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백련초해(百聯抄解)

백련초해(百聯抄解) 해설

구글서생 2023. 6. 12. 05:18
반응형

백련초해(百聯抄解) 해설

 

 

근대 이전 중세에는 한시(漢詩)가 개인의 출세를 위한 방편이고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과거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필수 과목으로 한시가 들어 있었기에 옛날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한시를 익혀야 했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 입지 또한 갖추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옛날 어린이들은 글자를 익히자마자 문장을 익힌 옛날 교학(敎學) 과정으로 볼 때, ≪천자문≫을 익힌 바로 뒤부터 ≪동몽선습≫, ≪백련초해≫ 등을 학습했던 것이다.

 

≪백련초해≫는 바로 조선 시대 하서 김인후(1510~1560)가 편찬한 몽학(蒙學) 교재이자 한시 학습 입문서다.

 

조선시대 몽학 교재에는 자학류(字學類)와 문학류(文學類)가 있는데 ≪백련초해≫는 문장 학습류에 속하는 책이다.1)

1) 조기영, 동몽선습 외지만지, 2008), 9:

조선시대 초학 교재를 용도에 따라 천자문·유합·훈몽자회등과 같은 문자 교육용 교재, 계몽편·동몽선습·격몽요결·명심보감등 심성 교육용 교재, 당음·연주시·우주두율·염락풍아·고문진보등과 같은 제술 및 한시 교재로 나눌 수도 있다.

 

김인후의 ≪백련초해≫가 나오기 전에는 주로 중국의 당나라 시나 송나라 시를 모아 엮은 책을 구입해 학습했다. 그리하여 ≪두시언해≫·≪고문진보(古文眞寶)≫ 등을 비롯해 ≪당시고취(唐詩鼓吹)≫·≪당음(唐音)≫·≪당시품휘(唐詩品彙)≫·≪연주시격(聯珠詩格)≫ ≪염락풍아(濂洛風雅)≫ 등을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 교재들은 어린 초학자들이 배우기에 너무 방대하고 쉬운 것들이 아니라서 교학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이에 김인후가 어린 아이들에게 한자와 문장을 가르치고 한시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七言詩 가운데 연구(聯句) 100개를 뽑아 언해를 붙여 만들게 됐다.

 

≪백련초해≫는 조선조 대표적인 한시 교재로서 연구(聯句)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연구를 통한 작시 교육이란 이른바 '대구 놓기'와 같은 전통적인 작시 방식과 같은 것으로 두 개의 시구를 기본 구조로 해 리듬이 완성되는 한시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2)

따라서 ≪백련초해≫에 수용된 시구 중에는 실제로 김인후 이전 시대부터 이미 한시 교육용으로 널리 활용됐던 것들이 많이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3)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백련초해≫ 이본에는 목판본 9종과 필사본 3종 등 모두 12종이 있다.4)

2) 조창록, <조선조 한시 교육의 실제와 백련초해>(대동한문학21, 2004), 355~356.

3) 위의 책, 346.

4) 최범훈, <백련초해(동경대본)의 국어학적 연구>(경기대학논문집13, 1983. 12), 11~15:

손희하, <백련초해의 어휘의미론적 고찰>(<어문논집> 10·11, 정산정익섭박사정년기념특집,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1989), 225.

 

이는 ≪백련초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학습됐던 교재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기록으로 볼 때, ≪백련초해≫는 조선 명종 18년(1563)에 처음으로 판각됐으며,5) 편찬자가 김인후라는 견해와 김시습이라는 견해가 있다.6)

5) 박은용, <백련초해 해제> (대구대학국문학회, 1960), 29쪽에 의하면 일본판본에 가정 계해년(嘉靖癸亥年), 1563년에 간행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6) 손희하, 앞의 책, 225.

 

그러나 ≪백련초해≫가 필암서원을 중심으로 판각되고 ≪하서전집≫의 속집 가운데 수록되어 있는 점 등을 들어 김인후를 편찬자로 보았으며, 특히 이병기본 끝부분에 구체적으로 김인후가 선집(選集)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자연스럽게 김인후로 단정하게 됐다.7)

김인후는 인종이 세상을 떠난 후 고향으로 내려와 순창 대각산 아래에 훈몽재(訓蒙齋)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백련초해≫를 가르쳤다고 한다.8)

7) 정익섭, <백련초해고>(연민이가원선생칠질송수기념논총, 정음사, 1987. 4), 107 108.

8) 정익섭, <백련초해의 편찬자고>(국어국문학연구> 15, 춘강유재영박사화갑기념논총, 이회문화사, 1992. 9), 968.

 

따라서 ≪백련초해≫를 김인후가 살아 있을 때 판각했다고 볼 수도 있으며,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가 김인후가 죽은 뒤에 판각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아직까지 김인후가 생존할 당시에 판각됐다는 기록은 없다. 신춘자는 신흠이 남긴 필적을 판각한 것에 의거해 광해군 4년(1612)에 나주목사 박동설(1564~1622)에 의해 판각된 것으로 보았다.9)

또 김용숙은 ≪백련초해≫언해본을 광해군 2년(1610)에 판각해 필암서원에 보관했다고 주장했다. 10)

9) 신춘자, 백련초해(동국문화사, 1980. 1), 13~16.

10) 김용숙, <백련초해(필암서원, 2003. 6.), 3.

 

≪백련초해≫의 이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판본이라고 추정되는 일본 도쿄대 소장본은 한자 하나하나에 뜻과 음을 그 글자 아래에 달고 한 연(聯)이 끝나면 그 연구(聯句)의 주해를 붙였다.11)

박은용은 그 다음으로 박은용본, 이병기본, 송광사본 등의 순서로 오래된 것으로 보았고,12)

11) 박은용, 앞의 책, 28: 도쿄대 소장본은 처음에는 동경제대 소장본이라 했는데 뒤에 동경대본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본 책에서는 도쿄대본이라 부른다.

12) 박은용, 위의 책, 28.

 

정익섭은 가장 오래되고 정제된 ≪백련초해≫의 판본은 도쿄대본과 필암서원본뿐이라고 보았다. 13)

또 신춘자는 철자의 통일성이 없고 방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도쿄대본이 필암서원본보다 판각 시기가 앞선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냈다.14)

그렇지만 필암서원본에는 99연밖에 없어 도쿄대본이나 박은용본에 비해 자료적 가치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15)

13) 정익섭, <백련초해의 편찬자고>, 961.

14) 신춘자, 앞의 책, 14~15.

15) 최범훈은 책 제목의 새김인 "온갖 글귀 사긴 거시라"를 한 행으로 잡았기 때문에 생긴 착오라고 보았다.

 

또한 도쿄대본 ≪백련초해≫에는 한자마다 음과 훈이 달려 있어 교육적 가치가 높은 데 비해 필암서원본이나 박은용본에는 독음만 붙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도쿄대본≪백련초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한시 공부는 물론 기초적인 한자공부까지 다지게 하는 장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백련초해≫는 첫째로 몽학 교재로서 중세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생명성과 생동감을 관찰하며 한문을 익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는 점에서 교육학적 가치가크며, 둘째로 정제된 시어와 균형 있는 대련(對聯)과 오묘한 함축미와 그윽한 상상력 등을 통해 우리나라 시학 발전과 시사 전개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국문학적 가치가 크며, 셋째로 16세기에 나온 언해본이라는 점에 근거할 때 중세국어의 양상을 고찰할 수 있는 국어학적 가치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16)

16) 정익섭, <백련초해고>(<연민이가원선생칠질송수기념논총, 정음사, 1987. 4), 114~117쪽 참조.

 

본 ≪백련초해≫에서는 ≪백련초해≫ 이본 가운데 판본이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도쿄대본을 저본으로 해 필암서원본과 박은용본17) 등을 대조해 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기존의 ≪백련초해≫ 번역본과는 달리 전체 체제를 번역문, 한문 원문, 한자풀이, 원본 언해, 참고 자료 등 다섯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먼저 현대어 번역은 언해의 내용을 참고해 오늘날의 어감에 맞게 번역했으며, 한자 풀이는 음과 훈을 원문 내용을 따르되 의미가 모호하고 어색한 고어는 현대어로 고쳤다. 언해 부분은 ≪백련초해≫에 실려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실어 번역문과 비교해 볼 수 있게 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참고 자료 부분에서는 연구(聯句)의 출처를 밝히고, 출처를 밝힐 수 없는 것은 동일한 시어 표현이나 유사한 시상 전개를 보인 작품들을 소개해 ≪백련초해≫의 영향수수 관계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그리하여 본 ≪백련초해≫는 한자·한문 학습에 도움이 되는 교재가 될 뿐 아니라 한시 공부의 입문 및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 믿는다.

17) 박은용본(朴恩用本)국어국문학자료> 1(대구대학 국어국문학회, 1960)에서 소개한 백련초해를 말하며, 일명 일사본(一蓑本)이라고도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