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百零二回
司馬懿占北原渭橋, 諸葛亮造木牛流馬.
제102회
사마의가 북원을 점거하여 渭橋를 놓고, 제갈량이 木牛流馬를 만들다.
卻說
譙周官居太史,頗明天文;見孔明又欲出師,乃奏後主曰:
「臣今職掌司天臺,但有禍福,不可不奏。
近有群鳥數萬,自南飛來,投於漢水而死,此不祥之兆。
臣又觀天象,見奎星躔於太白之分,盛氣在北,不利伐魏。
又成都人民,皆聞柏樹夜哭。
有此數般災異,丞相只宜謹守,不可妄動.」
한편,
초주는 太史로 官居하며 천문에 자못 밝은데, 공명이 다시 出師하려 함을 보고 후주에게 상주하였다.
“신이 이제 司天台 직무를 맡고 있는데 禍福이 있는지라, 상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새 새 떼 수만 마리가 남쪽에서 날아와서 한수에 떨어져 죽었는데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신이 또한 천문을 관측하니, 奎星이 太白의 영역을 범하고 왕성한 기운이 북쪽에 있으니, 伐魏함에 불리합니다.
또한 성도의 인민이 모두 잣나무가 밤에 곡함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災異가 있으니 승상은 다만 삼가 수비해야지, 妄動해서는 안 됩니다.”
孔明曰:
「吾受先帝託孤之重,當竭力討賊,豈可以虛妄之災氛,而廢國家大事耶?」
공명이 말하였다.
“내가 先帝託孤之重을 받았으니 竭力討賊해야 하거늘, 어찌 虛妄之災氛로 國家大事를 폐하겠소?”
遂命有司設太牢祭於昭烈之廟,涕泣拜告曰:
「臣亮五出祁山,未得寸土,負罪非輕!
今臣復統全師,再出祁山,誓竭力盡心,剿滅漢賊,恢復中原,鞠躬盡瘁,死而後已!」
마침내 有司에게 명하여, 太牢를 차리고 昭烈之廟에 제사 지내며 涕泣拜告하였다.
“신 제갈량이 다섯 번 기산으로 나갔으나, 아직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했으니, 지은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신이 이제 다시 全師를 통솔하여 다시 기산으로 나가서 맹세코 竭力盡心하여 剿滅漢賊하고 恢復中原에 鞠躬盡瘁하겠사오니, 제가 죽어야 그만두겠습니다!”
祭畢,拜辭後主,星夜至漢中,聚集諸將商議出師。
제를 올리고 나서 후주와 작별하고, 밤중에 한중에 도착하여 장수들을 모으고 出師를 상의하였다.
忽報關興病亡,孔明放聲大哭,昏倒於地,半晌方甦。
홀연히 관흥이 죽음을 알리니 放聲大哭하고 昏倒於地하여 半晌方甦하였다.
眾將再三勸解。孔明歎曰:
「可憐忠義之人,天不與以壽!
我今番出師,又少一員大將也!」
장수들이 걱정하는 마음을 풀라고 거듭 권하자, 공명이 탄식하였다.
“가련하구나! 忠義之人에게는 하늘이 장수를 주지 않는구나!
내 이번 출사에 또 한 사람의 대장이 줄어드는구나!”
後人有詩歎曰:
후인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生死人常理,蜉蝣一樣空。
但存忠孝節,何必壽喬松。>
<生死는 사람에게 늘 있는 일이지만, 蜉蝣와 한가지로 공허하구나
충효의 절개를 가지면 그만이지, 하필 喬松처럼 장수해야 하는가?>
孔明引蜀兵三十四萬,分五路而進,令姜維、魏延為先鋒,皆出祁山取齊;令李恢先運糧草於斜谷道口伺候。
공명이 촉병 34만을 이끌고 五路로 나누어 진군하며, 강유와 위연을 선봉으로 삼고 모두 기산으로 나가서 집결하라 하였다. 李恢에게 명령하여 먼저 군량을 야곡의 입구로 운반하고 기다리게 하였다.
卻說
魏國因舊歲有青龍自摩坡井內而出,改為青龍元年。
한편,
위나라는 작년에 청룡이 摩坡井에서 출현하여 청룡 원년으로 改元하였다.
此時乃青龍二年春二月也。
이때는 청룡 2년 봄 2월이었다.
近臣奏曰:
「邊官飛報蜀兵三十餘萬,分五路復出祁山.」
近臣이 상주하였다.
“변방의 관리가 급보하여, 촉병 30여 만이 5로로 나누어 다시 기산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魏主曹叡大驚,急召司馬懿至,謂曰:
「蜀人三年不曾入寇,今諸葛亮又出祁山,如之奈何?」
위주 조예가 깜짝 놀라 급히 사마의를 불러서 일렀다.
“촉인들이 3년간 入寇한 적이 없는데 이제 제갈량이 다시 기산으로 나오니 어찌해야 하겠소?”
懿奏曰:
「臣夜觀天象,見中原旺氣正盛,奎星犯太白,不利於西川。
今孔明自負才智,逆天而行,乃自取敗亡也。
臣託陛下洪福,當往破之。
臣願保四人同去.」
사마의가 아뢰었다.
“신이 밤에 천문을 살피니 중원에 왕성한 기운이 성하고 규성이 태백을 범하니 서천에 불리합니다.
이제 공명이 自負才智하며 하늘을 역행하여 패망을 자초합니다.
신이 폐하의 洪福에 의지하여 가서 격파하겠습니다.
네 사람을 보증하여 천거하오니 同去하게 해주소서.”
叡曰:
「卿保何人?」
조예가 말하였다.
“경은 누구를 천거하오?”
懿曰:
「夏侯淵有四子:
長名霸,字仲權;
次名威,字季權;
三名惠,字雅權;
四名和,字義權。
霸、威二人,弓馬熟嫺;
惠、和二人,諳知韜略。
此四人常欲為父報讎。
臣今保夏侯霸、夏侯威為左右先鋒,夏侯惠、夏侯和為行軍司馬,共贊軍機,以退蜀兵.」
사마의가 말하였다.
“하후연에게 네 아들이 있사온데,
첫째는 夏侯霸 자 仲權,
둘째는 夏侯威 자 季權,
셋째는 夏侯惠 자 雅權,
넷째는 夏侯和 자 義權입니다.
하후패와 하후위는 활쏘기와 말타기가 능숙합니다.
하후혜와 하후화는 육도삼략을 통달했습니다.
이 네 사람은 늘 부친을 위해 복수하고자 합니다.
신이 이제 하후패와 하후위를 좌우선봉으로 삼고, 하후혜와 하후화를 行軍司馬로 삼아 군사전략을 돕게 하여 촉군을 격퇴하겠습니다.”
叡曰:
「向者夏侯楙駙馬違誤軍機,失陷了許多人馬,至今羞慚不回。
今此四人,亦與楙同否?」
조예가 말하였다.
“지난날 하후무 駙馬가 軍機(군사전략)를 그르쳐 허다한 인마를 잃고 지금까지 부끄러워 돌아오지 못하오.
이제 이 네 사람도 하후무와 같지 않겠소?”
懿曰:
「此四人非楙之比也.」
사마의가 말하였다.
“이 네 사람은 하후무의 비교가 아닙니다.”
叡乃從其請,即命司馬懿為大都督,凡將士悉聽量才委用,各處兵馬皆聽調遣。
조예가 그의 청을 받아들여 사마의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장졸들은 그의 量才委用을 모두 따르게 하고, 각처의 병마가 모두 그의 배치를 따르도록 하였다.
懿受命,辭朝出城。叡又以手詔賜懿曰:
卿到渭濱,宜堅壁固守,勿與交鋒。
蜀兵不得志,必詐退誘敵,卿慎勿追。
待彼糧盡,必將自走,然後乘虛攻之,則取勝不難,亦免軍馬疲勞之苦。
計莫善於此也。
사마의가 어명을 받고, 조정을 떠나 성을 나가는데, 조예가 다시 친필 조서를 내렸다.
<경이 渭濱에 이르거든 마땅히 견고한 벽처럼 굳게 지키며, 交鋒하지 마시오.
촉군이 뜻을 이루지 못하면 틀림없이 詐退誘敵할 터이나, 경은 절대 추격하지 마시오.
저들의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필시 스스로 달아날 터이니, 연후에 乘虛攻之하면 取勝不難이고, 또한 군마의 疲勞之苦를 면하겠소.
헤아리건대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소.>
司馬懿頓首受詔,即日到長安聚集各處軍馬,共四十萬,皆來渭濱下寨;
又撥五萬軍,於渭水上搭起九座浮橋,令先鋒夏侯霸、夏侯威過渭水安營;
又於大營之後,東原築起一城,以防不虞。
사마의가 頓首受詔하고 그날로 장안에 당도하여 聚集各處軍馬하여 도합 40만군이 모두 위빈으로 가서 下寨하였다.
또 5만군을 뽑아 위수에 九座浮橋를 부교 9개를 놓고, 선봉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위수를 건너가서 영채를 꾸리게 하였다.
또한 大營之後 東原에 성을 하나 쌓아 올려 不虞의 기습을 안심하였다.
懿正與眾將商議間,忽報郭淮、孫禮來見。
사마의가 장수들과 상의하는데 곽회와 손례가 찾아왔다고 보고하였다.
懿迎入禮畢。淮曰:
「今蜀兵悉在祁山,倘跨渭登原,接連北山,阻絕隴道,大可虞也.」
사마의가 맞아들여 인사를 마치니, 곽회가 말하였다.
“지금 촉병이 모두 기산에 있으나, 혹시 위수를 건너 들판으로 나가서 北山과 연결하여 농서로 통하는 길을 끊으면, 크게 근심할 일입니다.”
懿曰:
「所言甚善。
公可就總督隴西軍馬,據北原下寨,深溝高壘,按兵休動;只待彼糧盡,方可攻之.」
사마의가 말하였다.
“말씀하신 바가 심히 옳소.
공께서 농서의 군마를 총독하여 北原에 웅거해 영채를 세우고, 深溝高壘, 按兵不動하시오.
저들의 군량이 바닥나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공격하시오.”
郭淮、孫禮領命,引兵下寨去了。
곽회와 손례가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영채를 세우러 갔다.
卻說
孔明復出祁山,下五個大寨,按左右中前後;
한편,
공명은 다시 기산으로 나가서 다섯 개의 大寨를 세우되 좌우, 중앙, 전후에 배치하였다.
自斜谷直至劍閣,一連又下十四個大寨,分屯軍馬,以為久計,每日令人巡哨。
斜谷에서 곧장 劍閣까지 잇달아 또 大寨 14개를 세우고 分屯軍馬하여 久計로 삼고, 매일 巡哨하도록 명령하였다.
忽報郭淮、孫禮領隴西之兵,於北原下寨。
문득 곽회와 손례가 領隴西之兵하여 북원에 下寨했다고 보고하였다.
孔明謂諸將曰:
「魏兵於北原安營者,懼吾取此路,阻絕隴道也。
吾今虛攻北原,卻暗取渭濱。
令人紮木筏百餘隻,上載草把,選慣熟水手五千人駕之。
我夤夜只攻北原,司馬懿必引兵來救。
彼若少敗,我把後軍先渡過岸去.
然後把前軍下於筏中,休要上岸,順水取浮橋放火燒斷,以攻其後。
吾自引一軍去取前營之門。
若得渭水之南,則進兵不難矣.」
공명이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위병이 북원에 진을 침은, 우리가 이 길을 빼앗아 阻絕隴道할까 두려워서요.
내 이제 虛攻北原하고 暗取渭濱하겠소.
사람들을 시켜 뗏목 백여 隻을 엮고 그 위에 풀 다발을 싣고, 숙련된 水手 5천 인을 뽑아 태우시오.
내가 한밤에 북원을 공격하면, 사마의는 필시 引兵來救할 터이오.
그가 조금이라도 밀리면, 나는 後軍을 먼저 강을 건너 언덕으로 보내겠소.
그 뒤 前軍을 뗏목에 태워 상륙하지 말고 강물을 내려가며 부교를 점령해서 불살라 끊음으로써 후방을 공격하겠소.
내 직접 1군을 이끌고 앞쪽 영채를 공격하겠소.
위수 남쪽을 얻으면 진군은 어렵지 않소.”
諸將遵令而行。
장수들이 군령을 지켜서 행하였다.
早有巡哨軍飛報司馬懿。
어느새 巡哨軍이 사마의에게 급보하였다.
懿喚諸將議曰:
「孔明如此設施,其中有詐。
彼以取北原為名,順水來燒浮橋,亂吾後,卻攻吾前也.」
사마의가 여러 장수를 불러 의논하였다.
“공명이 이처럼 設施( 일을 벌임 )하나, 그중에 속임이 있소.
그는 北原을 공격하는 척하며 물길을 따라와서 부교를 불살라 후방을 교란하고, 도리어 우리의 전방을 공격할 터이오.”
即傳令與夏侯霸、夏侯威曰:
「若聽得北原發喊,便提兵於渭水南山之中,待蜀兵至擊之.」
즉시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군령을 전하였다.
“북원에서 함성이 울리거든, 병력을 이끌고 渭水南山之中에서 촉병이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시오.”
又令張虎、樂綝,引二千弓弩手伏於渭水浮橋北岸:
「若蜀兵乘木筏順水而來,可一齊射之,休令近橋.」
또 張虎、樂綝에게 궁노수 2천을 이끌고 위수의 부교 북쪽 강둑에 매복하게 하였다.
“촉병이 뗏목을 타고 물길을 따라오면, 일제히 사격해서 부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오.”
又傳令郭淮、孫禮曰:
「孔明來北原暗渡渭水,汝新立之營,人馬不多,可盡伏於半路。
若蜀兵於午後渡水,黃昏時分,必來攻汝。
汝詐敗而走,蜀兵必追。
汝等皆以弓弩射之。
吾水陸並進。
若蜀兵大至,只看我指揮而擊之.」
또 곽회와 손례에게 명령을 전하였다.
“공명이 북원으로 와서 暗渡渭水하면, 그대들의 新立之營에는 인마가 적으니 모두 길가에 매복하시오.
촉병이 오후에 물을 건너면 황혼 무렵에 틀림없이 그대를 공격할 터이오.
그대들이 못 이기는 척 달아나면 촉병이 틀림없이 뒤쫓을 터이오.
그대들은 모두 활과 쇠뇌로 사격하시오.
나는 수륙으로 並進하겠소.
촉병이 대거 몰려오면 내 지휘를 보고 공격하시오.”
各處下令已畢,又令二子司馬師、司馬昭,引兵救應前營。
각처에 명령을 내리고 나서 또 두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에게 군을 이끌고 救應前營하게 하였다.
懿自引一軍救北原。
사마의 스스로 1군을 이끌고 북원을 구원하러 갔다.
卻說
孔明令魏延、馬岱引兵渡渭水攻北原;
令吳班,吳懿引木筏兵去燒浮橋;
令王平、張嶷為前隊,姜維、馬忠為中隊, 廖化、張翼為後隊,分兵三路,去攻渭水旱營。
한편,
공명은 위연과 마대에게 군사를 이끌고 위수를 건너 북원을 치라고 하였다.
오반과 오의에게 木筏兵을 거느리고 부교를 불태우러 가라고 하였다.
왕평과 장의는 前隊가, 강유와 마충은 中隊가, 요화와 장익은 後隊가 되어 군사를 3로로 나누어 위수의 旱營을 공격하러 가게 하였다.
是日午時,人馬離大寨,盡渡渭水,列成陣勢,緩緩而行。
이날 午時에 인마가 大寨를 떠나서 모두 위수를 건넜고, 陣勢를 펼쳐서 천천히 행군하였다.
卻說
魏延、馬岱將近北原,天色已昏。
한편,
위연과 마대가 북원으로 다가가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孫禮哨見,便棄營而走。
손례가 哨探하여 알고 영채를 포기하고 달아났다.
魏延知有準備,急退軍時,四下喊聲大震;
위연은 준비가 있음을 알고 다급히 군대를 물리려는데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울렸다.
左有司馬懿,右有郭淮,兩路兵殺來。
좌측에 사마의 우측에 곽회가 있어 兩路兵이 달려왔다.
魏延、馬岱奮力殺出,蜀兵多半落於水中,餘眾奔逃無路。
위연 과 마대가 奮力殺出하나 촉병 태반이 落於水中하고 나머지 군사도 奔逃無路이었다.
幸得吳懿兵殺來,救了敗兵過岸拒住。
다행히 오의의 병사가 달려와서 패잔병을 구출하고 강을 건너가서 방어하였다.
吳班分一半兵撐筏順水來燒浮橋,卻被張虎、樂綝在岸上亂箭射住。
오반이 군대 절반을 나누어 뗏목을 저어 물길을 따라 부교를 불사르러 갔지만, 장호와 악림이 강둑에서 화살을 마구 쏘아대었다.
吳班中箭落水而死。
오반이 화살을 맞아 강물에 떨어져 죽었다.
餘軍跳水逃命。木筏盡被魏兵奪去。
나머지 병사가 물에 뛰어들어 逃命하니, 뗏목을 모조리 위군이 빼앗아 갔다.
此時王平、張嶷不知北原兵敗,直奔到魏營,已有二更天氣,只聽得喊聲四起。
이때 왕평과 장의가 北原兵敗를 모르고 魏營으로 곧바로 달려오니, 벌써 2경인데 함성이 사방에서 일었다.
王平謂張嶷曰:
「馬軍攻打北原,未知勝負。
渭南之寨,現在面前,如何不見一個魏兵?
莫非司馬懿知道了,先作準備也。
我等且看浮橋火起,方可進兵.」
왕평이 장의 에게 말하였다.
“馬軍이 북원을 공격했지만, 아직 승부를 모르오.
위수 남쪽 영채가 면전에 보이는데 어찌 一個魏兵도 보이지 않소?
아무래도 사마의가 알고 미리 준비한 것이오.
우리는 우선 부교에서 불길이 이는지 살핀 뒤 진병해야 하겠소.”
二人勒住軍馬,忽背後一騎馬來報說:
「丞相教軍馬急回。
北原兵,浮橋兵,俱失了.」
두 사람이 군마를 멈춰 세우는데, 뒤에서 一騎馬가 와서 알렸다.
“승상께서 급히 회군하라 하셨소.
北原兵,浮橋兵을 모두 잃었소.”
王平、張嶷大驚,急退軍時,卻被魏兵抄在背後,一聲炮響,一齊殺來,火光沖天。
왕평과 장의가 깜짝 놀라 급히 군대를 물리려는데, 위군이 배후에서 습격하는데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일제히 달려오고, 불빛이 하늘을 찔렀다.
王平、張嶷引兵相迎,兩軍混戰一場。
왕평과 장의가 군사을 이끌고 맞붙어 양군이 한바탕 혼전을 벌였다.
平、嶷二人奮力殺出,蜀兵折傷大半。
왕평과 장의 두 사람이 힘껏 뚫고 나오지만, 촉병은 태반을 折傷하였다.
孔明回到祁山大寨,收聚殘兵,約折了萬餘人,心中憂悶。
공명이 기산 大寨로 돌아가 收聚殘兵하니 약 1만여 인을 잃은지라 마음속으로 근심하였다.
忽報費褘自成都來見丞相。
비위가 성도에서 승상을 찾아왔다고 보고하였다.
孔明請入。
공명이 들게 하였다.
費褘禮畢,孔明曰:
「吾有一書,正欲煩公去東吳投遞,不知肯去否?」
비위가 인사를 마치자, 공명이 말하였다.
“내게 서신이 하나 있어 수고롭더라도 공을 동오로 보내 전달하려는데, 가시려오?”
褘曰:
「丞相之命,豈敢推辭?」
비위가 말하였다
“승상의 명을 어찌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孔明即修書付費褘去了。
공명이 즉시 글을 닦아 비위에게 주니 (비위는) 떠났다.
褘持書徑到建業,入見吳主孫權,呈上孔明之書。
비위가 서신을 가지고 곧바로 건업으로 가서 오주 손권을 만나 공명의 서신을 바친다.
權拆視之。書略曰:
손권이 뜯어서 보니, 대략 이러하였다.
<漢室不幸,王綱失紀,曹賊篡逆,蔓延及今。
亮受昭烈皇帝寄託之重,敢不竭力盡忠?
今大兵已會於祁山,狂寇將亡於渭水。
伏望陛下念同盟之義,命將北征,共取中原,同分天下。
書不盡言,萬希聖聽!>
<한실이 불행하여 王綱失紀하니, 曹賊篡逆해하여 蔓延함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昭烈皇帝寄託之重을 받았으니 어찌 竭力盡忠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대병이 기산에 집결했으니, 狂寇는 곧 위수에서 멸망할 터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同盟之義를 유념하시고 장수들에게 北征을 명하여, 함께 중원을 점령하여 천하를 함께 나누게 하십시오.
글로써 다 말씀드리지 못하오나, 폐하께서 들어주시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權覽畢,大喜,乃謂費褘曰:
「朕久欲興兵,未得會合孔明。
今既有書到,即日朕自親征,入居巢門,取魏新城;
再令陸遜、諸葛瑾等屯兵於江夏、沔口取襄陽;
孫韶、張承等出兵廣陵取淮陽等處:
三處一齊進軍,共三十萬,剋日興師.」
손권이 읽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비위에게 일렀다.
“짐이 오래도록 興兵하고자 했으나 아직까지 공명과 만나지 못했소.
이제 서신이 왔으니, 날을 잡아 짐이 직접 親征하여 巢門에 들어가서 魏의 新城을 공격하겠소.
또한 육손과 제갈근 등에게 명하여 江夏、沔口에 屯兵하여 양양을 취하게 하겠소.
손소와 장승 等은 廣陵으로 출병해서 淮陽等處를 취하게 하겠소.
三處에서 一齊進軍하되 모두 30만이 기일에 맞춰 興師하겠소.”
費褘拜謝曰:
「誠如此,則中原不日自破矣!」
비위가 사례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중원은 머지않아 저절로 무너지겠습니다!”
權設宴款待費褘。
손권이 연회를 열어 비위를 款待하였다.
飲宴間,權問曰:
「丞相軍前,用誰當先破敵?」
연회 도중에 손권이 물었다.
“승상의 軍에서 누구를 앞장세워 적군을 격파하오?”
褘曰:
「魏延為首.」
비위가 말하였다.
“위연이 으뜸입니다.”
權笑曰:
「此人勇有餘,而心不正。
若一朝無孔明,彼必為禍。
孔明豈未知耶?」
손권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는 용맹이 넘치지만, 마음이 바르지 못하오.
하루아침이라도 공명이 없으면 그는 틀림없이 화근이 될 터이오.
공명이 어찌 아직 모른단 말이오?”
褘曰:
「陛下之言極當。
臣今歸去,即當以此言告孔明.」
“陛下之言이 極當하옵니다!
신이 이번에 돌아가면 즉시 이 말을 공명에게 고하겠습니다.”
遂拜辭孫權,回到祁山,見了孔明,具言吳主起大兵三十萬,御駕親征,兵分三路而進。
비위가 손권에게 辭別하고 기산으로 돌아가 공명을 만나서 자세히 말하기를, 吳主가 30만 大兵을 일으켜 어가를 타고 친정하되 兵分三路하여 진군할 것이라고 하였다.
孔明又問曰:
「吳主別有所言否?」
공명이 다시 물었다.
“吳主가 따로 말한 것이 있었소?”
費褘將論魏延之語告之。孔明歎曰:
「真聰明之主也!
吾非不知此人,為惜其勇,故用之耳.」
비위가 論魏延之語를 고하니 공명이 찬탄하였다.
“참으로 聰明之主로다!
내가 그 사람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의 용맹을 아끼기 때문에 기용할 따름이오.”
褘曰:
「丞相早宜區處.」
비위가 말하였다.
“승상께서 어서 區處하십시오.”
孔明曰:
「吾自有法.」
공명이 말하였다.
“내 나름대로 방도가 있소.”
褘辭別孔明,自回成都。
비위가 공명과 작별하고 성도로 돌아갔다.
孔明正與諸將商議征進,忽報有魏將來投降。孔明喚入問之。答曰:
「某乃魏國偏將軍鄭文也。
近與秦朗同領人馬,聽司馬懿調用,不料懿徇私偏向,加秦朗為前將軍,而視文如草芥:
因此不平,特來投降丞相。
願賜收錄.」
공명이 장수들과 征進을 상의하는데 魏將이 투항하러 왔다고 보고하였다. 공명이 불러들여 물으니 답하였다.
“저는 魏國 偏將軍 鄭文입니다.
근자에 秦朗과 더불어 인마를 함께 이끌며 사마의의 지휘를 따르고 있는데, 뜻밖에도 사마의가 사사로운 정을 따라 진랑을 前將軍으로 임명하고 저를 草芥처럼 깔보니, 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승상께 투항하러 왔습니다.
바라옵건대 채용해 주십시오.”
言未已,人報秦朗引兵在寨外,單搦鄭文交戰。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진랑이 군을 이끌고 영채 밖에서 홀로 鄭文에게 싸움을 건다고 보고하였다.
孔明曰:
「此人武藝比汝若何?」
공명이 말하였다.
“그 사람의 무예를 그대에게 비교하면 어떻소?”
鄭文曰:
「某當立斬之.」
정문이 말하였다.
“제가 당장 그를 베겠습니다.”
孔明曰:
「汝若先殺秦朗,吾方不疑.」
공명이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진랑을 죽이면 내 비로소 의심하지 않겠소.”
鄭文欣然上馬出營,與秦朗交鋒。
정문이 欣然히 말에 올라타고 영채를 나가서 진랑과 교전하러 갔다.
孔明親自出營視之。
공명이 몸소 영채를 나가서 살펴 본다.
只見秦朗挺鎗大罵曰:
「反賊盜我戰馬來此,可早早還我!」
진랑이 창을 꼬나쥐고 크게 욕하였다.
“反賊이 내 戰馬를 훔쳐 여기로 왔으니 어서 내게 돌려줘야 한다!”
言訖,直取鄭文。
말을 마치더니, 정문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文拍馬舞刀相迎,只一合,斬秦朗於馬下。
정문이 말을 박차고 칼을 휘두르며 맞붙어서 겨우 1 합에 진랑을 베어 말 아래로 떨구었다.
魏軍各自逃走。鄭文提首級入營。
위군이 각자 逃走하고, 정문이 진랑의 머리를 가지고 영채로 들어왔다.
孔明回到帳中坐定,喚鄭文至,勃然大怒,叱左右推出斬之。
공명이 군막으로 돌아와 좌정하고 정문을 불러들이고 勃然大怒하여 좌우에게 소리쳐, 그를 끌어내어 참수하라고 하였다.
鄭文曰:
「小將無罪.」
정문이 말하였다.
“소장에게 죄가 없습니다!”
孔明曰:
「吾向識秦朗;
汝今斬者,並非秦朗。
安敢欺我!」
공명이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진랑을 알고 있다.
네가 지금 목을 벤 자는, 결코 진랑이 아니다.
어찌 감히 나를 기만하느냐!”
文拜告曰:
「此實秦朗之弟秦明也.」
정문이 절하고 고하였다.
“이 자는 실은 진랑의 아우 秦明입니다.”
孔明笑曰:
「司馬懿令汝來詐降,於中取事,卻如何瞞得我過!
若不實說,必然斬汝!」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사마의가 너에게 가서 거짓으로 투항하게 하여, 중간에서 일을 이루려 하지만, 어찌 나를 속여 넘기겠느냐!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반드시 너를 처형하겠다!”
鄭文只得訴告其實是詐降,泣求免死。
정문이 어쩔 수 없이 거짓 투항임을 하소연하고 눈물 흘리며 죽음을 면해달라고 하였다.
孔明曰:
「汝既求生,可修書一封,教司馬懿自來劫營,吾便饒汝性命。
若捉住司馬懿,便是汝之功,還當重用.」
공명이 말하였다.
“네가 살고자 하니 서신을 한 봉 써서 사마의가 직접 공격하러 오게 하면, 네 목숨을 살려주겠다.
사마의를 사로잡으면 바로 너의 공이니, 나아가 마땅히 重用하겠다.”
鄭文只得寫了一書,呈與孔明。
정문이 어쩔 수 없이 서신을 한 봉 써서 공명에게 바쳤다.
孔明令將鄭文監下。
공명이 정문을 가두어 두게 하였다.
樊建問曰:
「丞相何以知此人詐降?」
樊建이 물었다.
“승상께서 무엇으로 이 자의 거짓 항복을 아셨습니까?”
孔明曰:
「司馬懿不輕用人.
若加秦朗為前將軍,必武藝高強;
今與鄭文交馬只一合便為文所殺,必不是秦朗也.
以故知其詐.」
공명이 말하였다.
“사마의는 함부로 사람을 쓰지 않소.
진랑을 전장군으로 승진시켰으면, 필시 무예가 高強할 터이오.
지금 정문과 交馬하여 겨우 1합에 정문에게 피살되니, 틀림없이 진랑이 아니었소.
이로써 그것이 거짓임을 알았소.”
眾皆拜服。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孔明選一舌辨軍士,附耳分付如此如此。
공명이 舌辨軍士 한 명을 뽑아 귀에 대고 여차여차 분부하였다.
軍士領命,持書徑來魏寨,求見司馬懿。
군사가 명을 받고, 서신을 가지고 魏寨로 곧장 가서 사마의와 만나기를 청하였다.
懿喚入拆書看畢,問曰:
「汝何人也?」
사마의가 불러들여 서신을 읽고 나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答曰:
「某乃中原人,流落蜀中。
鄭文與某同鄉。
今孔明因鄭文有功,用為先鋒。
鄭文特託某來獻書,約於明日晚間,舉火為號。
望乞都督盡提大軍前來劫寨。
鄭文在內為應.」
답하였다.
“저는 본래 중원 출신인데, 촉나라를 유랑하게 되었습니다.
정문이 저와 동향입니다.
이제 공명이 정문에게 공이 있다며 선봉으로 삼았습니다.
정문이 제게 특별히 부탁해 서신을 바치라 하며 내일 저녁에 불을 들어 신호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무쪼록 도독께서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영채를 습격하러 오십시오.
정문이 안에서 호응할 터입니다.”
司馬懿反覆詰問,又將來書仔細檢看,果然是實;
사마의가 반복해서 따져 묻고 가져온 서신을 仔細히 檢看하니, 과연 사실이었다.
即賜軍士酒食,分付曰:
「本日二更為期,我自來劫寨。
大事若成,必重用汝.」
즉시 군사에게 酒食을 내리고 분부하였다.
“오늘 2경을 기하여 내가 직접 영채를 공격하러 가겠다.
대사가 성공하면, 틀림없이 너를 중용하겠다.”
軍士拜別,回到本寨告知孔明。
병사가 작별하고 본채로 되돌아가 공명에게 告知하였다.
孔明仗劍步罡,禱祝已畢,喚王平、張嶷分付如此如此;
공명이 검을 짚고 북두성의 모양을 따라 걸으며 기도를 올린 뒤, 왕평과 장의를 불러 여차여차 분부하였다.
又喚馬忠、馬岱分付如此如此;又喚魏延分付如此如此。
또 마충과 마대를 불러 여차여차 분부하였다. 또 위연을 불러 여차여차 분부하였다.
孔明自引數十人,坐於高山之上,指揮眾軍。
공명 스스로 수십 인을 이끌고 높은 산 위에 앉아서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卻說
司馬懿見了鄭文之書,便欲引二子提大軍來劫蜀寨。
한편,
사마의는 정문의 서신을 보더니, 두 아들을 이끌고 대군을 거느리고 蜀寨를 습격하려 하였다.
長子司馬師諫曰:
「父親何故據片紙而親入重地?
倘有疏虞,如之奈何?
不如令別將先去,父親為後應,可也.」
長子 사마사가 간하였다.
“부친께서 무슨 까닭으로 한 조각 종이를 믿고 친히 重地로 들어가십니까?
만약 疏虞가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別將先去하게 함이 낫습니다. 부친께서는 뒤에서 접응하심이 옳습니다.”
懿從之,遂令秦朗引一萬兵,去劫蜀寨。懿自引兵接應。
사마의가 이를 따라, 진랑더러 병사 1만을 이끌고 가서 촉채를 기습하게 하고, 자신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接應하였다.
是夜初更,風清月朗。
이날 밤 초경에 바람은 맑고 달은 밝았다.
將及二更時分,忽然陰雲四合,黑氣漫空,對面不見。
2경 무렵에 이르러 홀연히 음산한 구름이 사방에서 합쳐지고 검은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니 얼굴을 마주하여도 보이지 않았다.
懿大喜曰:
「天使我成功也!」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공을 이루게 하는구나!”
於是人盡啣枚,馬皆勒口,長驅大進。
이에 사람은 모두 銜枚하고 말은 모두 재갈을 물려 거침없이 크게 진군하였다.
秦朗當先,引一萬兵直殺入蜀寨中,並不見一人。
진랑이 선두에 서서 군사 1만을 이끌고 곧장 촉채로 뛰어들지만,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朗知中計,忙叫退兵。
진랑이 계책에 빠졌음을 알고, 황급히 退兵하라고 외쳤다.
四下火把齊明,喊聲震地;左有王平、張嶷,右有馬岱、馬忠,兩路兵殺來。
사방에서 횃불을 일제히 밝히고 함성이 땅을 뒤흔든다. 좌측의 왕평과 장의, 우측의 마대와 마충의 兩路兵이 달려들었다.
秦朗死戰,不能得出。
진랑이 죽기로 싸우지만 탈출하지 못하였다.
背後司馬懿見蜀寨火光沖天,喊不絕聲,又不知魏兵勝負,只顧催兵接應,望火光中殺來。
뒤따르던 사마의는 蜀寨火光沖天과 喊不絕聲이나 魏兵勝負를 알지 못하여 催兵接應할 것만 생각하고 불빛 속으로 달려왔다.
忽然一聲喊起,鼓角喧天,火炮震地;左有魏延,右有姜維,兩路殺出。
갑자기 한 차례 함성이 일더니 고각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화포가 땅을 뒤흔들었다.
좌측에서 위연, 우측에서 강유가 兩路로 달려들었다.
魏兵大敗,十傷八九,四散逃奔。
魏兵이 대패해 十傷八九하고 四散逃奔하였다.
此時秦朗所引一萬兵,都被蜀兵圍住,箭如飛蝗。
이때 진랑이 이끄는 1만 군은 모두 촉군에게 포위되었는데, 화살이 메뚜기처럼 쏟아졌다.
秦朗死於亂軍之中。
진랑은 亂軍之中에서 죽었다.
司馬懿引敗兵奔入本寨。
사마의가 敗兵 이끌고 달아나 본채로 들어갔다.
三更以後,天復清朗。
3경 이후에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孔明在山頭上鳴金收軍。
공명이 산 꼭대기에서 鳴金收軍하였다.
原來三更時陰雲暗黑,乃孔明用遁甲之法;
알고 보니, 3경 때의 陰雲暗黑은 공명이 遁甲之法을 쓴 것이었다.
後收兵已了,天復清朗,乃孔明驅六丁六甲掃蕩浮雲也。
뒤에 收兵이 끝나자 하늘이 다시 맑아짐은 공명이 六丁六甲을 불러 掃蕩浮雲한 것이다.
當下孔明得勝回寨,命將鄭文斬了,再議取渭南之策。
공명이 승리를 거두고 영채로 돌아가자마자, 정문을 처형하라 명하고 다시 取渭南之策을 의논하였다.
每日令兵搦戰,魏軍只不出迎。
매일 군사들이 搦戰하게 하여도 魏軍은 出迎하지 않았다.
孔明自乘小車,來祁山前渭水東西踏看地理。
공명이 직접 小車를 타고, 기산 앞의 위수 동서쪽으로 가서 踏看地理하였다.
忽到一谷口,見其形如葫蘆之狀,內中可容千餘人;
문득 어느 谷口에 이르니 그 형상이 마치 葫蘆之狀 같아 보이는데, 그 안에 가히 1천여 인을 수용할 만하였다.
兩山又合一谷,可容四五百人;
양쪽 산이 합하여 골짜기를 이루는데, 가히 4, 5백 인을 수용할 만하였다.
背後兩山環抱,只可通一人一騎。
배후에는 양쪽 산이 둘러싸서, 겨우 사람 하나, 말 한 필 통행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孔明看了,心中大喜,問鄉導官曰:
「此處是何地名?」
공명이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鄉導官에게 물었다.
“이곳의 地名이 무엇이오?”
答曰:
「此名上方谷,又號葫蘆谷.」
“이곳 이름은 上方谷인데 葫蘆谷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孔明回到帳中,喚裨將杜叡、胡忠二人,附耳授以密計。
공명이 군막으로 돌아가서 裨將 杜叡、胡忠 두 사람을 불러서 귓속말로 密計를 주었다.
令喚集隨軍匠作一千餘人,入葫蘆谷中,製造「木牛流馬」應用;
隨軍匠作 1천여 인을 불러 모아, 入葫蘆谷中하여 ‘木牛流馬’를 제조하는 데 사용하게 하였다.
又令馬岱領五百兵守住谷口。
또한 마대에게 명하여 병사 5백을 거느리고 谷口를 지키게 하였다.
孔明囑馬岱曰:
「匠作人等,不許放出;外人不許放入。
吾還不時自來點視。
捉司馬懿之計,只在此舉。
切不可走漏消息.」
공명이 마대에게 당부하였다.
“장작인 등은 밖으로 내보내지 말고 外人도 들어오게 하지 마시오.
내가 또한 不時에 직접 가서 點視할 터이오.
사마의를 사로잡는 계책은, 오로지 이 일에 달렸소.
절대 이 소식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시오.”
馬岱受命而去。
마대가 명을 받고 떠났다.
杜叡等二人在谷中監督匠作,依法製造。
두예 등 두 사람이 谷中에서 匠作을 감독하여 법에 따라 제조하게 하였다.
孔明每日往來指示。
공명이 매일 왕래하며 지시하였다.
忽一日,長史楊儀入告曰:
「即今糧米皆在劍閣,人夫牛馬,搬運不便,如之奈何?」
어느 날 장사 양의가 들어와 고하였다.
“지금 糧米가 모두 검각에 있는데, 인부나 우마가 운반하기 불편하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孔明笑曰:
「吾已運謀多時也。
前者所積木料,并西川收買下的大木,教人製造『木牛流馬』,搬運糧米,甚是便利。
牛馬皆不水食,可以轉運,晝夜不絕.」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모략을 운용한 지 오래되었소.
앞서 쌓아둔 목재, 아울러 서천에서 수매한 큰 나무, 사람들을 시켜 제조한 목우유마가 搬運糧米에 몹시 편리할 터이오.
목우유마는 모두 마시지도 먹지도 않으니, 그것으로 轉運함에 晝夜不絕이겠소.”
眾皆驚曰:
「自古及今,未聞有『木牛流馬』之事。
不知丞相有何妙法,造此奇物?」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말하였다.
“自古及今에 『木牛流馬』之事가 있음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승상께서 무슨 묘법이 있기에 이러한 奇物을 만드십니까?”
孔明曰:
「吾已令人依法製造,尚未完備。
吾今先將造木牛流馬之法,尺寸方員,長短闊狹,開寫明白,汝等視之.」
공명이 말하였다.
“내가 이미 사람들에게 제조법에 따라 만들게 했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했소.
내 이제 먼저 造木牛流馬之法을 尺寸方員과 長短闊狹을 항목별로 써서 분명히 밝힐 테니 그대들은 보시오.”
眾大喜。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孔明即手書一紙,付眾觀看。眾將環遶而視。
공명이 즉시 손으로 종이 한 장에 써서, 사람들에게 주어 보게 하였다. 장수들이 둘러싸고 본다.
其造木牛之法云:
方腹曲脛,一腹四足。
頭入領中,舌著於腹。
載多而行少。
獨行者數十里,群行者三十里。
曲者為牛頭,雙者為牛足。
橫者為牛領,轉者為牛腳。
覆者為牛背,方者為牛腹。
垂者為牛舌,曲者為牛肋。
刻者為牛齒,立者為牛角。
細者為牛鞅,攝者為牛鞦軸。
牛御雙轅。
人行六尺,牛行四步。
人不大勞,牛不飲食。
‘목우’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네모난 배, 굽은 정강이, 한 개의 배와 네다리를 가졌다.
머리는 목에 들어가고, 혀는 배에 붙인다.
많이 적재하면 걸음이 더디다.
홀로 가면 수십 리를 가고, 떼를 지어 가면 삼십 리를 갔다.
굽은 것은 牛頭이고, 쌍을 지은 것은 牛足이다.
가로지른 것은 牛領이며, 구르는 것은 牛腳이다.
덮은 것은 牛背이며, 모난 것은 牛腹이다.
드리운 것은 牛舌이요, 굽은 것은 牛肋이다.
새긴 것은 牛齒요, 세운 것은 牛角이다.
가는 것은 牛鞅이요, 비끌어맨 것은 牛鞦軸(코뚜레)이다.
소는 끌채 한 쌍을 끈다.
사람이 6척을 걸을 때, 소는 4보를 걷는다.
사람은 크게 수고롭지 않고, 소는 마시거나 먹지 않는다.
造流馬之法云:
<肋長三尺五寸,廣三寸,厚二寸五分;左右同。
前軸孔分墨去頭四寸,徑中二寸。
前腳孔分墨去頭四寸五分,長一寸五分,廣一寸。
前杠孔去前腳孔分墨二寸七分,孔長二寸,廣一寸。
後軸孔去前杠孔分墨一尺五寸,大小與前同。
後杠孔去後腳孔分墨一寸二分。
後杠孔分墨四寸五分。
前杠長一尺八寸,廣二寸,厚一寸五分。
後杠與等。
板方囊二枚,厚八分,長二尺七寸,高一尺六寸五分,廣一尺六寸。
每枚受米二斛三斗。
從上杠孔去肋下七寸,前後同。
上杠孔去下杠孔分墨一尺三寸,孔長一寸五分,廣七分,八孔同。
前後四腳廣二寸,厚一寸五分。
形制如象,靬長四寸。徑面四寸三分。
孔徑中三腳杠長二尺一寸,廣一寸五分,厚一寸四分。>
유마를 만드는 법은 이렇다.
<늑골은 길이가 3척 5촌, 너비가 3촌, 두께가 2척 5푼이다. 좌우가 같다.
앞 굴대의 구멍은 기준선에서 머리까지 4촌, 지름은 2촌이다.
앞다리의 구멍은 기준선에서 머리까지 4촌 5푼, 길이는 1촌 5푼, 너비는 1촌이다.
앞가로대 구멍은 앞 다리의 구멍 기준선까지 2촌 7푼, 구멍 길이는 2촌, 너비는 1촌이다.
뒷굴대의 구멍은 앞 가로대의 구멍까지 1척 5촌, 대소大小는 앞과 같다.
뒷가로대 구멍은 뒷다리의 구멍 기준선까지 1촌 2푼이다
뒷가로대 구멍은 구멍 기준선에서 4촌 5푼이다
앞 가로대 길이는 1척 8촌, 너비는 2촌, 두께는 1촌 5푼이다.
뒷 가로대도 이와 같다.
나무 적재함은 2매이며, 두께는 8푼, 길이는 2척 7촌 , 높이는 1척 6촌 5푼, 너비는 1척 6촌이다.
적재함마다 쌀 2각 3두를 수납하였다.
위 가로대의 구멍에서 갈빗대 아래까지 7촌이다. 앞뒤가 같다.
위 가로대 구멍은 아래 가로대 구멍까지 기준선에서 1척 3촌이고, 구멍 길이는 1촌 5푼, 너비는 7푼이다. 구멍 여덟 개가 같다.
앞 뒤 네 다리 너비는 2촌, 두께는 1촌 5푼이다.
형상은 코끼리와 같고, 창의 길이는 4촌, 지름은 4촌 3푼이다.
구멍 안에 세 다리의 가로대가 있으며, 길이는 2척 1촌, 너비는 1촌 5푼, 두께는 1촌 4푼이다.>
眾將看了一遍,皆拜服曰:
「丞相真神人也!」
장수가 쭉 보더니 모두 拜服하여 말하였다.
“승상은 참으로 神人이십니다!”
過了數日,木牛流馬皆造完備,宛然如活者一般;上山下嶺,各盡其便。
며칠이 지나자 목우유마가 모두 건조되고 완비되어 宛然히 살아 있는 것과 한가지였다. 산을 오르거나 고개를 내려가거나 모두 편리하기 그지없었다.
眾軍見之,無不欣喜。
군사들이 이를 보고 欣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孔明令右將軍高翔,引一千兵駕著木牛流馬,自劍閣直抵祁山大寨,往來搬運糧草,供給蜀兵之用。
공명이 우장군 고상에게 명하여 병사 1천을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고 검각에서 곧장 기산의 본진까지 오가며 搬運糧草하여 蜀兵之用으로 공급하도록 하였다.
後人有詩贊曰:
후인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劍關險峻驅流馬,斜谷崎嶇駕木牛。
後世若能行此法,輸將安得使人愁?>
<검각의 험준한 곳에서 유마를 몰고, 야곡의 崎嶇한 곳에서 목우를 몰았네.
후세에 능히 이런 방법을 행한다면, 짐을 실어나르는 것을 어찌 근심하리오?>
卻說
司馬懿正憂悶間,忽哨馬報說:
「蜀兵用木牛流馬轉運糧草。
人不大勞,牛馬不食.」
한편,
사마의가 한창 憂悶하는데 哨馬가 보고하였다.
“촉병이 목우유마를 이용해서 糧草를 轉運합니다.
사람들은 크게 피로하지 않거니와 목우유마는 먹지 않습니다.”
懿大驚曰:
「吾所以堅守不出者,為彼糧草不能接濟,欲待其自斃耳。
今用此法,必為久遠之計,不思退矣。
如之奈何?」
사마의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굳게 수비하며 출전하지 않음은 그들 군량이 제대로 오지 않아서 스스로 피폐해지기를 기다리려 할 뿐이다.
이제 이런 방법을 쓰니 틀림없이 久遠之計로 삼고, 退兵을 생각하지 않는구나.
어찌해야 하겠나?”
急喚張虎、樂綝二人分付曰:
「汝二人各引五百軍,從斜谷小路抄出;
待蜀兵驅過木牛流馬,任他過盡,一齊殺出;
不可多搶,只搶三五匹便回.」
급히 장호와 악림 두 사람을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각각 병사 5백을 거느리고, 야곡의 지름길로 抄出하시오.
촉병이 목우유마를 몰고 오면 그들이 모두 지나가도록 두었다가 일제히 공격하시오.
많이 뺏지 말고 三五匹만 빼앗아 돌아오시오.”
二人依令,各引五百軍,扮作蜀兵,夜間偷過小路,伏在谷中,果見高翔引兵驅木牛流馬而來。
두 사람이 명령을 따라 각각 병사 5백을 이끌고 扮作蜀兵하고 야간에 지름길을 몰래 지나서 골짜기에 매복하였다. 과연 고상이 이끄는 군사가 목우유마를 몰고 왔다.
將次過盡,兩邊一齊鼓譟殺出。
모두 지나갈 즈음 양쪽에서 일제히 북을 두드리며 달려 나왔다.
蜀兵措手不及,棄下數匹。張虎、樂綝歡喜驅回本寨。
촉병이 措手不及하고 몇 필을 버리니, 장호와 악림이 기뻐하며 본채로 몰고 돌아갔다.
司馬懿看了,果然進退如活的一般,乃大喜曰:
「汝會用此法,難道我不會用!」
사마의가 보니 과연 進退가 살아 있는 것과 같아서, 몹시 기뻐하며 말하였다.
“너희가 이런 방법을 쓸 줄 안다면, 나라고 이런 방법을 쓰지 못하랴!”
便令巧匠百餘人,當面拆開,分付依其尺寸長短厚薄之法,一樣製造木牛流馬。
곧 巧匠 1백여 인에게 지시하여 면전에서 분해하고, 그 치수, 길이, 두께의 법도에 맞추어 一樣으로 목우유마를 제조하게 분부하였다.
不消半月,造成二千餘隻,與孔明所造者一般法則,亦能奔走;
보름이 지나지 않아 2천 개를 공명이 만든 것과 같은 법칙으로 만드니 역시 달릴 수 있었다.
遂令鎮遠將軍岑威,引一千軍驅駕木牛流馬,去隴西搬運糧草,往來不絕。
마침내 鎮遠將軍 岑威에게 명하여 병사 1천을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고 농서 지역으로 가서 搬運糧草하게 하니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魏營軍將無不歡喜。
魏營의 軍將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卻說
高翔回見孔明,說魏兵搶奪木牛流馬各五六匹去了。
孔明笑曰:
「吾正要他搶去。
我只費了幾匹木牛流馬,卻不久便得軍中許多資助也.」
한편,
고상이 돌아가서 공명을 뵙고 魏兵이 목우유마 각각 대여섯 필을 搶奪해 갔음을 말하니,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그들이 약탈해 가기를 기다리던 참이오.
우리는 겨우 몇 필의 목우유마가 들었을 뿐이지만, 머지않아 군중에 허다하게 물질적 도움이 될 터이오.”
諸將問曰:
「丞相何以知之?」
장수들이 물었다.
“승상께서 어찌 아십니까?”
孔明曰:
「司馬懿見了木牛流馬,必然倣我法度,一樣製造。
那時我又有計策.」
공명이 말하였다.
“사마의가 목우유마를 보면 틀림없이 내 法度를 모방하여 똑같이 제조할 터이오.
그때는 내게 또한 계책이 있소.”
數日後,人報魏兵也會造木牛流馬,往隴西搬運糧草。
며칠 뒤 보고하기를, 위병도 목우유마를 만들 줄 알고 농서로 가서 搬運糧草한다고 하였다.
孔明大喜曰:
「不出吾之算也.」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 예측을 벗어나지 못하구나!”
便喚王平分付曰:
「汝引一千兵,扮作魏人,星夜偷過北原,只說是巡糧軍,混入彼運糧軍中,將護糧之人,盡皆殺散;卻驅木牛流馬而回,逕奔過北原來。
此處必有魏兵追趕。
汝便將木牛流馬口內舌頭扭轉,牛馬就不能行動,汝等竟棄之而走。
背後魏兵趕到,牽拽不動,扛抬不去.
吾再有兵到,汝卻回身再將牛馬舌扭過來,長驅大行,魏兵必疑為怪也.」
곧 왕평을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는 병사 1천을 이끌고 扮作魏人하고 밤중에 북원으로 몰래 침투한 후, 巡糧軍이라고 말하여 저들의 運糧軍에 섞여 들어가서 護糧之人을 모조리 殺散하시오.
목우유마를 몰고 되돌아오되 곧바로 북원을 통과해 오시오.
이곳에서 틀림없이 魏兵이 뒤쫓을 터이오.
그대가 목우유마 입속의 혀끝을 비틀어 돌리면 목우유마는 움직이지 못할 터이니, 그대는 목우유마를 버리고 달아나시오.
뒤에서 魏兵이 뒤쫓아 와도 牽拽不動이요 扛抬不去일 터이오.
내가 군을 이끌고 오면 그대는 몸을 돌려 다시 목우유마의 혀를 비틀어 돌려 오되, 거침없이 몰고 오면 위병이 필시 의심하며 괴이하게 여길 터이오.”
王平受計引兵而去。
왕평이 계책을 받고 군을 이끌고 갔다.
孔明又喚張嶷分付曰:
「汝引五百軍,都扮作六丁六甲神兵,鬼頭獸身,用五彩塗面,妝作種種怪異之狀;
一手執繡旗,一手仗寶劍。
身挂葫蘆,內藏煙火之物,伏於山傍。
待木牛流馬到時,放起煙火,一齊擁出,驅牛馬而行。
魏人見之,必疑是神鬼,不敢來追趕.」
공명이 다시 장의를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는 병사 5백을 이끌고 모두 扮作六丁六甲神兵하고 鬼頭獸身하고, 用五彩塗面하고, 種種怪異之狀으로 꾸미시오.
한 손은 繡旗를 들고, 한 손은 보검을 잡게 하시오.
몸에는 葫蘆를 차고 그 안에 煙火之物을 채워, 산기슭에 매복하시오.
목우유마가 오기를 기다려 放起煙火하고 일제히 몰려나가서, 목우유마를 몰고 가시오.
魏人이 그것을 보고 필시 神鬼라고 의심하여 감히 뒤쫓지 못할 터이오.”
張嶷受計引兵而去。
장의가 계책을 받고 군을 이끌고 갔다.
孔明又喚魏延、姜維分付曰:
「汝二人同引一萬兵,去北原寨口接應木牛流馬,以防交戰.」
공명이 또 강유와 위연을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함께 병사 1만을 이끌고 북원의 영채 입구로 가서, 목우유마를 몰고 오는 군대를 도와 교전을 막으시오.”
又喚廖化、張翼分付曰:
「汝二人引五千兵,去斷司馬懿來路.」
다시 요화와 장익을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병사 5천을 이끌고, 사마의가 來路를 차단하시오.”
又喚馬忠、馬岱分付曰:
「汝二人引二千兵去渭南搦戰.」
다시 마충과 마대를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 두 사람은 병사 2천을 이끌고 위수 남쪽으로 가서 싸움을 거시오.”
六人各各遵令而去。
여섯 사람이 각각 명령을 받고 떠났다.
且說
魏將岑威引軍驅木牛流馬,裝載糧草。
한편,
魏將 잠위는 군을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아가는데 糧草를 싣고 있었다.
正行之間,忽報前面有兵巡糧。
행군하고 있는데 보고하기를, 앞쪽에서 병사들이 군량 호송을 순시한다고 하였다.
岑威令人哨探,果是魏兵,遂放心前進。
잠위가 사람을 보내 哨探하니, 과연 위병인지라 마침내 방심하고 전진하였다.
兩軍合在一處。忽然喊聲大震,蜀兵就本隊裏殺起,大呼:
「蜀中大將王平在此!」
兩軍이 한 곳에서 만나는데, 갑자기 함성이 크게 울리며 촉병이 대열에서 뛰쳐나오며 크게 외쳤다.
“촉의 대장 왕평이 여기 있다!”
魏兵措手不及,被蜀兵殺死大半。
魏兵은 措手不及인데 蜀兵이 태반을 죽여버렸다.
岑威引敗兵抵敵,被王平一刀斬了。餘皆潰散。
잠위가 引敗兵抵敵이나 왕평이 一刀에 베니 나머지는 무너져 달아났다.
王平引兵盡驅木牛流馬而回。
왕평이 군을 이끌고 목우유마를 모조리 몰고 돌아왔다.
敗兵飛奔報入北原寨內。
패잔병이 북원의 寨內로 달려가 알렸다.
郭淮聞軍糧被劫,疾忙引軍來救。
곽회는 군량미를 빼앗겼음을 듣고 황급히 군을 이끌고 구원하러 왔다.
王平令兵扭轉木牛流馬舌頭,俱棄於道中,且戰且走。
왕평이 병사들을 시켜 목우유마의 혀끝을 비틀어 돌리고, 길 위에 모두 버린 채 싸우다 달아나기를 되풀이하였다.
郭淮教且莫追,只驅回木牛流馬。
곽회가 일단 추격을 멈추고 목우유마를 몰고 돌아가라 지시하였다.
眾軍一齊驅趕,卻哪裏驅得動?
병사들이 일제히 몰고 가려 하지만 어찌 몰아서 움직이겠는가?
郭淮心中疑惑。
곽회가 마음 속으로 의혹에 빠졌다.
正無奈何,忽鼓角喧天,喊聲四起,兩路兵殺來,乃魏延、姜維也。
어쩔 줄 모르는데, 갑자기 鼓角喧天하고 喊聲四起하더니 兩路兵殺來하는데 바로 강유와 위연이었다.
王平復引兵殺回。
왕평도 다시 군을 이끌고 되돌아 달려왔다.
三路夾攻,郭淮大敗而走。
3로에서 협공하니 곽회가 大敗하여 달아났다.
王平令軍士將牛馬舌頭,重復扭轉,驅趕而行。
왕평이 병사에게 목우유마의 혀끝을 또다시 비틀어 돌리게 하고 몰고 갔다.
郭淮望見,方欲回兵再追,只見山後煙雲突起,一隊神兵擁出,一個個手執旗劍,怪異之狀,擁護木牛流馬,如風擁而去。
곽회가 멀리서 보고 군대를 되돌려 다시 뒤쫓으려는데, 산 뒤에서 연기와 구름이 치솟아 오르며, 한 무리 신병이 몰려나왔다. 하나하나가 손에 깃발과 검을 들고, 괴이한 모습으로, 목우유마를 둘러싸고 호위하며 바람처럼 떠나갔다.
郭淮大驚曰:
「此必神助也!」
곽회가 깜짝 놀라 말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신의 도움이구나!”
眾軍見了,無不驚畏,不敢追趕。
병사들이 보고 놀라지 않는 이가 없어 감히 뒤쫓지 못하였다.
卻說
司馬懿聞北原兵敗,急自引軍來救。
한편,
사마의는 북원의 군대가 패전함을 듣고, 서둘러 직접 군을 이끌고 구원하러 왔다.
方到半路,忽一聲炮響,兩路兵自險峻處殺出,喊聲震地。
겨우 반쯤 오는데, 갑자기 포성이 한차례 울리더니, 양쪽에서 병사들이 험준한 곳에서 달려 나오고 함성이 땅을 뒤흔들었다.
旗上大書:
「漢將張翼廖化」。
깃발에 크게 ‘漢將張翼廖化’ 라고 쓰여 있었다.
司馬懿見了大驚。魏軍著慌,各自逃竄。
사마의가 보고 깜짝 놀라고, 위병도 허둥지둥 제각기 어지러이 달아났다.
正是:
路逢神將糧遭劫,身遇奇兵命又危。
상황이 이러하다:
길에서 神將을 만나 군량을 빼앗겼는데, 奇兵과 마주쳐 목숨도 위태롭구나
未知司馬懿怎地抵敵,且看下文分解。
사마의가 어떻게 대적할까? 다음 글의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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