤魂隨鬼耳!」
하후돈이 욕하였다.
“너희가 유비를 따름이 마치 오갈 데 없는 넋이 귀신을 따라다니는 꼴이구나!”
雲大怒,縱馬來戰。
조운이 크게 노해 말을 내달려 싸우러 나왔다.
兩馬相交,不數合,雲詐敗而走。
두 말이 서로 엇갈린 지 몇 합이 되지 않아 조운이 거짓으로 패해 달아났다.
夏侯惇從後追趕。
하후돈이 뒤쫓았다.
雲約走十餘里,回馬又戰,不數合又走。
조운이 약 10여 리를 달아나더니 말머리를 돌려 다시 싸우다가 몇 합을 싸우지도 않고 또 달아났다.
韓浩拍馬向前諫曰:
「趙雲誘敵,恐有埋伏。」
한호가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와 간언하였다.
“조운이 적을 유인하니 매복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惇曰:
「敵軍如此,雖十面埋伏,吾何懼哉!」
하후돈이 말하였다.
“적군이 이 모양인데 비록 열 방면에서 매복한들 내 어찌 두려워하겠소!”
遂不聽浩言,直趕至博望坡。
결국 한호의 말을 듣지 않고 곧장 박망파까지 뒤쫓았다.
一聲炮響,玄德自引軍衝將過來,接應交戰。
한차례 호포 소리 울리더니 현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달려들어 조운을 응원하여 교전하였다.
夏侯惇笑謂韓浩曰:
「此即埋伏之兵也!
吾今晚不到新野,誓不罷兵!」
하후돈이 웃으며 한호에게 말하였다.
“이게 바로 매복한 병력이구려!
내가 오늘 저녁까지 신야에 이르지 못하면 맹세코 병력을 거두지 않으리다!”
乃催軍前進。
이에 군사들을 재촉해 전진하였다.
玄德、趙雲,退後便走。
현덕과 조운이 뒤로 물러나서 달아났다.
時天色已晚,濃雲密布,又無月色;
晝風既起,夜風愈大。
이때 날이 이미 저물어 짙은 구름이 가득하고 달빛도 없었다.
낮부터 바람이 불어 밤이 되자 더욱 거세졌다.
夏侯惇只顧催軍趕殺。
하후돈은 오로지 군사가 추격하기를 재촉할 뿐이었다.
于禁、李典,趕到窄狹處,兩邊都是蘆葦。
우금과 이전이 뒤따라와서 좁은 곳에 이르렀는데 양쪽으로 모두 갈대밭이었다.
典謂禁曰:
「欺敵者必敗。
南道路狹,山川相逼,樹木叢雜,倘彼用火攻,奈何?」
이전이 우금에게 일렀다.
“적을 업신여기는 자는 틀림없이 패한다고 하였소.
남쪽 도로가 좁고 산천이 서로 가깝고 수목이 빽빽한데, 적이 화공을 쓰면 어쩌겠소?”
禁曰:
「君言是也。
吾當往前為都督言之;君可止住後軍。」
우금이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옳소.
내가 앞으로 달려가 도독께 말씀드려야겠소. 그대는 후군을 멈추시오.”
李典便勒回馬,大叫:
「後軍慢行!」
이전이 곧 말머리를 돌려 크게 외쳤다.
“후군은 행군을 늦춰라!”
人馬走發,那裏攔當得住。
인마들이 질주해 오다가 그 자리에서 가로막혀 멈추었다.
于禁驟馬大叫:
「前軍都督且住!」
우금이 말을 내달려 크게 외쳤다.
“전군의 도독께서는 일단 멈추시오!”
夏侯惇正走之間,見于禁從後軍奔來,便問何故。
하후돈이 한창 달리다 바라보니 우금이 뒤따라 내달려 옴을 보고, 무슨 까닭이냐 물었다
禁曰:
「南道路狹,山川相逼,樹木叢雜,宜防火攻。」
우금이 말하였다.
“남쪽 도로가 좁고 산천이 다가와 있고 수목이 우거져 화공을 방비해야겠습니다.”
夏侯惇猛省,即回馬令軍馬勿進。
하후돈이 문득 깨닫고 즉시 말머리를 돌리더니 군마들에게 멈추라고 명령하였다.
言未已,只聽背後喊聲震起,早望見一派火光燒著;隨後兩邊蘆葦亦著。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배후에서 함성이 천둥처럼 울리더니, 어느새 한 무더기 불길이 타듦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양쪽의 갈대 역시 불이 붙었다.
一霎時,四方八面,盡皆是火;
삽시간에 사면팔방이 온통 불바다다.
又值風大,火勢愈猛。
게다가 마침 바람까지 크게 일어나 불길이 더욱 맹렬해졌다.
曹家人馬,自相踐踏,死者不計其數。
조조 진영의 인마들이 서로 짓밟아 죽은 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趙雲回軍趕殺,夏侯惇冒煙突火而走。
조운이 군사를 돌려 쫓아와서 무찌르니 하후돈이 연기와 불길을 뚫고 달아났다.
且說
李典見勢頭不好,急奔回博望城時,火光中一軍攔住。
한편,
이전이 살펴보고 형세가 좋지 않아서 서둘러 박망성으로 되돌아가는데 불빛 가운데 一軍이 가로막았다.
當先大將,乃關雲長也。
앞장선 대장은 바로 관운장이었다.
李典縱馬混戰,奪路而走。
이전이 말을 내달려 혼전하여 길을 뚫어 달아났다.
于禁見糧草車輛,都被火燒,便投小路奔逃去了。
우금이 糧草車輛 죄다 불탐을 보고, 곧 작은 길을 잡아 달아났다.
夏侯蘭、韓浩來救糧草,正遇張飛。
하후란과 한호가 달려와 糧草를 구원하러 오다가 바로 장비와 마주쳤다.
戰不數合,張飛一鎗刺夏侯蘭於馬下。
싸운 지 몇 합이 안되어 장비가 한 창으로 하후란을 찔러 낙마시켰다.
韓浩奪路走脫。
한호가 길을 앗아서 달아났다.
直殺到天明,卻纔收軍。
동틀녘까지 내리 무찌르고서야 군사를 거두었다.
殺得屍橫遍野,血流成河。
죽인 屍橫遍野이고 血流成河이었다.
後人有詩曰:
후인이 시를 지은 것이 있다.
<博望相持用火攻, 指揮如意笑談中。
直須驚破曹公膽, 初出茅廬第一功。>
<박망에서 서로 싸우다 화공을 쓰니, 담소중의 뜻대로 지휘했네.
조공의 간담이 써늘하게 하니, 초가집을 나와 처음 세운 공이라네.>
夏侯惇收拾殘軍,自回許昌。
하후돈이 패잔군을 수습하여 허창으로 돌아갔다.
卻說
孔明收軍,關、張二人相謂曰:
「孔明真英傑也!」
한편, 공명이 군사를 거두자,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공명은 참으로 영걸이오!”
行不數里,見糜竺、糜芳引軍簇擁著一輛小車,車中端坐一人,乃孔明也。
몇 리 가지 않아서 미축과 미방이 군사를 거느리고 작은 수레 하나를 호위해 오는데 수레에 단정히 앉은 사람은 바로 공명이다.
關、張下馬拜伏於車前 。
관우와 장비가 말에서 내려 수레 앞에서 절하고 엎드렸다.
須臾,玄德、趙雲、劉封、關平等皆至,收聚眾軍,把所獲糧草輜重,分賞將士,班師回新野。
조금 후에 현덕과 조운 유봉 관평 등이 모두 이르러 군사들을 모으고, 노획한 식량과 사초와 치중을 장수와 사졸들에게 나눠 포상하고, 신야로 회군하였다.
新野百姓望塵遮道而拜曰:
「吾屬生全,皆使君得賢人之力也!」
신야의 백성들이 먼지를 바라보고 길을 막고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우리 목숨이 온전함은 모두 사군께서 현인을 얻으신 덕분이오!”
孔明回至縣中,謂玄德曰:
「夏侯惇雖敗去,曹操必自引大軍來 。」
공명이 신야현으로 돌아가서, 현덕에게 말하였다.
“하후돈이 비록 패하여 물러갔으나 조조가 틀림없이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올 터입니다.”
玄德曰:
「似此如之奈何?」
현덕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孔明曰:
「亮有一計,可敵曹軍。」
공명이 말하였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가히 조조 군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正是:
破敵未堪息戰馬,避兵又必賴良謀。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적병을 깨뜨리고 戰馬가 쉬지도 못했으니, 避兵하려면 반드시 良謀에 힘입어야 하겠네.>
未知其計若何,且看下文分解。
그 계책이 어떠할까? 다음 글의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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