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인/聖雄 李舜臣

성웅 이순신 - 1.어린 시절

耽古樓主 2023. 2. 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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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생가터 표지석

 

1.어린 시절

1545 428 한성 건천동에서 이정(李貞) 초계 변씨(草溪 卞氏)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건천동에서 보냈고, 외가인 아산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이정은 자신의 네 아들에게 고대 중국의 성인으로 알려진 복희요 임금순 임금우 임금의 이름자를 붙여 주었고, 셋째 아들이었던 그에게는 순신(舜臣)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증조부 이거는 정언, 이조좌랑, 통덕랑 수()사헌부장령, 1494년 연산군이 세자시절 세자시강원보덕 등을 지내고, 연산군 즉위 초에는 통훈대부(3품 당하관)로 승진, 장악원정, 한학교수를 지냈으며, 연산군 초에 춘추관편수관으로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순천도호부사, 행호군을 거쳐 최종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 이백록은 중종 때 평시서봉사를 지냈다. 그러나 할아버지 이백록은 조광조와 가깝게 지내던 중 1519 조광조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입고, 이후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 이정은 관직에 나가지 않아 그의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

뒤늦게 무관이 된 아버지 이정은 음서로 관직에 올라 1573(선조 6) 병절교위를 거쳐 1576(선조 9) 5품 창신교위를 지내기도 했다.

어머니 초계변씨는 생원 변함의 딸이었다.

이순신과 한 동네에서 살았던 벗이기도 한 류성룡징비록에서 어린 시절의 이순신에 대해,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 때면 나무를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하곤 했으며, 류성룡의 성격을 거슬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눈을 쏘려고 하였으므로, 어른들도 그를 꺼려 감히 군문(軍門) 앞을 지나려고 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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