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인/홍의장군 곽재우

창녕화왕산성(昌寧火旺山城)

耽古樓主 2023. 3. 4.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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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성

 


1. 정의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火旺山)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석축 성곽. 산성. 사적.

2. 내용

창녕의 진산(鎭山)인 화왕산의 험준한 북쪽 바위와 남쪽 봉우리 사이에 있는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넓은 안부(鞍部)를 돌로 둘러싼 산정식(山頂式) 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2.7인데, 앞면과 뒷면이 모두 모난 자연석과 가공석을 단면 사다리꼴로 쌓았다.
동쪽과 서쪽 2곳에 성문을 두었는데, 서문은 거의 허물어졌지만 너비 1m, 높이 1.5m 가량의 큰 돌을 정연하게 쌓은 동문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동문 아래쪽에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 전설이 전하는 작은 연못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 성을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태종실록(太宗實錄)1410(태종 10) 2월에 화왕산성을 비롯하여 경상도와 전라도의 중요한 산성들을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전한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화왕산석성의 둘레는 1,217보이고, 성 안에는 샘 9, 3,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산성은 이미 허물어진 성곽을 고쳐 쌓은 것이므로, 원래의 성곽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물론 신라가 이곳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나 뚜렷한 이유가 없으므로, 오히려 빛벌가야非火伽倻의 옛 성이라고 전하는 창녕 지역의 전설이 더 믿을 만하다고 하겠다.

곧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였으므로, 빛벌가야가 서부 경남지방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에 대비하여 견고하게 산성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화왕산성이 성종 때 폐허화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군사상 요충지이므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는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영남 일대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당시 곽재우가 성곽을 고쳐 쌓았는데, 임진왜란 뒤에도 한두 차례 수리되어, 현재까지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창녕화왕산성(昌寧火旺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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