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平文集後序(왕평보문집후서)-陳師道(진사도)
歐陽永叔, 謂梅聖兪曰:
“世謂詩能窮人, 非詩之窮, 窮則工也.”
구양수가 梅堯臣을 평하여 말하였다.
“세상에서는 말하기를,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고 하나 시가 궁하게 만듦이 아니라 궁하면 시를 잘 짓게 되는 것이다.”
▶ 歐陽永叔(구양영숙) : 歐陽修. 송대의 문인으로 蘇軾·王安石 등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작자약전〉 참조.
▶ 梅聖兪(매성유) : 梅堯臣. 자가 聖兪. 시를 특히 잘 지었으나 벼슬은 尙書都官員外郞에서 그치고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았다. 시의 平淡을 주장하였고, 구양수의 인정을 받아 宋詩의 개척자적 역할을 하였다.
▶ 詩能窮人(시능궁인) :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할 수 있다. 이 말은 구양수가 쓴 《梅聖兪集》 서문에 보이는 유명한 구절이다.
聖兪以詩名家, 仕不前人, 年不後人, 可謂窮矣.
매요신은 시의 名家였으나, 벼슬은 남보다 앞서지 못하고 나이는 남보다 적지 않았으니, 궁한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其同時有王平甫者, 臨川人也.
그와 같은 시대에 王平甫란 사람이 있었는데 臨川 사람이다.
▶ 王平甫(왕평보) : 王安國. 평보는 자이며 王安石의 아우. 성격이 바르고 꼿꼿하여 형의 정치개혁을 반대하였고, 또 형에게 기대지 않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 臨川(임천) : 지금의 江西省에 있던 고을 이름.
年過四十, 始名薦書, 群下士, 歷年未幾, 復解章綬, 歸田里, 其窮甚矣.
나이 사십이 넘어서 비로소 이름을 추천장에 올려 낮은 관리에 끼었다가,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벼슬이 해제되어 고향 마을로 돌아왔으매 그의 궁함이 심하였다.
▶ 名薦書羣下士(명천서군하사) : 이름이 추천서에 낮은 관리로 올라 천거되다. 下士는 낮은 관리를 뜻함.
▶ 解章綬(해장수) : 도장을 매다는 끈을 풀다. 옛날 관리들은 도장을 허리에 매달고 있었으므로 벼슬자리를 내놓음을 뜻함.
而文義蔚然, 又能於詩.
문장은 뜻이 아름다웠고 또 시에도 능하였다.
▶ 蔚然(울연) : 무성한 모양. 글의 文彩가 있는 모양.
惟其窮愈甚, 故其得愈多, 信所謂人窮而後工也.
그의 곤궁이 더욱 심해지매 그의 문학적 소득은 더욱 커졌으니, 진실로 이른바 '사람이 궁해진 뒤에야 글을 잘 짓게 된다.'이겠다.
▶ 兪(유) : ~할수록 더욱 ~하다.
雖然天之命物, 用之不全, 實者不華, 淵者不陸, 物之不全, 物之理也.
비록 그러하나 천지가 사물에 성품을 부여함에, 그 사용을 온전하게 하지 않아서, 충실한 것은 화려하지 않고 깊이 잠긴 것은 뭍에 드러나지 않으니, 만물이 완전하지 않음이 만물의 이치인 것이다.
▶ 命物(명물) : 만물에 명하다. 만물에 품성을 부여함.
盡天下之美, 則於富貴, 不得兼而有也, 詩之窮人, 又可信矣.
천하의 좋은 점을 다 가지고도 부귀까지 아울러 가지지는 못하니,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함도 믿어야 하겠다.
方平甫之時, 其志抑而不伸, 其才積而不發, 其號位勢力, 不足動人. 而人聞其聲, 家有其書, 旁行於一時, 而下達於千世.
왕안국의 당시에 그 뜻을 눌러두고 펴보지 못하고 그 재능을 쌓아둔 채 펴지 못하여, 명성과 지위와 세력이 사람들을 움직이기에 부족하였으나, 사람들이 그의 명성을 듣고 집에 그의 글을 가져서 한때 널리 유행하였으니 아래로 천 세대에 도달할 터이다.
▶ 號位(호위) : 명성과 지위.
▶ 旁行(방행) : 널리 행하여지다.
▶ 達(달) : 통달하다. 잘 알려짐.
雖其怨敵, 不敢議也, 則詩能達人矣, 未見其窮也 .
비록 그의 원수라 할지라도 감히 그를 이의를 달지 못할 터이니, 시는 사람을 현달하게 할 수 있으나 그 곤궁은 알지 못한다.
夫士之行世, 窮達不足論, 論其所傳而已.
선비가 行世함에 窮達은 논하기에 부족하고, 그가 전하는 바를 논할 따름이다.
▶ 所傳(소전) : 전하여짐. 여기서는 주로 문장을 가리킨다.
平甫孝悌于家, 信于友, 勇於義而好仁, 不特文之可傳也.
왕안국은 집안에서는 孝悌하고 붕우에게 미덥고, 의로움에는 용감하고 仁을 좋아하매, 단지 문장만을 전해서는 안 된다.
向使平甫用力于世, 薦聲詩于郊廟, 施典策於朝廷, 而事負其言, 後戾其前, 則幷其可傳而棄之. 平生之學, 可謂勤矣; 天下之譽, 可謂盛矣. 一朝而失之, 豈不哀哉?
가령, 왕안국이 세상일에 힘을 써서 郊廟에서는 詩歌를 연주하며 제사를 돕고, 조정에서는 국법과 왕명을 시행하더라도, 처사가 그의 말과 어긋나고 뒤와 앞이 어그러진다면, 그가 전하는 것을 아울러서 버릴 터이매, 평소의 학문에 부지런하였다고 할 만하고 천하의 명예가 융성하다고 할 만한데, 하루아침에 그것을 잃으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 聲詩(성시) : 樂歌.
▶ 郊廟(교묘) : 郊는 천자가 하늘에 제사지냄. 廟는 종묘에서 조상들을 제사지냄.
▶ 典策(전책) : 나라의 법과 임금의 命.
南豊先生, 旣叙其文, 以詔學者, 先生之沒, 彭城陳師道, 因而伸之, 以通于世.
南豊先生께서 그의 글에 서문을 써서 학자에게 사실을 알려주었으나, 선생께서 돌아가셨기에 彭城의 陳師道가 그것을 근거로 설명을 덧붙여 세상에 알려지게 하려 한다.
▶ 南豐先生(남풍선생) : 증공. 진사도의 스승이며 古文의 대가. 앞 〈상임수주서〉에도 보임.
▶ 詔(조) : 고하다. 알려주다.
▶ 彭城(팽성) : 지금의 江蘇省 銅山縣, 진사도의 고향임.
誠愚不敏, 其能使人後其所利而隆其所棄者耶?
진실로 어리석고 불민한데 어찌 사람들이 그에게 이득이 되는 바를 뒤로 미루고 그가 버리는 바를 존중하게 할 수가 있겠는가?
▶ 隆(융) : 높히다. 존중하다.
因先生之言, 以致其志, 又以自勵云爾.
선생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나타내고 또 그럼으로써 자신을 勉勵하기가 이와 같다.
해설
王安石의 동생 安國의 문집 앞, 曾鞏의 서문 뒤에 작자가 덧붙여 쓴 서문이다.
왕안국의 시와 글의 특징뿐 아니라 그의 사람됨도 짧은 글 중에 잘 드러나 있다.
더욱이 왕안국의 형은 당시에 군림하던 유명한 정치가요 문학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에 대하여는 한마디 언급도 없음이 두드러진다. 글을 쓴 진사도도 왕안국과 같은 깨끗함과 강직함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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