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록
아래 부록은 成百曉 선생의 所作임을 밝혀 둡니다. 선생님의 고전을 널리 읽히려는 높은 뜻을 추앙합니다.
論語集註에 대하여
本書는 《論語》 篇과 朱子의 集註를 國譯한 것이다.
《論語》는 孔子의 言行 및 제자들과의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儒家經傳의 대표라 할 것이다.
《論語》는 원래 魯論·齊論·古論 등 三種이 세상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 原本은 前漢末에 이미 佚失되었으며, 현재의 《論語》는 前漢末期 安昌侯 張禹가 魯論·齊論을 비교하여 20篇으로 撰定한 것이다.
이에 대한 註釋書로는 後漢末期 鄭玄이 註한 것이 있었으나 그 일부만이 전하고 있으며, 魏의 何晏이 集解한 《論語集解》 10권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한다.
그후 梁의 皇侃이 撰한 《論語義疏》 10권이 있으며, 宋代에 이것을 校正한 邢昺의 《論語正義》 20권이 현재 十三經에 收錄되어 있다.
또한 본서의 臺本인 주자의 《論語集註》 10권과 淸代의 劉寶楠이 지은 《論語正義》 10권이 있다. 이중에도 주자의 집주는 해박한 訓詁와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다듬어져 있어 가장 대표적인 주석서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朝鮮初期 明의 永樂大全을 도입한 뒤로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內閣本을 간행하여 舊韓末에 이르기까지 士子들은 오로지 이 주자의 집주만을 敎學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 先臣들의 사상과 문헌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주자의 집주에 입각한 논어의 해석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물론 淸代의 考證學이 나온 이후 새로운 해석들이 많이 나왔으며 朝鮮後期 실학자들이 燕京을 통해 이러한 해석을 접하고 신봉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자의 집주를 근간으로 하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본인은 다년간 고전강독을 해오면서 完譯된 集註本 《論語》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왔다. 그리하여 전에 몇몇 동지들과 講讀會[二以會]를 만들고 본서에 대한 번역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篇次를 나누어 회원들이 分擔草譯하고 이를 수집, 다시 보완하기로 계획하였던 바 본사업에 참예한 회원은 다음과 같다.
박룡규, 許鎬九, 金信浩, 金綾夏, 李忠九, 金在烈, 成百曉[이상 檀大 東洋學硏究所], 李鍾德, 李海權, 李蘭洙[이상 高大 中央圖書館], 白源鐵[公州師大], 金基鉉[全北大], 곽진[尙志大].
그 후 회원들의 직장이동으로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하였으며, 그나마 뒤늦게 수집된 일부의 草稿도 집필자가 많은 관계로 凡例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문체의 통일성이 결여되었으며, 원문의 해석에도 각자 이견이 노출되어 이를 완벽한 원고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어려움이 많았다. 이 때문에 수년간을 그대로 방치해 둔 상태에 있었다.
이에 본인은 단독으로 이 작업을 완료하기로 하고 회원들의 양해하에 本草稿의 대폭적인 수정과 보완을 감행하였던 바, 특히 다음 세 가지 사항에 유의하여 집필하였다
1. 본문과 집주의 원문에 懸吐하여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한문수학의 맥을 잇고 해석의 정확성을 기하도록 한다.
2. 동양고전에 뜻을 둔 초학자들의 강독을 위주로 하여 意譯보다는 逐字譯에 가까운 直譯刑을 택함으로써 초학자들의 자습에 편리하도록 한다.
3. 많은 부연설명이나 주석을 피하고 되도록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여 原義 파악이 쉽도록 한다.
그러나 菲才薄學한 본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벅찬 작업이었다. 평소 읽던 吐[토씨] 하나도 막상 원고에 정리하자니 자신이 없어지고 수십 번 강독했던 내용들도 새삼 살펴보면 의문되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聖經에 누를 끼친다는 죄책감이 깊었지만, 일단 초학자들을 위한 기초교습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책무감으로 蠻勇에 蠻勇을 거듭하여 오늘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본서의 번역을 시작한 지 무려 十數個星霜이 지난 뒤에서야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 비로소 간행하게 된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최대한의 심혈을 기울였지만 經義의 완전해석이 어려웠으며 또한 현토에도 전래의 관습을 탈피하고, 句譯 본래의 면모를 살리겠다는 의도 하에 새로운 시도를 하였으나 통일성을 기하기 어려웠으며, 특히 本草稿의 개악이 없지 않을 것이므로, 회원들의 폭넓은 양해와 선배들의 아낌없는 叱正을 기다려 다시 수정할 것을 기약하는 바이다. 따라서 완역본 四書를 빠른 시일 내에 출간할 계획 하에 현재 《孟子》를 작업하고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본서가 여러 동호인의 학문연구와 교양에 다소나마 보탬이 된다면 더이상 바램이 없겠다.
끝으로 東洋古典國譯叢書의 간행을 추진하시는 傳統文化硏究會 安炳周회장님의 큰 뜻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經義解釋에 도움을 주신 金信浩학형과 교정에 애써 준 朴勝珠양, 秦仁燮군, 金鎰均군, 金周勇군, 朴敬淑양 등에 감사드린다.
西曆 1990년 庚午 仲春 下澣에 成百曉는 洌上의 觀一軒에서 삼가 쓰다.
孔子年表
▷ B.C. 551년 周靈王 21년, 魯襄公 22년 11월月에 魯의 昌平鄕 鄒邑에서 誕生.
▷ B.C. 549년 3세 父親 叔梁紇이 別世하다.
▷ B.C. 544년 8세 遊戱를 할 때 항상 祭器를 벌려놓고 祭祀지내는 놀이를 하였다.
▷ B.C. 542년 10세 子路가 生하다.
▷ B.C. 533년 19세 宋의 亓官씨(기관씨)와 結婚하다.
▷ B.C. 532년 20세 아들 孔鯉가 生하다. 魯委吏가 되다.
▷ B.C. 531년 21세 魯의 司職吏가 되다.
▷ B.C. 528년 24세 母親 顔氏가 別世하다.
▷ B.C. 525년 27세 郯子에게 옛날 官制를 배우다.
▷ B.C. 522년 30세 12월月에 老子에게 禮를 묻다. 仲弓·有若이 생生하다.
▷ B.C. 518년 34세 魯의 孟僖子가 臨終時에 그의 두 아들을 孔子에게 師事하여 禮를 배우라고 遺言하다.
▷ B.C. 517년 35세 齊에 갔다가 魯에 돌아오다. 벼슬을 하지 않고 敎授를 하니 弟子들이 많이 오다.
▷ B.C. 514년 38세 顔回가 生하다.
▷ B.C. 507년 45세 子夏가 生하다.
▷ B.C. 506년 46세 子游가 生하다.
▷ B.C. 505년 47세 曾參이 生하다.
▷ B.C. 501년 51세 閔子騫이 생生하다.
▷ B.C. 500년 52세 魯의 司寇 벼슬을 하다. 魯定公을 도와 齊景公과 夾谷에서 會談하다.
▷ B.C. 497년 55세 魯에서 뜻을 얻지 못하고 衛로 가다.
▷ B.C. 496년 56세 齊에서 魯에 女樂을 보내다. 匡땅에서 難을 當하다.
▷ B.C. 495년 57세 桓魋가 孔子를 죽이려 하다.
▷ B.C. 493년 59세 衛로 가다.
▷ B.C. 492년 60세 宋을 지나 陳으로 가다.
▷ B.C. 489년 63세 陳에서 蔡로 가다가 포위되어 식량이 끊기다. 蔡에서 葉公을 보고 衛로 돌아오다.
▷ B.C. 487년 65세 夫人亓官씨(기관씨) 別世하다.
▷ B.C. 484년 68세 魯人이 幣帛으로 孔子를 부르므로 魯로 돌아오다. 詩, 書, 禮를 整理하다.
▷ B.C. 483년 69세 孔鯉와 顔回가 죽다.
▷ B.C. 482년 70세 魯哀公이 政事를 묻다.
▷ B.C. 481년 71세 魯에서 麒麟을 얻다. 春秋를 짓다.
▷ B.C. 479년 73세 夏四月 己丑에 世上을 떠나다.
2023.3.12 삼반제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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